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o the Heart of Life
Tenzin Palmo
1장. 무상함
존재의 세 가지 표식 :
1. 불만족, 고 dukkha, dis-ease. 우리가 원하는 데로 일이 되지 않을 때,
-> 우리가 그것을 좋아하든 그렇지 않든 무관하게 일은 풀리게 되어있어. 이에 따른 불만족은 깨닫지 못한 존재로서 겪는 우리 실존의 주된 특질임.
2. 무상함,
3. 무아
2,3. 우리는 모든 것을 고착화하려고 함. "나"라 부르는 단단한 내적 핵심을 자동적으로 창조하고 그것을 둘러싸고 모든 것을 발전시킴. 나는 이것이고 이것은 나의 것이고 나는 이것을 생각하고 나는 이것을 느낀다. 우리는 보통 나 자신에 관해 질문하지 않아. "나란 누구인가?
무상성, 영원함이라는 관념에 고착된다. 변화라는 관념에 저항한다. 특히 우리가 가치를 두는 것의 변화에.
우리 몸의 변화.생-노-병-사.
모은 것은 변한다. 안정됨을 원한다. 이를 보장할 수 없다. 안정성은 매우 불안정하기 때문. 이 때문에 우리는 고통을 껵는다.
고통스러워 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고통을 겪을 때는 우리 마음이 환상을 갖고 있어서, 사물의 실상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상실의 두려움을 갖고 있고 상실했을 때 슬퍼한다.
상실의 문제를 어려운 것으로 치부하는 문화에 살고 있다. 획득의 문제는 너무나 쉬운데.(소비문화)
섹스에 관해 공공연하게 이야기 하는 사회이지만 커다란 터부는 죽음이다.
죽음은 두려워하거나 불편한 주제.
우리에게 슬픔을 가져오는 것은 이 사실을 우리가 수용하지 않음이다. 우리는 우리의 희망과 우리의 두려움으로 갈라진 관계 속에서 산다. 왜냐하면 우리는 너무나 단단히 잡고 있기 때문에 잃어버릴까 너무나 두렵기 때문이다.
죽어가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없다. "당신이 우리와 함께 있어서 우리는 너무도 행복했다. 하지만 지금 더 나은 세계로의 행복하고 안전한 여행을 가시라"고. 우리에게 슬픔을 가져오는 것은 이러한 부정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내적으로 가도록 내버려 둘 때, 안심, 안도는 매우 크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것이 사랑의 총체적이고 새로운 차원으로의 해방을 가져다 준다. 사람들은 흔히 누군가 집착하지 않게 된다면 그가 냉담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진실이 아니다. 무집착은 우리 안의 매우 심층적인 그 무엇을 해방시킨다. 왜냐하면 그것은 두려움의 그 수준을 해방시키기 때문. 우리 모두는 너무나 많은 두려움을 갖고 있다. 상실의 두려움, 변화의 두려움, 이는 단지 수용하지 못함이다.
Mindfullness, 순간 순간 현재에 있기의 수행. 우리는 우리 삶을 너무도 무겁게 만든다. 우리 어깨의 이 무거운 짐을 우리는 안정이라고 생각한다. 렛잇고의 자유. 가벼움. 이는 관계를 포기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자신의 전문직, 가족을 포기하라는 말이 아님. 이는 외적인 변화가 아니다. 이것은 내적인 변화이다. 단단히 잡고있는 것에서 매우 느슨히, 가볍게 잡으려는 변화이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그들을 특정한 역할에 던져 넣으면서 고정화하려고 함. 그 순간 진짜의 사람을 더 이상 경험할 수 없다. 우리는 단지 그 사람에 대한 우리의 투사를 볼 뿐이다. 그들이 완벽히 고유하며 실제로 내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더 이상 그것을 보지 못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은 우리의 패턴이기 때문이다. 그리곤 사람들에 대해 지루함을 느낀다.
