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기
식물기,
호시노 도모유키 식물소설집
호시노 도모유키
한국어판 서문,
식물이 싹을 틔우는 계절에 도쿄에서 한국어판 독자 여러분께
수풀 속을 걷기를 좋아합니다. 주택가나 논밭이나 작은 산이 섞여 있는 장소가 좋습니다. 집이 무너지고 그대로 아무것도 짓지 않아 방 치된 땅에 풀이 자라 무성해지고, 이윽고 발 들일 틈 없을 만큼 수풀이 우거지면, 이대로 주변의 주택도 수풀에 먹혀 버리면 좋겠다고 상상하 곤 합니다.
십년 전, 서울 서대문에 살았을 때 근처에 거대한 빌딩이 세워지다 만 넓은 땅, 수풀이 되어 방치된 곳이 있었습니다. 함석판으로 둘러싸 여 있었지만, 누군가가 일부러 무너뜨려 들어갈 수 있게 되었고 나도 들어가 보았습니다.
나에게는 그곳이 낙원처럼 보였습니다. 전면이 수풀인 낙원 저편에 나이 지긋한 이가 오두막을 짓고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거기서 채소 를 길렀습니다.
수풀 속으로 작은 길이 나 있었고, 작은 길은 함석판의 다른 쪽품인 로 이어져 있었습니다. 부지가 크기 때문에 지름길을 만들어 둔 것이 겠지요.
그곳은 나의 산책로가 되었습니다. 가능하다면 그곳에서 살아보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지구상의 모든 길이, 일단 식물에 둘러싸여 폐허가 되고, 거기에서 다시 한 번, 인간에게 정말로 필요한 생활의 장이 구축된다면, 이토록 숨 막히게 사는 장소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 각까지 했습니다.
나는 내내 식물과 함께 소설을 써 왔습니다. 식물을 언어로 삼아 소 설 속에 살고, 늘어나는 대로 두었습니다. 이 작품집은 그 식물들을 모아 심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 나는 이렇게 식물에 끌리는 것일까 생각해 보았는데 결정적인 대 답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일 년 넘도록 이어지고 있고, 그 실태는 잔혹하기 짝이 없는 제노사이드임이 분명해 보입니다. 그 소업은, 아마도 20세기 나치스가 했던 것과 나란히 인간 이 두려워해야 할 과오로서 기억될 것입니다.
이런 현실을 목격할 때마다 나는 인간이기를 그만두고 싶어집니다.
인간으로부터 벗어나 식물이고 싶다고 기원합니다.
그러면 식물이란 대체 무엇일까요?
예를 들어, 플랑크톤에는 동물 플랑크톤과 식물 플랑크톤이 있습니 다. 동물 플랑크톤은 다른 생명체를 포식하여 살아가는 생물입니다. 식물 플랑크톤은 광합성 등으로 스스로 영양을 만들어 살아가는 생물 입니다. 자급자족하는 생물이 식물 플랑크톤입니다.
까? 다른 생명체를 먹지 않고 살아가는 존재란 정말 매력적이지 않습니
「샤베란」에도 썼지만, 식물에는 뇌와 심장이 없습니다. 내가 식물이 된다면, 뇌와 심장은 없어집니다. 뇌가 없어지면, '식물이 되고 싶다' 는 상상도 욕망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경지를 불교에서는 '깨달음' 이라고 부른 게 아닐까요? 인간인 채로 식물이 되어라, 라는.
나는 뇌를 가진 사람이니까 이렇게까지 식물을 편애할 수 있는 것 이겠지요. 식물에 둘러싸여 기쁨에 젖을 수 있는 것이겠지요. 거기에 서 인간이라는 음산한 존재를 벗어나, 인간이 아닌 것이 될 가능성을 나는 찾는 것입니다. 인간이 인간이기를 그만두었을 때, 인간은 정말 로 인간다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 과정이 이 소설집이라는 이 야기가 되겠습니다.
이 책의 구성에 대해서는 「남은 씨앗」에 썼습니다.
