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성게_정화 29

제30구. 본래부동명위불불(舊來不動名爲佛)

(법성게) 제30구. 본래부동명위불불(舊來不動名爲佛) 옛부터 움직이지 않아 부처라 이름하네 옛부터 그대로인 빈 마음의 중도실천을 부처님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형상이나 이념의 명사화를 떠나, 동사의 관계 속의 변화인 비로자나 부처님으로 이름붙여진 연기실상을 말합니다. (법계의 노래) 나눌수록 작아지는 것을 독점하려는 탐욕도 쉬고 바람이 이루어지지 않아 일어나는 성냄도 없으면서 어울림만으로 살아가는 연기법을 사무치게 알 때 무상한 관계의 변화가 깨달음이 되고 함께 사는 삶이 자기가 되니 걸음걸음마다 평화로움으로 가득한 삶 부처님의 삶이 됐습니다. 깨닫고서 부처님의 삶이 되긴 했지만 나눌수록 커지는 법계의 생명나눔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삼독에 흔들린 적이 없어 옛부터 움직이지 않아 부처라 하지요. 허나 ..

법성게_정화 2020.01.23

제29구. 궁좌실제중도상(窮坐實際中道床)

(법성게) 제29구. 궁좌실제중도상(窮坐實際中道床) 마침내 실제의 중도자리에 앉으니 중도의 자리란 어느 특정한 시공의 자리가 아니라, 온 생명이 어울려 있는 한 삶으로서의 자리를 말하고 이것을 화엄이라고 합니다. '마침내'란 다시 처음을 포함한 말로, 처음과 끝이 없는 데서 처음과 끝을 세우니 그것이 진여법계에서 말하는 중도의 자리입니다. (법계의 노래) 깨달음을 향해 수행하고 있지만 수행으로 깨달음을 얻는 것도 아니고 깨달음으로 삶이 완성되는 것도 아니니 생명의 활동은 언제나 인연으로 깨달음을 나투고 있어서지요. 그러므로 마침내 깨달음에 앉는 것이 아니지만 집착된 마음을 쉰다는 뜻에서 보면 깨달음이 없는 것도 아니므로 수행은 중생이 부처되는 길.중도 중도란 생사를 싫어하는 마음도 쉬고 열반을 좋아하는 ..

법성게_정화 2020.01.22

제28구. 장엄법계실보전(莊嚴法界實寶殿)

(법성게) 제28구. 장엄법계실보전(莊嚴法界實寶殿) 법계의 참된 보배궁전을 장엄해 법계의 참된 보배궁전을 장엄하는 것은 깨어 있는 수행자의 마음입니다. 깨어 있는 마음만이 삶의 온전한 모습이고 법계의 실상이기 때문입니다. 법계를 장엄하는 다라니의 한없는 보배란 마음 마음이 인연따라 한 없는 모습으로 빛이 되는 것입니다. (법계의 노래) 법계의 인연으로 스스로 그러할 뿐 한 번도 꾸미려 한 적이 없으면서도 뭇 생명들에게 한없이 넓고 깊으며 장엄된 세계를 연출하니 미묘한 세계가 됐습니다. 그러므로 꾸미려 하는 것이 오히려 미묘한 법계의 장엄을 놓치고 허상을 장엄으로 삼아 꾾임없이 겉도는 삶이 되지만 꾸밈없는 마음은 법계의 장엄이 되어 마음마다 장엄된 법계를 사니 법계는 장엄하려는 마음에 의해서 장엄되는 것이..

법성게_정화 2020.01.20

제27구. 이다라니무진보(以陀羅尼無盡寶)

(법성게) 제27구. 이다라니무진보(以陀羅尼無盡寶) 다라니(연기실상)의 다함 없는 보배로 순간군간 깨어 있는 마음이 법계를 이루는 보배이고, 이 마음은 늘 새롭게 세계를 빛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다함 없는 보배인 깨어 있는 순간순간의 한 마음이 바로 연기법계의 총상이 되어 모든 것을 거두고 있기 때문에 이를 다라니 곧 총지라고 합니다. (법계의 노래) 법계는 시절인연따라 그렇게 흐르는 것 봄산이 푸르고 가을 산이 붉은 것이 법계의 인연으로 보배가 되니 시절인연이야말로 화엄의 다라니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온전히 드러낸 장엄된 법계 그래서 인연을 꿰뚫어 알아차리는 마음이 꽃으로 장엄된 보배며 다라니 (강설) 다함없는 불성의 빛으로 상을 갖지 않는 것이 있는 그대로의 마음이며 법계가 됩니다 상에 끄달리는 것은 ..

법성게_정화 2020.01.19

제26구. 귀가수분득자량(歸家隨分得資糧)

(법성게) 제26구. 귀가수분득자량(歸家隨分得資糧) 집(불성)에 돌아가 분에 따라 자량을 얻네 근본마음자리를 드러내는 데는 지금 쓰고 있는 마음 밖에 따로 얻을 자량이 없습니다. 이 마음 그대로 법계 전체에 보배를 보내고 있는 것이고 그 보배로 일체 중생의 온 삶이 있는 것입니다. (법계의 노래) 법을 알지 못하면 집에 있다고 해도 지친 나그네와 같고 안목이 열리면 나그네 길도 집이 되리니 돌아갈 집이란 마음이 빈만큼 생명의 덕을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간으로 평안함을 나누는 것이지만 갇힌 안목은 스스로조차 가두어 집도 집이 아니지요. 그러므로 어디에도 매임없는 발걸음이 스스로의 집이 되지 못한다면 아직 지친 나그네 수행자요 걸음마다 매임없는 인연이 될 때 무상을 벗으로 하는 지치지 않는 나그네이면서 해탈의..

