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생자 행성_8장 가이아
공생자 행성
린 마굴리스가 들려주는 공생 진화의 비밀
린 마굴리스
8. 가이아
의학 용어 중에 몸 안의 자극으로부터 생기는 운동과 방향을 감지하 는 것을 뜻하는 고유감각이라는 말이 있다. 비록 용어는 잘 알 려져 있지 않지만, 그 현상은 우리 모두에게 익숙하다. 고유 수 용기들은 우리가 똑바로 서 있거나, 고개를 기울이거나, 곁눈질을 하거나, 주먹을 꽉 쥐고 있다고 우리에게 끊임없이 알려 준 다. 고유 수용기들은 타인이나 환경 같은 바깥 정보가 아니라 몸 내부의 정보를 담당하는 감각계다. 근육에 붙은 신경들은 몸 의 위치를 바꾸는 것과 같은 운동을 감지하면 발화한다. 이 자 기 감시 신경들은 우리가 발로 서 있는지 머리로 서 있는지, 서 있는 버스에 타고 있는지 시속 60킬로미터로 달리고 있는지를 알려 준다. 지구는 인간이 진화하기 오래전부터 이미 고유감각 계를 활용해 왔다. 작은 포유류들은 지진이나 폭우가 온다는 것 을 서로에게 알린다. 나무는 매미나방 애벌레가 잎을 먹고 있음 을 이웃들에게 경고하는 '휘발성 화합물'을 분비한다. 고유감 각, 즉 자기 자신을 감지하는 능력은 아마 자기 자신만큼이나 역사가 오래되었을 것이다. 나는 인류가, 가이아가 최근에 얻은 고유 수용기 능력을 증대시키고 계속 촉진한다고 생각한다. 보 르네오 숲에 불이 나고 미국 헬리콥터가 이탈리아의 알프스 산 맥에 충돌했다는 소식이 뉴욕 시의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 널리 방영되는 것이 한 예다. 하지만 멸종한 늑대 무리와 공룡들도 나름대로 고유감각적인 사회적 의사소통을 했다. 지구 신경계 가 인간의 출현과 함께 시작된 것은 분명 아니다. 생리적으로 조절되는 지구를 뜻하는 가이아는 인간이 진화하기 훨씬 전부 더 지구 수준의 고유감각적 의사소통을 했다. 공기는 열대의 나무들, 짝짓기 준비가 된 곤충들, 치명적인 세균들이 뿜어내는 기체와 용해성 화학 물질을 순환시켰다. 시생대부터 이미 사랑의 화합물들은 봄의 산들바람에 실려 떠다녔다. 전자 시대에 들 어서자, 고유감각의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1996년 4월 영국에 서 열린 제2회 가이아 학회인 '옥스퍼드의 가이아'에는 과학자 들과 환경 운동가들이 모여서 초유기체(superorganism)에 대해 토 론했다. 지구의 모든 생물들이 하나의 초유기체를 이루고 있을 까? 생명이 가이아라는 하나의 자기 조절체일까? 초유기체 개 념이 마음에 들긴 하지만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행성의 조 화라는 개념을 선동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들을 놓고 40여 명이 토론을 벌였다. 그들은 한 가지 합의에 도달했다. 이스트런던 대학교에 '지구 생리학 협 회'를 설립한다는 것이었다. 반갑게도 이 결정은 1997년 말 번 복되었다. 가이아를 살리고, 지구 생리학을 죽이기로 말이다. 이 새 기관은 지금 '가이아: 지구 시스템 과학 연구 및 교육 협 회'라고 불린다. '가이아' 학회는 1998년 2월 9일 런던 왕립 학회 건물에서 개회식을 열었다. 생물 다양성에 관한 세계적 권위 자이자 개미의 사회적 행동과 기술 능력을 연구하는 전문가에 드워드 윌슨(Edward O. Wilson)이 비디오테이프를 통해 축하 인사 를 보냈다. 가장 역사 깊고 가장 권위 있는 학회의 본산에서 정 식 개회식을 연 것은 가이아 이론을 알리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 었다. 대서양 반대편에서 가이아 팬임을 자처하는 저명한 하버 드 대학교 교수로부터 비디오로 축하 인사를 받은 것도 속뜻이 있었다. 가이아 과학에 기여하는 사람들끼리 대화를 나누면 나 눌수록 우리는 우리가 그토록 깊이 의지하고 있는 지구 표면에 얼마나 무지한가를 깨닫게 된다.
많은 사람들의 주장과는 달리, 가이아 가설은 '지구가 하나 의 생물이다.'라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생물학적 의미에서 볼 때, 지구는 복잡한 생리 과정들을 통해 유지되는 하나의 몸이다. 생명은 행성 수준의 현상이며, 지구는 적어도 30억 년 동안 살아 왔다. 내가 볼 때 인간이 살아 있는 지구를 책임지겠다고 나서는 모습은 우스꽝스럽다. 그것은 능력은 없으면서 말로만 떠드는 것과 같다. 우리가 지구를 돌보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우리를 돌보는 것이다. 혼란에 빠진 지구를 올바로 이끌라거나 병든 지구를 치유하라는 우리의 주제넘은 도덕적 명령은, 우리가 자기 기만에 빠질 수 있는 대단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증거일 뿐이다. 우리는 오히려 자기 자신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 할 필요가 있다.
