내 안의 여신을 찾아서
내 안의 여신을 찾아서:
융 심리학으로 읽는 자기 발견의 여정
모린 머독
머리말
직장에서 성공한 여성들이 내지르는 불만족의 절규, 이 불만은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라는 느낌, 공허감, 팔다리가 잘려 나간 듯한 느낌, 심지어는 배신감이라고까지 표현할 수 있다. 이 여성들은 전형적인 남성 영웅의 여정을 따르며 학문적, 예술적, 경제적 성취를 이루어냈다. 그러나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이런 의문에 시달렸다. "도대체 이게 다 무엇을 위한 거지?"
나는 여성 영웅의 여정이 남성 영웅의 여정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이해하고 싶은 열망을 품고 1981년에 조지프 캠벨을 찾아갔다. 그때 나는 여성 영웅이 거치는 여정의 각 단계가 남성 영웅이 거치는 여정의 여러 양상을 포함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여성의 정신적 발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여성 자신과 여성성의 내적 분리를 치유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켐벨이 여성은 여행을 떠날 필요가 없다고 말했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모든 신화에서 여성은 전통적으로 '거기', 그 자리에 있습니다. 여성이 해야 할 일은 그저 사람들이 도달하려고 하는 곳이 바로 자신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자신의 특성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를 여성들이 깨닫는다면, 유사 남성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자신을 망가뜨리지 않을 것입니다."
켐벨의 대답에 나는 머리가 멍해졌고, 이내 깊은 실망감이 몰려왔다. 내가 아는 여성들과 나와 함게 일하는 여성들은 거기, 사람들이 도달하려는 그곳에 있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들은 끝없이 옷감을 짯다 풀었다 하는 일을 되풀이하며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페넬로페가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남성 신에게 봉사하는 남성 지배적 문화의 시녀가 되거나 근본주의 설교자들의 충고에 따라 가정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그들에게는 여성이 누구이고 어떤 존재인지 이해하는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 25
오늘날 여성들은 탐색의 여행을 하고 있다. 이 여행은 여성으로서 자신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할지 그리고 여성성에 난 깊은 상처를 어떻게 치유할지를 배움으로써 자신의 여성적 본성을 제대로 받아들이기 위한 것이다. 온전하게 통합되고 균형 잡힌 전인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내면으로의 여정이다. 여성 영웅의 행로도 쉬운 길이 아니다. 제대로된 이정표도 없고 알아보기 쉽게 설명한 여행 책자나지도도 없다. 또 이 여정을 절대로 곧게 뻗은 일직선 도로를 따라가지도 않는다. 외부 세계는 이 여정을 가치 있다고 여기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방해하거나 간섭한다. 26
눈물 속에서 시계 방향으로 순환하는 여성 영웅의 여정에 관한 이미지가 떠올랐다.
. 그 여정은 내가 의존적이면서도 지나치게 통제하려 들고 분노로 가득 차 있다고 규정했던 여성성을 거부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 그러고는 독립, 명성, 돈, 권력, 성공이라는 열매를 얻으려고 남성 조력자들과 함께 외부로 향하는 남성 영웅의 여정을 떠났다.
. 그 다음에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메말라버린 듯한 느낌과 절망감으로 가득한 방황의 시기가 이어졌다.
. 메마름과 절망은 암흑의 여성성이 존재하는 지하 세계로 내려갈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이 암흑은 내가 '모녀 분리'라고 이름 붙인 여성성의 깊은 상처를 치유하라고 요구했다.
. 지하 세계에서 돌아 오는 길에서 여성적 가치를 재규정하고 승인하는 과정을 통해 여정의 전반부에서 익힌 남성적 기술과 여성적 가치를 통합했다. 29
남성 중심 사회에서 인정받고 싶어 하는 나 자신의 욕구를 더 면밀하게 관찰하는 과정을 거치며 천천히 더디게 나아갔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인정받기를 원했지만, 실은 그 사회가 많은 것이 결핍되어 있고 지독히도 파괴적이라는 것을 나를 비롯한 나와 같은 세대의 많은 여성들이 알게 되었다. 우리는 서구의 우위를 되찾기 위해 남보다 더 뛰어나야 한다는 압박을 받으며 자란 포스트 스푸트니크 세대였다.
이 모델은, 적극적으로 삶을 살고 이 세상에 이바지하기 위해 분투해 왔으나 한편으로는 발전 지향적인 우리 사회가 인간의 정신과 지구의 생태적 균형에 끼친 영향을 걱정하는 많은 사람들의 경험을 기술한다. 31
성공을 하는 데 방해가 되는 여성성을 떨쳐버리고 싶어서 우리의 여성 영웅은 내면의 여성성과 남성성의 불균형 상태를 키웠다. 이 불균형은 그녀 자신을 망가드리고 상처 냈다. 그녀는 일을 논리적이고 효과적으로 처리하는 방법을 배웠지만 대신에 건강과 꿈과 직관력을 희생했다. 직관이 무디어진 것을, 창조적인 프로젝트나 가족을 위한 시간이 부족한 것을, 다른 여성들과 친밀한 우정을 잃어버린 것을, 자기 안의 '작은 여자아이'가 사라진 것을 토로하며 슬퍼할지도 모른다. 34
남성적 모델을 쫒아서 성공하는 방법을 배웠지만 그 모델이 전인이 되고 싶은 욕구를 채워주지는 못했다. 애초에 자부심을 느끼고 성공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규칙에 따라 게임을 하기로 결정한 것부터 '잘못된 판단'이었다. 여성이 더는 가부장적 규칙에 따라 게임을 하지 않을 거라고 결정하는 경우, 이제 그녀에겐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느껴야 하는지에 관한 지침이 따로 없다. 35
더는 낡고 오래된 방식을 따르고 싶지 않을 때, 삶은 흥미진진해지고 한편으로 겁이 나기도 한다...입문 과정은 시작되었다. 이 입문 단계에서 여성은 하강을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얼핏 끝나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방황과 비탄과 분노의 시간이 뒤따른다. 자발적 소외의 시간을 포함한 어둠과 침묵의 시기이자 다시 한 번 자기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깊이 경청하는 기술을 배우는 이 시기는 몇주, 몇달, 몇년이 걸릴 수도 있다.
이 시기는,,, 대지로부터 자양분을 공급받고 계절의 변화와 달의 주기를 알아차리는 일이 잦아지면서 자연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하강은 자신의 잃어버린 영혼을 재발견 - 오늘날 많은 여성들이 '여신의 회복'이라고 보는 - 하는 신성한 여정이기 때문에 서둘러 끝낼 수가 없다. 36
하강의 시간이 끝난 후에 우리의 여성 영웅은 자신이 처음 여성성을 거부할 때 생긴 상처인 '모녀분리'를 천천히 치유하기 시작한다. 그녀와 어머니 사이에서 실제적인 치유가 일어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여성 영웅 내부에서는, 그녀가 자신의 몸과 영혼을 보살피고 자신의 감정, 직관, 성, 창조성, 유머를 회복하기 시작하면 분명히 치유가 이루어진다.
갑작스럽게 도자기나 요리 강좌를 듣고 싶다거나 정원을 가꾸거나 마사지를 받고 싶다거나 편안한 안식처를 만들고 싶다거나 하는 충동을 느낄 수도 있다. 외부 지향적이던 힘의 일부가 창조적인 일을 하거나 몸을 재발견하거나 다른 여자들과 함께 있는 것을 즐기는 쪽으로 천천히 방향을 바꾼다. 이 단계에서는 가부장적 관점을 지닌 사람에게는 낙오로 보일 법한 희생과 분명한 선택이 필연적으로 뒤따른다. 38
여성이 자신을 규정하기 위해 외부에서 벌이는 영웅적 탐색을 줄이면 그녀 자신의 이미지와 자신의 목소리를 탐험할 수 있을 만큼 자유로워진다.
외부 세계에서 성공하는 데 전념하는 사람들은 그녀가 삶의 가치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불편해한다. 이것이 이 여정에 정신적인 조력자가 있을 거라는 믿음과 용기가 필요한 이유이다. 여성을 상징하는 이미지들을 공부하고 그것을 공유하고 그들 자신이나 그 문화가 잃어버린 것과 여성적인 것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여성들이 모이고 있다. 많은 여성들이 자연의 주기를 기념하고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의 생활 변화를 축하하는 의식을 치르는 일에서 위안을 받고 기쁨을 발견한다.
