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살아있는 것들을 위하여
베리 로페즈
부제,
숲과 평원과 사막을 걸으며 고통에서 치유로 향해 간 55년의 여정
원제,
Embrace Fearlessly The Burning World, (2022)
캘리포니아를 그리며
살갗을 파고들었던 갈망을 채워주듯 향수가 밀려들었고, 그것은 떠날 때—우리의 경우는 오리건으로—다시 우리 가슴을 저릿하게 만들었다.
이 감정을 해석해보려고 몇 년을 노력했다. 아동 성도착자에게 시달린 4년 반, 그리고 우리 세 식구에 대한 아버지의 폭력을 겪고도 어떻게 그런 식으로 캘리포니아를 그리워할 수 있는 것일까? 37
끔찍한 경험—성적 학대의 트라우마, 폭력적인 결혼과 이혼, 부재하는 아버지에 대한 채워지지 않는 갈망—은 사람을 상처 입히고, 그것으로부터 헤쳐 나오기까지는 수십 년이 걸린다.
하지만 캘리포니아 보이로서 나에게는 무한히 용서하고 무한히 위로하는 빛이라는 중심축이 있었다.
유칼립투스 나뭇잎과 어도비 벽돌집의 옅은 벽면과 출렁이는 수면까지, 주위의 모든 것을 아름답게 적시는 빛이 내 존재를 지탱했다. 그 빛, 그리고 나를 하늘로, 나 자신의 바깥으로 끄집어내 높은 곳으로 끌어올리던 새들이 내 삶에 희망이라 부를 만한 것을 가져다주었다. 43
거룩하신 어머니
고등학교 3학년 말에는 나는 예수회 신부이자 고인류학자인 테야르 드 샤르뎅처럼 평생 세속과 신성의 신비를 탐구하고 하느님과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겠다는 목표에 집착하고 있었다. 48
우리의 환경은 배타적인 남성 중심 공간이었을 뿐만 아니라 강의실에서 불가지론자나 유대교도는 물론이고 단 한 명의 개신교도조차 찾아보기 힘들었다. 서구 문화를 배태한 철학 외에 그 어떤 철학도 검토되지 않았다. 우리는 중산층 백인 청년들이었고, 우리의 종교적 경제적 가치를 전 세계에 영속화하는 교육을 받고 있었다. 51
어릴 때 가톨릭교회에서 듣던 표현을 빌리자면, 내가 보게 될 것의 상당 부분은 이교도의 문화였다. 생각해보면 언제나 내 눈에는 이런 이방의 인식론과 형이상학이 오묘하고 심원해 보였다. 알래스카의 선주민들, 케냐의 캄바족 사람들, 오스트레일리아 노던준주의 왈피리족 사람들과 함께 떠난 길에서 신비주의와 접속 가능한 영성을 발견했다.
