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실은 고독하지 않다: 김민웅의 생각
김민웅
1 자본의 비밀
땅은 신의 선물, 우리 모두의 것
아름다운 영혼을 향해
가난한 이들을 위한 땅 기부 운동을 벌이고자 인도 전역을 걸 었던 비노바 바베(Vinoba Bhave)는 "토지의 사적 소유는 반드시 끝나야 한다"며 땅이 공동의 소유가 되는 순간 마을은 한 가족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나눔운동을 펼치면서 "나는 구걸하러 오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들을 보다 높은 차원으로 초대하러 왔습니다"라고 설득했다.
비노바 바베는 모든 사람은 그 땅에 대해 공평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면서 땅의 공동소유를 인간의 영혼이 신과 만나는 사건으로 받아들였다. 소유에서 해방된 보다 높은 경지로 가는 길을 제시했던 것이다. 그것이 보호받아야 할 사생활을 해체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도리어 토지 소유를 향한 욕망 또는 탐욕에 희생될, 진정한 가치를 가진 사생활을 지켜내고 그것의 확장과 심화가 이루어진다.
대지의 여신 '가이아'(Gaia)라는 이름으로 지구 생명공동체의 개념을 설명한 제임스 러브록(James Lovelock)이나 지구의 영혼에서 신성함을 느끼라고 일깨우는 토머스 베리(Thomas Berry) 신부의 성찰은 모두 같은 지점을 향해 있다. 땅의 생명을 독차지하려 들지 말라는 것이다. 땅을 자기 손에 혼자 움켜쥐려는 것은 악마와의 계약에 손도장을 찍은 자들의 비극으로 이어진다. 23
'지배계급의 적'이 된 청춘
'도구적 이성'과 '역사적 이성'의 대치
미미한 존재였던 그가 사교계의 스타가 되는 과정은 그의 탁월한 용모를 비롯해서 치밀한 계산과 전략 덕분이었다. 그건 철학적으로 말하자면 '이성의 도구적 기능'을 최대한 발휘한 결과였다. 부르주아의 공식이었다. 합리적 계산이라는 방식으로 이뤄 지는 '이성의 도구적 기능'은 현실의 부당한 면모를 문제삼지 않는다. 윤리의 작동을 멈추게 하는 것이다. 목적을 이루는 공학이 전면에 나서고, 이성과 윤리는 결별한다. 생존경쟁의 승리와 적응의 논리가 위력을 발휘할 뿐이다. 그러기에 쥘리앵의 뇌리를 지배한 것은 지배질서를 지켜내는 '흑(黑)의 논리'였다. 공화파의 역사성에 대한 고민이나 집착 또는 비전은 여기서 방해가 될뿐 이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다'는 신념의 관철이다.
그러나 그가 모멸받았다고 여긴 순간, 그것도 자신을 사랑한다고 생각한 지배계급의 일원인 레날 부인에게 그런 취급을 받았다고 판단하자 사태는 급변한다. 쥘리앵은 이 충격 속에서 본래 지니고 있던 그 자신의 정체성이 일깨워지는 것을 경험하게 된 다. 헤겔식으로 말하자면 자기 존재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한 '치열한 인정투쟁의 과정'이 펼쳐지다가 어느 한순간에 자신이 부정당하고 있다고 깨닫자 지배계급에게 반기를 들게 된 것이다. 포기할 수 없는 본질적 존엄에 대한 의지가 그를 압도했던 것이다. 그게 쥘리앵이었다. 41
어느 길로 갈 것인가
누가 어떤 법을 만들어서 공공의 자산을 자신의 것으로 사유화하게 하는지 알아야 한다. 법에 장착된 폭력을 가려내 제거해야 한다. 어떤 속임수가 교육으로 포장되고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다양한 폭력을 내장하고 있는 시장사회의 진상을 끊임없이 폭로해나가고 이를 공유해야 한다. 대자본이 한국 사회를 지배적으로 독점하는 구조인 재벌의 해체와 혁파는 한국 사회 전반의 변화를 가져올 기본적 개혁과제다. 한국 정치는 어느새 이 과제에 대해 침묵해버렸다. 금권정치에 길들여지고, 그 수문장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재벌 개혁은 정치 개혁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런 모든 일을 해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언론이 매일 먹여주는 허위를 진실인 줄 알고 받아먹고 있는 우리 사회를 구해내야 한다. 역사를 배제한 몰역사적 사유의 무지를 벗겨내야 한다. 55
2 자본의 권력
위대한 포플리즘
인민의 벗
국민(國民, nation)이라는 말은 국가주의의 산물이다. 근대사에서 시민(市民, citizen)은 시민혁명의 주체였다. 인민(人民, people)은 말 그대로 인간 자체로 그 존재와 정체성이 규정된다. 따라서 인민은 가장 포괄적인 용어다. 여기에 항쟁과 혁명을 이끄는 역사적 주체로서의 의미도 부여된다. 그러한 '인민'이 중심이 되는 인민주의, 즉 포퓰리즘은 결코 정치적 비하의 언어가 될 수 없다. 도리어 '민중권력', '인민권력'을 뜻하는 '데모스'(demos, 인민)+'크라티아'(kratia, 권력), 바로 민주주의(Democracy)의 주체다.
