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적을 수록 풍요롭다

백_일홍 2022. 7. 29. 18:25

적을 수록 풍요롭다 _ 지구를 구하는 탈성장

 

제이슨 히켈



들어가며
인류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2018 푸에르토리코 엘 윤케 열대우림의 곤충에 관한 연구 결과, 36년간 정글 중심부에서도 곤충의 생물양이 98퍼센트 감소함.
더욱 심각한 문제는 곤충 숫자의 감소로 인해 곤충을 먹이로 삼아 의존하는 광범위한 종의 감소가 일어났다는 것. 시스템 전체가 와해되는 것처럼 보인다.

정글의 중심부를 공격하는 이런 재앙의 원인은 무엇일까? 과학자들은 기후변화를 그 원인으로 지적했다. 푸에르토리코의 열대우림은 산업혁명 이전보다 약 2도 더 더워졌다. ...세계의 평균 기온은 지금까지 1도 상승했다. 2도에 가까이 가기 시작하면 모든 곳의 곤충 개체가 사라지기 시작할 수 있다. 엘 윤케 삼림에서 죽어가는 나비들은 석탄 광산의 카나리아와 같다.

이 책은 종말이 아닌 희망에 관한 책이다. 우리가 지배와 주출중심으로 조직된 경제로부터 생명세계와의 상호 의존 관계에 뿌리 내린 경제로 전환할 수 있는 방법을 다룬다.

생태 위기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정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은 다양하고 상호 의존적인 시스템, 인간이 기본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시스템의 붕괴다. 27

대멸종 시대에 살아가기

전세계 농지의 5분의 1에서 작물 수획량이 줄어들고 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앞으로 지구에서 농작물을 수확할 수 있는 기간이 60년밖에 안될 수 도 있다고 경고한다.

세계 어족 자원의 85퍼센트가 현재 고갈되거나 붕괴에 직면해 있음을 보여준다. 2048년이 되면 아시아 태평양에서 어업 산출량은 0이 될 상황이다. 29

바다 역시 기후변화의 영향을 받고 있다. 바다는 지구온난화로 생성된 열의 90퍼센트 이상을 흡수한다. 바닷물이 뜨거워지고 양분 순환이 파괴되었으며 먹이사슬이 끊어지고 거대한 해양 서식지가 사라지고 있다. 탄소배출은 바다를 더 산성으로 만든다.

우리는 지구 역사에서 여섯번째 대멸종이자, 인간의 경제활동에 의해서는 처음으로 발생하는 대멸종을 향해 몽유병 환자처럼 걸어가고 있다. 31

지금까지는 산업혁명 이전 대비 겨우 1도 상승을 돌파했다. 현재 경로대로 간다면 우리는 금세기 말까지 4도 상승하는 길을 따르게 된다. 자발적으고 구속력 없는 파리기후협정에 따라 국가들이 약속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고려하더라도 세계 기온은 여전히 3.3도 상승살 것이다. 기온 상승은 점진적인 변화가 아니다. 인간은 이러한 행성에서 살아본 적이 없다.

과학자들은 어림잡아서 우리가 지구를 1도 높일 때마다 주요곡물 수확량이 10퍼센트까지 감소할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현재 경로로 간다면 이는 금세기에 최대 30퍼센트가 감소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도의 밀, 미국의 옥수수는 60퍼센트까지 감소할 수 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IPCC에 따르면, 2도 이상의 온난화는 "전세계적으로 지속적인 식량 공급의 붕괴"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37

티핑포인트와 되먹임 고리

극지방의 만년설, 알베도 효과(얼음은 태양에서 오는 빛을 우주로 튕겨내는 거대한 반사경 기능을 함)

삼림.
지구가 더워지면 숲은 더 건조해지고 불에 더 취약해진다. 숲이 불에 타면서 탄소를 대기 중으로 방출하고 우리는 미래의 탄소 흡수원인 숲을 잃게 된다. 이는 지구 온난화를 악화시키는 동시에 강수량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숲은 말 그대로 비를 만들어낸다. 수증기를 대기 중으로 증발시킴으로써. 39

우리가 기온을 2도 높인다면 통제되지 않고 폭포처럼 밀어닥치는 온난화를 촉발할 수 있고, 지구를 영구적인 '온실 상태' 속으로 밀어넗을 수도 있다. 그러면 기온이 목표 임계점을 넘어서 치솟을 수 있는데, 우리에게는 이것을 막을 힘이 전혀 없다. 이러한 위험을 고려해보면 유일한 이성적인 대응은 온난화를 1.5도 이하로 유지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일을 하는 것이다. 이는 세계 온실가스 배출을 0으로 감축하는 것, 현재 계획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빨리 감축하는 것을 의미한다. 41

우리는 인류 문명 자체가 위험에 처해있다는 사실을 거의 반세기 동안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생태계 붕괴를 저지하는 데 진전이 없었다. 아무런 진전도 없었다. 놀라운 역설이다. 미래 세대가 우리를 돌아본다면, 우리가 무슨 일이 있어났는지 정확하고 고통스러울 만큼 자세하게 알고 있으면서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데 놀아워할 것이다.

