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망국의 시간 _ 당신은 지금 어떤 시간을 살아가고 있나요?
조한혜정
서문: 선망국에서 선망국으로
대한민국의 시간
좀 늦었지만 자신을 돌보지 않고 충동적인 삶을 살아온 '우리'의 모습을 바라볼 때가 온 것 같습니다. 국민들은 잠시 달리기를 멈추고 역사를 배우는 시간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그 시대를 살아낸 모든 사람들에게 절실했던 시간, 멈추어 서서 생각하는 시간, 함게 마음을 모으고 지혜를 모으는 시간을 조금 확보하게 된 것이지요. 오랫동안 후진국 콤플렉스에 시달려온 국민, 급하게 돈과 권력만을 좇다가 안팎으로 망가진 '선망국' 국민들은 이제 쉼의 호흡을 하려고 합니다. 이 '쉼'의 시간을 통해 이들/우리들은 지구촌 주민들이 부러워할 '선망국'의 시민, 지구를 살릴 성찰적 생명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요?
우리몸에 각인된 적폐, 몸에 밴 개발독재적 시간을 넘어서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16
'사유재산'을 지켜주고 '기회균등'만 보장해주면 민주국가라 믿었던 국민들은 언제쯤 지금 시대의 핵심 가치인 공유재에 대한 감각을 회복하고 '기본소득제'를 지지하기 시작할까요? 17
이 모든 것은 다종다기한 이야기를 꺼내고 의논하는 공론장을 통해 가능해질 일입니다. 문제를 드러내놓고 토론하면서 최상의 해결책을 찾아내는 공론장이 활성화되어 있는 나라가 바로 제대로 된 나라, 곧 '선진국'입니다. 17
그 공론장의 주역은 바로 다종다기한 욕구와 의견과 취향과 삶의 동기와 목적을 가진 시민들입니다.
나는 여기서 '위'의 역사가 만들어낸 주체로서의 느낌이 강할 때는 '국민, '아래'로부터 만들어진 주체적 느낌이 들면 '시민'이라고 썼습니다. 외세의 침입으로 근대화가 본격화된 한국의 경우, 근대의 역사는 반제국주의 민족주의적 주체와 동원된 애국적 국민을 양산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이때 국민은 나라를 무조건 사랑하면서 외세를 미워합니다. 애증의 감정이 국민의 감정이지요. 18
그러나 시민은 개인에서 시작하고 공감의 감정으로 확산합니다. '국민성'이 단일성과 통합을 강조하는 반면 '시민성'은 다양성과 연대를 중시하는 근거이지요. 이 책에서 나는 그간 오로지 부강한 나라가 되기 위해 통합을 강조하며 달려온 '국민'이 다양성을 인정하고 연대하는 시민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19
'시민'은 스스로 자발적 공동체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존재입니다. 시민은 일정하게 국가와 민족적 정체성을 가진 존재이지만 동시에 지역사회의 주민이자 글로벌 시민으로서 세계를 살려낼 공공적 활동의 장을 가진 존재입니다.19
글로벌 시민의 시간
기후변화
테러와 폭록
일자리 전쟁
. 2050년 도시는 네 계급으로 재구성될 것.
. 플랫폼 소유주 / 플랫폼 스타 / 인공지성 계급 / 프레카리아트
옛 왕은 죽고 아직 새 왕은 오지 않은 궐위의 시간(지그문트 바우만)
. 기존의 정치와 권력이 따로 노는 상태
위험사회(울리히 백)
. 시스템의 작동 원리를 알지 못하면서 그것을 만지작거리면 점점 더 감수할 위험부담이 높아지는 상황
3가지 해법
(1) "경제를 경제의 자리에" 돌려 놓는 것
자본주의 이전의 모든 사회에서 '부'는 존경과 명예의 세계의 하위에 있었다.
이윤 창출에만 골몰하는 자본주의 체제는 주체이어야 할 사람/사회, 그리고 둘러싼 생태 환경을 망가뜨려버린 것. 모든 것이 화폐로 환산되고 수단화된 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무의미해진다. 그리고 무의미한 시간을 살아가는 존재는 이윤을 향해 달리는 괴물이나 시체 처럼 살아가는 좀지가 될 수 밖에 없다. 26
(2) 정치 영역의 회복
시민들이 본격적으로 자신의 운명에 대한 정치적 통제력을 확보하기 위해 대의제도를 탈출해서 직접민주주의의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 투표를 통한 정치가 아니라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적 삶에 지속적으로 관여하는 정치를 해야 한다. 통치자에게 권력을 일임하지 말고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할 주체가 되어야 하는 것. 이때 시민들이 키워야 할 능력은 질문하는 능력이다. ... 시민들이 정치와 예술을 발전시킬 시간을 어떻게 확보할지? 등.
아래로부터의 세상을 만드는 시민이 많아 질 수 있도록 무엇보다 현재의 복지시스템을 폐기하고 '기본소득'을 제도화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27
(3) 시민들의 존재론적 변화
그간 시민에 관한 논의는 주로 사적 소유권과 인권 개념에서 이루어져 왔지만 앞으로는 더 포괄적인 '사회권' 개념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
모든 시민이 생존의 공포에서 벗어나 실존적 명석함과 용기를 가진 성찰저 존재가 될 수 있는 '인간의 조건'을 논의하면서 새 시대를 상상해갈 수 있어야 한다.
"고양된 인간성은 결코 고독 속에서 획득될 수 없으며, 오직 자신의 삶과 인격을 공동 영역에 투신할 때 얻어진다."(한나 아렌트)
끊임없이 잔머리를 굴리며 계산만 하는 영리한/도구적 존재가 아니라 삶과 정직하게 마주하는 윤리적 존재가 될 때 그는 통찰력을 가진 존재로 비상한다. 그리고 스스로 생각한 것을 실현해내는 힘을 발휘할 강력한 정치적 존재가 된다.
"존재의 가능성 그 자체가 긍정되는 삶이 가능한 장소"(조르조 아감벤)에서 삶의 정치를 새롭게 시작하면서 새 시대의 아이들을 키워야 하는 것이다. 28
지하철, 공항, 아파트의 무인화 VS 시민들이 토론하고 축제를 벌이는 공공 장소화
이런 발상은 시간성에 대한 좀 다른 인식을 요구한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중대한 결정을 할 때 앞으로 태어날 일곱 세대를 생각하고 하라는 선조들의 말을 따른다. 자손 대대로 이어지는 시간의 감각을 중시한 것이 그간 인간 사회의 전통이자 유적 특성인 것.
태곳적 감각을 가진 이들이 주도하는 사회만이 나름의 평화와 회복력을 갖고 갈 수 있을 것. 내가 사라진 후에도 이어질 시간, 서로가 서로에게 선물임을 확인하며 이어지는 호혜의 시간을 회복해내야 하는 것.