1996년 학회의 중심 인물은 가이아 가설의 주창자인 제임스 러블록이었다. 러블록은 1970년대 초에 생명 전체가 자신이 이용하는 환경을 최적화한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생물학자들은 최적화라는 말에 울컥했다. 그들은 생명이 계획을 짤 수 있다는 것이 말이 되냐고 반발했다. 나와 만나기 몇 년 전인 1960년대 중반에 러블록은 이미 살아 있는 지구라는 개념을 생각하고 있었다. 당시 그는 미국 항공 우주국에 자문하는 일을 맡고 있었다. 화성에서 생명을 검출할 방법을 고안하는 일을 자문하는 역할이었다. 러블록은 생명이 어떤 행성에 있든 간에 그 행성의 유체들을 이용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구라면 대기, 바다. 호수, 강 등을 이용하여 자신에게 필요한 원소들을 순환시키고, 양분을 공급받고 폐기물을 제거해야 한다. 그는 살아 있는 행성은 틀림없이 생명이 없는 행성과 화학적으로 큰 차이를 보일 것이라고 추론했다. 그는 외계 공간에서 봐도 지구 대기가 화학적으로 모순을 안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으리라고 깨달았다. 우리 대기는 메탄보다 훨씬 더 많은 산소를 지니고 있다. 이런 기체들은 혼합되면 대단히 강하게 반응하므로, 농도를 유지하기 위해 계속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그렇게 고농도로 공존할 수 없다. 도저히 있을 법하지 않은 이 대단히 불안정한 혼합물에는 다른 기체들도 많이 섞여 있다. 수소뿐 만 아니라 질소도 보통은 산소가 있으면 폭발적으로 반응하지만, 지구 대기에서는 공존한다. 러블록이 화성 생명체 검출이라는 문제를 놓고 씨름하고 있을 당시에도, 지구에서 망원경을 통 해 분석한 자료들은 화성이 지구와 달리 비반응성 기체들로 이루어진 안정한 대기를 갖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러블록은 현재 화성에는 생명이 존재할 수 없다고 올바로 추론했다. 어쨌든 화성에 생명이 있는지를 검출하는 임무를 띤 바이킹 탐 사선은 화성으로 날아갔다. 내가 볼 때 1976년에 바이킹 탐사선 이 지구로 보낸 자료는 러블록이 가이아 이론으로 예측한 것을 확인하는 수준에 그쳤을 것이 뻔하다.
러블록은 관심의 초점을 지구로 돌렸다. 주류 학계와 동떨어진 덕분에 자유로웠던 외톨박이 과학자 러블록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관심사를 계속 탐구했다. 그는 대단한 발명가였다. 그 의 발명품 중에는 전자 포획 장치도 있다. 전자 포획 장치는 공기에 섞인 플루오르화탄화수소 같은 반응성 기체들의 농도를 측정하는 장치인 기체 크로마토그래피에 부착하는 검출기다.
러블록의 장치는 나중에 개량되어 휴렛-패커드사를 통해 널리 팔렸다. MIT의 셔우드 롤런드(Sherwood Rowland)와 마리오 몰리 나(Mario Molina)는 그 장치를 이용하여, 분무제를 비롯한 다양한 용도로 쓰이는 기체들이 성층권 오존층을 파괴하는 과정을 보여 줌으로써 1995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또 제임스는 살충제의 장기적인 영향을 다룬 레이철 카슨(Rachel Carson)의 주장을 옹호했다. 레이철은 『침묵의 봄(Silent Spring)』을 써서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러블록은 영국 의학 연구 위원회 산하에서 저 온생물학을 연구할 때, 동물과 정자를 얼렸다가 해동시키는 방법을 개발했다. 그는 냉동된 표본을 직접 만든 일종의 전자레인지에서 해동시켰다. (그러나 그는 이 발명에 특허를 신청하지 않았다. 특허를 받으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고 비용도 많이 들고, 사람도 많이 만나야 한다. 한 마디로 러블록이 싫어하는 종류의 일이었다.)
러블록은 그 어떤 기관의 도움도 연구비 지원도 전혀 받지않은 채 생명이 지구의 대기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를 탐구하면서 홀로 그 분야를 개척해 나갔다. 그는 자기 돈을 써 가면서 기체들을 측정하는 일에 몰두했다. 그러나 동료나 학생과는 끊임없이 의견을 주고받았다. 그런 꾸준한 연구 끝에 내놓은 것이 바로 가이아 이론이었다.