여성이 따를 만한 다른 모델이 없었기 때문에 여성들은 남성 영웅의 여정을 모방했다. 여성의 삶은 남성 중심적인 문화에서 여성으로서 '성공'하거나 남성에게 지배당하고 의존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오늘날 서구 사회의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구조를 변화시키려면 새로운 신화와 여성 영웅을 찾아야만 한다. 39
현재 우리 문화의 발달 단계에서 여성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나는 여성의 지식, 소망, 욕망이 지배적인 남성 중심의 문화의 지식, 소망, 욕망만큼 중요하지 않으며 정당한 것이 아니라고 규정한 내적 분리의 문제를 치유하는 일이라고 강하게 확신한다.삶의 진실을 말해주는 감정, 직관, 꿈의 이미지를 무시하라고 말하는 그 내적인 분리를 치유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다. 40
1장 딸들, 영웅의 길에 서다
"모성은 우리 안에 있는 희생자, 자유가 없는 여성, 순교자를 상징한다. 위험하게도 우리의 개성은 흐릿해 우리의 어머니들과 겹쳐 보인다. 어머니가 끝나고 딸이 시작되는 그 지점이 어디인지 알고 싶어서 우리는 근본적인 수술을 감행한다"
- 에이드리언 리치, <더 이상 어머니는 없다> -
남성의 언어에 갇힌 여성
캡벨에 따르면, 진정한 영웅의 과업은 기존 질서를 해체하고 새로운 사회를 창조하는 것이다... 문화적 차원에서 보자면 기존 질서는 좀더 강하고, 좀 더 목소리가 크고, 좀더 힘센 남성 집단이 지배하고 통제하는, (사회에) 깊숙이 자리 잡은 가부장적 가치관이다. 오늘날에는 여성과 남성 모두 가부장적인 경제, 정치, 사회, 종교, 교육 구조뿐만 아니라 가부장적인 언어와 사고에 도전장을 내밀며 새로운 방식을 창조하고 있다. 하지만 개인적 차원에서 보자면 '어머니'가 낡은 질서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으므로 개성화를 위한 여성 영웅의 첫 번째 과업은 어머니에게서 분리되는 것이다. 49
우리 문화의 잣대로 열등하고 수동적이며 의존적이고 무능하며 사람을 교묘하게 조종한다고 왜곡되어 온 여성적 자질을 모두 거부하는 시기를 거치게 된다.
자신이 어머니가 가부장제 사회 안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어머니가 성 역할에 따라 제한을 받는 정도와 가부장제 사회에서 깊게 자리 잡은 여성의 열등감을 표출하는 정도에 따라 딸이 어머니로부터 분리되기를 원하는 정도가 결정된다. 49
딸이 발달 단계를 밟으며 성숙해지고 여성성의 가치가 폄하되는 근본 원인을 이해하게 될 때, 그녀는 자신이 느끼는 부족함의 원인이 어머니가 아님을 깨달을 것이다. 남성성을 찬양하는 문화 속에서 많은 딸들이 경험하는 낮은 자존감과 혼란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손쉬운 대상이 어머니였을 뿐이다.
우리의 어머니들과 그 어머니의 어머니들이 남자들이 투사한 이미지 속에서 롯의 아내처럼 갇혀 살아왔다는 것이 진실이다. 어머니들의 상처 입은 여성성을 꺼내어 치유하는 것이 딸들의 임무가 되었다. 50
여정의 시작, 어머니 거부하기
많은 딸들이 어머니보다 자유로운 삶을 원하는 마음과 어머니에게 사랑과 인정을 받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갈등한다. 딸들은 어머니를 뛰어넘기를 원하지만 어머니의 사랑을 잃을 위험을 무릅쓰는 것은 두려워한다. 지리적으로 거리를 두는 것이 성장해야 할 필요성과 어머니의 마음에 들고 싶다는 욕망 사이에서 딸이 느끼는 긴장을 처음으로 해결해주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어머니로부터 분리를 이루어내려고 많은 젊은 여성들이 자신의 어머니를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거부해야 할 존재, 복수심과 소유욕이 강하고 탐욕스러운 원형적 여성의이미지로 만든다. 딸들은 이런 특질을 자기 내면의 어머니에게 덧씌운다. 융에 따르면 이 내면의 어머니는 자아가 받아들일 수 없는 무의식적인 이미지인 그림자 원형으로 우리 안에서 작용하기 시작한다. 55
우리는 우리 안에서 그 내면의 어머니를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투사한다. 어머니와 딸의 관계는 물론이고 어머니에게서 분리되는 일은 아주 복잡한 문제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여성 문학과 동화에서 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났거나 부재하는 상태이고, 있다 하더라도 사악한 존재로 표현된다.
<헨젤과 그레텔>의 계모
모성 공포증, "난 엄마 처럼 살지 않을 거야"
어머니의 원형은 양 극단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위대한 어머니와 공포의 어머니다. 이 두 원형적 모델은 유아기와 아동기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인간의 의존성에 대응하여 형성된 인간 심리의 구성 요소들이다. 56
성인이 된 많은 이들이 여성적 힘에 대해 그리고 종종 자신의 실제 어머니에 대해 '공포의 어머니'라는 원형적 측면에 반응한다. 어머니들의 삶을 그들이 살았던 시대적 맥락, 그들의 가족사적 배경, 그 당시 여성에게 주어졌던 기회를 함께 살펴서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머니의 결점은 내면의 부정적 어머니의 일부로 내면화된다. 57
딸들은 자신의 이 무의식적인 반응을 의식할 때까지 계속해서 어머니에게 반발할 것이다.
배우자와 아이들을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한 어머니의 '순교자 원형'을 피한다.
어머니의 기본적 원형 이미지, 칼리 여신
창조와 보존과 파괴으 세 속성을 지님. 그년 탄생이자 죽음, 자궁이자 무덤, 아이에게 생명을 주는 동시에 빼앗아 가는,
모계 종교들은 지난 6,500년 동안 가부장 종교에 억압당하고 가치를 무시당해 왔다. 여성을 우울하게 만들고 자살로 내모는 성 역할을 마지못해 받아들이면서 많은 여성들이 재능과 기술과 힘을 억압당한 것처럼 칼리 여신의 힘은 지하로 떠밀렸다. 칼리 여신의 분노는 창조적인 형태로 표현되지 않거나 창조의 물길이 막힐 경우에 죽음처럼 모든 걸 집어삼키는 정체된 암흑의 삶을 가져온다.
어떤 여성들은 자신이 어머니처럼 되는 것뿐만 아니라 실제로 누군가의 어머니가 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모성 공포증 Matrophobia이라 불리는 이 두려움은 우리 문화의 아주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60
많은 여성이 어머니로부터 벗어나기를 갈망하면서도 동시에 어머니를 뛰어넘는 것에 강한 죄책감을 느낀다. 61
수전은 자신의 성취와 자부심이 은연중에 훼손당하고 무시당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자신이 이룬 성공이나 행복을 어머니와 공유할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이 슬프다.동시에 수전은 자신이 어머니보다 뛰어나기 때문에 어머니를 배신했다고 느낀다.자신의 성공에 죄책감을 느끼고 어머니의 실패에 화가 난다. 어머니와 다르다는 것에 불안을 느낀다. ... 지금은 어머니를 자신과 분리해 바라보고 어머니가 살아온 삶의 매락 속에서 어머니의 선택을 받아들이고자 노력한다. 62
많은 어머니들이 "나처럼 살지 마라, 그렇지만 나처럼 살아라" 혹은 "성공해라, 하지만 너무 성공해서는 안된다" 같은 모순되고 양가적인 메시지를 딸들에게 보낸다. 63
많은 여성이 여성적이라는 말을 두려워한다. 이단어는 오염되었다. 어떤 이들은 '여성적'이라는 단어의 의미 속에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을 돌봐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처럼 여긴다. 사회는 여성들이 자신의 성취보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희생하며 살아가도록 조장해 왔다. 64
여성성을 거부할 경우 자신의 어머니가 보인 부정적인 여성성의 측면은 물론이고 퐤할하고, 심미적이고, 열정적이고, 돌봄에 소질있고 직관적이고, 창조적인 자신의 긍정적인 여성적 본성까지 거부하게 될 위험이 있다.
. 화가 많고 감정적인 어머니를 둔 여성들은 파괴적인 사람으로 보이지 않도록 자신의 분노나 감정을 통제하려 애쓴다. 이따금 이런 분노의 억압은 남성이 규정한 체제에서 불평등을 감지할 수 없게 한다.
