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련한 지배자
나의 가련한 지배자 _ 엄마와 딸, 엄마 됨에 관한 원망과 이해의 사적인 역사
이현주
나의 가련한 지배자 _ 엄마와 딸, 엄마 됨에 관한 원망과 이해의 사적인 역사>를 읽고.
내가 이 책을 고른 이유는 아마도 '지배자'라는 말 때문이었을 것. 엄마와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말일지도 모른다. 흔히 말하길 자식 이기는 부모없다고 하지만 내 경험상, 그 반대가 더 정확할 듯 하다. 자식은 죽었다 깨어나도 부모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자식이 부모의 말을 따르든 거역하든 부모의 권위, 권력으로 부터 벗어날 수 없다. 현실적 영향으로부터 벗어났다 하더라도 죄책감이라는 강력한 심리적 정신적 지배기제가 있어, 의식이 있는 한, 설사 부모가 죽었다해도 벗어날 수 없다. 사이코패스가 아니고서는.
아들은 애초에 부모 특히 엄마의 삶의 영역과 분리되어, 매정하게 자신의 길을 가지만, 딸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같은 여성으로서 고통을 공유하므로 엄마의 고난스런 삶의 공감적 목격자가 되고 이로서 엄마와 육체적 심리적으로 분리되기 어렵다. 포악한 남편과의 불행한 결혼생활에서 벗어날 수 없는(벗어나려고 하지 않는) '무기력한' 엄마를 이해할 수 없는 딸은 엄마와 같은 삶은 절대로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길 수십번, 결국 딸에게 엄마 또한 아빠와 같은 '가해자'로 인식된다. 이런 엄마에 대한 원망과 미움 뒤에는 영락없이 죄책감이 따른다.
폭력적이고 이기적인 남편에게서 벗어난 이후 엄마는 일찍히 정을 뗀 아들을 제처두고 딸의 삶에 전면적으로 개입한다. 마치 자신의 남은 여생이 딸의 삶인 것 같이. 결국 딸은 엄마에 대한 연민, 후회
원망, 죄책감의 굴레에서 해방되기 위해 미국으로 이주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우리가 당연시 하고 신성시하는 '모성'에 관해 의문을 제기한다. 엄마, 아내이기 전에 한 여성으로서 응당 그녀가 가진 꿈과 욕망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 엄마에게 부여된 자식에 대한 의무, 즉 사랑이라는 이름의 무한 책임은 양날의 칼이 되어, 자식을 지배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자식이 좀처럼 벗어날 수 없는 굴레를 씌우는 권력이 된다.
딸과 엄마,
어디까지가 사랑과 배려이고 어디까지가 간섭이고 지배인지,
어디까지가 내 엄마(딸)로서의 인생이고 어디까지가 한 여성으로서의 인생인지
어디까지가 (버릇없이) 데 드는 것이고 어디까지가 합리적으로 내 입장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
선을 그어야할 문제들을 다 열거하기 어렵고,
선을 그을 수 있는 명확한 경계가 없지만, 그럼에도 매 순간 선을 그어야 한다는 것만은 틀림없다.
애증, 연민, 죄책감이라는 묵은 감정들을 헤치고 다소 중성적인 단어들을 떠올린다, 존중, 배려, 믿음, 거리, 인정.... 타인과의 관계에서나 쓰일 이런 객관적이고 서늘한 단어들이, 가부장적 결혼 안에서 재상산되는 삐뚤어진 모녀관계에서 그나마 우리를 건사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저자와 같이 마침 나 또한 딸이 없이 아들만 둘이다. 이 책을 읽고 평소 내가 자주 듣고 내면화했던 말, "딸이 없어 어떻하나? 안 됐다"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이 말 속에 담긴 엄마에게 필요하다는 그 '딸''이, 바로 이 책의 저자이고 이 책을 읽으며 어느 부분 공감하는 나이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