이에 따른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치'는 자본의 지배를 넘어선다. 주체가 자본이 아닌 인간, 인민이기 때문이다. 인간으로서 그 존재감이 규정되는 인민은 그야말로 자본을 압도하는 인간의 권리주체로 우뚝 서야하는 정치사회적 생명체다. 인민주의는 이 생명의 존재인 인간을 위한 사상과 철학 그리고 정치노선이다. 98
신자유주의의 몰락과 좀비경제의 파탄
좀비 정치의 출현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가 야만으로부터 공화국을 보호하기 위해 그토록 중시한 '사유의 능력'이 기본적으로 존중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자본이 모든 것의 척도이며 교환가치와 그로 얻는 이윤의 크기만이 관심사인 사회의 비극이다. 교환가치로 결정되는 '가격'이 인간의 삶이 지녀야 할 질적 '가치'를 압도해버리는 것이다. 생각하는 존재는 이런 곳에서는 방해물일 뿐이다. 역사적 사유는 더더욱 축소되거나 폐기된다. 자본이 주도하는 현실의 기원을 알게 되면 모순의 정체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곳에서는 사회의 구조적·역사적 모순에 대한 비판적 질문과 의식은 위험하다고 여겨진다. 결국 기성의 틀을 넘어 '질문하는 행위'는 환영받지 못한다. 그건 가볍게 대화하고 즐겁게 세상을 누리며 복잡한 사고를 피하고 싶은, 소비주의 에 매몰된 세상에 대한 공격이 된다. 그러니 아무리 무거운 의미를 가진 주제도 일회용으로 소비되고 망각되는 이 상태를 흔들지 말라는 것이다. 불편하게 굴지 말라는 협박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생활은 역사적·사회적·정치적 질문의 대상이 되어 야 마땅한데 수치와 통계로만 그 실상이 정리되고 만다. 이걸 내세워 전문가 행세를 하는 자들이 그득하다. 당연하게도 본질은 은폐된다. 106
냉전자본주의의 지배전술
마녀사냥 중계와 냉전
약탈적 자본의 권력과 맞서는 지식과 용기는 우리를 구원하는 힘이다. 공포에 짓눌리지 않는 '인간에 대한 깊은 사랑'만이 지옥을 이긴다. 이 싸움은 자본의 권력을 내장한 정치권력을 상대로 해나갈 때 구체적이고 실천적이 된다. 정부의 권력, 입법부의 공간, 사법부의 판정 모두 이 투쟁의 대상이다. 집요하게 치열하게 공략해야 한다.
연옥을 통과하면서 사랑을 향해 나아간 단테의 모험 『신곡』은 오래전 지나버린 서사가 아니다. 자본이 주인이 된 세상은 인간의 생명을 날로 시들게 하고 결국 죽게 하는 물신의 통치가 이뤄 질 뿐이다. 생명을 존중하는 인간이 주인이 되는 세상이 온전한 세상이다. 125
파시즘의 족쇄를 넘어서는 방법
자본의 명령체계를 이기는 힘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소스타인 베블런(Thorstein Veblen)의 명저 『유한계급론』(The Theory of the Leisure Class)이 일깨 우는 것처럼 언제든 파시즘 세력으로 변모할 수 있는 이들 특권 동맹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땀을 흘리며 살아가는 이들의 피를 빨고 불로소득을 챙기는 '유한계급으로서의 기생세력'이다. 달리 말해 자본주의는 이들 '기생세력의 서식처'다. 그리고 어느 때건 우리의 몸을 장악하고 우리의 정신을 휘둘러 자신들의 뜻 대로 우리를 움직이고 피폐시켜 '생명의 신진대사'를 막는 자들이다.