. 어머니를 미신적이고 종교적이고 구식이라고 보는 여성들은 냉철한 논리와 분석을 선택하면서 여성성의 어둡고 신비스럽고 마법적인 면을 포기한다. 65
딸들은 성모 마리아 또는 매춘부라는, 여성을 향한 전통적인 이분법적인 시선을 경험한다. 아버지에게는 금기로 보이고 어머니에게는 경쟁자로 보인다. 부모님을 불쾌하게 만드는 것 보다 차라리 독립할 때까지 자신의 피어오르는 성을 닫아버릴 수도 있다. 그녀의 어머니와 아버지 둘 다 그녀의 몸을 통제하는 셈이다. 이것이 여성들이 본능적인 몸의 지혜를 거부하는 일의 시작이지 않을까 싶다. 여성들으느 대체로 자신의 삶에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끼는 것'이 닥쳐 올 때 몸으로 알아차린다. 하지만 여성들이 그 몸을 무시하기 시작하면 이성 쪽으로 치우쳐 직관을 믿지 않게 된다. 67
거식증, 알콜릭, 섹스, 마약 중독
몸고 정신이 점점 더 분리되면 고통이나 질병을 일으키고 자기 몸의 한계를 인식하는 능력을 잃어버린다. 여성들은 움직임과 신체 지각을 통해 영적인 것에 접근하기 때문에 몸을 부정하면 여성 영웅은 영적인 발다라을 이룰 수 없다. 그런데 그녀는 직관과 꿈을 무시하고 좀 더 안전한 정신의 활동을 추구한다. 67
서구 문화에서 구약 성경의 하와를 요부로 묘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 여성 육체에 대한 거부는 남성 우위의 종교에서 5천년 동안 여성의 성을 금기하는 쪽으로 강화되어 왔다. 여성의 성(섹슈얼리티)은 종교 단체뿐만 아니라 정치 기구에서도 권력에서 배제의 구실로 이용되었다.69
"기독교가 내 육체 때문에 나를 배신했다는 것을 알았죠"
2장 '아버지의 딸'로 자라다
아버지와 어린 여자아이의 관계는 아이가 아버지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고 아버지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게 해준다. 아버지의 인정과 수용을 구하면서 딸은 자신 능력, 지성, 가치를 아버지나 다른 남성들과 비교하여 평가한다. 어린 여자아이가 아버지에게 받는 인정과 격려는 긍정적인 자아 발달을 이끈다. ... 이 여성들의 내면에는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좋아애주는 남성적 인물이 있다. 이 긍정적인 내면의 남성 혹은 아니무스 인물은 수용적이고 심판하지 앟는 태도로 그들의 창조적인 노력을 지지한다.
*아니무스: 칼 융이 분석심리학에서 사용한 용어, 여성의 무의식 속에 있는 남성적 요소를 가리킴.
이 내면의 남성은 여성의 아버지나 아버지 같은 인문과 맺은 긍정적 관계에서 만들어진다. 내면의 남성은 여성 영웅의 전체 여성에서 그녀를 지지해주는 안내자가 될 것이다. 80
제우스 머리에서 태어난 아테나
메티스 여신과 제우스 신의 딸인 아테나 여신 이야기는 여성들이 어머니를 멀리하고 아버지와 동일시하는 현상을 설명해주는 좋은 예이다. 제우스가 메티스를 삼켜버린 것은 그리스 문화사에서 모계 사회로부터 남성적인 세계로 이행하는 과도기의 사아징으로도 볼 수 있다.
아테나는 번쩍이는 황금 갑옷을 걸치고 한 손에는 날카로운 차을 들고 벽력 같은 고함을 지르면서 성숙한 여성의 모습으로 제우스의 머리에서 튀어나왔다. 이 극적인 탄생으로 아테나는 자신이 제우스의 분신이라고 생각했고, 제우스를 유일한 부모로 인식했다.
아버지 아가멤논을 살해한 자신의 어머니 플리타임네스트라를 죽인 오레스테스의 죄를 묻는 재판에서 무죄를 결정짓는 표를 던짐으로써 가부장제의 편에 섰다. 그리하여 아네타는 모성적 유대보다 가부장적 가치를 우위에 두었다.
'아테나 유형 여성'은 아버지의 딸이다.즉 어머니를 경시하고 아버지와 자신을 동일시한다.'아버지의 딸'은 총명하고 야심만만하며 일을 척척 해낸다. 정서적인 관계는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아버지의 딸은 상처 입기 쉬운 약한 존재에게 공감과 연민을 느끼는 능력이 부족하다. 만일 그녀가 어머니의 강점을 발견하고 모성적 유대와 강한 결속 관계를 회복하지 않는다면 끝내 여성성 분리를 치유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84
난 항상 어머니가 문제라고 생각햇기 때문에 내 슬픔의 원인을 아버지라고 진단하는 마거릿의 말에 깜짝 놀랐다. 동화 속의 여주인공들에게 하나같이 반복되는 오랜 주제처럼 나는 어머니를 악당이라 생각했고 아버지가 나를 구해주기를 바랐다. 나는 아버지를 우상화했고 구원자로 보았다. 나느 ㄴ왕자님이 와주기를 기다리는 예쁘고 똑똑한 딸의 역할을 잘 해냈다. 하지만 아버지는 결코 나를 구해내지 못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나는 아버지가 세상에서 중요한 일을 하려고 나와 어머니를 버렸다는 것을 알았다. 87
영웅의 길에 들어서다
두 번째 단계에서 여성은 자신을 남성과 동일시하거나 남성에게 구조되기를 바란다. 이 시기는 여성의 자아발달에서 중요한 시기이다. 역할 모델을 찾는다. 87
"대부분의 여성들은 남성처럼 되거나 혹은 남성들에게 호감을 사서 힘과 권위를 얻으려 한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서어에게 인정받기 바라는 것은 어머니와 하나로 결합해 있던 단계에서 벗어나 훨씬 독립적인 상태로건강하게 이행하는 것이므로 처음에는 그렇게 부정적인 일이 아니다.
하지만 만일 여성이 남성의 관심이나 남성의 규정이라는 거울 밖에서는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매우 해로울 수 있다.
하버지, 계부, 삼촌, 할아버지로부터 인정과 격려를 제대로 받지 못했거나 오히려 용기를 꺾는 말을듣는 경우에는 자아감에 깊은 상처를 입을 수 있다. 또한 과잉 보상 문제나 완벽주의를 야기하거나 아니면 여성의 발달을 거의 마비시킬 수도 있다.
갑옷입은 아마존
* 아마존: 활을 당기기 편리하도록 자신의 왼쪽 젓가슴을 잘랐다고전해지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전사.
이런 유형의 여성은 직업적으로는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감정의 영역이나 관계의 영역에서 신뢰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그녀 내면의 남성적 인물은 '가슴을 가진 남자'가 아니라 절대로 멈추지 않는 탐욕스러운 폭군이다. 92
3장 시련의 길에 오르다
"여성의 열등함의 신화를 부수려면
분별의 숫돌에 칼날을 갈아 자신만의 진실의 칼을 지닐 필요가 있다. 여성에 관한 아주 많은 진실이 가부장적 신화 속에서 흐려졌기 때문에 여성들은 자신들의 앎을 표현하기 위해 새로운 형식, 새로운 언어를 개발해야 한다. 여성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야 한다." 120
4장 성공의 덫에 걸리다
수퍼우먼 환상
불행히도 절대로 어머니 같이 되지 않으려 노력한 많은 젊은 여성들이 남성처럼 되어버렸다. 생산이라는 남성 중심의 기준으로 자존감, 자기 인식, 자기 가치를 평가했다. 처음엔 성공이 여성들을 들뜨게 했다. 하지만 더 크게 성공할수록 에너지와 시간이 더 많이 필요했다. 관계와 돌봄이라는 여성적 가치는 목표 달성에 비해 덜 중요했다. 그리고 많은 여성이 자신들이 결코 '충분할' 수 없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137
강한 여성의 딜레마
남편과 아이들에게 자신의 성취를 의존했던 어머니에 대한 반작용으로 여성 영웅은 어떤 것이라도 성취할 수 있도록 어떤 남자보다 독립적이고 무엇이든 스스로 해낼 수 있어야 한다고 느끼게 되었다. 그녀는 아무것에도 의지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탈진하기 직전까지 자기 몸을 혹사한다. 거절하는 법을 잊어버린 여성 영웅은 모든 사람의 비위를 맞추려 들면서, 보살핌받고 사랑받고 싪은 자신의 용구는 무시한다. 통제 불능이다. 내면의 남성과의 관계는 뒤틀리고 폭력적으로 변했다. 내면의 남성은 절대로 여성 영웅이 쉬지 못하게 한다. 그녀는 억눌린다고 느끼지만 이 괴로움의 근원을 이해하지 못한다. 139
여성 영웅이 여성르로서 스스로를 충분하다고 느끼고 자신의 인간적인 한계를 인정할 때 비로소 직장에서나 집에서 수퍼우먼의 기준을 거부할 수 있다. 여기엔 다시 '마음으로 느끼도록' 직장을 그만두거나 권력이나 지위를 포기하는 일이 포함될 수도 있다. 145
5장 아버지에게 배신당하다
배신당한 이피게네이아
이피게네이아, 자신을 향한 아버지 아가멤논의 사랑을 맹목적으로 믿는 딸과 트로이로 가는 그리스군의 함대가 순풍을 얻도록 기꺼이 딸의 목숨을 희생하는 아버지를 보고 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때 아가멤논의 임무는 자신의 동생 메넬라오스의 아내인 헬레네를 구하는 것이었다.