나는 신비주의가 인류에게 보편적이라고 믿고 있다. 다만 인간 사회 제반의 일상적인 실패로 인해 이런 신비한 방식의 유용함과 강점이 자주 감춰질 뿐이다. 나는 한 사회가 어떻게 자신의 고질적인 실패와 불의와 불경의 역사를 완벽에 대한 영적 갈망과 화해시키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종교라고 생각한다. 53
가톨릭의 관습과 멀어진 지 오래지만 여행자로 살면서도 나는 여하튼 기도하는 삶이라는 중심축에 계속 의지했다. 신의 존재 앞에 부단히 경건하게 임하는 것을 나는 넓은 의미의 기도로 받아들였다. 그 정수 안에 깃들고자 매일 노력하는 것이 기도였다. 나는 여전히 성모의 임재를 의심하지 않았다. 나에게 그분은 연민과 자애의 표상이며 보살이었다. 53
성모는 내 종교적 전통의 (여기에는 젊은 시절 내가 다닌 교회에서 철저히 배제되었던 흑인 성모의 전통도 포함된다) 근간인 동시에 종교를 초월하는 분이기도 했다. 골고다에서 십자가에 못 박힌 고난의 예수가 그러하듯, 그분의 존재를 믿게 만드는 종교는 필요치 않았다. 상상력이 있는 인간이라면 가톨릭교도나 배교도 앞에 신빙성의 증거로 내밀 로마 교황의 칙서 따위는 필요치 않았다. 54
무섭도록 풍부한 물
그때와 지금의 내 이웃들이 그렇듯이 나도 때로는 성인기의 절망에 혼자서나 남들 앞에서 흐느껴 울기도 하고, 때로는 신성의 영역을 접했다고 여길 만큼 지극히 평온하고 고양되는 일의 기쁨을 마주하기도 한다. 나는 이런 극단적인 감정들을 모든 인간의 삶을 이루는 한 부분으로 여기게 됐다. 어머니가 가르쳤던 멕시코 출신 소녀들의 농장 노동자 아버지들도, 레이디오브그레이스 초등학교 급우들의 영화배우 아버지들도 그런 감정을 겪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대등함을 명확히 밝히는 것을 작가의 사회적 의무 중의 하나로 여기게 됐다. 미국식 민주주의 같은 제도하에서 특히 작가는 ‘자격’이라는 개념, 피부색이나 교육, 젠더, 인정, 소위 재능, 재산을 기준으로 우리 중 누구는 더 많이 누려 마땅하다는 전제가 존재함을 폭로할 소명이 있다. 나처럼 백인 남성의 울타리 안에서 백인으로 자란 작가일수록 그 울타리를 만들어낸 사회적 경제적 관습, 토지의 계약 조항, 법적 특혜, 윤리적 망각까지 반드시 되짚어봐야 한다. 103
어린 시절 샌퍼낸도밸리의 풍요로운 농경을 떠올릴 때면 몇 번의 결정적인 시기마다 내가 성장한 고장을 소생시킨 불평등한 계략들이 기억에 소환된다. 초기 정착민들은 가브리엘리노족을 회반죽과 모르타르처럼 소진했다. 처음에는 샌퍼낸도에 선교회를 짓게 하고 선교회의 재정을 마련하는 데 이용했고, 다음에는 농장을 경작해 십수 명의 인간들의 재산 증식에 이용했다. 중국 노동자들을 데려다 샌퍼낸도패스 철도를 건설하고는 1882년에 그들에게 ‘중국인 배제 법령’을 내밀었다. 세기가 바뀐 뒤, 밸리의 운명을 손아귀에 쥐고 있던 이들은 영리 목적으로 물을 수입해오는 시스템을 강요했다. 과일과 채소, 재스민과 부겐빌리아의 에덴동산을 만들어 판매 시장에 상품으로 내놓았다. 냉정한 눈으로 보면, 그들은 스스로의 위대함에 도취된 것 같았다. 1913년 11월 5일 멀홀랜드는 송수로 계단 폭포 앞에 서서 마치 신이라도 된 것처럼 말했다. “여기 있으니, 마음껏 취하십시오.” 104
물론 가브리엘리노 부족의 문화를 말살한 학대 정책과 마음대로 사고팔 대상에 대한 멀홀랜드의 억견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그러나 둘의 뿌리는 같다. 생명의 존엄함과 복잡성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 밸리 지역을 보금자리로 선택한 것은 가브리엘리노 부족이었지만, 그에 못지않게 밸리의 환경 자체도 부족민들이 땅에 적응하도록 그들의 생활과 문화에 압력을 행사했다. 한데 멀홀랜드는 물을 상품이자 수단으로 이해했을 뿐 생명 있는 존재로 여기지 않았다.
