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생각 감각에 대하여
마르쿠스 가브리엘
< 목차 >
들어가기 전에
머리말
1장 생각하기에 관한 진실
한없는 복잡성 | 생각하기? 생각하기란 대체 뭐지? | 인간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우주의 범위 | 아리스토텔레스의 감각 연구 | 〈상식〉의 원래 의미 | 〈감각〉의 뜻, 혹은 착각하기의 여러 방식 | 우주로 망명한 자의 관점? | 모든 대상이 사물인 것은 아니다 | 빨간 뚜껑이 실재할까? | 생각하기는 신경 자극의 처리가 아니다 | 오직 진실 | 합의로 만들어진 세계 | 프레게의 생각 | 뜻, 정보, 가짜 뉴스의 무의미성 | 우리의 여섯 번째 감각
2장 생각하기와 기술
지도와 영토 | 컴퓨터가 중국어를 할 수 있을까? | 사진은 크레타를 기억하지 못한다 | 개미가 모래밭을 기어 다니며 그림을 그린 걸까? | 기술의 진보와 초권능 | 문명 속의 불만 | 감정 지능 | 〈기능주의〉라는 종교 | 생각하기는 담배 자판기의 작동이 아니다 | 그리고 영혼은 연결된 맥주 캔 더미가 아니다 | 점진적 뇌 교체? | 기술과 테크놀로기 | 디지털화의 기원 | 사회는 비디오 게임이 아니다| 기능주의의 아킬레스건
3장 사회의 디지털화
논리적이잖아, 안 그래? | 집합 핑퐁 게임 | 모든 프로그램은 언젠가는 먹통이 된다 | 컴퓨터가 과연 무언가를 할 수 있을까? | 하이데거의 빛과 그늘 | 미지의 영역은 두려움을 일으킨다 〈완벽한 주문 가능성〉의 시대 | 온라인 사회관계망의 모습 | 사회적 핵발전소로서의 사회 | 확장된 정신과 초지능 | 문제에 관한 문제
4장 오로지 생물만 생각하는 이유
누스콥 | 사유 어휘의 이해 | 「이리 오너라, 늙은 빗자루야!」 | 자연주의적 의식 탐구의 문제점 | 의식이 먼저다: 토노니의 장점 | 안에 있을까, 밖에 있을까? 아예 위치가 없을까? | 축축하며 복잡하게 얽힌 한 조각의 실재
5장 실재와 시뮬레이션
스마트폰의 의미 | 불가피한 매트릭스 | 보드리야르를 기억하며 | 공포 시나리오 | 멋진 신세계 - 〈심즈〉 게임 | 깨어 있는 걸까, 꿈속에 있는 걸까? | 네덜란드를 아시나요? | 물질과 무지 | 실재란 무엇인가 | 실재라는 잡종 | 물고기, 물고기, 물고기 | 가물거리는 실재 | 카이사르의 머리카락은 몇 개? | 사실에 관한 프레게의 우아한 이론 | 앎의 한계에 관하여 | 생각하기의 실재성은 두개골 속에 기초를 두지 않는다 | 양송이버섯과 샴페인, 그리고 생각하기를 생각하기 | 인간은 인공지능이다 | 인간의 종말 - 비극일까, 희극일까?
격정적인 맺음말
감사의 말
주
참고 문헌
용어 설명
옮긴이의 말
인명 찾아보기
들어가기 전에
우리가 존재하는 모든 시대에 그랬듯이, 오늘날 인간은, 그리고 인간과 더불어 우리 행성의 온 생명은 인간의 기술적 권력 발휘로 인해 위험에 처해 있다. 이 도전 앞에서 철학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새로운 도구들과 사유 모형들을 개발하여 우리가 실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오늘날 철학은 탈사실적 시대의 거짓말에 맞선 저항이다. 철학은 대안적 사실에 관한 터무니없는 주장에 반발하고, 음모론과 근거 없는 종말론 시나리오에 반발한다. 이는 이 모든 것들이 최종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정말로 가까운 장래에 인류가 종말에 이르는 것을 막기 위해 서다.
