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숲속의 자본주의

백_일홍 2023. 6. 7. 07:15

숲속의 자본주의

자본주의 변두리에서 발견한 단순하지만 완전한 삶

 

박혜윤

 

프롤로그, 골수를 맞보는 삶

 

열심히 사는 것과 의미 있게 사는 것은 다르다. 8

 

어디에 있든, 어떤 방식으로 살든, 나만의 방식으로 삶을 음미하는 법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모두가 자신의 일상이 갖고 있는 위대함을 남김없이 캐내어봤으면 했다. 우리에게는 생각보다 많은 자유가 있다. ‘어차피 사는 건 이런 거야.’ 그런 포기만큼은 내 삶에서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 바로 인생의 골수를 남김없이 먹겠다는 소로의 말에 담긴 의미일 것이다. 그렇게 내 삶이 성공과 실패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내 것이 되고, 나만의 이야기, 나만의 의미, 나만의 배움이 된다. 그 삶을 예민한 시선으로 발견해내는 방법을 이 책에 담아봤다. 11

 

시골에서 자본주의 활용하기

 

우리는 둘 다 은퇴했다. 그때 첫째는 초등학생이었고 둘째는 아직 취학 전이었다. 18

 

그리고 7년, 아직 괜찮다. 그렇다고 나나 우리 가족이 자본주의에서 독립했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자본주의가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들을 취하며 살고 있다. 평범한 개인이 아무리 덜 쓴다 한들 삶을 충만하게 하는 일만으로 채워진 일상을 살 수 있게 해준 것은 인류역사상 자본주의밖에 없었다. 19

 

우리에게는 좋아하는 일을 할 시간이 있다. 책 읽고, 글 쓰고, 가족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면서 웃고,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당장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자본주의의 엄청난 생산성이 무르익기 전, 단지 굶지 않고 살기 위해서 전력을 다해야 했던 시대에는 소수의 귀족에게나 허락되었던 것이다. 19

 

돈과 즐거움이 하나된 삶의 방식을 만들 수 있었다. 한마디로 우리가 즐거울 만한 일을 통해서만 돈을 버는 것이다. 21

 

일상은 인내하며 생산하는 것과 소비하는 즐거움으로 나뉘지 않는다. 생산을 하면서 즐거울 수 있는 일을 한다. 21

 

동물적인 생존을 해결한 후에는 무엇을 하고 싶을까? 생산 과정에서 부품이 되거나 소모되는 게 아니라, 생산 과정을 놀이로 만들 수 있을까? 돈을 버는 과정이 나를 나답게 하는 창조의 행위가 될 수 있을까? 21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농사꾼

 

친환경적인 농사는 없다. 농사는 원래 환경 파괴를 기본으로 한다. 26

 

우리는 사슴을 증오하며 농사를 짓는 대신 사슴처럼 살기로 했다. 야생 채집을 공부했다. 28

 

블랙베리를 따는 순간이야말로 내가 이 지구와 얼마나 강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내가 지구상 모든 생명체와 얼마나 가까이 맞닿아 있는 관계인지를 오감으로 느끼는 시간이기도 하다. 반드시 내 손으로 내가 먹을 것을 채취해야 한다. 그래야만 자연이 아름답고 거대하다는 단순한 깨달음을 넘어, 내가 먹고 생존하는 터전이 바로 이곳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30

 

나 역시 사슴처럼 순수하게 야생에서 나를 지키며 먹고살아야 했다면 지금의 몇 배나 열심히 살고도 이미 오래 전에 인생을 마감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마트에 갈 수 있다. 내 노동으로는 절대 거둘 수 없는 양과 질의 음식을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다. 굶주림과 천재지변을 두려워하던 과거의 인류가 모여 문명을 이루고 대량생산을 발견한 덕이다. 35

 

그렇기에 무수히 많아진 인간들이 자연을 위해 해야 할 일은 도시에 살며 아파트에 거주하고 대량생산으로 에너지 효율을 높인 식량을 먹는 것일지도 모른다. 35

 

집다운 집을 짓겠다거나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겠다는 욕망이 사라진다. 사슴처럼 나도 자연스러운 상태로 살겠다는 마음이 된다. 37

 

생활비 100만원

 