"응? 하지만 이것도 소설이잖아?"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어디 까지가 사실이고 어디부터가 창작인지 경계는 없습니다. 나는 다시 모 든 언어, 모든 문장을 소설로 만들어 버리고 싶은 것입니다.
모든 말이 소설이 되고, 모든 길이 식물이 되어, 인간은 녹음을 목표 로 삼을 것입니다.
2023년 봄
호시노 도모유키
식물전환수술을 받기로 한 전 여자 친구를 설득하는 편지
사키코가 좋아하는 코스모스가 아름다운 계절이 왔습니다. 잘 지냅 니까?
나는 코스모스를 허심탄회하게 감상할 수 없습니다. 며칠 전에도 우 리의 추억, 식물의 전당 '가라시야' 코스모스원을 방문했는데, '이 꽃 중 하나가, 이 나무 중 한그루가 사키코라면' 하는 상상을 어쩔 수 없 이 하게 되고, 그러면 이미 사키코를 잃어버린 기분이 듭니다. 헤어졌 으면서 이런 말 하는 건 우습지만요.
'잃었다'고 말하면, 인식법이 틀렸다고 사키코는 말하겠지요. 어디 까지나 식물로서 살아 있는 것이지, 죽거나 행방불명이 되거나 한 게 아니니까, 하고요.
하지만 풀이 말을 합니까? 글을 씁니까? 수어를 할 수 있습니까?못 하지요. 어떤 방법으로도 식물이 된 사키코와는 의사소통을 할수설 습니다. 이래서는 잃은 것이나 다름없지요.
식물이 되려는 이유가 '장수하고 싶어서'라는 말은 납득할 수 없습 니다. 장수는 할지 모르겠지만, 풀이 되면 뇌도 없어져 버리잖아요는 도 보이지 않고 귀도 들리지 않고 괴롭거나 아프거나 기분이 좋거나 하는 일도 없고, 좋아하는 양파김치도 먹지 못하고, 장수한다는 실감 도 못한 채, 그저 거기에 이백 년이든 얼마든 있을 뿐. 이것을 장수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사키코의 기분은 압니다. 사키코는 돈 많은 생태주의자니까요. 함 께 살 때, 내가 낫토에 든 소스 봉지를 타는 쓰레기 쪽에 버리면, '이건 플라스틱 쓰레기라고 몇 번이나 말해야 아는 거야?' 하고 자주 야단을 쳤죠. 목욕하고 남은 물은 세탁뿐 아니라 양동이에 담아 화장실 물내 릴 때 써야 한다고 화를 냈어요.
그런 사키코이니, 온난화 시대에 초록을 늘려야 한다고 생각한 나 머지 자기가 식물이 되겠다고 한 결심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언제나 분개했었죠. 저출생이라든가 말은 해도 지구 규모로 보면 인간은 폭발 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그만큼 다른 동물이나 물고기나 식물이 줄고 있다. 그러니 아이를 낳지 않는 게 국제적인 공헌이다. 어차피 낳아야 한다면 너도밤나무나 떡갈나무를 낳고 싶다 아니, 낳는 대신 자신이 그것이 되어 버릴 거라고 했죠.
하지만 식물전환수술을 받으려고 하는 '인류 녹화 글로벌 플랜'이 라는 단체는 사키코 같은 사람의 순수함을 정말로 진지하게 받아들이 는 걸까요? 나도 식물전환수술 팸플릿을 보았습니다. 지금 시점에서 온난화가 치명적일 수 있는 2050년까지 세계 각지에서 십억 명을 녹 화한다고 되어 있었어요. 그래서 수술 비용은 '전 재산' 가난한 사람 은 물론, 부자인 사람도 자산을 몽땅 내야 해요. 모은 돈은 녹지를 사는 데쓴다고 해요. 수술로 녹화된 사람도 거기에 심습니다.
