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담론

백_일홍 2022. 8. 1. 17:05

 

담론 _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신영복

 

* 사서/삼경(오경) : 논어, 맹자, 대학, 중용/시경, 서경, 역경 혹은 주역(춘추, 예기)

* 공자, 기원전 551-479
맹자, 기원전 372-289
순자, 기원전 298?-238?

* 중국나라연대기(첨부)

2. 사실과 진실

시와 역을 먼제 소개하는 이유는 우리의 세계 인식틀을 검토해 보기 위해서입니다. <시경>과 <주역>은 사서삼경에 속하는 고전입니다. 23

우리는 두 개의 오래된 세계 인식틀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사철과 시서화가 그것입니다. 문사철은 고전문학, 역사, 철학을 의미합니다. 어느 것이나 언어, 개념, 논리 중심의 문학서사 양식입니다. 우리의 강의가 먼저 시에 관해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까닭은 우리의 생각이 문사철이라는 인식틀에 과도하게 갇혀있기 때문입니다. .... 문사철은 세계의 정직한 인식틀이 못 됩니다. 언어와 개념 논리라는 지극히 추상화된 그릇으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를 담을 수 없음은 물론이고 방금 일별한 것 처럼(예. 사마천의 사기,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문학, 역사, 철학 역시 세계를 온당하게 서술하고 있지 않습니다. 문사철이라는 완고한 인식틀을 깨뜨리는 것이 공부의 시작임은 물론입니다. 24-25

문사철 시서화악을 대신하여 앞으로는 영상서사 양식이 세계 인식틀의 압도적 지위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러나 영상서사 양식의 가장 결정적인 문제는 바로 이 주체가 세계 인식에 있어서 소외된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우리는 문사철의 추상력과 시서화악의 상상력, 영상서사의 압도적 전달력을 소중하게 계승하되 이것이 갖고 있는 결정적 장단점을 유연하게 배합하는 노력을 기울여 나가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28

3. 방랑하는 예술가

굴원. 기원전 340-278년. 중국 전국시대 초나라 시인. 정치가

주자. 주희. 1130-1200년. 중국 남송의 유학자

인과론이란 조금 전에 이야기했던 환원론 그 자체입니다. DNA를 생명의 궁극적 요소로 환원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환원론과 인과론은 근대 인식의 기본틀입니다. ...동양적 사유에는 이런 인과론이나 환원론이 없습니다. 50-51

귀곡자의 시론
전국시대는 전환기였습니다. 종법사회, 신분질서가 무너지고 사, 객, 군자와 같은 '신지식인'이 등장합니다. 이들이 '유세가'이기도 합니다. 이들은 각국의 정치, 경제, 군사 현황에 대해서 해박한 지식과 정보를 가지고 각국의 군주들과 상담하고 설득하는 역할을 합니다. 귀곡자가 이런 사람들의 스승입니다.

"병법은 병사의 배치이고 시는 언어의 배치이다"
내용을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대방을 설득하는 힘이 있어야 한다. 말은 듣는 상대가 기뻐해야 한다. 언어를 좋은 그릇에 담아서 상대방에게 기분 나쁘지 않게 전달하는 것. 그것이 성이다. 54-55



4. 손때 묻은 그릇

안다는 것은 복잡한 것을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을 때, 다시 말하자면 시적인 틀에 담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57

<주역>에 관한 강의를 시작으로 한동안 고전에 관한 강의가 이어집니다. 고전은 예날 책입니다. 무왕불복, 가기만 하고 다시 반복되지 않는 과거란 없습니다. 고전은 '오래된 미래'입니다. 현재 속에는 과거가 있고, 그리고 미래는 이 현재가 변화함으로써 다가 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쉽게 변하지 않는 부분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역사학자 브로델잉 말한 장기지속이 구조사. 우리가 고전을 공부하는 까닭은 장기 지속의 구조를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자체가 브로델이 이야기하는 장기 지속의 구조 위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생각이 표층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반성해야 옳습니다. 고전과 역사는 비켜 갈 수 없습니다. 흘러간 물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이 속에 현재와 미래가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58

주역은 시, 서, 와 함께 삼경에 듭니다. 시는 풍에 장하고 서는 선왕의 행적을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정 즉 정치에 장하다고 했습니다. 장하다는 것은 뛰어나다는 뜻입니다. 역은 변에 장하다고 합니다. 음양, 오행, 사시를 논한 것이기 때문에 변화를 읽는 데 장하다고 합니다. 주역은 세계의 운동에 관한, 오래된 철학적 서술로 보는 것이 옳지 않을까 합니다 .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주역의 독법입니다. 주역에는 64개의 괘가 있는데 하나하나가 세상의 변화를 보여주는 패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비슷한 인생 행로가 의뢰로 많습니다. 세상의 변화도 다르지 않습니다. 64괘 하나하나가 그러한 경로를 보여줍니다. 사계의 변화가 뚜렷한 농본 사회에서 오랫동안 축적된 경험 귀납적 사고가 주역이라고 합니다. 61

주역의 독법은 관계론입니다. 62

[내용은 이해하기 어려워 생략]

개인주의적 사고, 불변의 진리, 배타적 정체성 등 근대적인 인식틀에 갇혀 있던 나에게 감옥에서 손에 든 주역은 충격이고 반성이었습니다. 나아가 비근대를 조직하고 탈근대를 지향하는 귀중한 디딤돌처럼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송나라 철학자, 장횡거, 주역의 관계성을 대대원리로 설명함. 화, 불을 나타내는 리괘, 그리고 물을 나타내는 감괘. 리괘를 보면 불 가운데에 물이 들어있습니다. 물인 감괘 가운데에 불이 들어있습니다. 장횡거는 물 속에 불이 있고, 불 속에 물이 들어앉아 있는 것을 대대원리라고 합니다. 반대되는 것을 잘 모시고 있다는 뜻입니다. 서로 감추어 준다.

다음으로는 소수자의 관점입니다. 모든 괘는 음괘와 양괘로 나뉩니다. 양효가 많으면 양쾌라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음쾌입니다. 마이너리티가 우선입니다. 잘 생각해보면 납득이 갑니다. 남자 두명과 여자 한 명이 동행하는 경우 누가 결정권을 행사할 것 같습니까? 단연 마이너리티 우선입니다. 관계를 통하여 자기의 존재성을 변화시키는 주역의 관계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소개하는 것은 '미완성'의 의미에 관한 것입니다. 64괘중에서 제일 마지막 64괘는 당연히 완성 쾌일 줄 알았습니다. 마지막 괘가 미완성으로 끝납니다. 화수미제쾌입니다. "끝나지 않았다. 어린 여우가 강물을 거의 다 건넜는데 그만 꼬리를 적시고 말았다" 꼬리를 적셨다는 것은 작은 실패가 있었다는 뜻입니다. 이는 윤리적 교훈이 아닙니다. 세상에 완성이 없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우리 삶도 그렇고 세상의 변화도 그렇습니다. 작은 실수가 있는 어떤 국면이 끝나면 그 실수 때문에 다시 시작하는 그런 경로를 이어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71

응일이라는 이름의 감옥수,
"뉘 집 큰 아들이 징역와 있구먼"
그 말을 듣고 나서 그날 밤 한잠도 못잤다고 했습니다. 그동안 자기가 큰 아들이라를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지요. 부모님과 누이동생 생각으로 잠 잘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개인으로 심지어 하나의 숫자로 상대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노인들은 고암 선생의경우처럼 '뉘 집 큰 아들'로 생각합니다. 사람을 관계속에 놓습니다. 이러한 노인들의 정서가 주역의 관계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73-74

주역은 '물 뜨는 그릇'에 비유했습니다. 바닷물을 그릇으로 뜯면 그 그릇에 담길 물은 바닷물이기는 하지만 바다는 아닙니다. 그렇지만 물은 어차피 그릇으로 뜰 수밖에 없습니다. 주역이 비록 부족하고 작은 그릇이기는 하지만 그나마 세계를 뜨기 위해서 오랜 세월에 걸쳐서 만들어 낸 것입니다. 주역이 인식틀이 친숙하다는 것은 우리가 집집마다 비슷비슷한 그릇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주역은 "변화'를 읽는 틀입니다.