관성을 어떻게 성명해야 할까?
화석연료 기업, ....
이것만으로는 우리의 행동 실패를 설명하지 못한다. 다른 것, 더 심층적인 것이 있다. 지난 수세기 동안 사실상 지구 전체를 지배해온 경제체제, 즉 자본주의다.

자본주의에 관한 명확한 시각을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시장, 교환 등으로 자본주의를 설명하려 한다. 시장과 교환은 자본주의 이전에도 수천년간 존재했고, 그 자체로는 해가 되지 않는다. 자본주의가 역사상 다른 대다수 경제 시스템과 구별되는 지점은 지속적인 팽창 또는 '성장'이라는 정언명령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하에서 세계 GDP는 매년 적어도 2퍼센트 내지 3퍼센트까지 성장해야 한다. 대기업들이 총수익의 증가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수치다. 이 수치는 작은 증가처럼 보이지만 기하급수적인 곡선임. 3퍼센트 성장은 23년마다 세계경제 규모를 두배로 늘린다는 것이며, 그리고 계속해서 이미 두배가 된 상태를 다시 두배로 늘리는 것을 의미한다. 46

인간들이 모두 동등하게 생태 위기를 초래하는 것은 아니다. 대다수가 남반구에 위치한 저소득 국가들은 지구의 위험 한계선 안쪽, 그들이 지켜야 할 선 안에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오히려 많은 저소득 국가들은 인간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에너지와 자원 사용을 늘려야 한다. 문제가 되는 것은 고소득 국가다. 고소득 국가들은 성장이 필요의 개념에서 완전히 벗어나 인간의 번영에 필요한 수준을 상당히 초과한 지 오래다.

지구 생태계 붕괴는 거의 전적으로 고소득 국가의 과도한 성장과 특히 매우 부유한 사람들의 과도한 축적에 따른 것, 반면 그로 인한 결과는 불균형하게 남반구와 가난한 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쳤다. 기후위기는 불평등의 위기다. 47

10년 안에 전세계 탄소배출량을 절반으로 줄이고 2050년 전까지 제로가 되게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세계 평균 목표치다. 고소득국가는 더 신속하게 더 많이 줄여서 2030년 전에 제로에 도달해야 한다. 48

자본주의는 근본적으로 성장에 의존한다. 경제가 성장하지 않으면 경제는 침체되어 무너진다. 빚이 쌓이고, 사람들은 일자리와 집을 잃고, 삶은 산산히 부서진다. 정부는 위기를 피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함으로서 산업활동을 계속 성장시키도록 안간힘을 쓴다. 우리는 덧에 갇혔다. 성장은 구조적인 명령이고 철칙이다. 그리고 성장은 견고한 이념적 지지를 받고 있다. 성장주의는 현대사에서 가장 패권적인 이데올로기 중 하나다. 아무도 그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49

인지부조화,
기후붕괴를 한탄하던 바로 그 정치인들은 또한 매년 충실하게 더 많은 산업 성장을 요구한다.

녹색성장,
기술과 혁신에 의해 효율성을 개선하면 GDP가 생태적 영향을 초래하지 않을 수 있기에 자본주의의 어떤 것과 바꾸지 않은 채 세계경제를 계속해서 영원히 성장하게 할 수 있다는 환상.

성장지향적 경제하에서는, 생태적 영향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었을 효율성 개선을 성장 목표를 앞당기고, 채굴과 생산의 순환에 더 많은 자연을 밀어넣는 데 이용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성장이다. 51

탈성장.

성장에서 벗어나는 것은 생각만큼 과격하지 않다. 수십년간 우리는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려면 성장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어왔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밝혀졌다. 고소득 국가가 오래전에 넘어선 특정 지점을 지나면 GDP와 좋은 삶의 관계는 완전히 무너진다. 중요한 것은 성장이 아니라 어떻게 소득과 자원을 배분되는가이다. 현재 소득과 자원은 매우 불평등하게 분배되고 있다. 이런 걸 생각해보자, 가장 부유한 1퍼센트가 매년 19조달러를 가져가는데 이는 GDP의 4분의 1에 해당한다. 우리가 한 모든 노동과 우리가 추출한 모든 자원와 우리가 배출한 모든 이산화탄소 중 4분의 1이 부유한 이들을 더 부유하게 만드는 과정에서 이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57

나는 탈성장이란 GDP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물론 불필요한 추출과 생산을 줄이는 것은 GDP가 더 느리게 성장하거나 성장을 멈추거나 혹은 감소하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내가 요구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그것은 전적으로 다른 경제, 애당초 성장이 필요 없는 경제로의 전환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채 제도부터 은행 제도에 이르는 모든 것을 재고해야 한다. 또한 사람, 기업, 국가, 심지어 혁신 자체를 반드시 성장해야 한다는 숨 막히는 압박으로부터 해방시켜 자유롭게 더 높은 목표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포스트 자본주의 경제를 만들 수 있다. 59

