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다크룸

백_일홍 2023. 6. 30. 15:31

다크룸: 영원한 이방인, 내 아버지의 닫힌 문 앞에서

 

수전 팔루어

 

(1) 발제

 

1. '성' 이란

섹스 sex 생물힉적 몸
젠더 gender 성별, 성역할
섹슈얼리티 sexuality 성적 지향, 성애화

 

성별 이원제
이성애, 이성애자, 이성애주의

 

LGBT
가이다이크 guydyke
대체로 지정 성별 남성으로 스스로를 레즈비언으로 느끼는 사람. 성별 이원제에서 벗어난 젠더퀴어인 경우가 많고, 여성과 여성으로서 관계를 맺고 싶어 한다.

걸패그 girlfag
대체로 지정 성별 여성으로 스스로를 게이로 느끼며, 남성과 남성으로서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이들.

 

2.  정체성 문제
ㅡ저자와 그의 회고록 대상인 아버지

딸 수전 팔루어 (페미니스트, 이성애자...)
. 피의 밤, '타락한' 여성으로서 엄마, 가정의 수호자 아버지

페미니스트로서 나의 정체성은 아버지가 겪은 '정체성 위기'의 잔해, 자신이 선택한 남성적인 페르소나를 주장하지 못햇던 좌절에서 태어났다. 취미이자 피난처였던 페미니즘은 내가 선택한 삶의 일부분이 되었다. 내가 도망치지 못했던 것은 아버지였다.

아버지 스테파니 팔루어(4차례의 개명, 유대 헝가리 출생 - 기독교화된 헝가리인(성을 바꿈) -미국 시민 - MtF 헝가리인)

 

ㅡ저자가 성전환자 아버지를 만나 든 물음들

트랜스섹슈얼은 '이전의' 자아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당신의 과거를 삭제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당신이 그 성별이라고 믿는 성별처럼 '보이도록' 신체를 변형시킴으로써 당신은 여성성과 남성성에 대한 완고하고 성차별적인 이해에 동조하는 것인가?

아니면 당신은 그런 변형을 통해서 생물학이 운명이 아님을, 그리고 '트랜스'는 젠더에 처진 경계선을 단순히 건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젠더 자체를 초월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인가?

 

스톤은 결론 짓는다. 트랜스섹슈얼리티의 가치가 '패싱'에 있는 한, 트랜스섹슈얼들은 "살아온 경험들의 복잡성과 모호성을 진정으로 재현할 수 있는 능력'을 스스로 부정하게 된다. 이 말은 에릭슨의 명료한 구문을 떠올리게 했다. "다양하고 때로는 모순되는 인생의 국면과 단계들"이 폐기되거나 억압되면, 이는 전체주의로 귀결된다.

 

스톤은 트랜스 여성 자매들에게 그들의 실제 삶의 이야기를 되찾아 그것으로 성별 이분법의 단단한 벽을 부수고 내리칠 것을 요구했다. "트랜스 섹수열들은 자기 역사에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것은 자기들 삶을 말소의 연속이 아니라 차이를 재전유하고, 새롭게 조형되고 기입된 몸의 힘을 탈환하는 정치적 행위로서 기록하는 데서 출발한다" 스톤은 그들 자신을 '여성'이나 '남성'이 아닌 무언가 잡종적으로 규정하자고 제안한다. 그들의 존재 자체가, 두 개의 성에 고정되어 있는 이 세계의 근본적인 가정을 위협하는, 비결정적이거나 다층적인 젠더의 대변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그들은 '괴물의 약속'을 수용해야 한다. 트랜스섹슈얼을 비난하는 말이었던 프랑켄슈타인이라는 딱지는 그들의 해방의 원천이 될 수도 있다.

