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깨칠 뻔하였다_김영민 31

인물평의 인문학

'인물평'이라는 비평의 형식. 인물평은 살과 과녁에 비유하자면 날아다니는 새를 맞추는 것처럼 그 태세에서 역동적인 균형이 필요한 일이다. 비평의 주체는 그 자신의 재능이나 성향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이른바 자기관찰은 거의 '맹점'과 겹친다고 할 만한다."모든 관찰은 자신의 구별을 그 관찰의 맹점으로 이용하고 관찰에 있어서 그 관찰이 사용하는 구별을 관찰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 모든 인물평의 과정은 필경 자기관찰과 자기평가의 문제를 제기하기 때문. 실로, '내(네)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없을' 법하다. 자기관찰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과제다. 여기에서도 그 높낮이가 어렵지 않게 드러나긴 한다. 내가 만나 대화해본 수많은 이들 중에는 특별히 자기관찰에 곤란을 겪는 이들도 더러 ..

통신표

도량을 키우지 않은 채 지식만을 들이쟁이면 안 됩니다. 이는 "똥 싸고 매화타령 하는 꼴'이고, 과적한 배처럼 반드시 침몰합니다. 애증의 저울대에서 벗어나, 앎 그 자체의 실효성에 집중하도록 애써야 합니다. 좋아하고 미워하는 쏠림 속에 허덕여서는 십년 공부가 허송입니다. 자신의 존재가 만드는 형적과 그 후과의 개입을 유심히 깨단해서 행위와 윤리의 들목으로 삼아야 합니다. 어리석음은 자신의 그림자에서 시작합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기량과 솜씨를 연마하고, 이로서 주변에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십시요. 인생은 짧고,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312

장난으로라도

"사람의 마음은 꼭 사물을 접촉하고서야 생긴다. 그렇기 때문에 장난으로라도 나쁜 짓을 해선 안된다." 사람의 마음은 공인데, 그 빈 곳에 길을 내는 것은 오직 행위의 반복이다. 그러므로 일상의 자리가 마음의 자리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잡기를 꺼리는 이치는 중의적이다. 그것은 행여 잡기로써 마음이 접힐까 두려워하는 것이며, 거꾸로 잡기로써는 마음의 새 길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310

누구나 상대를 통과하거나 우회해서 자신을 표현하지만

"나는 내 자신에 대해 충분히 알 수 없다. 왜냐하면 나의 일부는 언제나 타인들의 알 수 없는 흔적이기 때문이다." 쥬디스 버틀러 남에게서 무엇을 배울 때에도 흔히 저항이 발동한다. 의외로 많은 게 그렇기 하지만, 이처럼 '학생-되기'도 하나의 '성취'다. 나는 선생 보다 더 애를 쓴 학생들을 알고 있다. 저항 없이 인용하는 것도 답답하지만 지나친 저항은 위험하다. 버틀러가 말한 '타자의 불가해한 흔적'은 특별히 교-학의 자리에서 도드라진다. 누구나 상대를 통과하거나 우회해서 자신을 표현하지만, '선생-되기'는 그 전형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좋은 학생은 자신이 자신에 대해 모르는 부분을 선생의 발화 속에서 염출해낸다. 307

생활의 일체를 진짜들의 그림자 안으로 꾸준히 옮겨가는 노력

"어느 게송을 하는 자가 말하기를, 내가 세상의 전부를 다 보았으나 부처님 같은 분은 없었다고 하였으니, 나도, 이제 그 같은 분을 반나러 가려고 한다." 추사 내가 아끼는 후배가 인사 속에 부처온 것인데, 과연 추사의 인끔이 느껴지는 글이다. 늘 말했것만 공부하는 일은 '그 사람'을 만나고 가까이 하는 일이다. 물론 그 사람이란 진짜배기를 말한다. 오늘 하학 몇과 어울려 이창동 감독의 을 보았다. 찔레꽃도 1년이면 볼 수 있기에, 8년을 꼭꼭 기다려 본 영화라 그런지 아쉬움이 없지 않았으나, 그가 '진짜'의 일종이라는 데에는 아무 이견이 없다. 무릇 공부라는 것은 내 생활의 일치를 진짜들의 그림자 안으로 가만히, 꾸준히 옮겨가는 노력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풍량을 만나도 혼이 빠질 정도의 진짜배기를, ..

