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시게 불완전한, 극복과 치유 너머의 장애 정치
눈부시게 불완전한,
극복과 치유 너머의 쟁애 정치
일라이 클레어
목차
서론
읽기 전에
◇스트로브잣나무
1장 | 치유라는 이데올로기
◇경련과 떨림
2장 | 치유라는 폭력
◇단풍나무
3장 | 치유와 공모하는
◇돌
4장 | 치유의 뉘앙스
◇소라껍데기
5장 | 치유의 구조
◇소라게
6장 | 치유가 작동하는 법
◇구르기
7장 | 치유의 한가운데
◇배롱나무
8장 | 치유를 누비기
◇드랙퀸
9장 | 치유의 영향
◇생존 노트
10장 | 치유의 약속
◇자전거 타기
감사의 말
해제
옮긴이의 말
주
참고문헌
찾아보기
서론: 모자이크 쓰기
치료treatment와 치유cure의 차이
우생학적 관습
결함 defect, 원숭이 같은 단어들
톨그래스 대초원이 파괴되는 것에 대한 분노
반치유 정치
진단들,
. 정신지체 mental retardation
. 뇌성마비 cerebal palsy
. 정신분열 schizophrenia
(낙인을 피하기 위한 새로운 용어가 조현병임)
. 젠더 정체성 장애 gender identity disorder
장애 정치
인종차별 반대운동
퀴어.트랜스젠더운동
비만 해방 fat liberation 운동
환경정의
재생산 정의
비장애중심주의 ableism
몸-마음이란 단어를 선택함.
둘 사이 불가분의 관계를 인식하기 위함. 치유 이데올로기의 작동방식 즉 몸 마음 이원론, 마음이 몸보다 우월하고, 인격성을 규정하며, 비인간으로부터 인간을 분리하는 것을 인식하기 위함.
1장 치유라는 이데올로기
나는 태어날 때부터 손상된 나의 뇌세포 를 치료할 수 있다고 해도 마다할 것이다. 굳고 경련하는 근육이 없는 나를, 어눌한 발음이 없는 나를 상상할 수가 없다. 25
지진아 retard
우울과 수치, 자기혐오
프릭쇼 freak show
장애를 물려줄지도 모르는 장애인 예비 부모나 농인 예비 부모는 빗발치는 비난에 직면한다. 청각 장애를 가진 레즈비언 커플인 샤론 두셰스노 Sharon Duchesneau와 캔디스 매컬로 Candace McCullough가 아이에게 청각 장애를 물려줄 확률을 높이려고 청각 장애를 가진 정자 기증자를 찾았을 때에는 비난이 쏟아졌다. 그들은 태어나지 도 않은 아이를 이기적이고 부당하게 대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수 세기에 걸쳐 농인과 장애인은 부도덕한 이들로, 혹은 부도덕의 표 지marker로 여겨졌다. 29
의료산업 복합체 medical industrial complex
장애 극복하기
장애인은 오로지 그들의 장애를 극복함으로써 성공할 수 있다는 이러한 생각은 비장애중심주의적 클리셰다. 이를 한번 안팎으로 뒤집어 보자. 골드버그는 바로 그녀의 난독증 때 문에 배우가 되었을 수도 있다. 그녀의 통렬한 유머 감각은, 가난하고 장애를 가진 젊은 흑인 여성으로서 세계를 헤쳐나가기 위한 생존 전략으로 연마된 것일 수도 있다. 학습 장애가 없었 더라면 그녀의 유머 감각은 그토록 날카로워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난독증을 가진 사람들이 성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광범위한 장애 접근성이 아니라 개인의 노력을 드는 일은 터무니없는 일이자, 비장애중심주의를 적나라하게 보여주 는 일이다. 흑인 여성을 복지의 여왕welfare queen이라 부르고, 수 세기 동안 하녀와 유모로 삼아 등골 빠지게 부려먹은 나라에서 흑인 여성과 노력의 가치를 연결 짓는 것은 모욕이며 인종차별이다. 이 광고판은 실로 나를 격분케 한다. 31
움직이는 희망
다큐 《크리스토퍼 리브: 움직이는 희망》의 프로파간다
그의 이야기는 장애에 관한 것이기도 하지만 부와 백인성white ness, 남성 특권, 엄청나면서도 분노를 자아내는 혜택에 관한 것 이기도 하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장애인으로 살면서 가장 무 기력한disabling 점은 희망이 없다는 감각이에요." 이 말은 진행 중인 마비에 대한 절망이었지, 많은 장애인이 마주하는 장애차별적인 폭력과 고립과 가난을, 부족한 교육과 일자리를 가리킨 말은 아니었다. 그는 사고 8주기 때 이렇게 말했다. "부상을 당했을 때 마흔두 살이었어요. 지금은 쉰이죠. 임상 시험을 하려면 얼마나 더 걸릴까요? 여기서 임상 시험을 받을 수 있을까요? 아니면 해외로 나가야 할까요? 완치되었을 때 노인이고 싶지는 않아요. 다 늙어서 기어다니자고 일어서려는 건 아니라고요." 이러한 막대한 권리를 누리는 것은 아름다운 백인 여성을 옆에 낀 부유한 백인 남성뿐이다. 하지만 그의 말 저변에서 나는 몸-마음의 변화에 관한, 나이 듦과 죽음에 관한 두려움을 듣는다. 36
치유에 저항하기
장애를 사회적 정의의 문제로 선언하는 것은 중요한 저항의 행위였다. 장애는 마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경사로 없는 계단에, 시각 장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점자와 오디오북의 부재에, 난독증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경직된 교육 방식에 있었다. 이러한 공표를 통해 장애 정치는, 장애의 문제를 개인의 몸-마음이 아닌 이 세계에 두는 다른 사회변화운 동의 대열에 합류했다. 38
크리스토퍼 리브는 나의 불평에 자주 등장했다. 우리는 미디어와 입법자들에게 접근할 기회가 많은 부유한 백인 남성인 그가 사회적 변화를 촉구하기를 바랐다. 그는 교육, 실업, 장애 접근성에 대해 말할 수도 있었다. 지역사회에 기반한 저소득층 의료보장제도 모금에 관해, 요양원에 장애인을 처박아 두는 일에 관해 말할 수도 있었다. 선입견과 거짓말과 폭력에 관해, 경찰의 잔혹 행위와 고립과 가난에 관해 말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 39
치유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그는 경사로를 짓고, 휠체어를 사고, 학교를 개조하는 데에 그들이 가진 돈 중 극히 일부만을 쓰는 많은 장애자선단체의 선례를 따랐다. 그들은 비장애중심주의의 종식에 힘쓰지 않았다. 오히려 치유와 연구에 돈을 쏟았다. 그들은 파 렴치하게도 연민과 비극을, 장애가 없다면 우리 모두의 형편이 더 나아지리라는 믿음을 이용했다. 39
폭력으로 말려들어가는 연민
장애를 없애려는 충동이 더해진 자선의 수렁
치유
정상스러운 것
자연스러운 것
정상, 자연스러운 것에서 오는 규정, 상상
내 몸의 역사
초원산책
풀과 흙, 들소 대학살, 종족 학살
2장 치유라는 폭력
결함 defectiveness
백인서구문화의 토대
비장애중심주의
박멸, 감금, 시설화,
결함이 있다는 말은 비장애중심주의의 발명품으로, 치유뿐만 아니라 수많은 억압 시스템을 반론의 여지 없이 정당화한다. 52
1851년 새무얼 카트라이트, 의학 외과 저널에 발표한 글
노예제도를 옹호하고 정당화.
이러한 진단은 흑인의 저항을 질병으로 바꾸어 놓았을 뿐만 아니라, 백인의 권력과 통제를 치유로 규정했다. 53
1968년 백인 정신과 의사들
백인가치에 대한 거부, 저항 정신병으로 진단.