이제 그간 인간/현세대/성장/국가 중심으로 굴러온 근대의 시간을 넘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미래 세대/지속가능성/지구마을 중심의 탈근대의 시간으로 이동할 때이다.
거대한 전환은 하루아침에 일어나지 않는다. 곳곳에서 타율노동의 세계를 벗어나 자활의 삶을 살려는 이들이 '일시적 자율공간'을 만들고 그곳에서 몸풀기를 하면서 작지만 거대한 이동을 시작해야 한다. 30
. 자율노동
. 자활의 정치
. 상생의 시공간을 만들어 내는 일.
나, 당신, 우리의 시간
당신은 지금 어떤 시간을 살아가고 있나요?
홀로 있어야 할 시간인가요? 함께 밥을 나눌 동지를 찾을 시간인가요? 31
(모두가) 마음 속 깊이 다른 시간대로의 이용을 간절히 원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요가 : 현재의 시간을 잠시 몸추고 인류가 태초부터 해온 몸짓과 숨소리에 잠시나마 젖어보려는 시간. 이런 작은 몸짓과 숨소리가 다른 시대로의 이동을 가능하게 한다고 생각한다. 31
휴가를 떠나야 할 사람들.
정치가와 공무원들 :
지저분한 권력 게임과 비효율적 관료제의 늪에 빠진, 낙후된 '전문가의 시간'
휴가를 다녀와서, 재분배를 제대로 하는 제도를 만들어 내야(국민휴가제, 기본소득제)
청년들 :
스스로 본격적인 전환의 삶을 시도할 휴가비를 마련해서 떠나 보내야, 그들에게 일단 삶의 주도권을 돌려주어야 한다. 33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
아무도 믿을 수 없다고 판단한 어머니들은 스마트폰에 의존하며 살면서 서로 불안을 증폭시키다가 결국은 시장에 기대어 아이를 '단속하고 관리하고 감시하는' 일에 몰두하게 된다. 상대적 박탈감과 집착적 모성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자신도 살고 아이들도 산다. 자기 아이의 친구를 자신의 아이처럼 생각하는 모성이 회복할 때, 그래서 다른 어머니들, 그리고 아이를 낳지 않은 자매들과 연대가 가능할 때 어머니들에게 구원의 시간, 전환의 시간이 열릴 것.35
남자들 :
온라인 세상에 모여 세상을 구하는 게임을 하며 때가 오기를 기다리는 이들에게 제대로 세상을 구하는 기회를 찾아낼 시간이 필요하다. 그들이 다시 영적이고 미적인 존재로 스스로를 회복해내면 좋겠다. 그래서 자신들이 맞서야 할 분노의 대상을 제대로 보고 제대로 싸워갈 수 있으면 좋겠다.
그나마 여유롭게 스스로를 성찰하며 지내는 시민들은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한 부부나 독신 전문직 여성들인 것 같다. 36
<도시 명사자, 수행하는 삶의 미>, 도시의 경쟁 중심적이고 성취중심적이며 소비 중심적인 삶에서 벗어나 자기 내면의 영성과 명상을 회복함으로 새로운 방식의 내면적 자아를 획득해 가려는 움직임.
대안적 자기 인식과 사회적 실천을 구성해나가는 시민들이 늘어나고 있음을 고무적이다.
이분들이 세상을 살리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해낼 시민들이라고 믿고 있다. 37
인류 역사상 최초로 여자들이 어머니가 되지 않기로 했기때문에 확보된 여성들의 여유.
모계적 가정과 공동육아
가족적 삶에 대한 새로운 상상이 필요한 시점이다. 생명과 관계 맺는 방식에 근본적 변화가 있어야 한다. 살아 있는 생명들 간의 유대와 공감 능력을 키울 방안을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38
어린시민과 맺는 인연에 대한 이야기.
다큐, <다시 태어나도 우리>
피로 맺어지지 않은 남남인 두 사람의 여정을 통해 배려와 사랑, 의존성과 홀로 남겨짐, 좌절과 상실, 성장과 구원의 시간을 보여줌. 생명체가 대를 이어가며 살아가는 우주적 시간을. 39
핵가족을 이룬 부부가 아이를 낳고 끝까지 책임지고 키워야 한다는 근대가 만든 제도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족제도와 돌봄의 생태계를 만들어내야 한다.
자신의 아이나 남의 아이나 모든 아이는 예전 태곳적 고승의 환생인 '린포체'라 여기면서 그들을 존귀한 존재로 살아갈 수 있게 해야 한다.
한국의 시민들이 쉬면서 해내야 하는 전환은 바로 돌봄의 감각을 회복하는 일일 것이다. 선망국의 시민들은 '우리들의 아이'를 키우는 돌봄 민주주의 국가의 시민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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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한국사람들/
할 일/
필요한 제도/
활동 주체
사례들
<인류가 처한 자리, 인류문명의 역사와 현재>
호모사피엔스가 '소통과 상생의 사회'를 만들어 지금껏 살아 온 것은 인간의 아기는 독립적 생존이 불가능한 무력한 상태로 태어나기 때문이었다. 무력한 생명을 돌보면서 산모와 산모의 친밀한 가족들, 그녀의 어머니와 할머니, 여형제와 남형제와 산모의 남자친구(아기 아버지일 가능성이 높은)는 함께 돌봄과 소통의 식탁공동체를 만들어 세대를 이어가며 살아왔다. 돌봄 공동체가 많아 지면서 그들을 연결하는 공공영역이 생겨났고 그 영역의 어른들은 아이를 기르는 일상에서 조금 자유로운, 그러나 돌봄 공동체에서 가장 존경을 받는 지혜로운 남자들이었다. 이들은 조상과 신에게 감사의 제사를 지내고 풍요를 기원하며 장례와 혼례식을 주관했다. 영겁으로 이어질 자손들의 세상을 축복하면서 예술적으로, 윤리적으로, 사회적으로, 영적으로 스스로를 승화시키는 수양과 단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 공공영역이 돌봄공동체와 분리되면서 인류의 불행은 시작되었다. 성장과 진보의 이름으로 끝없는 이윤추구의 장으로 전략한 공공영역은 사기꾼과 거간꾼이 득세하는 영역이 되어 버렸다. 인류가 지구상에 살아남은 것은 자신이 처한 환경의 불확실성을 줄이면서 지혜롭게 적응해왔기 때문인데 이 사냥꾼들은 불확실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자본주의라고 부르는, 인류사상 참으로 기이한 시스템이 생겨나 버린 것이다. 더욱이 돈이 국경을 넘어 권력이 된 '금융 자본주의'는 그간의 영토화된 영역을 탈영토화면서 영토 안의 국민들을 난민으로 만들어 버리고 있다.117 (참고: 엘리자베스 토머스 소설, <세상의 모든 딸들>)
왜 끝없이 성장하고 지구를 탈출해야 할까? :
지구를 탈출할 것이라는 소망은 끝없이 확장하고 팽창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나왔다. 그런 도전을 훌륭하게 여기는 것은 인류가 도구를 발명하고 성취하면서 발전했다고 하는 믿음에서 나왔다. 인류의 초기 진화를 불과 같은 도구사용으로 설명하는 것은 남성 중심적 관점이다. 농업혁명 이후 남성중심적 문명으로 넘어갔다. 근대 자본주의 문명을 맞으면서 경쟁과 축적의 영역이 확장되고 돌봄과 소통 영역은 축소되었다. "본래 인간은 자궁에 있다가, 환대해주는 가족과 마을이라는 '사회적 자궁'으로 나오는 존재였는데, 이제 그 자궁이 사리진 거다. 홀로 외롭게 사투를 벌이고, 끊임없이 팽창하고 탈출해야 하는 존재여야 하기 때문에 이렇게 살기가 힘든 것이다. 근대 문명의 끝에 다다른 지금도 말이다." 95
* 미투운동, 이런 시대적 맥락에서 일고 있는 인류사적 운동이고 아주 긴 여정의 시작이다. "진정한 정의는 공공선을 위한 지속적인 돌봄이다."라는 돌봄 민주주의 운동이며, 돌봄 공동체 운동이다.118
근대문명은 끝났다.