이원론적 존재론과 애니미즘

20세기 환경주의가 갖고 있던 칙칙하고 오래된 이미지를 뒤엎는다. 환경운동가들은 때로 '한계'나 '절제', 개인적 청교도주의의 관점에서 말하려는 경향이 있다. ... 한계라는 개념은 자연이 '저 밖'에 있고, 우리와는 분리되어 있으며, 우리를 가두고 있는 강경한 힘과 같다고 전제한다. 이러한 사유방식은 처음부터 우리를 곤경에 빠뜨리는 이분법적 존재론에서 나온다. 내가 여기서 요구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한계가 아니라 상호 관계성에 관한 것, 다른 존재와의 근본적인 친밀함을 회복하는 것이다. 청교도주의가 아니라 기쁨, 공생공락, 즐거움에 관한 것이다. '절제'가 아니라 거대함에 관한, 인간 공동체의 경계를 확장하고 우리 언어의 경계를 확장하고 우리 의식의 경계를 확장하는 것이다. 64

 

 

1부 많을 수록 빈곤하다.

 

1장. 자본주의: 탄생 이야기

 

인류세가 아니라 자본세다. 70

 

자본주의의 특징은 시장이 아니라 지속적인 성장 추구다. 자본주의는 확실히 역사상 처음으로 등장한, 본질적인 팽창주의적인 경제 시스템이다.

 

자본주의는 그냥 '출현'한게 아니다. 자본주의로 원할하고 자연스럽게 '이행'한 것이 아니며, 인간의 본성과도 아무런 관계가 없다. 

 

잊힌 혁명

 

잉글랜드에서는 1381 봉기 이후 농노제가 거의 근절되었다. 농노는 자유농민이 되었고,  자신이 소유한 땅에서 살게 되었으며, 방목을 위한 목초지, 사냥과 벌체를 위한 숲, 낚시와 관개를 위한 수로와 같은 커먼즈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역사가들은 1350-1500년까지의 기간을 '유럽 프롤레타리아의 황금기'라고 표현한다. 

 

이 시기는 유럽 생태 환경의 황금기이기도 했다. 봉건주의 체제는 생태적 재난의 시기였다. 영주는 농노에게 아무런 대가도 주지 않고 토지와 숲을 수탈하라고 압박했다. 이는 산림 파괴, 과도한 방복, 토양 비옥도의 점진적인 감소 등 위기를 초래했다. 토지를 직접 장악하면서, 자유농민들은 자연과 더욱 호혜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75

 

백래시

1350년부터 1500년까지 혁명기 동안 지배층은 역사학자들이 '만성적인 비축적'의 위기라고 부르는 고통을 겪었다. 국민소득이 인구 전체에 고르게 나누어지면서 지배층이 봉건제하에서 누렸던 이윤축적이 더 어려워졌다. 이는 중요한 지점이다. 우리는 종종 자본주의가 봉건제의 붕괴로부터 어느 정도 자연스럽게 출현했다고 가정한다. 사실 그러한 이행은 불가능하다. 자본주의는 지배층의 축적을 필요로 한다. 

 

귀족, 교회, 상인 부르주아지가 농민의 자유성을 박탈하고, 임금을 낮추기 위해 조직적으로 결합했다. 그들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이미 입증된 농민의 재농노화 방식을 이용하지 않았다. 대신 농민들을 그들의 땅에서 폭력적으로몰아냈다. 농촌 공동체가 지속가능성을 위해서 공동으로 관리하던 목초지, 숲, 강에 울타리를 치고 사유화했다. 77

 

300년에 걸쳐 영국과 그외 유럽의 광대한 땅에 울타리가 처졌고, 수백만의 사람들이 쫓겨났다. 

 

선행 축적은 순수한 저축이 과정이 아니었다. 약탈의 과정이었다. 칼 마르크스는 축적이 수반하고 있는 폭력의 야만적 본질을 강조하기 위해 선행 축적을 '본원적 축적'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79

 

식민주의 수탈을 통한 성장

 

1492년 이후 수십년간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을 식민지화하기 시작했을 때, 그들을 움직인 것은 우리가 학교 교과서에서 보았던 '탐험'과 '발견'의 낭만이 아니었다. 식민지화는 유럽에서 일어난 농민혁명으로 인해 지배층이 비축적의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었따. 요컨대 '해결책'이었다. 