이번에는 흑인들을 감옥과 정신병원에 가드거나 흑인들에게 항정신병 약물을 투여했다. 54
2014 백인 경찰관, 대배심 증언
초인적 악마
노예제, 감금, 시설화, 국가폭력을 설명하고 정당화하기 위해 결함이라는 비장애중심주의적 개념을 발명해 냈다. 요컨대, 그들은 비장애중심주의를 지렛대 삼아 백인의 우월성을 강화한다. 56
치유의 중심에는 박멸이 있다
다양한 방식으로 배열되는 치유는 또한 여러 형태의 제거와 말살로 이어진다. 58
의료산업 복합체
장애 선별적 임신중지, 유전자 검사
다운증후군을 가진 사람들의 미래 가능성을 지워버린다.
결합쌍둥이 분리 수술
수술할 경우 한명은 필시 사망함.
의사들, 수술을 거부하는 부모에 대해 고소해, 승소함.
인격성은 무기다
우리 중 어떤 사람은 태어나면서 인격성을 부여받는 반면, 어떤 사람은 일상적으로 인격성을 입증하고 방어해야 한다.
테리 샤이보 사례,
이성애자 백인 여성
테리의 남펀, 가부장적 소유권을 고집, 탈수로 죽어감
많은 사람이 그녀가 무엇도 알거나 느끼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신경학자와 기자, 판사는 언어와 자기 인식이 우리를 가치 있게 한다는 믿음, 장애를 가지느니 죽는 것이 낫다는 믿음, 물을 마시고 음식을 먹는 기본적인 인간의 권리를 빼앗는 것이 연민의 행위일 수 있다는 믿음에 기반하여 그녀의 몸-마음 에 관한 결정을 내렸다.
테리는 종종 식물인간이라고 불리며 병원 침대에 살았던 여 자다. 그녀는 그림자와 빛의 강, 압력과 소리의 강에 누워 있었 을까? 우리는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그녀가 죽었을 때, 우리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던가?
몸-마음은 가치 있다. 우리 인간의 몸-마음뿐만 아니라 왜 가리와 반딧불이와 수양버들, 잠자리와 자작나무와 제비, 염소 와 밴텀닭, 모기와 나무개구리, 여우와 독수리의 몸-마음도 마 찬가지다. 인격성이 있건 없건, 이 행성에 집을 지은 무수한 존 재들의 모든 몸-마음은 가치 있다.64
내 말은 우리가 그녀를 기억하는가에 대한 것이다. 너무 많은 이들이 마치 테리 샤이보의 몸-마음은 더 이상 그녀 자신의 것이 아니게 된 양 굴었다.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가 그녀의 삶 혹은 죽음과 어떤 연관을 맺고 있는지에 따라 각자의 두려움, 믿음, 희망, 역겨움, 사랑, 확신을 그녀에게 투사했다.
내가 하려는 말은, 때로 삶과 죽음은 인격성에 대한 인정에 달려 있고 인격성은 너무 자주 무기로 사용된다는 것이다. 인격성이 가진 막대한 힘에 반해 그 정의는 언제나 임의적이다. 나는 이 말들의 무게에 눌려 더듬거리고 있다.65
동물 실험
우리는 너무 많은 몸-마음들을, 오로지 우리에게 문제가 될 때에만 중요하게 대한다.
인격성을 사유할 때에는 이러한 파괴 역시 설명해야만 한다. 66
3장 치유와 공모하는
12살때 뇌성마비 진단 받다.
열두 살 무렵에는, 통제되지 않고 망가진 나의 몸-마음을 쏟아 지는 뇌우와 무너지는 다리로 상상했다. 바람이 지나가는 나무 사이로 드문드문 비치는 햇빛에 내 떨림을, 스스로 둥글게 몸을 마는 지렁이의 모습에 나의 어눌한 발음을, 나무를 두드리는 도 가머리딱따구리의 불규칙적인 리듬에 내 더듬거림을 빗대어 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72
어머니는 치료에 대한 신뢰를 치유에 대한 꿈과 맞바꾸었다.
적응은 치료보다 훨씬 효과적이었다. 73
정신 박약 feeblemindness
미국 우생학자 헨리 고더드, 지능 수치화, IQ검사
우둔moron이라는 말을 만듬.
1920년대 백치idiot 치우 imbecile 우둔
1950년대 지진아, 장애자 handicapped
발달장애인
정신지체자
지적장애인
1917년 오리건주 우생학 법률 통과, 1983년 폐지
정신박약자, 정신이상자, 간질 환자, 상습 범죄자, 도덕적으로 타락한자, 성도착자,
강제생식기제거수술
정관수술
자궁절제수술
난관결찰수술
1966년 나는 그들의 표적이 될 수 있는 등급을 받는다.
단종수술은 페어뷰에서 풀려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제프 달리가 만든 다큐, 《몰리는 어디에:실종자들의 이야기》
제프가 6살때, 2살 여동생 몰리가 사라짐.
https://vimeo.com/142243868
진단 읽기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
국제 질병 분류
진단은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진단은 지식을 거머쥔다. 육체의 현실을 조직화한다. 80
경계와 구획의 권력
역사를 거머쥐고 기준선을 설정한다.
미래를 예측하고 많은 것을 결정한다.
정치적 문화적 힘을 휘두른다.
나는 진단이 무엇을 행하는지를 함께 생각해 보자고 청하고 싶다. 이 체계는 우리 가운데 모자라고 결함이 있으며 장애를 가졌다고 간주되는 이들을 갖가지 방식으로 설명할 뿐만 아니라, 세상이 우리를 대하는 방식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정신지체라는 진단을 생각해 보자. 분명 (남들과는 다르게 생각하고 정보를 처리하고 소통하는 이들을 가리키는 이름이 다. 하지만 이 명명은 아주 많은 기대와 고정관념, 물질적 현실을 가져온다. 정신지체(라는 진단명 혹은 꼬리표)는 어떤 이들이 어 디서 어떻게 교육받을지를 정한다. 그들이 유급 일자리를 갖고
스스로 택한 집에서 살 가능성을 낮춘다. 아이를 빼앗길 가능성 을, 교도소나 그룹홈 혹은 시설에 들어갈 가능성을 높인다. 또한 일련의 서비스나 적용 기술, 개별화교육계획 Individualized Education Plans*, 직업훈련을 이용할 수 있는 접근성을 제공한다. 정신 지체라는 진단은 종종 위험하고 이따금 유용하지만, 결코 중립 적이지도 그저 기술적descriptive이지도 않다. 82
이상 disorder
진단이 우리 몸-마음에 이상이 아니라 수용acceptance을 투사
했다면, 우리는 자기 자신과 서로에 대해 무엇을 알 수 있었을 까? 상상컨대 아픔과 죽음은 두려워하고 피해야 할 이상의 표 지가 아니라, 우리 생애 주기의 친숙한 일부가 될 것이다. 몸을 떨거나 환각을 보는 이들, 뚱뚱하거나 음성언어를 사용하지 않 는 이들은 위험하거나 바람직하지 못한 존재가 아닌 평범한 사 람들이 될 것이다. 이상이 없다면 백인 서구 의학의 진단은 존재 하지도 않을 것이다. 84
4장 치유의 뉘앙스
시에라클럽의 "석탄을 넘어서" 광고
발전소를 폐쇄해야 한다고 설득하기 위해, 두 광고 모두 한경 파괴의 결과를 논하는데 장애를 동원한다. 젠더와 인종과 관련해서 하나하나 뜯어보아야 할 것이 많이 있다. 두 번째 광 고는 여성성에 관한 고정관념과, 여성과 아이들이 취약하다는 가정에 의존하고 있다. 이는 유색인 여성을 대상화하여 하나의 신체 부위로, 나아가 일개 저장소로 축소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도 이 논지의 중심에는 장애가 있다.