이런 연유로 나는 이 책에서도 시대에 적합한, 계몽된 인본주의를 편들 것이다. 그 인본주의는 우리를 업신여기는 탈인본주의자와 초인본주의자에 맞서 인류의 지적, 윤리적 능력들을 옹호한다. 13
이 책의 제목(원제는 <생각의 감각>이다)은 의도저으로 이중 의미를 갖도록 지어졌다. 책의 주요 주장은 우리의 생각이 시각, 청각, 촉각, 미각과 다를 바 없는 하나의 감각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생각하면서 모종의 실재를 더듬는데, 그 실재는 궁극적으로 오직 생각을 통해서만 접근 가능하다. 또한 나는 생각하기에 어떤 새로운 뜻을, 우리 시대의 길 찾기를 위하여 어떤 방향을 부여하는 것을 옹호한다. 왜냐하면 늘 그렇듯이 지금도 생각하기는 온갖 이데올로기적 교란과 선전에 의해 혼란에 빠지기 때문이다.
정보권 - 우리의 디지털 환경 - 안에 사는 우리를 끊임없이 휩쓰는 정보 홍수 로 인해 철학적 사유는 새로운 도전들에 직면했다. 이 책은 <생각하기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하여 숙고함으로써, 오늘날 실리콘밸리의 의심스러운 마법사들과 기술을 찬양하는 도제들이 진정한 인공지능을 만든다고 주장하면서 차지하려 드는 한 영역을 가능하다면 되찾으려는 시도다. 16
머리말
인간이란 누구인지를 중립적 관점에서 규정하기는 매우 어려우며 엄밀히 말하면 불가능하기까지 하다. 왜냐하면 인간에 대한 모든 규정은 자기규정이기 때문이다. 이 자기 규정은 단순히 자연적 사실들만 열겨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정신적 생물이기 때문이다. 정신이란 <인간은 누구인가>에 관한 표상에 비추어 삶을 꾸려가는 능력이다. 이 능력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삶에 관한 그림을 그릴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을 성공적인 삶으로 간주하기 위한 조건들을 꼽는다.
그런데 오늘날 인간의 개념은 위험에 처했다. 디지털 시대는 한때 인간의 특권이었던 지능적인 방식의 문제 해결이 많은 분야에서 기계들에 의해 더 잘 수행되는 상황을 빚어 낸다. 하지만 그 기계들은 인간의 삶과 생존을 단순화하기 위해 제작한 것들이다. 24
이 책의 첫째 주요 주장은 이것이다. <우리 인간의 생각하기는 청각, 촉각, 미각, 평형감각, 기타 오늘날 인간의 감각시스템의 일부로 간주되는 다양한 능력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감각이다.> 이 주장은, 우리의 생각하기는 본질적으로 실리콘이나 기타 무생물에서도 모방할 수 있는 정보처리 과정이라는 오늘날 만연한 견해에 맞선다. 궁극적으로 컴퓨터는 우리의 아날로그 관료 체제에서 애용되었던, 좋았던 옛날의 서류철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생각하지 못한다.
다른 한편으로 나는 우리 인간의 지능 자체가 인공 니증의 한 사례라고 주장할 것이다. 인간의 생각하기는, 태양에서 일어나는 과정들이나 지구 주위를 도는 달의 운동, 우주의 팽창, 모래 폭풍처럼 자연적으로 주어졌으며 정신적 측면을 고려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는 그런 과정이 아니다. 정신적 측면을 지닌 모든 것은 인간이라는 생물에 의해 산출된다.
