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죽음과 섹스

백_일홍 2022. 7. 30. 18:04

죽음과 섹스 _ 생명은 어떻게 끝나고 다시 시작하는가? 

 

타일러 볼크,도리언 세이건

 

 

죽음 파트(타일러 볼크) 

나의 목적(이 책을 쓴)은 생물학, 진화, 경혐의 모든 단계에서 죽음이 삶과 어떻게 뒤얽혀 있는지를 탐구하는 것이다. 나는 자연과학자이자 지구의 탄소 순환을 연구하는 학자이며, 원자에서부터 인지에 이르기까지 모든 체계의 패턴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우주는 존재의 동역학 속으로 여행할 수 있는 광활한 마당이다. 물질에서부터 마음에 이르기까지 모든 곳, 모든 단계에서 생명과 죽음은 언제나 함께 엮어 등장한다. 그 엮임을 알 때 우리가 매일 겪는 존재의 경험에 자양분과 깊이를 더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14-15

에피쿠로스, 원자론자
죽음은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가 존재하는 동안 죽음은 존재하지 않고, 죽음이 존재할 때 우리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올바로 이해한 사람은 필멸의 삶을 즐거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무한의 시긴을 더해서가 아니라 불멸에 대한 갈망을 제거함으로써 말이다.

죽임이 아무것도 아닌 그 에겐 우정(또는 사랑)이 모든 것이었다. 일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지혜가 우리에게 선사하는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우정이이다. 이 한쌍의 인식은 우리가 지금 여기에 굳건히 뿌리내릴 수 있게 해준다. 그것은 자기만족적인 지금 여기가 아니라, 나를 모든 삶의 신성한 춤 속으로 확대시켜 신자와 무신론자, 남성과 여성, 노인과 젊은이를 연결하는 존재방식이다. 21

우리 모두는 죽음의 몇 가지 보편 특성들을 공유한다. 우리의 심리적, 문화적 진화의 기반에서 또는 생물학적 진화의 가장 깊은 뿌리에서 생겨난 공통의 특징들을. 이 공통의 즉징들은 인간 종으로 끝나지 않는다. 살아 있을 때 뿐 아니라 죽었을 때에도 우리는 모든 존재들과 연결되어 더 큰 질서를 이룬다는 것을 과학은 분명히 보여주었다.


죽음을 더 넓게 인식할 때, 우주의 단계에서 우리가 누구인지 그리고 모든 생명이 죽음과 어떻게 뒤얽혀 있는지를 볼 기회를 얻게 된다. 40억년에 가까운 진하의 퍼레이드 가운데 우리가 어디에서 생겨났는지를 발견할 기회, 우리의 생명이 몸속에서 살고 죽는 세포들에서 나온다는 것을 볼 기회, 왜 인간의 수명이 이 정도인지를 물어볼 기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어떻게 일상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죽음이 어떻게 장엄한 생명의 진로를 창조하고, 유지하고, 끌어가는지를 탐구할 기회를 갖게 된다.

우리가 사라졋을 때 아무것도 없을 거라는 에피쿠로스의 말이 옳다면, 여러분도 그의 춤에 동참하여 우리와 모든 존재의 연결에 흠뻑 취하고, 이 순간부터 우리의 삶을 창의적인 모습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보기를 바란다. 22


2부. 생명의 진화, 죽음의 진화

그런 별들은 대폭발과 함께 눈부신 초신성으로 변하면서 핵 분진과 화학원소를 흩뿌린다. 이것들이 합치면서 미래의 별과 행성이 될 수 있고, 저기 어딘가에 생겨날 외계 생명체의 재료가 될 수 있다. 예. 인간의 몸 속에 들어 있는 모든 탄소는 먼 옛날 태양보다 먼저 살다 죽은 별들에서 나온 핵 분진이다.

우리는 불멸에 가까운 이 거대 체계들(우주, 별, 은하, 대륙, 산맥 등)과 크기 척도의 정반대 끝에 자리잡은 다른 종류의 장수 물체들(예. 원자)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끼어 산다. 밤 하늘의 은하들 처럼 대부분의 원자도 불멸에 가깝다. 별들과 원자들에 비해 우리는 아주 짧은 양초에 불과하다. 우리는 강렬한 햇살이 일정하게 쏟아지고, 극히 안정적인 원자들로 구성된 물체들이 가득 들어찬 커다란 행성 표면에 촛불처럼 켜졌다 꺼지는, 특이하게 조직된 물질의 일시적 패턴이다.

우리의 몸은 영구적인 것들의 일시적 배열이다. 가마솥처럼 급속한 분자 탄생과 소멸을 창조적으로 제어하는 것은 유기체의 살아 있는 몸이다. 그 속의 분자들에게 생물은 상대적으로 불멸에 가까운 우주다. 체내 분자 역학을 멈출 때 생물은 죽는다.

생물학적 죽음의 기원은 분명하다. 죽음은 생명과 함게 시작했다. 생명의 다산성이 모든 미생물의 영원한 삶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죽음이 없으면 이 성장과 번식은 생명 덩어리의 무한 증가로 이어진다.

죽음이 없다면 그 박테리아 집단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지구만한 덩어리가 되기까지는 고작 60년이 걸릴 것. 박테리아는 반드시 죽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먹을 수 있는 자원이 바닥나거나, 수많은 불리한 환경 조건들에 굴복하기 때문.

박테리아가 죽어 다른 생물들이 산다. 죽은 박테리아는 영양 물질과 공짜 에너지의 잠재 원천으로 변해 다른 생물들(예, 원생생물과 균류)이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살아 있는 것들은 다른 것들의 죽음을 딛고 생존하고 번성한다.

기본적으로 그것은 거대한 권력 찬탈이다. 오늘날 전기공학자나 물리학자는 힘을 시간에 따른 에너지 흐름으로 정의한다. 유기체는 엔트로피라는 열역학적 바다에서 끊임없이 해체되는 단백질을 소생시키기 위해 에너지 흐름을 필요로 한다. 내가 쓰러져도 그 놈들(독수리, 생쥐, 토양 박테리아)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내 시체를 보거나 냄새를 맡는 순간 군침을 흘리고 입맛을 다실 것이다. 박테리아 포자는 내 시체에 접촉하는 즉시 소화효소를 분비할 태세를 갖추고 있을 것. 35

시체 -> 땅 속의 박테리아, 몸 속의 탄소를 이산화탄소로 변화시킴. 이산화탄소 분자는 애초에 우리의 몸이 만들어질 때 들어간 주재료. 인간은 궁극적으로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에 의존한다. 당신은 결국 지상에서 광합성을 하는 모든 조류와 식물에게 꼭 필요한 영양소 분자가 된다. 또한 우리는 평생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생존하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식물이나 동물을 섭취해 가스 노폐물로 전환시켜야 한다. 탄소는 당신의 액체 폐기물과 고체 폐기물에 섞여 배출되고, 그런 다음 흙속의 박테리아에 의해 또는 쓰레기 처리장에서 이산화탄소로 전환된다. 우리는 모두 이산화탄소 생산공장이다. 우리는 살기 위해 죽음을 창조한다.