겉보기에 이 광고들은 석탄 연소 과정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사람들과 힘을 모으자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시에라클럽은 천식과 선천적 장애, 암, 지적장애와 같은 특정한 종류의 몸-마음의 상태에 초점을 맞추 고, 그것을 환경적 손상의 상징으로 바꾸어 놓으면서 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주장을 전개한다. 이러한 전략이 먹히는 이유는 비장애중심주의와 결탁하기 때문이다. 시에라클럽은 시청자들 이 자연히 장애와 만성질환을 예방하고 박멸되어야 하는 비극 으로 받아들일 거라고, 결국 이러한 비극이 우리가 투쟁에 동참 하도록 설득할 거라고 가정한다. 103
이러한 주장은 장애를 가진 이들과 만성질환을 가진 이들로 하여금 너무한 대가를 치르게 한다. 우리가 숨 쉬고, 선천적 결합이라 여겨지는 상태로 살아가고, 암과 함께 살고, 다양한 방식으로 불의의 증거들을 배우는 경험을 평가 절하한다. 이러한 관점은 여전히 상대를 개인의 몸-마음 안에 독립적으로 자리한 손상으로, 비장애중심 주의에 의한 피해와는 무관한 일인 양 바라본다. 눈부시게 불완전한 우리의 삶을 못 본 체한다. 우리를 석탄화력발전소만큼이나 부자연스러운 존재로 공표한다. 이런 식의 주장이 이것 하나 뿐이라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시에라클럽의 수사는 장애와 만성질환을 교훈적인 이야기로 사용하는 공중보건 캠페인의 수많은 예시(음주 운전, 약물 사용, 페인트 속 납, 석면, 안전하지 않은 섹스...) 중 하나에 불과하다.
이러한 불협화음 속에서 당신은, 당신의 몸-마음이 비극적이고 틀렸으며 부자연스럽다고 전제하지 않으면서도 군사적 오염에 대한 증오를 표현하는 법을 알고 싶어 한다. 쉬운 답은 없다. 우리는 격렬히 토론한다. 감정과 생각 모두 복잡하다. 우리는 당신을 위한 이 문장에 이른다. "나는 군대를 증오하고, 내 몸을 사랑해요."
분명 더 이해하기 쉽거나 더 복잡한 슬로건을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문장은 핵심적인 질문을 드러낸다. 우리는 어떻게 장애와 불의를 동일시하지 않으면서 식물과 동물, 유기체와 무기물, 비인간과 인간을 막론한 모든 종류의 몸- 마음을 훼손하고 바꾸어 버리는 이 불의를 목격하고, 명명하고, 그에 저항할 수 있을까?
몸-마음을 갈망하기
상실과 갈망
슬픔, 질투, 수치
보정된 인간의 모습들
우리는 과거의 몸 마음에 계속해서 묶여 있고, 그 몸 마음이 미래로 까지 이어지기를 바란다. 시간여행을 꿈꾸는 것.
치유의 약속은 지금을 사는 우리 자신의 가치를 평가절하할 수 있다.
치유는 기실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것의 그림자에 불과한 희망에 불을 지핀다. 이 시간여행이 소용 없거나 불가능할 때, 우리에게는 몸 마음의 상실로 인한 슬픔을 다룰 수천 갈래의 길이 필요하다. 107
우리의 상실은 분명 존재하지만, 우리의 적응력 또한 실재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상태가 심각해지는 몸-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삶이 견딜 수 없어지는 한계선을 모래 위에 그리는 일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들은 몸-마음이 달라짐에 따라 그들이 그린 선도 이동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다발성 경화증을 가진 에세이스트 낸시 메어스Nancy Mairs는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건강하건 아프건, 장애인이건 아니건, 모든 이에게는 상상의 경계선이, 그 선을 넘어가면 삶은 더 이상 살 가치가 없다고 확신하게 되는 고통의 경계선이 있다. 내게도 있기 때문에 알고 있다. 돌 위에 새겨진 것과는 거리가 먼 나의 경계선은 삶이라는 모래 위에서 미세하게 움직이곤 했다. 많은 경우 나는 어느새 이동한 선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해변을 따라 한참 걸어야 했다. ... 지팡이를 썼다가, 보조기brace를 썼다가, 휠체어에 탔다. 가르치는 일을 그만두고, 운전을 포기하고, 다른 이가 내 속옷을 입히고 벗기도록 두었다. 한 번에 하나 씩... 나는 이러한 (매우 상징적인) 각각의 단계를 밟아나갔다. ...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한때 결코 견디지 못하리라 여겼던 그러한 여자가 되어 계속해서 존재하고 있다. 108
나는 하나의 얕은 연못이 사라진 것만큼 미미하고, 지구의 지하수를 오염시키는 만연한 독성물질 유출만큼 막대한 환경적 손실에 엄청난 슬픔과 분노를 느낀다. 우리가 지금처럼 우리 자신을 사랑하면서 어떻게 몸-마음의 상실에 대해 증언할 수 있을지 생각한다. 나는 회복을, 과거와 현재와 미래 사이의 특정한 관계라고 이해하기 시작한다. 생태계의 회복과 건강의 회복 모두 그렇다.(각주 7)
각주 7, 불구의 시간
http://aladin.kr/p/945zw
2부
5장 치유의 구조
의료산업복합체
태어나기 전의 산전 검사에서 시작해서 우리가 죽은 뒤의 장기기증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몸 마음을 지배하는 권위체가 되었다. 의료산업복합체는 건강과 웰빙, 장애와 질병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빚어낸다. 섹스와 젠더를 확립한다. 인간의 생애 주기를 일련의 의료적 사건들(출생, 사춘기, 임신, 폐경, 노화, 사망)로 진단, 치료, 관리하고 각 시기에 약을 처방한다. 126
가장 근본적인 치유 이데올로기는 개개인의 몸 마음에서든, 이 세상에서든 문제거리를 제거하고자 한다. 박멸
진단 치료 관리 재활 예방
근육병을 가진 사람들은 그들의 몸-마음을 문젯거리로 바라보도록 반복적으로 강요하는 관념에 저항한다. 다른 한편에서 근육통성뇌척수염을 가진 사람들은 그들의 몸-마음이 문젯거리라는 사실을 무시하거나 평가 절하하는 의사들과 언론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긴 시간 분투한다. 이러한 두 역학은 상반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둘은, 의료산업 복합체가 권위를 휘두르고 우리 육체의 경험에 관해 우리 스스로가 아는 것을 묵살 하는 여러 방식을 중심으로 한데 수렴한다.