법성게_정화 2020.01.18

제25구. 무연선교착여의(無緣善巧捉如意)

(법성게)제25구. 무연선교착여의(無緣善巧捉如意) 분별을 떠난 교묘한 방편으로 뜻대로 여의보배를 잡아 분별 없이 그저 지켜보는 수행으로 모든 것이 마음자리의 나툼임을 알게 되기 때문에 무연이라 합니다. 또한 마음 없는 데서 마음을 나투어 중생의 세계가 그대로 부처님의 세계를 이루게 하니 방편이라고 합니다. (법계의 노래) 뭇 생명은 인연에서 생명으로 있으나 인연이란 결정된 것도 아니며 전혀 관련 없는 것이 인연을 이루는 것도 아니니 인연이라고도 할 수 없고 인연이 아니라고도 할 수 없는 것이 인연으로 있으면서 생명으로 서로를 생명으로 있게 하지요. 그러므로 하나의 생명은 그 자체로 모든 것을 담아내는 것입니다. 곧 아무런 결정성이 없는 없음無이야말로 인연의 장을 이룰 수 있으니 결정댔다면 인연이 될 수 ..

법성게_정화 2020.01.16

제24구. 파식망상필부득(叵息妄想必不得)

(법성게)제24구. 파식망상필부득(叵息妄想必不得) 망상도 쉬지 않고 열반도 얻지 않으나 우주법계와 함께하는 연기실상 속에서, 한 생각이 일어나는 순간 생각흐름을 그대로 두고 빈 마음으로 지켜 볼 때, 곧 근본 빈 마음자리에서 생각의 흐름을 지켜볼 때, 생각생각이 부동심이 되어 그 자체로 망상이 쉬게 되고 본디 마음자리가 훤히 드러나게 됩니다. (법계의 노래) 쉬려고 하면 망상이 되고 얻으려 하면 번뇌가 되니 쉬려고도 하지 않고 얻으려고도 하지 않으면 어느새 번뇌도 망상도 구름 걷히듯 하리니 망상이란 나의 생각이 진리가 될 대요 번뇌란 그 진리가 언제나 저만치 떨어져 있어 잡을 수 없기 때문이지요 한 생각 돌이켜 그저 인연이 생각으로 일어난 줄 알고 모든 것이 무상한 인연의 흐름일 뿐 다시 진리가 따로 없..

법성게_정화 2020.01.15

제23구. 시고행자환본제(是故行者還本際)

(법성게) 제23구. 시고행자환본제(是故行者還本際) 그러므로 수행자는 마음자리에 돌아와 수행자란, 생각생각에 개념으로 파악하는 모든 상을 여의고 마음 일어나는 그 자리에서 무념무상으로 무심일 때를 말합니다. 마음이야말로 진정한 수행자의 전부입니다. 거짓없는 빈 마음을 그대로 쓰는 것이 수행자가 자신의 자리에 돌아온 것으로 본디 모습입니다. (법계의 노래) 삶 이면의 어떤 곳에 근본 실제인 마음 자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일어나는 마음마다 본래부터 이웃들이 베푸는 덕으로 가득차 있음을 사무치게 알아차려 마음 밖에서 실제를 찾지 않는 순간 찾지 않는 마음 그 자체가 우주 법계의 베풂에 동참하는 근본실제인 마음자리가 되니 새삼스럽게 돌아간다는 말도 맞지 않지요. 그러나 마음 밖에서 실제를 찾던 마음을 쉬고 평안..

법성게_정화 2020.01.14

제22구. 중생수기득이익(衆生隨器得利益)

(법성게)제22구. 중생수기득이익(衆生隨器得利益) 중생들은 그릇따라 이익을 얻네 닫힘 마음의 중생업을 버릴 때, 해인삼매 가운데서 동일시공과 무한시공에서 사는 모든 중생과 사물이 제 모습대로 삼계에 살면서 삼계를 벗어나 있음을 알게 됩니다. 해인삼매의 끝없이 열린 시공에서 한없는 공덕으로 서로 열린 세계의 빛을 나누고 있는 것, 이것이 화엄에서 말하는 이익입니다. (법계의 노래) 우주 법계는 바람없이 나누는 베풂으로 근원적인 생명활동을 하고 있으니 법계와 관계없이 스스로의 힘만으로 서있는 듯한 착각으로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 것을 사는 이유로 삼고 욕망을 채우려 하는 것은 법계의 삶을 등지고 스스로 중생의 삶을 만드는 것이지요. 그러나 욕망의 대상은 본래부터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소유된 욕망이 사회..

법성게_정화 2020.01.13

제21구. 우보익생만허공(雨寶益生滿虛空)

(법성게) 제21구. 우보익생만허공(雨寶益生滿虛空) 중생을 이롭게 하는 보배비가 허공에 가득하니 빈 마음이 되어 조그만 바람마저 없어졌을 때 도솔천의 삶을 뛰어넘어 비로자나 부처님의 삶을 그대로 사는 것입니다. 삼라만상 낱낱은 비로자나 부처님의 지혜덕상으로 보배 중의 보배입니다. 곧 온 우주가 비로자나 부처님의 지혜덕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법계의 노래) 뭇 생명들은 모두 이웃하는 생명들의 덕으로 살아가니 이웃으로 퍼지는 생명의 힘이 서로를 살게하기 때문입니다. 곧 살아가는 모든 곳이 서로에게 베푸는 덕으로 가득하니 허공은 그저 허공이 아니라 생명들이 베푸는 덕으로 가득한 곳이지요. 텅 빈 듯 보이지만 덕으로 가득 차 있는 법계의 빈 모습이 인연따라 제 모습을 이루는 것이 드러난 생명이니 생명들의 인..

법성게_정화 2020.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