어떤 시대도 이러한 기생세력이 있게 마련으로 이를 척결하는 논리와 운동도 끊임없이 등장하고 진화했다. 실학의 계보로 보자면 반계 유형원의 균전법이나 이익의 한전법이 농토의 공유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는 사유지 확대를 막는 효과가 있다. 그 러나 일하지 않는 자까지 똑같이 토지를 주거나 소유 토지 규모에 제한을 두는 수준에 그친다는 점에서 비판의 지점이 생긴다. 이에 따라 다산 정약용이 농사짓지 않는 자에게는 토지를 주지 않는다는 기본 위에 마을 단위로 묶은 '여전제'(閭田制)는 지금도 매우 혁신적이다. 137
그러나 이런 발상은 그냥 이루어지지 않았다. 율곡 이이가 오래전부터 정통이라고 여겨온 '조종지법'(祖宗之法)이라도 시대에 따라 변법(變法)의 이유가 있으면 바꿔야 한다"라며 변혁의 출구를 연 것이 출발이었다. 그로부터 시작하여 박지원이나 홍 대용처럼 이미 정해진 세계의 중심이 따로 있다며, 중화체제를 떠받들던 화이사상(華夷思想)에서 벗어나려 했던 노력들도 주목 해야 한다. 다른 세상을 품되 자기 자신의 자리에서 주체적으로 볼 줄 아는 '인식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있어야 진정한 변혁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우리 현실에서 오래전부터 반대가 금지된 '조종지법'이며, 미국은 과거 중국을 대할 때와 다를 바 없는 '화이사상의 중심'에 놓여 있는 존재다. 현 정권 들어서는 일본까지 여기에 끼어들었다. 그건 이 나라에서 현대의 사대주의이며 중화체제다. 이런 사고체계에서는 파시즘의 명령체계에 복종하는 신민(臣民)만을 기를 뿐이다. 자기가 자신의 주인인 인민이 설 자리는 없어진다. 138
3 생태계의 미래
기후전쟁과 멸종 사태
난폭한 생태 상어, 어떻게 해야 할까
인간의 노동과 자연을 약탈하면서 성장을 추구하는 자본의 욕망에 굴복하면 지구생태는 어느날 도저히 견뎌내지 못할 것이다. 막연한 예언이 아니라 과학적 전망이다. 이를 막으려면 우리가 반드시 사로잡아 꼼짝 못하게 해야 할 존재가 있다. 그건 미국의 거대한 군산복합체 자본의 지배체제다. 인간과 자연이 살아갈 바다를 오염시키고 멸종의 시간을 앞당기고 있는 '생태 상어'다.
그 상어가 이리저리 배회하고 있다. 화석연료 자본이 만들어낸 괴물, '기후악당'이라는 포식자다. 싸움에 나서야 할 때다. 더 늦기 전에. 무섭게 싸워야 한다. 기후정의를 위한 행동이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는 얌전한 투쟁이 되는 것은 하나마나한 전투가 된 다. 기후정의를 위한 싸움은 이 시대에 가장 격렬한 정치투쟁이 되어야 한다. 미국의 군사적 지배, 거대자본의 지휘체계 그리고 이에 적극 복무하는 정치권력이 우리 싸움의 대상들이다. 우리 자신과 인류의 목숨이 걸려 있지 않은가. 161
에코 정치의 긴급성과 패러다임 전환
기후 악당의 나라, 에코 정치의 출현을 기대하며
이런 논의가 진행되는 현실과 비교해보자면 우리는 어떤가? 한국은 경제력으로는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고 하나 '기후악당'(Climate Villian) 국가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2007년부터 2017년까지 10년 동안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은 탄소 배출량을 평균 8.7% 줄였지만, 한국은 오히려 24.6%나 늘렸다. 그 바람에 2019년 유엔기후변화총회가 발표한 '기후변화 대응 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전체 61개국 가운데 58위 상태에 있다. 2024년 현재는 그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나아진 상태는 결코 아니다. 168
최근 한국 사회에서 크게 주목받고 있는 브뤼노 라투르는『지구와 충돌하지 않고 착륙하는 방법』에서 '신기후체제의 정치' 를 제창한다. 기후위기로 인한 급격한 난민 이동과 불평등의 문제를 시급히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정치모델을 강구하자는 것 이다. 그 핵심은 결국 지구라는 차원 전체를 포괄하는 인류적 논의 구조와 정치의 출현이다. 정치학의 근본 주제가 달라지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순간, 우리는 자잘한 정파 간 다툼에 갇힌 정치를 뛰어넘어 지구 전체의 차원에서 생명의 정치를 지향하게 된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미래세대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정치가 이를 외면하면 어떻게 될까? '발걸음이 있었다'로 시작된 인류의 역사를 '발걸음이 끊어지고 말았다'로 마무리 지을 수는 없지 않은가? 지구는 무한한 우주에서 인간에게 지금 유일한 거처다. 창백한 푸른 점 하나, 칼 세이건의 경탄과 우려가 함께 담긴 이 말에서 '지구적 패러다임'이 일상이 되는 우리 자신을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우린 누구나 '지구인' 아닌가? 그 지구적 패러다임은 어떤 것이 되어야 할까? 170
패러다임 전환의 혁명
사유의 혁명을 일깨우는 교육이 '진화의 창조성'을 이끌어내는 법이다. 세대의 차이를 뛰어넘어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고 이에 대한 혁명적 패러다임을 창출하는 집단적 노력이 없다면 미래는 열리지 않는다. 여기에 요구되는 것은 두 가지, 기존의 질서를 뛰어넘는 거침없는 '담대한 용기'와 다양한 분야의 학문을 하나의 체계로 통합하면서 새로운 통찰력을 획득하는 지속적인 '지적 노력'이다.