도대체 누가 어떤 현실을 몸-마음의 문젯거리라고 규정하는 걸까? 때때로 대답은 여럿인 데다 서로 충돌한다. 134
나는 이성애자들, 백인들, 부유한 이들을, 특히 이러한 조건들 중 두 가지 이상을 동시에 가진 사람들을 떠올린다. 이성애 핵가족의 높은 방임률과 폭력의 비율은 문제로 규정되기 충 분하다. 백인이 우월하다는 여러 세대에 걸친 망상이나 옷, 차, 집, 음식, 자본, 호화로운 휴가 등의 과잉에서 드러나는 상위중 산층 및 상류층의 자원 축적 역시 의심의 여지 없이 문젯거리의 기준에 들어맞는다. 그러나 "이성애 핵가족 장애"나 "백인 자격 증후군", "부유층의 탐욕 부전증" 등의 용어는 발명되지 않았다. 그러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장애, 증후군, 부전증 같은 말들은 너무 많은 사람들에 반하여 쓰였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이성애자들, 백인들, 부유한 이들은 전혀 문젯거리로 규정되지 않는다. 너무 명백한 사실을 쓰고 있자니 나 자신이 우스꽝스럽게 느껴지지만 퀴어, 트랜스, 유색인, 가난한 사람들 이 문젯거리이자 문제를 만드는 존재로 치부되며 큰 대가를 치 르는 세상에서, 이 빤한 상황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퀴어이고 트랜스인 청년들은 그들의 가족으로부터 내몰리고, 집에서 내 쫓긴다. 기록적인 숫자의 유색인 이민자들이 구금되고 추방된 다. 흑인이 조현병 진단을 받을 확률은 백인의 경우보다 네 배 높다. 가난한 사람들은 게으르고 무능하다고 여겨지며, 빈곤하 다는 이유로 악마화된다. 이 모든 가운데 이성애, 백인성, 부유 함은 진단을 피해 간다. 누구도 이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혹은 백인이거나 부자라는 이유만으로 감금되거나 쫓겨나지 않는다. 136
누가 어떤 현실을 몸-마음의 문젯거리로 규정하느냐에 대한 많은 답변이 권력 그리고 특권과 관련되어 있다. 137
근육병이 문젯거리로 여겨지지 않았더라면 근육병협회가 후 원하고 장려한 지난 50년간의 연구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게 이, 레즈비언, 바이섹슈얼이 문젯거리로 규정되지 않았더라면 탈동성애 전환치료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유색인에게 문 제가 있다고 여겨지지 않았다면 피부 미백제도 만들어지지 않 았을 것이다. 합성성장호르몬이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일라이 릴 리가 식품의약국 청문회에서 표현한바) “성장호르몬 결핍증 외의 저 신장자"는 문젯거리로 치부되지 않았을 것이다.
치유는 그 모든 형식의 몸-마음의 문젯거리를 만들어 내고 그에 의지한다. 137
뇌성마비를 치료해 줄 가상의 약을 먹겠느냐고 묻는 비장애
인들은 실로 다양한 층위의 환상으로 나를 끌어들인다. 뇌성마 비에는 그런 기술이 존재하지 않으며, 유망한 치료법 후보가 있 는 유방암이나 당뇨, 자폐와는 달리 만들어지고 있지도 않다. 이러한 질문은 장애의 가치를 평가 절하하는 데 초점을 맞춘 사 고실험에 지나지 않는다. 156
답은 간단하다. 떨리는 손과 흔들리는 균형 감각을 가지고 살 아가는 일이 그들의 상상만큼 끔찍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끄러 지고 비틀거리며 느린 속도로 계단을 한 개씩 내려갈 때조차도 말이다. 중력과의 관계에서는 양가적인 감정이 든다. 나는 등산 로에서 부드럽고 우아하게 땅을 밟고 디디며 가볍게 비탈을 내 려가는 것을 몹시 동경한다. 나는 그 대신 가파른 구간에서 철 푸덕 주저앉고는 잠시 네발 동물이 되어 손발 모두를 써서 미끄 러지듯 움직인다. 오직 그때에만 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빙하 가 화강암에 남긴 소용돌이 자국, 나무 뿌리들 사이를 기어오르 는 아주 작은 주황색 영원*들, 썩은 통나무 위에서 자라고 있는 이 세상 것이 아닌 듯한 모습의 버섯, 흔들리는 균형 감각은 산
파의 이러한 친밀함을 선사한다. 156
가상의 치료제가 정말로 존재한다면 나는 너무나 많은 것을 잃을 것이다. 그 부재가 나를 분명한 존재로 만든다. 눈부신 불 완전함으로 가는 문을 열어젖힌다. 157
7장 치유의 한가운데
캐리 벅 I: 갈망
캐리 벅과 그녀의 어머니 에마 벅
간질 환자 및 정신박약 수용소에서
이 사진이 찍힌 1924년 11월은 캐리가 5개월, 그녀의 어머니 는 4년 동안 [시설에] 감금되어 있었던 때다. 나는 그들의 역사 를 찾아 읽고, 날짜를 추적하고, 이 사진을 만들어 낸 사건의 연 표를 뒤쫓는다. 1910년에 캐리는 어머니에게서 분리되어 존돕 스와 앨리스 톱스John and Alice Dobbs에게 위탁보호되었다. 1920년, 성노동 혐의로 체포된 에마는 낮은 등급의 우둔으로 분류되어 수용소에 구금되었다. 1923년, 존과 앨리스의 조카 클래런스 갈 런드Clarence Garland가 캐리를 강간했다. 캐리가 임신하자 돕스 가족은 캐리를 정신박약으로 몰아갔다. 1924년, 버지니아주 의회는 우생학적 단종법을 통과시켰다. 국가의 권한으로 강제단종 수술을 합법화한 것이다. 두 달 후 존과 앨리스는 캐리를 그녀 의 어머니가 수용되어 있는 주립시설로 보냈다. 당시 캐리는 열 여덟 살이었다.
3년 뒤, 가난한 백인 여성인 캐리는 미국 대법원에 출석한다. 판사들은 이 '백 대 벨Buck v. Bell 사건'에서 강제 단종법이 합헌이 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 결정에 힘입은 버지니아주는 캐리에게 단종수술을 시행한 다음에야 그녀를 내보냈다. 에마는 시설 밖 으로 한 번도 나오지 못한 채,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180
1924년 버지니아주 의회, 단종법과 함께 다른 인종 간 결혼을 불법화하는 인종순결법Racial Integrity Act를 통과시킴
짐 크로Jimm Crow법
남북전쟁 이후 남부의 여러 주에서 제정되어 1964년 민권법 제정 시기까지 이어진 공공장소 인종분리법을 가리킨다. "분리되어 있지만 평등하다"라는 미명 아래 학교, 공공장소, 대중교통 등에서 흑인을 격리했다. 흑인으로 분장 한 백인이 출연하는 코미디 쇼인 민스트럴minstrel의 유명한 캐릭터 이름이자 흑인을 비하하는 대명사로 쓰인 짐 크로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케이스 파일로 축소된 삶
1975년에 아이오니아주립병원이 폐쇄되기까지 수십 년간 쌓인 이 케이스 파일들은 정보와 패턴, 역사가 되었다. 연구자들은 누래지고 부스러지고 퀴퀴한 냄새를 풍기는 그 서류 더미를 추려 아카이브로 사용한다. 서류 이면의 사람들은 또다시 사 라졌다가, 각각의 사례가 실화라고 주장될 때만 추측과 총합, 익 명의 연구 사례로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케이스 파일은 너무 많은 것을 지워버린다.
세르파실Serpasil과 할돌Haldol**을 투여받고 아이오니아주립 병원의 복도를 서성였을, 숨을 쉬며 살아 있었을 그들을 그리워 한다. 가능한 선택지라고는 이성애 결혼과 어머니가 되는 일뿐 이었던 백인 여자들, 1940년대에는 망상형 정신분열paranoid schiz ophrenia, 1950년대에는 "만성적인 감별불능형 정신분열 schizo phrenia chronic undifferentiated type" 을, 1960년대에는 "우울신경증depres sive neurosis"을 진단받은 여자들을 애도한다. 1939년에 제정된
미시간주 굿리치법 Goodrich Act* 아래에서 폭력적인, 성적인 사이코패스 취급을 받았던 백인 게이들을 떠올리며 마음 아파한다. 정치적 저항이 절정에 달했던 1960년대, 존재이자 망상형 정신분열자라고 낙인찍혔던 압도적인 수의 가난한 노동계급 흑인들을 위해 분노한다. 그들 중 대다수가 다른 로이트** 출신이었다. 또다시 상실을 생각한다. 친족과 친구, 동 료들을 서로 갈라놓는 진단 앞에서, 가족들과 공동체들은 무엇 을 잃었는가? 정의justice를 위한 급진적인 요구를 깎아내리는 진단 앞에서, 흑인민권운동과 블랙파워는 무엇을 잃었는가?
