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성게_정화

제27구. 이다라니무진보(以陀羅尼無盡寶)

백_일홍 2020. 1. 19. 12:03

(법성게) 제27구. 이다라니무진보(以陀羅尼無盡寶)

다라니(연기실상)의 다함 없는 보배로

 

순간군간 깨어 있는 마음이

법계를 이루는 보배이고, 이 마음은 늘 새롭게

세계를 빛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다함 없는 보배인 깨어 있는 순간순간의 한 마음이 바로

연기법계의 총상이 되어

모든 것을 거두고 있기 때문에 이를 다라니

곧 총지라고 합니다.

 

(법계의 노래)

 

법계는

시절인연따라 그렇게 흐르는 것

 

봄산이 푸르고

가을 산이 붉은 것이

법계의 인연으로 보배가 되니

 

시절인연이야말로

화엄의 다라니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온전히 드러낸

장엄된 법계

 

그래서 인연을 꿰뚫어 알아차리는

마음이

꽃으로 장엄된 보배며

다라니

 

(강설)

다함없는 불성의 빛으로

 

상을 갖지 않는 것이 있는 그대로의 마음이며 법계가 됩니다 상에 끄달리는 것은 중생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참된 삶, 깨달음의 세계인 법계 비로자나 부처님을 등지는 것입니다. 상을 버리는 것이 스스로 본디 모습인 연기실상의 법계로 사는 것입니다. 232

 

상은 말과 생각으로 나타내는 모든 것입니다. 지금 상을 떠난 세계를 설명하고 있지만 이것 또한 방편인 말을 빌려 쓰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무상, 무아의 본디 모습을 확실히 증득하고 무념무상의 마음 쓰기가 상을 떠난 깨달은 삶입니다.

 

상을 갖는다는 것은 제한된 시공을 사는 것이며 무념무상이란 시공의 제한을 떠나 언제나 전체로 사는 것입니다.

 

한 생각 일어남이 우주법계의 일어남이요 한 생각 사라짐이 우주법계의 사라짐입니다. 물론 겹쳐진 다른 모습의 한없는 우주 모두가 한 생각과 함께 세워진 것입니다. 그래서 중중무진법계라고 하는 것이지 중중무진업계 가운데 한 우주법계가 생각의 일어남 사라짐과 함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드라망의 한 구슬이 중중무진으로 펼쳐진 인드라망 구슬 전체를 나타내고 있듯이 한 생각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한 생각이 연기법계를 세우는 것이지 주어진 연기법계에서 한 생각이 물거품처럼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와 같이 한 생각이 연기법계의 총상이면서 별상 등으로 육상 모두가 그 가운데 들어 있습니다. 한 생각이 우주법계의 연기실상을 모두 드러내 보이고 있으므로 총지라고 하며 다라니라고 합니다.

 

그래서 다라니는 한 생각이자 연기실상이자 공성이자 우주법계입니다. 연기법계란 무상, 무아, 열반의 다른 이름이며 시공을 벗어나 있으면서도 시공 그 자체입니다.

 

이 관계에서 중생은 제한 된 시공만으로 자아를 삼고 그것으로 온갖 사물의 잣대를 삼습니다. 그래서 시공이면서 시공을 벗어난 색 그대로 공인 다라니의 총상을 보지 못하고, 시공을 벗어나 있으면서도 온갖 시공으로 제 모습을 나투는 공 그대로 색인 다라니의 별상을 보지 못하는 안목을 갖는 것입니다.

 

수행으로 말미암아 중생업인 말과 생각이 일어나기 전의 법계실상을 보게 되면 한 발자국도 불성이 여실하게 나타난 세계를 떠난 적이 없음을 알게 됩니다. 불성이란 중생이 안에 있는 부처가 되기 위한 어떤 것이 아닙니다. 드러나 있는 법계가 그대로 불성이고 이것은 제한된 생각과 말을 떠나 있습니다. 234

 

따라서 공부하는 사람은 어떠한 상도 가져서는 안됩니다. 상을 갖는 순간 마음 밖에서 마음을 구하는 것이 되고 아울러 모든 것들이 자성을 갖고 있다고 여기게 되면서 삶의 실상을 알지 못하게 됩니다. 말과 생각을 빌어 가르침이 전해지고 있지만 그 가르침조차도 수행자를 벗어난 별개의 가르침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스승과 제자와 가르침이 연기관계로서 새로운 세계를 순간순가 열고 있는 것이고, 같은 가르침인 것 같지만 같은 것이 아닌 것도 여기에 있습니다.

 

순간순간 깨어 있는 마음이 법계를 이루는 보배이고 이 마음은 늘 새롭게 세계를 빛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다함 없는 보배인 깨어 있는 순간순간의 한 마음이 바로 연기법계의 총상이 되어 모든 것을 거두고 있기 때문에 이를 다라니, 곧 총지摠持라고 하고 있습니다. 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