지구적 차원의 인식과 그 생명의 본질로 파고드는 힘은 이런 과정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세계적 협력을 지향하는 에코 정치를 통해 인류를 구하는 길은 '관점과 지식의 혁명'을 시작으로 열리게 된다. 매우 위대한 모험이 될 것이다. 178
과학의 고독
화학 연구자와 생물학자의 만남
러브록은 그가 대면해야 했던 문제를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가장 중요했던 작업은 생명체의 조직은 단지 환경에 적응해나갈 뿐 이라는 생물학적 독단(dogma)에 도전하는 일이었다. 양자역학이 일깨운 것처럼 우리가 원자를 관찰하려면 원자의 상태를 변화시키 지않고서는 불가능한 것과 마찬가지로 지구의 상태를 변화시키지 않고 진화는 가능하지 않다. 이것이 가이아를 파악하는 핵심이다."
러브록의 가이아 이론은 오늘날 생물학에서 지구과학에 이르기까지 기본 패러다임으로 작동하고 있으나 그것이 애초에 과학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받아들여지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생물과 무생물이 뒤엉켜 공존하고 있는 지구가 하나의 생명체계로 작동한다는 개념은 비논리적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과학자라기보다 대기의 화학구조를 파악하는 기술을 가진 엔지니어 출신이었기에 과학자들이 그의 논거를 이론적 토대가 견고하다고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런 까닭에 러브록은 갈릴레오가 중세 신학과 쟁투를 벌이며 자신이 이단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했던 것과 다르지 않게 자신도 그랬다며 "이제는 과학계가 이단이 누구인지 결정하고 그 논지를 금지했다"라고 그의 책 『가이아』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181
5 국가의 논리
대자본의 음모 그리고 딥페이크 정치의 돌파
보이지 않는 정부의 지배를 이제 끝내야 한다. 우리가 정부다. 기만을 돌파할 수 있는 시민적 지성이 여기서 관건이 된다. 주권자가 곧 권력이 되는 주권혁명의 토대가 바로 이것이다. 지성은 그야말로 정치의 근본적 주도권 문제다. 플라톤이 말했던 '철인 왕'은 절대주의적 군주제 관점의 한계가 있으나, 동굴 속에 갇힌 무지를 깨는 지성이 정치의 중심에 놓여야 한다는 점에서는 백 번 옳다. 286
리바이던을 넘어, 시민.민중.인민 독재로
그러나 각 단어마다 역사적·정치적 의미가 다소 다르고 그로써 표현되는 정치적 지향점에도 차이는 있다. 국가가 규정한 존재인 '국민'은 국가권력에 대해 주권자의 위상을 의미해야 옳고, '시민'은 근대적 민주주의의 주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민 중'은 인민대중의 준말이면서 그와 동시에 계급적 피지배자의 입장을 대변하며 '인민'은 권력과 자본의 억압에 맞서는 노동자, 농민, 시민 지식인 등을 모두 포괄하는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쟁취하는 항쟁의 주체라는, 보다 폭넓고 역동적인 역사적 주체로서의 의미를 품고 있다. 291
불평등 체계의 해부학
굴종의 거부, 노예에서 자유인으로
촛불혁명 정부를 자임했던 문재인 정부는 출범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촛불혁명'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기 시작했다. 대통령과 국무총리의 연설에서는 촛불혁명의 그림자도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들은 이른바 '협치'라는 방식으로 갈등을 은폐하고 타협하는 기만적인 노선을 취하면서 프란츠 노이만의 말대로 정치검찰이라는 파시즘 세력의 반격 앞에서 결국 휘청거리게 되고 말았다.
그러면서 법 앞에서의 불평등구조를 혁신할 수 있는 시민의 정치적 의지와 하나가 되지 못한 채 스스로 시민들로부터의 고립을 자초하고 말았다. 지지기반은 무너져갔으며 문재인 정부 안에 존재하던 촛불혁명의 동력은 그렇게 꺼져버렸다. 그 결과는 검찰 쿠데타의 주모자와 주도세력의 정치력 확장이었고 그로 말미암은 고통은 이들 세력의 권력장악을 막아내려는 시민들이 겪게 되었다. 301
6 데모스크라티아와 혁명
대의제의 과두적 한계를 넘어
우리의 현실에서도 의회는 과두지배로 작동하고 있으며 주권자 국민들은 선거 시기에만 표와 지지세력으로 도구화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국민들은 민원 또는 청원과 같은 문제제기 수준의 수동적 주체이거나 기성 정치에 반발하고 저항하는 정도이 지 그 자체로 권력을 가지고 결정권을 발동시키는 데모스크라티아의 주체가 아니다. 이러다 보니 혁명적 정세에서도 정치공학적 계산에 따른 '선거주의'에 매몰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만다. 이게 무슨 뜻인가? 표를 얻어야 한다는 이유로 본질적인 문제제기는 피하고 당장의 인기를 위한 "욕망의 정치'가 부추겨진다. 주권자들은 매수되는 셈이다. 그건 기존의 특권적 구조와 제도를 정치적으로 폭파시키고 이 기반 위에 새로운 질서를 구축할 수 있는 세상에 대한 상상력을 제약한다. 그런 상상력은 기존 정치 권에게 불온하게만 여겨진다. 정치는 기득권이 설정한 경계선 밖을 벗어나지 않는다. 343
디시 사회주의를 주창하며
그렇다면 답은 분명하다. 주권자 시민들의 권력이 확대되어 차별과 차등이 아니라 평등하고 공적인 권리가 보장되는 체제를 구성해야 한다. 그걸 오늘날 '민주적 참여사회주의'라고 부른다. 이런 세력의 정치조직화와 정당의 출현은 매우 긴요하다.