인간의 밥상에 오르는 동물 단백질 속의 탄소 1그램은 그 동물이 소화하는 식물(또는 다른 동물) 속의 탄소를 몇배나 더 많이 필요로 한다. 서양인의 평균 식사에는 매달 우리 몸 속의 탄소와 거의 맞먹는 식물의 죽음이 필요하다.

생물지화학, biogeochemical
탄소의 순환, 질소, 인, 칼륨, 철의 순환.

생명체가 죽어 흙속에 묻혀도 그것은 여전히 더 큰 생물권에 속한다. 흙속이나 공기 중에 존재하는 탄소 원자는 그 원소에 초점을 맞추면 여전히 생물권 안에 살아 있다.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공기, 흙, 물, 생명체 내의 다양한 형태로 전환되는 동안, 탄소 원자는 생물권 안에 계속 존재한다. 생물권이라는 특수한 체계 안에서 탄소의 읾반적인 수명은 약 10만년 이다. 탄소가 생물권에서 일생을 마쳐도 탄소가 아닌 다른 것으로 바뀌진 않는다. 단지 더 깊은 구역으로 들어간다. 매장되는 경우. 죽은 해양프랑크톤의 탄산칼슘 껍데기에 갇혀 유기 퇴적물을 이루는 것. 석탄.

부활한 탄소를 모두 합쳐도 허기진 식물들의 기공, 조류와 식물 프랑크톤의 게걸스러운 막기공들을 충족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넗은 관점에서 탄소의 연간 수요와 공급을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광합성을 하는 생물들, 즉 이산화탄소 속의 탄소를 모든 생명의 핵심인 유기 분자로 전환하는 생물들이 흡수하는 탄소의 총량은 연간 1천억 톤. 이와 대조적으로 깊고 어두운 지하에서 올라오는 양은 연간 5억 톤에 불과함. 200배 차이. 그렇다면 그것을 어디에서 얻을까? 간단하다. 물과 공기로부터 얻는다. 그러나 물과 공기는 탄소를 어디에서 얻을까? 모든 포유동물, 물고기와 개구리, 에벌레와 나비, 벌레, 토양과 바다 속의 박테리아에게서 얻는다. 그것은 대사과정이 동일한 이 호흡하는 생물들이 방출하는 이산화탄소다.

살아 있는 것들이 죽음에 의존하는 순환은 생명체들이 필요한 것을 얻는 수단이다. 위의 200배라는 수치는 죽음-삶-죽음-삶의 끝없는 순환이 지구의 광합성에 요구하고, 탄소의 순환 과정에서 모든 유기체들 요구하는 양이다.

식물과 조류가 섭취하는 이산화탄소 속의 탄소 중 99.5%라는 막대한 양은 죽음에 의존하거나 이미 죽은 것을 먹고 이산화탄소를 생산하는 생물들에게서 나온다.

생물지화학 순환은 개인적 불멸의 형태를 깨닫게 해준다. 나는 내 원자들을 통해 다른 생명체가 된다. 나는 숨을 쉴 때마다, 즉 내가 먹는 세포들을 날숨 속의 이산화탄소로 전환시키고, 그 이산화탄소를 다음 단계의 광합성에 (그럼으로써 나에게) 연료로 공급하여, 생명의 생물지화학 순환에 기여한다.

생명의 충일함이 탄소를 비롯한 여러 원소를 재사용하는 죽음-삶 순환에 어떻게 의존하는지를 깊이 생각해보라. 그 속에서 우리는 중립적인 무(에피쿠로스)를 뛰어 넘는 죽음의 패턴을 목격한다. 43

진화의 두 비밀은 죽음과 시간이다.(칼 세이건)

죽음과 삶은 진화를 창조하여 새로운 세대뿐 아니라 새로운 종류의 생물들을 지속적으로 탄생시킨다. 새로운 종류의 생물들은 새로운 특징들을 갖고 있으며, 그것은 새로운 형태의 죽음일 수 있다.

이는 놀라운 현상이다. 자연선택이 운영하는 창조의 도가니가 죽음을 요구하는 것, 다시 말해 가장 단순한 원핵생물의 세포에서까지 죽음을 생존이라는 기능의 일부로 결합한 적응능력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내가 말하는 죽음은 자원 부족 때문에, 또는 탄소와 진소 같은 원소들의 경이로운 생물지화학 순환을 창조하는 포식자-먹이 망 때문에 발생하는 죽음이 아니다. 나는 죽음이 진화에 의해 선택된 신체적, 대사적 적응 능력과 연결되어 있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자살 박테리아
예정된 세포사

세포 자살은 생존과 번식의 난제를 극복하는 안정적이고 강력한 해결책으로서 여러번 진화했다. 모든 사례에서 핵심 주제는 포자 형성을 돕기 위한 노동분업이다. 죽음의 진화 잉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죽음이 원초적 기능의 하나로 예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모든 사례에서 생명은 새로운 종류의 죽음을 진화시켰다. 49

예정된 세포사가 출현한 뒤로 진화의 흐름 속에서 죽음은 선택될 수도 있고, 구체적인 생명체들의 환경 적소에 맞도록 갈고 닦거나 거부할 수도 있는 특징이 되었다. 이 단계는 우리 인간을 지금처럼 만드는 과정에도 필수적이었다.

남세균, 양분 부족으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자살을 한다. 모든 세포가 자살 양상으로 들어가는 유전적 능력을 갖고 있다고 연구자들은 생각하게 됨.

예정된 죽음은 위 사례들의 진화사에서 중요한 단계였다. 예정된 세포사의 도래와 함께 죽음은 생물지화학 순환에서 약탈의 부산물이자 수동적 톱니바뀌라는 진화상의 위치를 뛰어넘었다. 그러 인해 죽음은 유기체 자신의 유전자 속에 새겨진 하나의 특성이 되었고, 죽음과 삶은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가 되었다. 50


<큰 몸뚱이 속의 작은 죽음들>
공생발생 symbiogeness

미토콘드리아, 저승사자 역할, 식물 세포에서도 예정된 세포사를 담당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짐작됨. 그러나 복잡한 진핵세포가 왜 자살 계획을 이용할까? 아마 이 진핵세포가 앞 장 말미에 언급한 단세포 남조류 같은 원핵생물에게서 사망 프로그램을 물려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53

진핵세포에게 예정된 죽음이 기능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서는 이 세포들이 어떻게 자살하느냐에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다. 어떤 진핵세포들은 미토콘드리아가 부여하는 조상 전래의 방식에 따라 죽는다. 다른 진핵세포들은 적당한 시기에 죽음을 맞이하는 다른 요령들을 진화시켰다. 이 차이들은 상당히 중요한데, 기능적 과정으로서 죽음이 진화의 숫돌에 갈고 닦여왔음을 보여주기 때문. 죽음은 생존력 있는 생명체를 창조하는 과정에서 아주 강력한 요소였기 때문에 각기 다른 방식으로 여러 번 확립되었다. 심지어 인간의 몸 안에서도 어떠한 세포들은 중심 처형자인 미토콘드리아에 이끌려 사망하고, 어떤 세포들은 다른 수단에 의해 사망한다.