복종과 의무를 즐길 수 있는가

제 마음대로 구는 짓이 즐겁지 않을 때가 오면 그제서야 '고부'의 기별을 받은 셈이다. 이는 자유에 대한 다른 감각을 얻는 일과 닮은 체험이다. 그러나 그런 기별은 대체로 이미 늦었다. 그렇기에 공부는 진작에 '강제로', 가까스로 하는 것이다. 그것을 일러 공부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복종이 미덕이 되는 경로도 이렇게 생성될 뿐이다. 공부가 즐겁다는 것은 역-증상이다. 공부가 즐거운 것, 복종과 의무를 즐길 수 있는 것, 그리고 좁은 길이 잘 보이는 것은 '자아가 증상'인 세속 속에서 증상을 넘어선 자아의 빈터를 흘깃 드러낸다. 287

탕자의 자리, 빗금의 존재: 도착증에 관한 단상

정신분석적으로 소박하게 대별하자면 세속에는 세 놈이 있다, 미친 놈, 착한 놈, 그리고 이상한 놈, 이다. 이상한 놈이 반드시 '나쁜' 놈이 아니라는 데에 이해의 요령이 있긴 하다. 이, 반드시 나쁘지도 않은, 이상한 놈은 보통 '탕자'라고 부른다. 미친놈은 제 집이 없는 경우이며, 착한 놈은 한 집의 효자-붙박이로 살아가지만, 탕자는 제 나름의 배회를 거치면서 이곳저곳에 (이상한) 제 집을 짓고자 애쓴다. 물론 이 세 유형은 정신의 임상 구조적 알레고리다. 탕아의 행태를 '도착적'이라고 하는 데에서 알 수 있듯이 운 좋은 탕자들은 매우 창의적인 인간으로 거듭난다. 미친 놈은 안정적 상징화를 거치지 못한 채로 제 집이 없이 뱅뱅 돌아다니기 때문에, 이를 '원'으로 표상할 수 있다. 출구가 없는 폐곡선이다..

졸부의 세상

졸부란 그대로 졸연간에 부자가 된 일이나 그런 사람을 뜻한다. 그러나 그 요지는 '갑작스러움'에 있지 않다. 사람이 시간에 슬기로워서 시중을 가릴 수만 있다면, 졸취나 만득이나 그리 큰 차이가 아니다. 복권으로 인해 슬기로운 자가 있던가, 3대의 재벌로 어진 자가 있던가, 중요한 것은 재부 자체가 아니라, 그 안팎에서 드러나(야하)는 사람의 얼굴과 영혼이기 때문이다. 졸부의 요점은 물스러운 것들이 사람을 분류하고 지배한다는 데 있다. 사람의 '크기'란 게 고작 물건들의 기능을 중계하는 효용에 의해 평가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요컨대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졸부의 형식이다. 돈이 사뭇 넘칠라치면, 노릇이 좀 커질라치면, 이런저런 유행이 돋을라치면, 정보와 이론을 수합할 수 있을라치면, 혹은 흥미로운 기계..

어른, 어른이 되지 못하는 1

1.돌이켜 보면, 공사간의 인간관계에서 가장 힘들고 슬펐던 게 '어른이 되지 못하(않)는 어른'과 함께 있어야 할 때였다. 2. 어른 이란, 옆 사람보다 떡을 하나 적게 먹어도 넉넉히 보아 넘길 수 있는 깜냥을 지니게 된 일을 말한다. 더붙여, 굳이 꼬집어 말하자면, 자기에게 떡이 하나 덜 오게 된 사정에 이미 자기 자신이 '개입'하고 있었다는 사실까지 알아채는 일이겠다. 떡, 이라고 특징했건만, 이는 돈일 수도 있고 관심이나 인정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요체는 '쾌락의 지점'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보다 '쾌락의 지점'이 희소성의 원리에 휘말려들어 분쟁을 낳게 될 무렵, 시중을 좇아 그 분배에 슬금할 수 있는 배포를 갖는 일이다. 누구나 좋아라 하고 쏠려가는 데가 곧 위태한 곳이며, 이곳에서 ..

어른, 어른이 되지 못하는 2

8. B는 젊은 엄마였고, 당시 강의의 외부 청강생 중 한사람. 벌이가 좋은 남편에 학력도 높아 유치원을 다니고 있는 외동딸의 교육에도 열심. 열심을 부리는 것은 여느 엄마와 대차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 열성을 들씌우고 있는 게 웬만한 초조함이 아니라 '독단적 냉엄'이라는 점에서 유달랐다. 자신이 정한 원칙에 완벽주의적으로 집착해서, 다섯 살 먹은 딸아이를 매사에 잡도리했다. 그러나 여기까지만 해도 별스러운 풍경은 아니었다. '모방적 경쟁관계' 속에서 집단적으로 쏠려 살아갈 수밖에 없는 체계가 우리들의 현실이기 때문. 흥미로웠던 점은 오히려 B가 딸을 기율하던 원칙이 꽤나 변덕스러웠다는 사실. 특히 그 '변덕'의 방식이 B 자신의 문제를 증상적으로 미봉하거나 호도하는데 동원되었으리라는 추정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