인간이 일상적으로 맞닥뜨리는 실존의 난관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면, 각각의 세대마다 삶의 불확실성 앞에서 허물어지지 않을 땅, 선조들의 꿈을 지속시킬 땅을 다시 찾아내고 보호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요즘 미국 작가라면 나라 어디에서나 강력하게 부상하는 문화적 혼종성을 보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다. 그런데도 많은 미국인들이 여전히 특정 인종의 통치에 대한 기대를 은근히 고집하고, 물과 목재와 석탄과 석유와 기타 문화의 연료가 한없이 나오는 화수분 같은 대지의 신화를 버리지 않고 있다. 덤불숲을 삼키는 산불, 왓츠 시위(1965년 LA 왓츠 인근에서 흑인 운전자에 대한 경찰의 폭력을 계기로 촉발된 엿새간의 폭력적 시위와 경찰 진압), 순차적 정전 같은 경고성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새로운 기술과 기반 시설로 대응하지만, 괴상한 미봉책에 그칠 때가 많다. 105
지금은 근본적인 문화적 인식 변화가 필요한 때인 것 같다. 대지의 경제적 가치를 따질 때 그 땅에서 나오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까지를 셈에 넣어야 더 정확한 평가가 가능하지 않을까. 106
나는 문화의 토대를 이루는 이런 자연의 요소들에 이끌린다. 이들이 내 어린 목숨을 구했기 때문이다. 내가 이들에게 느끼는 것은 향수가 아니라 공경의 마음이다. 107
이 소리들과 장소들이 저 황폐한 방의 위협으로부터 도망칠 나의 피난처였다. 이들이 없었다면, 주삿바늘처럼 날카롭게 (또 다른 날에는) 연기처럼 자욱하게 밸리에 쏟아지던 햇살이 없었다면, 갓 맺힌 단추 모양 유칼립투스 꼬투리의 톡 쏘던 내음과 내 손가락에 달라붙던 후추나무 이파리들이 없었다면, 이것들이 없었다면, 아마 나는 소멸되었을 것이다. 짐승의 침대에 축축한 헝겊 인형처럼 팽개쳐져 있다가 다른 문을 통과해버렸을지도. 110
지리적 친밀감
변방, 혹은 여전히 토착 부족이 주로 생활하는 지역을 여행할 때마다 나는 의식적으로 뭔가를 찾곤 한다. 알타미라에서 로마로, 테노치티틀란으로 가는 도중에 현대 인류가 잃어버렸을 어떤 것을. 특히 지리가 이른바 자신들의 운명에 핵심적이라는 이해 같은 것을. 한때 인간은 우리가 사는 장소의 심원을 드나들며 친밀감을 나눴을 것이고, 누구나 그 친밀한 관계에서 곧바로 생성된 본질적인 행복감을 품고 살았을 것이다. 그랬을 거라고 나는 쉬이 상상할 수 있다. 199
-여건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 물리적 세계로 들어갈 것, 거리 두기의 편법을 택하지 않을 것. 202
진정한 자연주의자
너 자신이 아닌 세계에 인내심 있게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야말로 초심자가 자아 외부의 더 큰 세계, 지혜 자체가 깃든 경관을 발견하는 첫 번째 걸음이다. 275
선주민이 사는 곳 바깥에서 온 외부인이 속한 문화에서는 더 이상 장소와의 신체적 친밀감에 높은 가치를 두지 않으며, 이런 감수성을 “원시적” 자질로 치부하고 “선진” 문화에서 온 사람은 이미 거기에서 탈피했다는 생각에 안도한다. 이렇게 오만한 태도가 결국 장소와의 신체적 친밀감이 제공하는 엄청난 무형의 가치를 묵살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이제 안다. 그래서 친밀감의 욕구를 무시하는 사람을 보면 무례함을 무릅쓰고서라도 말해주게 된다. 인간이 고독을 벗어던지기란 불가능하다고. 아울러 자연을 경시하는 문화에 속한 사람은 삶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을 쉬이 떨쳐낼 수 없으리라는 말도.