신자유주의 광풍, 적나라한 사냥꾼의 시대, 적자생존과 승자독식의 세상,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존재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언제 죽어도 아무렇지 않은 존재들(호모사케르, 헐벗은 삶)
총체적 파국이지만 해방적 파국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
* 해방적 파국 : 울리히백, 극단적 상황에서 도리어 좋은 길을 찾아내는 것. 예를 들어 유럽, 1,2차 세계 대전 이후 복지국가와 유럽식 사회민주주의가 출현함. 제도를 바꾸는 것으로는 '해방적 파국'이라 할 수 없다.
지금은 인터레그넘(궐위의 시간), 즉 국왕이 죽고 아직 새로운 왕이 나타나지 않은 전환적 공백기, 따라서 지금 우리가 하는 시도는 긴 과정의 새로운 걸음이다.
전환의 시대, 문명적 탈바꿈(울리히 백):
이제 '부'가 아닌 '위험'의 개념을 바탕으로 제 2의 근대 곧 성찰적 근대를 열어가야 한다. 누구도 안전하게 살수 없게 된 지구에서 그간의 시스템을 '리콜'하면서 시장과 국가와 과학과 공공에 대해 다시 질문을 던지며 지속가능한 삶의 새판을 짜자. 배고품의 시대를 벗어나 GDP 1만달러 사회가 되면 더 이상 GDP를 올리려 하기 보다는 리스크를 줄이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불안, 의심, 공포와 적대감이 가득한 사회에서 경제생산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제도적 차원이 아니라 심층적 구조사적 변화가 정치, 경제, 기술, 문화, 심리 전 차원에 걸쳐서 일어나는 그런 변화다.
"코스모폴리턴 난민'으로 다시 시작하자"
전쟁만이 아니라 기후변화 등 각종 재난과 재앙의 위험성을 고려하면 전 세계의 난민화라는 차원에서 초국가적 방안을 논의하는 장이 빨리 열려야 한다. 난민을 돕자는 차원이 아니라 언제든 난민이 될 수 있다는 차원에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198
지금 시대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
1. 경제와 생산력 : 디지털 혁명, 3차산업혁명 :
과도기적 현상으로 재앙적 사태를 낳고 있다.(대량의 실업자 양산), 어떻게 사람들을 불안에 떨지 않고 새로운 직장을 만들어 가게 할 것인지가 중요해진다. 청년들과 함께 21세기 판 지적 러다이트(기계파괴)운동을 벌여야 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기술과 정치적 자원을 활용해서 노동과 인간해방의 가능성을 찾아나설 것인지를 정해야 한다.
폴 메이슨 <포스트자본주의> : 네트워크로(P2P)로 연결된 개인을 중심으로 새로운 세상은 이미 만들어지고 있다. '아래로부터 작은 움직임들'이 변화를 가져오는 시대가 왔다. 이제 쳇바퀴에서 벗어나 자율노동의 시대를 열어가야 할 때다. 다양한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활동을 벌여 나가다보면 기존의 거대한 자본주의 체제는 흔들리기 시작할 것이다. 공유경제
지역기반의 공동체들이 글로벌 차원에서 상호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새로운 경제와 삶의 지형을 만들어 낸다면 현 시스템은 위축된 것이다.
2. 국가와 정치
대의제의 문제점.
'공공성'을 국가와 등치시키고 훌륭한 삶을 가족의 성공과 등치시키면서 사실상 개개인의 주체적 삶에 무게를 두지 않았다. 이는 시민적 공공성을 키워내지 못했고 강력한 중앙집권적 통치의 개념만 있고 자치와 분권의 개념을 매우 약한 정치시스템을 만들었다.
정보의 자유로운 유통, 온라인상의 다양한 만남과 작업이 가능해졌다. 직접민주주의의 제도의 실현이 가능해지고 있다. 이제 정치의 거점은 국가 단위만이 아니라 거주자 중심의 도시, '지역', 동네가 될 것이다. 이들은 자연스럽게 국경을 넘나들며 현재 우리가 당면한 전지구적 문제를 함께 해결하기 위한 글로벌 연대를 하게 될 것이다.
3. 사회, 문화, 심리 차원
전환기의 삶의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다.(미세먼지, 기후변화, 가계부채, 고용불안, 가족해체, ) 많은 이들이 우울증, 조울증, 섭식장애, 피해망상, 과대망상, 주의산만증, 대인기피증, 공황장애, 면역결핍장애를 앓고 있다. 지금 전환을 하고자 하는 주체들은 우리가 생기가 다 빠져버린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 좀비처럼 살고 있다는 것을 인식한 사람들이다.
(참고: Steve Cutts <Man>, Moby & The void pacific choir <Are you lost in the world like me?> <In this cold place>)
집에서 나오지 않는 사람들을 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오로지 가족으로 뭉쳐서 달여온 한국사회는 지금 급격하게 외톨이들의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 히키코모리, 좀비
<한국과 한국사람들>
한국이 어느 나라 보다 먼저 위험을 맞았으므로(선망국) 길을 앞장서서 찾아야 하는 상황임.
국가, 시민사회, 가족의 붕괴가 역력한 상황.