역사적으로 실패한 사회주의 정치만 사회주의가 아니다. 자본의 독점적 지배를 반대하고 주권자 국민의 권력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를 기획하며 생태계를 보호하고 인간과 자연의 협력적 존재양식을 발명해나가는 일은 미래 정치의 핵심이다. 이것은 특 히 오늘날의 청년세대가 누려야 할 권리를 만들어가는 정치의 기본이다. 346
진정한 국가의 주인이 되려면
『정치신학』의 첫 문장은 "주권자란 무엇이 예외적인 상황인가를 결정하는 존재"라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가 경험했던 유신체제의 '비상조치' 역시 바로 여기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한반도 분단상황에서 파국적 재앙을 막기 위한 '예외적 대응의 절박성' 과 '예외적 권력의 체제화'가 결국 대한민국의 주권을 지켜낼 수 있다는 논법이었다. 유신체제와 유신헌법은 카를 슈미트의 한국판 변형이었다. 이는 파시즘 권력의 기본논리가 되었다.
'카테콘'의 개념이 이렇게 설명되는 것은 하나의 사상 또는 논리가 본래의 의도와 전혀 다른 것으로 왜곡되고 통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데살로니가후서」를 쓴 바울에게 '카테콘'은 기독교도에 대한 로마 제국의 핍박을 견디면서 '다 가올 그날을 예비'하는 존재를 뜻했다. 이는 히브리 성서(구약)의 종말론이 담겨 있는「다니엘서」에 등장하는 '뿌리가 남겨진 그루터기'와 다르지 않다. 이는 잔혹한 권력에 의해 줄기와 가지가 잘려 본래 지녔던 나무의 꼴은 비록 잃었음에도 소멸하지 않 고, 광포한 시대를 견디며 생존하며 새로운 시대를 믿고 준비하는 세력이다. 그런 까닭에 바울의 사유 속에 담긴 파국의 그날에 대한 신학적 태도 즉 '종말론'은 슈미트가 말했던 재앙적 현실이 아니라, 불의가 패망하고 의가 세워지는 미래에 대한 '급진적 전 망'이다. 이것이 종말론의 본래 뜻이다.
바울이 애초에 짚은 이 개념의 내부에는 로마 제국의 지배로 압축되는 폭력과 전체주의적 지배에 대한 비판 및 저항이 그 본질로 담겨 있다. 종말적 파국은 카테콘의 관점에서는 도리어 반가운 소식이자 유일한 희망이다. 종말은 불의한 세력의 끝을 말하는 것이지 이들과 맞서 투쟁하는 쪽이 멸망하는 끝은 아니기 때문이다. '카테콘'이 악의 횡포와 전횡을 막는 것은 그로 인한 희생자들이 더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며 파국의 때가 오는 것을 어떻게든 저지하고 늦춰보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종말의 때에 맞춰 이뤄지는 '결정적 행동'인 셈이다.
이런 상황이 이르기까지 시간은 파격적 계기를 통한 구원의 사건, 즉 혁명 내지 혁명적 사태에 대해 준비하면서 '종말의 정의'를 관철시키는 힘과 하나가 된다. 이 과정에 참여하는 이들이 야말로 오히려 슈미트가 말한 예외적 권력의 주체이자 그 권력을 발동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존재다. 주권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명확히 해야 그 의미가 분명하게 드러날 수 있다. 하지만 슈미트가 말하는 주권자는 국민들을 배제하고 권력자만 가리키고 있다. 이는 근대 민주정의 원칙이 거꾸로 되어 있는 주권과 주권자의 개념이다.
슈미트와 같은 개념은 모든 지배세력이 보편의 논리로 내세우고 싶어 하는 소수 지배세력만의 특권적이고 배타적인 주권 개념이다. 이는 홉스에서 존 로크를 경과해 루소를 거쳐 정립된 근대체제의 민주적 기반인 '인민주권'을 부정하는 극단적 반동이다. 353
백낙청의 '촛불혁명' 담론
백낙청의 '촛불혁명'에 대한 사유와 논지 전개, 그 인식은 오래 되었다. 우리 사회에서 촛불혁명의 명제가 망각되는 상황에 이르렀을 때에도 그는 그에 대한 발언을 멈추지 않았다. 이 인식은 한반도 차원의 나라 만들기와 세계체제전환의 맥락까지 담고 있음을 일깨우며, 상당히 중요한 담론을 제기해왔다. 2021년 11 월에 출간된 그의 저서*는 바로 이러한 백낙청의 촛불혁명에 기반을 둔 역사인식이자 정치학이며 체제전환론이다.