 

지배층은 유럽에서 인클로저를 주도했던 것 처럼 해외에서 새로운 개척지를 찾았다. 이 두 과정은 동시에 전개되었다. 1525년 독일 귀족들이 농민 10만명을 학살한 바로 그해에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1세가 에르난 코르테스에게 왕국 최고의 영예를 수여했다. 코르테스는 그의 군대가 멕시코를 행진할 때 선주민 10만명을 살해하고 아즈텍의 수도 테노치티틀란을 파되한 정복자다. 83

 

인위적 희소성의 역설

 

경쟁 논리를 토지와 농업에 적용함으로써 인간의 역사는 근본적인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이는 생산성 증대와 생산량 극대화라는 정언명령이 처음으로 사람들의 삶을 지배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영국의 토지소유자자이자 철학자, 존 로크,

인클로저가 공유지와 평민들에게서 도둑질해간 과정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했지만 이러한 도둑질이 농업 생산물을 증가시킨 집약적 상업 방식으로의 변화를 가능하게 했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정당하다고 주장함. 90

 

자본주의를 특징짓는 엄청난 생산력의 발생이 인위적 희소성의 상태를 만들어내고 유지하는 데 달려 있다는 것, 이것이 요점. 희소성과 굶주림의 위협은 자본가의 성장 동력으로 작용했다. 지배층의 축적이라는 바로 그 과정에서 희소성이 조장되었다. 희소성은 국가 폭력으로 강제되었고 농민들이 땅으로부터 자신들을 차단하는 장애물을 제거하려고 용기를 낼 때마다 정부는 그들을 학살했다. 91

 

자본주의 지지자들은 성장을 만들기 이해서는 사람들을 가난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고 믿었다. 

 

이례적인 물질 생산성을 창출하는 체제인 자본주의의 역사가 엄청난 기근, 수세기에 걸친 궁핍화와 같은 희소성을 지속적으로 조성함으로써 이루어졌다는 것이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사적인 부와 공공의 부(공유지) 사이 반대 관계.

전자는 후자의 비용을 치른 후에야 증가할 수 있다. 

 

더 부족할 수록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로부터 더 많은 돈을 빼앗을 수 있다. 물처럼 풍부한 자원을 차단하고 독점권을 얻으면, 사람들에게 사용료를 부과할 수 있으므로 사적인 부가 증가한다. 동시에 오늘날 GDP라고 부르는 것을 증가시킬 것이다. 그러나 이는 한때 풍부하고 자유로운 이용이 가능했던 것에 대한 접근권을 빼앗아야만 달성될 수 있다. 사적인 부는 증가하지만 공공의 부는 감소한다. 

 

거대한 분리

 

제국의 등장으로 애니미즘적 존재론이 공격을 받으면서 사람들은 점점 세상을 둘로 갈라진 것으로 보게 되었다. 그중 하나는 다른 피조물로부터 분리되어 그 위에 존재하는 신의 영적인 영역이다. 새로운 질서에서 인간은 특권을 지닌 자리를 차지했다. 스스로를 신의 이미지로 만들어 나머지 피조물을 지배할 권리를 가졌다. 이러한 사상, 즉 '지배권'의 원리는 주요 유라시아 문명에 걸쳐 중국의 유교, 인도의 힌두교,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 레반트의 유대교, 그리스의 궤변학파와 같은 초월 

철학과 종교가 시작된 축의 시대동안 더욱 강고해졌다. 

 

창세기

 

기원전 5세기 플라톤 철학

실제로 교회와 함께 유럽 전역으로 확대된 기독교 로마제국은 플라톤의 견해를 강력하게 지지했다. 그리고 그것은 콘펨프투스 문디 즉 '세계에 대한 경멸'의 교리로 공인되었다. 101

 

1500년대 유럽 사회에는 애니미즘 사상의 놀라운 복원을 우려해서 이를 파괴하기 시작한 두 개의 강력한 분파가 있었다. 

1. 교회. 

성직자들은 영혼이 물질세계에 퍼져 있다는 개념이, 신의 유일한 전달자이자 신성한 권력의 합법적인 대리자라는 자신들의 자격을 위협한다고 느꼈다. 이것은 사제들 그리고 본질적으로 사제들의 지지에 의존했던 왕과 귀족에게도 문제였다. 애니미즘 사상은 체제전복적인 함의가 가득하기에 격파되어야 했다. 영혼이 어디에나 있으면 신은 없다. 신이 없다면 사제와 왕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한 세계에서 왕의 신권은 일관성을 잃게 된다. 

 

2.자본가들

1500년 이후 득세하기 시작한 새로운 경제 시스템은 토지, 토양, 지표면 아래 광물과의 새로운 관계를 필요로 했다. 그런 관계 중 하나는 소유, 추출, 상업화, 끊임없이 증가하는 생산성에 토대를 둠. 어떳을 것을 소유하고 추출하려면 그것을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103 

 

자본가들은 '근대과학의 아버지'로 칭송받는 프랜시스 베이컨에게서 첫번째 답을 발견했다. 

베이컨은 생명세계라는 개념을 없애고 그 자리를 자연에 대한 추출을 인정하고 고무하는 새로운 윤리로 대체했다. .이 목적을 위해 그는 자연을 여성으로 보았던 고대의 이론을 가져와 양육하는 어머니 자연을 '공공의 창녀'로 바꾸어 불렀다. 