근대 문명의 특징인 실존적 고독과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는 것은 얼마쯤은 장소와의 관계에 치유적 차원이 있다는 믿음을 내버린 탓도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자연 세계에는 인식 가능하며 그렇기에 관찰자를 포용하는 패턴들이 항상 존재한다. 끝없이 복잡한 이 패턴들을 부단히 새롭게 느끼는 감각은 세상에 혼자라거나 삶이 덧없다는 느낌을 약화시킨다. 결국 장소를 깊이 알고자 하는 노력은 어딘가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은 인간의 소속 욕구를 표현하는 일이다.
내가 경험한 바로, 어떤 장소를 알아가려는 굳은 의지는 끊임없이 보상을 받는다. 나는 자연의 모든 장소가 ‘알려짐’에 열려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과정의 어디쯤에선가 인간은 자신들이 ‘알려지고’ 있다고 인식하기 시작하고, 그렇기에 그들이 아는 장소에서 그들의 존재가 사라질 때 장소는 그들을 그리워한다. 서로가 알고 알려지는 이런 교감이야말로 내가 세상에 필요한 존재라는 의식을 강화한다. 295
아마도 모든 노력의 첫 번째 수칙은 주의 기울이기, 두 번째 수칙은 인내하기일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몸이 아는 것을 귀담아듣기가 아닐까. 295
회색곰이 덤불숲에서 블랙베리 열매를 거덜내고 있을 때 그건 단지 곰 한 마리가 덤불숲에서 블랙베리 열매를 거덜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장면은 한 세계로 통하는 진입점이다. 우리 대다수는 다른 곳에 가려고 그 세계로부터 등을 돌리면서, 덤불숲에서 블랙베리 열매를 거덜내고 있는 회색곰에 대해 그저 생각만 하는 편이 낫다고 믿어버릴 테지만.
이 순간은 초대다. 누구든 지나가는 사람에게 아무런 편견 없이 참여하라고 곰이 내미는 초대장이다. 297
오래전부터 나는 자연 세계를 본보기 삼아 우리 시대의 굵직한 정치적 질문들—극심한 편견, 세계적 기후변화, 부패와 탐욕, 타자에 대한 공포—을 제시할 때 이해가 더 명확해진다고 생각해왔다. 인간적 딜레마를 해결할 실마리를 비인간계에서 찾는 것을 어설프다고 여기는 이들도 있다. 내가 속한 문화권에서는 은유라는 가장 오래된 지혜의 도구에도 자주 경계나 심지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그러나 은유의 폐기는 경직된 근본주의를 촉진할 뿐이다. 366
내 말의 요지는 이것이다. 오스트레일리아 중북부의 어느 겨울 오후 익명인 지형으로 걸어 들어간 시간은 나에게 자연주의자로서 자기 향상을 하기 위한 연습이었다기보다 나 자신에게 익숙한 범주와 위계를 털어내려는 노력이었다. 털어내지 않으면 자칫 그 장소에 대한 내 사고와 인상이 그것들에 좌우되었을 테니까 말이다.
나는 이 장소를 사랑할 가능성에 나 자신을 최대한 활짝 열어두고 싶었다. 367
인간의 삶에 가해지는 고통은 대부분 사랑에 실패한 데서 기인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374
사랑에 실패했다는 증거는 우리 주위 어디에나 있다. 지금 시대에 사랑의 의미를 숙고하는 자는 컴컴한 암초와 절망의 벽에 부딪힌다. 참해—해양 산성화, 기업의 부정행위, 정부의 부패, 끝없는 전쟁—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내려면, 어떤 것이 유의미한 삶인지 새롭게 상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지 않는다면 다 괜찮아질 거라는 근거 없는 희망으로 꾸역꾸역 버티게 될 뿐이다. 황홀과 박애에 대해 더 깊은 대화를 시작해야 하고, 다른 인간을 사랑하는 더 큰 포용력을 탐색해나가야 한다. 낡은 생각—민족국가 유지라는 참담한 악행, 타인에 대한 배려는 유약한 짓이고 베풂은 아둔한 행동이라는 생명 유린적 생각—으로는 기대할 미래가 없다.
