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장영희
"내가 살아보니까"
2009년 그녀가 병상에서 쓴 마지막 책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의 한 소제목입니다.
내가 살아보니까, 사람들은 남의 삶에 그다지 관심이 많지 않다. 그래서 남을 쳐다볼 때는 부러워서든, 불쌍해서든 그저 호기심이나 구경차원을 넘지 않더라.
내가 살아보니까, 정말이지 명품 핸드백을 들고 다니든, 비닐봉지를 들고 다니든 중요한 것은 그 내용물이더라.
내가 살아보니까, 남들의 가치 기준에 따라 내 목표를 세우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나를 남과 비교하는 것이 얼마나 시간 낭비고, 그렇게 함으로써 내 가치를 깎아 내리는 것이 바보 같은 짓인 줄 알겠더라.
내가 살아보니까, 결국 중요한 것은 껍데기가 아니고 알맹이더라.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이더라. 예쁘고 잘 생긴 사람은 TV에서 보거나 거리에서 구경하면 되고 내 실속 차리는 것이 더 중요하더라. 재미있게 공부해서 실력 쌓고, 진지하게 놀아서 경험을 쌓고, 진정으로 남을 위해 덕을 쌓는 것이 결국 내 실속이더라.
내가 살아보니까, 내가 주는 친절과 사랑은 밑지는 적이 없더라. 소중한 사람을 만나는 것은 한 시간이 걸리고, 그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하루가 걸리지만 그를 잊어버리는 것은 평생이 걸린다는 말이더라.
내가 살아보니까, 남의 마음속에 좋은 추억으로 남는 것만큼 보장된 투자는 없더라.
우리 나이면 웬만큼은 살아 본거지? 이제 우리 나이면 무엇이 소중하고 무엇이 허망함인지 구분할 줄 아는 나이, 진실로 소중한 게 무엇인지 마음 깊이 깨달아 지는 나이, 남은 시간 동안 서로 서로 보듬어 안아주고, 마음깊이 위로하며 공감하고, 더불어 같이 지낼 수 있는 인간의 소중함을 깨우쳐 알아지는 나이더라.
" ~ 돌아보면 그 긴 터널을 어떻게 지나왔는지 새삼 신기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지난 3년이 마치 꿈을 꾼 듯, 희끄무레한 안개에 흽싸인 듯 선명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통증 때문에 돌아눕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침대에 누워 있던 일, ...방사선 치료 때문에 식도가 타서 물 한모금 넘기는 것 조차 고통스러위하며 밥그릇만 봐도 헛구역질하던 일....
그 세월을 생각하면 그때 느꼈던 가슴 뻐근한 그리움이 다시 느껴진다. 네 면의 흰벽에 둘러싸인 방 안에 세상과 단절되어 있으면서 나는 참 많이 세상이 그리웠다. 밤에 눈을 감고 있을라치면 밖에서 들리는 연고전 연습의 함성소리, 그 생명의 힘이 부러웠고, 창밖으로 보이는 파란 하늘 아래 드넖은 공간, 그 속을 마음대로 걸을 수 있는 무한한 자유가 그리웠고, 무엇보다 아침에 일어나 밥 먹고 늦어서 허둥대며 학교 가서 가르치는, 그 김빠진 일상이 미치도록 그리웠다.
그리고 그런 모든 일상 ㅡ 바쁘게 일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누군가를 좋아하고 누군가를 미워하고 ㅡ 을, 그렇게 아름다운 일을 그렇게 소중한 일을 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태연히 행하고 있는 바깥세상 사람들이 끝없이 질투나고 부러웠다.......
그리고 난 이렇게 다시 나타났다. 나의 본래 자리로 돌아왔다. ...지난 3년간 내가 살아온 나날은 어쩌면 기적인지도 모른다. 힘들어서, 아파서. 너무 짐이 무거워서 어떻게 살까 노심초사했고 고통의 나날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았는데 결국은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열심히 살며 잘 이겨 냈다.
그리고 이제 그런 내공의 힘으로 더욱 아름다운 기적을 만들어 갈 것이다. ..." (124~128)
이 책과 글의 제목은 아래 시인의 시에서 가져 왔단다.
바닷가에 매어둔
작은 고깃배
날마다 출렁거린다
풍랑에 뒤집힐 때도 있다
화사한 날을 기다리고 있다
머얼리 노를 저어 나가서
헤밍웨이의 바다와 노인이 되어서
중얼거리려고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고
사노라면
많은 기쁨이 있다고
-김종삼(1921~1984) '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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