 

베이컨은 여기서 고문이라는 단어를 은유로 사용했는데, 이는 그가 제임스 1세 통치 시기에 법률 자문을 맡는 동안 본인이 실제로 당시 농민반란군과 이단에게 고문을 가했으며, 국가를 방어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고문 관행을 정당화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을 드러낸다. 베이컨은 고문을 농민반란에 대항하는 무기로 보았듯이, 과학 역시 자연에 대항하는 무기로 보았다. 106

 

자연을 기계로 보는 시각이 일관된 철학으로 공식화된 것은 르네 데카르트에 의해서다. 

정신과 물질이 근본적으로 양분되어 있으며, 인간이 정신(또는 영혼)을 가지고 있기에 모든 생명체들 중 가장 특별하다고 주장했다. 정신은 인간이 신과 연결되어 있다는 표시이기 때문. 반면 나머지 피조물은 생각 없는 물질에 불과하다. 동식물에는 영혼이나 섭리, 의도나 동기가 없다. 자동화된 기계에 불과하다. 107

 

'원료'가 된 몸

 

1531년 영국의 헨리 8세는 '게으름'을 만악의 어머니이자 원천이라고 말하면서 부랑자들을 묶고 때려 '강제로 일하도록' 명령한 최초의 부랑자법을 통과시킴. 재범의 경우 사형. 

 

지배층은 사람들을 때려서 유순하고 순종적이며 생산적인 노동자로만들어야 했다. 

 

데카르트, 새로운 시스템에서 대상화된 것은 자연만이 아니었다. 신체 역시 대상회되었다. 신체는 자연의 일부로 재조명되었다. 신체는 자연과 마찬가지로 짐승 같은 물질이고, 신체의 기능은 기계의 기능과 같다. 

 

1600년대 동안 데카르트의 관점은 몸을 통제하고 몸의 열정과 욕망을 부수고, 몸에 규칙적이고 생산적인 질서를 부과하기 위해서 사용되었다. 기쁨, 놀이, 자발성 등 육체적 경험의 즐거움에 대한 끌림은 부도덕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잇었다. 

 

1700년대 이러한 생각들이 분명한 가치체계로 정리되었다. 요컨데 나태함은 죄악이고 생산성은 미덕이다. 당시 서구 기독교에서 대중화된 칼뱅주의 신학에서는 이윤이 도덕적 성공의 상징, 구원의 증거가 되었다. 칼뱅주의는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사람들이 생산성 중심으로 자신의 삶을 꾸려가도록 유도했다. 가난은 땅에서 쫓겨난 결과가 아니라 개인의 도덕적으로 실패한 징후로 비춰졌다. 113

 

몸에 관한 데카르트의 이론으로 인해 인간 노동이 자기로부터 분리될 수 있고, 추상화될 수 있으며 자연과 마찬가지로 시장에서 교환될 수 있다는 생각이 가능해졌다. 114

 

저렴한 자연

 

1600년대 자연을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 자연을 '다른' 어떤 것, 즉 대지, 토양, 숲, 산은 물론 인간의 육체까지도 사회로부터 분리된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생겨남. 새로운 세계관 덕분에 자본가들은 자연을 대상화하고 축적의 회로 속에 집어넣을 수 있었다. 한편 이 세계관은 다른 일도 했으니, 자본가들이 자연을 경제의 '외부적인 것'으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자연이 외부적이라는 이유로 자연은 저렴한 것이 될 수 있었다. 

 

가능한 값싸게(이상적으로는 공짜로) 자연을 수탈함. 

 

인클로저와 식민지 건설은 값싼 노동의 전유도 가능하게 했다. 자본은 보잘것없는 정도라 해도 유럽의 프롤레타리아 노동자들(주로 남성들)에게 임금을 지불했던 반면, 그들을 재생산하는 노동자들(여성)에게는 아무것도 지불하지 않았다. 여성들은 남성들의 음식을 만들었고, 아픈 남성들을 돌보았으며, 다음 세대 노동자가될 이들을 양육했다. 사실상 생계수단과 임금노동으로부터 여성을 단절시키고 재생산 역할로만 제한함으로써 오늘날 우리에게 있는 가정주부의 전형을 처음으로 만든 것이 인클로저였다. 116

 

유럽의 지배층은 유럽에서 처럼 식민지에서도 애니미즘 사상을 자본주의의 장애물로 생각했기에 근절하려고 애썼다. 이는 '문명화'의 이름으로 수행되었다. 선주민들은 자연을 물건으로 간주하도록 강요당했다. 117

 

 

2부.적을 수록 풍요롭다

 

4장. 좋은 삶의 비밀 

 

우리의 정치적 상상력 속에서 성장주의를 유지시키는 장악력은 무엇을 설명할까? 

강력한 내러티브 : 

. 우리가 지난 수세기 동안 목도한 복지와 기대수명의 비약적인 향상이 성장 덕분이다는 것.

. 우리의 삶을 끝없이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성장을 계속해야 한다, 성장을 포기하는 것은 인류의 진보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다. 