미시간주 굿리치법 Goodrich Act
* 성폭력 전적과 정신병원 입원 이력이 있는 굿리치라는 여성의 토막 살인범죄를 둘러싼 사회적 불안을 가라앉히기 위해 제정된 법으로 "범죄자이자를 문란한 사이코패스"로 판정된 이들을 무기한으로 정신병원에 구금할 수 있게 했다. 1935년에 처음 제정되었다가 1938년에 위헌 판결을 받아 폐지되었으 나, 1939년에 다시 제정된 후 1968년까지 유지되었다. 204
8장 치유를 누비기
장애를 선택하기
장애가 적극적으로 채택되는 경우들도 있다. 입양을 원하거나 위탁양육을 하려는 사람들은 장애 아동을, 관료적으로 말 하면 "특별한 도움이 필요한" 아이를 원한다는 내용으로 기관 용서류를 채운다. 어떤 임신부들은 다운증후군이 예상되는 태 아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장애가 진행될 위험을 감수하면서 유 전자 검사를 일절 받지 않기로 결정하기도 한다. 농인 부부들 은 청각 장애가 있는 정자 기증자를 찾아 인공수정을 한다. 아 이가 청각 장애를 가질 확률을 높이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소위 장애인 워너비, 절단 장애인 워너비라고 불리는 트랜스에이 블transabled people들은 자신이 장애인이 되어야 한다고 느낀다. 많은이들이 의사를 만나거나, 자가 절단을 계획하거나, 장애를 만드는 사건을 벌임으로써 실제 장애에 대한 욕망을 분명히 드러내 왔다. 장애를 얻을 수 없다고 해도 목발이나 보조기, 휠체어를 이용한다.
여러 방식으로 장애를 선택하는 사람들을 세상이 어떻게 대 우하는지를 보면 실로 많은 것들이 드러난다. 트랜스에이블들 이 커밍아웃을 하고 그들의 욕망에 언어를 부여할 때 가장 흔히 마주하는 것은 혐오와 분노, 불신이다. 의료산업 복합체는 소위 '문제가 있는' 그들의 몸-마음에 신체 통합 정체성 장애BodyIndies tity Integrity Disorder라는 최신의 꼬리표를 붙이며 그들을 분류하고 병리화한다. 장애를 가진 아이나 청각 장애가 있는 아이를 임신할 확률을 높이려는 사람들은 이기적이고 양심 없는 사람들로 치부된다. 그들은 아이들에게 장애라는 짐을 안겼다며 비난받고, 때로는 미디어에서 공공연하게 망신을 당한다. 유전자 검사 를 포기하는 사람들, 장애를 가질 가능성에 개입하지 않기로 결정한 사람들은 어딘가 어리석은 존재로 치부된다. 다양한 유전자 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온 뒤에도 선별적 임신중지를 선택 하지 않는 사람들은 순전히 책임감 없는 사람들로 인식된다. 세상은 장애 아동을 입양하거나 위탁 양육하려는 사람들을 자선 사업에 참여하는 순교자로 취급한다. 백인 서구 사회에서 장애를 선택하는 일은 결코 중립적인 일, 내지는 단순히 여러 선택 지 중 하나를 고르는 일이 될 수 없다. 그보다는 병적이고 수치 스럽고 선정적인 일이 된다. 반면, 장애를 거부하는 일은 축하 받을 일이자 공동의 긴요한 임무imperative로 여겨진다. 228
이러한 선택과 기피의 이분법 너머에는 장애와 만성질환을 주장하는 수많은 방식이 존재한다. 우리는 평화로이 지낸다. 수 용한다. 축하한다. 내려놓는다. 자긍심을 찾는다. 애매모호함을 받아들인다.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마주한다. 연 민과 극복을 거부한다. 공동체를 구축하고 고립에 익숙해진다. 상호 의존을 찾아다니기 시작한다. 아주 높은 생산성을 바라지 도 기대하지도 않는다. 우리의 몸-마음에 관해 이는 바를 주장 한다. 상실과 자긍심의 균형을 맞추는 법을 배운다. 좌절과 고통 과 씨름한다. 나는 장애를 주장하는 일을 규정하고 싶지 않다. 때로 그것은 적극적으로 장애를 선택하는 일과, 또 때로는 장애 를 기피하는 일과 겹친다. 이 일에는 종종 모순이 섞여든다. 229
공황과 옥수수밭
단일재배는 폭력과 제거, 박멸과 함께 시작했다.
대초원의 박멸, 소, 밀, 옥수수, 대두를 단일재배함.
상호의존
장애인과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 간의 상호 의존적 관계는 종 종 엉망진창이며, 인종차별주의, 성차별주의, 동성애 혐오, 트랜 스혐오, 비장애중심주의, 자본주의로 인한 힘의 불균형으로 가 득 차 있다. 이러한 불균형은 종종 돌봄받는 이에게는 학대와
방치를 돌보는 사람에게는 낮은 임금과 노동착취, 여러 방향으 로 오가는 괴롭힘을 야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호 의존은 존재한다. 가벼운 농담과 상호 관계로 둘러져 있건, 갈등과 위 계와 착취가 가미되어 있건 간에.
백인 서구 문화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절대적인 의존뿐만 아 니라 물과 돌, 식물과 동물, 인간과 비인간 존재의 필수 불가결 한 관계까지도 이상하리만큼 부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러 한 부정의 문화 속에서 스스로 옷을 입거나 욕실에 가는 데에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이들이 상호 의존을 상상하려 한다면 실 패하리라. 아침에 일어나는 일에서부터 밤에 잠자리에 드는 일 까지 돌봄이 필요한 세상을 떠올리면, 압도적인 의존과 프라이 버시 및 존엄성의 상실을 상상하게 된다. 우리는 잠시 멈춰서 서, 이러한 두려움이 드러내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 상상력의 한계라는 사실을 알아차려야 한다. 240
납작한 가슴을 원하기
나는 스스로 자기 수용self-acceptance 과 사랑을 안다고 생각했다. 단순한 실천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분명한 원칙은 있는 일이었다. 젠더화되고 섹스화된 자아가 입을 열기 전까지는. 이 이야기에 귀 기울이자, 내 안에 (가슴재건수술부터 호르몬 대체요법에 이 르는) 의료 기술을 사용하여 몸-마음을 다시 만들기를 바라는 뿌리 깊은 욕망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241
젠더 트랜지션
. 지정된 젠더와 정체화된 젠더 간의 불일치에서 오는 디스포리아를 줄이기 위한 실천
나는 여성으로 지정받은 몸-마음으로 살되, 여자애로, 톰보이tomboy로, 다이크dyke로, 퀴어 여성으로, 부치butch 로 지내며 마음의 평안을 찾았다. 그러나 트랜지션에 대한 나의 욕망을 드러내 보이고 젠더퀴어genderqueer로, FTM Female To Male 트랜스젠더로, 백인 남자로 사는 일은 내가 그동안 자기 수용과 사랑에 관해 알고 있었던 모든 것을 시험대에 오르게 했다. 242
성형외과 의사들은 자신의 몸-마음의 외양을 바꾸고 싶어 하는 사람들로부터 실로 높은 수익을 얻는다. 특히 이중절개 유 방절제술, 음경재건술, 안면여성화수술, 목젖제거수술, 난소적 출술, 질 성형 등에 특화된 의사들은 섹스화되고 젠더화된 자신 을 바꾸려 수술을 감당하는 트랜스와 트랜스섹슈얼 덕분에 백 만장자가 된다. 세상을 변화시키고 내 몸-마음은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나의 정치였다. 245
젠더 정체성 장애
정신지체, 뇌성마비, 정신분열, 젠더 정체성 장애와 내가 뜻 는 관계는 폭넓다. 정신지체는 중간에 빠지긴 했지만 아직까지 도 혐오 표현이라는 형태로 나를 따라다닌다. 뇌성마비는 나의 부모가 치유를 탐색하는 동안 나를 찾아냈다. 내가 장애인 접근 성을 요청할 때, 의료산업 복합체에서 길을 찾을 때, 혹은 무작 위적인 호기심을 맞닥뜨릴 때 사용하는 편리한 속칭이었지만, 삶을 뒤바꾸는 계시가 되지는 않았다. 정신분열로부터는 가까 스로 도망쳤다. 목소리를 듣고 환영을 보는 것이 본질적으로 나 쁘거나 잘못되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진단이 동반하는 의학 적 치료와 사회적 상황이 때로 끔찍했으므로, 탈출했을 때는 감 사한 마음이 들었다. 한편 젠더 정체성 장애의 경우, 나는 능동 적으로 그것을 찾아냈다. 246
