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결혼한 여자 혼자 떠나는 여행, 결혼 안식년

백_일홍 2022. 8. 2. 03:15

결혼한 여자 혼자 떠나는 여행, 결혼 안식년

 

셰릴 자비스

 

나는 도망쳐 왔다....나는 내 삶의 조개를 벗어버렸다.

 

많은 축적물틀로 가득 메워져 있고 바위에 단단히 자리잡고 있는 굴조개. 중년의 결혼은 껍질을 벗고 바위에서 떨어져나가기 위한 시간이 되어야 한다.

- 앤 모로 린드버그

 

무엇으로부터 도망치는가?

분열된 삶. ~~~노릇 하느라 꿈이 상실되어버린 삶

 

어떤 여성들은 남을 돌보는 일에 너무 길들여져서 집을 떠나지 않으면 그 일에서 뵛어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런 여성들은 그 패턴을 깨뜨릴 수 없을 뿐 아니라, 그 패턴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공간조차 갖고 있지 못하다. 38

 

나는 경제적으로 스스로 책임질 수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것은 독립성의 한 부분일 뿐이며 내게는 다른 종류의 독립성이 부족하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어느 정는 결혼관계 자체에 내재되어 있는 학습된 무기력증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결혼 속에서는 남자나 여자나 다 같이 무기력감을 느끼는데 그것은 대개의 부부들이 남편 몫 아내 몫으로 주워진 임무만을 하는 데서 생긴다.103

 

남을 즐겁게 해주며 살아온 사람은 이 일이 자신의 즐거움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에 죄의식이 든다.

 

처음으로 이전과는 다른 행동을 했음을 알려주는 지표가 바로 죄의식이다. 죄의식은 지성이 아니라 김성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상황과 무관하게 그것이 여성의 첫 번째 시도이라면 당연히 강정적으로 불안함을 느끼게 된다.

 

죄의식에서 오는 고통은 우리가 엉뚱한 곳에서 우리의 가치를 찾고 있음을 알려주는 표지이다. 죄의식을 받아들이면 우리는 삶을 부정하게 된다. 115

 

12년의 결혼생활 동안 단 한순간도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브지 못한 자녀 넷을 둔 여자.

욕실문을 잠그고 혼자 있어도 손님방을 개조해 만든 자기만의 공간에 있어도 그녀에게는 계속 자기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그녀는 자신을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었고 도저히 자신을 완전히 사라지게 내버려둘 수가 없었다.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그녀는 모텔에 방 하나를 빌리기로 했고 거기서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기 전의 오후시간을 마음껏 고독 속에서 지낸다.

그러나 그녀의 기쁨도 불안함을 잠재우지 못한다. '나는 지금보다 더 많이 혼자 있고 싶어"라고 부르짖는 자신의 욕구가 그녀에게는 너무나 부자연스럽게 여겨졌기 때문에.

남편이 그녀에게 매일 오후 어디에 가느냐고 묻자, 혼자 있고 싶어하는 자신의 이상한 욕망을 실토하기보다는 다른 남자를 사귄다고 말해버리다. 그러자 남편은 자기도 다른 여자를 사귀고 있다고 밝히면서, 이 모는 상황을 그대로 인정하고 네 사람이 함께 만나 저녁식사라도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한다.

이때 그녀는 자신의 가짜 연인이 고독이었음을 밝혀야 한다늗 사실에 너무도 두려운 나머지 자살하고 만다. 129

 

영국 소설가, 도리스 레싱의 <19호실로 가다>

 

혼자 남거나 버려지지 않을까 염려하는 우리의 근원적인 두려우을 건드린다. 그 두려움이 너무나 원시적이고 그 현실이 너무나 겁나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아예 그 문제에 대한 언급조차 회피한다.

 

결혼 안식휴가라는 주제가 그렇게 위협적이란 사실은 어떤 강한 집단 무의식적인 환상이 있음을 말해준다. 나의 반려자는 나의 모든 요구를 채워줄 수 있다는 환상. 나의 반려자는 내 것이라는 환상, 나의 배우자는 언제나 나와 함께 하고 싶어할 것이라는 환상. 결혼, 관계는 영원할 것이라는 환상. 이러한 환상은 자명한 진실을 외면한다. 모든 관계는 일시적. 결국 우리는 모두 혼자인 것이다. 결혼이란 그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철저히 혼자라는 현실을 잊기 위해 택하는 방법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132.

 

안식휴가에 대한 비난의 말은 그런 불안감이 밖으로 표출된 것이다. 133

 

여성을 집에 가둠으로써 엄마와 아이가 얻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엄마가 집에 있어도 그러기 위해 자신의 욕망을 희생시켰다면 그 여성에게는 원한의 감정이 남게 되고 자녀들은 어머니의 자기 희생이 발생시킨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다.