신은 남성의 얼굴를 했다
캐럴 크리스트는 <아프로디테의 웃슴>에서 여성이 성장하면서 혹은 '아버지 종교'를 공부하면서 신에게 느끼는 배신감의 근원을 설명한다.
"내가 공부하려고 한 신의 말씀은 성경의 성차별적 언어를 초월해 존재할 거라 생각했다. 나느 ㄴ내가 남자 교수들과 똑같이 될 수 잇을 거라고 여겼다. 지적인 삶을 사랑하고 종교적 의문에 관심이 있다는 점에서 공통된 인간성을 공유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크리스는 전통적인 여성 역할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여성들을 경멸한 적도 있었다. 그녀는 이러한 태도가 여성으로서 자신을 배신하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하느님 아버지와 남성 멘토들을 모델로 삼았지만, 그들은 가부장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자신의 위치를 인정하면서 어떻게 여성의 몸을 가진 여성처럼 생각할 것인지, 어떻게 다른 여성들과 자신을 동일시할 것인지 따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주지 않았다.
크리스트는 "인간으로서, 여성으로서, 학자로서, 교사로서 (그녀가) 자신의 가치를 깨닫기 위해 아버지 신이나 생물학적 아버지에게 의존하지 않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돼었다. 163
길들여진 딸들, "나는 항상 가면을 쓰고 있었어요"
지난 5천년 동안 대체로 생산 지향적이고권력 지향적인 관점과 지배-피지배의 방식으로 삶에 접근한 남자들이 우리 문화를 규정해 왔다. 삶에 경으를 표하는 것, 그리고 자연의 순환과 한계, 그 산물에 경의를 표하는 것은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한때 남성들이 모든 것의 척도였다는 것을 확인하려면 단지 예술의 역사를 살펴보기만 하면 된다. 그들의 신체 비율은 이상적이었다. 지혜, 정의, 균형, 인내라는 개념은 근본적으로 남성의 영역이었고 남성 지향적이었으며 남성이 관장하는 것이었다. 164
가짜 목소리 거부하기
업무상 거래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는 아버지의 말을 경헝할 때와 똑같은 느낌이었다. 권력의 비밀스러운 세계를 공유하는 것은 허용되지만 실제로는 드라마 속 배우일 뿐이라는 는낌, 거기 서서 그들의 시중으 ㄹ들고 비위를 맞추고 경청하는 시종이 된 듯한 느낌, 내가 그이릉ㄹ 한다면 나 자신을 배신하는 것이라는 기분 나뿐 느낌.
내게 남은 이 느낌은 뭘까? 깊은 슬픔과 해방감이라는 두 개의 다른 느낌. 어딘가에 속하지 못한 외톨이라는 점과 남들이 기대하는 대로 하지 않았다는 점과 더는 내가 아끼는 공동체의 일부가 아니라는 점이 슬폈다. 한편으로 나는 다른 사람들의 기대로부터 해방되어 새로이 얻은 자유와 내면의 탐색에 충실했음을 축하했다.
여성 영웅은 영웅적 과업의 다음 단계에 '아니오'를 외치면서도 몹시 불편한 마음이 든다. 영웅적 행위가 아닌 것은 수동성, 하찮음, 방종으로 보일 뿐이다. 169
가부장제를 거부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리는 남성성과 새로운 관계를 발달시키기 위한 새로운 공간을 우리 내면에 창조하는 시간을 보내게 된다. 새롭게 관계를 맺을 남성은, 우리 문화에서 많은 남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수 세기에 걸쳐 여성성과 분리되어 있던 남성적 목소리가 아니라, 우리를 위대한 어머니에게 데려다 줄 창조적인 남성이다. 위대한 어머니를 만남으로써 우리는 여성적 본성에서 분리된 상태를 치유할 수 있다. 가부장제를 거부하면서 우리는 '5천년 동안 추방된 여성성의 힘과 열정이 잠들어 있는 땅속 깊숙한 곳, 여신의 정신을 향해 하강을 시작한다. 173
6장 내면의 여신을 만나다
하강, 자발적 소외의 시간
여성들은 흔히 딸, 어머니, 연인, 배우자 같은 특정한 역할이 끝났을 때 하강을 한다. 또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에 걸리거나 사로를 당했을 때, 생계 수단이나자신감을 잃었을 때,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주했을 때, 학위를 끝내지 못하는 데서 오는 무력감과 벗어날 수 없는 중독 또는 실연의 아픔을 겪었을 때 절단과 하강의 공간이 열린다.
지하 세계로 가는 이 여정은 혼돈과 비판, 소외와 환멸, 분노와 절망으로 가득 차 있다. 177
많은 여성이 이 자발적 소외의 기간 동안 '남성 왕국'에서 자신을 끌어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180
어머니를 거부하면서 여성성의 거울이 산산조각 난 여성은 분리된 자신의 부분을 되찾기 위해 땅 속 깊이 내려간다. 이 여행중에 여성은 어쩌면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의 몸, 자신의 감정, 자신의 겅적 취향, 자신의 직관, 자신의 이미지, 자신의 가치, 자신의 마음을 알게 될 수 있다. 이것들이 그녀가 그 깊은 곳에서 찾는 것들이다.
하강은 신성한 여정이다. 하지만 우리 문화에서는 대개 약물 치료를 받아서 되도록 빨리 없애버려야 할 우울증으로 분류한다.
고대 문명에서 칼리 여신은 자신이 권력과 영광이 남성 신들에게 넘어갔던 그 원초적 배신 때문에 분노로 가득 차 있다.
칼리 여신과 다른 여신들이 창조 원리는 아버지 신들에게 자리릴 빼앗겼다. 스스로 자신을 아버지라 칭하는 성경의 야훼도, 난나, 닌후르사그, 마미로 불리던 수메르와 바빌로니아 어머니 신의 고대 마술을 모방해 손으로 진흙을 빚어 자신의 아이들을 들었따. 비옥한 대지의 창조자라는 여성 신의 상징성은, 기독교가 어머니 원형을 성공적으로 제거하고 창조주 아버지와 구세주 아들로 대체하면서 완전히 뿌리 뽑혔다. 184
나는 일어버린 나의 조각들을 찿고 있다. 어쩐지 지모신을 만나기 전에 그 조각들을 찾아야만 할 것 같다. 아버지의 딸이 되어 아버지를 기쁘게 하고 성공하려고 애쓰면서 난 무엇을 잃어버렸는가? 전체의 모습을 보는 데 필요한 진실의 조각을 잃어버렸다. 추한 것들, 정상이 아닌 것들, 거부당한 것들, 사라진 것들.
나는 이따금 집의 한쪽 구석에 앉아서 장미가 자라는 것을 보았다. 그렇게 고용히 있을 수 있었다. 나는 생명이 고동치고 향기를 내뿜고 소리 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느 늪을 알고 있다. 이것은 새로운 경험이 아니다. 이전에 나는 여기에 있었고 보호받는다고 느꼈다. 늪과 숲은 나의 어머니이다. 나는 나무, 진흙, 풀, 나뭇잎과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 나는 결코 혼자라고 느끼지 않는다. 나는 다시 연결되었다. 아주 깊이. 186
테메테르와 페르세포네
"어머니에게서 딸의 상실과 딸에게서 어머니의 상실은 여성의 근원적인 비극이다."