이는 우리가 실제적인 순간을 경험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단지 사건의 우리 버전을 경험한다. 우리가 어떤 것을 볼때 한 순간 그것을 본다 하지만 즉시 우리의 판단과 견해, 비교가 개입한다. 우리 자신의 인상과 생각만 남게된다. 하지만 사물은 그 자체로 가버리고 없다. 이 것은 다른 사람들에 관한 것일 경우 특히 진실이다.
우리는 우주에 대한 믿음을 거의 갖고 있지 않아. 사건이 일어나는 차원, 스케일을 이해하지 못한다. 실제로 우리는 우리 자신이 모든 것을 할 필요가 없다. 만일 우리가 이 것(일종의 우주적 에너지)에 연결될 수 있다면 그것 자체로 돌봄을 받을 것이다. 민알 우리가 우리 자신이 모든 것을 하려고 한다면 이 우주적 에너지는 뒤로 물러나 "오케이 내가 해라"라고 말한다.
우리가 마음에서 우러나 진실로 좋고 우리가 믿고 있는 것으로 방향을 돌리면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이 온다. 내 삶 전체는 불, 범, 승에 귀의했다. 담마를 수행하는 누구나 진정한 영적 길에 있는 자는 결코 굶어 죽지 않는다.
무상함의 문제 -> 삶, 생명에서 사물은 변한다. 그 것과 함께 우리는 변할 수 있다.
우리의 귀중한 인간 존재(실존)에 관한 질문 :
- 상품지향적 사회는 우리가 여기에 있는 이유를 좋은 시간을 갖고 원하는 것을 더둑 더 많이 갖기 위한 것. 이것이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라 확신시키려 함.
- 무상성의 본성에 관해 질문하는 사람들 다수가 이것을 기각함.
우리는 타자를 위한 끝없는 자비를 가질 지능과 능력과 관련된 인간의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점이 사실이다. 인간잠재력의 펼처짐이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삶을 보다 의미있는 무엇, 심층적인 무엇, 내적인 무엇으로 향하게 만든다. 우리가 단지 우리 에너지와 활동 모두를 행복하고 기쁘며 편안한 것으로 향하게 한다면 우리는 동물과 다른 점이 없다.
......
모든 유정들을 위한 사랑-친절함과 자비에 관해 앉아서 명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로 사랑-친절, 자비를 생산해야 할 유정의 대상은 우리 앞에 있는 바로 이들, 특히 우리가 카르마적으로 책임을 갖는 이들이다. 우리의 가족, 아이들, 파트너, 부모이다. 그들이 우리 수행의 대상이다. 만일 일상의 삶을 수행으로 사용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의미를 갖는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알 듯이 시간은 간다(무상함). 그리고 우리는 죽음을 직면하게 된다. 언제 죽을 지 모른다. 매 호흡이 마지막 호흡일지도 모른다. 만일 내일 죽는다면 지금, 오늘의 삶의 의미는 새롭게 구성될 것이다. 무엇이 중요하고 그렇지 않은지, 무엇을 할 것인가를 알게될 것이다.3장. 행복을 창조하기
3장. 행복 창조하기
갈등, 고통을 피하여 귀의할 곳 refuge을 찾는다. 우리는 어디로 귀의할 것인가? 우리는 오직 긍극적인 진리 안에서만 귀의할 수 있다.
소비사회는 항상 행동을 바깥에 둔다. 우리가 가진 것과 우리가 성취한 것과 같은.
(우리의 행복과 만족은 우리가 소유한 것, 남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의 이미지에 달려있음)
붓다, "우리가 끌고 가는 이 삶은 만족스럽지 못하다. 사물 혹은 사람으로 체울 수 없는 내적 부재 혹은 내적 공함, 의미없음의 내적 감각이 존재한다. 우리를 좀먹는 이러한 본래적인 편치 않음, 불만족감의 원인은 무엇인가?"
-> 우리 안의 이러한 편치않음의 근본적 원인은 근본적 무지에 기반한 탐욕이다. 무엇에 대한 무지인가? 기본적으로는 실상, 실재에 대한 무지이다. the way things really are.