역설. 변화를 읽을 수 있는 불변의 어떤 원리를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
'불변의 진리'에 대한 관념은 오래된 것입니다. 74
왕필이 주역의 주를 달때가 삼국지 시대로 난세였습니다. 자연히 불변의 진리에 대한 희구가 강렬한 시대였다.
주역에서는 변화를 1) "변하면서도 변하지 않는다. 바로 그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참다운 역(대역)이다"라는 뜻입니다. 다르게 해석하기도 합니다. 2) "변하면서도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변하지 않는 것도 크게(대) 보면 변한다(역)" 1)의 해석은 퇴계 이황의 것이고 2)의 해석은 다산 정약용의 것입니다.
퇴계 이황 : 당시는 기묘사화 이후 개혁 사림이 좌절한 사황. 훈구 척신 세력이 권력을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는 시기. 그러한 상황에서 퇴계는 주리론을 고수합니다. 리를 주장하는 것은 성리학적인 정의가 관철되어야 한다는 선언입니다. 리의 성리하걱 가치가 기 즉 현실을 주도해야 한다는 것이 퇴계의 주리론입니다. 대역이 '리'를 의미합니다. 이기논쟁. 75
[한국철학의 맥, 참고]



5. 톨레랑스에서 노마디즘으로

고전이라고 하지만 주로 동양의 몇몇 제자백가 사상을 일별하는 것입니다. 춘추전국시대에 난숙하게 제기된 사상들은 대체로 고대국가 건설 담론입니다. 이 시기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국가철학의 시대입니다. 도, 덕, 예와 같은 윤리학은 치국의 논리이고 곧 정치학입니다. 플라톤 역시 국가철학자입니다. 우리의 강의는 제자백가의 세계관을 중심으로 진행하겠습니다. 76
* 제자백가 사상 - 고대국가 건설 담론, 국가철학, 치국의 논리, 정치학

논어는 공자의 망명 중에 그리고 망명 후 향리에서 제자들과 나눈 대화를 정리한 대화록, 공자 사후 100년 후에 공자 학단이 만든 책.
공자(기원전 551-479)

주나라, 기원전 1,100년경에 건국. 춘추전국시대는 기원전 770년부터 시작됨. 건국 후 400년이 못 되어 혼란기로 접어든 셈. 춘추전국시대는 사회경제적 의미의 시대 구분이 아님. 공자가 집필한 <춘추>라는 역사서가 기준임. 이 시기는 사회경제사적으로는 철기시대임. 철기시대에는 무기와 농기구의 혁명이 일어납니다. 농업 생산력이 발전하면 그 잉여 생산물이 상업과 수공업의 발전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토지 생산력이 높아지면 토지에 대한 관념이 변합니다. 이와 같은 급격한 변화는 주나라의 종법질서의 붕괴로 이어집니다.
* 주나라의 종법질서 : 천자의 맏아들이 천아들이 천자가 되고 둘째 아들은 제후가 되는 제도. 제후의 맏아들은 제후가 되고, 둘째 아들은 대부가 됨. 이렇게 하여 당시의 72개 제후국은 혈연관계임. 가족질서이면서 동시에 국가 질서임. 충효일체입니다. 이러한 종법질서는 오늘날의 개념으로 보면 제후국 연방제라고 살 수 있음. 제후국간의 평화공존이 가능했음.

그러나 대를 거듭하면서 피는 묽어지고 봉토는 사유화되고 제후국들의 정치적 경제적 위상에 격차가 생기면서 침탈가 흡수합병이 시작됩니다. 동이라는 패권적 경영이 대세가 됩니다. 유가학파는 바로 이러한 패권경영에 반대하고 제후국 연방제라는 주나라 모델을 지지합니다. 그것이 화이부동입니다.
'화동담론'은 군자화이부동 소인동이불화의 줄인말입니다. 이 화동담론은 춘추전국시대 유가학파의 세계인식입니다.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 사상은 어느 것이든 기본적으로 정치적 담론입니다. 화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관용과 공존의 논리입니다. 반면에 동은 지배와 흡수합병의 논리입니다.
"군자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지배하려고 하지 않으며, 소인은 지배하려고 하며 공존하지 못한다"

평화 공존을 주장하고 흡수합병이라는 패권적 국가 경영을 반대하는 유가 학파의 정치사상이 화동담론이다. 춘추전국시대의 혼란은 강대국이 약소국을 전쟁 방식으로 침탈하고 병합하는 이른바 '동'의 논리가 원인이라는 것이 유가학파의 인식입니다. 78-79

우리가 화동 담론을 재론하는 이유는 동의 논리로 오늘날의 패권적 구조를 조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유럽 근대사의 전개 과정은 존재론적 논리가 관철되는 강철의 역사였습니다. 자기의 존재성을 배타적으로 강화하는 존재론적 논리가 잔혹한 식민지 시대와 크고 작은 수많은 전쟁을 거쳐 오늘날의 거듭되는 금융 위기를 노정하기에 이르고 있습니다. ... 그러한 패권 구조는 여전히 건재합니다. 80
춘추전국시대에도 패도 경영방식을 채용한 제 환공이 패권을 장악합니다. 마찬가지로 이사를 재상으로 삼고 패도를 실현한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합니다. 그러나 천하를 통일한 진나라는 불과 14년 만에 패망합니다.

공자의 왕도정치나 화의 논리는 군주들의 관심을 끄는 데 실패합니다. 14년간의 유랑에도 불구하고 벼슬자리를 얻지 못합니다. 그만큼 당시의 사활적 경쟁에서는 국력의 극대화가 초미의 관심사였습니다. 왕도와 화의 논리는 실패했지만 유학은 한나라의 관학으로 격상되고 공자는 여전히 건재합니다.

공자가 건재하다고 하지만 패권 논리 역시 건재합니다. 패권적 질서는 우리 시대의 대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만큼 패권 논리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더욱 절실하게 요구됩니다. 그러한 패권이 야기하고 있는 전쟁과 패권적 질서가 과연 지속 가능한가에 대한 회의가 오늘날의 불편한 진실입니다. 83

화동담론을 재조명하는 또 하나의 아유는 우리의 통일 담론으로서도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기 때문입니다. .. . 우리의 민족적 과제이면서 동시에 21세기의 문명사적인 과제.

연암 박지원 북학파 / 불벌파(청나라 오랑캐를 징벌하자)
북벌을 천명하지 않는다면, 다시 말해서 명나라에 대한 충성을 저버린다면, 조선 왕이 백성의 충성을 요구할 수 없고, 조선 지배계급이 노비들의 복종을 요구할 명분이 없어집니다. 북벌은 그런 정치적 명분이었습니다. 이후 조선은 북벌을 국시로 하는 소중화의 나라로 교조화됩니다.
[영화 남한산성, 주화파 최명길(이병헌), 척화파 김상헌(김윤식)의 자결, 병자호란 시기]

조선 시대의 이러한 상황에서 북학은 엄청난 이단이었습니다. 오랑캐를 배우자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조선의 지배 구조를 개혁하자는 주장이나 다름없었음. 북학파의 열린 자세는 대단한 파격입니다. 배울 것이 없는 상대란 없습니다. 남과 북의 통일과 화화에 대한 열린 사고입니다. 이것은 관용(톨레랑스)에서 유목(노마디즘)으로 탈주하는 탈근대의 경로이기도 합니다. 86

지속가능성이 회의되고 있는 불안한 세계경제 질서에 대비하여 나름대로 자기의 경제영역을 지키기 위해서 많은 국가들이 중장기적으로 지향하는 시스템이 바로 내수 기반의 자립 경제 구조입니다. 86

한국 현대사 연구 분야에서는 분단을 이데올로기 문제로 규정해 온 지금까지의 관점과는 다른 견해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한민족이 세계 경영이라는 관점입니다. 2천년 동안 우리가 경영해 온 세계와이 관계 형식이 바로 자주와 개방이라는 두 개의 축입니다. 이 두 개의 국가 경영 축을 슬기롭게 구사해 왔기 때문에 2천년 동안 우리 역사를 지켜 올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 주도권을 다른 나라들에게 빼앗겨 그들에게 역용을 당하고 있습니다. 88