- 에이드리언 리치 <더 이상 어머니는 없다> -
이 신화에서 우리는 분리되고 재결합하는 여성성의 세 측면을 본다. 소녀/처녀인 페르세포네와 위대한 어머니인 데메테르와 노파인 헤카테. 페르세포네는 하데스에 의해 일상의 순진무구함(무의식 세계)에서 빠져나와 자아의 더 깊은 의식 세계로 들어간다. 페르세포테는 성적인 비밀 의식에 입문하여 하데스의 배우자가 되면서 그에게 몸을 허락한다. 페스레포네는 자신의 소녀 시절과 천성, 그리고 에스터 하딩이 '처녀성의 정수'라고 지칭한 본질적 자아를 잃는다. 그녀는 지하세계의 여왕이 된다.
페르세포테는 어머니의 딸이라는 존재로부터 끌어내져 자신의 영혼 깁숙이 들어간다. 이전의 자아감을 잃고서 상실감과 혼란을 느끼고, 한편으로는 깊은 우울 속에서 새로운 자아감을 발견하는 이 경험은 여성들에게 보편적일지도 모른다. 붕괴는 돌파구가 된다. 엘레우시스 제의에서 하체스의 신부인 페르세포네는 우리의 삶엥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삶을 깊이 들여다보는 계기가되는, 삶의 가장 두려운 순간을 대면할 수 있게 해준다. ... 페르세포네는 자신이 어머니가 된다. 그리고 결국 그녀의 딸은 어머니 페르세포네는 버리고 나서 새로 태어난다. "모든 어머니는 자기 안에 딸을 품고 있고 모드 ㄴ딸은 자기 안에 어머니를 품고 있다. 모든 여성은 뒤쪽으로는 어머니와 이어지고 앞쪽으로는 자신의 딸과 이어진다"
딸을 잃은 어머니의 슬픔
헬렌 루크는 모자와 모녀 경험의 엄청난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원형적 차원에서 아들은 어머니 자신의 내적 탐색의 이미지를 전달한다. 반면에 딸은 바로 어머니 자신의 확장이다. 딸은 어머니를 어머니 자신의 과거와 젊음으로 되돌아가게 하고, 자기 인식과 새로운 존재로의 재탄생을 약속하며 미래로 이끈다" 새로운 탄생을 경험하기 전에 나는 죽음의 차가운 냉기를 느꼈다. 198
나는 마침내 헤더(딸 이름)와 분리되면서 느낀 슬픔에서 빠져나오고 이제 내 안의 딸을 찾아나서야 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202
어둠으로 하강하는 이난나 여신
자신이 가부장제 사회에서 정신적으로 '아버지 딸'로서 살아왔음을 깨달을 때, 우리에겐 몇 가지 캐내야 할 것이 있다. 문화라는 의복으로 덮어 감추기 전에 우리들 것이었던 우리의 일부를 되찾아야 하는 것이다. 실비아 브린턴 페레라, <여신에게로 내려가기>에서, 여성이 남성과의 동일시나 남성성에 맞서는 방어적 태도를 벗어버리고서 낡은 존재 방식을 버리고 재탄생을 기다릴 때 겪는, 사지가 절단되는 듯한 고통을 들여다 본다. 203
자연이나 몸과 관계 있는 모든 것이 그러한 것처럼 에레슈키갈은 남성 신들에게 강간당하고 지하 세계로 추방당했다. 그녀는 지하로 가버린 여성성의 일부이다. 격노, 탐욕, 상실의 공포를 상징한다. 원초적이고 거친 성적 에너지이다. 의식의 세계와 분리된 여성적 힘이다. 무시당하고 조롱받는 여성의 본능과 직관이다.
에레슈키갈은 불가피한 파괴와 치유의 장소이자, 죽음과 새 생명이 휴면상태로 존재하는 장소이다. 에레슈키갈을 만나면서 여성은 권력을 쥔 아버지들의 마음에 들려고 애쓰며 보낸 시간동안 드러나지 않고 남아 있던 자신의 어두운 측면, 욕망, 분노와 대면하게 된다. 한 내담자는 이러한 감정을 두고 자기 가슴을 갉아 먹는, 우울증이라는 이름의 쇠로 만든 공이라고 표현했다. 207
여성이 하강을 하고 가부장제의 정신적 딸이라는 정체성을 끊어버릴 때, 그 대상이 여신이든 어머니든 내면의 어린 아이든지 간에 다시 여성성과 연결되고 싶은 강한 열망이 생긴다. 영웅적 탐색을 하는 동안 지하 세계로 내려가버린 자신의 육체, 정서, 영혼, 창조적 지혜 같은 측면을 발달시키고 싶은 욕망을 느낀다.
만일 여성이 자신의 몸이 미묘하게 감지하는 것을 무시하고 오랫동안 물질 세계에 관한 지식과 지적 능력만을 갈고 닦았다면, 이제는 육체와 정신이 하나라는 것을 생각해낼지도 모는다.
7장 여신, 돌아오다
"소녀는 월경을 하면서 여성이 된다. 피는 신비롭고 신성한 것이다. 여성은 임신할 때까지 매달 피를 흘린다. 그리고 아홉 달 동안 출혈을 멈추고 새로운 생명을 담는 그릇이 된다. 여성ㅇ은 아기르 만들기 위해몸 안에 피를 품고 있다고 여겼다. 아기를 낳은 후에 또다시 매달 피를 흘리다가 완경이 되면 출혈이 멈춘다. 이 또한 경이감을 불러일으켰다. 왜냐하면 이제는 아기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혜를 만들기 위해서 피를 품고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 진 시노다 볼렌 -
학대받고 모욕당하는 몸
역사적으로 육체와 영혼의 연결은 지모신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면서 파과되었다. 인류가 대지의 신성함을 잊고 숲이나 언덕이 아닌 교회나 성당에서 신에게 예배하기 시작했을 때 자연과 맺은 신성한 나와 너의 관계는 잊혀졌다. 우리는 어머니 대지의 모든 종과 서로 연결된 대지의 자손이라는 것을 잊어버렸다. 이렇게 자연의 성스러움을 무시하는 것이 육체의 신성함을 부정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221
월경, 출산, 완경은 문화적으로나 종교적으로 금기의 대상이 되었곡 여성의 몸은 모욕당했다. 성폭행,근친상간, 포로노.
한때 월경을 하는 여성에게 부과되었던 풍요로움과 신성함은 여신과 함께 지하로 내려가버렸다. 222
신성한 여자는 왜 요부가 되었나?
여신의 원초적인 성과 다산의 에너지에 담긴 원시적 힘은 남성의 권위에 엄청난 위협을 보였다.
오랫동안 정복자들과 기독교 사제들은 여성의 성기를 찬미한 고대 여신상들의 외관을 훼손해 왔다. 225
몸이 느끼는 감정으로부터 여성이 분리되는 가장 두드러진 이유는 근친상간, 성폭행, 육체적 학대다. 229
하강을 끝내고 돌아올 때 여성은 자신의 몸을 되찾는다.
나 자신을 포함해서 많은 여성에게 가장 신성한 순간은 사랑하는 이에게 안기고, 섹스하고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몸의 시간이다. 나에게 출산보다 성스러운 황홀경에 더 가까이 가도록 하는 것은 없다. 그 성스러움이 물질 세계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육체의 명예도 회복되지 않는다면 사회와 문화뿐만 아니라 개인의 정신도 진보할 수 없다. 230
음문의 춤.
여성의 외음부는 한때 아름다움과 신성함과 초월의 상징이었지요. 모든 인간은 우리 몸의 그 관문을 통해 세상에 나오죠. 231
내 몸의 주인 되기
슬픔과 무력감을 억누르는 여자들
관계를 통해 자신을 규정하는 여성들은 자신의 진짜 감정을 돌보는 데 필요한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다. 게다가 자기 자신을 고려하는 건 이기적이라는 말을 듣는다. 혹은 지나친 자만심 탓에, 자신이 동반의존으로 다른 사람들과 결팍해 있음을 보지 못하기도 한다. "내가 나서야 일이 제대로 되지"
수 세기 동안 여성들은 화를 내며 불만을 표현하면 자제력을 잃었다는 말을 듣는다. 감정을 표현하는 걸 불편해하는 부모들은 딸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런 식으로 느끼지 마라" "여기 눈물 여왕 좀 봐라"라고 비웃는다.
아이는 슬픔, 실망, 화, 또는 신나게 들뜨는 것조차 부모나 교사에게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에 모두 소용없는 것임을 금방 알아챈다. 인정받지 못한 감정을 없어지지 않는다. 지하에 잠복해서 우리를 과거에 묶어놓는다.