사람의 몸에는 더 큰 생명을 지원하는 죽음이 가득하다. 성인의 몸에서는 초당 10만 개의 세포가 죽는다. 이는 1초마다 대략 10만개의 세포가 새로 태여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수로부터 우리는 사람의 세포가 평균적으로 1년에 한 번 완전히 바뀐다고 추론할 수 있다. 이 회전율은 생명이 물질의 재생 방식임을 보여준다. 원자들은 완전히 바뀌어도 우리의 몸은 정체성을 유지한다.

이 세포 회전율은 체세포의 종류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난다. 뇌 세포는 거의 바뀌지 않는다. 이 안전성은 우리가 독립된 개인으로서 느끼는 연속성과 관련이 있으며, 그 세포들은 방대한 신경망에서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뇌와 대조적으로 신체의 다른 장소들은 세포 사망과 탄생이 빠르고 뜨겁게 일어나는 분쟁 지역이다. 예. 피부, 장내벽, 적혈구, 면역계

신체의 하부기관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세부 기능들을 원래대로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가에 따라 어느 세포가 오래 살고 어느 세포가 빨리 죽는지가 결정되는 듯하다.

만일 우리가 물질과 에너지가 들어오고 나가는 소용돌이라면, 그 소용돌이 안에서 많은 물질이 재활용된다고 말할 수 있다. 몸에서 죽음은 발생과 성장에 필요하고 더 나아가 생명이라는 소용돌이의 안정성에 필수적이다. 60

<죽음이 빚어내는 탄생>
살아있는 동물의 몸 안에서 펼쳐지는 경이로운 죽음들을 몇 가지 측면에서 능가하는 것이 있다. 우뚝 솟은 나무의 몸 안에서 기능적으로 죽은 것들이 나무의 삶을 조작하는 방식이다. 예. 목질부, 죽은 세포들의 관상 기능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뿌리에서 모든 무기질을 함유한 물을 잎으로 올려 보내는 기능을 한다. 이 헛물관은 물과 무기질을 유통시킬 뿐 아니라, 나무 전체가 중력을 이기고 위로 자라는 것을 지탱한다.

헛물관으로 이루어진 목질부만이 나무에서 죽음이 핵심 역할을 하는 유일한 부위가 아니다. 나무껍질과 재생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좁은 층 사이에 샌드위치 처럼 낀 층인 체관부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체관부 세포들은 살아있다. 그러나 이 세포들은 사형집행 영장을 받아든 상태다. 다시말해 대부분의 세포들이 탈핵되어 있다. 진화의 과정에서 식물은 죽음을 지배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동물과 똑같은 기술을 발견했다. 우리 인간도 피부와 적혈구에 탈핵된 세포들이 있으며, 이 세포들은 한정된 수명을 살면서 더 큰 전체의 여러 기능들을 돕도록 진화했다. 64

나무의 중요한 두 장소에서 죽음이 생명을 만든다고 말할 수 있다. 죽은 체관세포로 이루어진 껍질과, 나이가 들어 목재 부위로 변하는 목질부가 그것이다. 죽음은 유용하고 창조적이다.

식물의 부위들이 제 몫을 다하고 소멸할 때 그 세포 안의 영양분이 풍부한 부분들은 본체로 돌아온다. 이는 일종의 자가 동종 포식이고, 인공물을 구입하고 사용하고 소모한 뒤 살해하는 우리 인간에게 교훈이 될 수도 있는 현명한 재활용 방식이다. 66


<극단적인 노화>

진화의 시간표에서 최근에 출현한 대형 유기체들은 모두 복잡한 발생페턴을 위해 세포사를 제어하는 능력을 부여받았을 때 비로소 진화할 수 있엇다.67

대형 유기체들과 함께 죽음은 새로운 얼굴을 선보엿다. 다세포 유기체가 종 특유의 평균수명을 산 뒤 죽음에 이르기 시작했다. 만약 지구를 먹을 수 있고 유기체들이 마음껏 번식할 수 있었다면, 생명이 진화한 뒤 수십억 년 전에 출현한 미생물처럼 큰 유기체들도 지구 전체를 먹어치웠을 것이다. 반드시 죽음이 존재해야 했다. 죽음은 동물의 먹이사슬에 폭력적인 형태로 존재한다. 그러나 동물 성체의 노화에는 깊이 생각해볼만한 독특하고 중요한 하나의 패턴이 존재한다.

수명을 연장할 수 있는 유전자를 조사하여, 인간의 노화 속도와 관련된 세포 역학의 단서를 찾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그러나 유전자를 넘어서 노화의 다양한 방식과 속도를 설명할 수 있는 방도는 없을까? 생물의 생태 적소는 생물이 나이가 들수록 질병이나 대사 질환에 잘 걸리고 결국 종 특유의 수명을 보이는 진화적 현상에 어떤 역할을 할까?

나무나 원숭이가 자연 수명을 다하고 죽는 것은 자리를 비켜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생노년학biogerontology 분야의 과학자들은 일반적으로 노화를 삶의 부산물로 본다. 그러나 노화는 놀라울 정도로 삶의 방식 및 번식 방식과 조화롭게 일치한다.

신체폐기이론:
노화가 진화가 선택한 다른 특징이 압도적인 이익을 내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생기는 불행한 부산물이다. 이 이론의 핵심은 번식의 성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신체는 수동적으로 희생되고 폐기된다는 생각이다. 자연선택의 초점은 번식이다! 번식이 끝난 뒤에는 유기체를 건강하게 유지시키는 선택 압력이 점점 줄어든다. 노화는 이 선택 압력의 부족에서 나오는 부산물이다. 이 진화의 논리를 조사해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장소는 노화가 갑자기 진행되는 경우들, 즉 신체폐기 이론이 극단적으로 표현되는 곳들이다. 예. 태평양 연어(짝짓기 철이 지나면 암수가 함께 죽는다, 종의 생존에 필요한 생리적 행동이 처형자 역할을 할 수 도 있다. 즉 생명을 섹스와 교환한다.)

진화적 거래는 결국 수량 게임이다.
태평양 언어가 단 한 번 짝짓기를 하는 방법을 진화시켜 얻은 결과는 몇 년 간격으로 짝짓기를 해서 얻을 수 있는 자식의 총수를 초과하는 것이 분명하다. 신체폐기이론은 하나의 질문으로 압축된다. 미래의 번식을 위해 신체를 보존하는 것과 지금의 번식률을 높이기 위해 신체를 폐기하는 것 중 어느 것이 가장 많은 유전자를 퍼뜨릴 수 있는 방법일까? 급격하고 극적인 노화는 이 질문에 답이 될 수 있는 방식이다.