 

반면 자기 스스로 원해서 아이를 기르며 집에 남은 여성은 그런 문제를 피할 수 있을지라고 가정영역에서 그들이 갖는 지배권 때문에 아이들의 삶에 지나치게 개입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허는데 이것은 자녀가 부모에게서 독립해 나갈 때가 되면 양쪽 모두에게 더 큰 어려움을 안겨다 준다.

영화 1996년작. 어머니.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제공해줄 수 있는 한 가지는 우리 자신의 존재상태이다. 우리가 우리자신을 키우면 남 돌보기는 의무라기보다 관용처럼 느껴지며 죄의식이 아닌 자비의 마음에서 나오게 된다.149

 

결혼식 서약은 내게 너무도 중요한 것이엇는데 만약 내가 그것까지도 기꺼이 포기하겠다고 생각한다면 내 욕망은 영혼으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믿어도 될겁니다. 169

 

여자는 남편이 변하겠지 하는 기대를 가지고 결혼을 시작하지만 남자는 아내가 결코 변하지 않으리라 생각하며 결혼한다. 속담

상대의 성장과 변화를 용인하지 않아. .

 

5,000년간 지속되어온 남성 주도적인 사고방식, 즉 남자는 영지의 주인이요. 여자는 노예라는 생각. 소유권의식.

 

남편이 허락하지 않을 거예요.라고 말하는 여성들은 자신들이 없으면 남편이 살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걱정하기 때문에 남편을 살피보 보호한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또 자기 인생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아 투쟁하기보다 더 쉽다. 그것은 오래된 실존적 속임수다. 우리는 모두 우리 운명에 대한 책임을 회피한다.

나는 한번도 남편이 허락하지 않을 거예요라는 말을 한 적은 없다. 나 자신이 허락하지 않았을 뿐이므로.

내 야망을 남편에게 전이하고 나 자신을 그의 일 속으로 던져버리면 나 자신의 일로 인해 대면해야 할 갈등을 회피할 수 있으므로 훨씬 안전한 방법이었다.

 

사랑이란 상대의 손을 놓아주는 거라고 생각해, 떠날 자유가 있는 사람 만이 상대와 함께 있을 때 의미 있는 관계를 만들 수 있으니까.208


 

▶ 셰릴 자비스, <결혼한 여자 혼자 떠나는 여행, 결혼 안식년>을 읽고

이제 막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서 간단히 소감만 적어둔다. 자세한 글은 구체적 계획을 담을 수 있을 때 쓰기로 하고.

혈연아닌 남남이 만나 근 30년을 살았다는 게 어찌보면 신통하기도 하고 괴상하기도 하다. 결혼이란 여러 선택지에서 내 강한 의지대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특별하고 뽀족한 대안이 없을 때 시류에 묻어가는 방편이지 않았을까? 자식이 남들 사는데로 살지 못해 부모로서 흉잡힐까 걱정하신 친정 엄마의 강권이 한 몫을 했다. 결혼을 거부하고, 미국 유학을 꿈꾸고, 그래도 한다면 샤르트르와 보봐르 처럼 계약 결혼을 하리라 머리로 되뇌였지만, 이 모든 것은 허당이 되었다. 다 아시겠지만 이미 들어선 결혼 안에선 다르게 살려 용을 써 보았지만 힘만 들었고 어느 순간 결혼의 정해진 트랙 위를 타고 있었다.

내가 만일 남편과 헤어진다면, 그 이유는
"역경 때문이 아니라 (내가) 성장했기 때문"(네루다)일 것이다, 라는 불안을 갖고 살았고, 이제 결혼 28년차 오십중반을 넘고 있다. 함께하고 싶고 함께 해야 할 일, 요컨데 사랑과 육아의 과업이 다 끝났음에도 같이 살아가야 할 이유가 무얼까? 라고 다시 묻는다.
더 이상 "음전하가 일어나지 않는 시간은 무정하게 축적되며 그것의 형제인 권태와 함께 모든 것을 평준화시켜 버리"(존 업다이크)는 관계가 바로 나와 남편의 관계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결혼을 고쳐쓰든 졸혼을 하든 이혼에 이르든 그 결과를 섣불리 예측할 수는 없지만, 관계를 다시 구성해야하는 시기인 것은 분명하다.

저자의 관점에 대해 대부분 동감하며서 여러 여성들의 이야기에 몰입해서 읽었다. 저자가 결혼 안식년이란 주제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은, 한 인간의 실존에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인 자유와 성장을 가장 잘 담보할 수 있는 동반자 관계를 모색하는 것이고 그래서 결혼의 가능성을 확장해보려는 것이다. 남편이자 아내이기 이전에 우리 모두는 자유스럽게 살아야 할 한 인간이며, 이들이 함께 산다는 건 혼자 사는 것 보다 낫기 때문이라는 상식, 이 상식에 눈 멸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책 내용에 불만이 없고 동의한다면, 이젠 무언가를 하면되는 것이다. 내 몫의 권태와 습관, 무기력, 두려움, 느려터진 몸, 집착을 돌아보고, 행동을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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