우리는 1970년대 초부터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처음에 그가 보낸 편지 중에 메탄 문제로 머리가 아프다는 내용이 있었다. 산소와 아주 강하게 반응하는 이 기체가 왜 언제나 지구 대기에 측정할 수 있을 만큼 다량 존재하는 것일까? 메탄은 없어졌어야 마땅했다. 그는 그것이 생명의 출현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이 기체를 만들 만한 것을 아냐고 물었다. 나는 미생물을 다룬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만한 답변을 했다. 메탄 기체는 세균, 주로 물에 잠긴 토양이나 소의 반추 위에 사는 메탄 생성균이 만든다. 메탄 생성균의 대사 산물은 소의 방귀(나는 늘 이쪽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가 아니라 트림을 통해 대량으로 방출된다. 메탄은 송아지, 암소, 황소의 입을 통해 대기로 방출된다. 대기 메탄은 곧 산소와 반응하여 이산화탄소를 만든다. 대기 메탄이 일정하게 계속 보충되는 것은 분명하다. 2~7ppm의 농도를 계속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러블록은 생물이 대기 메탄 농도를 조절하는 것이 틀림없다고 판단 했다. 물론 기체 농도 조절이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질 가능성도 있었다.
지질학적 단서들은 지난 30억 년 동안 우리 행성이 점점 차가워졌음을 시사한다. 한편 천문학자들은 전형적인 항성인 태양이 점점 밝아졌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점차 차가워진 지구의 지표면은 태양의 영향으로 점점 더 뜨겁게 달구어졌어야 옳다. 그래서 러블록은 기온과 대기 조절이 지구 규모에서 일어나야 한다고 추론했다. 이런 중요한 환경 조건들이 적극적으로 조절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뒤, 러블록은 생명이 자신의 환경을 조절한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러블록은 우리 행성 환경이 항상성을 띤다고 지적했다. 항상성은 생리학에서 빌려온 용어다. 포유류가 환경 변화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구라는 계도 기온과 대기 조성을 안정한 상태로 유지한다. 러블록은 공학 용어를 빌려서, 기온이 음의 되먹임을 통해 일정한 수준으로 조절된다고 썼다. "생명이 기온을 최적으로 설정한다."라는 그의 주장은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아예 무시될 때가 더 많았다. 러블록은 행성의 조절 체계가 지구의 생명을 이해하는 핵심이라는 생각에 점점 빠져들 었다.
가이아라는 용어는 "파리 대왕(Lord of the Flies)』의 저자인 소 설가 윌리엄 골딩(William Golding)이 러블록에게 제안한 것이다. 1970년대 초 그들은 둘 다 영국 월트셔의 바우어초크 지방에 살 았다. 러블록은 골딩에게 "지구 대기의 화학적 이상을 감지하여 항상성을 유지하는 경향을 보이는 인공 두뇌 시스템"이라는 거추장스러운 말을 "지구"를 뜻하는 용어로 대체할 수 있을지 물었다. "네 글자라면 딱 좋겠어요." 백악질 언덕들이 펼쳐진 영국남부의 멋진 시골 풍경을 감상하며 산책을 하던 중에, 골딩은 가이아가 어떠냐고 제안했다. '대지의 여신'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인 가이아(gaia)는 지질학(geology), 기하학(geometry), 판게아(Pangaea) 같은 많은 과학 용어들의 어원이기도 하다.
그 용어는 누구에게나 쉽게 와 닿았다. 하지만 환경보호론자들과 종교인들이 힘을 지닌 대지의 여신이라는 개념에 혹해서 그것을 다양한 의미로 쓰기 시작하면서, 가이아는 비과학적인 의미들을 함축한 용어로 변했다. 그래서 1996년 옥스퍼드 학회가 열리기 직전 러블록은 지질학과 생물학이 "단단히 결합된". 즉 긴밀하게 연관된 생물의 몸 같은 행성 표면을 연구하는 분야를 지구 생리학이라고 부르자고 제안하기에 이르렀다.
많은 과학자들은 지금도 가이아라는 말에 반감을 갖고 있다. 그 단어뿐만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개념까지도 말이다. 아마도 반과학적이고 반지성적인 부류의 사람들이 그 용어를 즐겨 쓰기 때문일 것이다. 그 용어는 대중 문화에서 흔히 쓰이고 있는데, 하나의 생물을 일컫는 어머니 지구라는 개념으로 주로 쓰인다. 인간이 헤아릴 수 없는 존재인 살아 있는 여신 가이아는 우리가 그녀의 몸에 환경적 모욕을 가하면 처벌하고, 축복을 내 리면 보답을 한다는 식으로, 지구를 인격화하는 데에 쓰이는 것이다. 나는 이런 인격화를 유감스럽게 여긴다.