신경이 쓰이는 부분은 역시 수술입니다. 적성 검사를 한 뒤에 어느 식물로 다시 태어날지를 결정하면 혼수상태에서 몸에 나무를 접붙이 죠. 유전자를 조작해서 사람의 세포와 대단히 닮은 DNA를 가진 식물 을 개발했기 때문에 인간과 접붙이기할 수 있다고 쓰여 있지만, 이거 야말로 사람의 몸을 양분으로 나무가 자랄 뿐, 땅에 심어 번식시키는 것과 다름없다는 기분이 듭니다. 사키코가 너도밤나무나 떡갈나무가 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게다가 약관에 아주 작은 글자로 '성공하지 못할 확률도 낮지 않습니다.'라고 쓰여 있는 거, 알고 있나 요?
일흔 살이 되어 식물전환수술을 받아도 늦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때는 더 확실한 식물전환 기술이 확립되어 있을 테지요. 그렇게 되 면 함께 너도밤나무가 됩시다!
이 편지를 읽고 수술을 받기 전에 오랜만에 나를 만나도 좋다고 생 각된다면 연락 주세요. 답장을 기다리겠습니다. 117-119
남은 씨앗-에필로그
불혹을 앞두고 소설가로는 도저히 먹고살 수 없어 방황할 때, 식물 의 전당 '가라시야'를 만났다. 소설만으로 먹고살겠다고 고집하면서 다른 일을 일절 거절했더니, 기어이 아무 일도 들어오지 않았다. 쓰는 사람으로서 나는 의뢰인의 형편에 맞추어 다양한 글을 써 주기만 한다 면 소설을 써도 괜찮아, 정도의 존재였던 것 같다.
결국 집도 잃고 어슬렁어슬렁 거리를 떠돌아다니던 무렵, '아르바 이트 모집' 광고가 눈에 들어왔고 그 자리에서 면접을 본 곳이 '가라 시야'였다. 음식의 호불호나 알레르기 유무에 대한 질문을 받았고 특 별히 그런 게 없다고 대답하자 채용되었다. 잘 데가 없다는 사정을 털 어놓자 담당 일자리가 생기기 전까지 창고에서 자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창고라고는 해도 밖에 내놓기 전에 식물들이 대기하는 장소이기 때문에 춥지도 덥지도 않고 환기도 잘 되는 곳이었다. 밤에 불을 켜서는 안 된다는 것만이 인간인 나에게는 불편했지만, 오히려 원시 인간으로 돌아간 것처럼 건강해졌다.
연수생이 된 내가 맡은 첫 일은 수납과 팔 수 없게 된 식물 처리였다. 놀라운 일이었다. 팔만한 식물보다 말라서 팔 수 없어진 식물이 더 많 았기 때문이다.
"이래서야 이익을 낼 수 있습니까?"
직원에게 물었다.
"이익이 나오는 가격을 붙이면 되죠."
나는 아연실색하며 '그건 바가지잖아'라고 중얼거렸다.
"그러면 호시노 씨, 식물의 가격이란 뭘까요? 그 가격이어야만 하 는 이유가 있나요? 팔천 엔하는 호접란과 백엔하는 다육 식물 사이 에 왜 칠천구백 엔의 차이가 나는지 설명할 수 있나요? 그 가치의 차이 란 무엇인가요? 식물의 우열입니까? 식물한테 우열이 있습니까? 무엇 을 기준으로 가격을 붙이면 좋을까요? 대답할 수 있나요?"
채근을 당하자 나는 대답이 궁해졌다.
"그건... 수요의 차이일까요? 그리고 손질된 상태...?"
"그렇습니다. 별다른 답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채산에 맞는 가격을 붙이고 그래도 사는 사람이 있으면 폭리를 취하는 것도 별 문제가 아 니잖아요? 식물에 가격을 붙여서 파는 데 합리적인 설명 따위, 달리 붙 일 방도가 없습니다."
반론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모든 물건에 가격을 매기는 사람들은 다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소설 의 가격도 마찬가지겠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실감이 났다. 오히려 팔리는 소설은 값이 싸서 사 기 쉬워야 이익이 많아진다. 비싸다고 가치가 있는 소설도 아니다. 시
"결국 말이죠."
직원은 말을 이었다.
*판매대에 나온 멋진 화분과 이미 말라 버린 화분 사이에 가치의 차 이는 없습니다. 사실 가격도 같은 겁니다. 빨간 꽃과 파란 꽃 정도의 차 이밖에 없는 거죠."