6. 군자는 본래 궁한 법이라네

패도가 성공한 것은 비읍을 직접 통치하에 편입함으로써 읍제국가를 영토국가로 전환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공자는 비읍 출신. 비읍은 비교적 자유로운 지역. 국읍, 도읍은 도로와 건물이 질서정연하고 특히 위계질서가 엄격한 공간입니다 . 비읍은 그렇지 않습니다. 공동체 문화가 온존해있는 자유로운 영역이었습니다. 이 비읍에서 공자가 무당의 사생아로 태어납니다. 세살 때 아버지가 별세하고 스물네 살 때 어머니도 사망합니다. 비읍에 유라는 장례를 대행하는 일을 했는데, 예로써 입신하는 입지전적인 인물입니다. 정치영역에서는 완전히 실패, 14년 동안의 망명과 유랑이 공자의 인생과 면모를 바꾸었다고 합니다. 노년에 향리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는 일로 인생을 마감합니다. 그러나 사후에 제후의 반열에 오릅니다. 그 이유를 우리가 읽어야 합니다. 91

논어는 공자의 대화록입니다. 대체로 만년의 유가담론을 정리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내용도 당시의패도와 준별되는 왕도론입니다. 정치란 식, 병, 신이고 이 셋 중에서 한 개를 부득이해서 없앴다면 제일 먼저 병, 그다음 식이다. 백성이 신뢰가 없으면 나라가 존립할 수 없다. 인이란 가까이 있는 사람이 기뻐하고 멀리 있는 사람이 찾아오는 것이다. 이것이 공자의 왕도와 덕치입니다. 논어에는 인과 민이 분명하게 구분됩니다. 인은 사군자를 포함한 귀족층을 일컫고, 민은 노예와 생산담당자입니다. 절용애인, 물건을 아껴 쓰고, 사람을 생각한다. 애민이 아니다. 사민이시, 백성을 부릴 때는 때 맟춰서 부려야 한다. 사인이 아닙니다. 패권정치를 실현한 관중의 경우, 목민. 목축과 같이 백성들을 기른다는 사고가 깔려있음. 식을 최고의 정치적 가치로 삼고 민의 욕망과 정서를 승인하는 것이 반드시 민주적이고 인간적인 것은 아닙니다. (다산의 목민심서)

한 시대와 한 인간을 읽는 일은 그 속에 착종하고 있는 수많은 모순을 상대하는 일입니다. 공자의 화는 주나라의 종법 질서이고 또한 복고적 계급 질서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크게 보면 공자로서는 나름대로 역사적으로 검증된 현명한 선택을 하고 있었다고 해야 합니다. 시제와 처지를 고려하지 않은 비판은 처음부터 부정적 결론을 염두에 두는 비방입니다. 94

공자는 귀족과 중간계급이 도덕적 모범을 보임으로써 민을 계도하려고 했습니다. 이것이 예치입니다. 예치는 결국 계급을 인정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예치는 또 한편 군주이 횡포까지 규제합니다. 법가는 군주 권력을 최상위에 놓는 제왕학입니다. 그러나 법가는 동시에 법을 성문화하고 공개합으로써 군주이 자의성을 규제하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은 원래 법을 만드는 사람은 규제하지 못합니다. 2천년이 지난 오늘의 우리 현실이 그것을 보여줍니다. 권력자는 법감정이 없습니다. 처벌과 감시가 자식들이 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소불욕물시어인, 자기가 원치 않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베풀지 마라. 95

논어는 사회전환기에 분출하는 개방적 사유를 풍부하게 담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인간과 인간관계에 대한 인문학적 사유가 풍부하다. 종법 사회에서는 학이라는 관념 자체가 없었습니다. 지배-피지배라는 2항 대립의 물리적 구조에서 통치 철학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힘에 의한 지배와 혈연에 의한 계승이면 충분했습니다. 유붕자원방래의 붕도 없었습니다. 수직적 위계만이 존재했습니다. 제자라는 말도 없었습니다. 이처럼 삼엄한 위계질서가 무너지는 과도기가 공자의 시대입니다. 공자와 논어의 세계가 담고 있는 것이 바로 인간관계에 대한 개방적 담론입니다. 96

인간관계가 역동성을 발휘하는 계기가 사군자라는 제 3 계급의 등장입니다. 그 일환으로 나타난 것이 '인간'에 대한 주목이었고, '인간관계'의 발견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구간이 불탔는데 공자가 돌아와서 사람이 다치지 않았느냐고 묻고 말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습니다. 당시에 말 한마리 값이 노비 세 사람 값이었습니다.

일화, 공자 일행이 진, 채 사이에서 며칠 굶주려 일어날 기력도 없을 때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조용히 금을 켜고 있는 공자에게 자로가 다가가 화난 듯 이야기합니다. "군자도 궁할 때가 있습니가?" 자로의 노여운 질문에 대한 공자의 답변은 "군자는 원래 궁한 법이라네" "소인은 궁하면 흐트러지는 법이지". 103



7. 점은 선이 되지 못하고


맹자, 기원전 372-289
맹모삼천지교
맹모삼천 고사는 한나라 때 유향이 펴낸 <열려전>의 모의전편에 실려있습니다.
'이양역지' 양과 소를 바꾼 이야기.
<맹자>는 주제가 '만남'입니다. 주역은 관계론 독법, 논어는 화동담론.
맹자가 인자하기로 소문난 제나라 선왕을 찾아가서 자기가 들은 소문을 확인합니다. 소문은 이런 것입니다. 선왕이 소를 끌고 지나가는 신하에게 묻습니다. 그 소를 어디로 끌고 가느냐? 혼종하러 갑니다. 소는 제물로 끌려가고 있었던 것이지요. 임금이 "그 소를 놓아주어라"고 합니다. 신하가 "그렇닫면 혼종을 폐지할까요?" "혼종이야 어찌 폐지할 수 있겠느냐, 양으로 바꾸어서 제를 지내라"도 했다는 소문이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하자, 왜 바꾸라고 하셨는지 그 이유를 묻습니다. 벌벌 떨면서 죄 없이 사지로 끌려가는 소가 불쌍해서 바꾸라고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럼 양은 불쌍하지 않습니까? 맹자는 선왕 자신도 모르고 있는 이유를 이야기 해줍니다. 소를 양으로 바꾼 이유는 양은 보지 못했고 소는 보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맹자의 해석이다.

우리가 맹자의 이 대목에서 생각하자는 것은 '본 것'과 '못 본 것'의 엄청난 차이에 관한 것입니다. 생사가 갈리는 차이입니다. 본다는 것은 만남입니다. 보고, 만나고, 서로 아는 이를테면 '관계'가 있는 것과 관계 없는 것의 엄청난 차이. 옛 선비들이 푸줏간을 멀리한 까닭은 그 비명 소리를 들으면 차마 그 고기를 먹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아닙니다. 생선 횟집에 들어가면서 수조 속의 고기를 지적하여 주문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107

인간관계는 사회의 본질입니다. 사회의 본질은 인간관계의 지속적 질서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근대사회, 자본주의 사회, 상품사회의 인간관계는 대단히 왜소합니다. 인간관계가 지속적이지 않습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도시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도시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의 삶을 돌이켜보면 인간적 만남이 대단히 빈약합니다. 이양역지를 통해서 확인하려고 하는 것이 바로 우리 시대의 인간관계와 사회성의 실상입니다. 108

도시는 자본주이가 만들었습니다. 자본주의의 역사적 존재 형태가 도시입니다. 그리고 그 본질은 상품교환 관계입니다. 얼굴 없는 생산과 얼굴 없는 소비가 상품교환이라는 형식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자본주위 사회의 인간관계입니다. 우리 시대의 삶은 서로 만나서 선이 되지 못하고 있는 외딴 점입니다. 110

공자이 핵심은 인, 맹자이 핵심은 의, 의는 인을 사회화한 개념. 강조점이 달라. 공자가 춘추시대의 사람이라면 맹자는 전국시대 사람. 그 시대적 상황이 차이가 반영되 있어. 전국시대는 글자 그대로 전쟁방식의 사활적 경쟁에 내몰리고 있는 때. 인간관계 보다 사회관계가 더 절박한 과제로 등장하고 있었음.