지금 한국은 불신과 적대로 망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176 급격한 중산층의 몰락과 함께 전자금융결제 시스템 조차 제대로 업그레이드 해내지 못하는 부실한 '삼류국가'로 전략하고 있다. 177
현 정치의 난맥상은, 이승만, 박정희 시대에 형성된 '반공민주주의'와 4.19, 6월항쟁을 하면서 형성된 '반독재민주주의'와 연결된다. 두 거대 정치진영은 국민들에게 양자택일을 강요하면서 사실상 적대적 공생의 양당체제를 고착시켰다. 177
GDP 1만달러가 넘으면, 자아실현을 하려는 개인들이 출현, 육아부담으로 출산파업이 시작됨. 2만달러가 넘으면 시장이 국가권력과 맞먹을 만큼 거대해지고 사회는 급격한 발전의 부작용에 따른 문제들을 떠안게 된다.(환경, 가족해체, 인플레 고실업, 저출산등) 이 시점에서 국가는 더 이상 경제성장이 아닌 국민들의 '포괄적 잠재력'을 키우는데 주력해야 한다. 사회구성원의 성장/성숙에 집중하며 신뢰하는 사회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한국은 이 전환의 시대에 잘못된 길로. 교육부는 대학서열화(정규직 취업률에 따라)로 시대문제를 풀어낼 인재를 키우지 못하고 있다. 정부와 시장은 자동화와 정보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함으로 더욱 빨리 일자리를 없애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굳건한 안보 위에 다시 뛰는 한국경제"를 외치며. 이는 모두 다음세대에 대해서는 도통 관심이 없는 무책임한 아버지들이다. 125
유럽나라들, 국가가 해결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시민들과 손을 잡기 시작함. 한국의 경우, 1990년대부터 공동육아운동, 최근 마을공동체,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창의허브 등 지자체와 손잡고 가는 중이다.
조직화된 무책임의 구조(예 세월호 사건), 토건적 성장주의 고수, 선망국의 행보, 국가는 망하고 국민은 난민이 된다.
지금은 '근대이후'를 상상하며 '정치'를 회복해야 할 시기다. 대의 민주주의가 아닌 민주주의를 재발명해야 할 때이다.
국가주의가 어느 나라보다 강했던 대만민국의 국민들이 세월호 사태를 통해 엄청난 학습을 하고 있다.
개인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생존 내지 출세의 단위가 되어 굴러간 사회. 개인성은 억압됨. 현재 한국사회가 정치적 민주화에 비해 사회적으로 신분제사회(재산권신수설, 학력신수설)가 되어 가는 이유는 가족주의때문이다.(수저계급론)
지금 '국가차원'에서 정책을 놓고 의논한다는 것이 거의 무의미한 상태다. 국가권력을 잡은 이는 '5년짜리 유랑도적단'이다. 국가, 시장 단위가 아니라 먼저 지역과 마을 단위로 생각해야 한다.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더 불안해 하는 이유:
우리는 부모세대들이 자기들 노후준비도 못할 만큼 자식들에게 쏟아부어 놓고는 이제 자식들을 원망하고, 자식들은 더 안정적인 기반을 만들어주지 못한 부모새데를 원망하는 애증관계이다. 가족과 완전히 분리되지 못한 어중간한 관계 속에서 불안이 더 커지는 것이다. 안전망이 없는 사회, Gated community(멤버십에 기반한 도곡동 타워펠리스), 문밖의 사람들(비고, 유럽은 전쟁 후 유럽 땅에 들어온 모든 아이의 양육비를 전액지원함)
소통과 합의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좋은 사회이다. 한국은 그런 가능성이 거의 봉쇄된 채 시작된 나라이다.
'서검사의 영화' : 이 자리는 일제 감정기에 나라를 팔아 권력을 쥔자들이 벌었던 술판, 유신시대 비밀 안가와 기생관광판이 진화한 자리다. 자신의 약함과 부끄러움을 자국 여성들을 '식민화'하고 괴롭히면서 풀었던 전통을 심화시킨 버전이다. 그곳은 결탁과 비리의 온상이었고, 고위직의 식견이 정해지는 자리였다. 한국 글로벌네트워크의 수준을 정하는 자리였다. 또 이 땅에 '저녁이 있는 삶'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합리성이 자리잡지 못하게 만든 자리다. 곳곳에서 벌어지는 그 장면에 무감했던 이들도 실은 공범이다. 114
* 대한민국의 사건들 : 광화문 촛불집회(세월호, 대통령 탄핵.... )
광장에서 익어가는 시민 정치, 지속적 협력이 가능한 사회성을 키워야. 이때 사회성은 타인에게 능동적으로 손을 내미는 것이 아니고 서로를 알아보는 행위이다. '다중'이 서로를 알아보면서 신뢰의 관계를 맺어가려고 노력했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앓고 있는 정치적 우울현상 : '파상' 개인이나 집단을 사로잡고 있던 꿈이 개지면서 삶의 근거가 부정되는 체험. 현실의 고통과 비참을 마주하는 것, 무너지는 마음을 바라볼 것. 그 무너지는 과정이 도덕적, 인지적, 종교적 힘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 세월호라는 파국의 시간을 목격함. 광화문 광장의 촛불은 바로 이 파상의 경험을 공통적으로 했다는 점에서 주목받을 만한 사건이다.
<할 일, 풀어야 할 과제>
선망국으로 인류에 해법을 제시하자
미래세대를 위한 시간:
인간을 신의 자리로 등극시킨 '근대'는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어버렸고, 지금 우리가 누리는 풍요는 지구적 재앙과 후대의 불행을 담보로 한 것임을 알아가고 있다.
성찰적 근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참정권에 대한 새로운 발상을 해야 한다.
세대간 자원 불균형과 인구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미래세대를 제대로 대변하기 위한 획기적인 제도를 마련해야 할 때이다.
사회의 지속가능성이 위태로워진 상황에서 시민들은 어느 때 보다 고차원적 정치사회활동을 벌일 수 있어야 하고 그를 위한 시간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최소한의 기본소득과 수시로 정치공론화를 할 수 있는 장소들이 만들어져야 한다.
중요한 것은 세대를 이어서 지속가능한 삶의 방식을 찾아내는 것인데, 나는 그 답이 걸어서 이동가능한 규모의 지역적 삶의 회복에서 시작된다는 것. 기본적으로 인간은 자궁, 가족, 친족, 친구 등 오래된 호혜적 관계의 보호막 속에서 살아왔다. 그런 보호막이 사라진 상황에서 잘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다. 대안은 지역이다. 지역에 기반을 둔 다양한 사회경제 활동, 일상적 삶에 기반을 둔 공론의 정치이다.
각자도생에서 집단적 생존으로 가야.
