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없이 빛을 보다
'모른 체하기'와 개입의 존재론
김영민
서문, 한끝
이 책은 나로서는 한 끝을 보는 것이다. '끝은 곧 새로운 시작終就 再始이며, 누구의 말처럼 '학문상의 모든 성취는 곧 새로운 질문을 뜻할 뿐이지만, 의견을 품고 변화하는 세상 속을 건너가는 사람의 길에는 곡절과 매듭이 있고 숙제와 기약이 있다. 나는 항용 인간의 세상을 절망으로 여기는 중에도 희망의 자락을 얻고자 애썼고, 이를 공부길의 지혜狹智 속에서 어렵사리 얻는 열매로 여겼다. 다만 성이불거成而弗居라 했으니, 한 끝이 있었고 또한 처음 이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이 책은 긴 독서와 나름의 실천에 터한 것으로서, 인간에게 가능한 지혜에 관한 이야기다. 어떤 삶의 형식이 이윽고 존재론적 겸허를 이룰 때 가능해지는 희광熙曠, empty luminosity을 추적한다. 정신적 존재인 인간이 어떻게 한없이 어리석을 수 있는가,그리고 그 무명無明의 암둔에서 어떻게 나올 수 있는가에 대한 탐색이기 때문이다. '(자기) 개입'의 문제를 돋을새김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고금동서의 공부와 수련에서 항용 에고의 결학을 지적하고, 이를 타파하지 못하면 새 길이 없다神人無고 말 한 게 당연하다. 개입의 존재론에 밝아지면 독존의 환상이 깨지고 다른 인식과 윤리가 생성된다. 내가 꾸미고 실천한 공부론이 곧 '나보다 큰 나'의 가능성에서 이 앎과 삶을 재구성한 것이다. 실은 그 모든 공부의 실천이 곧 공부론인데, 그것은 주체의 전방 위적 개입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알면서 모른 체하기'의 인식론과 윤리학은 이런 중에 조형된 것이다. 개입의 존재론과 알면서 모른 체하기의 인식론은 인간의 가능성과 공부의 새로운 실천을 '무의식의 기원에서 보기'라는 실험으로 집약하기도 한다. 말이 부족해 무의식이라고 했지만, 이는 인간의 정신을 매개 삼아 불이의 형식으로써 정신과 자연과 몸이 일체를 이루는 '창의적 퇴행'의 방식이다. 분석과 분별의 유익함은 오래된 미래를 향한 거대한 통합의 길 위에서만 제 몫의 가치를 얻는다. 사과와 달의 움직임에서 닮은 이치를 관지貫之한 것처럼, 나는 대학이 놓치고 수행자들이 풀지 못한 인간의 이치를 관지해볼까 하는 것이다.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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