행성계에 관한 러블록의 이론을 꼼꼼히 살펴보면, 가이아가 하나의 생물이라는 주장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든 생물은 먹이를 먹거나 광합성을 하거나 화학 합성을 해서 스스로 먹이를 만들어야 한다. 모든 생물은 폐기물을 만든 다. 열역학 제2법칙은 다음과 같이 분명히 말한다. 신체 조직을 유지하려면 에너지를 잃어야 하고, 열로 분산시켜야 한다고 말이다. 어떤 생물도 자신의 폐기물을 먹으며 살지는 않는다. 살아 있는 지구인 가이아는 하나의 생물이나 한 생물 집단을 훨씬 초월한다. 한 생물의 폐기물은 다른 생물의 먹이가 된다. 그러나 가이아 계는 자신의 먹이와 남의 폐기물을 구분하지 않음으로써, 지구 규모에서 물질들을 재순환시킨다. 하나의 계인 가이아는 그 몸을 이루는 1000만 종이 넘는 서로 연결된 끊임없이 활동하는 생물들로부터 출현한다. 이 행성 생명은 허약하지도 심하게 변덕스럽지도 않고, 복원 능력이 아주 강하다. 모든 생물은 의식하지 못한 채 열역학 제2법칙에 복종하면서, 에너지원과 먹이 공급원을 찾는다. 그리고 모두 쓸모 없는 열과 화학 폐기물을 배출한다. 그것은 생물학적 명령이다. 각 생물은 성장하 며, 그 과정에서 주위의 많은 생물들에게 압력을 가한다. 행성 생명의 총합인 가이아는 우리가 환경 조절이라고 말하는 일종의 생리 현상을 보여 준다. 가이아는 많은 생물에서 골라 뽑은 어느 하나의 생물이 아니다. 그것은 생물들, 그들이 사는 둥근 행성, 에너지원인 태양의 상호 작용에서 나온 창발적 특성이다.
게다가 가이아는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던 현상이다. 다투고, 먹고, 짝짓기하고, 배설하는 조 단위의 생물들이 모여 이룬 것이 가이아라는 행성계다. 인간들은 강한 여성인 가이아에게 결코 위협이 될 수 없다. 행성 생명은 털이 없는 짝을 맞이하고 싶은 열망을 지닌 활달한 유인원이 인간성을 꿈꾸기 시작한 때보다 적어도 30억 년 전부터 살고 있었다.
우리는 솔직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인간 종 특유의 오만함을 버려야 한다. 인간이 '선택'되었다는, 다른 모든 생물들이 오로지 인간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 수가 많고, 강하고, 위험하기 때문에 인간이 가장 중요한 종이라는 생각도 잘못된 것이다. 우리가 특별한 혜택을 입은 존재라는 집요한 환상은, 그저 그런 포유류라는 우리의 진정한 지위를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한다.
가이아 개념은 대중 문화에서 혼란스럽게 쓰이면서 신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 가이아는 지구에서 산 지 얼마 안되는 우리 자신에게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열망과 공감대를 형성한다. 가이아는 현대의 청교도주의를 뒷받침하는 것으로 잘못 해석되고 있다. 즉 화창한 지구의 파괴와 '강간'의 위험이라는 여성학적 담론에 동원되고 있다. 자연의 인격화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과학 혐오자들과 언론쟁이들이 가이아 이론을 애용하는 것도 놀 랍다. 전자는 삶의 방식일 뿐인 과학이 기술 과잉을 가져온다고 비난하며, 후자는 과학을 형편없는 텔레비전 방송과 잡지를 판매하는 수단으로 쓴다. 가이아 이론은 이렇게 널리 선전되기도 하고 과장되기도 하고 비난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가이아 이론은 자연을 보존하고 여신에게로 돌아가자는 단순한 이론이 아니다. 가이아는 끊임없이 새 환경과 새 생물을 만들어 내는, 조절이 이루어지는 행성 표면을 가리킨다. 하지만 그 행성은 인간이 아니며, 인간에게 속해 있지도 않다. 인류 문화가 아무리 창 의력을 발휘해도, 이 행성에 버티고 있는 그 생명을 죽일 수 없다. 상호 작용하는 생태계들의 방대한 집합에 더 가까운 가이아적 조절 생리 현상으로서의 지구는 각각의 생물을 초월한다. 인간은 생명의 중심이 아니며, 다른 종들 역시 그렇다. 더구나 인간은 생명에 중요하지도 않다. 우리는 유서 깊은 드넓은 전체에서 최근에야 빠르게 성장한 한 부분에 불과하다.
가이아는 인간에게 악의를 드러내지도 인간을 따로 돌보지도 않는다. 그것은 기온, 산성-알칼리성, 기체 조성 조절 같은 지구 규모의 현상을 일컫는 편리한 이름이다. 가이아는 지표면에서 하나의 거대한 생태계를 구성하는 일련의 상호 작용하는 생태계들이다. 그것이 전부다.
화석 증거들은 30억 년의 역사를 지닌 지구 생명이 세계에 비축된 5,000개의 핵폭탄을 모두 폭발시킨 것에 맞먹거나 그보다 더한 충격들을 무수히 견뎌냈다고 말한다. 생명, 특히 세균은 회복 능력이 강하다. 생명은 출현할 때부터 재난과 파괴를 질리도록 겪었다. 가이아는 생태적 위기를 자신의 구성 요소로 삼아 탁월하게 대처하면서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말을 실천한다.