(이로울) 이
맹자가 언급한 '인의'
논어에는 인의라는 개념이 없다. <묵자>에 나오는 개념이다.
이로울 이 : 칼로 벼를 베어 가거나 뺏어 간다는 뜻.
인의이 의: 양고기를 썰어 고루 나누는 것.
사활이 걸린 패권 경쟁에 내몰리고 있는 군주에게는 이가 가깝고 의는 한참 먼 것입니다. 맹자의 인의는 현실적 방책이 못 되었고 결국 맹자는 전국시대의 절대군주에게 등용되지 못합니다. 맹자는 돌아와서 제자들을 가르치는 일로 일생을 마칩니다.

<맹자>에서 가장 높게 평가되는 부분은 민본사상입니다.
민위기 사직차지 군위경,
민이 가장 귀하고 사직이 그 다음이고 군이 가장 가볍다.

<맹자>, 성선설
춘추전국시대에 유독 인간의 본성에 관한 성론이 많이 제기되었던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맹자의 성선론, 순자이 성악설이 성론의 전형입니다. 춘추전국시대에는 인간이 차마 선한 본성을 가졌다고 보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약육강식, 하극상, 대량 살상 등 비참한 현실이었습니다. 그것을 인간이 만들어 내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맹자는 성선설을 주장합니다. 반대로 순자는 성악설을 주장합니다. 둘다 춘추전국시대의 참상을 뛰어넘기 위한 개념입니다. 맹자는 인간의 선한 본성을 확충함으로써 그 시대를 극복하려고 하고, 순자 역시 인간의 악한 본성을 직시하고 그것을 절절히 규제함으로써 춘추전국시대를 뛰어넘으려고 했습니다. 둘다 목적론적 개념입니다. 114

맹자는 인의예지라는 네 사지 선단을 하늘로부터 타고났다고 주장합니다. 맹자의 천성은 공자의 천명에 비하면 훨씬 현실화된 것입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몸 속에 인성으로 체화되어 있습니다. 후에 주자에 이르면 이러한 논리가 객관화되어 천리가 됩니다. 객관적 관념론이됩니다. 이처럼 성론은 천명에서 천성을 천리로 발전됩니다. 맹자의 경우 인간은 인의예지라는 네 가지 선량한 싹을 타고났기 때문에 이를 확충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왕도 정치가 가능하다는 주장을 폅니다. 왕오 정치의 논거로 성선설을 주장합니다. 선량한 본성을 확이충지하여 전국시대를 극복하고 왕도 정치를 실편하고자 했습니다.

순자는 전국시대의 마지막 유가였습니다. 다른 많은 학파들의 업적을 수렴합니다. 그러나 순자는 유가 도통에서 이단으로 배제됩니다. 공자에서 맹자로, 그 다음 주자로 건너뛰고 순자는 제외됩니다. 이유는 순자의 천론때문입니다. 순자의 천은 자연천입니다. 천의 의지가 사상됩니다. 우레와 번개가 치면 두렵긴 하지지만 괴이하지 않다. 그것은 자연현상에 불과하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성도 내적 자연으로 봅니다. 인간의 정와 욕은 생리립니다. 사회적 훈련을 거치지 않은 생리 그 자체는 선한 것일 수 없습니다.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 인간의 행위가 선한 것은 위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위'는 거짓이란 뜻이 아닙니다. 사람이 작위한 것 인+위입니다. 인간의 악한 본성을 위를 통해서 즉 인간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선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순자의 성악설은 예론 그리고 법가의 이론으로 발전해 갑니다. 법가 이론을 집대성한 한비자와 진시황을 도와 법가 이론으로 천하를 통일한 이사가 순자 문하에서 나옵니다. 116


8. 잠들지 않는 강물

<노자> 무위, 상선약수
노장을 합해서 도가라고 합니다. 제자백가의 사상적 스펙트럼은 아주 넓다. 두 부류로 대별하면 노장을 한 편에 나머지 모든 제자백가를 다른 한편으로 분류할 수 있다. 제자백가사상은 유가를 대표로 인본, 문화, 성장 패러다임임. 인류문명사의 보편적 구조입니다. 인간의 적극적인 실천(위)를 통해 문화를 만들어내고 경제를 발전시키고 사회 진보를 지향하는 것. 노장은 이와 반대. 사람 중심이 아니라 자연 중심입니다. 위가 아니라 무위를 주장합니다. 문화가 아니라 반문화입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진이 아니라 근본으로 돌아가는 귀입니다.

진과 귀라는 두 개의 사상이 서로 견제하고 있는 것이 중국 사상의 기본 구조다.
비고. 서양, 이 두개이 대립항은 과학과 종교. 이 두축은 조화되기 어렵다. 충돌한다. 이에 비해 도가와 유가는 다 같이 인문학적 범주에 속합니다. 충돌하지 않아. 122

노자 사상의 핵심은 '무유론'
찰흙을 잘 반죽해서 그릇으로 만드는데 그 비어 있음으로 해서 그릇으로서의 쓰임이 생긴다. 그 비어 있음 즉 '없음'이 그릇을 유용한 것으로 만들어 준다는 뜻. "유가 이로움이 되는 것은 무가 쓰임이 되기 때문이다" 무란 그냥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의 '근본'입니다. 세상은 유와 무가 절묘하게 조화되어 있는 질서다. 그 무의 최대치가 바로 자연입니다. 124

무와 유는 이름만 다를 뿐 같은 것입니다. 무로써 그 오묘한 것을 보아야 하고, 유로써 드러난 것을 보아야 합니다.

노자 사상이 발 딛고 있는 최대의 기반이 바로 자연입니다. 자연이 최대 범주라는 것은 인간이 바로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로서 완성됩니다. 유가 사상의 진을 포함한 인간의 모든 인위의 궁극적 귀착지가 자연입니다. 그곳으로 돌아갑니다. 노자의 자연은 대상으로서 자연(nature)이 아닙니다. 노자의 영역본에서 자연을 'self-so'라고 번역합니다. 스스로 존재하는 최고의 질서, 가장 근본적인 질서입니다. 그래서 가장 안정적 질서가 바로 자연입니다.
노자 철학을 압축하여 '인법지 지법천 천법도 도법자연'이라고 합니다.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천지인이 법칙인 도가 본받는 것이 바로 자연입니다. 도법자연, 최고의 궁극적 질서가 자연입니다. 노자철학의 근본은 궁극적 질서인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가장 안정적인 질서
가장 안정적인 시스템이 자연입니다.
인 + 위 = 거짓 위

<노자> 45장. 자연의 뜻을 설명.
대성약결, 최고의 완성은 마치 미완성인 듯 하다. 마치 비어 있는 듯 하다.
대영약충 기용불긍, 가득 차 있지만 마치 비어 있는 것 같아서 떠내어 사용하더라도 다함이 없다.
대직약굴, 최고의 곧음은 마치 굽은 것 같다. 자연은 하나의 가치, 일정한 형식이 없다. 그것이 바로 노자가 자연을 최고의 질서로 삼는 이유입니다. 126
청정위천하정, 맑고 고요한 것이 천하의 모습입니다. 이 경우 청은 맑다는 뜻이 아니라 인위가 개입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자연의 온전한 질서입니다. 물론 노장에서 인위라는 것은 인의예지입니다. 제자백가들이 다투어 제기하는 사회적 가치와 규제입니다. 이러한 인위가 없는 맑고 고요한 천하가 자연입니다. 127

노자의 '자연'은 이처럼 제자백가의 교조적이고 주관적인 인식을 비판하는 반패권 담론입니다.
'위무위 무불치' 무위로써 다르리면 다스리지 못할 일이 없다. 노자사상이 피세은둔사상이 아니라 적극적인 개세 사상이라는 근거가 됩니다.

난세에는 도가를 읽고 치세에는 유가를 읽는 까닭이 무가 세상의 근본이기 때문입니다.