인간의 경우 진화가 수명을 다르게 조율한 것은 분명하고도 고마운 일이다. 우리의 현은 상대적으로 오래 울린다. 그러나 급격하고 극단적인 노화의 사례들은 죽음, 번식, 삶의 관계에 중요한 교훈을 제공한다. 또한 외양상 점직적인 노화처럼 보이는 예들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중요한 진화의 논리를 깨닫게 해준다.

 

 

<장수를 조율하다>

차이는 있겠지만 인간의 평균적인 불씨에는 분명 유전자에 기초한 패턴이 존재한다. 우리는 노쇠가 점진적으로 진행된다. 죽음은 첫번째 섹스를 한 뒤에 곧바로 찾아오지 않는다. 어떤 법칙과 패턴이 생물의 다양한 수명을 지배할까?

야생의 새는 우리에 갇힌 같은 무게의 포유동물보다 2배 가량 오래산다. 조류가 왜 장수하는가에 대한 설명은 오늘날 진화 수명이론의 가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지금 날고, 나중에 죽는다" 비행능력 덕분에 새와 박쥐는 포식자로부터 육상 포유동물들보다 훨씬 안전하다고 가정한다. 나무에 거주하는 종이 육상에 거주하는 종보다 평균 수명이 60% 더 길다. 진화 수명이론의 핵심은 포식자로부터 안전한 생물들이 신체 내부의 유지 및 보수 능력을 많이 진화시길 수 있엇따는 것. 세포 안에서 진행되는 DNA 복구 효소에 그 답이 있따고 과학자들은 확신한다.

미시차원인 특정 유기체의 생활 습관, 즉 그 유기체가 환경과 다른 유기체들이 강요하는 죽음을 피하는 거시 차원과 상관성이 있고, 어떤 의미에서 그 차원에 지배된다고 할 수 있따.

수명이 결코 환경의 우연한 산물이 아니라, 진화의 시간대에서 동물과 환경이 맺는 총체적 관계의 필수 부분이고, 그것을 통해 번식 성공률과 대사 유지의 균형을 가늠할 수 있다.

인간의 노화,

우리는 질병을 정복해서 수명을 연장할 뿐 아니라 체내의 대사 체계들을 변화시켜 수명을 연장하게 될 것이다. 예.인슐린 체계.

우리는 분명 예외적인 경우에 속한다. 우리와 무게가 비슷한 포유동물들의 수명과 비교할 때 인간은 4배정도 오래 산다.

우리는 포식과 자연적 위험이 난무하는 경기장에서 살아남을 수 잇는 향상된 생존 기술을 우리 조상들에게 부여했음직한 특별한 자질을 찾아야 한다. 뇌에 의한 영리함? 직립과 두발로 뛰기? 자유로운 손?

수명을 뇌 무게의 한 기능으로 보고 영장류의 데이터를 그래프로 보면, 수명과 뭄무게의 상관성보다 더 밀접한 상관성이 나타난다. 큰 뇌를 가진 동물들의 도피 능력은 포식을 피할 수 잇는 한 방도가 된다. 또한 큰 뇌는 복잡한 사회구조의 형성에도 한 몫을 하는데, 그런 사회에는 경고의 의미를 전달하는 신호가 있다. 만일 뇌 무게를 결정적 요소로 인정한다면 인간이 최고의 영장류로 등극할 것이다. 실제로 인간은 최고의 장수를 누린다. 인간의 도구 사용 능력, 사회구조 구성 능력, 언어사용,

지난 2백만 년에 걸쳐 인간이 진화하는 동안 뇌 크기에 찾아온 두 번의 변화는 수명의 증가와 함께 일어났거나 그 직후에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인간의 수명은 자연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위치에서 유래하고, 진화하는 동안 내내 다듬어지고 변화해왔다. 84


3부. 죽음에 대한 인식

<죽음의 문화적 탄생>
장례 풍습
죽음을 둘러싼 관습은 왜 존재할까? 그 관습들은 분명 생물학적 진화에서 직접 나온 산물은 아니다. 우리가 발명한 관습은 죽음에 생물학적 죽음을 훌쩍 뛰어넘는 의미를 불어넣는다. 그 의례들은 문화적 발명품, 다시 말해 생물학적 사실 위에 층을 이루고 형성된 문화의 산물이다.

생물학적 치유와 같이 감정적 치유를 위한 사회적 세포들은 서로 돕는 방법을 만들어냈다.

죽음이 삶의 문화적 양상들에 미치는 영향. 보편적 양식이 존재한다. 각각의 죽음을 중심으로 사회적 삶이 형성된다. 제도화된 추도방식.
누군가 죽은 것을 눈으로 보지 않아도 평범한 사람의 의식을 통해 일상생활에서 자신의 죽음을 예상하는 것은 충분히 두려운 경험이다. 정중한 장례식이나 추모식을 경험하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한결 누그러진다.

먼 옛날 빙하기의 동굴 무덤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화에서 뚜렷한 일관성을 볼 수 있따. 죽음은 죽은 사람과 아무 관계가 없을 수 있지만 산 사람들에겐 대단히 중요했다.

진화심리학.
우리의 뇌에서 펼쳐지는 인지과정들 그리고 먼 예날부터 문화가 우리의 심리적 욕구에 새겨 넣은 동역학의 기본 원리는 크게 변화지 않았다. 문화의 발전과 더불어 생명과 죽음의 끈에는 새로운 매듭이 생겼고, 그 뒤로 타인의 죽음은 산 사람들의 행동과 심리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97

<죽음을 부정하는 방어기제들>
사회심리학, 공포관리이론

죽음의 불가피성을 깨닫기 시작함.
죽음의 불기피성을 깨닫는 것은 훌륭한 뇌의 산물이지만 생존을 위해 뇌가 수행하는 기능적 목표와 갈등을 일으킨다. 우리의 내면에는 살고 싶다는 의지와 그 의지가 결국에는 꺽일 수밖에 없다는 인식 사이의 깊은 갈등이 존재한다
= '원초적 딜레마'

공포를 억제하고 극복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불멸 프로젝트를 이용하는 것임. 불멸을 기약하여 원초적 딜레마 전체를 무효화시키는 것. 이 범주는 내세에 관한 여러 유형의 시나리오를 보여주는데, 각 시나리오에는 인류 역사의 다양한 문화가 반영되어 있음.

