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과 사회의 이분법을 넘어서_믿음의 정치학
8장. 믿음의 정치학
1.개인과 사회의 이분법을 넘어서
o 상즉과 상입
불교를 저극적으로 수용하는 해체론에 대한 비판 : 사회적인 실천성이 결여되어 있다.
: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의 문제를 개별적인 회심(심리치유의 문제)으로 만 봄. 중산층 중심의 아카데미의 외부에 있는 열악한 조건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의미있는 실천이 되지 못함.
-> 개인/사회, 현실/현실에 대한 인식을 분리해서 보는 관점에서 비롯됨.
불교적 관점, 현실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그 자체가 곧 현실을 바꾸는 일이다. '일즉다 다즉일' '일체유심조'
상식적인 삶의 경혐 : 현실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한 나의 생각들과, 실제 사건 그 자체는 결코 같은 것이 아니다.
-> 불교적 관점, 해체되어야 할 가장 중요한 이분법은 자기 자신(내부)와 나머지 세상(외부) 사이의 이분법이다.
앞의 중론, 인식과 인식대상은 연기적 관계, 상호의존적으로 성립함으로써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 -> 눈-보이는 대상, 모두 공하다.
-> 개인과 사회에 대한 이분법적인 사유는 쉽게 사라지지 않아. 왜나하면 나에게 주관성이 경험되듯이 다른 사람에게도 저마다의 주관성이 있음을 믿지 않을 수 없다.
개인과 사회, 부분과 전체 -> 상즉, 상입, 사사무애
상즉 : 색즉시공 공즉시색(체-용)
상입 : 서로 걸림이 없이 융섭하는 것, 전 우주가 하나의 존재를 있게하고 하나의 존재가 전 우주를 있게 한다.
사사무애 : 현상과 현상이 걸림이 없음. 모든 것이 공하기 때문에 가능함. 예. 정보통신기술의 편재성, 타심통, 텔레파시(사람의 의식의 편재성)
인드라망 그물에 달린 구술. 서로를 반사해 각각의 구슬의 표면에는 다른 모든 구슬들이 나타나 있어 -> 한 구슬에 검은 점을 찍으면 그 와 동시에 다른 모든 구슬에도 검은 점이 나타남.
호킨스, 한 사람이 동굴에 홀로 않아 있어도 그의 생각은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다.
세상과 무관한 내 마음 속의 나만의 생각들 이라는 것이 착각임을 시사함.
의식의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은 사실상 구분되지 않는다.
생각은 곧 에너지이다. 이 에너지는 마치 나비효과처럼 온 세상에 영향을 미침.
나의 생각이 나의 <외부>에 있는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타자들'은 나의 구슬/거울이 비춰진 모습으로 나타난, 내 마음 속에 있는 타자들이다. 각자의 구슬/거울은 이미 그 자체가 전체이지 전체의 표상이나 재현이 아닌 것. 구슬(마음)밖의 인드라망(세상)이 없다.
화엄의 철학, 우주의 모든 것은 거울이자 동시에 상이다. 그것은 만물을 반사하므로 거울이고, 동시에 다른 모든 것에 의해 반사되므로 상이다.
나는 너를 비추는 거울이면서 동시에 너에 의해 만들어 진 상이고, 너는 나를 비추는 거울이면서 동시에 나에 의해 만들어진 상이다. 중중무진법계연기, 한 티끌도 전 우주를 포함한다(일미진중함시방)
o 개인과 사회는 일중일체
나라는 개인의 마음(구슬/거울) 속에는 부모도 있고 사회도 있고 불합리한 제도들이 모두 들어있다. 인식되고 있기 때문에 '들어있다'고 할 수 있다.