아버지는 아동 성범죄자, 소아성애자이기도 했다. 250
젠더 정체성 장애 -> 젠더 디스포리아(성별 위화감, 성별 불괘감)
이 미로를 탐험하면서, 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DSM』이 얼마나 많이 바뀌어 왔는지를 보며 충격을 받았다. 이러한 변화 는 어떻게 진단이 지어지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젠더 정체 성 장애나 젠더 디스포리아에 관해 불가피하고 자연스럽고 본 질적인 것은 하나도 없다. 이것들은 현재 백인 서구 사회의 문 화적·과학적 믿음과 관습을 비추는 가공된 범주들이다. 학계는 이러한 견해를 사회적 구성물 social construction이라고 부르지만, 나는 지어낸 것made up이라는 직설적인 단어가 진단이 범주화하는 몸-마음과 진단의 관계를 더 잘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요컨데, 「DSM』은 특정한 세계관으로 경험을 명명하고 조직하고 그로 부터 의미를 만들어 내기 위해 개별적인 몸-마음의 경험들 위에 투영된 고도의 구축물이다. 252
백인, 이성애자, 시스젠더, 남성, 중상류층, 기독교인, 영어를 쓰는, 날씬한, 젠더순응적인, 비쟁애인, 등록된 시민들은 끝없는 질문을 피해간다. 특권의 논리에 따르면 그들의 위치는 정해질 필요가 없다. 264
9장 치유의 영향
애슐리의 아버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다. 미디어에서 애슐리 Astley X라는 장 애 아동의 아버지로만 알려진 그 남자에게 깊은 분노를 느낀다. 그는 애슐리의 정신이 생후 3개월 수준이라고 말한다. 2004년 에 그와 애슐리의 어머니는 어느 외과 의사를 찾아가 여섯 살 된 그녀의 몸-마음에서 자궁을 적출했다. 다른 의사를 찾아가 유선 조직을 제거했고, 어느 내분비과 의사를 통해 다량의 에스 트로겐을 투여했다. 시애틀아동병원Seattle Children's Hospital 윤리위 원회는 그의 결정을 지지했다. 이렇게 이어진 조치들은 소녀에서 사춘기를 거쳐 성인 여성이 되는 전형적인 발달 곡선을 멈추게 함으로써, 그들의 딸이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작고 아이 같은 몸-마음을 유지하도록 만들었다. 그는 애슐리를 자신의 "베개 천사"라 부른다. 266
지성에 저항하기
지성 inteligence은 자격worthines과 가치, 인격성을 규정하는 데에 반복적으로 쓰인다. 백치, 우둔, 지진아, 느림, 멍청함이 모욕이나 박멸을 위한 정당한 근거가 되지 않는 세계를 상상해 보자. 식물인간으로 여겨진대도 가장 기초적인 인권이 부정당하지 않는 세계를. IQ 검사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지적장애인들은 그들이 오늘날 겪고 있는 괴롭힘, 깔보는 듯한 태도, 열악한 교육, 폭력, 시설화, 배제, 감금을 맞닥뜨리지 않을 것이다. 멍청하다는 꼬리표가 흑인, 선주민, 이민자, 가난한 사람들을 더욱 주변화하는 도구로 쓰이지도 않을 것이다. 흑인과 라틴계 청년들은 특수 교육에서 감옥까지 이어지는 길을 걷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특수교육이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 대신에 우리는 다양한 학습 방식에 진정으로 부응하는 교육에 힘쓸 것이다. 테리 샤이보는 죽지 않았을 것이다. 여섯 살이었던 애슐리가 자궁절제술, 유방절제술, 다량의 에스트로겐 투여를 받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274
우리 중 어떤 이들은 정상으로 여겨지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소통하고, 정보 및 육체의 경험을 처리한다는 이유로 매일 이러한 위험을 안고 산다. 274
하지만 많은 사람 들은 멍청하다거나 지능이 낮다는 주장 내지 전제를 맞닥뜨리면, 자신의 높은 지성을 주장하고 지적장애와 거리를 두는 방식으로 반응한다. 275
나만 그런 것은 아니다. 자폐인인 트레이시 트레셔Tracy Thresher와 래리 비소네트Larry Bissonette가 비장애중심주의적 선입견을 깨기 위해 세계 각지를 돌며 다른 자폐인을 만나는 로드 트립 다큐멘터리 <래치스 앤 재버러스 Wratches and Jabberers>를 생각한다. 그들 모두 성인이 될 때까지 의사소통 수단을 가지지 못했다. 그들은 지적장애인으로 여겨졌고 래리는 버몬트에 있는 주립브랜든훈련소Brandon Training School에, 트레이시는 특수교육시설에 각 각 수용되어 살았다. 276
《Wretches & Jabberers》
https://youtu.be/2FlIyJJRc0E?si=9A_Wq4m38O8pSlhR
그러나 나는 이들의 곁에서 장애인 대 장애인으로 묻고 싶다. 우리가 [정말로] 영리하지 않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우리는 우리의 삶을, 가치를, 인격성을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요?"276
지성을 옹호하려 하면 우리는지적장애인과 단절된다. 그런 사람들을 배제하고, 폄하하고, 시설화해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보내게 된다. 276
이 함정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지적장애인들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 쪽으로 이동하여 능동적인 연대를 실천하는 것이다. 지진아라는 말을 가볍게 혹은 의도적으로 사 용하는 친구들이나 동료들에게 맞서야 한다. 발달장애인과 지 적장애인이 운영하는 활동단체에 후원하자. 접근성을 높이자
우리가 교사나 연구자라며 "우리 없이는 우리에 대한 것도 없 Nothing about us without us" 라는 장애 인권 구호를 진지하게 받아들 이고, 장애인 학생 및 연구 대상자와 함께하는 모든 작업에 적 용하자. 트레이시 트레셔와 래리 비소네트가 여행 중에 만난 어떤 자폐인은 짤막하게 타자를 쳤다. “우리를 진짜 사람으로 대 해주세요. 열외로 취급하지 마세요."
지성을 가치와 인격성의 척도로 삼는 것에 저항한다면, 지성은 다시는 무기로 사용될 수 없을 것이다. 277
망가졌다곡 느끼기
broken
돌이킬 수 없는 파열
내가 원했던 것은 오직 치유되는 것뿐이었다. 279
해리성 둔주 상태
자살 사고에 사로 잡혀
트리거와 환각
이 돌이킬 수 없는 부서짐을 드러내기 위해 망가져 있음을 주장할 것이다.
아버지가 처음으로 내 몸마음을 움켜진 순간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망가져 있음을 수용하고 주장하고 포용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281
수치심과 자긍심
수치심은 우리의 몸-마음 깊은 곳에 있는 혐오의 수렁이자 걷히지 않을 것만 같은 짙은 안개이며 말로 표현할 수 없고 말 해지지도 않는, 벗어날 수 없는 손아귀다. 수치심은 종종 우리의 집이 된다. 285
수치심에 대응하는 저항의 행위로서의 자기애를 주장해 왔다.
