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구.제법부동본래적(諸法不動本來寂)
2. 모든 법은 움직이지 않고 본래 고요하니(제법부동본래적)(諸法不動本來寂)
생멸.동정을 전체적으로 사는 것,
다시 말하면 제한된 시공을 좇는 업상을 떠난 것이
고요한 삶입니다. 법성으로 원융하게
사는 것이 움직이지 않는 본디 고요함입니다.
이는 수행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지금 여기에서의 우리들의 본래 모습입니다.
(법계의 노래)
모든 법은 우주 법계 그 자체가 되어
변하고 또 변하면서도
움직임이 없고 고요하고도 고요한 흐름
움직임 하나 하나가 그 자체로
온생명의 흐름이 되어서지요.
그러므로 만남마다 열려있는
빈 마음으로 알아차릴 때
모든 어울림이
평화로움을 나투는 하나 된 삶이니
흔들림 없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
법계의 움직임 없는 고요함을 드러내는 것
마음이 대상에 흔들리는 것은
현재를 잃고 과거에 묻혀
어두운 미래를 만드나
욕망으로 가득한 잃어버린 현재가
시시때때로 불만족을 만들어
흐름을 흐름대로 보게도 하니
통찰력이 살아나
모든 만남에서 평안한 흐름이 될 때
마음 그 자체는 모습을 갖지 않고
고요하게 아는 것만으로 함께 하니
마음 마음이 곧
깨달음의 나툼인
본래 고요함
(해설)
"무아, 무상의 연기법"
마음과 대상은 나눌 수 없는 하나로, 대상은 마음에 따라서 있게 되며 마음은 대상에 따라서 인식 작용을 합니다. 이때는 마음이 대상 전체를 껴안고 있으며 대상도 마음을 껴안고 있습니다. 단지 그 닿이점에서 마음은 마음으로 대상은 대상으로 나투고 있을 뿐입니다. 여기에서 상즉과 상입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작용면에서 마음은 자기를 나툴 때 반드시 대상 인식을 통합니다. 이럴때 마음은 대상 속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또 대상은 마음에다 자기 형상을 비춰서 무엇인가를 알게 합니다. 이때에는 대상이 마음 속에 들어가 있습니다. 이와 같은 관계가 상입입니다.
그리고 마음이 전체를 나타내고 대상이 전체를 나타내는 면에서 보면 마음 그대로가 대상이며 대상 그대로가 마음인 것, 곧 마음이 대상 속에서 대상이 되고 대상이 마음 속에서 마음으로 되는 것을 상즉이라고 합니다. 96
마음과 대상의 관계뿐만 아니라 모든 사물들의 상관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낱낱의 사물은 그 속에 모든 기운을 받아 제 모습을 나투면서 스스로도 온 힘을 다해 제 기운을 이웃에게 보내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으 상즉상입으로 한 법계를 살아가는 것을 연기법이라고도 하고 대다라니라고도 합니다. 상즉상입이 되어 있는 연기법계에서 모든 법은 자기 모습이면서 상대의 모습으로 함께 삶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연기의 대다라니법을 나타내는 함축된 말이 삼법인입니다.
제행무상, 제법무아는 제한된 시공을 초월해 있는 우리 삶을 나타내며 그곳에서의 온갖 시비분별을 떠난 적정한 삶을 열반적정이라고 합니다.
인연의 만남에 의한 삶을 살고 있는 우리들은 잠깐이라도 결정된 자기 모습을 갖지않고 끊임없이 변하고 있으니 이를 무아, 무상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무상의 궁극, 곧 변화의 끝은 시공의 길이를 갖지 않는 것, 내포와 외연이 없는 것, 변화 그 자체가 시공의 제한을 벗어나 있는 것으로 진여공성이며 열반적정입니다.
잠깐이라도 고정된 시공으로 자취를 남기지 않는 무아, 무상의 연기법이야말로 진정한 변화이며 움직임이며, 이 변화가 열반입니다.
여기에서 보면 무상과 불변, 부동과 동은 손바닥의 앞뒤와 같은 것이 아니라 완전히 같은 모습이 되고 있습니다. 때문에 무상과 적정, 무아와 해탈은 모순처럼 보이지만 삶의 진실한 모습인 연기실상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97
무아, 무상의 본디 모습에서 보면 모든 법이 움직임이 없는 본디 고요함입니다.
여기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말을 쓰고 있지만 이는 움직임과 상대하여 움직이지 않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미 움직임과 고요함을 전체로 담고 있으면서 움직임과 고요함을 나타내고 있는 근본 모습을 부동이라고 부를 뿐입니다.
시공 속의 움직임만을 무상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부동부정의 무상한 모습이 고요한 우리이며,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입니다. 따라서 마음을 고요히 한다고 하는 말은 움직이는 마음을 고요함으로 돌이키게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동상과 정상, 즉 상을 좇는 것이 움직이는 마음이며 이 상이 없는 마음이 고요한 마음입니다. 그래서 움직임을 그쳐 고요함 속에 들어가려고 하는 것이 더 큰 움직임이라고 <신심명>에서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98
생멸.동정을 전체적으로 사는 것, 다시 말하면 제한된 시공을 좇는 업상을 떠난 것이 고요한 삶입니다. 법성으로 원융하게 사는 것이 부동이며 본디 고요함입니다. 이는 수행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지금 여기에서의 우리들의 본디 모습입니다. 만일 수행을 통해서 얻어진다면 새롭게 생기는 것이지 본디가 아닙니다. 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