내면의 슬픔 마주하기
여성 영웅의 여정에서 가장 큰 도전은 자신이 여성성과 분리되어 있다는 데서 깊은 슬픔을 느끼는 것과 어떤 식이든 자신에게 적당한 방식으로 이 상실에 이름을 붙이고 애도하는 것. 그런 다음에 그 슬픔을 발산하고 나서 새로운 단계로 넘어가는 것이다. 236
안젤라(계부 성폭력 피해자, 친모는 방관자)는 처음으로 어머니가 자기 말을 들어주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인정받으면서 상처가 치유되기 시작했다. 슬픔에서 벗어나면서 앤절리가 어머니를 동정하는 마음도 커졌다.
"슬픔은 존재이 가장 핵심에 놓여 있다. 당신이 마음에서 다른 모든 감정을 걷어내면, 이제 막 움트는 씨앗처럼 푸른 잎을 내려고 그 자리에서 준비 중이던 슬픔이라는 감정과 반드시 맞닥뜨릴 것이다." 하지만 슬픔을 붙들고 잇을 필요는 없다. 슬픔을 놓아버리는 일은 심호흡처럼 훈련의 일종이다. 238
수호하는 여성
여성에게 나타나건 남성에게서 나타나건 생명의 보호자는 긍정적인 여성성의 한 측면이다. 긍정적인 여성성은 함께 공동선을 추구할 수 있도록 공동체를 연결하고 서로 협력하게 만드는 데 관심을 기울인다.여성성은 모든 존재들 사이에서 유사성을 찿아내고 연민과 자비를 보인다. 또한 어린아이들과 불행한 사람들을 보호할 것을 요구한다. 243
독일 화가, 케테 콜비츠
여성성의 화신인 관세음보살처럼 콜비츠는 사람들의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245
창조하는 여성
하강을 한 여성은 여성성의 탐욕스러운 파괴자 양상을 경험한다. '지상의' 삶에서 분리된 이 기간 중에 자신이 쓸모없다거나 자기 삶이 메말라버린 느낌을 경험하고 나서 여성은 창조적인 여성성의 촉촉촉하고 푸르고 물기 많은 측면을 갈망한다. 자신의 여성성과 단절되었다고 느끼는 여성은 창조성이 솟아나기 시작한다는 것을 느낄 때 천천히 자기 정체성을 되찾기 시작할 것이다. 정원에서, 주방에서, 집을 꾸미면서, 인간관계 속에서, 뜨개질을 하면서, 글을 쓰면서, 춤을 추면서 재생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 여성의 심미적이고 관능적인 감각은 색깔, 냄새, 맛, 촉각, 소리로 새로운 활력을 얻으면서 되살아날 것이다. 245
남성적 창조성이 언네자 앞으로 나아가는 경향이 있는 데 비해 여성적 창조성은 자기 안에서 원형이라기보다는 나선형으로 돌고 도는 경향이 있다. 여성의 창조성을 끊임없이 변화한다. 아메리카 원주민민 나바호족 신화, '변화의 여인'
무리하게 밀어붙이지 않으면서 창조적인 충동에 맞추어 움직이는 이 능력은 내가 이제 겨우 배우기 시작한 여성성의 한 측면이다. 나 같은 아버지의 딸들은 상황이 저절로 흘러가도록 놓아두는 것이 어렵다. 어떤 일이든 그 일과 일의 적기를 통제하고 싶어 한다. 일의 추이와 불확실한 결과를 기다리는 일은 격결한 불안을 일으킨다. 여성성은 어떤 일이든 만물의 자연스런 순환 속에서 일어나고 흘러가도록 둔다는 특징이 있다. 깊은 무의식 차원에서 치유나 창조적인 일을 하는 사람드은 고요함과 재생의 단계가 있다는 것과 이 단계를 존중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이때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도 안다. 248
정화하는 여성
행위 대신에 존재함에 관해 알아내는 것은 여성성의 신성한 책무이다.
물고기 모양의 그릇 vesica piscis, 여성성을 상징함. 우리의 삶은, 그긋을 정화하는 일.
"명상 같은 고독한 작업은 그릇을 내부에서부터 정화한다. 공동체 의례, 협력하기, 다른 여성들과 함게 출하하기는 그릇을 외부에서부터 정화한다. 르릇 안에서 일어나는 일, 즉 나타날 수 있는 변형의 성질을 결정하는 것은 그릇의 질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그릇에 공을 들여야만 한다. 우리는 그릇에 주어진 것과 그릇을 통해 들어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정화의 과정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투명한 그릇이 될 때까지, 양쪽 면이 닳아 없어질 때가지 안팎으로 정화해야 한다. 이 일에 마음을 다해야만 한다."
존재함은 자신을 증명하려고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머무르면서 자신을 있는 그댈 받아들이는 것이다. 더는 외부 세계로부터 갈채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 적응하는 훈련이다.
만일 내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리고 내가 주위의 환경과 조화롭다면, 행복해지려고 물건을 생산하고 소비를 조장하고 환경을 오염시킬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존재함은 수동적인 행위가 아니다. 정신을 집중해서 의식하는 것이 필요한 행위다.
뉴멕시코 출신의 예술가 베럴리 백톨은 존재함이라는 이 적극적인 양상을 표현하는 영혼의 그릇을 만든다. "내가 만든 영혼의 그긋은 그릇으로서 자 자신과 연결된다. 그릇안으로 들어갔을 때 내게 필요한 모든 것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필요한 것을 완전히 다 갖춘 경이롭고 거대한 자궁, 굉장한 그릇이다. 이 그릇이 내 거처이다. 내 작품을 통해서 오늘날 우리 문화에서 그릇을 수동적이라고 생각하는 관념을 깨뜨리고 싶다. 또 그릇이 아주 능동적인 창조의 도구였던 다신교 시대의 의미를 회복하고 싶다. 그 시절 그릇은 치유의 도구였고 항상 여성의 손으로 만들어졌다"
아마도 그릇이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여성들이 이해했기 때문일 다. 여성들은 자신의 자궁 안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변화를 허락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한다.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것을 지지하고 존중한다면 여성들은 지혜를 낳을 것이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해 온 행위가 엄청난 환경 파괴를 불러 왔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삶에서 영웅과 여성 영웅을 재정의해야 하는 이유이다. 영웅적 탐색은 권력, 정복, 지배에 관한 탬색이 아니다. 영우억 탐색은 우리 본성으이 여성성과 남성성 두 측면의 결합을 통해 우리 살에 균형을 가져오는 일이다.
현대의 여성 영웅은 자신의 개인적 힘, 즉 느끼고 치유하고 창조하고 사회 구조를 변화시키고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는 능력인 여성적 본성을 회복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대면해야 한다. 여성 영웅은 모든 생명체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지혜를 가져다 준다. 그녀는 이 지구라는 그릇에서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우리의 삶에서 여성성을 회복하도록 도와준다.
8장 잃어버린 어머니와 재회하다
여성 영웅의 다음 여정은 내가 모녀 분리라고 이름 붙인, 여성적 본성에서 분리된 상태를 치유하는 것이다. 나로서는 이 다나계에 관해 쓰는 것이 가장 힘들다. 개인적으로 가장 고통스러운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어머니와 나의 관계는 한 번도 쉬운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이 상처가 개인적 차원에서 한 여성과 그 어머니의 관계를 넘어서는 거서이라고 느낀다. 이 상처는 근본적으로 우리 문화의 가치 기준이 지닌 치명적인 불균형에서 비롯되었다. 우리는 우리의 감정과 우리 영혼의 본성으로부터 분리되었다. 소속감과 공동체, 잘 보살피는 특질을 열망한다. 우리는 강하고 힘 있는 어머니를 갈망한다.
많은 여성들 처럼 나도 어머니에게 충분히 보살핌을 받았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아이였을 적에 나는 어머니에게 버거운 존재였다. 어머니는 나의 창조적 충동을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 그 충동은 어머니를 위협했다. 어머니를 나를 가두어 두려고 애썼지만 나느 ㄴ갇힐 수가 없는 아이였다. 양육에 관한 어머니의 그릇은 너마나 작아서 숨이 막혔다.
내가 처음으로 여성성을 거부한 것은 어머니의 화와 완공함, 나를 인정해주지 않는 모습, 나르 ㄹ있는 그대로 보아주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어머니의 므능함에 대한 거부였다. 사춘기에 접어들던 시기에 점점 더 어머니를 거부하고 아버지와 동일시하면서 갈수록 내 안의 강하고 힘있는 여성성과 거리가 멀어졌다.