60년대 브랙파워운동, 검은 것은 아름답다. 자긍심
수치심은 거울과 카메라 속에 산다. 자존감을 떨어뜨리고 약물중독을 유발한다. 수치심은 우리 중 너무 많은 이들을 데려가 스스로 목숨을 끊게 했다.
이제 나는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독자들에게 의지해야 한다. 수치심이 생존과 안녕의 문제라는 것을, 몹시 사적이면서도 공공연히 정치적인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이 거칠고 압도적인 진창을 함께 파헤치자고 당신을 초대하고 싶다. 하지만 어디서 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수치심이라는 순수한 몸-마음의 경험은 언어를 빠져나가는 고립으로 엮여 있기 때문이다.
그저 잠시 멈춰 서서 자기혐오가 가진 힘과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영향력을 인정하고, 자긍심을 향한 궤도를 제시하는 것만 으로는 충분치 않다. 경험의 공유나 정치적 행동주의를 통해 사람들이 자기 수용에 도달할 것이라 가정하는 것만으로도, 폭력 과 노골적인 호기심, 치유 이데올로기와 미디어 속 이미지들이 어떻게 한데 엮여 수치심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비옥한 토양이 되는지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충분치 않다.
그래, 나는 우리가 더 위험한 길을 가기를 바란다. 뚫고 들어 갈 수 없을 것 같은 그 짙은 안개 속으로, 말로 표현할 수 없고 말해지지도 않는 벗어날 수 없는 손아귀 속으로 우리가 곧장 몸 을 기울이기를 바란다. 287
우리는 수치심을 숨기고, 삼키고, 없는 체하는 데에 있어서 전문가다. 하지만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더는 침묵 할 수 없다. 나는 우리가 우리의 수치심을 꺼내서 그리고, 쓰고, 춤추고, 구르고, 노래하고, 더듬거리고, 신호를 보내고, 울고, 웃 고, 싸웠으면 좋겠다. 집회를 조직하고, 인도에 분필로 구호를 쓰고, 친구와 애인, 파트너, 가족들과 대화했으면 좋겠다. 우리가 서로의 아름다움과 강함을 회복력을 상기했으면 좋겠다. 우리가 이런 말들을 화장실 거울에 붙여놓고, 설령 믿기지 않는다 해도 매일 큰 소리로 읽었으면 좋겠다. 290
이런 순간들은 우리로 하여금 정상에서 돌아나오게 한다. 수 치심이 우리를 치유로 잡아채는 다양한 방식을 가로막는다. 바 로 지금 존재하는 우리의 몸-마음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 낸다. 우리의 틱, 경련, 더듬거림, 발작, 긴장, 흉터, 고통, 변덕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도록 만든다. 우리의 빠진 이를, 월말까지인 식료 품 구매권을 연장하는 처세술을, 큰 배와 넓은 엉덩이를, 수어를 하고 의사소통 보조 기기에 타자를 치는 손의 반짝거림을, 어두운 피부와 곱슬머리를 좋아하도록 북돋운다. 우리의 거친 여성성을, 잘생긴 부치성을, 영광스러운 양성성을 끌어안도록 한다. 나는 이러한 순간들이 흔하고 특별할 것 없는 세계에서 살고 싶다. 293
10장 치유의 약속
온전함을 찾기
몸-마음을 혐오하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알고 있었다. 절망 적인 무감각이 나를 갈기갈기 찢는 것 같은 느낌, 한쪽으로 치 우친 내 육신을 어떻게든 없애고 싶은 마음, 꼴사나운 걸음걸이 와 추한 경련, 그 암울한 자기혐오로부터 스스로를 놓아주기 위 해 무척 애를 썼고, 그 과정에서 팔을 자르고 싶다는 환상을 버렸다.
하지만 납작한 가슴에 대한 갈망이 생겨나자, 나는 이 작업으로 되돌아가서 수치심이라는 이름의 덤불에 더 많은 굴을 뚫었다. 나는 젠더화되고 섹스화된 나의 욕망이 장애 혐오와 거 의 아무런 교집합도 가지지 않는다고 믿게 되었다. 그 고요하 고도 끈질긴 욕망은 자기혐오가 아니라 자기애에서, 다음과 같 이 속삭이는 몸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이게, 이 몸-마음이 바로 내가 원하는 거야.” 수치심과 사랑이 그림자와 빛처럼 파트 르 흔들렸다.
처음에는 나 자신에게, 그다음에는 가족들과 친구들과 지연 들에게 내 몸-마음을 설명하는 데에 이러한 통찰을 썼다. 나는 수치심을 잘못된 것이자 외부로부터 강요된 것으로, 자기애는 몹시 견고하고 완벽하게 내재된 것으로 활용했다. 수치심과 지 기수용을 대비시키는 방식으로 내 욕망을 정당화했다. 마치 내 몸-마음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는 듯이. 300
여기서 이 이야기를 끝낼 수도 있다. 수치심과 자기애에 대 한 나의 통찰을 해결책으로, 수술 전의 혼란에 대한 답으로 제 시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 덜 산뜻하고 덜 해결된 것을 바란다. 손으로 가슴팍을 훑고, 셔츠 핏을 보며 마음에 들 어하고, 내 피부 안에서 한없이 편안함을 느끼면서도 여전히 지 난날의 자기의심이 울려 퍼지기 때문이다. 장애가 있는 나를 있 는 그대로 사랑하기 위해 지속한 일평생의 투쟁은 젠더하되고 섹스화된 몸-마음을 재형성하기 위해 이용한 의료 기술과 어떻 게 화해시킬 수 있을까? 나는 조금 더 지저분한 이야기를 찾고 있다.
트랜스에이블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적극적으로 장애를 선 택하는 사람들, 그 과정에서 극도의 혐오와 분노, 불신을 맞다 뜨리는 사람들의 욕망을 완전히 알지는 못하지만, 그 욕망이 실 제이며 수그러들 줄 모른다는 사실은 안다. 나는 예의와 존중과 관계 맺음 대신 노골적인 호기심을 보이며 끊임없이 질문을 퍼 붓는 사람들 사이에 낄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침묵을 지키며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함께 머물 수도 있을 것이다.