세균은 처음에는 몸에 필요한 수소(H.)를 공기에서 직접 얻었다. 나중에 그들은 화산에서 나오는 황화수소(H.S)를 이용했다. 그러다가 이윽고 물(H₂O)에서 수소 원자를 떼어낼 수 있는 남색을 띤 시아노박테리아가 등장했다. 그들은 대사 폐기물로 산소를 배출했다. 이 폐기물은 처음에는 재앙이었지만, 결국 생명의 지속적인 성장을 추진하는 동력이 되었다. 새 폐기물은 생 명의 인내력을 시험하고 생명의 창조성을 자극한다. 우리가 숨을 쉬는 데 필요한 산소는 처음에는 독소였다. 지금도 그렇다. 수많은 시아노박테리아에서 배출된 산소는 인간이 빚어낸 그 어떤 환경 파괴 행위보다 훨씬 더 심각한 재앙을 빚어냈다. 오염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쓰레기 버리지 말 것'은 경고이지, 설명이 아니다. 시아노박테리아의 폐기물은 우리의 신선한 공기 가 되었다. 인간은 식물이나 다른 동물을 먹음으로써 필요한 수소를 얻는다. 인간은 먹지 않으면 수소를 얻을 수 없다. 가끔 새로운 생물이 진화하여 남의 에너지, 먹이, 폐기물을 활용하여 급속히 자라고 번식한다. 하지만 집단의 팽창은 반드시 멈추게 마련이다. 자신의 폐기물을 먹거나 들이마시면서 살 수 있는 존재는 없기 때문이다. 집단은 팽창을 막는 장애물과 마주치면 붕괴하거나 서서히 쇠퇴한다. 이런 성장 억제가 바로 찰스 다윈이 말한 '자연선택'이다. 가이아는 집단들의 이런 성장, 상호 작용, 죽음의 총합이다. 서로 다른 수많은 존재들로 이루어진, 다양한 종들이 뒤덮고 있는 행성 표면 가이아는 지구에 있는 유일한 거대 생태계다.
자신을 구성하는 생태계들과 달리, 가이아는 재순환의 천재다. 지구 대기의 약 5분의 1은 산소(0₂)다. 산소는 수소나 수소를 함유한 기체들(CH,, H.S, NH,)과 결합하여, 폭발하고 불을 일으킨다. 에너지를 방출하는 반응은 반응성 기체를 '폐기체', 즉
반응성이 낮은 부산물로 바꾼다. 지구 대기에는 수소, 메탄 (CH.), 암모니아(NH,), 요오드화메틸(CH,J), 염화메틸(CH,CI), 각 종 황 함유 기체들이 함유되어 있다. 반응으로 사라지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생명의 부산물로 계속 생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평생지기이자 옛 제자인 로레인 올렌드젠스키(Lorraine Olendzenski)와 함께 매사추세츠 암허스트 대학교(예전 매사추세츠 농과 대학)에서 한 편의 비디오를 만들었다. 그 비디오에는 10년 넘게 미생물 연구자들을 가르쳐 온 미생물학자인 우리의 놀라운 친구 벳시 블런트 해리스(Betsy Blunt Harris)가 출연한다. 그녀는 건강한 암소의 옆구리에서, 구멍, 이른바 '샛길' 구멍으로 장갑을 낀 손을 집어넣는다. 벳시의 손가락이 반추위에 닿는다. 반추위는 모든 소와 되새김질을 하는 친척 동물들이 갖고 있는 네 개의 위장 중 하나인 아주 커다란 위장이다. 그녀는 샛길을 통해 갈색 섬유질 덩어리를 꺼낸다. 주로 반쯤 소화된 풀이다. 그 덩어리는 미생물로 바글거리기 때문에, 현미경으로 관찰하려면 높은 비율로 희석해야 한다. 소의 미생물 공동체에는 헤엄치는 기이한 세포인 섬모충이 들어 있다. 섬모충보다 더 작은 세균들도 반추위에 많이 살고 있다. 풀을 소화시키는 것은 이런 미생물들이다. 그들이 없으면, 소는 풀의 셀룰로오스를 소화시키지 못한다. 그들이 없으면, 소는 삼키지도 발효시키지도 게워 내지도, 다시 삼키지도 못할 것이다. 미생물 중개자들이 없다면, 어떤 소도 풀을 먹거나 되새김질을 하지 못한다. 풀이 소화될 때 생기는 기체 산물들 중 하나가 바로 매탄이다. 소가 트림을 할 때 대량의 메탄이 나온다. 소의 메탄은 지구의 공기를 대단히 불안정한 화학 물질 혼합물로 만드는 데 기여한다. 나무를 먹는 흰개미도 메탄을 방출한다. 소와 마찬가지로 흰개미의 위장에도 셀룰로오스를 다양한 화학 물질로 분해하는 미생물이 산다. 수많은 흰개미의 항문을 통해 이산화탄소, 메탄, 질소, 황 함유 기체들이 대기로 배출된다. 대기가 불안정한 기체 세계를 장기간 유지하고 있는 까닭은 끊임없는 미생물들의 활동 때문 이다.
러블록은 이런 발견들을 일반화하여 행성의 대기 체계 전체가 '준안정 상태', 즉 반응성을 지닌 불안정한 상태가 지속되 는 상태에 있다고 주장했다. 화학 반응성이 유지되는 것은 생물들의 연합 활동 때문이다. 살아 있는 몸뿐만 아니라 활성이 없는 배경이라고 간주하는 대기를 포함한 행성 표면 전체가 화학 평형 상태에서 멀리 벗어나 있다. 따라서 행성 표면 제가 살아 있다고 보는 편이 가장 낮다.