나는 임신한 채 약혼을 하고 집으로 와서 어머니가 상상한 최악의 공포를 현실로 만들었다. 어머니는 용서할 수없을 정도로 소란을 피우고 나를 매춘부라고까지 불렀다. 나의 임신한 몸은 조롱받고 경멸당했다. 258
이 여성성 분리가 내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고찰하면서 나는 내가 자신의 몸을 무시하고, 욕구를 무시하고, 지쳐서 병이 날 때까지 나를 밀어붙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어린 시절이나 사춘기 시절에 표현되지 못한 채 남아 있떤 커다란 분노를 살피던 중에 나는 어머니가 되는 기술을 익히면서 깊은 상처가 치유된 것을 알게 되었다. 어린 시절에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 많은 여성들이 그러한 것처럼, 나도 능동적으로 어머니 역할을 함으로써 내면의 깊은 상처가 치유되었음을 알았다. 30대 초반에 나는 내 멘토이거나 동료였던 선배 여성들의 사랑과 인정 속에서 '어머니'를 찾았다. 삼십대 후반에는 자신의 여성적 본성을 매우 편안하게 느끼는 남자를 만나 재혼했다. 나는 그의 사랑으로 보살핌을 받았다. 친자매, 여자 친구, 여성단체... 하지만 여전히 '어머니'와 유대를 맺기를 절박하게 원한다. 이러한 갈망은 1) 어머니와 내가 앞으로도 결코 나누지 못할 대화가 있다는 것을 아는 데서 나오고, 2) 온전한 인간이되고 싶다는 욕망에서 나온다.
이 내면의 분리 문제를 치유할 수 있게 나를 돌볼 어머니를 내 안에서 발달시켜야만 한다.
어머니 콤플렉스
어머니와 내적으로 맺는 관계는 어머니 콤플렉스로 남아 우리의 정신에 흡수된다. 제임스 힐먼은 어떻게 이 콤플렉스가 우리 자신에 관한 가장 끈질기고 다루기 힘든 감정의 기초가 되는지를 설명한다.
"사람들은 숙명처럼 자신의 어머니를 끊임없이 다시 대면하게 된다. 감정의 내용뿐만아니라 행동 방식에서도 어머니와 자식 관계에서 형성된 반응과 가치관에서 나오는 일정한 양식을 따른다. 우리가 육체적 삶을 대하는 태도부터 우리 몸에 관한 자존감과 자신감,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보이는 개인적 기질, 근본적인 공포와 죄의식, 사랑에 빠지는 방식이나 친밀한 관계에서 처신하는 방식, 쌀쌀맞거나 혹은 따스한 마음의 온도, 태도와 취향, 음식을 먹는 방식, 생활 방식, 말버릇, 습관인 몸동작, 음색까지 이 모든 것에 어머니의 흔적이 있다"
어머니 콤플렉스는 자신의 정체성이나 성감을 받아들이는 여성의 태도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힐먼은 계속애서 말한다. "어머니 콤플렉스는 내 어머니의 실제 모습이 아니라 내가 지닌 콤플렉스이다. 내 마음이 어머니를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어떤 여성의 어머니가 그녀의 마음을 부정적이거나 피괴적인 방식으로 '차지하고' 있다면, 그 여성은 긍정적인 여성적 본성과 분리되고, 그것을 다시 회복하려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만일 어머니의 태도가 여성으로서 생존 자체를 위협한다면 남성성 안에서 구원을 찾으면서 남성성과 자신을 철저히 동일시할 것이다. 261
모녀 분리의 본질 또한 원형적 어머니를 어떻게 자신의 정신에 통합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이 결정 요인에는 어머니 대지와 여성성을 바라보는 문화적 관점도 포함된다. 262
우리의 집단 심리는 '어머니'의 힘을 두려워하고 폄하한다. 또 그 힘을 파괴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우리는 어머니의 양육을 당연하게 여긴다. 기회가 되는 대로 어머니를 이용하고 학대하고 지배한다. 사막에 핵페기물을 파묻는 등의 행위들.
교회는 신의 여성적 이미지를 파괴하고 남성 신들을 위해 여신의 힘을 찬탈하면서 오랜 세월 신의 여성적 얼굴을 지하로 밀어 넣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문화가 여성성을 잊어버리도록 온갖 짓을 다하는데 어떻게 우리가 여성성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낄 수 있겠는가? 우리는 탐욕, 지배, 무지의 신들을 숭배하고 돌봄, 균형, 관용의 여성적 이미지를 조롱한다. 우리는 훼손하고 약탈하고 파괴하면서도 대지가 우리에게 끝없이 베풀어주기를 기대한다. 이 모녀분리의 상처는 깊다.
모성을 찾아 나서는 순례
고아가 아닌 여성도 어머니에게 버림받았다고 느낄 수 있다. 어머니가 실제오 있건 없건, 아이가 정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어머니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 느끼는 감정은 버림받았다는 느낌과 다르지 않다.
만일 여성이 자기 내면의 여성성이 입은 상처를 인식하고 아직 어머니가 생존해 있어 어머니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그녀는 아마도 이 최초의 관계를 새롭게 변화시켜 상처를 치유하려할 것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셨거나 다른 이유로 어머니와 도움을 받지 못하는 여성들은 꿈속이나 자연 속에서 또는 자신의 예술 작품 속에서 어머니를 찾는다.
퍼트리샤 플레밍, <어머니를 찾는 페르세포네>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 할머니, 딸의 고통, 태어나지 못한 아이의 고통 때문에 비통해했다.
풀래밍은 그리스 순례를하며 치유의 과정을 계속했다. 엘레우시스에서 그년느 테메테르의 신성한 우물에 앉아서 테메테르가 페르세포네와 분리되어 겪은 충격과 트라우마를 떠올리며 몹시 가슴 아파했다. 그녀는 마침내 자신의 고통에 어떤 의미가 있음을 깨달았고, 테메테르에게 동지애를 느끼면서 회복되고 구원받고 있음을 느꼈다.
이 일이 있은 후 꿈 속에서 할머니를 만났고 이 꿈은 어머니를 찾아 헤매는 문제에서 벗어나 평화로워지는 데 도움이 되었다. 꿈속에서 플레밍은 할머니에게 어디에 묻히고 싶은지 물었다. 할머니는 그녀가 선택할 문제라고 말했지만 만일 자신을 플레밍의 집으로 데려가기로 결정한다면 ㅎ아상 그녀와 함게 있겠다고 했다. 플레밍은 할머니 유골을 집에 모시기로 결정하고 자신의 거실에 두었다. 그녀는 이 꿈속에서 자신이 '어머니/할머니'를 내면화했다는 것을 알았다. 어머니를 찾아 헤매는 일이 드디어 끝난 것이다. 269
'어머니 대지'의 품에서 치유받기
여성은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주고 자신이 가는 길을 긍정해주며 자신을 지지해주는 공동체가 필요하다.
여성은 자연에서, 곧 원초적인 어머니인 가이아의 품에서 힘들고 지루한 탐색을 하면서 치유된다.
초경 의식, 완경 의식, 비전 퀘스트,
지혜의 안내자 할머니
의식, 기도, 약초, 치유
신화를 창조하는 여성들
여성의 역사는 산산조각이 나버렸기 때문에 여성들은 선사 시대로 되돌아가 그리스인들이 여러 신들에게 힘을 분할하기 전에 존재했던 여성 신화적 요소들을 찾고 있다.
여성성의 힘과 예지력, ... 관세음보살 같은 다양한 문화권에 존재하는 수많은 여신적 인물 뿐만 아니라, 처녀와 어머니와 노파, 거미와뱀과 새, 그릇과 동굴과 잔, 산과 물과 나무를 묘사할 때에도 상징적으로 나타난다.
애수탤래 로터, <신화 창조자로서 여성들>
신화는 대개 개인의 꿈속에서 반복되거나 집단의 종교 의식에 기원이 있는, 특별히 강렬한 이야기나 상징의 형태로 나타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신화는 일단 자리를 잡으면 그만큼 설득력 있는 또 다른 이야기나 상징으로 대체되지 ㅇ낳고서는 어떤 합리적인 방법으로도 몰아내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여성은 여전히 여성적 힘을 왜곡하는데 쓰이는 '이브' 같은 여성성의 고대 상징에 관한 주류 신화에 도전하고 있다. 276
'마녀'와 '계모'에서 벗어나, 동화 다시 쓰기
동화는 계모나 사악한 마녀가 잔인해진 원인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자신의 어머니인 미친 여인을 치유함으로써 어머니에게 버림받아 생긴 내면의 상처를 치유한 딸의 이야기.