다섯 명의 백인 트랜스에이블 남성을 소개하는 다큐멘터리 <온전한Whole)에서 조지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저는 제 다 리를 절단해야 한다는 평생의 강박을··· 실행에 옮겼습니다. 매 우 체계적으로 산탄총에 의한 부상을 계획했어요. 그리고 (그 일이 있은 후에) 저는 절대적으로··· 변화했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온전해졌어요."2 나는 그의 간절함과 만족스러움을 인식하면서 도, 장애인이 되고 싶은transabled 그의 욕망은 이해하지 못한 채 그의 말을 마주하고 있다. 그의 이야기가 나를 불편하게 한다. 영화에서 소개하는 또 다른 남성인 케빈은 다리 하나를 절단해 줄 의사를 찾아 나서도록 이끈 자신의 열망에 관해 이렇게 말한 다. "이상하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을 찾아오는 그건 뭘까요?... 그건 확실히 이상해요. 하지만 그것이 이상하다는 사실을 안다 고 해서... (그것을) 사라지게 해주지는 않아요." 우리 몸-마음 의 욕망들에 대해 생각한다. 그 욕망들이 서로 모순적이고 혼란 스러우며 설명할 수 없을 때, 무엇을 믿고 따를 것인지를 생각 한다. 케빈의 혼란과 조지의 확신에 귀 기울인다. 두 가지 모두 내게 친숙하게 느껴진다. 다큐멘터리의 끝부분에서 조지는 회 고한다. "제가 그날 한 일(다리를 쓴 것)은 불가피한 것이었어요. 그게 아니면 자살뿐이었습니다." 트랜스 커뮤니티에서도 젠더 트랜지션에 관해 정확히 똑같은 감정을 들어왔다. 나는 조지와 케빈의 말들을 인식하면서도, 그로부터 불안을 느낀다. 그들의 말은 나에게 필요한 혼란을 자아낸다. 302
이 엄청난 양의 감정과 믿음이 나를 다시금 트랜스에이블에계로 이끈다. 나는 장애에 대한 그들의 단호한 선택을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나 또한 나 자신의 육체적 욕망을 전부 이해하지는 못한다. 나에게 더 혼란스러운 이야기가 필요한 이유는, 장애가 있는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려는 내 일평생의 투쟁을, 젠더화되고 섹스화된 몸-마음을 재형성하기 위해 의료 기술을 이용한 일과 화해하게 할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 모순을 고치려 애쓰거나 그것을 껴안을 수 있을 뿐이다. 자신을 수술해 줄 의사를 찾을 만큼 운이 좋았거나, 장애를 촉발하는 사건을 실행에 옮길 만큼 절박했던 트랜스에이블처 럼, 나도 종국에는 멀쩡한 살을 도려냈고, 그 과정에서 온전함을 얻었다. 수치심과 사랑이 여전히 그림자와 빛처럼 파르르로 흔들린다. 305
그러나 치유는 몸-마음의 갈망만을 따르지 않는다. 치유는 우리를 정상성 쪽으로 밀어붙인다. 물론 트랜지션은 나를 정상 적인 남자로 만들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제 어떤 길모퉁이에서 는 "부인"이라고 불렸다가 다음 길모퉁이에서 "아저씨"라고 불 리는 일은 더 이상 없다. 내 몸-마음은 더 이상 남자와 여자 사이의 공간을 파고드는 지렛대가 아니다. 난생 처음으로 나는 줄 곧 단일한 젠더로 읽힌다. 내가 뒤틀리고 구부러지고 불온한, 완고한 퀴어로 남아 있음에도, 정상과 나의 관계는 완전히 바뀌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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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치유의 약속이 열어젖힌 문으로 걸어 들어갔다. 욕망의 소리를 들었으며 몸-마음의 평안을 찾았다. 나는 젠더 이분법 안에서 더 편하게 살고 있다. 나는 아직도 지금의 내가 풀밭에 서 연을 날리던, 자신이 여자아이도 남자아이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아홉 살의 나 자신과 비슷하다고 느낀다. 나는 아 무것도 치유하지 않았다. 치유할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 모든 힘들이 나를 밀치며 통과해 간다. 311
괴롭힘 당하기
15년이 지나 우리 관계는 몸-마음의 변화로 인해 무너졌어요. 같은 해에 나는 가슴재건수술을, 당신은 위우회술을 받았죠. 우리 둘 다 서로가 내린 선택을 반기지 않았어요. 당신은 내가 여성으로 남기를, 나는 당신이 살을 빼지 않기를 바랐어요, 자 신의 가슴을 사랑했던 당신은 왜 내가 가슴을 없애려 하는지 이 해하지 못했지요. 오랜 시간 뚱뚱한 여성들을 좋아해 온 나는 비만 혐오와 수치심뿐만 아니라 비만 그 자체가 당신의 삶에서 문제가 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고요. 당신의 페미니즘 정치 는 젠더 트랜지션을 용인하기 어려워했고, 나의 비만 정치도 똑 같이 체중감량수술을 받아들일 수 없었죠. 우리는 각자의 몸- 마음을 서로에게 설명하고 해명하는 것으로 끝이 났어요. 312
수술 때문에 싸우던 때 우리가 주고받은 아픈 말들을 반복 하고 싶지는 않아요. 비만 활동가 커뮤니티와 협력했던 긴 시간 동안 나는 위우회술을 감행한 사람과 가까이 있어본 적이 없었어요. 당신도 퀴어 커뮤니티에 속해 있던 세월 동안 젠더 트랜 지션을 한 사람을 본 적이 없었죠. 당신이 내가 성차별주의, 동 성애 혐오, 젠더 이분법과 싸우기를, 부치 여성으로서의 나의 몸-마음을 사랑하기를 바랐듯이, 나 역시 당신이 비만 혐오와 맞서 싸우기를, 당신의 뚱뚱한 몸-마음을 사랑하기를 바랐어 요. 나는 당신의 위장관을 재형성할 의사들을 신뢰하지 않았고, 사방에서 광고되는 수익성 높은 비만대사수술이나 산업과 미디 어가 주도한 "비만 유행병"의 공포에 당신이 사로잡혀 있는 것 은 아닐까 생각했어요. 마찬가지로, 당신은 내게 남성성과 여 성 혐오에 굴복했다는 혐의를 두었지요. 우리는 둘 다 “우리의 몸-마음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라"라는 단일하고 단호한 정치로 답했고, 서로의 욕망을 믿지 않았어요. 한마디로 엉망진창이었죠. 313
우리는 사랑과 인내, 시간, 경청을 통해 다시 모였어요. 당신 은 조금 작아졌지만 여전히 비만인 백인 다이크고, 나는 백인 남성으로 사는 젠더퀴어죠. 우리는 메스와 합성호르몬이 몸-마 음의 근본적인 기능을 재배치하도록 했던 우리의 결정이 얼마 나 대담한 것이었는지 서로 이야기했어요. 우리는 서로의 변화 를 목격했어요. 내 목소리는 굵어졌고 당신은 체중이 줄었지요. 나는 수염이 났고 당신의 식사는 바뀌었어요.
경청과 인내는 이 깊은 투쟁을 지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었지만, 우리는 다른 노력도 해야 했어요. 당신은 트랜지션을 포기와 배신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서, 젠더 이분법이 부정하는 젠 더에 관한 보다 넓은 이해로 나아가야만 했어요. 나는 간단한 해 결책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 당신의 선택과 내 정치가 서로 엎치 락뒤치락하도록 모순을 껴안아야 했고요. 나에게 투쟁만큼이나 연민이 중요해져야 했어요. 결국 우리 둘 다 변화한 거였죠, 전혀 다를 바 없이. 314
해제
불완전함과 고통의 정치성에 대하여
김은정
■ 불완전함에 머무르기
"우리는 장애와 죽음이 우리 삶에 들어오는 방식과 시기, 그 리고 그 여부를 통제하고 싶어한다" (226쪽)라고 지적한 클래어 는, 신체 및 정신 기능의 상실과 의존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진실이 아니라 상상력의 한계" (240쪽) 때문에 생겨난다고 말 한다. 이는 최근 한국에서 검토되고 있는 의사 조력 사망과 관 현해 장애와 의존이 어떤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지, 이 두려움 이 어떻게 존엄사나 안락사라는 말로 포장되는지 생각하게 한 다. 의존이 존엄성의 상실을 불러오는 것이 아님에도, 존엄의 이름으로 의존을 제거하려는 욕망은 손쉬운 해결책으로 죽음을 내세운다. 결합으로 규정된 존재들의 제거가 치유의 이름으로 이루어졌다면, 의존을 제거하는 것은 고통을 끝내는 조력이라 는 이름으로 정당화된다. 클레어가 말하는 "항의로서의, 저항으 로서의, 매일의 진실으로서의 몸-마음"의 상호 의존과 불완전 함은, 장애와 질병을 가지고 살거나 빈곤한 사람들의 돌봄을 차 단하며 죽음을 앞당기는 미래에 대항해 싸우는 무기가 되어야 하며, 의존과 삶에 대한 전혀 다른 상상을 요구한다. 3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