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성게) 제6구.
불수자성수연성(不守自性隨緣成)
자성을 지키지 않고 인연따라 이루네
모든 법들은 지킬 자성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스스로 끊임 없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변화가 자성입니다. 변화와 부동, 이것과 저것이
어울려 있는 한 장면만이 공성의 장,
무자성의 장입니다.
(법계의 노래)
자성을 지키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지킬 자성이 원래 없으니
인연이 자성이 되기 때문
그렇다고 인연의 어울린 자리를
불성이라고도 이름 붙일 수 없으니
인연처에 매이지 않고
흐름대로 알아차리는 어울림을
하는 수 없이
불성이라 부른다고하면
자리 없는 자리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것일까
그렇다고 인연이
흐름을 이루는
어떤 것으로 이해해서도 안 되니
인연이란
이름이나 모양으로 그려 볼 수 없는
삶의 어울림을 그렇게 부르기 때문
그래서 불성도
어울림을 어울림으로 있게 하는 것에서
불성으로 있으니
불성도 불성이라는 자성이 없는 것으로
불성
그러므로 자성 없는 어울림으로 나툰
모든 삶들이
깨어있는
불성의 작용
(해설)
"공성의 장, 수연의 빈 모습"
존재의 유무나 생멸은 존재 그 자체로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이것과 저것의 의존관계에서 일어납니다. 이것은 오롯이 저것의 원인이면서 동시에 저것을 원인으로 하는 결과입니다. 때문에 모든 법들은 조건의 변화에 따라 여러 모습으로 나툴 수밖에 없습니다.
더군다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중생들과 사물들의 이와 같은 자기 나툼은 상호 의존관계의 조건만큼이나 여러 얼굴로 나타납니다.
앞의 게송에서 법성의 부동성을 이야기하면서 이것은 시공의 메이지 않는 모습이라고 했습니다. 시공은 변화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있지만, 시공의 메이지 않는 부동도 변화의 이면이나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변화 그 자체를 전체로 사는 부동이기에 변화가 있을 수 있다고도 말씀드렸습니다. 120
여기서의 부동성을 무자성, 곧 자성을 지키지 않는다고 할 수 있으며 부동성 그대로 변화의 움직임을 '인연을 따른다(수연)'고 할 수 있습니다. 단 변화의 인연을 따름이란 다양한 이것과 저것의 관계 속의 조건 변화를 뜻하고 있는데, 이것과 저것의 근본 실상이 무상, 무아이기 때문입니다.
이것과 저것의 무상, 무아라는 뜻은, 지각 작용은 자기 대상을 일정한 틀 속에 가두고서 아는 것인 데 반하여, 좌선삼매를 통해서 바로 알아차리는 삶의 밑바탕은 한 순간도 지각된 내용처럼 멈춘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성을 지키지 않는다는 말은, 모든 법들은 지킬 자성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스스로를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음을 말합니다. 변화이기 때문에 지킬 자성이 없습니다.
온갖 법들의 변화와 이를 가르키는 '변화'라는 말은 상호 모순입니다. 왜냐하면 말은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각과 말은 한정되고 멈춘 시공의 영역만을 알아차리고 표현할 뿐, 삶의 실상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지각과 언어를 다시 생산할 뿐입니다.
여기서 인연을 따른다고 했을 때 인연, 곧 조건들의 변화를 따르는 또 다른 축의 자성이나 조건의 이면에 빈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과 같은 모습을 자성으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인연조건을 따르는 것으로 무자성이기 때문입니다. 121
그것은 이것과 저것이 어울려 있는 한장면만이 공성의 장, 무자성의 장이기 때문입니다.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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