*그렇다면 시든 식물 판매대도 만들면 되잖아요. 팔릴지도 모르니 까요."
나는 고집스럽게 말했다.
"뭘 모르시는군요. 뭐, 신입이니까 어쩔 수 없죠. 여기가 왜 '가라시 야'인지 모릅니까?"
"창업자가 가라시야 씨라든가, 그쪽 이름이겠죠."
직원은 고개를 내저었다.
"우리 회사 창업자는 미도리가와 미도리(緑川緑)입니다. 앞에서부 터 읽어도 미도리가와 미도리, 뒤에서부터 읽어도 미도리가와 미도리."
나는 곤혹스러웠다. 직원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사람들이 쳐다도 보지 않는 마르고 약한 식물을 모아 갖고 싶어 하 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줬어요. 돈을 내고 싶은 사람은 내고, 없는 사람에게는 거저 주었어요. 그렇게 했더니 돈이 벌리더군요. 그 정도가 아 니에요. 살아 있는 식물을 사 가는 손님에게 시든 것도 괜찮으니까 신 경 쓰지 말고 시든 것을 즐기세요, 그 사이 잡초가 자라고 또 새로운 시 대가 시작될 거예요, 하고 권하는 게 우리 가게의 방침입니다."
"그러면 꽃집을 하는 의미가 없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어요. 그래서 비웃는 말로 저 꽃집은 '하나야'가 아니라 '가라시야"라고 말했는데, 역으로 그 이름을 따서 가게 이름을 '가라시야'라고 부르게 된 겁니다. 식물의 생명 사이클 전 체가 여기에 있다는 의미를 담아서."
"그러면 '가라시야'의 원점인 시든 식물을 판매하는 곳도 있다는 거 네요? 어디죠? 보여 주세요."
직원은 경멸의 눈빛을 감추지 않은 채 나를 보며 충고했다.
"호시노 씨, 자신이 모르는 것에 대해 좀 더 솔직하고 겸허하게 받 아들이는 게 좋아요. 아직 제대로 사정도 모르는 주제에 처음부터 불 신을 그대로 드러내는 태도를 보여서야 상상도 할 수 없는 손님들의 폭넓은 바람을 이해할 수 없죠."
급소를 찔린 나는 기분이 나빠져서 입을 다물었다. 그랬다. 언제나 그런 태도였기 때문에 나는 일을 잃었고, 방황했으며, 도와주는 친구 도 지인도 없었다.
"시든 식물이 늘어섰던 선반에는 손님들이 집에서 가지고 온 시든화분도 놓이게 되었죠. 그러자 팔리는 양보다 가지고 오는 양이 훨씬 많아져서 선반으로 감당을 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선반은 없애고, 손 님들이 가지고 온 중고 식물을 받아 리사이클하는 사업을 시작한 겁니 다."
"중고 식물.... 왠지 기분 나쁜 말이네요."
*새로운 것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렇게 말합니다. 낡 았는가 새로운가는 시간 차이일 뿐이고, 심지어 식물은 더 커다란 사 이클을 반복하며 살기 때문에 어느 때든 커다란 생의 흐름 가운데 하 나일 뿐입니다. 가치의 문제가 아니에요. 가치로 말하자면, 어느 쪽도 가치는 마찬가지. 아까 가격 이야기와 마찬가지예요."
“식물의 가격이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라면, 중고 식물은 어떤 기 준으로 정한답니까?"
"담당자의 기분입니다. 중고 식물을 가지고 온 손님의 애정을 보기 도 하고, 담당자가 그 식물이 마음에 들면 높이 쳐 주기도 하고, 기분이 죠"
나는 그런 엉터리 기준에 더 이상 놀라지 않았다. 그걸로 됐어, 하고 점점 설득당하고 있었다.
"중고 식물을 가지고 오면, 새 식물과 교환해 주기도 하나요?" "그런 경우도 있고, 돈으로 주는 경우도 있어요. 할인 포인트로 누 적되기도 합니다."