중론의 원인과 결과의 관계로 해석해보면, 가부장적인 사회(원인)이 먼저 있었고, 그 속에서 여성적인 여자(결과)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나라는 여성(개인)은 자신의 여성성을 포함해 이러한 성역할 규범을 생산하고 있는 가부장적인 사회를 마음 구슬에 거울처럼 담아내고 있다. 그리고 이 거울 밖의 거울은 없다. -> 개인(결과)는 사회(원인)에 의해 만들어진 개인이지만, 사회(원인)을 마음 구슬에 존재하게 하는 개인(결과)이기도 함.
온 세상이 내 마음에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떤 함의를 갖는 것인가?
. 개인과 사회도 불이적 관계.
. 수행(가족을 대상으로 한 인욕바라밀)을 통해 개인적 관계는 변화시킬 수 있지만 사회적 구조는 변화사킬 수 없다고 해야 할까? 구조환원론
. 피해자와 가해자의 단순 이분법을 넘어선다는 것은 이들이 소수의 한두 사람일 대에만 가능한 일인가? 피해자 수가 늘어나는 순간 피해자들은 연대를 통해 다시 싸워야만 하는가?
. 연대에 반대하고 순응을 하자는 이야기가 아님. 인식론적 고민의 차원에서 이 상황을 성찰해보자는 것.
. 인욕바라밀, 상대에게서 문제의 원인을 찾는 관점과는 다른 수행자적 과점을 의미함. 수행자적 태도란 대상을 객관적 실재로서 분리해서 보는 사유방식을 넘어서는 일, 원인이 나의 외부에 있지 않다고 볼 때에 가능해지는 관점임. 동일한 사유방식이 집단적인 차원에서도 적용될 수는 없는가?
. 싱체론적 이분법적 관점 : 여성불자들의 불평등한 현실을 가부장적인 관행(외부)으로 설명하는 것, 문제의 원인을 여성 불자들(주체)에게서 찾는 일 모두.
. 가부장제라는 실체가 따로 있지 않다는 점. 비록 가부장제가 특정 스님의언어와 행위, 제도로 나타난다 할지라도 그것은 어쟀거나 그것을 받아들이는 주체(여성불자)에 의해 인식되고 해석된 상(언어/행위/제도)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해석 작용은 다른 여성 주체들에 의해 끝없이 연기적으로 이어저 있다는 사실이다.(중중무진연기법계)
-> 가부장제를 비난하는 일은 허공에 망치를 두드리는 일 처럼 실체가 없는 대상에 대한 공격임.
-> 어떤 노력도 무의미하다가 아님. 점 하나를 찍은 일, 즉 해석을 특정 방식으로 하는 일 자체가 전체적인 양상에 어떻게 무한히 반사되는지를 알 수 있음.
-> 사회적 구조와 직면할 때의 무력감 -> '점 하나 찍는 일'이 무한한 파급효과를 지닌다는 사실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게 됨.
=> 비슷한 문제의식을 느끼는 사람들끼리 해결을 위한 고민을 공유하고 연대의식을 갖는 일은 변화의 가능성을 마음 속에서 '창조'하는 일(즉 점 하나를 찍는 일)이라는 점에서 참으로 중요하다. 객관적 실재를 전제로 하는 입장에서가 아니라 마음의 연기적 측면과 상호투영성을 전제로 할 때라야 실효성을 지닐 것.
* 불교적 관점에서 바람직한 연대의식 :
공통의 피해의식에 기반한 정체성의 정치학의 표현이 아니라, 상입과 일중일체와 무진연깅 기반한 <믿음의 정치학>의 표현임.
. 밖에서 안으로 인식의 초점이 이동한다. 문제를 객관적 실재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자신의 <인식행위>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으로 즉 자신과 연기적으로 함께 발생하고 함께 소멸할 수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는 점에서 변화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믿으면서 출발하는 것. -> 믿음의 창조학
창조, 상상력 + 믿음, 마음내기의 원리를 집단적 차원에서 적용함.
마음에서 먼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결코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다. 마음이 국토(현실)이고 마음 밖의 세상이 따로 없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