‘그렇게 많은 돈이 필요한 건 아니구나, 공포를 느낄 만큼은 아니구나.’ 돈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돈을 통해서 이 세상의 풍요를 더 많이 누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니 여기서 하려는 이야기는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한국이나 미국 현대 사회가 얼마나 풍요로운지에 대한 것이다. 돈도 그 풍요의 일부다. 44

 

경제는 팽창하지 않는데 정부는 돈을 무한정 찍어내고 있으니, 돈이란 녹아버리기 전에 자기만족을 위해 쓰는 것이 현명하다. 돈을 모아봤자, 전체 통화량이 늘어나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는 없다. 아끼는 것으로는 절대 치솟는 집값을 댈 수 없다. 절약은 투자의 시작이 될지는 몰라도 끝일 수 없다. 46

 

‘사회 전체의 돈은 무가치할 정도로 늘어나는데, 내 수중에 들어오는 돈은 왜 이렇게 작을까?’
질문이 완성되자 해답은 쉽게 보였다. 교육이나 일, 사업을 벌이는 것처럼 미래에 대한 투자가 아닌 현재의 즐거움과 만족을 위한 소비를 하기로 했다. 내 소유의 돈 말고 이 사회 전체에 늘어나는 돈을 활용하면 됐다. 47

 

100년이 지난 지금은 일반인이 몇 천 원을 내고 똑같은 정원을 거닌다. 그 돈마저 안 쓰려면 동네에 무료로 개방된 식물원도 널렸다. 48

 

나의 빵 굽기 또한 자본주의가 허락한 쾌락이다. 인간이 생산하는 것이 훨씬 적었던 수백 년 전에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단지 살아 있기 위해서 하루 종일 노동을 해야 했다. 몸이 부서지도록 일해 구했던 밀도 배부르게 먹기에는 부족했다. 빵 굽기 또한 피곤한 몸으로 한 톨도 낭비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임했을 것이다. 그러나 유통 구조도 농업 생산성도 비약적으로 발달한 지금 나는 과거에 비해 상상도 수 없게 저렴한 가격으로 유기농 밀을 잔뜩 살 수 있다. 손빨래나 밭일에 시달리지 않은 몸으로, 빵 하나의 실패에 좌절할 필요 없는 가벼운 마음으로 오로지 맛있는 빵을 굽는 데 몰두할 수 있다. 48

 

소유의 돈이 작아서 오는 공포심을 조금만 누르면 보인다. 이 풍요로운 세상이 베풀어준 교육, 넓고 다양한 세상, 넘치는 지식, 공공의 소비 시설이. 그것들은 오로지 나의 돈으로만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돈을 냈다고 그 가치를 내가 온전히 지불한 것도 아니다. 이 세상을 좀 더 인간적이고 살기 좋게 만드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과거의 세대가 만들어 현재에 도착한 풍요를 누리는 새로운 방법도 연구해야 한다. 49

 

꿈이 삶을 가로 막을 때

 

그 포기가 불러온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첫째, 포기한 자리에는 무언가가 반드시 채워진다.
자연은 빈 공간을 싫어한다. 버려진 집이나 농지는 삽시간에 잡초로 채워지고, 뚜렷한 목표가 사라진 머릿속에는 이런저런 잡생각이 떠오른다. 잡초나 잡생각을 어떻게 평가할 것이냐의 문제가 남는다. 하지만 따져보면 잡초나 잡생각은 더 상위에 있는 가치에 대한 상대적인 이름이다. 농작물을 포기해버리면 이전에 잡초라고 뭉뚱그렸던 것 속에서 나물이며 야생 과일, 나무가 보인다. 잡생각도 마찬가지다. 일간지 1면 상단에 대문짝만하게 오를 만한 기삿감, 유명한 저널에 소개될 만한 논문 주제 등 우선순위였던 것들을 포기하면 그전에는 빨리 없애야 했던 잡생각들이 달리 보인다. 재미난 것들이 있다. 여기서부터 새로운 선택이 시작된다. 포기하면 내게 중요하고 가치 있었던 무언가가 없어지지만 결코 그 빈자리가 그대로 지속되지는 않는다. 전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들이 새로운 가치가 되어서 나타난다. 80

 

욕망에 항복하는 습관

 

욕망을 줄이는 일이 나에게 불가능한 고행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욕망이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99

 