잠재의식의 불멸 프로젝트.
자신의 죽음을 암암리에 떠올린 참가자들은 내적 공포에 대응하기 위해 내면의 방어수단을 강화하고, 이를 위해 자신의 문화적 세계관을 강화한다. 세계관 방어는 자신의 죽음을 인식했을 때 발생하는 심리적 동요에 대처하는 특수한 해독제이고, 그 방어기제가 잘 확립된 덕분에 우리는 정상적인 상황에서 우리가 전혀ㅕ 주목하지 않는 수준까지 동요를 억누를 수 있다. 109

<죽음과 자존감>

집단 1: 죽음인식 + 신체인식(전면에 거울이 있는 방에서 실험)
집단 2 : 죽음인식

자신의 육체성을 직면하는 것은 존엄성을 위협하는 불편한 요인이다. 자신의 육체성에 대한 피드백이 상승하면, 비록 무의식에서지만 자신의 죽음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돌아보게 되어 원초적 딜레마의 공포를 느낄 가능성이 높아짐.
. 죽음과 관련된 두 질문이 포함된 검사지를 두 집단의 참가자들이 몇 분만에 작성하였는가? 집단 2는 6분 30초, 집단 1은 2분이 채 걸리지 않음.

공포관리이론의 함의:
죽음의 인식은 문화를 하나로 묶는 의식(의례)에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죽음 인식은 서로의 자존감을 지탱해주는 공통의 세계관과 방법으로 우리를 묶어주는 일상의 광범위한 정신적 구조물들에도 영향을 주어, 그 구조물들에 생기를 넣어준다.

우리 정신의 복잡한 양상들, 죽음에 대한 개념과 무관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양상들의 일부 또는 거의 전부가 실은 죽음에 대한 그 벌레 같은 인식(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깨달음)에 의해 형성된다.

우리의 심리 활동,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현실을 공유하는 방식은 적어도 어느 정도는 죽음에 대한 반응의 성격을 띈다. 결국 생물학적 죽음이 생물권 안에서 탄소의 흐름을 통해 새로운 생명체로 전환되는 것처럼, 죽음의 인지적 양상들은 개인과 그들의 문화 사이의 상호관계를 통해 사회적, 심리적 구조물로 전환된다.

인간의 공격성이 어디에서 유래되는가? 부분적으로 죽음에 대한 심적 동요에서 비롯되며, 죽음에 대한 심적 동요는 세계관의 차이를 인식할 때마다 고개를 든다. 세계관의 차이는 각자의 세계관을 위협해서 각 세계관이 제공하는 정신적 보호의 수준을 감소시키고 죽음에 대한 섬뜩한 인식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115

무의식 속에서 동기를 자극하는 죽음이란 요인을 이용해 공정하고 관대한 사회를 창조할 수 있다. 죽음 인식이 정신의 형태를 빚는 힘 앞에서 우리는 무기력할 필요가 없어. 그보다 우리는 그 인식의 힘을 이용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반응을 개인들에게 권유할 수 있따. 관대한 사람은 죽음 인식에 직면햇을 때 더 관대해질 수 있고, 편협한 사람은 더 편협해질 수 있따. 인식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나는 욕망들, 예. 명예욕같은 욕망에의 집착.

죽음과 죽음 인식을 삶 속에 통합하는 메커니즘을 들여다보면,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느겼던 극도의 슬픔을 훌쩍 뛰어넘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따. 죽음의 그림자에 대한 새로운 지식과 함께 삶의 새로운 가능성이 찾아온다. 119

<흐르는 물 위의 잔물결>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무덤들.
확장된 자아, 더 큰 심리적 전체인 사회적 세계. 산자들과 죽은 자들이 함께 뒤섞여 전 세계를 아우르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멋지게 통합된 심리적 체계.
죽은 자와 긴밀히 통합되어 있다는 느낌.
이 사람은 누구였을까?

확장된 유기체, 무어우드 Mur Woods
보라색 엉컹퀴 꽃잎 틈새에 숨어 잇는 이 곤충은 무엇일까?
자유롭게 자세한 면들을 관찰하면 더 큰 전체에 속한 개체들의 눈부신 복잡함을 감지하면서 즐거운 흥분을 느낄 수 있다.

죽은 자들은 생태계의 어디에 있는가? 흙속으로 눈을 돌려보자
나무의 균근균, 월드와이드웹, 우드와이드웹.

세계의 생물지화학 순환들을 통해 시체를 재활용함으로써 지구는 전체적으로 생명의 풍부함을 200배 정도 높이고 있따.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고, 과거로부터 배우고, 생각을 전달하는 사회적 존재라면, 그로 인해 우리의 의식은 얼마나 증폭될까? 200배일까?

그러나 적어도 우리는 지금 살아있는 동안 심리적 회로에 집중할 수 있따. 우리는 심리적 자아를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따. 생태계는 우리의 생각이나 무의식적 자아와 유사하다. 우리의 무의식적 자아에는 생각과 감정,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활동과 긴밀히 엮인 기억들이 존재한다. 세균, 연어, 나무, 적혈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증폭된 망에 연결된체 살아간다. 그리고 죽는다. 그러나 살아있는 동안 그것들은 순환하는 생명과 그 망 속에 머문다. 그것들은 저마다 고유한 생명체였다. 그것들은 일종의 살아잇음을 유지한다.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전체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127

증폭된 의식의 심리 망에 속한 존재들도 마찬가지다. 각각의 사람들이 망에 기여한다.

하나의 물질적 패턴으로서 나는 내가 마시는 물 속의 수소 핵처럼 거의 불멸하는 존재가 아니다. 그러나 내 속의 화학 원소들은 생물권을 순환할 것이고, 구름과 바다와 수 많은 경이로운 생명체가 될 것이다. 또한 나는 광대한 망 속에 존재하는 하나의 문화적 매듭이다. 나는 문화적 패턴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그들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나는 자신을 흐르는 물 위의 잔물결로 간주한다. 내가 잇는 곳은 여기인 동시에 여기가 아니다. 나는 여기에서 언어로 표현할 수 잇는 것보다 더 완전하고 미묘하게 다른 사람들 속에 융합되어 있따.

우리는 마음의 바다 속에 존재한다. 물리적인 뇌는 그 바다 속에서 경험의 매듭들이 창조되고 하나로 묶이면서 발생하고 형성된 산물이다. 하나의 뇌가 깜박임을 멈출 때 그 특정한 뇌의 작용으로부터 생겨났던 복잡한 매듭도 깜박임을 멈춘다. 그러나 더 큰 바다와 매듭들 간에 오갔던 인과의 메아리들은계속 존재한다.

우리는 단지 두개골에 담겨 있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그 밖으로 확장되어 있고, 다른 사람들과 사실상 융합되어 있다. 내가 죽어도 내 자신의 패턴들, 예들들어 과학에 대한 생각의 방식들은 젊은 과학자들 속에 계속 존재할 것이다. 나는 바로 이 책 속에 잇고 나의 부분들은 여러분의 마음에서 새롭게 태어날 것이다.

강물 위의 잔물결, 시각적으로 정지시키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개개의 경계를 정할 수가 없다. 잔물결들은 개별적으로 존재하지만 거기에 잇는 무늬들이 서로 뒤섞인 전체뿐이다. 잔물결은 복잡한 전체 속에서 합쳐지고 갈라지는데, 그 전체를 인식할 때 개인의 의식 상태에 변화가 찾아 올 수 있따.