"중고 식물을 받아 주면, 새로운 식물 구입으로 이어지게 하는 패스트 패션 류의 소비 촉진 작전 아닌가요?"
어차피 삐딱한 사람으로 보일 바에야, 나는 작정하고 물었다.
*그런 식으로 보는 사람에게는 그렇게밖에 안 보이겠죠. 하지만 리 사이를 업무를 하는 동안 호시노 씨도 알게 될 거예요. 다른 게 보이기 시작할 테니까. 나한테 설명을 듣는 것보다 본인이 몸으로 느껴 보세 요
연수 기간을 마친 나는 교외의 숲속에 있는 리사이클 시설로 가게 되었다. 거기에 살면서 리사이클 업무에 전념하라고 했다.
'가라시야'의 각 매장에서 트럭으로 실어 오는 방대한 중고 식물을 화분에서 빼내어 흙과 식물 본체로 나눈다. 리사이클 가드너가 아직 살아 있다고 진단한 식물은 땅에 심거나 하우스에서 관리하며 회복시킨다. 시든 식물은 거친 분쇄기 같은 기계에 넣어 잘게 부순다. 잘게 부순 중고 식물은 비료를 만드는 거대한 탱크에 넣는데, 이 탱크에는 미생물을 포함한 재생용 흙과 오래된 흙도 함께 들어간다. 발효가 잘 되도록 탱크 내부 온도는 주변 환경보다 높게 설정되어 있고, 정기적으 로 회전하는 날개가 통기성을 확보해 반년 정도 지나면 비료가 완성 된다.
리사이클 시설에서 일하는 직원은 여럿이었지만, 나는 비료 관리 담당으로 다른 직원과 얼굴을 마주할 일이 좀처럼 없었다.
사람이라고는 누구와도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 말도 섞지 않고, 식물과 흙으로 뒤범벅되어 살면서 나는 식물에게 빨려들어 갔다. 비료탱크들은 숲의 나무들에 둘러싸여 있어서 나는 비밀기지에서 첩보활동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흙이 인간에게 바이오 테러를 하려 하고 나는 그들의 말단 부하다. 인간 따위 모두 비료로 만들어 주면 된다. 비료 탱크의 뚜껑을 열고 위에서부터 흙의 상태를 확인하다 보면 때 때로 뛰어들 듯한 자세가 된다. 나 자신도 부서지고 분해되어 흙의 일부가 되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흙은 살아 있는 미생물과 벌레, 말라버린 식물과 벌레의 시체, 배설물, 거기에 광물 등의 무기질로 이루어져 있다. 삶과 죽음이 하나로 섞여 구별되지 않는, 살아 있는 것과 죽어 있는 것의 트와일라잇 존이다. 나는 이미 애매한 트와일라잇 인간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 무렵이었다. 창조주, 크리에이터로부터 의뢰가 들어온 때는. 사람의 모습을 한 크리에이터는 <플랜티드(PLANTED)>라는 식물 잡지를 만들 테니까, 호시노 씨는 여기에서 식물들이 중얼거리며 나누는 이야기를 들은 걸 쓰면 된다고 했다.
이제 쓰는 일 따위 잊고 있었지만, 시작하고 보니 빠져들었다. 읽을 사람 생각 따위는 머리에서 사라졌다. 식물의 중얼거림을 어떻게 인간의 말, 내가 알고 있는 말로 바꿀 것인가, 그것이 어려우면서도 쾌감이 느껴지는 일이어서 나는 몰두했다.
그래, 분명히 나는 계속 들었다. 식물들의 대화를, 시들기 시작한 식물의 호흡, 이제 말라 부서지고 흙 속에서 발효되고 있는 식물들이 내는 소리, 그 양분을 먹으면서 발효의 주역이 되는 미생물의 호흡, 온도가 변화하여 공기가 내는 소리.
그런 것은 인간이 사용하는 말의 범주에는 들어가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그것을 언어로 바꾸고, 심지어 이야기로 만드는 일이란 인간이 멋대로 하는 망상에 지나지 않음을 안다. 그래도 나는 내 느낌이 잡아 낸 중얼거림을 이야기의 감각으로 재현해 보고 싶었다. 그렇 게 하면 내가 중고 식물과 흙의 일부가 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 이다.