이웃과 지구마을을 만들어 가는 일, 아래로부터 튼튼한 거버넌스를 먼저 만들어 내는 일,
0-2살 나이의 아이를 둔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 하루 6시간만 일하고 아이를 키우도록 해야. 이런 맥락에서 기본소득 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
저항해야 사회적 연대, 인간적 공감, 무상의 활동, 자유, 평화, 우애 등에 관한 의식과 감수성을 지켜야 한다.117
미투운동, 이런 시대적 맥락에서 일고 있는 인류사적 운동이고 아주 긴 여정의 시작이다. "진정한 정의는 공공선을 위한 지속적인 돌봄이다."라는 돌봄 민주주의 운동이며, 돌봄 공동체 운동이다.118
저마다 가슴 속에 원망과 원한을 안고 고독한 삶을 마감하는 시대가 오지 않기를 바라며 삼삼오오 모여서 자기동네에 폭력을 당하는 이가 없는지 잘 살펴보면 좋겠다. 서로를 돌보며 즐겁게 싸워가야 한다.
(참고, 중국, 혁신가 원테쥔 교수, <백년의 급진> <8번의 위기>
향촌건설이라는 대안 : 식량주권을 지키고 산업, 문화, 교육이 결합된 농업을 육성하는 신중농주의. 농업은 6차산업이다. 농업은 '생산'으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가공과 유통 등 2,3차 산업, 더 나아가 도가적 실천을 통해 서로를 돌보고 가르치며 병든 문명을 치유하면서 호혜의 경제를 만들어 내는 초통합적 활동이다.)
작은 사회적 자궁을, 마을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
지금 '국가차원'에서 정책을 놓고 의논한다는 것이 거의 무의미한 상태다. 국가, 시장 단위가 아니라 먼저 지역과 마을 단위로 생각해야 한다.
국가도 가족도 떠나서 살아 볼 수 있다면 그래서 '코스모폴리턴 시티즌'이 될 수 있다면 한국만이 아니라 지구상의 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회사 때려치고, 부모 슬하를 떠나도 어디 어디 있는 세어 하우스 가면 잘 살 수 있다. 거기 사람들이 있다.
우리 안에 가진 것들을 가지고 스스로 막각해지고, 우리끼리 오순도순 재미있게 잘 살아야 한다.
북유럽의 특징은 무엇보다 공터가 남겨져 있다는 것. 공유지 곳곳에서 날마다 채식그린마켓 등이 펼쳐지고, 버려진 옥상주차장에서 텃밧을 가꾸고 낮에는 카페로 저녁에는 유명클럽이 된다. 청년들의 실험장이 무궁무진하다. 공유작업장.
좋은 사회란 홀아버지가 아이 하나를 잘 키워내는 사회다.
상부상조하는 전환마을 살이를 하는 시민:
- 이웃과 인사하기
- 협동조합 만들기 -> 사회적 경제의 기반만들기
- 정치적 시민으로 거국적 시위에 참여
- 수시로 시대공부를 한다
- 일상의 질적인 개선에 노력한다.
내 안의 잠재력을 발견하며 다양성이 어우려질 때의 힘과 아름다움을 알게된다. 결국 모두 좀비로 만들려는 체제/기계의 자장에서 벗어나 함께 성장하는 파트너를 갖게 됨. 자신들의 몸에 맞는 삶의 터전을 만들어간다.
전환을 이뤄내기에 꼭 필요한 소통력. 소통을 어렵게 하는 태도, 하면된다. 뭉치면 산다는 꼰대. '비동시성의 동시성' 5대에 대한 서로의 이해와 상호 소통.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일, 자신의 의견을 갖고 그것을 조율해가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이제는 숙제를 할 시간, 시민적 국민, 국가란 나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확인 함.
적대와 혐오를 다스리는 일(탄핵기각 시위 참가자들도 우리 공동체의 일원임)
그간 비정한 역사가 만들어낸 타자화된 얼굴들을 만나기 시작해야 한다.250
* 마을 만들기 :
정책으로 프로그램으로 하는 식을 벗어냐야, 그냥 동네에 한 군데 솥 걸어 놓고, 누구든지 와서 밥을 먹을 수 있게 하자. 그냥 밥값만 주고, 동네에서 국 잘 끊이는 사람, 반찬 잘하는 사람 모여서 매일 밥을 해서 먹으면 거기서 공동체가 생겨나는 것이다. 107
* 청년 사회복무제도
인간 사회의리가 힘은 바로 그 소통 능력, 합의에 이르고자 하는 의지에 있다. 영화 <12명의 성난 사람들> 독일, 메르켈 총리가 원래 핵발전소 더 짓자는 입장이었는데, 탈핵으로 국가의 방향을 잡았다. 이렇게 소통과 합의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좋은 사회이다. 한국은 그런 가능성이 거의 봉쇄된 채 시작된 나라이다.
지금은 피폐해진 자신을 보호할 때이고, 온기를 만들어내는 '사회'를 부양할 때다. 청년들이 적극적으로 스스로 행복해지는 길을 찾아야 할 때. 토건과 사기의 달인이 판치는 세상을 돌봄의 달인들이 바꾸어낼 수 있게 자원분배를 제대로 해야 한다. 일/돈 보다 아이를 사랑하는 이들이 모여 세대의 경계를 넘어 만들어내는 상호부조의 토양에서 2차 근대를 이끌어갈 창의적이고 호혜적인 아이들이 자랄 수 있을 것, 출산율도 저절로 높아질 것이다.138
"안부를 묻는 자리"
근대화 과정에서 과잉주체화된 자신을 내려놓고 심심하고 느긋하게 서로의 안부를 묻는 자리, 서로로부터 배우고 서로를 사랑스럽게 보면서 나뿐 기운을 거두고 좋은 기운만 쏘아주는 자리,
- 헤테로토피아와 같은 장소 : 기성장소의 바깥에 있는 장소, 이원대립구조에 빠지지 않는 그 '어딘가'다. 일상의 해방구같은 장소(친구네방, 달골가게, 동네골목, 생성의 장소) 150
창의적 공유지대로서의 플랫폼: 공유재와 시민배당
전환마을에서 가장 신경써야 할 것, 함께 놀 장소와 일정한 비용, 곧 공유재를 확보하는 것. 그 공간에서 그간에 익숙해졌던 독점적 자본주의에 길들여진 몸을 바꾸어 낼 수 있어야 한다. 마을은 창의적 공유지대로서의 플랫폼이다. 장터, 상호부조 활동, 잔치가 벌어지는 곳. 재난상황이 닥쳐도 질서가 유지되고 자급자족이 가능한 동네. 강하다고 뽑내지 않고 약함의 미덕을 아는 사람들이 사는 곳. 많이 걸어다니고 자전거 거리에서 대부분의 삶을 해결할 수 있다.