춘주전국시대는 법가에 의해서 통일됩니다. 그러나 진나라는 단명합니다. 그리고 한나라가 천하의 주인이 되고 법가를 대신해서 유가가 지배 사상이 됩니다. 유가가 관학이 되지만 내면에서는 여전히 법가 사상이 뼈대가 되고 있습니다. 외유내법입니다. 법가는 군주 권력을 중심에 두는 사상입니다. 이에 비해 유가는 예, 악, 인과 같은 유화적인 지배 기제를 통해서 법가의 적나라한 권력의지를 은폐합니다. 그러나 국가란 본질에 있어서 폭력이며 잠재적인 전쟁기구입니다. 국가는 계급지배가 본질입니다. 그리고 국가의 역사에는 반드시 전쟁의 기억이 각인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외부와의 전쟁이든 내부전쟁이든 차이가 없습니다. 정치권력은 본질적으로 억압과 지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시대의 민중 정서는 반국가적입니다. 노자사상은 그러한 민중정서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노장의 반문화 사상과 무위 사상은 모든 시대, 모든 국가의 저변에 깔려 있는 민초들의 사상적 기조가 됩니다. 유가를 지배 이념으로 하는 한나라 이후에도 <노자>는 꾸준히 읽힙니다. 모든 문화와 정치가 돌아가야 할 근본 담론으로서 역사의 저변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130

** 유가의 발전 사관과 진의 신념도 후기 근대사회의 자본축적 양식이 과연 지속 가능한가라는 관점에서 재조명되어야 합니다. 131

상선약수,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도는 보이지 않고 보이는 것 중에서 도와 가장 비슷한 것이 물이기 때문. 사람을 물로 보는 건 심하게 낮춰 보는 것입니다. 그것도 매우 시사적입니다.
1) 수선리만물,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기 때문. 물이 곧 생명입니다.
2) 부쟁, 다투지 않기 때문. 흐르는 물은 선두를 다투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산이 가로막으면 돌아가고 큰 바위를 만나면 몸을 나누어 지나갑니다. 응덩이를 만나면 다 채우고 난 다음 뒷물을 기다려 앞으로 나아갑니다. 절대로 무리하지 않습니다. 전과 쟁의 차이. 전은 피할 수 없는 것이지만 쟁은 방법의 문제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조정이 가능합니다. 노자가 말하는 위무위가 바로 부쟁입니다.
3) 처중인지소오,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곳에 처하기 때문에 상선입니다. 싫어하는 곳이란 낮은 곳 소외된 곳입니다. 물은 높은 곳으로 흐르는 법이 없습니다. 반드시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133

<노자>를 민초의 정치학이라고 합니다.
노자에는 도와 물, 그리고 민초가 같은 개념입니다.
유능제강, 이처럼 약하고 부드러운 물이 강한 것을 이긴다.
물은 궁극적으로 '바다'가 됩니다. 바다의 대적할 수 없는 압도적 위력은 가장 낮은 곳에서 모든 시내를 다 받아들이기 때문에 생깁니다.

하방연대 135
연대는 물처럼 낮은 곳과 하는 것입니다. 잠들지 않는 강물이 되어 바다에 이르는 것. 바다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61장. 핵심은 평화론. 대국자하류 천하지교. 노자가 이야기하는 대국은 바다입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모든 나라들이 연대하는 평화로운 세상을 그려 보이고 있습니다.
빈상이정승모 이정위하, 대국은 암컷처럼 생명을 기르고 야욕이 없는 허정한 모습으로 가장 낮은 곳에 처해야 한다. 패권추구가 아니라 생명을 키우고 평화를 완성하는 세계상을 그려 보이고 있습니다.

<노자>는 민초의 희망이며 평화의 선포(반전사상)라고 해야 합니다. 137




9. 양복과 재봉틀


<장자> 기계보다 인간을 중시하는 장자의 인간학. 반기계론.
'기사'(기계의 장점) 때문에 '기심'이 생긴다는 것. 마음이 생긴다는 것, 마음 속에 이러한 기심이 생기면 순수한 마음이 없어집니다. 일을 쉽게 하려고 하고, 힘 들이지 않고 그리고 빠리 하려고 하는 이런 기심이 생기면 순수하지 못하게 됩니다. 순백불비하면 신생부정이라고 했습니다. 신성은 생명력을 말합니다. 이 생명력이 불안해진다는 것입니다. 정처를 얻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생명력이 정처를 얻지 못하면 도를 실현할 수 없습니다. '139

도'의 문제입니다. '돈'의 문제가 아닙니다. 나는 장자의 이러한 관점이 대단히 성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기계의 신화 속에 갇혀 있는 우리에게는 더욱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장자 사상의 핵심은 '탈정'입니다. 갇혀 있던 우물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갇혀 있는 좁고 완고한 사유의 우물을 깨닫는 것입니다.

장자의 기계론은 '노동과 생명'에 관한 것입니다. 경제학에서 노동은 생산요소입니다. 그러나 장자의 체계에 있어서 노동은 생명 그 자체입니다. 경제학에서는 노동을 비효용으로 규정하고 최소이 희생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는 것을 경제원칙이라고 합니다. 경제원칙은 장자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기적이로 천박한 사고입니다.

우리 사회의 열악한 노동 현실 때문에 노동에 대한 관념이 부정적입니다. 사실은 노동하지 않는 생명은 없습니다. 더 정확하게 정의한다면 노동은 '생명의 존재형식'입니다. 첫 시간에 공부는 달팽이도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생명은 노동합니다. 한 송이 코스모스만 하더라도 어두운 땅 속에서 뿌리를 뻗고 계속해서 물을 길어 올리는 노동을 하고 있습니다. 노동은 생명이 세상에 존재하는 형식입니다. 그것을 기계에게 맡겨 놓고 그것으로부터 내가 면제된다고 해서 행복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기계의 효율을 통하여 더 많은 소비와 더 많은 여가를 즐기게 된다면 그것으로써 사람다움이 완성된다고 할 수 있을까요? 노동경감과 소비증대가 답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노동 자체를 인간화하고 예술화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147

장자는 최고의 자유주의 사상가로 불립니다. 장자의 반기계론도 사실은 자유론입니다. <노자>에는 궁극적 도의 존재가 전제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그 도를 찾아가는 일입니다. 그러나 <장자>의 경우에는 우리가 찾아갈 도는 없습니다. 우리가 길을 뚫고 만들어 가야 합니다. 불교의 천상천하 유아독존과 같은 차원입니다. 등산로는 미리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다님으로써 만들어집니다.

장자 1장, 붕새와 메추리, 사람들이 갇혀 있는 인의예지라는 사회적 가치가 초라하기 짝이 없습니다.

<노자>에는 도를 실현하는 방법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선하지, 부쟁입니다. 노자는 사회담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장자>의 경우 그것은 이리화정입니다. 리가 아닌 정이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합일과 소요입니다. 이처럼 장자의 자유를 극한까지 밀고 가면 일체의 사회적 가치가 부정되고 일체의 문화적 소산이 무의미해집니다. 장자를 최고의 체제 부정의 사상ㅇ가, 아나키스트라고하는 까닭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장자가 중시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생명'입니다.
경물중생, 물은 가볍고 생명이 중합니다. 춘추전국시대는 목숨을 부지하는 일이 그 어떤 것 보다 절실한 때이기도 했습니다. 민초들은 기본적으로 지배 권력의 반대편에서 자기 생각을 집대성해 갑니다. 우리가 <장자>의 독법을 탈정으로 삼는 까닭도 그렇습니다. 인의예지라는 지배권력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포섭되지 않아야 한다는 민초들의 사유를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시대가 갇혀 있는 수많은 우물들을 생각하기 위해서입니다.

