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공간의 미래

백_일홍 2022. 7. 30. 18:21

공간의 미래 _ 코로나가 가속화시킨 공간 변화

 

유현준

 

우리 모두 코로나를 기점으로 활동의 제약과 부자유를 심하게 느겼을 것이고, 나는 특히 공간과 내가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가 되었다. 내가 여건이 되지 못해, 가고 싶지 않아서 어떤 장소에 가지 않는 것과 코로나로 인해 원천적으로 갈 수 없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집은 점점더 아파트와 같은 내밀한 사적 공간이 되어가고, 길을 걷다 앉아 쉬거나 오가는 사람을 구경할 수 있는 벤치는 사라지고, 돈을 지불해야 하는 카페와 같은 상업시설이 공적 공간을 지배해 가고 있는 현재, 코로나와 같은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쉽게 끝나지 않고 계속 반복된다면, 내가 사는 공간은 어떻게 바뀔 것인지, 내 일상을 더 평화롭게 만드는 쪽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소유에 기반한 배타적 공간으로의 양분이 더 깊어져, 나는 집으로 집으로 더 옥죄게 될 것인지 궁금했다. 코로나로 인해 학교, 종교, 상업의 비대면 활동이 주가 되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 안에서 머물며, 디지털 공간에서 살아가게 될 것 같다. 하지만 디지털 가상이 아니라 실제 사람과 자연을 만나서 오감으로 느끼고 교류할 수 있는 오프라인 공간 없이, 살 수 있을까? 코로나와 같은 사태가 지속된다면 많은 돈을 들여 철저히 방역하여 안전이 보장된 오프라인 공간이 생길 것이고 여기는 지불 능력이 있는 소수만이 즐길 수 있는 곳이 될지도 모르겠다. 한편 전통적으로 학교, 종교기관 처럼 권력이 소수에게 집중된 곳이 온라인화되고 학생, 신도에게 시간적, 공간적 자유가 주워짐으로써 그 권위가 무너지고 배움과 종교생활의 내용은 재구성될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그럼 도시는, 도시 생활은 어떻게 바뀔까? 인구밀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시골로 내려가야 하나? 이런 우려와 반대로, 코로나 이후 서울의 집값은 미친 듯이 오르고 있는건 왜 그런가? 

 

 

(주요부분 발췌)

전염병, 인류, 도시

코로나는 향후 사회 진화의 방향을 15도 정도 틀 수 있겠지만 코로나로 인해서 미래가 180도 바뀔 것 같지는 않다. 많은 전문가들은 코로나로 인해서 기존의 사회 변화의 방향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지난 수십년간 진행돼 오던 변화의 방향과 같은 방향으로 가속도가 붙을 것라고 보고 있다. 기존 변화의 방향이라는 것은 비대면화, 개인화, 파편화, 디지털화를 말한다. 11

 

공간의 해체와 재구성, 권력의 해체와 재구성

우리가 보는 많은 권력은 공간이 만드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일반적으로 시선이 모이는 곳에 위치한 사람은 권력을 가진다. 

예. 학교 교실의 선생님, (종교시설의 목사, 신부, 스님...) 

 

온라인 동영상의 모니터상의 선생님을 혼자 보는 것과 교실에서 수십명의 아이들과 함께 선생님을 보는 것은 공간 구조가 만드는 권력이라는 관점에서는 완전히 다르다. 혼자 볼 때에는 선생님의 권위가 줄어든다. 또 다른 차이는 온라인 수업은 시간적 제약이 없다는 점이다. 사람에게 시간적, 공간적으로 자유를 많이 줄수록 관리자의 권력은 줄어든다. 따라서 코로나 이후 바뀌는 수업의 형태는 기존의 학교 건축 공간이 만들었던 권력의 구조를 깨뜨리게 될 것이다. 공간 구조가 바뀌면 권력의 구조가 바뀐다. 우리는 향후 몇 년간 급속도로 바뀌는 권력 구조의 재편을 보게 될 것이다. 14

 

더 많은 사람이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것, 이란 목표를 위해서, 어폄풋이나마 미래에 대한 그림을 상상해 보고 그런 세상이 되기 위해서 어떤 공간 구조를 만들어야 할지 준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15

 

....

전염병은 도시를 해체시킬까?

나의 대답은 '헤체되지 않는다'이다. 별다른 이유는 없다. 그냥 인류 역사를 보면 그렇다. 5천 년이 넘는 인류 문명과 도시의 역사를 보면 전염병이 없었던 시기가 없었고 가끔은 심각한 전염병으로 도시가 사라지기도 했다. 하지만 인간은 다시 모였고 도시의 규모는 계속 커져 왔다. 157 

.... 결과적으로 도시의 규모가 늘어나면 도시 인프라 초기 투자 비용은 7.5퍼센트 줄어들고 창의성은 7.5퍼센트 증가한다. 더 큰 도시가 될 수록 경쟁력이 생긴다는 연구결과다. ... 도시의 규모가 2배 커지면 범죄율과 전염병의 전파도 2.151배 증가된다는 문제가 생긴다. 역사를 보면 도시의 규모가 커질수록 전염병의 문제는 대두되었고 전염병에 잘 대처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을 개발했다. ....전염병과 도시의 진화는 코로나 19가 발병한 21세기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원리다. 21세기 코로나 전염병에 잘 대처해서 고밀한 대규모의 도시를 만들 수 있다면 그 도시를 가진 나라는 세계를 리드할 것이다. 164