삶을 일구려 노력할 수록 삶이 파괴되는 사장 질주사회의 본성을 파악하고 한동안 퇴행을 거듭할 시대를 살아낼 힘을 키워야 한다.
- 세상이 좋아질 수 없으리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 모두를 집어삼킬 혐오와 적대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 함께 질문하고 위로할 동료를 찾아나서야 한다.
- 이 모든 불행이 시장을 숭상하는 정권 탓만은 아니라는 것, 모든 것을 책임지며 스스로 신이 된 나 자신, 따질 줄은 알지만 이해와 공존의 능력을 키우지 못한 나를 인식하기 위해서라도 나/우리는 강남역으로 가야할 것이다. 170
실험정신이 필요하고 특히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스스로를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경쟁과 적대에 익숙해진 몸을 '재생'과 '상생'의 에너지로 전환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 통일문제 : 초반부터 다양성과 생태적 감각, 곧 시민적 공공성을 바탕으로 이 만남이 사유되어야 하고 남북교류가 이루어져야, 서로의 차이를 인식하면서 제대로 공존할 줄 아는 시민들이 나서서 교류의 장을 열어가야 한다.
* 저출산 문제 :
1.증세를 통한 체제 변화를 꾀할 골든타임이다. 소득격차를 줄이고 합리적 증세로 시민수당제도를 마련해야.
2. 기존의 가족규범을 벗어나 새 가족관을 만들 것. 동거와 출산, 결혼굴레 없이 청년들이 결정을 존중해야. 성숙한 개인주의의 제도화를 논할 대다.
3. 인구문제를 숫자로만 생각해서는 안된다. 이미 태어난 아이를 잘키우면 된다. 죽어가는 태아가 0.3%다. 여전히 해외입양을 보내는 나라다. 30%가 돈벌이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그 외 인구는 심각한 위기에 처한 세상을 구하는 다중다기한 일을 하는 시대로 이행하고 있다는 인식을 해야 한다. 집권층은 세습적 중산층 보호에 급급하다. 헬조선을 말하며 이 나라를 빠져나가려는 청년들을 붙잡아야. 엄마 혼자 독박육아하는데, '사회적 양육'이 가능해지면 결혼파업, 출산파업은 자연스레 사라질 것이다.
* 교육문제:
애국적 헌신성을 강조해 온 '고성장시대'의 '국민학교'에서 '시민적 공공성을 강조한 '소비아 문화산업시대'의 '대안학교'를 거쳐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난민적 공공성을 익히는 학교아닌 학교.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침착하게 살아갈 수 있는.
난민 : 국가가 더 이상 개인을 보호할 수 없을 지도 몰라. 국가의 실패란 근대화 프로젝트의 중심축인 국민국가의 실패를 말한다.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시장을 견제하고 선도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국가. 2008년 월가파동으로 시작한 글러벌 금융위기를 목격하고도 금융자본의 횡포를 결제하려들지 않았다. 현 세계는 이미 너무 돈의 체제에 깊숙히 물려버렸다. 이런 현실 속에서 대부분이 국민들은 자기 재능을 볼 수 있는 눈과 그 재능을 발휘할 조건을 조절할 힘을 빼앗시고 외부의 도전과 내부의 불안을 이겨낼 자신감을 상실한 채, '편안한 안전지대'에 숨어서 살아가고 있다. 159 돈으로 유지되는 묘한 삶의 굴레에 들어간 것이다.
'현대화된 가난'(이반일리치) : 자율은 무너지고 기쁨은 사라지고 경험을 같아지고 욕구는 좌절되는 상황을 결더야 하는 시점.
"삶의 고통과 기쁨을 불러내는 학교" 160
아이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는 자만이나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을 깨어나게 할 수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부모는 아이를 자신이 책임져야 할 존재로 여겨 불안과 공모 속에서 관리하려는 강박을 내려놓아야 한다.
교사와 학생이 서로가 배우는 법을 학습, 소통과 신뢰의 생태계를 이루어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가족 3부작 <아무도 모른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우리가 말하는 '전환의 교육'은 의도적 프로그램이 아니라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영화의 배경마을, 곧 우연한 만남들을 통해 삶이 이루어지는 그런 모습과 비슷한 시공간일 것이다. 우연과 인연이 가져다주는 기쁨과 윤리를 배우는 곳. 제도적 삶은 망가졌지만 삶은 지속되어야 하고 서로 어울리며 '사회'를 만들어 내는 일은 계속해 나갈 때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163
'아동기'를 설정하고 아이와 어른들을 격리했던 근대적 제도와는 결별해야 할 때다. 조직화된 무책임의 체제가 되어버린 국가에 청원하고 매달리기보다, 그리고 붕괴된 학교를 고발하고 해체된 가족을 원망하기 보다, 공생의 삶을 살아갈 몸을 만들어갈 생태계를 확보해야 한다.
경쟁과 적대의 총량을 줄이고 돌봄과 환대의 총량을 늘리면서 지속가능한 삶의 장을 회복하는 것, 함께 모여 각자가 가진 자원을 나누고 기운을 나누는 것이 삶과 교육을 전환하려는 이들이 원하는 일일 것. 164
<필요한 제도>,
최고임금제
기본소득제도: 물적 생산노동에 대한 지불 만이 아니라, 망가진 사회를 되살려내는 '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한.
청년수당(청년배당) : 청년들에게 시대에 맞지 않는 교육을 시키고 무업사회에 내 던진 것에 대해, 쓸데없이 몰려다니지 마라고 해서 무연사회를 만들어 놓은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손해배상차원에서.
시민배당제도 : 청년들에게 부모와 가족으로 독립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과 기본소득을 제공.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마을기업
<활동 주체>,
시민과 국민의 차이 :
'위'의 역사가 만들어낸 주체로서의 느낌이 강할 때는 '국민, '아래' 로부터 만들어진 주체적 느낌이 들면 '시민'. 국민은 나라를 무조건 사랑하면서 외세를 미워합니다. 애증의 감정이 국민의 감정임. 18 시민은 개인에서 시작하고 공감의 감정으로 확산함. '국민성'이 단일성과 통합을 강조하는 반면 '시민성'은 다양성과 연대를 중시하는 근거임. '시민'은 스스로 자발적 공동체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존재. 시민은 국가와 민족적 정체성을 가진 존재이지만 동시에 지역사회의 주민이자 글로벌 시민으로서 세계를 살려낼 공공적 활동의 장을 가진 존재임.19 이 책에서 나는 그간 오로지 부강한 나라가 되기 위해 통합을 강조하며 달려온 '국민'이 다양성을 인정하고 연대하는 시민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19
여성 :
낮선 조직사회에 진입한 여성들은 토건적이고 위계적인 조직문화를 불신했고 바꾸고자 했다. 이때 청년들이 같이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청년 남자가 한 편이 되어 기득권에 맞서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요구했다면 조직의 합리화를 끌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쯤 기본소득운동을 함께 벌이며 시대전환을 해내고 있지 않을까?