후기 근대사회는 그 포섭 기제가 어느 때보다 막강하교 정교하기 때문입니다. 물리적 규제가 아니라 삶의 정서 자체를 포획함으로써 갇혀 있다는 자각마저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장자의 탈정과 성찰은 대단히 중요한 우리 시대의 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152


10. 이웃을 내 몸 같이

<묵자>
무감어수 감어인
물에 비추어 보지 마라, 사람에게 비추어 보라.
거울에 비추어 보면 외모만 보게 되지만, 자기를 다른 사람에게 비추어 보면 자기의 인간적 품성이 드러납니다. 이 금언은 반전 평화론이 교훈입니다. '사람에게 비추라'는 오 나라 왕 부차, 진나라 지백의 고사에 비추어 보라는 뜻. 이 사람들에게 비추어 보면 공격전쟁이라는 것이 결국은 패방의 길이라는 것을 잘 알 수 있다는 겁니다.

서주 시대의 72개 제후국이 전국시대가 되면 7개국만 남습니다. 전국칠웅. 결국 진나라로 통일됩니다. 전국시대에는 모든 나라가 패망의 위기에 내몰리고 있었습니다. 묵자느느 전쟁 방식의 부국강병이 결국은 패방으로 끝나는 흉물임을 역설합니다. 전쟁비용을 평화적으로 사용한다면 얼마나 민생이 나아질 것인가를 아울러 역설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묵자의 반전론을 호출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반전 평화론은 전국시대의 모든 사상을 압도하는 최고의 사상임에 틀립없습니다.

진나라 초가지도 천하의 현학은 유묵이라고 했습니다. 유가와 묵가가 대세였습니다. 중국 역사에서도 진한 이후로 묵가는 자취를 감춤니다. 중앙집권적인 절대군주제와 관료제가 확립되면서 평등사상의 사회경제적 기반 자체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묵자는 다른 제자백가들의 사상이 도가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사군자 즉 중간계급과 귀족들의 사상임에 반하여 <묵자>는 기층민중을 대변하는 사상입니다.

묵가 사상의 핵심은 상현, 상동, 겸애
상현 : 신분에 관계없이 현자를 천자로 모신다
상동: 모든 사람들을 평등하게 대하는 것
겸애: 똑같이 사랑하는 것.
비공 : 공격전쟁 반대
절용: 물건을 아껴 쓰는 것
절장 : 장례를 간소화 하는 것
비명 : 운명을 거부하는 주체성 천명이란 없다. 그것은 폭군이 만든 것이다.
비유 : 유가에 대한 비판. * 유가는 본질적으로 왕이나 지배 계층에 기생하며, 괜히 오르내님의 절차를 번잡하게 하고, 슬픔을 강조하는 등 불필요한 예를 만들어 내는 무리라고 비판합니다. 162
~ 이러한 현실의 궁극적 원인을 바로 서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라는 것이 묵자의 결론입니다. 근본해결방법은 세상 사람들이 서로 차별없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차별없이 사랑할 때 평화로워진다는 것입니다. '겸애' 사상입니다. 겸애는 기본적으로 계급철폐의 평등사상입니다. 163

애인약애기신,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 164

묵자학파는 기층미중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면 우 임금 당시의 공동체 사회를 모델로 하는 강력한 실천적 집단입니다. 169

춘추전국시대는 진나라에 의해서 통일되고 국가는 중앙집권 준주제와 관료제로 재편됩니다. 기층 민중들을 대변하고 겸애와 교리, 평등과 평화를 주창하던 묵가는 역사 무대의 뒤편으로 사라집니다. 묵자학파의 사회적 지반 자체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후 2천년간 잊힙니다. 1910년대이 5.4운동, 신청년운동과 함께 좌파 사상이 고조되면서 묵자가 잠시 세상에 알려지지만 천지라는 하느님 사상과 비폭력 사상 때문에 중국공산당으로부터 배격됩니다. 이후 좌파 사사이 겪을 곤로한 경로를 미리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70


11. 어제의 토끼를 기다리며

<한비자>
법가는 제자백가이 공리공감과 낡은 생각을 비판합니다.
수주대토. 어제 일어났던 일이 오늘도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제자백가들을 풍자한 것. 세사변, 세상은 부단히 변하는 법이니 행도 역시 바뀌어야 한다는 것. 이것이 법가의 변화사관입니다. 법가는 옛 성와이 아니라 후황 즉 금왕의 현실에 충실한 사상입니다. 변화와 현실을 존중하는 법가 사상을 순자의 개념을 따서 후왕사상이라고도 합니다.

제자백가는 법가를 한편으로 하고 나머지 제자백가 전부를 다른 편으로 하는 두 그룹으로 대별하기도 합니다. 법가가 후왕 사상임에 비하여 다른 모든 제자백가의 사상은 옛 성왕을 모델로 하는 복고적 사상입니다. 기본적으로 농본 사회의 과거 모델을 지향합니다. 법가는 실제로 전국시대를 통일했습니다. 그 사상의 현실 적합성이 검증된 학파입니다. 이 법가 사상을 집대성한 학자가 한비자입니다. 173

진나라에서 시작된 중앙집권적 관료 국가 체제는 이후 2천년 동안 지속되는 초안정 시스템으로 계승됩니다. 법가 사상은 전국시대의 사상입니다. 전국시대는 춘추시대와 달리 천자의 존재감이 거의 사라진 시기입니다. 그 만큼 제후국의 정치적 운신이 훨씬 더 자유로워진 시기였습니다. 일단 군주는 성왕일 필요가 없습니다. 군주는 권력을 장악해야 하고 위세가 있어야 하고 전문성이 있어야 합니다. 법가 사상은 제왕학이고 군주론입니다. 군주론이면서 법가인 까닭은 군주는 법을 만들지만 그 법은 성문화되고 공개됩니다. 법을 성문화하고 천하에 반포하는 공개 제도는 군주의 자의권도 규제합니다. 기원전 513년 진나라에서 형정을 만들었습니다. 형정이라는 것은 형법의 법조문을 솥에 새겨서 모든 사람들이 보게 하는 것입니다. 유가학파는 형정에 반대합니다. 그것이 귀족의 특권을 무력화할 수 있음을 직감했기 때문입니다. 유가는 중간계급입니다. 법가는 군주의 직접통치입니다. 비읍을 직접 통치하는 체제이며 중간계급을 관료로 대체합니다. 이러한 체제가 법가 통일의 요체였습니다.

예불하서인 형불상대부, 서주 시대 이래 널리 통용된 형집행 원칙. 예는 서민들에게 내려가지 않고 반대로 형은 대부에게 올라가지 않는다. 대부 이상의 귀족 계급은 예로 다스리고 서민들은 형으로 다스린다는 뜻. 법가는 이러한 차별을 철폐합니다. 유가는 서인들까지도 예로 다스려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법가는 이러한 유가를 현실을 모르는 이상주의자라고 하고 유가는 법가를 가혹하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현실은 법가의 원칙이 관철되고 있지 못합니다. 대바 이상은 예로 처벌하고 서인들은 형으로 처벌하는 것이 우리의 사법 현실입니다. 법가는 법 지상주의이면서 엄벌주의입니다. 177


22. 피라미드의 해체

이 글에서 함께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우리나라의 정치체계에 관한 것입니다. 조선조에는 두 개의 정치 체제가 있습니다. 의정부 중심제와 절대군주제입니다. 황희 정승이 의정부 중심제를 대표하였고, 한명회가 절대군주제를 대표하는 것으로 대비하고 있습니다. 의정부 중심제는 수평적 질서로서 주나라 정치 제도라고 하는 반면 절대군주제는 수직적 권력 구조로서 진나라 정치 제도라고 합니다. 조선조는 이 두 개의 정치체제가 교차합니다.

그 전에 조선의 건국과정을 몇 가지 관점에서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 번째 고려말의 현실입니다. 두 개의 모순이 거의 극한에까지 치달았습니다. 하나는 사회경제적 모순, 또 하나는 민족적 모순입니다. 고려말에 이르면 호강들의 토지침탈이 극에 달합니다. 호강과 소작인밖에 존재하지 않는 극심한 양극화가 일어납니다. 중소 재지지주와 자작농이 살아남지 못합니다. 또하나는 정치적 모순입니다. 원나라가 세운 심양왕이 오히려 구려왕보다도 위세가 큽니다. 친원파 권문세족이 정치를 전횡했습니다. 그들은 호강이면서 동시에 정치권력을 장악한 권력자들입니다. 원나라 공주를 왕비로 맞는 부마국이면서 충성 충자 임금이됩니다.