 

스펙트럼

 

멜(MtF)의 후회

 

3. 페미니스트와 트랜스 섹슈얼간의 갈등

샌디 스톤(MtF), <'제국'의 역습: 포스트-트랜스섹슈얼 선언문> 스톤은 내가 읽었던 초창기 트랜스 자서전들을 읽었고 나처럼 실망했다. "모든 작가들은 무엇이 여성다움을 구성하는가에 대한 남성들의 전형적인 설명을 그대로 복제하고 이다. 드레스, 화장, 그리고 피를 보자마자 연약한 것처럼 기절하는 것 등" 그녀는 모든 회고록이 "남성 패티시이자 사회적으로 강요된 역할에 대한 복제로서 '여성'을 비슷하게 묘사한다"고 썼다. 229

 

세노라(트랜스 젠더)는 여성성이란 것은 인위적이라는 페미니스트의 가정은 "자아도취적"이고 "오만"하며 "뻔뻔스럽게 여성 혐오적"이고, "여성성을 편안하게 느끼는 사람들을 깔보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고 썼다. ....이 말은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스럽지 않기 때문에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케케묵은 남성 쇼비니스트의 유언비어와 같은 의미가 된다. 225

4.  정체성간의 상호교차
젠더×섹슈얼리티×인종×계급×민족×국가×나이

5. 남성성의 신화와 파시즘
파시즘 국가의 소수자 혐오와 학살
남성성 신화와 여성 혐오
. 유대인의 여성화

ㅇ ㅇ ㅇ ㅇ ㅇ ㅇ ㅇ ㅇ ㅇ

 

(2) 발췌

 

한국어판 서문

페미니스트로서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말의 진실성을 믿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개인적인 것은... 그냥, 개인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76세에 여자가 되기로 했다는 아버지의 소식을 듣자 그 방화벽은 무너져 버렸다. 14

나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그저 개인적인 것으로 머물러 있기를 원했던 만큼이나, 그 개인적 이야기가 결국은 정치적인 이야기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페미니즘은 결국 옳았던 셈이다. 우리의 사적인 삶과 공적인 삶 사이에 경계란 없다. 16

성별 정체성에 대한 주장 그리고 내셔널리즘에 대한 주장이 모두 인터넷에서  악성적으로 퍼지고 있는 세계에서, 부다힐에 사는 트랜스젠더 아버지 한 사람의 사적인 분투와 전 세계적으로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는 정체성 정치의 위기 사이에는 경계가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어째서 매우 개인적인 이야기인 <다크룸>이, 또한 그리고 어쩌면, 우리 시대의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일 수밖에 없는지를 설명해 줄 것이다. 17

 

1부

 

1장 귀환과 출발

 

아버지와 나는 사반세기 가깝게 거의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어렸을 때에는 아버지를 증오했고, 나중에는 그를 두려워했으며, 10대가 되었을 때 아버지는 가족을 떠났다. 아니, 떠났다기 보다는 점점 격화된 폭력 끝에 어머니와 경찰에 의해 쫓겨났다. 오랫동안 떨어져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엄청난 성향이라면 어느 정도 눈치 챌 만큼은 아버지에 대해 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혀 아니었다. 27

 

3장 원본과 사본

 

"수전의 첫 크리스마스"의 마지막 몇 분 동안, 카메라는 여덟 달 된 나에게로 넘어온다. 나는 현관의 전신거울 앞에 불안한 포즈로 비틀거리며 서서 젖살 통통한 손가락으로 잡을 만한 것을 찾아 미끄러운 표면을 허우적허우적 더듬고 있다.... 세월이 흐른 후 이 영상을 보면서 생각했는데, 이 영화가 숨기고 있는 것은 나의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화면에 비치는 짧은 순간에도 아무 데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자기 소유인 미국식 가족이라는 소품에 둘러싸여, 카메라 앞에서 발군의 정체성을 과시하는 장면들을 이어붙였다. 67

 

4장 가정 불안

 

그러고 나서도 집은 여전히 큰 공사가 필요한 상황이었고, 아버지는 종종 버데르를 불렀다. "나는 이제 숙녀이니까, 베데르가 이것 저것 다 고쳐 준단다" "남자는 나를 도와야지. 나는 손가락 하나 까닥 안 한다고" "그게 여자로 살아가는 가장 큰 장점 중 하나 아니겠니" 아버지가 말했다. ... 나는 아버지의 새로운 정체성이 과거의 정체성과 조화를 이루는 방식이, 그리고 그녀가 그 역사와 계속해서 재협상하면서 과거로부터 어떻게 깨고 나오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그녀는 가문의 자산을 되찾지 못했다. 하지만 젠더를 바꿈으로써 과거 프리드먼가 정원사의 아들을 부리게 됐다. 83