"가을이 깊어가는데
나의 이웃은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 " 130

 

 

◎ 섹스 파트(도리언 세이건)

생계유지와 죽음을 제외하고 거의 어떤 주제도 섹스만큼 인간 정신 위에 큰 그림자를 드리우지 못한다. 매력 힘, 학대, 데이트, 자아상, 가족 등의 문제들, 그리고 자식을 낳고 손자를 보는 등의 대리 불멸은 모두 성관계라는 돌쩌귀에 연결되어 있다. 134

18세기, 체스터필드 경, 섹스는 "비용은 지독한데, 쾌감은 덧없고, 자세는 바보같다" 135

우리를 포함한 대부분의 식물과 동물에서 섹스와 번식은 강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그 연결이 필연적이진 않다. 생물학적 용어로 유성 생식은 둘 이상의 출처에서 나온 유전자들로 새로운 개체를 형성하는 것. 여기에서 둘 이상의 출처를 당신에게 적용하면 당신의 생물학적 부모를 가리킨다. 반대로 단성 생식은 개체 수의 증가이지만, 개체들이 반드시 새 유전자를 갖지는 않는다.

식물과 동물이 진화를 시작하기 수십억 년 전부터, 박테리아는 번식을 위해 다른 개체를 필요로 하지 않고서도 유전자를 교환해왔다. 화성에서 왔다고 최근에 보고된 그 메탄이 박테리아의 산물이라면, 생명은 먼 우주 어딘가에서 진화했을지도 모른다... 그 박테리아는 태양계가 생기기 전부터 유전자를 교환했을지도 모르고, 심지어 유성 생식으로 그랬을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박테리아의 소박한 형태였다고 해도 섹스는 지구상의 생명보다 더 일찍 출현했을지도 모른다. 박테리아는 그러면서 DNA를 교환했고, 약 20억년이 흐른 뒤 아메바 같은 최초의 세포가 출현했다. 바로 이 세포들 사이엣 우리와 같은 섹스, 다시 말해 대개 부모 한쌍이 필요한 감수분열 섹스가 처음으로 진화했다. 137

세균학자들은 유전자를 교환하는 박테리아의 능력을 지구적 지능 또는 인터넷에 비유하기도 한다. 139

식물과 균류뿐 아니라 인간을 포함한 동물들이 벌이는 섹스는 결정적으로 다르다. 박테리아는 핵(세포의 밀집된 중심체)이 없고 실질적인 염색체(단백질 가닥 속에 포장된 DNA)가 없다. 반면에 더 큰 세포들로 이루어진 우리와 같은 생명체들은 핵과 염색체를 갖고 잇다. 이 클 세포들은 막에 둘러싸인 핵과 그 밖의 복잡한 구조물을 포함하고 있어 진핵생물이라 불린다. 이 진핵생물은 염색체를 배가하고, 양쪽 부모에게서 온 핵들을 하나로 융합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렇게 두 묶음의 염색체가 성적으로 융합된 핵이 한 묶음의 염색체로만 존재하는 원래 상태(정자 세포와 난자세포의 상태)로 되돌아가야 한다.

진화론의 용어로 우리는 하나의 정자나 난자가 또 하나의 정자나 난자를 만드는 방식으로 태어난다. 적어도 지금까지 섹스는 이 순환의 피할 수 없는 일부분이었다. 성장하는 동물의 몸에서 세포증식은 정점에 달하고 안정 상태에 들어간다. 더 많은 동물의 삶이 지속되려면 성장 순환이 재가동되어야 한다. 섹스가 그 비결이다. 그러므로 낭만, 눈물, 사랑, 두려움 뒤에는 번식 순환이 끝난 후 기사답게 퇴장하는 덧없는 존재의 낭만적 역설이 깔려있다. 140


섹스와 죽음에는 어떤 연결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테라아보다 큰 세포들은 완전한 짝짓기가 아니라 부분적인 짝짓기를 한다. 그리고 짝짓기를 할 때 그 세포의 일부, 즉 산소를 이용하는 미토콘드리아는 나머지 부분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예. 남자의 미토콘드리아 DNA 같은 일부 몰질은 수정란에 결코 들어가지 못한다. 우리몸을 구성하는 수조개의 세포들 중 단 몇개의 정자와 난자만 살아남아 다름 세대를 이룬다. 148

자연선택이든 성선택이든 선택으로는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다.(스티븐 제이 굴드의 저서를 관통하는 주제)

정자경쟁은 성기의 구체적 형태를 결정한다. 그런 도구를 진화시키는 수컷은 경쟁자들을 사전에 제합했다. 물고기와 대부분의 해양 동물들은 물속에서 산란을 할 때 난자 위에 정자를 분출한다. 만일 암컷이 알을 낳기 전에 수컷이 암컷의 몸 속으로 접근할 수 있다면 이 번잡한 방식은 개선된다. 진화의 역사에서 바로 이런 일이 일어난 것. 음경과 체내수정의 진화는 우리가 유인원이 되기 오래 전에 우리의 계통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정자 경쟁에 의해 추진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배우자가 자신을 속이고 바람피운다고 의삼하는 남자들은 측정이 가능할 정도로 더울 많은 양의 정자를 생산한다고 한다. 남자의 몸은 무의식적인 경쟁 기계를 갖고 있어, 경쟁이나 간통의 가능성을 탐지하면 정자 생산을 늘리는 것으로 보인다.

만일 질투가 분노와 폭력을 유발할 수 있다면 그것은 최음제일 수도 있다. 191

인류 이전의 마술적이고 음악적인 짝짓기 기계들의 뜻 모를 재잘거림에서 기술적 중요성과 미학적 장점이 가득한 기회의 세계가 탄생했을 것이다. 어떤 과학자들은 말을 하고, 문화를 발전시키는 인간과 말을 못하는 동물을 구별하기 위해, 인간 주위에 접근 금지의 빨간색 테이프를 친다. 인간만이, 그리고 그 점에있어 우리의 일부만이 진정한 언어 클럽에 들어갈 수 잇는 것 처럼. 그러나 그런 구분은 진화의 정신에 위배된다. 공통 조상을 공유한다는 것은 언어와 음악성이 인간의 독점물이 아니라, 다윈이 암시했듯이 연속체의 일부라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수다스럽지만 침팬지와 불리된 세계가 아니다.