(* 백낙청, '근대의 이중과제와 한반도식 나라만들기』, 창비, 2021). 354
마키아벨리의 성찰과 시민
혁명의 현실적 과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적폐에 대한 전광석화와도 같은 제압이 혁명의 성패를 가르기 때문이다. 촛불정부 초기, 청산이 아닌 협치에 방점을 두면서 마키아벨리가 경고했던 상황이 시작되었다. 미래를 만들어낼 수 있는 역량은 도리어 그 반대편으로 기울어진 추에 올려지고 말았다. 촛불정권의 책임을 맡은 이들이 허술한 태도로 기득권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그 기득권 누리기를 공유하고, 청산 대상이 법과 제도를 타고 도리어 주도권을 하나하나 채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개혁정치는 해체되어갔다. 364
혁명의 좌절을 막기 위해
혁명의 제도화
혁명은 그 혁명의 요구를 담을 새로운 제도의 창출을 본질로 한다. 따라서 혁명은 언제나 무엇보다도 새로운 헌법을 요구한다. 새로운 질서의 뼈대를 제도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제의 투쟁은 오늘의 법으로 완성된다. 그것의 최고 수준은 헌법이다. 379
여기서 그 주체의 핵심적 특징을 주목해야 한다. 우리의 현실로 돌아가 제2차 촛불혁명의 차원에서 보자면, 촛불시민들은 대중인 동시에 선도적 전위체다. 이는 대단히 놀라운 현상이자 실체다. 과거의 혁명사에서 흔히 보듯 직업 혁명가 조직으로서의 전위체가 대중을 끌어가는 방식이 아니라 대중의 자발적 봉기와 그 자체가 정치적 전위체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2년 이상을 거리에서 꾸준히 집결하고 그 힘으로 자신을 조직하는 대중은 현대 한국 시민항쟁사 초유의 일이자 세계 혁명사에서도 없던 사 건이다. 380
헌법전문의 의미
그렇다면 헌법의 기본 내용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선 헌법의 전문부터 완전히 새롭게 써야 한다. 이는 기존의 헌법 전문에 기록된 임시정부의 법통 계승 정도가 아니라 우리의 민족독립투쟁사의 보다 포괄적인 반제·반식민지 자주혁명의 역사를 중심으로 정리해야 한다. 또한 민족해방을 위한 항쟁의 역사가 국제연대적 차원의 투쟁을 담고 있었던 본질도 아울러 서술하고, 4·19혁명으로부터 촛불혁명에 이르기까지 여러 번에 걸친 시민 혁명의 전통과 이에 기초한 저항권을 명시해야 한다. 그리고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소멸시키고 특권계급과 그 토대를 해체하는 임무를 담는 체제전환의 영구혁명적 의미와 가치를 분명히 해야한다. 382
기존의 헌법이 국민의 주권에 대해서는 적어놓았지만 소환권으로 명시되는 권력기관에 대한 민주적 통제권, 외세의 지배나 개입을 용납하지 않는 자주의 분명한 지향, 입법·사법·행정에 대한 주권자의 통합된 통치, 남북의 교전체제를 극복하는 평화와 통일에 대한 의지와 실천의 기구 그리고 방도에 대한 중차대한 사안은 그 중심에 놓지 못했다. 분단국가의 기본 임무가 절실하게 부각되지 못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런 과제를 담는 역사적 사유가 담겨 있지 않게 되어버렸다. 헌법이나 개헌을 말하면, 대체로 권력기관의 기능과 그에 따른 책무를 조절하는 작업이나 몇 가지 사안을 명문화하는 것만이 본질인 듯 되어 있는 형편이다. 그런 까닭에 이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부분적 개헌을 넘는 전면적 검토와 재구성 수준에 이르는 '제헌의 사고'가 요구된다.
그런데 매우 중요한 사실이 있다. 우리나라는 현재 '개헌발의권' 또는 '개헌발안권'을 대통령과 국회만 가지고 국민들은 의결된 헌법개정안에 대한 국민투표의 권한만 행사할 수 있을 뿐이다. 주권자가 헌법 개정 과정에 선도적이고도 직접 참여하는 길이 원천봉쇄되어 있다. 이걸 모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진정한 입법주체인 국민에게서 개헌의 권리 자체가 박탈된 것이다. 이는 유신헌법의 잔재인데 놀랍게도 50년이 지난 지금까지 버티고 있다. 386
헌법 전문을 새로 쓰자
기존의 헌법 전문.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 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387
대안적 논의를 위해 하나의 실험적 발제를 해보고자 한다.
"우리 인민은 대한민국의 당당한 주권자이다. 누구도 우리의 주권을 빼앗을 수 없으며 그렇게 하려 들 경우 즉각 단호하게 투쟁할 것이다.
우리는 단군 고조선의 고대로부터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정신을 중심으로 자신만이 아니라 모든 인류의 유익과 모범이 되는 가치를 귀히 여기는 존재이다. 수도 아사달은 '아침을 맞이하는 들판'이라는 뜻으로 '역사의 새벽'에 대한 뜨겁고 드넓은 갈망을 담은 이름이다. 우리는 어두운 고난의 시기에도 바로 이렇게 언제나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내는 나라를 그 본령으로 삼았다.