 

5장 당신이 되어야 했던 그 사람

 

"나는 이제 공격적인 마초 맨을 가장하는 게 진절머리가 난다. 나의 내면은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지" 아버지는 이메일에 이렇게 적었다. 거의 40년이나 흘렀고, 아홉 개의 표준 시간대를 지나왔지만, 내가 그녀의 새로운 인격에서 그 폭력적인 남자의 이미지를 지워 버리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혼 판결이 아버지를 '위험에 빠진' 피해자로 만들어 줬던 것처럼 간단하게, 새로운 인격이 그 폭력적인 자를 지워버릴 수 있었다고 믿어야 했을 까? 새로운 정체성이 이전의 정체성을 구원해 줄 뿐만 아니라 그 정체성을 삭제해버릴 수도 있을까? 91

 

전후 미국, 내가 성장하던 시기에, 특히 새로운 도시 외곽 지역에 집을 사려는 중산층 미국인들에게 있어서 정체성에 대한 탐구는 성배 찾기와도 같았다. 70년대 "당신 자신을 찾으세요"는 과시적인 마법의 열쇠이자 정신적 안녕을 향한 문이었다....하지만 당신이 필연적으로 되어야 했던 '그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당신이 누구인가는 당신이 이뤄 낸 누구인가, 아니면 당신이 물려받은 것과, 그것의 유전적, 가족적, 종족적, 종교적, 문화적, 역사적 요인의 운명적인 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인가? 즉, 정체성이란 당신이 선택한 것인가 아니면 당신이 피할 수 없는 무엇인가? 92

 

아버지는 우리가 크리스마스와 부활절을 열심히 축하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했고, 기독교의 이미지를 활용한 크리스마스카드를 보냈다. 기독교도로 통하려는 아버지의 열망은 오히려 나의 불만과 내가 사실 잘 모르는 정체성에 대한 헌신을 더 강화시켰다. 내 유대인 다움이란 아버지의 침묵을 먹고 자란 것이라 할 수도 있겠다.

 

그리고 나의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은 어머니의 좌절을 먹고 자랐다. 어머니가 도시에서 일하는 직장을 포기하고 도시 외곽으로 이사했을 때, 아버지는 어머니가 새롭게 시작한 전업주부 역할에 어울리는 다양한 액세서리를 선물했다. ... 아버지는 아내와 아이들을 보조 역할로 삼은 채로 스스로 전후 미국 남성성의 모델로 전시하는 데 열성적이었다. 95

10대인 내가 메릴린 프렌치의 <여자의 방>을 읽던 날, 나의 정체성은 분명해졌다. 이제 갓 이혼한 어머니가 두 아이를 데리고 도시 외곽을 벗어나 뉴욕 이스트빌리지의 방 두 개짜리 비좁은 아파트로 이사한 직후, 나는 교외 지역 결혼 생활을 극도의 흥분으로 맹비난한 이 책을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읽었다. 하지만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 페미니스트로서의 의식은 한 철 이전인 1976년 교외 주택에서 벌어졌던 피의 밤에 이어 어머니가 부당하게 '타락한' 여자 취급을 당하고 아버지가 말도 안 되게 가정의 수호자로 등극하는 순간을 본 이후부터 시작됐다. 98

 

내가 페미니스트가 되기로 선택했을까? 그것은 내가 물려받은 것, 내가 조절할 수 없었던 어린 시절의 역사로부터 이룩해 낸 것이 아닌가? 아내와 아이들 위에 군림하는 남자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자신에 대한 아버지의 분노 때문에 나는 여성 평등을 위해 움직이는 운동가가 되었다. 페미니스트로서 나의 정체성은 아버지가 겪은 '정체성 위기'의 잔해, 자신이 선택한 남성적인 페르소나를 주장하지 못햇던 좌절에서 태어났다. 취미이자 피난처였던 페미니즘은 내가 선택한 삶의 일부분이 되었다. 내가 도망치지 못했던 것은 아버지였다. 99

 

6장 그건 더 이상 내가 아니야

 