청년들은 오히려 돈과 권력을 가진 가부장의 품에 안기는 길을 택했다. 169 '여전히' 아버지 같은 가장이 되는 꿈을 꾸었다. 그 꿈을 향해 달리기도 한 청년들은 여성을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하고 함께 협력하기 보다는 화풀이와 공격대상으로 삼고 있다. 아무런 보호막 없이 홀로 절벽앞에 선 남성들이 만들어내는 혐오와 적대의 정치가 바로 강남역 참사이다.
모성 "자녀를 지배하지 않으며 주체화시키는 것"
자녀를 당당히 지배하는 엄마들, 그 집요함과 전능감을 어디서 오는 것일까? 경쟁적이고 영리한 소비자 주부들 ->호혜적 감각을 가진 주부들(응답하라 <1988>) 가정주부이자 사회주부였던 어머니들.
청년 : 기성세대가 성장의 과실을 모두 차지한 채 비정규직만 가득한 사회를 물려주었다고 분노하고 있다.
노년 : 노년에 빈곤에 직면할까 불안하다. 정책의 초점이 청년들에만 맞춰진 것에 불만을 가지고 있다.97
남성 :
국가주의, 거대한 체제를 중심으로 사고하는 남성들, '해방적 파국'은 제도가 다른 제도로 탈바꿈하는 것이 아니라 누에고치가 나비가 되는 일이어야 한다. 여성, 청년이 지금보다 더 목소리를 내야 하고, 더 적극적으로 살길을 찾아야 한다.
우리나라 취준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일자리가 아니라 '시민'이 될 공간과 활동수당이다.
88만원 세대 : 좀 다른 삶의 기획을 하기 보다 부모의 지원과 보호를 택함. 부모의 조언에 따라 배낭여행 대신 어학연수를 다녔고, 뚜렷한 보상이 주어질 일만 열심히 하였고, 돈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믿기 시작했다. 이들의 꿈은 '평범한 삶'을 살기 위한 집과 연애와 결혼이다. 각자도생에 익숙한 '생존주의 세대'이다.
"고요하고 넉넉하게 늙어가기":
일상의 예술화와 일상의 성화, 소박한 밥상, 아이가 태어나 자라고 늙어가고 죽는 장소로서 집,
인간은 역사적 시간 만이 아니라 자연의 시간, 신화의 시간을 살아가는 존재
(연금개혁과 시민수당제도)
4세대, 신세대들이 386세대와 밀레니얼 세대와 제대로 접속해서 창의적 공유지대를 만들어낼 때 본격적인 전환이 이루어질 것이다.
1세대 : 억압적 식민지 시대를 살아온 세대(패배주의와 생존주의를 내면화)
2세대 : 해방이후 베이붐 세대(자수성가한 성공주의를 내면화) 개발독재시대의 주인공, 하면된다는 믿음을 내면화, 노후에 부동산으로 번 돈 관리에 관심집중. 자기성찰의 시간을 갖지 못함
3세대 : 386세대. 청년때 반독재투쟁, 가치와 태도면에서 윗세대와 비슷. 연줄주의.
2,3세대는 무질러야 할 적이 분명했고, 적과 대결하기 위해 목표달성을 위해 뭉침. 그럴 수록 소수의 희생은 불가피.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 공유보다 독점에 익숙. 가족중심, 개인성은 억압.
4세대: 신세대 내지 X세대 90번대 학번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를 목도, 그간의 신념에 문제를 던지며 새질서를 찾으려 함. 자신의 욕구에 충실하고 자기 속도로 가고 싶어 한다. 실제 삶의 장을 새롭게 만드는 일에 더 관심을 가진다. 개인과 사회를 연결하면서 일상의 민주주의를 이루고자 함. 97년 경제위기, 신자유주의 물결에 의해서 성과를 거두지 못했음. 이들이 한국의 인터넷 시대를 열어갈 주역세대이다. (2008년 FTA 무역협정 반대 촛불시위, 2016년 광황문 촛불시위의 주인공)
5세대 : 밀레니얼 세대
<사례들>,
영국, 토트네스의 '전환마을운동' : 석유생산 정점에 다다르자, 에너지, 먹거리, 교통, 문화, 교육, 축제 등 삶 전 영역에 걸쳐 활발한 주민활동이 시작됨. 작은 것이 아름답고 느리게 가야하고 연약함을 감싸 안을 때 전환이 된다는 것을 실천을 통해 보여줌.
국가를 소환하는 젊은 시민들의 움직임 : 정부를 상대로 한 기후변화 소송(미국), 판사소환청원, 지자체장 소환.
은평구, 두꺼비하우징, 마을공동체 사업, 50+학교, 의료생협, 청년혁신 허브 등
하자센터의 '난감모임'
문제에 직면했을 때, 일단 머리를 긁적이고
'정말 남감하다'고 말 할 수 있어야 한다. 잠시나마 마음을 추스르고 상황인식을 분명히 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이어야 한다.
카페 오공의 셰어하우스 '우동사': 월 70만원으로 살기를 실험중. 이런 모델이 많아지면 국가도 자본도 두렵지 않은 막강한 힘을 시민이 갖게 될 것이다.
용산의 '빈집', '빈고'
제도도의 '재주도 좋아' : 빈 창고에서 예술작업하고, 동네 아이들하고 놀고, 동넨 사람들이 수확한 열매로 잼 만들어 장터에서 판다.
서울 성미산 마을
▶ <선망국의 시간>의 서문을 읽고
"당신은 지금 어떤 시간을 살아가고 있나요?"라는 부재가 달려있는 것 같이 이 책에서 조한혜정님은 실재의 의미로든 은유의 의미로든 시간이란 말을 많이 쓰고 있다. 아마도 시간이라는 것이 개인과 집단이 실재로 걸어온 역사를 돌아보고 아직 오지 않는 미래를 상상하기 위해 우리를 지금 여기에 잠시 정지시키기에 좋은 개념이기 때문일 것이다.
서문 속에는,
지금의 내 모습과
나를 둘러싼 관계와
사회, 국가, 세계를 되짚고, 다시 눈을 돌려 다른 시공간을 상상할 수 있도록 영감을 주는 단어들이 여럿 있었다.
만물과 함께 하는 공존의 시간,
태곳적 감각,
유적 특성,
선물과 호혜의 시간,
오래된 미래,
우주적 시간,
린포체적 상상,
돌봄의 감각
등 이다.