우리의 성차별의 깊은 뿌리. 우리가 문화적으로 학습한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우리의 개화된 행동은 동물적 뿌리와 연결되어 있다. 예. 장모에 대한 침팬지들의 행동. 혈연으로 묶여 있는 무리 내의 수컷들이 장모를 쫏아내고, 괴롭히고, 때로는 때리기도 한다. 수컷들은 생식 능력이 없는 낯선 암컷에겐 아무 관심이 없다. 자유분방한 짝짓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누가 아빠인지를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누가 아빠인지를 모르는 상황은 인간들 사이에서도 발생한다. 성적 채무를 붕이행하는 남자들을 보라. 남자들에게도 여자의 어머니를 향한 해묵은 반감이 낯설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그 반감을 억압한다.
예. 여섯명의 여자가 장모를 때리고 있는데,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하는말, "왜요, 여섯이면 충분한데"

"인간에겐 자신의 열정들과 무관한 존재가 있다고 많은 사람들이 가정하는 듯하다. 그러나 나는 그 열정들을 제외하고 존재를 상상해서는 안된다고 단언한다. 우리는 불연속의 존재자들, 즉 이해할 수 없는 모험의 한가운데에서 고립된 채 소멸하는 개인들이지만 우리의 잃어버린 연속성을 갈망한다. 우리는 견디기 힘든 무작위적이고 덧없는 개인성에 우리를 옭아매는 사태들을 마주한다. 이 순간적인 것이 지속되기를 바라는 우리의 고통스러운 욕망옆에는, 우리를 존재하는 모든 것과 연결시키는 원초적인 연속성에 대한 집착이 나란히 서 있다. 이 향수야 말로 인간의 애로티시즘의 원천이다"
조르주 바타이유

로망스어들이 사실상 모든 명사에 성을 부여한다는 사실.
성별에 따른 사고는 우리의 몸을 반영한다. 프로이드가 입증했듯이 스스로 아니라고 생각할 때에도 우리는 섹스를 염두에 둔다.

바타이유, 소설 <눈 이야기>
현실의 성애화, 바타이유의 성애화는 도착의 도착이다. 모든 것을 위반하고, 전복하고, 훼손하고, 성애화하는 바타이유의 고집은 사회와 규범에 대한 도전인 동시에, 설교처럼 고상하지만 아무도 복종하지 않는 위선적인 도덕률을 전도시킨다. 섹스에 대한 사회적 거부를 거부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성적인 것과 과잉을 포용하고 그것을 성의 환경으로, 즉 본질상 규범에 순응하지 않고 경계 안에 얌전히 머물지 않는 것으로 인정한다. 죽음처럼 섹스도 초월에 이르는 경로였고, 이성적 사고의 경계와 학문의 경계를 비롯한 모든 인위적 경계를 폭로하는 길이엇따. 그는 과잉의 문을 열고 들어가 무한과 교류했다.
인간의 진화를 성적 현상으로 묘사했다. 바타이유의 타락한 상상 속에는 성 이상의 어떤 것, 문학적 장점을 향유한 어떤 것이 담겨 있다. 그는 우리가 지금까지 보지 못햇던 우주의 진정한 성질을 보여주고 잇는 듯하다. 바타이유의 진화적 공상에서 욕망의 진정한 초점은 다른 인간이 아니라 태양이다.

동물의 활동들은 무작위가 아니라 저장된 태양 에너지를 조절하면서 활성화시킨 결과이이고, 그 에너지는 광합성을 하는 생명체들이 모은 것이다. 음식이 우리의 에너지원인 것 처럼 그 에너지의 원천은 햇빛이고, 식물의 잎은 그 원천을 행해 몸을 돌린다.

우주적 체계에서 생명의 진정한 목표는 섹스라기 보다는 번식이다. 그리고 과학의 눈으로 볼때 번식은 주위의 에너지를 이용하고 그 과정에서 그것을 퍼뜨리는 복잡계의 유지과정을 의미한다. 그런 체계들은 생명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에너지를 퍼뜨리고 열역학 제2법칙을 따르는 세계에서 해택을 누린다. 열역학 제2법칙은 대개 무질서로의 경향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열역학 제2법칙은 에너지 전달로 상상하는 것이 더 쉽고, 화학적 영역에서 복잡한 분자들의 연결로 생각하는 것이 쉽다. 그러나 물질의 몇몇 영역에서 최소 저항의 길은 에너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복잡하고 질서 있는 구조물들을 계속 만들어내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복잡계들이 존속하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같은 차이들은 자연스럽게 평형을 이루는 경향을 보인다. 할 수만 있다면 자연은 물질의 단순한 무작위 배열보다는 에너지를 잘 분산키시는 대류환, 소용돌이, 반복적인 화학 반응 같은 복잡계를 생산할 것이다. 이 점에서 생명은 에너지를 전달하기 위해 물질을 순환시키고, 에너지가 농축되어 있는 곳을 찾고, 그것을 이용하고, 열역학 제2법칙에 따라 대개 열로 그것을 발산하는 복잡계의 한 종류에 속한다. 진화는 볼내 무작위가 아니라, 자연적으로 에너지 매장량의 고갈을 향해 나아가는데, 그 중 최대 에너지는 태양이다. 생명은 열을 우주 속으로 내버리면서 계속 열을 식힌다. 그러므로 생명이 태양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섹스가 존재하는 것은 바로 생명 때문이다. 생명은 먹고 성장하고 번식하면서 에너지의 발산(바타이유 식으로 표현하면 소비)에 일조한다.

생명 속에 존재하는 에너지는 바타이유의 10대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파계와 일탈을 포함하는데, 그 총량은 태양 에너지의 변위이자 치환이다.

질서정연한 순환이 가능한 것은 지속과 성장에 동력을 공급하는 외부의 에너지원과, 열역학 제2법칙에 따른 복잡계 생명체들의 번식 때문이다.

블라디미 베르나드스키, <생물권>

공산주의와 파시즘 사이에서 괴로워하던 바타이유는 베르타드스키의 에너지 과학이 제공한 이론적 기초에 생각의 닻을 내렸따. 생명이 태양에너지를 변형하는 과정은 우리의 도덕성을 넘어서고, 우리 인류보다 오래 되었으며, 우리의 에로틱한 에너지와 강박관념의 원천이다. 213

세포 차원에서 수정란은 생식에 의해 발생했고 각 새로운 세포는 염색체 묶음, 즉 수정 과정에서 서로 맞물린 이중 DNA를 부모에게서 절반씩 물려받았다. 이 융합 상태에서 새로운 세포들을 만들어 신체를 성장시키는 과정을 유사분열이라고 부른다. '염색체의 춤'이라고 불리는 유사분열은 그 본질이 간단하다. 먼저 DNA를 함유하고 잇는 염색체가 복제된 다음, 세포의 나머지 부분이 복제되고, 그런 뒤 세포가 분리되어 두 개의 세포가 탄생한다. 유사분열은 염색체 수가 달라지지 않는다. 엄마 아빠의 접합자 쌍인 이중 DNA의 호의를 얌전히 받아들인다.