우리는 무상성을 인식하지 않을 뿐 아니라 우리의 진정한 본성을 인식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바같에 집착한다.
우리는 우리의 내적인 상호연결됨을 깨닫지 못하고 그리고 항상 자아와 타자감과 우리를 동일시한다.
자아와 타자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 즉시, 우리는 따라서 매력적인 것을 획득하고 싶다는 생각, 피하고자 하는 것을 밀쳐내고자 원한다는 생각을 갖게된다. 그런 후 이러한 내적 공허감은 채워져야 하고 이에 집착을 하게 된다. 물론 우리는 물건과 사람에 대한 우리의 집착이 행복을 가져올 것이라는 몽상 속에서 사고를 한다.
죽음에 대한 부정. 우리 삶 모두는 죽음을 위한 준비이다.
소유물에 대한 집착,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집착, 세계 속에서 나의 지위에 대한 집착, 커리어, 성취...
이런 것을 꽉 잡고 있는 것이 우리에게 안전을 줄 것이며 이 안전이 우리에게 행복을 줄 것이라 생각함.
이것이 우리의 근본적인 몽상이다. 왜냐하면 바로 그 집착이 우리를 불안전하게 만들고 그 불안전함이 우리에게 편치않음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집착하는 마음이 우리 고통의 원인이다. 우리의 바램이 모두 성취되면 우리는 행복할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바램이 다 성취될 수 없어 왜냐하면 바램은 끝이 없기 때문. 소금물을 마시는 것과 같다. 마실 수록 갈증이 더 난다.
붓다가 말한 집착을 내려놓음이 의미하는 바는?
이를 매우 차갑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집착과 사랑을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 집착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단지 자기-사랑일 뿐.
상실에 대한 두려움. 이것이 우리를 자유롭지 못하게 함.
우리는 우리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이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고 생각하도록 교육받음. 사실은 욕망을 넘어서 가는 것이 행복을 향하는 길이다.
우리 마음, 제 6번째 감각은 항상 우리와 함께 있다. 우리는 이 마음 안에서 산다.
마음에 온통 쓰레기를 가득 채우고 있다. 이를 먼저 청소해야 한다. -> 명상
고통을 넘어선 마음 상태가 있다. 자유로운 마음 상태. 너그러움과 자비와 같은 특질을 우리 삶에 통합할 수 있다.
먼저 우리는 스스로 자신의 고통을 어떻게 창조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특질들에 마음을 여는 것이 필요함을 이해해야 하고 그것이 왜 필요한 지를 이해해야 한다. 우리의 고통은 "바깥 거기"에서 일어나는 것에 달려있지 않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마음에, 우리 자신의 마음 상태와 거기에서 일어나는 것에 대한 대응에 달려있다.
행복의 아이러니. 다른 사람을 어떻게 행복하게 만들 것인가를 생각할 수록 내가 행복해진다.
세계는 결코 나의 모든 기대에 맞추워지지 않아 이는 비현실적인 희망임. 자기 중심적 관점은 우리의 불편함의 그본적 원인임.
진정한 내적 평안함을 가져다 줄 위대한 인간의 잠재력을 갖고 있어. 이것이 진정한, 영원한 행복. 이 것이 우리 안에 있음. 이 마음이 우리의 외적 아픔과 쾌락의 파도를 탈 수 있다.
승의 3중적 의미 : 1) 계를 받은 비구와 비구니 2) 붓다를 따르는 출가자와 재가자 모두 3) 실재의 본성에 관해 경험하고 깨달은 이들. 3번재 승이 진정한 의미의 승에 귀의함이다.
5독: 환상, 탐욕, 악한 의지, 자만심, 질투로 우리는 아프다. 붓다는 아픈 우리에게 약을 처방해서 병을 낫게 해준다.
이때 약이 담마(법)이다. 우리를 돕고 우리를 돌보는 이가 승이다. 간호사와 같다. 우리가 낫게 되면 다른 이들을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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