우리는 또한 오랜 세월 인간의 존엄을 최우선으로 하여 인의예지(仁義禮智)의 도리를 존중하고 이를 실천하는 삶을 추구해왔으며, 전제적 봉건시대의 한계를 뛰어넘으려 했고, 우리를 침략하거나 지배하려 드는 외세를 단호하게 배격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더군다나 자주적 근대와 영구적인 사회변혁의 씨앗을 뿌린 실학이라는 세계적 사상과 동학농민혁명이라는 위대한 변혁의 역사적 뿌리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사상과 역사에서 나라와 민족이 위태로울 때 분연히 일어선 의병 투쟁사가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하여 일본 제국주의 지배에 항거한 전민족적 3·1독립투쟁과 혁명이 우리의 역사에서 획기적인 이정표를 세웠다. 이러한 투쟁에 담긴 민족적 요구에 따라 1919년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비롯 해외 각처에서 독립투쟁 진지가 힘있게 구축된 역사가 자랑스럽게 존재한다. 그로써 제국주의 지배와 식민지체제를 타파하는 민족해방 독립전쟁과 함께 끊임없는 사회혁명투쟁의 빛나는 역사를 국가적 위엄의 토대로 여기고 있다. 일찍이 세계 혁명사에 합류하여 인류의 진보를 향한 국제적 연대를 함께한 역사라는 것 역시 우리는 잊지 않는다.
이러한 투쟁을 통해 해방공간에서 조선인민공화국을 건설한 경이로운 노력과 성취가 있었으며, 그것이 이 땅을 점령한 외세에 의해 좌절된 과정에서 자주의 가치가 주권의 근본임을 더더욱 절실하게 깨우쳤다. 분단체제 형성을 막고자 했던 제주 4·3항쟁과 이에 대한 탄압의 비극적인 역사 또한 망각되어서는 안 된다. 이는 민족을 배반하고 일본 제국주의 세력의 앞잡이가 된 반민족 친일세력의 청산이 미군정과 친일세력의 결탁에 의해 가로막힌 결과였다. 다시 강조하건데 자주는 주권의 생명선이다. 이에 따라 특히 독도는 우리의 고유영토이며 합법적이고 실효적으로 지배하는 주권이 행사되는 지역임을 분명히 한다. 이를 침탈하려는 외세가 있을 시, 모든 가능한 수단을 동원해서 주권수호를 위해 즉시 대응할 뿐만이 아니라, 남과 북을 망라한 전민족적 독도 방어전쟁체제 또한 즉각 발동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이 나라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에 저항하고 이를 거침없이 타도한 시민혁명의 전통, 즉 4·19혁명, 부마민주 항쟁과 5·18광주민주화운동, 6·10항쟁, 촛불혁명을 앞서 기록한 자주의 기치와 더불어 헌법의 기본정신으로 삼는다. 이는 주권자 인민의 권리가 중심에 놓이는 민주주의와 민주정이 그 어떤 경우에도 절대적 원칙임을 선포하기 위함이다.
이에 따라 그 어떤 전제정치도 들어설 수 없도록 끊임없는 민주개혁에 진력한다. 무엇보다도 분단과 교전체제를 극복하는 평화적 통일에 최대한 힘을 쏟으며 그 어떤 외세의 개입도 배격하고 어떤 외국 군대의 주둔도 허용하지 않으며 자주의 원칙 아래 남과 북 사이의 민족적 교류와 단결을 공고히 한다. 이에 기초해 남과 북 각기의 국가적 정체성을 존중하고 연대하는 연합국가의 단계를 상당 기간 거치며 상호 동등한 권한을 누리고 책임을 지는 중앙의 연방정부가 국방과 외교를 맡는 연방국가로서 1국가 1민족 2체제 경로를 꾸준히 만들어간다.
해외동포 사회의 발전을 지원하는 동시에 이들과의 연대에도 국가적 역량을 조직화하며 인류적 우애와 결속을 기본으로, 이 나라에 와서 살고 있는 모든 이가 헌법에 기초한 인간적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한다. 재난과 고통에 처한 나라에 대해서는 인도주의적 지원과 협력을 적극적으로 해나간다.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고, 일체의 차별을 인정하지 않으며 그어떤 지배자, 권력자, 특권계급의 존재도 결코 용인하지 않 는다. 특권과 차별 내지 불평등을 구조화하는 계급은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 철폐되며 그 토대가 되는 일체의 사회경제적 조건도 함께 철폐된다. 이와 함께 노동하는 인민들의 권리와 삶, 안전, 생명을 보호하고 그에 따른 권리를 확장하는 법과 제도, 정책이 국가의 최우선이라는 것을 확고히 한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약자 자체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국가의 중대 목표 가되도록 한다. 노동할 수 없거나 그러기 어려운 처지에 놓인 이들의 삶은 국가 공동체의 전적인 책임임을 확인한다. 이와 함께 토지 의 공적 관리체계를 확대해 소수 특권계급의 토지 독점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사회적 불평등의 구조적 원인을 소멸해나간다. 민족반역의 죄를 저지른 자가 누린 부, 이를 계승하여 자신의 부로 삼으려는 후손들의 권리는 일체 인정하지 않고 그렇게 획득한 재산은 국고에 귀속시킨다. 모든 생명체의 존엄을 지켜내고 특히 인간과 자연을 약탈·유린하는 산업체제가 기후정의에 따른 인류적 목표에 맞춰 정의로운 전환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을 미래세대를 위한 국가적 목표의 중심에 놓는다.