가이아가 하나의 생물이 아니라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내 가이아는 우리를 부양하는 어머니 지구라는 예스러운 모호한 개념이 결코 아니다. 가이아 가설은 과학이다. 가이아 이론은, 행성의 표면이 제한된 특정한 방식으로 생리학적 계처럼 행동한다고 가정한다. 생리학적으로 통제되는 측면으로는 표면 온도, 산소를 포함한 반응성 기체들의 대기 조성, PH 또는 산성-염기성 등이 있다.
나는 앞으로 과학자들이 건기와 습기의 주기적 변화, 현재의 금, 철, 인 등 광물들의 분포 양상 같은 다양한 현상들을 가이아를 통해 설명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생물학적 의미에서 행성 차원의 통제된 생리 체계를 갖춘 몸을 의미하는 가이아는 통제하기 어려운 과학자 집단과 그들의 연구를, 세계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통합할 수 있는 유일한 명칭이다. 인체가 피부, 온도 차이, 혈액 화학, 인산칼슘 골격 등을 통해 안팎 의 경계가 뚜렷하게 나누어지는 것처럼, 지구도 지속적인 비정상 상태의 대기, 안정한 기온, 독특한 석회암과 화강암 등을 통해 주위 환경과 구분된다. 러블록은 지구 대기의 화학을 해변에 만든 모래성이나 새의 둥지에 비유한다. 그것들도 명백히 생명 의 산물이다. 행성의 표면은 단지 물리학적, 지질학적, 화학적, 지구화학적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지구 생리학적인 것이다. 즉 그것은 끊임없이 상호 작용하는 지구의 생명 집합으로 이루어진 살아 있는 몸의 속성들을 보여 준다.
우리가 대사라고 부르는 생리학적 화학은 생물의 활동에서 비롯된다. 가이아의 화학계들이 서로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는 아직 논란거리다. '약한 가이아는 환경과 생명이 짝을 이루고 있으며 공진화한다고 본다. 반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많은 과학자들은 이 개념이 이미 식상해질 정도로 익숙한 것이 되었다고 말한다. 강한 가이아는 생명을 지닌 행성은 하나의 살아 있는 계이며, 그 생명들이 계의 특정한 측면들을 조 절한다고 말한다. 이 개념은 일부 생물학자들, 특히 스스로를 신다원주의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조소를 받는다. 옥스퍼드 대학교의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를 비롯한 과학자들은 다른 행성계들과의 자연선택을 통해 진화하지 않은 통합된 행
성계라는 개념을 거부한다. 러블록은 오락가락한다는 비난을 받아왔지만, 사실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교의 과학철학자 J 커슈너(J. Kirchner)가 만든 용어인 강한 가이아를 포기했다고 주장한 적은 한 번도 없다. 1988년 미국 지구물리학회 주최의 한 학회에서 커슈너는 강한 가이아를 비꼬면서 조롱했다. 슈 나이더와 보스턴이 편집한 그 학회 보고서를 보면, 커슈너를 비롯한 사람들이 가이아와 그 철학에 강한 반감을 갖고 있다는 것 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러블록은 가이아가 '목적론적'이라는 원래의 개념을 포기했다고 시인한다. 그는 살아 있는 행성 계가 모든 구성원들에 맞게 환경 조건을 최적화한다는 주장을 더 이 상 하지 않는다. 생물 다양성은 가이아가 존속하기 위한 절대적인 필요조건이다. 가장 바람직한 종 목록 같은 것은 없다. 어떤 생물이든 그 일을 할 수 있다. 즉 선택압들, 성장하고 번식하는 모든 생물들에게 가해지는 선택압들은 특정한 조건에서 특정한 종류의 생명을 선호한다. 생물들은 성장하고 팽창하고 폐기물을 제거하고 재순환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다른 생물들에게 엄청난 선택압을 가한다. 그 결과가 바로 가이아다. 생명이 전혀 없다면, 기온과 기체 조성은 물리 요인만으로도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태양의 에너지 출력, 화학과 물리학 법칙들이 지표면의 특성들을 결정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 지표면의 특성은 물리학과 화학만을 토대로 한 예측과 크게 어긋난다. 생물학을 뺀 과학만으로는 지표면 환경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기체를 생산하고 기온을 변화시키는 살아 있는 생물들의 다면적 역할들을 고려해야만 비로소 그 불일치는 사라진다. 따라서 가이아 이론은 유용한 과학이다.
새로운 개념은 비판을 불러일으키게 마련이다. 특히 실험의 재현 가능성 여부가 중시되고 논문을 발표하려면 동료들의 심사를 받도록 제도화되어 있는 과학 분야는 더 그렇다. 가이아 개념은 지질학자들, 지구 화학자들, 대기 화학자들, 심지어 기상학자들에게 자기 분야 이외의 과학까지 이해하도록 요구한다. 그들은 생물학, 특히 미생물학을 연구해야 한다. 하지만 학계의 분리주의는 그런 교류를 막는다. 가이아를 받아들이면, 그 들이 받아들이고 싶어하지 않는 그런 학제간 활동이 잇달아 이루어질 것이다.