'트랜스가 되는 단 하나의 길이란 없어" 몇년 후 내게 트랜스 친구가 주의를 줬다. "나는 트랜스섹슈얼리티란 그 안으로 들어가는 수많은 문을 가진 큰 방이라고 생각해" ... 현대 트랜스젠더리즘의 지배적인 입장은 성별 정체성과 섹슈얼리티는 혼동되어서는 안 되는 별개의 영역이라고 설명한다. "트랜스젠더는 성적 지향이나 섹스, 혹은 생식기와는 무관하다" ... 하지만 내 아버지의 서류철 안에는 분명하게 성적인 단어로 표현된 그녀의 젠더 단위 생식을 향한 움직임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리고 픽션마니아와 시시 스테이션과 방대한 '강요된 여성화물'에서 나타나는 트랜스젠더 정체성에서 여성이 된다는 것은 완전한 성애화를 의미했다. 여기서 여성성은 신체 결박과 모욕, 오르가즘과 관계된 것이었고, 하나의 젠더에서 다른 젠더로의 변신은 모든 단계에서 에로틱하게 묘사되었다. 그렇다면 이 두 부분은 어떻게 분리할 수 있는가? 116

 

8장 조국의 제단 위에서

 

"남성 신체 부위를 가졌고, 남자로서 일했지. 하지만 역할에 잘 적응했던 적은 없었다. 한 번도 (여자들로부터) 인정받은 적도 없었고" "나는 어떻게 싸우고 어떻게 때가 묻는지 몰랐어. 나는 근육질도 아니고, 운동을 잘했던 것도 아니고, 남자로서 정말 비참한 삶을 살았지. 그리고 계속해서 거절당하면서 점점 더 불행해졌어. 네 엄마한데 말이다." 네 엄마, 아버지는 그녀를 이렇게 묘사하길 즐겼다. "그녀는 나를 받아 주지 않았고, 내버렸지" 143

 

10장 좀 더 다른 어떤 것

 

멜(MtF), "이제 나는 스펙스럼이 있다고 생각해요. 나는 그 한가운데에 있는 거죠. 5점이 라고 할까요. 나는 중성인 것 같아요. 하지만 중성이 되고 싶지는 않아요, 사람들은 구분없이 살아갈 수가 없어요. 경계에 있는 사람들 조차 구분이 필요하죠. 그래야 경계에 있을 수 있잖아요. 정체성이 있어야 해요" 217

나는 진부한 트랜스 섹슈얼리티를 매도하는 진부한 페미니스트의 틀에 나를 구겨 넣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읽고 있던 회고록에 등장하는 페미니스트를 향한 공격은 트랜스젠더를 공격하는 이들과 동맹을 맺지 않는 나의 위치를 조금도 편하게 만들어 주지 못했다.

 

세노라는 여성성이란 것은 인위적이라는 페미니스트의 가정은 "자아도취적"이고 "오만"하며 "뻔뻔스럽게 여성 혐오적"이고, "여성성을 편안하게 느끼는 사람들을 깔보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고 썼다. ....이 말은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스럽지 않기 때문에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케케묵은 남성 쇼비니스트의 유언비어와 같은 의미가 된다. 225

 

샌디 스톤(MtF), <'제국'의 역습: 포스트-트랜스섹슈얼 선언문> 스톤은 내가 읽었던 초창기 트랜스 자서전들을 읽었고 나처럼 실망했다. "모든 작가들은 무엇이 여성다움을 구성하는가에 대한 남성들의 전형적인 설명을 그대로 복제하고 이다. 드레스, 화장, 그리고 피를 보자마자 연약한 것처럼 기절하는 것 등" 그녀는 모든 회고록이 "남성 패티시이자 사회적으로 강요된 역할에 대한 복제로서 '여성'을 비슷하게 묘사한다"고 썼다. 229

 