권력을 쥐는 것보다 사랑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멸종과 인종 청소와 해수면 상승의 시대에 순응하기보다 윌슨의 생명 사랑을 일상의 대화로 가져오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잃어버린 것에 대한 절망 속에서 죽기보다 앞에 놓인 가능성을 위해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 379
윌로라 서쪽 평원을 걷던 그날 나는 이 세계가 사랑의 실패로 만들어졌음을 각성했다. 그러나 이 각성에 불을 붙인 것은 와리와 야퉁카의 사랑 이야기였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수년 전 브룩스산맥에서 친구들과 여름을 보내며 사랑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경험함으로써 얻은 앎이기도 했다. 그 경험이 내 작가 생활의 중심 과제로 나를 안내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알고 사랑하는 것, 타인에게도 똑같이 촉구하는 것. 380
이 무시무시한 순간, 시리아 북쪽에는 몇몇 깃발 아래 기갑 차량이 서 있고, 팔레스타인 거리에서는 시민들이 맞아 죽어가고, 캘리포니아 포도밭에는 화마가 덮치고, 개발할 공간을 만들기 위해 숲을 쓰러뜨리고, 학자금 대출의 폭리에 젊은이들 등골이 부서지고, 나이아가라 폭포수와 그린란드에서 녹아내린 물이 다 같이 바다로 흘러드는 이 순간에도 여전히 가능할까? 운집하는 어둠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지구라는 대상을 향해 그리고 우리 자신을 포함한 지구의 모든 생명체를 향해 어색해하지 않고, 열렬하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일이? 이 불타는 세계를 두려움 없이 부둥켜안을 수 있을까? 380
세계 여행자로 살다가 지금은 소위 선진국 문화에 안착해 지내면서 나는 고향에서 쫓겨난 사람들, 빈곤과 기근과 조갈과 종파 간 전쟁과 20세기의 산업 식민지화와 약탈자들과 지배계급의 무시 등으로 파괴와 소외를 겪은 사람들, 혹은 단지 너무 많은 타인들이 그들의 언어와 외양과 신앙을 혐오한다는 이유로 쫓겨난 사람들을 자주 생각한다. 국제사면위원회에 따르면 오늘날 수천만에 달하는 사람들이 난민으로, 자기 터전에서 추방된 자로 살아가고 있다. 일부는 기억에 의지해 여전히 고향에 대한 강한 의식을 간직한다. 그러나 일부는 시간이 흐를수록 길 잃은 막막함이 깊어진다. 임시 거처에 몸을 숨기고 탈출할 길을 고심하는 가족들이 동서남북 어디에나 있다. 492
폭풍이 다가올 때는 익숙한 문화적 공간과 지리적 위치에 단단히 정박해 있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굳게 믿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야 각자에게 필요한 우정의 안전망과 깊은 자아 인식이 주어진다고, 삶에 중요한 목적성이 있다는 의식 또한 강해질 거라고 믿는다. 사회적 혼란과 격변의 시기일수록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정확히 아는 것이 긴요해 보인다. 493
그렇지만 변화는 여러 각도에서 빠르게 일어나고 있다. 우리 대부분은 우리가 있는 곳을 정확히 알지 못한 채 하루를 시작한다. 한때 우리는 모든 중대한 질문에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지 안다고 확신했다. 한때 우리는 불안한 시대에 균형을 잃지 않는 법을 다음 세대에 전수해줄 수 있으리라 짐작했다.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들—기후변화, 새로운 팬데믹, 그 밖의 권위주의 정치권력—을 견뎌내고 살아남으려면 우리는 상상력을 더 확장해야 한다. 우리는 서로를 신뢰해야 한다. 왜냐하면 지금 상황은 안전하다고 생각한 모든 장소가 녹아 하나의 물이 되어버린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만드는 법을 잊어버린 보트를 찾아 헤매고 있다. 494
오늘 크라쿠프에서 오시비엥침까지 65킬로미터를 차로 달리는 동안, 눈앞에 보이는 광경들, 목가적 전원과 소소한 농경지의 색채와 질감, 사람과 말의 움직임, 나란히 노동하는 노부부의 모습은 내 집중을 방해하기보다 나를 더욱 몰입시킨다. 수 세기째 한 장소에서 찬찬히 먹을거리를 길러내는 이런 존엄한 일상의 증거가 권태와 절망이라는 나의 실존적 방만함을 누그러뜨린다.