 

성장과 인간 진보 사이의 관계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만큼 아주 분명하지 않다는 게 드러났다. 중요한 것은 성장 자체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소득이 어떻게 배분되는지, 그것이 공공 서비스에 얼마나 투입되는지이다. 게다가 일정 지점을 지나면, 더 많은 GDP는 인간의 복지 향상에 있어 절대 필수적이지 않다. 228 

 

진보는 어디에서 오는가? 

기대수명 상승, 

<- 위생관리, 교육(특히 여성교육) 

 

경제성장이 대중이 건강 증진에 장기적인 잠재력을 만들어 준다. 잠재력이 실현될지 여부는 소득분배 방식을 결정하는 정치 세력들에 달려 있다. 인간 복지의 진보는 경제적 자원을 가지고 탄탄한 공공재와 공정한 임금을 제공할 수 있도록 애쓴 진보적 정치운동과 정부에 의해 추동되었다. 실제로 역사적 기록을 보면 이러한 세력들이 부재할 경우, 성장은 사회적 진보를 가로막는 방향으로 작동한 경우가 더 많았다. 

 

커먼즈 되찾기

인간복지를 향상하는데 있어 실제로 중요한 개입은 높은 수준의 GDP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1인당 GDP가 상대적으로 낮음에도 매우 높은 수준의 인간 복지를 달성하고 있는 나라들이 많다. 결국 분배의 문제이며 가장 중요한 것은 보편적인 공공재에 대한 투자다. 235

예. 기대수명, 1인당 GDP가 가장 높은 미국의 기대수명과 비교. 코스타리카, 미국보다 80퍼센트 소득이 적음에도 기대수명이 미국보다 앞서. 

 

보편적 공공서비스는 민간이 운영하는 것보다 비용 대비 훨씬 효율적. 

 

GDP와 인간 복지 사이의 관계가 일정한 지점을 지나면 깨어지는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일정한 지점을 지나면 더 많은 성장은 확실히 부정적 영향을 갖기 시작한다. 참진보지수 GPI, 개인의 소비 지출에서 출발하여 소득 불평등, 경제활동의 사회적, 환경적 비용을 조정한다. GDP와 GPI 데이터는 시간을 두고 점으로 찍어 보면, 1970년대 중반까지는 세계의 GPI가 GDP와 나란히 증가하지만, 이후로는 평평해지고 심지어 하락함. 이는 성장의 사회적, 환경적 비용이 소비 관련 이익을 의미없게 만들 정도로 커졌기 때문. 

 

고소득 국가에서 성장 추구가 지속되면서 불평등과 정치적 불안정성을 격화시키고 있고, 과로와 수면 부족에 따른 스트레스와 우울증, 오염으로 인한 건강 악화, 당뇨병과 심장병 등의 문제들을 키우고 있다. 239 

 

미국과 포루투칼 비교.

미국 매년 13조달러어치의 채굴, 생산, 소비 그리고 13조달러어치의 생태적 압력이 그 자체로는 인간 복지의 토대에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는다. 얻는 것 없이 피해만 가져온다. 이론상으로 소득이 보다 공평하게 분배되고 공공재에 투자가 이루어진다면, 미국 경제는 현재의 규모에서 무려 65퍼센트가 줄어들면서도 동시에 평범한 미국인들의 삶을 향상시킬 수 있다. 

 

이스털린의 역설.

미국, 1인당 GDP가 겨우 1만 5000달러였을 때인 1950년대에 행복 비율이 정점을 찍엇다. 그 이후 미국인들의 평균 실질소득은 네배가 되었지만, 지난 반백년간 행복은 정체하거나 심지어 하락했다. 

-> 중요한 것은 소득 자체가 아니라, 소득이 어떻게 분배되는가임. 불평등한 소득분배를 가진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덜 행복한 경향. 

* 불평등한 사회의 특징. 

. 불공정하다는 느낌

. 사회적 신뢰와 응집력, 연대를 잠식함

. 열악한 건강, 더 높은 수준의 범죄율, 더 낮은 사회적 이동성

. 좌절감을 더 많이 느끼고, 불안해하고 불안정하며, 자신의 삶에 불만을 갖는 경향

. 더 높은 우울증과 중독 비율을 보임. 

 

소비측면, 불평등한 사람들에게 자신이 가진 물질적 재화가 보잘것없다고 느끼게 만든다. 우리가 끊임없이 더 많은 것을 원하는 까닭은 그것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이웃에 뒤쳐지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241

(매우 불평등한 사회에 사는 사람들일수록 보다 평등한 사회에 사는 사람들보다 호화 브랜드 쇼핑을 많이 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스스로가 더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끼기 위해 계속해서 더 많은 물건을 구매하지만, 소비는 그다지 소용이 없다. 우리가 좋은 삶이라고 평가하는 기준점이 부자들에 의해 끊임없이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멀어지기 때문. 