만일 여성이 어머니에게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한 것을 두고 계속해서 분노한다면 그녀는 영원히 '기다리는 딸'로남게 된다. 마음 깊은 곳에서 자신을 가치 없고 불완전한 존재로 여긴다.
나는 내 어머니 안의 실성한 여인을 받아들이고 소중히 여기기가 어렵다는 것을 안다. 그때 내 안에 존재하는 실성한 여인을 대면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머니를 있는 그대로 다시 받아들인다면, 내가 사랑받고 싶은 방식으로 어머니가 나를 사랑하게끔 만들 수 없다는 사실도 받아들여야 한다.292
9장 긍정적인 남성성을 되찾다
상처입은 남성성의 치유
남성성은 원형적 힘이다. 성별의 문제가 아니다. 여성성처럼 모든 여성과 남성의 내면에 존재하는 창조적인 힘이다. 남성성은 균형을 일ㄹㅎ거나 삶과 유리될 때 전투적이거나 비판적이거나 파괴적으로 변한다. 이렇게 삶에서 유리된 원형적 남성은 차감고 비인간적일 수 있으며, 인간의 한계를 고렿지 않는다. 이 남자다움은 우리에게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저 전진하라고 말한다. 완벽과 통제와 지배를 요구한다. 이떤 것도 충분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우리의 남성적 본성은 어부 왕처럼 상처를 입었다.
성배는 우리 모두가 누릴 수 있는 신성하고 창조적인 여성적 원리의 상징이다. 여성성이 우리의 남성적 본성을 치유할 수 있는 것처럼 성배는 어부 왕을 치유할 수 있다.
파르시팔과 어부 왕처럼 우리도 우리 안의 성배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상처 입고, 메마르고, 부서지기 쉽고, 지나치게 힘이 세진 남성성을 치유하려면 촉촉하고, 싱싱하고, 자상한 여성성이 절실하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황무지에서 살게 된다. 299
파르시팔이 하지 않은 질문, "무엇이 그대를 아프게 하는가?"
진실을 부정하는 태도는 눈앞의 현실만을 인식하는, 상처 입은 위험한 남성성의 한 예이다. 우리 모두의 내면에는 이런 요소가 있다. 우리는 우리의 정신을 조종하는 경직되고 위압적이고 마구 밀어붙이는 남성성을 보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우리의 감정과 몸과 꿈과 직관을 거부할 때마다 이 내면의 폭군을 받들어 모시는 셈이다.
여성이 자기 내면의 이러한 불균형을 치유할 수 잇는 유일한 방법은 의식 세계의 빛을 암흑 세계로 가져가는 것이다. 그리고 기꺼이 자신 안의 실체없는 폭군을 대면하고 그것에 이름을 붙이고 내려놓아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최면엥 걸린 듯한 수동적인 삶과 경제적 이득과 자아 권력을 향한 분별없는 애착을 의식적으로 버려야 한다. 용기와 연민과 겸손과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303
남자다움 내려놓기
남자다움mashisma
고독한 보안관의 전사 원형
여성에게 남성성이 필요하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무의식은 혼자서 개성화 과정을 수행할 수 없다. 개성화의 성공 여부는 이식의 협조 여부에 달여 있다. 이 과정에는 강한 자아가 필요하다" 그런데 단순히 강한 자아나 남성성이 아니라, 가슴을 가진 남자인 내면의 긍정적인 남성성과 관계를 맺을 필요가 있다.
지혜로운 여성과 가슴을 가진 남성
히에로스 가모스, 신성한 결혼
신성한 결혼은 자아(에고)와 본질적 자아(셀프)의 결혼이다.
남성적 원리의 목표는 완벽이고 여성적 원리의 목표는 완성이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삶을 좀더 기끼어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이 결합은 '신성한 아이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여성은 상반되는 것의 결합으로 완벽해져 자율적이고 신성한 양성적 존재로 다시 태어난다.
잉글랜드에 전해지는 '가웨인 경과 라그렐 부인'의 이야기
치유하는 여성, 힐데가르트
힐데가르트 폰 빙겐 Hildegard von Bingen, 12세기 무렵에 숲이 울창하게 우거지 ㄴ라인란트 계속에 살았던 수녀원장이자 신비주의자, 예언자, 기도사, 교사, 조직가, 개혁가, 작곡가, 화가, 치료사, 시인, 작가였다. 그녀는 인간의 가장 큰 죄는 건조함이고, 인간의 삶에 수분과 싱싱함을 되돌려주는 것이 가장 필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수분과 싱싱함은 전진함, 사랑, 심장, 감정, 눈물과 관련이 있다. 우리 몸 안의 (액체로 된) 모든 것은 우리가 감동을 받을 때 촉촉해진다. '향유를 바른다', '운다' '피를 흘린다'라는 말에서 보듯이 우리 몸의 신성한 경험은 수분과 관련이 깊다. 수분은 이 행성에서 생명을 가져오고, 메마름과 건조함을 치료한다.... 만일 지구의 열대 우림이 줄어들면 우리는 정말로 건조해질 것이다.... 우리 인류는 다시 성배의 성으로 되돌아가 성배를 경험하고, 성배의 의미를 알기 위해 황량해진 숲을 통과해서 성배를 찾는 파르시팔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황량해진 숲을 그저 힐끔 보고 지나쳐버리지만 사실 이것은 중대한 문제이다"
신성한 결혼은 여성이 자기 본성의 두 측면을 통합할 때 완성된다. 시인이면서 실천적 불교 신자인 앤 월드먼, "나는 내 안의 여성적 원리(반야)와 내 안의 남성적 원리(방편)를 통합할 필요가 있다" 앤은 이어서 우리 모두가 불균형을 바로잡도록 세상에 좀더 많은 반야를 불어넣어야 한다고 말하며 터키 시인인 귈텐 아킨의 시를 인용했다.
"사람들이 사는 모습 그대로 사람들과 더불어 살고
그들이 숨 쉬는 공기를 들이쉬고
그들에게 지혜를 불어넣어주고"
이것이 지금 이 시대의 여성 영웅의 진정한 임무다. 여성 영웅은 자신의 본성을 인식하는 대로 숨 쉬면서 우리 모두에게 지식을 불어놓어 우리를 치유한다. 여성 영웅은 양쪽 세계의 여왕이 된다. 그녀는 일상이라는 삶의 바다를 향해하며 심오한 가르침에 귀 기울일 수 있다. 그녀는 자신의 경험에서 지혜를 얻었다. 321
10장 여성 영웅, 다시 떠나다
남성과 여성을 넘어서
이원주의
페미니스트들에게는 그들 자신의 지배욕이나 탐욕에는 너그러우면서 이 땅의 불균형을 문제 삼아 남성을 비난하는 일이 용인되었다. ... 인간의 오만은 우리 모두가 생명의 연속체 속에 공존하며 '우리 모두는 하나'라는 사실을 보지 못하게 한다. 326
여성을 억압해 온 피라미드 구조
오메테오틀, 여자이면서 남자인 신
자연과 영혼의 세계 오가기
캘트기독교, 영혼이 서열이 없는 다섯 층위가 상호작용하는 에너지장에서 나타난다고 믿었다. 광물, 식물, 동물, 인간, 천사의 세계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켈트 기독교는 여성성, 자연, 신비주의, 직관을 지향했다. 종교가 여성성과 분리될 때 대지와 분리된다고 느꼈다.
"기꺼이 경계인이 되어 양쪽 세계 사이를 걸을 수 있겠는가?"
현재 세계는 여러 면에서 어려운 과도기에 직면해 있다. 모든 나라의 사람들이 다들 지구와 지구공동체의 안녕을 걱정한다. 우리 삶의 중심에서 영적인 통찰력을 회복하는 것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물질과 정신, 육체와 영혼, 자연과 성스러움, 인간과 신성의 연관성을 존중하는 고대의 많은 가르침이 회복되고 있다. 마야인, 티벳불교, 아메리카 원주민, 창조영성, 여신 종교들이 이 고대의 진리를 깨우고 있다.
함께 여행하는 순례자들
원은 가장 순수하고 가장 단순하며 모든 것을 아우르는 형태이다. 다른 사람들과 둥들게 둘러앉을 때 모든 사람은 평등하고, 서로 연결된다. 아무도 권력의 자리에 있지 않다. 권력은 공유되고 자기중심주의가끼어들 여지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