502
인격의 말살, 가학적 충동 이면의 권태, 도착적인 굴욕을 노리는 간수들의 음탕한 욕구, 기계적인 살인 공정—어제 이런 것들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러나 공항에서 스쳐간 사람들, 함께 탑승한 사람들 사이에서 이런 불꽃이 깜박인다는 걸 안다. 만약 도처의 우리가 정치적 부인과 순진한 무지 속에서 계속 살아간다면, 우리 아이들은 우리를 저주할 것이다. 정부 관료들이 우리에게 선의 승리를 이끌 계획이 있다면서 정작 이 계획의 면면을 알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가 승낙하는 순간 살상으로 치달을 기로에 이미 서 있는 것이다. 504
저항의 필요—메모에 써둔 대로라면 저항의 당위다. 오늘날 우리가 저항해야 하는 것들의 범위를—당장 사방에 포진한 거대 광고부터, 그것이 약속하는 부와 아름다움과 안락함과 젊음과 권력과 오웰식의 솔깃한 출구 없는 세계를—생각하면 말문이 막힌다. 506
어찌나 막막한지, 여기에 저항한다는 발상 자체가 터무니없고 천진난만해 보인다. 1944년 8월 나치 친위대가 단 하루 동안 비르케나우에서 2만 4000명의 유대인, 동성애자, 로마니, 레지스탕스를 살해했을 때, 베를린 시민들은 죽음의 수용소가 존재한다는 주장을 근거 없고 발칙하고 비애국적인 발상으로 치부했던가? 506
그리고 묻는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진실화해위원회가 했던 것처럼 미국 정부가 공화국 건립의 기본 토대였던 인종 학살과 노예제에 진지하게 응답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이제는 독자적인 시민 행동이 일어나야 하는지? 이런 사안의 규명을 통제하는 정부의 전횡에 시민들이 저항해야 할 때인지? 507
이런 상황에서 발동하는 건 용기가 아니라 아마 일에 대한 헌신일 것이다. 믿을 만한 글을 쓰려면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들이 있다. 문제는 내가 두려우냐 아니냐가 아니다. 헌신하기를 원하느냐 아니냐일 뿐. 일단 하기로 마음먹었으면 출발선을 넘은 것이다. 그때부터 내 생각은 자연 세계가—격랑이 몰아치는 바다든 남극의 해저든 컴컴하고 외딴 숲이든—얼마나 믿을 수 없도록 아름답고 복잡하고 오묘하며 숭고한가로 빠르게 돌아선다.
이런 상황에서의 헌신은 실제로 자아보다 더 큰 무언가를 향해 있다고 나는 믿는다. 친구들을 향한 당신의 사랑과 당신을 향한 친구들의 사랑을 상기할 때, 철저하고 정밀하게 기록해야 한다는 작가적 사명감이 꿈틀댈 때, 호기심을 마음껏 발산할 기회가 있음에 감사할 때, 그럴 때 빙하의 좁은 구멍으로 뛰어들 마음가짐이 생긴다.
매일은 어렵겠지만 어쩌다 한 번씩은 할 수 있다. 나의 내면에 들어가 남들 모르게 나의 공포와 대면하고 말할 수 있다. “그래, 나도 안다. 그래도 부탁이니 함께 가자. 네가 도망치고 싶은 그것보다 더 큰 것을 지금부터 보게 될 테니까.”
마음가짐을 제대로 세우고 행동하는 것은 공포를 수용하지 않는 것과는 다르다. 이것은 사랑을 길러나가는 법에 관한 이야기다. 513
강의 가르침
연어는 언제나 온다. 나를 몇 시간 이상 기다리게 만든 적이 없다.