 

시냅스 총량 증가의 법칙

서울은 오프라인 공간의 밀도 측면에서보면 20세기 초반 뉴욕보다도 낮은 수준이지만 인터넷 공간을 포함시키는 순간 백 년전 뉴욕을 압도한다. 이렇게 인류는 꾸준하게 도시의 규모를 키우고 기술을 발전시키면서 사람들 간 관계의 시냅스를 늘려 나갔는데, 나는 이를 '시냅스 총량 증가의 법칙'이라고 부른다. ... 혹자는 이런 질문을 할 것이다. '과거에는 오프라인 공간밖에 없었기 때문에 모여서 살아야 했지만, 텔레커뮤니케이션이 발달한 지금은 도시를 떠나서 전염병의 위험이 적은 시골에 살지 않겠는가"라고. 

그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아니다'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인간은 화상 통화가 된다고 하더라도 손을 잡는 테이트를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온라인 기화와 오프라인 기화가 있다면 둘 중 하나를 택하는 대신 두 가지 기회를 모두 가지려고 할 것이다. 최근에 코로나 사태가 생겼을 때 목숨이 위태로운데도 불구하고 젊은이들이 이태원 클럽에 가서 빈축을 산 일이 있었다. 젊은이 들은 친구와 이성을 만나기 위해 모여야 한다. 168

 

전염병이 만드는 공간의 양극화

독립 기숙사에서 2주간 자가 격리를 한 직원들만 서빙을 하고, 넗은 공간에 많은 비용을 지불한 소수의 소비자들만 이용할 수 있는 상업 시설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해 보자. 이 공간은 운영비가 너무 많이 들어가서 비용이 엄청 날 것이다. 그럼에도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소비하고 싶은 소비자들도 있을 것이다. 비싼 만큼 과시가 되기 때문이다. 소수의 고소득 소비자들만 사용할 수 있는 이런 공간이 도시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세상은 디스토피아이이다....인류의 역사를 보면 어느 시대 어느 사회나 계층이 만들어지고 공간이 구분됐는데, 전염병은 기존에 있던 이러한 공간의 계층화를 가속화시킬 것이다. 246

 

따라서 시장 경제에만 맡겨 놓게 되면 향후 온라인 공간은 기술이 발달할 수록 점점 더 저렴해지는 반면 오프라인 공간은 점점 더 비싸져서 일반 대중은 온리안 공간에서 주로 생활하고 오프라인 공간은 부자만의 전유물이 될 수도 있다. 영화 <기생충>.... 이러한 공간의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는 일반 시민 누구나 공짜로 누릴 수 있는 양질의 오프라인 공간이 도시의 1층면 곳곳에 배치되도록 도시 공간 구조를 리모델링해야 한다. 247

 

자신의 자아를 캐럭터화해서 사이버 공간에서 지내게 하려는 노력은 1990년대부터 시작됐다. 주 사용자는 공간을 소유할 수 없는 젊은 세대다. 아바타를 도입해 인기를 끌었던 "사이월드의 미니홈피'와 이목구비를 골라 자신과 닮은 얼굴을 만들 수 있는 진화한 아바타 '제페토'. 옷을 고르거나 직접 만들 수 있고, 걷거나 뛸 수 있으며, 공간을 만들엉 친구를 초대할 수도 있어서 대면이 어려운 요즘 전 세계 젊은 층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싸이월드와 제페토 같은 '메타버스'는 현실 오프라인 공간을 소유화하거나 돈을 내고 사용할 수 없는 젊은 세대들에게 인기를 끌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249

 

공간 소비 vs 물건 소비

코로나 시대에 명품 소비로 백화점 매출이 올라갔는데 이런 현상은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 해외여행을 가지 못하니 면세점에 갈 수 없고 백화점에서 구매해야 했다. .... 공간을 소비하지 못하면 물건을 소비하게 된다. 한동안 명품 가방을 소비하는 것보다는 도쿄 뒷골목에 가서 우동 먹는 사진을 찍어서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것이 유행했던 시절이 있었다.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노출하는 것이 자신을 과시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물건 소비 대신 공간을 소비하는 것이 코로나 이전의 소비패턴이었다. 그런데 코로나로 인해 공간을 소비하지 못하게 되니 다시 물건 소비로 돌아가게됐다. 250

 

미래는 다가오는 것이 아닐 창조하는 것

우리나라 경제가 발전하고 사회의 계층 간 이동 사다리를 만들려면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오프라인 세상에서 만들 수 잇는 새로운 공간은 사람 간의 '만남의 밀도'가 높아지면서도 동시에 전염병에 강한 도시 공간이다. 선형의 공원, 자율 주행 로봇 전용 지하 물류터널, 발코니가 잇는 아파트, 규모는 작아지고 다양성은 많은 학교, 다양한 부도심, 특색있는 지방 도시가 만들어져야 한다. 우리 사회의 문제는 비전 없는 부동산 정책들과 세금 정책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새로운 공간, 새로운 도시 인프라를 만들어야 한다. 3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