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모를 해서 사회를 바꾸는 것은 확실히 가능하다. 왜냐하면 데모를 하는 것에 의해서 '일본사회는', 인간이 데모하는 사회로 변할 것이기 때문이다.
국수를 먹어주면 학생들은 기껏 (겉으로) '거부'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국수를 먹을 때 젓가락을 올바르게 쓰는 방식이 있다고 말하면, 학생들은 급기야 (속으로) '저항'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내용'에서 완성되는 공부란 없다. 자신의 인생과 더불어 '형식' 속에서 타협하는 것이니, 결국 깨달음이란 자아의 형식에 따른 메타-수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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