「피서하는 나무」는 2021년 1월에 썼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오나무'의 기억에 귀를 기울였다.
2020년 5월로 거슬러 올라가, 비틀즈의 노래 「디어 프루던스」를 무심히 듣는데 갑자기 가사가 귀에 들어왔고, 바로 이거라고 생각했다. 코로나의 소용돌이 속에서 쓴 첫 작품이라 그늘이 드리워져 있기는 해도, 내용은 코로나 이전에 노래에서 들은 이야기다.
「기억하는 밀림」은 《플랜티드>에 네 번째로 연재한 작품으로, 식물이 기억을 축적하는 모습을 그렸다.
「스킨 플랜트」는 <플랜티드>에 두 번째로 연재한 작품인데, 내 소설 가운데 가장 화려하고 밝은 작품일지도 모른다. 나 자신도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다. 꽃들이 미래의 기억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플랜티드>에 처음으로 실린 작품이 「고사리태엽」인데 이번에 수록하면서 후반부를 많이 고쳐 썼다. 여기에서 알게 된 식물전환수술의 모티브를 앤솔러지 『작가의 수첩』에서 여담처럼 전개한 작품이 「식물전환수술을 받기로 한 전 여자 친구를 설득하는 편지다.
「인형초」는 《플랜티드》에 세 번째로 실린 작품이다. 식물의 반란을 진압하는 특수 공작원 네오 가드너라는 존재는 물론 '블레이드 러너' 에서 이미지를 따 왔다. 이름도 어감을 따서 '플랜트 헌터'라고 했는데, 플랜트 헌터는 제국주의 시대에 서양 열강을 위해 이익이 되는 식물을 식민지로부터 발견하는 존재로 실존했던 인물들이기 때문에 이번에 그 이름을 바꿨다.
네오 가드너 이야기의 두 번째 작품이 「시조 독말풀』이다. 아즈마 마코토 씨가 스스로 즐기기 위해 연 AMPP라는 기획전에서 대량으로 키운 흰 독말풀을 전시하면서 거기에 맞추어 이야기를 만들어 달라는 의뢰를 받아 쓴 작품이다. 이 작품은 『흰 독말풀 밭을 잡아라』라는 책자에 실렸고, 아즈마씨는 이 작품을 영상으로도 만들었다. 우리는 감쪽같이 흰 독말풀의 계획에 놀아난 셈이다.
「춤추는 소나무」는 <플랜티드>에 실린 다섯 번째 작품으로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 이 작품이 게재된 호를 끝으로 <플랜티드> 는 휴간되었다. 아즈마*씨는 편애하는 소나무를 사용한 '식(式)'이라는 시리즈를 라이프 워크처럼 만들고 있는데, 그 소나무들로부터 내가 들은 이야기다. 등장인물은 내 친구들이 모티브가 되었다.
사카구치 안고의 「만개한 벚꽃나무 아래」를 바탕으로 쓴 단편이 「벚꽃 낙원」. 안고의 소설 머리의 한 문장으로부터 출발하여 다른 운명을 걷게 된다. 벚꽃 이야기로는 가지이 모토지로의 「벚꽃나무 아래」 도 있는데, 이 작품에서는 벚꽃이 사체를 빨아먹으며 살기 때문에 그 렇게 요염하고 아름답다 말하고 있다. 벚꽃은 그런 발상을 인간에게 불어넣기를 좋아하는 것이다.
그리고 난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어버린 나는 2020년 가을에 「샤베란」을 썼다. 아니, 쓰지 않았다. 쓸 수 없었다. 내가 아는 말로 고치는 것이 불가능했다. 인간의 말은 무너져 버렸기 때문에 고쳐 쓸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영원히 쓸 수가 없다. 186
* 일본어로 꽃집을 하나야라고 하는데, 가라시야는 시든 꽃집이라는 뜻이다.
*東信, 일본의 플라워 아티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