가이아에 새로운 내용이라고는 그 이름밖에 없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또 지표면이 살아 있다는 명제가 너무 포괄적이어서 검증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 나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생명을 자연선택을 받는 번식계라고 정의한다면, 가이아는 살아 있다. 정말 그런지 알아보는 가장 쉬운 방법은 단순한 사고 실험을 해 보는 것이다. 미생물, 곰팡이, 동물, 식물을 실은 우주선을 화성으로 보낸다고 상상해 보 자. 그들이 화성에서 자급자족하고 폐기물을 재순환하면서 200년 동안 살아가도록 놔둔다고 하자. 가이아는 전체적으로 볼 때 생명의 재순환 계다. 한 가이아에서 싹이 나와 또 다른 가이아를 만들 수도 있다. 그런 소형 가이아의 형성은 사실상 번식과 마찬가지다. 도리언 세이건의 책 『생물권(Biospheres)』은 그런 사례를 명확히 보여 준다.
가이아 이론에 대한 또 한 가지 비판은 과학자들의 두려움을 보여 준다. 일부 비판가들은 가이아 이론이 어머니 대지에 관한 고대 신앙과 공명하기 때문에 위험할 정도로 비과학적인 방향으로 흐를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들은 의식적인 통제가 없다면 어떠한 행성적 존재도 조화로운 행동을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행성이 대기 산소 농도를 약 20퍼센트로 유지하기 위해 농도를 높이거나 낮추어야 할 시기를 어떻게 알까? 산소 농도는 지구 전체가 불길에 휩싸일 수준보다는 낮고 생물들이 산소 부족으로 죽을 수준보다는 높은 상태에서 요동하고 있다. 가이아는 어떻게 바다에서 염분을 제거하여 염도가 바다 생물들을 위협하는 수준까지 높아지지 않도록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것일까? '그녀'는 어떻게 태양의 밝기 증가를 상쇄시킬 만큼 몸 전체를 식힐 수 있는 것일까? 가이아는 어떻게 기온 변화에 맞춰 바다 구름의 면적을 조절하는 것일까? 가이아란 대체 누구란 말인가?
러블록은 가이아가 행성 환경을 조절하는 데 의식은 전혀 필요 없다고 대답한다. 프랙털 기하학이라는 수학 분야에서 이루어진 최근의 연구들은 완벽한 구상을 담고 있는 화가가 아니라도, 알고리듬이라는 단순한 컴퓨터 명령들을 반복함으로써 정교한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생명은 세포 성장과 번식이라는 화학 주기들을 반복함으로써 비슷한 방식으로 매혹적인 '설계안을 만들어 낸다. 질서는 의식과 무관한 반복 활동을 통해 생성된다. 모든 생명들의 잘 짜인 망인 가이아는 세포, 몸, 사회 등 모든 수준에서 정도의 차이를 보이면서 의식하고 인식하며 살아간다. 고유감각에 비유할 수 있을 법한 가이아의 패턴들은 계획된 것처럼 보이지만,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머리'나 '뇌'가 없어도 나타난다. 자신을 인식한다는 의미의 고유감각은 동물이 진화하기 오래전, 동물의 뇌가 진화하기 오래 전에 이미 진화했다. 식물, 원생생물, 곰팡이, 세균, 동물의 각 지역 환경에 대한 감수성, 인식, 반응은 반복 패턴을 형성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지구적인 감수성과 가이아 '자체'의 반응을 낳는다. 러블록은 동료이자 옛 박사 과정 학생인 앤디 왓슨(Andy Watson)과 함께 '데이지 세계'라는 컴퓨터 모형을 개발했다. 그들은 흰색과 검은색 데이지만 사는 행성이 있다고 가정한다. 그 행성은 우리 태양을 모델로 삼은 항성으로부터 빛을 받는다. 그 항성은 수백만 년에 걸쳐 빛을 뿜고 있다. 가정은 그것뿐이다. 성도 진화도 행성의 의식이라는 신비로운 전제 조건도 전혀 없는 상태에서, 데이지 세계의 데이지들은 태양이 행성을 점점 더 데우고 있음에도 행성을 식힌다.