조건 건국은 이러한 두 가지 모순을 극복하는 정치 과정이었습니다. 모순 극복에는 사상과 주체가 동시에 등장해야 합니다. 사회변혁은 사상 투쟁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사상 투쟁은 그 투쟁을 견인해 나갈 주체가 있어야 합니다. 성리학이 개혁 사상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그것을 추진한 주체가 신진사류입니다. 부유한 자작농의 자제들이 개성으로 유학을 가고, 고려말 공민왕의 개혁 정치 등장. 사고추친 신돈이란 승려를 박탈하여 개혁. 그 개혁은 실패함. 신돈의 업적 중 성균관 중수도 들어감. 이색이 성균관 대제학이 되고 성균관을 중심으로 한 이색 스쿨에서 조선 건국의 엘리트들이 모임. 정몽주, 정도전, 권근, 이승인 등.

우리나가가 역사적으로 겪은 가장 큰 외부와의 충돌은 몽고, 일본과 겪은 두 차레의 충돌임. 몽고와의 충돌은 몽고 지배로, 일본과의 충돌은 일제식민지로 전략합니다. 384
몽고와이 충돌은 조선건국으로 지양되었음에 비해 일본과의 충돌은 그렇지 못합니다. 조선건국은 건국의 주체들이 열린 사고를 가졌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기본정신은 입헌군주제였습니다. 세계사적으로도 매우 앞선 정치 체제였습니다. 385

신진 관려들의 성리학도 상당히 진보적 사상이었습니다. 성리학은 조선 후기에 교조하되고 그것이 국망의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과도하게 폄하됩니다만, 성리학은 성명의리지학으로 양심 문제를 중심에 두는 중소재지지주의 정치 사상입니다. 중소 재지지주는 부재지주와 달리 농민들의 현실을 일상적으로 접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과도한 침학을 자제하고 절제와 겸손의 문화를 만들어 갑니다. 조선 건국의 이러한 사상적, 문화적 토대는 오래 지속되지 못합니다. 건국 초에 정도전이 이방원에게 척살당합니다. 어느 왕조든 권력은 마상에서 나옵니다. 무력으로 나라를 세웁니다. 따라서 왕조 초기는 군이 강하고 신이 약합니다. 군강신약. 정도전이 구상한 의정부 중심제는 군약신강 체제인 입헌군주제였습니다. 이것을 이방원이 참지 못합니다.

정도전은 원나라 사신 영접을 거부하여 귀양갑니다. 그때를 시작으로 이후 8--9년간의 귀양살이를 합니다. 귀양살이는 정도전에게 공부하는 시기였습니다. 공부뿐만 아니라 농민들과 함께 생활하며 같이 농사짓는 등 엄청난 현실 경험을 합니다. 성리학은 물론이고 <불씨잡변>을 저술하는 등 고려사회의 지배이데올로기인 불교에 관해서도 해박한 지식을 쌓음.

정도전의 죽음으로 함께 조선건국의 구상이었던 의정부 중심제가 무너집니다. 절대군주제로 바뀝니다. 태종이 된 이방원은 척신들의 정치참여를 원천봉쇄합니다. 1392년 조선이 건국됩니다. 정확하게 100년 후가 되면 절대군주제는 자취가 거의 없어지고 훈구척신들이 토지와 정치권력을 장악합니다. 이때부터 사림이 개혁 주체로 등장합니다. 사람은 3대강 상류지역의 중소 재지지주들이 중심이 됩니다. 개혁 세력은 훈구보수세력과 싸움에서 판판이 깨집니다. 사림과 훈구 세력이 싸워서 사림이 화를 당하는 걸 사회라고 합니다. 무오사화 갑자사화, 기묘사회로 개혁 사림이 몰락합니다. 조광조가 죽고 나서 우리나라 개혁 세력들이 일대 반성을 합니다. 중앙에서 지방으로, 정치투쟁에서 사상투쟁으로 기동전에서 진지적으로 일대 전환을 합니다. 그래서 중앙에서 지방으로 내려가서 향교를 만들고 서원을 설립해 제자들을 교육합니다. 이 전환이후 50년 만에 성리학적 가치가 사회적 아젠다로 확립됩니다. 1568년 선조의 즉위는 아무런 정치적 사변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퇴계가 <성학십도>를 선조에게 바쳐 성리학적 가치를 정치의 근본으로 삼도로고 합니다. 391

조선중기가 되면 군약신강 구조로 바뀝니다. 훈구 척신 세력이 그만큼 강해집니다. 약한 군주가 신하를 통제하는 방법이 당쟁입니다. 신하를 분할 통치하는 방식입니다. 숙종이 이 시기의 대표적 임금입니다. 갑술환국 이후 남인들은 낙향하여 벼슬을 단념합니다. 그 이후 실학, 천주학도 정권에서 소외된 변방의 남인 중심으로 수용됩니다. 천주학은 당시 신분 사회에서 만민 평등의 개혁사상입니다. 민중 해방론, 여성해방론입니다. 395

한국 정치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또 한 사람이 있습니다. 개혁 군주 정조입니다. 정조의 개혁이 그의 죽음으로 좌절되고 안동 김씨, 풍양 조씨 등 몇 가문의 세도정치로 전략합니다. 세도 정치는 당파정치보다 정치 기반이 더 협소합니다. 지배계급이 자기들의 권력 기반을 사유화함으로써 조선조 후기에는 군약신약으로 전략합니다. 바햐흐로 민강의 시대가 개막됩니다. 연이는 농민반란과 동학농민혁명에 이르기까지 민중이 역사 무대에 등장합니다. 계급모순과 민족모순의 동시 타격을 겨냥한 투쟁을 조직해내고 있었습니다. 봉건 지배 계층은 외세와 야합하여 이러한 민중들의 요구를 유린하고 결국 식민지의 길로 들어섭니다. 396


23. 떨리는 지남철

강화학파와 양명학

정제두 선생(1649-1736)은 당쟁이 격화되었던 숙종 말년 서울을 떠나 강화로 물러납니다. 낙향하면서 양명학을 신봉한다는 사실을 밝힙니다. 양명학은 명나라 때 학자 왕수인의 아호를 따서 명명한 학파입니다. 양명학은 주자의 신유학에 대한 반론입니다. 주자학이 지주들의 정치학이라면 양명학은 그 당시 사회적 지위가 강화되기 시작한 상인계층을 대변하는 사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양명학의 핵심은 '심즉리'입니다. '마음이 진리'라는 것입니다. 주체성의 선언입니다. 주자학에서는 성즉리였습니다. 성이라는 것은 하늘로부터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심은 객관적으로 주어진 천명, 천성, 천리가 아니라 인간의 주체적인 실천이 진리를 담보한다는 주장입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선언과 다르지 않습니다. 왕양명이 데카르트보다 시기적으로 100년 앞섭니다. 상업윤리가 근대성의 혁심이기도 합니다. 심학 역시 주체적인 실천을 강조합니다. 양명학을 근대의 주체선언으로 보아서 크게 무리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양명학의 3강령은 심즉리, 치양지, 지행합일입니다. 치양지는 양지를 다한다는 뜻입니다. 양명학에서는 심을 양지로 보고 그 자체를 선량한 것으로 승인합니다. 맹자의 성선설과 맥을 같이 합니다. 모든 사람이 양지를 갖추고 있다는 것은 사민평등사상입니다. 신분사회가 아닌 근대적 인간관계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주자학은 지와 행을 선후관계로 놓습니다. 선지, 먼저 알고 후행, 나중에 행하는 구도입니다. 독서궁리, 책을 읽음으로써 진리에 도달한다는 논리입니다. 양명학에서는 독서가 진리에 도달하는 길이 아닙니다. 지와 행은 함께 나는 것입니다. 독서로 할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을 통해서 삶의 현실 속에서 진리를 만들어 내야 합니다.