 

소득이 아니라면, 좋은 삶을 증진시키는 것은 무엇일까? 보편적 의료보장, 실업 보험, 연금, 유급 휴가와 병가, 저렴한 임대주택, 보육 서비스, 강력한 최저임금 같은 보편적 복지체제. 

 

공정하고 보살핌이 충분한 사회. 모든 이들이 사회적 재화에 공평한 접근권을 갖는 곳이라면 일상의 기본적 필요를 어떻게 해결할지를 염려하는 데에 시간을 쏟을 필요가 없어진다. 예술을 즐기고 사회적 연대의 유대감을 만들 수 있어. 243 

 

행복 -> 삶의 의미, 연결되어 있음을 느낌, GDP와 더욱 관련이 없음. 코스타리카의 니코야 지역. 공동체, 자립경제, 가족, 친구, 이웃들과 견고한 유대관계 

 

성장없는 번영

소득과 기회가 보다 공평하게 분배되면.

사회가 평등해질수록 높은 소득과 화려한 지위재를 추구해야 할 압력을 덜 느낀다. 영속적인 소비주의의 굴레에서 해방시킴. 덴마크의 예. 더 낮은 수준의 1인당 배출량을 보임. 

 

불평등 감소는 보다 직접적인 방식으로 생태적 영향을 줄임. 부유한 사람들은 훨씬 높은 생태 발자국을 갖는다. 세계 인구 중 가장 부유한 10퍼센트가 세계 총탄소배출량의 절반 이상에 책임이 있다. 가장 부유한 1퍼센트의 개인들이 가난한 절반에 속하는 개인들보다 100배 많이 배출함. 이유는 그들이 물건을 더 많이 소비하는 것뿐 아니라, 소비하는 물건 자체가 에너지 집약적이기 때문. 또한 넘치는 돈을 생태적으로 파괴적인 확장 산업체 투자함. 

 

-> 최상위 부유층의 소득을 줄이는 모든 정책은 긍정적인 생태적 효용을 가질 것이다. 

 

공공 서비스에 투자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생태적 효용도. 공공교통, 국민보건서비스, 공원, 공공사우나(핀란드) 

 

공공재를 공유하면 사람들이 개인 소득을 얻어야 할 압력은 줄어든다.미국 공중보건과 공교육 시스템으로 전환되면. 

 

-> 사람들의 접근성을 공공 서비스와 기타 공공재들로 확대함으로써, 사람들의 소득이 갖는 복지 구매력을 향상시키고, 어떤 추가적 성장이 필요 없이도 모두가 번영하는 삶을 만들 수 있다. 

 

-> 정의는 성장의 정언명령에 대한 해독제다. 그리고 기후위기를 해결하는 열쇠다. 

 

지난 40년가 지배했던 신자유주의 정책을 근본적으로 뒤집는 주장. 

. 성장을 향한 필사적인 추적 속에 정부는 공공서비스 민영화, 사회보장 지출 감소, 임금과 노동 보호 잠식, 최상위 부유층의 세금 감면, 사회적 불평등을 키움. 

 

그런데도 여전히 성장주의 서사는 위세를 떨치고 있다. 왜? 성장이 우리 사회의 가장 부유하고 가장 권력 있는 분파들의 이해에 복무하기 때문이다. 

 

미국 예. 반세기 동안 성장했음에도 국가의 핵심 지표들이 뒷걸음질 했고, 모든 성과는 실제로 이미 부유한 이들에게 돌아감. 

 

성장주의는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아. 우리 공동의 미래를 희생하여 소수에게 이익을 가져다 주는. 

 

남반구에서의 정의

탈식민화, 번영에 대한 다른 접근

80년대 구조조정 프로그램 

 

빈곤은 세계 자본의 회로 안에 깊숙이 통합되어 있다. 

. 그들은 나이키나 프라이마크 같은 다국적 기업을 위해 노동 착취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 우리의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만드는 데 필요한 희토류 광물을 채굴하려 목숨을 걸고 일하는 사람들

. 찻잎과 커피콩, 사탕수수를 수확하는 사람들

. 유럽과 북미 사람들이 매일 아침으로 먹는 딸기류와 바나나를 따는 사람들

세계경제로 흘러들어가는 노동력과 자원(석탄, 석유, 가스)의 대부분을 제공한다. 

 

가장 부유한 겨우 1퍼센트가 매년 소득으로 19조달러를 가져가는데, 대략 세계 GDP의 4분의 1정도 된다. 

 

전세계 사람들의 최저 소득 수준을 하루 7.40달러로 끌어올리고 남반구의 모든 사람에게 코스타리카 수준에 상응하는 보편적 의료보장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대략 10조달러가 필요하다. 이는 가장 부유한 1퍼센트의 연간 소득의 겨우 절반밖에 안 된다. 

 

최상위 1퍼센트는 158조달러 상당의 자산을 쌓아놓고 있는데, 이는 세계 전체의 절반 가까이에 해당함. 