가정들은 직설적이다. 검은 데이지는 열을 흡수하고 흰데 이지는 열을 반사한다. 섭씨 10도 이하에서는 어떤 꽃도 자라지 않으며, 45도가 넘으면 모두 죽는다. 두 온도 범위 안에서 검은 데이지들은 국지적으로 열을 흡수하므로, 기온이 낮을 때 흰 데이지보다 더 잘 자라는 경향을 보인다. 흰 데이지는 열을 반사하여 더 많은 열을 잃으므로, 기온이 높을 때 더 잘 자라서 더 많은 후손을 퍼뜨린다. 처음에 검은 데이지 세계가 있다고 하자. 햇빛이 강해지면 검은 데이지들은 늘어나서 더 넓은 면적을 잠식하고, 열을 계속 흡수하므로 주위 온도까지 올라간다. 검은 데이지들이 덥히는 지표면의 면적이 넓어짐에 따라, 표면 자체도 더워지면서 데이지가 자랄 수 있는 면적도 더 넓어진다. 이 양의 되먹임으로 검은 데이지들이 계속 늘어나면 주위 온도가 계속 상승하고, 그 결과 거꾸로 흰데이지들이 검은 데이지들을 잠식하기 시작한다. 햇빛을 덜 흡수하고 더 많이 반사하는 흰 데이지들은 행성을 식히기 시작한다. 이런 활동들이 누적되면서 태양이 처음에 진화할 무렵에 더 차가울 때에는 행성 표면이 가열되고, 그 뒤 태양의 밝기가 셀 때에는 행성의 표면이 비교적 차갑게 유지된다. 따라서 태양이 점점 뜨거워져도, 행성은 오랫동안 안정한 기온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데이지 세계는 가이아 과학에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영국 데번에 있는 슈마허 대학의 스테판 하딩 (Stephan Harding) 교수 는 현재 23가지 색깔의 데이지와 데이지를 먹는 초식 동물, 초식동물을 먹는 육식 동물로 구성된 데이지 세계 모형을 만들고 있다. 이 모형들은 특정한 종에 바람직한 것과 행성 전체에 바 람직한 것 사이에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말한다. 한 생물의 개체군 성장은 자체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이 모형들은 자연선택과 행성 기온 조절이 수학적으로 어떻게 겹치는지를 개략적 으로 보여 준다. 행성 기온 조절은 가이아 행동의 전형적인 사례다. 하딩의 모형들은 차등 생존이 지구 수준에서 나타나는 결과들을 유지하거나 더 나아가 확산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생물학자들은 가이아 이론을 받아들이는 데 덜 주저하는 편이다. 온도 조절은 데이지 세계뿐만 아니라 생물의 몸과 집단의 생리 기능 중 하나이기도 하다. 포유류, 다랑어, 앉은부채, 벌집은 자신의 체온이 몇도 범위 안에서 유지되도록 조절 한다. 식물 세포나 벌집의 꿀벌들은 온도를 유지하는 법을 어떻게 '알까? 어떤 답이 나오든 간에, 원칙적으로 다랑어, 앉은부채, 꿀벌, 생쥐 세포는 이 행성 전체에 만연한 똑같은 생리적 조절 양상을 보여 준다.
공생 발생의 전성기에 있는 가이아는 본질적으로 팽창 지향적이고, 미묘하고, 미적이고, 유서 깊고, 절묘한 복원 능력을 지닌다. 소행성 충돌이나 핵폭발도 가이아 자체에는 위협이 되지 못했다. 지금까지 인간이 우월성을 입증하기 위해 쓴 방법은 오직 팽창뿐이다. 우리는 수는 더 많아졌지만, 여전히 뻔뻔하고 형편없고 신참이다. 우리가 강인하다고 하는 것은 망상이다. 인간은 무한히 성장하려는 경향에 저항할 지성과 자제력을 지니고 있을까? 이 행성은 인간이 계속 팽창하도록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고삐 풀린 듯 급격히 증가하는 세균, 메뚜기, 바퀴, 생쥐, 풀의 개체군은 반드시 붕괴한다. 개체수가 늘어남에 따라 자신의 폐기물이 넘치고 먹이 부족이 극심해진다. 그 기회를 틈 타 '다른 종의 개체군들이 팽창한 뒤, 질병이 따라오고, 파괴적 인 행동과 사회 붕괴가 이어진다. 초식 동물들도 위기의 상황이 닥치면 지독한 포식자이자 동족 섭식자가 된다. 소들이 토끼를 사냥하거나 자기 새끼를 잡아먹고, 많은 포유류가 한 배에서 나온 몸집 작은 형제자매의 고기를 놓고 각축을 벌일 것이다. 과잉 성장한 집단은 스트레스를 받고, 스트레스는 과잉 성장한 집단을 쇠약하게 한다. 이것은 가이아 조절 주기의 한 예다.
인간은 이 행성의 동료들과 전혀 다르지 않다. 인간은 자연을 끝장낼 수 없다. 인간은 오직 스스로에게만 위협을 가할 수 있을 뿐이다. 인간이 원자력 발전소의 온수조나 열수 배출구에 번성하는 세균들을 비롯한 모든 생물을 없앨 수 있다는 말은 듣기만 해도 우스꽝스럽다. 나는 인간이 아닌 생명의 동료들이 코 웃음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당신들을 만나기 전에 당신들 없이도 잘 지내 왔으니까, 지금 당신들이 없어져도 잘 지낼 거야." 그들은 멋진 화음으로 그렇게 우리를 향해 합창한다. 그들 대부분, 즉 미생물, 고래, 곤충, 종자식물, 새 등은 지금도 노래하고 있다. 열대 숲의 나무들은 평소처럼 자라는 일에 매진할 수 있도록 인간이 오만한 벌목을 끝내기를 기다리면서 자기들 끼리 콧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리고 인간이 사라지고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도 불협화음과 화음을 적절히 섞어 가면서 계속 노래 부를 것이다. 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