조한혜정님은 결국 선망국의 시민, 우리가 지향해야 할 길이란, "돌봄 민주주의 국가의 시민"이 되는 것이라 말한다.
그 과정에서 먼저 나는 선망국 대한민국의 시간을 살아오면서 축적한 내 안의 애증의 감정과 상대적 박탈감, 피해의식을, 그리고 가족, 국가, 인간 중심주의 등 나를 중심으로 한 온갖 중심주의를 넘어서야 하고,
이제는 자율노동과 자활의 정치를 스스로 시도해 볼 힘을 얻어야 할 것 같다. 어떻게?
그래서 책 속의 이 물음이 유독 마음에 와 닿는다.
당신은,
"홀로 있어야 할 시간인가요? 함께 밥을 나눌 동지를 찾을 시간인가요?"
▶ 나는 지금 어떤 시간을 살아가고 있나?
: <선망국의 시간>을 읽고
방금 책을 읽으며 자세히 노트에 적어둔 내용을 주제별로 밴드로 옮겨 적는, 노가다?를 마치고, 짦게 소감문을 쓰려고 글쓰기 창을 연다.
그동안 산만히 알고 있던 것을 책을 통해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이해할 수 있어 좋았다. 이 책은 호모사피언스, 인류에서 시작해 세계, 국가, 지역, 가족 그리고 궁국은 나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과거 현재 미래를 두루 거치며, 당면한 현안 만이 아니라 대안까지를 포괄해서 다룬다.
개별자로서의 내가 아니라 영겁의 시공간 속에서 모든 생명과 연결된 존재로서의 나, 그 나에 대해 성찰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고차원적? 고민을 할 즈음, 함께 읽고 있는 책, <법성게>과는 다른 면에서 좋은 지침서가 된다.
인류가 걸어온 길, 그리고 내 조상과 내가 경험하고 살아온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시스템들, 시스템이나 구조에 대한 이해와 저항은 여전히 중요하다. 하지만 어찌보면 그런 구조들은 드러난 결과물일 뿐이다. 저자가 말하듯이 인간 삶의 조건에서 근간이라 할 수 있는 돌봄공동체에서 떨어져나와 소외되고 비대해진 공공영역이다. 무엇보다 시스템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 살게 되는 이유, 삶을 지탱할 수 있게 하는 소중한 것들을 얻기 위한 수단이고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필수의 것을 보조하는 부수적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으며 내내 시스템이 아닌 사람에 관해, 그리고 그 사람의 존재론적 변화에 관한 내용에 마음이 닿았다. 그리고 그런 변화가 만들어 낼 공동체의 모습, 특히 그 공간에 관한 상상을 자아내는 대목을 읽는게 즐거웠다.
신영복 선생님이 창을 통해 신문지 반쪽 만하게 들어오는 햇빛을 보며 오랜 감옥살이를 견딜 수 있었다고 하듯, 사람은 그런 존재이다. 또한 "삶이란 우연한 만남들을 통해 이루어지고, 우연과 인연이 가져다주는 기쁨과 윤리를 배우는 곳이며, (시스템)은 망가졌지만 삶은 지속되어야 하고, 서로 어울리며 '사회'를 만들어 내는 일을 계속해 나갈 때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
나와 너와 같이 각기 다른 얼굴 가진 사람의 존재론적인 변화란 "작은 것이 아름답고 느리게 가야하고 연약함을 감싸 안을 때" 이루어진다고.
요새 유독, 편리와 효율에 최적화된 대도시와 아파트라는 공간에서 사는 게, 참 답답하다.
일상이 이루어지는 공간의 형태와 성격이 한 사람의 행동, 정서, 사고, 몸 등 많은 것들을 구획하고 규정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공간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며, 공간의 재구성은 작지 않은 정치적인 문제일 수 있겠다 생각한다. 도시라는 공간은 연약한 것들, 불편한 존재들, 느린 것들, 인간 아닌 식물과 동물들은 거주하기 어렵게 심지어 겉으로 드러나지도 못 하게 구성된 공간이 아닌가?
그래서 책에서 언급한 공간에 관한 내용에 흥미가 갔다:
안부를 묻는 자리
서로로부터 배우고 서로를 사랑스럽게 보면서 나뿐 기운을 거두고 좋은 기운만 쏘아주는 자리,
헤테로토피아와 같은 장소.
일상의 해방구 같은 장소.
공유지대.
그간에 익숙해졌던 독점적 자본주의에 길들여진 몸을 바꾸어 낼 수 있는 장소.
강하다고 뽑내지 않고 약함의 미덕을 아는 사람들이 사는 곳.
존재의 가능성 그 자체가 긍정되는 삶이 가능한 장소. (조르조 아감벤)
광장
당장 내가 이런 공간들을 나를 기점으로 생산할 수는 없지만 일단 그런 공간에 속해서 힘받고 힘을 보태고 싶다.
"고양된 인간성은 결코 고독 속에서 획득될 수 없으며, 오직 자신의 삶과 인격을 공동 영역에 투신할 때 얻어진다."(한나 아렌트)
정치적으로 윤리적으로 미적으로, 영적으로 고양된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나홀로 수행'으로 가능하지 않음을 알기에. 나에게 지금은 "홀로 있어야 할 시간" 보다는 "함께 밥을 나눌 동지를 찾을 시간"이지 않을까.
"그간에 익숙해졌던 독점적 자본주의에 길들여진 몸을 바꾸어 낼 수 있는 장소"를 만나기 전에 내 길들여진 몸을 바꾸어야 한다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그리고 다르게 살기에 필요한 "실존적 명석함과 용기"를 갖는데 방해가 되는 것은 무엇일까?
내 안의 불안과 공포, 아마도 그것은 생존의 공포, 재산권 신수설, 가족중심주의에 기반한 것일 것.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일은 내 주변의 존재들과 관계 맺는 방식 특히 소통하는 방식을 돌아보고 바꾸는 것이다. 내가 인식하는, 남이 가진 나와의 차이는 싫음과 적대, 혐오의 이유가 아닌진데, 그것을 다름으로 인정하고 수용하고 존중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상대를 이해하고 더 나아가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태도와 소통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전환의 시대에 그 전환의 방편으로서 현재 내가 할 수 있고 나에서 비롯될 수 있는 가능한 열쇠는 바로 공감능력을 키우는 일이다. 기피와 적대가 아닌 수용과 공감의 방식으로 다른 존재와 관계맺을 수 있는 감수성, '공감의 몸'으로 바꾸는 일이다. 최근에 읽은 정혜신님의 책에서 생명을 죽음에 이르게 할 만큼 큰 고통에 빠진 사람을 구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타인의 공감임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