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을 위한 변론
식물을 위한 변론
맷 칸데이아스
머리말, 내가 식물을 변론하는 이유
인터넷을 뒤지고 책을 펼쳐도 식물에 관한 인기 있는 문헌 대부분은 민속과 약초학이 중심이다. 예를 들어 흑곰에 대한 정보를 찾는 다고 해보자. 이렇 때 가장 널리 알려진 정보가 그걸 어떻게 토막 내어 내장을 처리한 다음 엑기스나 식품을 만드는지에 관한 것뿐이라면 어떨까? 분별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현실에 당연히 분개할 것이다. 저 동물은 인간에게 유용한 신체 부위 이상의 존엄 받아야 할 존재이니까. 하지만 그런 사람들도 식물에 대해서는 아무렇지 않게 다른 기준을 들이대고 만다. 식물에 대한 관심은 인간이 식물에 관해 제대로 알기도 전에 절정을 이룬 뒤 멈춰 버린 것 같다. 5
하지만 이미 과학은 식물이 새나 포유류처럼 카리스마 있는 생명체를 뒷받침하기 위해 조용히 존재하는 배경화면이 아님을 밝혀냈다. 식물 역시 생명의 드라마에서 능동적인 등장인물 중 하나다. 무엇보다도 식물은 우리가 아는 모든 생명을 책임진다. 지구의 모든 육상 생물 군계가 식물에서 시작하며, 수중 생물 군계도 예외는 아니다. 심해 열수구를 제외한 지구의 수생 시스템 전체가 조류, 해초, 식물성 프랑크톤, 혹은 육지에서 물에 씻겨 내려간 식물의 광합성에 의존한다. 5
이 책에서 나는 식물이 세상에 대한 내 관점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이야기하고자 한다.
나 자신은 인간이 생각하는 어떤 형태로든 식물에게 의식이 있다고 믿지 않음을 명확히 밝힌다. 나는 토론의 주제로 식물의 의식을 논하는 것은 상상력의 부재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식물은 뇌가 없다. 신경계도 없다. 우리가 아는 한, 식물에 중앙 처리 장치같은 것은 없다. 식물은 대개 화학물질이 확산하며 보내는 신호를 통해 작동한다. 그러므로 식물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태도는 인간의 자기도취적 사고에서 비롯한 자만심의 소치다.
진화에는 작인이 없고, 진화는 계층적 과정이 아니다.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는 현재 가용한 것과 함께 움직이면서, 제대로 작용하지 않은 것은 도태시키고 잘 작용하는 것은 번식할 때까지 살게 함으로써 보상을 준다. 진화는 생각도 감정도 없는 자연의 힘이다. (그렇지만) 독자들이 책을 덮으며 진화가 놀라운 방식으로 이 행성의 모든 생명체를 빚어 왔음을 느꼈으면 한다.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