 

불평등은 강력한 국가와 기업들이 가난한 나라들의 사람과 자원을 체계적으로 착취했기에 존재하는 것이다. 

 

남반구의 발전은 추출과 착취의 패턴을 끝내고, 경제의 규율을 세계의 다수에게 근본적으로 보다 공정하도로고 바꾸는 문제다. 

. 노동 : 북반구의 성장은 남반구 노동자들의 노동에 상당 부분 의존함. 임금체불. -> 글로벌 최저임금 도입

. 불법적인 자금 흐름. 남반구 국가에서 갈취되어 해외의 비밀 사법권 지역에 쌓임. 매년 1조 달러가 다국적 기업의 조세 회피 방편. 

. 세계 경제를 총괄하는 국제기구들이 반민주적, 부유한 나라들에 크게 편향되 있음. 세계은행, IMF, 세계무역기구, GDP 규모에 따른 교섭력. 식민지 시대에 부를 쌓은 나라들이 국제무역의 규칙을 결정하게 됨.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기 

 

이데올로기는 기술적인 의미에서, 지배계급에 의해 계획된, 그들의 물질적 이해에 복무하는 일련의 사상을 말한다. 다른 방식이었다면 부당하다고 여겨 거부했을 체제에 기꺼이 순응할 만큼 모든 사람들이 이 사상을내면화했다. 

 

세계의 부유층들은 국가 소득과 세계 소득에서 본인들의 몫을 늘리는 방법들을 궁리하며 인생을 보낸다. 더 많이 성장하라는 그들의 요구는 궁극적으로 축적 메커니즘의 속도를 증가시킨다. 성장과 인간 진보가 관계 있다고 추정하는 주장은 알리바이일 뿐이다. 생태위기의 시대에 이러한 전략(낙수효과)는 지속될 수 없다. 무언가를 내주어야 한다. 261 

 

성장주의의 문제는 수십년 동안 골치 아픈 분배의 정치학으로부터 우리의 주의를 딴 곳으로 돌려왔다는 데 있다. 우리의 정치적 주체를 성장이라는 느긋한 미적분학, 성장이 모든 이에게 자동으로 좋을 것이라는 관념에 양도해버렸다. 기후위기는 관점을 바꾼다. 우리에게 세계경제의 잔인한 불평등을 대면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사람들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해 총량적 성장이 필요하다는 관념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누구를 위한, 어떤 목표를 위한 성장인지 구체화할 수 있어야 한다. 

 

생태계 붕괴의 시대에 전체 산출의 4분의 1 가까이가 백만장자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경제를 정말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우리는 풍요로운 행성에 살고 있다. 우리가 이미 가진 것을 좀더 공평하게 공유하는 방법들을 찾을 수 있다면, 지구를 더 많이 강탈할 필요가 없다. 정의는 성장의 해독제다. 261 

 

공평한 사회를 성취하는 일은 당연히 쉽지 않을 것이다. 이는 현 상태를 지속함으로써 어마어마한 이익을 챙겨온 이들에 맞서는 거대한 투쟁을 요구한다. 어쩌면 이 때문에 어떤 이들은 우리가 이런 행동 경로를 피하기를 간절히 바랄 것이다. 그들은 지금과 같은 세계 소득분배를 유지하기 위해 지구를 희생시키는 편을 택할 것이다. 262 

 

진보에 대한 새로운 지표를 필요로 한다.

GDP는 사회적, 생태적 비용을 외재화한다. 자본주의가 사회적, 생태적 비용을 외재화하기 때문.

 


▶ 발제

 

1. 생태 위기와 정치체제 전환,

거대 자본을 정치에서 쫒아내는 것을 의미하며, 급진적인 미디어 개혁을 의미하고, 엄격한 금융규제 입법운동, 기업 인격의 불인정, 독점 해체, 협동조합 소유 구조로의 전환, 노동자의 이사회 참여, 주주 의결권의 민주화, 지구적 거버넌스 기구의 민주화, 집합적 자원을 가능한 한 커먼즈로 관리하는 것을 이미한다.

2. 포스트 자본주의와 노동

노동 시간을 단축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부분은 사람들이 돌봄에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아픈 가족을 간호하거나, 아이들과 놀아주거나, 숲 복원을 돕는 일 같은. 이러한 핵심적인 재생산 노동은(일반적으로 대개 여성들에 의해 수행된) 자본주의하에서는 총체적으로 저평가된다. 외재화되고 지불되지 못하며 보이지 않고 GDP 숫자로 나타나지 않는다. 탈성장은 우리에게 정말로 중요한 것, 진정한 사용 가치를 가진 것들에 우리의 노동을 다시 할당하는 자유를 줄 것이다.

3. 인위적 희소성과 급진적 풍요

21세기의 환경운동은 새로운 요구를 모아 내야 한다. 급진적 풍요에 대한 요구 말이다.


4. 포스트 자본주의 윤리, 철학, 존재론

.. 상호주관성의 세계와 존재
.. 우리가 받는 것은 권리가 아닌 선물, 호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