국가의 기관은 어떤 경우라도 권력기관이 아니며 주권자 인민을 위한 책무를 법에 따른 권한으로 실행하는 기관이다. 이 책무를 지키지 않는 경우는 주권자의 권리와 존엄을 침해한 것으로 보고 소환과 탄핵의 절차를 즉각 밟도록 한다. 주권자 국민이 권력임을 천명하는 인민주권을 실현시킨다는 목표를 위해 요구되는 입법 사법·행정의 삼권은 상호 민주적 통합적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 해야한다. 이들 위해서 입법부는 당연히 전원선출직이며 사법·행정 의 최고 결정기구는 인민의 투표를 통한 선출직으로 구성하도록한다. 이 삼권은 그 어떤 경우에도 인민을 지배하는 권력기관으로서 존립할 수 없으며 오로지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복무기관이다.
이 헌법 전문은 우리의 해방투쟁과 혁명의 역사에 기초한 대한민국의 기본정신으로 주권자의 민주적 권리와 국가기관의 임무, 자주의 원칙 그리고 지향해야 할 가치를 밝힌 것이다. 이를 초등교육 부터 학습 내용으로 삼아 국가적 기틀을 든든하게 만들도록 한다. 그리하여 창조적이고 비판적인 지성을 갖추고 윤리의식 높은 인류애에 충만한 나라가 되도록 한다. 이로써 우리 인민은 우리 자신의 역사적 자부심과 존엄을 지키고 발전시켜나가는 행복한 존재가 되어갈 것을 확신한다.
헌법의 제정권은 오로지 주권자 인민에게 있다는 점에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대한민국의 주권자 우리 인민의 뜻과 직접적인 결의에 따라 전면적인 제헌의 결 정을 내려 새로운 헌법으로 제정한다." 392
촛불 체제를 향해
촛불과 주권혁명으로 가는 길
우리 선조들의 독립투쟁과 독립전쟁은 기한을 정하고 한 싸움이 결코 아니었다. 그야말로 '기약 없는 항쟁'이었다. 402
혁명의 과정에서 기존의 권력중추이자 특권의 요새가 되어버린 입법·사법·행정 삼권의 현장은 인민주권의 원칙에 따라 하나의 역사적 방향성을 가진 일체화가 이루어져가도록 해야 한 다. 이는 서구 부르주아의 근대적 민주정이 설정했던 상호견제와 균형을 넘어 '기성의 지배구조에 대한 민주적 통제의 통합'을 관철해내는 구도를 뜻한다. 달리 말해서 삼권분립에 따른 입법· 사법·행정 각기의 독자성이라는 기만은 타파되어야 하며 이 세 기능이 인민주권의 목표를 위해 강력하게 통합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이 삼권이 각기 인민을 지배하는 권력의 성채가 되지 않게 할 수 있다. 404
데모스크라티아를 위한 해방의 정치학
내일 우리는...
'인민'은 더 이상 추방 되어야 할 단어와 개념과 존재가 아니다. 보통의 국민은 모두 본질적으로 '인민'이다. 봉건의 질서를 타파한 국민국가의 주제이나 국가에 포섭되어야 자격이 생기는 '국민', 부르주아 근대혁명의 주체이지만 그 지항성이 그에 제한되고 민족 단위의 고민이 배제된 '시민', 억압받아온 현실에 저항한 역사를 지니는 동시에 특정한 계층에 국한될 수 있는 '민중', 이들 모두의 한계를 극복하고 역사적 투쟁 과정을 통해 이루어온 각기의 진보적 역사성을 통합적으로 포괄하는 동시에 무엇보다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최우선에 놓는 존재'라는 인류적 차원의 존엄한 집단성이 '인민'에 담겨 있다. 409
역사는 언제나 인민의 위상이 어떻게 되는지가 관건이다. 그런 관점에서 역사를 보아야 한다. 우리의 현실을 보면, 대자본의 이익은 철통방어이고 공적 영역은 무너진 채 강자의 지배가 관철되는 시장의 논리로 모든 것이 휩쓸려가면서 가난한 이들은 오갈 데 없어지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파시스트의 권력은 마을마다 있는 작은 도서관들마저도 모조리 멸절시키려 들고 있다. 자신들을 비판할 사회적 지성에 대한 대대적 공세다. 410
ㅇ ㅇ ㅇ
저자 북토크 영상
https://www.youtube.com/live/xxkbChC2rw8?si=LO5fLJH8IMywiik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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