강화학파의 학파로서의 전통은 이미 단절되었습니다만 비판담론으로서의 위상은 결코 바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진리와 물리에 대한 인식체계가 그렇습니다. 우리가 의지하는 이론이 현실과 모순된다는 것을 느끼게 될 때 우리는 대체로 두 가지의 대응방식을 취합니다. 첫째가 실사구시의 방식입니다. 현실을 중심으로 해결책을 찾는 것이 실사구시. 강화학에서는 이러한 실사구시의 방식을 '물리' 방식의 대응이라고 합니다. 강화학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진리'방식의 대응입니다. 진리란 이론의 준거틀을 재구성하는 것입니다. Here and Now 그리고 How가 물리방식의 실사구시라면, Bottom and Tomorrow와 Why가 진리 방식의 대응입니다. 보다 근본적인 개념을 재구성하는 것. 양명학과 강화학은 근본을 천착합니다. 403


 

▶ 신영복님의 <담론>을 읽고.

 

이 책은 신영복님이 암으로 돌아가신 후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라는 부재를 달고 나온 책이다. 그래서 애착이 더 가는 듯 하다. 사두기만 하고 읽지 못했는데, 이 모임에서 일게 되어 참 유익했다. 

 

아주 오래 전 내가 세상과 사람에 대해 '진정으로' 눈을 뜨고자 할 때 읽은 책 중 하나가 <감옥으로부터 사색>이었다. 무워라 말 할 수 없는 감동, 아마도 그것은 삶과 글에서 나오는 거부할 수 없는 진정성이었을 것. 이 책 이후에 나온 책들은 거의 다 읽었던 것 같다. 머리좋은 것 보다는 마음(가슴)이 좋은 게 낫고, 마음보다는 손이 그리고 손 보다는 발이 중요하다는 말씀, 물처럼 아래를 보고 살아야한다는 하방연대를 강조하신 그 말씀은 어느새 내 삶의 지침같은 것이 되었던 것 같다. 잘 실천하지는 못했지만 잊지는 않고 사는 그런 마음 속 가느다란 선같은 거. 

 

담론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앞부분에서는 중국의 사서 삼경의 고전을 포함하면서 주나라에서 춘추전국시대를 거쳐, 진과 한이라는 통일국가에 이르기까지 제자백가들의 사상을 담고 있다. 즉 공자, 맹자, 노자, 장자, 묵자, 법가(한비자)의 사상들의 핵심을 대비시켜주며 알려주신다. 후반부는 신영복님이 오랜 감옥생활 동안 겪은 에피소드를 양념처럼 치면서 무엇보다 강자의 논리를 내세운 근대식민, 자본주의 체계가 불러온 문제점들 특히 인간 본성의 훼손에 대해, 그리고 그것의 회복 가능성에 대해 알려주신다. 앞부분은 세계에 관한 이해를 뒷부분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를 생각해 볼 수 있기 위함이라고 하셨다. 

 

이 책을 읽으며 좋았던 점은 너무나 자주 들어왔던 소위 고전과 공자, 맹자, 순자, 노자, 장자 등의 사상들이 출현하게 된 그 역사적 맥락과 한계를 긋고서 거리를 두고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또한 내용 사이 사이에 중국과 한국 왕조(국가)의 사상적 관계, 즉 주자학과 조선의 유학, 양명학, 동학의 맥락을 지적해준 부분이 좋았다. 

 

이 책을 함께 읽는 분들이 내용에 관해 소감과 발제를 해주실 것 같으니, 나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발제를 하고 싶다. 이 책의 전반부는 중국의 왕권국가의 확립시기까지 난립한 사상들을 신영복님이 자신의 입장과 관점에서 설명해주신 것이라고 보면, 중국고전이란 담론에 대한 또 하나의 담론이 되는 셈이다. '담론의 담론'이다. 내가 이 책에 대해 발제하는 글은 이 '담론의 담론'에 대한 또 하나의 담론인 셈이되고.

 

공자, 맹자, 순자, 노자, 장자, 묵자, 한비자 등의 사상은 중국이 여러 영주들에 의해 다스리는 봉건국가인 주나라에서 춘추전국시대의 혼란기를 거쳐, 진과 한나라의 왕권국가로 통일되기까지, 국가의 건립과 통치, 지배를 위해 토대가 된 사상들이라고 할 수 있다.  신영복님이 책에서 말했듯이, 국가란 전쟁을 토대로 하는 폭력과 지배체계이며 이 체계의 사상적 토대가 된 것이 제자백가의 사상이라할 수 있다. 또한 이 사상들은 중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주나라의 종법제와 같이 우리나라에도 도입되어 조선 왕조의 통치이념이 되었다. 현재도 많은 사람들이 고전을 읽으며 개인적인 삶의 지침이나 조직, 정치의 운영원리에 적용하고 있다. 무엇보다는 이 사상이 소수의 지배자의 통치이념이라는 점, 누구나의 존엄과 평등을 전제하지 않는, 위계와 (폭력적) 지배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평민과 그 외 소수자의 관점은 누락되었다는 점에서 누구나가 자신의 삶과 조직운영의 지침으로 삼을 수 있는 보편, 타당한 원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흔히 말하는 공자왈, 성인군자는 이렇고 소인배는 이렇다라는 말들 속에서 '인'(사람)이란 범주에 여성과 아이는 제외된다는 사실을 상기해 본다. 

 

예전에 최훈의 소설을 토대로 한 <남한산성>이라는 영화를 보고 뜨악한 장면이 있었다. 청나라가 조선을 침범한 병자호란때 이야기인데. 청나라 오랑캐를 징벌하자 주장했던 척화파인 김상헌(김윤석 분)은 남한산성을 끝내 지키지 못하고 조선이 오랑캐 청나라의 신하국가로 전략하고, 명나라에 대한 신의를 잃게 되자 자결을 한다. 김상헌의 자살을 보고, 도탄에 빠진 백성을 수습할 생각은 안하고, 단지 명분(아버지 나라 명나라-조선의 아버지 왕에 대한 충성)을 위해 자결하는 것도 한심했지만, 그가 자결하기 전에 처 자식을 손수 칼로 쳐서 죽이는 장면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여러 봉건국가인 주나라를 다스리기 위해 도입한 종법제가 생각났다. 종법제는 나라와 집안의 주인은 한 사람(그것도 적장자인 남자)만 있을 수 있고, 그에게 생사여탈권이 주어지며, 그에 속하는 사람들은 무조건 주인을 공경하고 그에게 복종해야 한다(충효)는 지배 이데올로기이다. 중국 명나라의 왕 - 조선의 왕 - 가족의 아버지(가부장)으로 이어지는 위계와 지배의 체계를 김상헌이 자결과 처자식 살해로써 실현하였던 것이다. 영화 속 김상헌의 아내와 아이들에게 아버지에게 살해되는 일이 그럴법한 이치로 응당 받아들일 만한 일이었을까? 그건 종법제를 만들고 운영한 체계와 지배자들의 입장인 거고, 아내와 아이들에게는 더할 수 없는 끔직한 폭력이었을 것이다. 부성이라는 인간 본성(천륜)에 반하고 역행하는 명분이라는것이 대체 뭐라고. 

 

 

발제 : 현재 우리 삶에 어떤 식으든 영향을 미치고 있는 종법제(혹은 유교사상)에 관해 이야기 해보면 좋겠다. 

 

 

아 그리고 또 한가지는 이 책에서도 언급하시는데, 우리나라가 조선말에 숫한 당쟁을 지속하면서 개혁을 실패하고 일제 식민지배를 받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일은 동학혁명의 실패였다는 점이다. 동학혁명이 성공했다면 일제의 식민지배와 서구의 근대체제를 따르지 않을 수도 있었을지도. 이전에 한자경님의 <한국철학의 맥>에서도 읽었듯이 동학의 평등사상, 그것의 실현이 중요함을 다시 한번 상기할 수 있었다. 

 

(인용)

주나라 종법질서 : 천자의 맏아들의 친아들이 천자가 되고 둘째 아들은 제후가 되는 제도. 제후의 맏아들은 제후가 되는 제도. 제후의 만드들은 제후가 되고, 둘째 아들은 대부가 됨. 이렇게 하여 당시의 72개 제후국은 혈연관계임. 가족질서이면서 동시에 국가질서임. 충효일체입니다. 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