인간은 이 사정을 의식하고 따라서 자신의 삶을 그 사정에 맞추는 그런 생물, 목표를 품고 삶의 조건들에 개입할 수 있는 생물이다. 25
얽히고설킨 개념적 실 뭉치를 풀기 위하여 나는 두 개의 주요 문장을 출발점으로 삼을 것이다. 우리는 그 주요 문장을 계속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첫째 인간학적 주요 문장은 이것이다. <인간은 동물이 아니기를 의지하는 동물이다.> 29
나의 둘째 인간학적 주요 문장은 이러한다. <인간은 자유로운 정신적 생물이다.> 즉 우리 인간은 우리의 인간상을 스스로 수정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다. 우리의 정신적 자유는 인간의 삶꼴이 스스로 자신을 규정한다는 점에 있다. 우리는 우리의 인간임을 정의하고, 그 정의에 기초하여 도덕적 가치들을 찾아내며, 우리의 행위를 그 가치들에 맞춘다. 33
<호모 사피엔스>라는 명칭에 따르면, 다른 모든 생물과 달리 인간은 스스로에게 <너 자신을 알라>라고 요구하는 생물이다.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답은 유일신이나 신들이나 우주가 정한 어떤 규범을 지적함으로써 확립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답은 오로지 우리가 우리 자신을 규정함으로써만 확립된다. 우리는 자유롭도록 저주받았다(사르트르). 34
인간의 자기규정은 두 층위에서 이루어진다. 한 층위에서 중요한 것은 인간이 생물이라는 점, 특정 종의 동물이라는 점이다. 오로지 그런 동물로서만 우리는 실재를 알 수 있다. 생물학적 변수들과 뗄 수 없게 결합되어 있다. 그러나 또 다른 층위에서 우리는 특정 종의 동물에 불과하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은 <인간과 나머지 동물들 사이의 길을 반쯤 거친 생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생각이라는 감각이 반성과 언어를 통해 유난히 발달한 정신적 생물로서 우리 인간은 무한히 많은 정신적 실재들과 접촉한다. 35
우리 시대의 기반은, 우리의 삶 전체에서 정말 중요한 측면들은 우리가 꿰뚫어 보기 어렵거나 아예 꿰뚫어 볼 수 없는 환상이라는, 환상이다. 실재가 환상이라는 이 환상은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외면하게 만든다. 지난 몆 십 년에 걸친 디지털 혁명은 근대 지식사회의 귀결이다. 계몽 시대에는 여전히 모든 지식 형태들이 <인류를 교육함>이라는 목표 아래 결합하는 양상이 우세했다. 그후 19세기 후반기에 실증주의가 등장하면서, 인간의 모든 유의미한 정신적 성취는 오로지 기술과학과 자연과학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고 그러해야 한다는 가르침이 득세한다. 그리하여 오늘날의 주도적 형이상학은 유물론이다. 내가 말하는 유물론이란, 존재하는 모든 것은 물질로 이루어졌다는 가르침일 뿐 아니라, 우리 인생의 궁극적 의미는 재화를 축적하고 그 재화를 만끽하며 없애기에 있다는 윤리적 견해이기도 하다.
이 책이 추구하는 바는 사회학적 서술이라기 보다, 오늘날의 유물론적 이데올로기의 바탕에 깔린 사유 오류들에 대한 철학적 논의다. 특히 우리는 우리 자신의 생각하기를 주목할 것이다. 이데올로기는 말하자면 정신적 바이러스다. 그 바이러스는 사유의 혈과을 통해 돌아다니며 여기저기에서 건강의 토대를 처음엔 툰에 띄지 않게 공격하다가 결국 감영자를 압도한다.
우리의 과제는 우리 자신의 생각하기를 포착하는 감각을 되찾는 것이다. 그 감각은, 인간이 폐지되고 낙원 같은 총체적 디지털화의 시대가 도래할 날이 코앞에 다가왔다는 착각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할 것이다. 38
우리의 생각은 하나의 감가가이며 우리는 그 감각을 통해 무한을 탐사하면서 수학을 비롯한 여러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 요컨대 우리의 생각은 다른 감각들처럼 한계가 있거나 가까운 환경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생각은 - 이를테면 양자역학의 형태로 - 심지어 다른 우주들과도 관련 맺을 수 있고 우리 우주의 수학적 기본 구조를 이론 물리학의 언어로 파악할 수도 있다.
이 주요 주장은 우리의 정신적 장치가 오로지 지각과 인지로 이루어졌다는 통상적인 견애에 맞선다.... 오히려 우리의 생각감각 덕분에 우리는 얼핏 상상할 수 있을 법한 견해보다 훨씬 더 많은 실재들과 접촉한다. 39
제기할 또 하나의 주장은, 우리가 생각하는 바(곧, 우리의 생각)는 비물질적이라는 것이다. 단 하나의 에너지 시스템(물리적 우주)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을 나는 비유물론이라고 부른다. 생각하기란 생각을 붙잡기다. 생각은 뇌의 상태도 아니고 물리적으로 측정 가능한 모종의 정보처리도 아니다. 물론 인간은 살아 있고 뇌의 상태가 적당해야만 생각을 보유할 수 있지만 말이다.
이 책의 둘째 주요 주장은 생물학적 왜재주의다. 생물학적 외재주의에 따르면, 우리가 우리의 사유 과정을 서술하고 파악할 때 수단으로 삼는 표현들은 본질적으로, 생물학적인 무언가를 가리킨다. 이로부터 내가 끌어내는 결론은, 통상적인 의미의 진짜 인공지능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최신 데이터 처리 시스템들은 실은 생각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의식이 없으니까 말이다.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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