그러나 식물고 동물은 두 묶음의 염색체를 가진 이배체 세포 상태에서 무한히 성장하지는 못한다. 자연적 한계에 부딪혀 성장을 멈춘다. 예외 암세포. 텔로미어는 염색체들이 서로 합치고 재배열하고 무한히 성장하는 것을 막는다. 분화된 신체 안에서 세포들이 무제한적으로 성장한다면, 그 체계 전체가 죽음을 맞이 할 수 있다. 즉 암이 전이되어 신체가 오래 전의 무질서한 상태로 되돌아갈 것이다. 세포 차원의 재생을 제한하는 장치가 내장되어 있다는 것은 결국 유기체의 죽음으로 이어진다. 순환의 출발점으로 돌아가 새로운 섹스 기계를 만들어 내야 한다.

세포 수준에서 여기엔 유사분열이 아니라 감수분열이 필요하며, 이 감수분열의 결과가 정자와 난자다. 감수 분열은 수컷의 고환과 암컷의 난소에서 시작된다. 같은 수의 염색체를 유지하는 대신 염색체의 수를 반으로 줄이는 방식.

성세포인 정자와 난자를 제외하고 우리 몸의 세포들은 이배체다. 유성생식 순환은 대략 10억년 전에 출현하고부터 놀라운 상보적 운동에 돌입했다. 죽음의 신이 날을 바꿔가며 거대한 낫을 휘두르기 시작햇다. 감수분열과 함께 죽음이 찾아왔다. 정자와 난자로 돌아간다는 것은 결국 소조 개의 체세포를 버려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체세포들은 자신의 목적을 훌륭히 수행했더라도 진화에 직접 참여할 수 없었다. 유성 생식과 함께 예정된 세포사와 분화한 신체의 죽음이 찾아왔다. 진화의 관점에서 우리의 몸은 폐물이기 때문. 224

DNA 댄스

많은 유기체들이 수컷과 짝짓기를 해야 하는 부분을 건너뛰고 자식을 낳을 수 ㅣ있으며 그것이 더 효율적이라면, 왜 많은 동물들이 이 처럼 진화했을까? 왜 남자를 만나고 정자를 보면서 지독한 비용을 치르는 것일까?

왜 섹스라는 것이 지속되고 잇는가? 섹스가 단지 번식을 휘해 출현하진 않았을 것이라 주장. 수 많은 생물들이 무성생식을 하므로. -> 유전자를 혼합해 유전자 변이의 비율을 높여서 생존할 수 잇는 변이체의 출현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유전적 이익을 선사한다.

섹스가 왜 존재하는가? 붉은 여왕 이론. 진화상의 변화가 환경을 폭넓게 변화시켜 더 큰 변화를 낳는 과정을 설명함. 환경이 진화하고 있기 때문에 유기체들은 제자리를 지키는 위해 (존속하기 위해) 쉬지 않고 힘껏 달려야한다.

지난 60년의 열역학 연구가 보여주듯 열역학 제2법칙, 그리고 질서와 생명의 진화사이에는 어떤 모순도 존재하지 않는다. 열역학 제2법칙은 열이 봉인된 고립계에 적용되지만, 생명을 가진 체계들은 물질과 에너지의 흐름에 개방되어 있다. 생명 뿐만 아니라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많은 종류의 복합계들이 에너지가 흐르는 영역에서 스스로 출현하고 성장한다. 273

섹스가 왜 존재하는가를 이해하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 일차적인 문제는 왜 우리가 존재하는가이다. 우리는 자연의 에너지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 이유는 토네이도가 자연적으로 발생하여 한 동안 자신의 복잡한 체계를 유지하다가 고기압 체계와 저기압 체계의 차이가 소실되면 소리 없이 사라지는 이유와 똑같다. 우리의 진화하는 기술적 지능이 이용 가능한 모든 에너지원을 모두 소비하면, 인간도 사라질 운명.

섹스는 어떻게 발생햇는가?
식인풍습의 진화론적 이유는 명백하다. 굶주림이 극심한 지경에 이르면 유기체들은 그들 자신을 먹는다. 이 광포한 습성은 우리가 실행하는 감수분열 섹스의 기원을 보여주는 그럴듯한 각본과 직접적으로 관계가 있다.

이배체 상태에서 필연적으로 분리되는 과정. '이배성으로부터의 해방'
우리도 이배성 체세포에서 반수체 정자세포나 난자를 생산할 때 그런 해방의 과정을 겪는다. 이 성세포들을 제외하고 우리 몸 속의 나머지 세포들은 엄마와 아빠가 23개씩 떠안긴 46개 염색체를 가진 이매체 상태를 유지한다.

생식 섹스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잇는 굶주린 이배체화와 이배성 해방의 순환은 생명의 역사에서 적어도 세 번 출현한 것으로 보임.
1. 동물의 조상인 코아노매스티코트
2. 균류의 조상인 항아리균
3. 식물의 조상인 녹조

"성적인 존재자로서 우린 죽어야 하지" (한니발 렉터의 대사)

희열.

성적 에너지는 번식의 의무를 다하고도 흘러넘칠 정도로 충분하다. 그 과잉 에너지는 와일드가 '감히 이름을 입에 올릴 수 없는 사랑'이라 불렀던 것(동성애)를 포함해 번식가 무관한 활동으로 흘러들어간다. 방향을 바꾼 성욕의 쾌감, 흥분, 에너지는 순결한 연애와 평생의 우정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결합의 충동은 적당한 대상에게 점찮게 멈추지 않고 실수를 향해 게속 나아간다. 페티시즘.

엉뚱한 결합충동은 진화에도 영향을 미친다. 안전히 낯선 개체들 간의 결합. 문, 종의 경계를 넘어서.
파계의 계통수는 추잡한 관목이다.
에이즈와 암을 확실히 이애하려면 미토콘드리아의 공생적이고 의사유성적인 세포 역사를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 미토콘드리아의 기능부전 때문에 발생한다는 증거가 쌓이고 있음.

우리의 깊은 본질은 단일하지 않다. 그것은 다세포적, 유성적, 의사유성적, 공생적이다. 우리는 순수한 개체가 아니라 여러 존재들의 혼합이고, 새로운 유전적 혼합에 의존해 스스로를 유지한다. 우리는 의학적으로 추상화된 존재들이 아니라, 타자에 의해 그리고 타자에게 이끌리는 친이종 xenotropes이다.
(나는 반대편으로 이끌리는 힘을 타인과 결합하는 경향이라 부른다. 심지어 다른 종과 결합하는 경향도 포함되는데, 이를 제노트로피아라 한다. tropos(돌리다)와 제노스xenos(낯선자).)

영적 감정에는 생물학적 기원이 있다. 친이종적 충동, 즉 일시적인 섹스를 통해서든 영구적인 공생이나 이종간 혼혈을 통해서든 우리가 아닌 것들과 결합하려는 충동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한편으로 그것은 영적 위안을 준다. 그 동안 에로스는 우리를 하나로 합치고, 우리를 혼자가 아닌 다른 더 큰 존재로 만든다. 큐피드의 화살은 회로움의 심장으로 날아가 꽃히고 우리에게 죽음과 해방을 동시에 안겨준다. 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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