지조, 일관성, 힘, 고결함에 관해 내가 아는 것의 큰 부분을 나는 이 강에서 배웠다. 그것과 반대되는 것들—불능, 무기력, 감금—을 배운 것은 매켄지강의 지류인 블루강의 댐을 건널 때, 그리고 또 다른 지류인 사우스포크강의 쿠거댐에 서 있을 때다. 이 댐들 꼭대기에서 저수지를 응시할 때 보이는 건 인공호의 침묵이다. 거기엔 자유가 부재한다. 523
내가 매켄지강에 꾸준히 관심을 보이자 강이 나에게 마음을 열었다. 나는 사람에게 하듯 강에게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여느 동물처럼 강에게도 미묘한 감정과 기분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강이 신기한 방식으로 나의 일부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멀리 여행 중일 때 나는 가까운 친구를 그리워하듯 강을 그리워했다. 525
여행에서 돌아와 이곳 매켄지강 강둑에 설 때마다 나는 늘 다시 온전한 사람으로 돌아왔다고 느낀다. 봄에 강기슭에 피어나는 첫 꽃송이들—연령초꽃, 노랑제비꽃, 보라색 야생 히아신스, 사슴머리난초—을 볼 때 내 안에서도 비슷한 변화를 의식한다. 이 강이 없으면 내가 모자라다는 걸 알 만큼 여기서 오래 살았다. 매켄지강의 저조기와 고조기, 강의 겨울 색조, 흰줄박이오리들, 통나무 더미들과 대기 플랑크톤(여름철 강의 산들바람을 타고 “허공을 둥실 날아가는” 수만 마리의 거미들), 나는 이들과 친숙하다. 강물에 부딪는 물수리 소리를 들으면서, 시속 100킬로미터의 속도로 수면 위를 날아 내 옆을 스쳐가는 평범한 비오리들을 바라보면서, 나를 에워싼 검은 미루나무 이파리들에 달려드는 바람의 요동을 들으면서, 나는 다시 온전해진다. 529
이 강은 인간이 오기 전부터 이곳에 살아왔고 여전히 우리 모두에게 접근과 접촉을 허용해주는 야생의 생명으로, 우리 아이들에게도 이 경험을 제공해줄 것이다. 우리의 목표는 강과 관련된 모든 이가 이 점을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다. 물론 지금 우리는 정치와 사회와 환경의 격변이 일어나고 위협이 가중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마음만 먹으면, 당신은 강처럼 살아 숨 쉬는 존재를 선택해서 이들 편에 설 수 있다. 이들 옆에서 당신 자신의 앞날과 다른 생명체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다. 머리 위로 먹구름이 짙게 드리우는 시대에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기에 알맞은 자리가 아닌가. 532
강
요컨대 강은 그 자체로 하나의 동물이다. 제 안에 다른 동물들을 담고 있으면서 또 다른 동물들, 기슭에 와서 목을 축이는 퓨마와 물수리 같은 또 다른 동물들의 생존을 돕는다. 요컨대 강은 인간보다 오래 살았고 댐과 오염과 수로의 건설을 견뎌내고 어떻게든 계속 흘러간다. 요컨대 인간이 아무리 초당 리터 단위로 유량을 측정하고 정밀하게 유역이 표시된 지형도를 만들고 수생생물과 조류와 육상 생물 목록을 작성한다 한들, 우리는 강을 안다고 말할 수 없다. 538
퇴화에 대하여
어릴 때부터 품어온, 내 발로 가서 보고야 말겠다는 강렬한 욕망이 사라질 일은 아직 없을 것이다. 몸을 추동하는 인간의 정신은 더 적은 것에서 더 많은 걸 얻어낼 방법, 항복하는 대신 한계에 적응할 방법을 전략적으로 사고할 줄 안다. 나는 지금 내 위치가 마음에 든다. 내게는 내가 익숙하지 않은, 내 안의 무엇을 요구하는 새로움이 있다. 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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