스톤은 내가 읽었던 회고록에서 무시된 수많은 질물들, 부다페스트에서 나를 괴롭혔던 질문들, 그리고 아버지가 회피하려고 했던 질문들과 대면했다. 트랜스 섹슈얼은 '이전의' 자아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그리고 당신의 과거를 삭제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당신이 그 성별이라고 믿는 성별처럼 '보이도록' 신체를 변형시킴으로써 당신은 여성성과 남성성에 대한 완고하고 성차별적인 이해에 동조하는 것인가? 아니면 당신은 그런 변형을 통해서 생물학이 운명이 아님을, 그리고 '트랜스'는 젠더에 처진 경계선을 단순히 건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젠더 자체를 초월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인가? 스톤은 결론 짓는다. 트랜스 섹슈얼리티의 가치가 '패싱'에 있는 한, 트랜스섹슈얼들은 "살아온 경험들의 복잡성과 모호성을 진정으로 재현할 수 있는 능력'을 스스로 부정하게 된다. 이 말은 에릭슨의 명료한 구문을 떠올리게 했다. "다양하고 때로는 모순되는 인생의 국면과 단계들"이 폐기되거나 억압되면, 이는 전체주의로 귀결된다. 230

 

스톤은 트랜스 여성 자매들에게 그들의 실제 삶의 이야기를 되찾아 그것으로 성별 이분법의 단단한 벽을 부수고 내리칠 것을 요구했다. "트랜스 섹수열들은 자기 역사에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것은 자기들 삶을 말소의 연속이 아니라 차이를 재전유하고, 새롭게 조형되고 기입된 몸의 힘을 탈환하는 정치적 행위로서 기록하는 데서 출발한다" 스톤은 그들 자신을 '여성'이나 '남성'이 아닌 무언가 잡종적으로 규정하자고 제안한다. 그들의 존재 자체가, 두 개의 성에 고정되어 있는 이 세계의 근본적인 가정을 위협하는, 비결정적이거나 다층적인 젠더의 대변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그들은 '괴물의 약속'을 수용해야 한다. 트랜스섹슈얼을 비난하는 말이었던 프랑켄슈타인이라는 딱지는 그들의 해방의 원천이 될 수도 있다. 231

 

폴란드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만약 근대의 '정체성 문제'가 주로 어떻게 정체성을 형성하고 그것을 견고하고 안정적으로 유지하는가에 놓여 있었다면, 후기 근대의 '정체성 문제'는 주로 어떻게 고정성을 피하고 선택지를 열어 둘 것인가에 놓여 있다'고 썼다. 새로운 트랜스젠더 이론가 다수가 이 말에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트랜스젠더들은 과연 선택지를 열어 두었는가? 성적인 상태의 다양성에 대한 그들의 모든 주장에도 불구하고(스톤은 세계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젠더가 있다고 주장했다), 반란군들은 오직 하나의 성별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반복적으로 고백했다. 그리고 그것은 성별 이분법 안에서 그들이 타고났던 성별의 반대쪽에 있는 성별이이었다. 이러한 증언을 읽으면서, 나는 멜의 고뇌에 찬 주장을 계속 듣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구분 없이는 살아갈 수 없어요" 233

<용어>
transvestite '복장도착자'
크로스드레싱이 도착적 행위라는 편견을 담아서 사용했던 과거의 용어다.

여성돔 dominatrix
BDSM 플레이에서 지배하는 역을 맡은 여성
bondage, discipline (or domination), sadism (or submission), masochism

쉬메일 shemale
트랜스젠더 여성이나, 남성 성기와 함께 유방이나 호르몬 등 여성의 이차성징을 가지고 있는 사람

패싱 passing
비이성애자가 이성애자로 여겨지는 것, 이성애자인 척하는 것이 통하는 것. 혹은 MtF 트랜스 여성이 비트랜스 여성으로, FtM 트랜스 남성이 비트랜스 남성으로 무리없이 간주되는 것을 말한다.

드랙 drag
사회적으로 고정되어 있는 성역할에 따라 정해진 옷과 행동, 말투 등을 자신이 지정되지 않은 성에 맞춰 수행하는 것.
drag show
drag queen
drag king

가이다이크 guydyke
대체로 지정 성별 남성으로 스스로를 레즈비언으로 느끼는 사람. 성별 이원제에서 벗어난 젠더퀴어인 경우가 많고, 여성과 여성으로서 관계를 맺고 싶어 한다.

걸패그 girlfag
대체로 지정 성별 여성으로 스스로를 게이로 느끼며, 남성과 남성으로서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이들.

* 미국에서는 2016년 연방차원에서 동성 결혼이 합법화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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