거의 무한대의 묻지마 소비를 부추기는 현대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나만의 고유한 욕망과 욕구를 정확하고 정밀하게 아는 것이 오히려 소비의 피곤을 줄여준다. 99

 

그것은 나의 권리가 아니다

 

이 세상에 대한 꿈과 이상도 마찬가지다. ‘세상을 위해 좋은 일을 하겠다’,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겠다’, ‘세상이 지금보다 더 나은 곳이어야 한다’… 이런 생각 역시 바구니를 짠 마을 사람 같은 생각이다. 이 세상을 지금보다 더 나아져야 하는 곳으로 판단하는 것도, 변화를 위해 내가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것도 온전히 나만의 판단이다. 그럼에도 변화를 위해 살기로 했다면 당신의 선택일 뿐이다. 세상은 요구하지 않는다. 당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런 만큼 세상에 무엇을 해줄 필요도, 감사하거나 보답할 이유도 없다. 그런 부담이 없을 때 세상에 대한 원망과 분노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비로소 공평해졌으니 말이다. 106

 

일단, 이해와 감사를 멈춘다

 

엄마도 그분 나름 아등바등 당신을 희생했으니 그것만으로도 엄마에게 감사와 사랑을 느껴야 한다고 다짐했지만 도저히 안 됐다. 그 대신 엄마도 그냥 소로가 이야기했던 바구니를 팔려다가 실패한 마을 사람일 뿐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엄마 멋대로 바구니를 백만 개쯤 짜서 나에게 팔려고 했던 것이다. 여기서 내가 지불해야 하는 돈은 나의 무한한 애정과 존경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엄마가 짜준 바구니가 그렇게 많이 필요 없는데, 그걸 억지로 전부 사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렸다.

 

엄마가 나를 위해 무얼 희생했건 그건 엄마의 바구니일 뿐, 나에게 그걸 사야 할 의무는 없었다. 116

그러자 나 역시 엄마에게 마을 사람처럼 행동했다는 걸 깨닫게 됐다. 엄마니까 나를 있는 그대로 보아주고 기다려주고 따뜻하게 대해달라는 요구. 이유는 내가 딸로 태어났으니까. 그게 내가 엄마에게 팔려고 했던 바구니였다. 117

 

언제 이혼해도 나는 실패한 것이 아니라, 꽤 괜찮은 결정을 한 거라는 것을 깨닫고 나니까, 더 이상 결혼이나 남편을 바꾸는 데 관심이 없어졌다.

 

포기나 이해와는 달랐다. 그 전에도 포기하거나 남편을 이해하자고 마음먹었지만 결국 폭발하곤 했었다. 그런데 신기한 건, 이때부터 남편도 바뀌고, 나도 바뀌고 결혼 생활도 바뀌었다. 119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힘보다 더 상위의 강력한 힘은 변화가 필요 없는 맥락과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120

 

정확하게 말하자면 변화가 아니라 변화가 필요 없는 맥락에 모든 것이 적절하게 들어맞는다. 맥락을 만들 때의 장점은 ‘주인 되기’를 나 혼자만 독점할 필요가 없다는 데에 있다. 내가 바꾸고 싶은 상대도 그 나름으로 자기중심이 있다. 그들이 변했다면 그들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성급하게 고마워하지도, 미안해하지도 않는다. 그들이 변화하기를 기대하지 않는 것처럼. 121

 

인간이 신에 가까워졌을 때

 

내가 지구환경을 보호하고 싶다면, 그런 일을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대신해 내가 조금 더 하면 된다. 그런 사람들을 비난하고 그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에너지만큼만 더 하면 된다. 278

 

우리 옆집에 태극기 부대가 산다

모든 개인은 그 사람의 정치적 주장보다 더 복잡한 존재라는 걸 기억한다. 그러면 세상이 조금 더 풍요롭게 느껴진다. 279

 

누구에게 인정받으면 행복해질까

아주 사소하고 시시한 것들이라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들, 따라서 몰라도 그만이긴 하지만 알면 일상에 미묘한 균열을 내는 것들이 내게는 재미있었다. 295

 

내가 가진 건 자존감이 아니라 적극적인 탐구 끝에 얻은 나에 대한 이해다. 언제, 어떤 사람들과 함께 행복한지, 무엇이 나를 채워주는지, 어떤 거리감이 좋은지, 나를 아는 만큼 다른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것을 쫓아다니지 않을 수 있다.  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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