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생자 행성
린 마굴리스가 들려주는 공생 진화의 비밀
린 마굴리스
5. 세포는 생명 탄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세포핵이 있든 없든 간에, 생명의 기본 단위는 세포다.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을 정도의 크기인 생물들은 핵이 있는 세포로 이루 어져 있으며,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진핵세포는 처음에 세균 세포들이 융합됨으로써 진화했다. 그렇다면 모든 지구 생명체의 모체이자 아주 작은 단위인 세균 세포는 어떻게 등장했을까? 그 시원 세포의 기원을 설명해 줄 만한 단서가 있을까? 최초의 세균 세포는 어디서 왔을까? 이 질문은 "생명이 어떻게 시작되 었을까?"라는 질문과 다를 바 없다. SET 이론에서 세균들의 개 조합. 융합, 합병 부분을 이해하려면, 먼저 이 다양한 세균들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아야 한다. 즉 더껑이에서 출현한 생명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최초의 세포들이 어떤 생태 환경에서 살았을지 추적하기 위해, 나는 몇 년에 한 번씩 학생들과 멕시코 바하칼리포르니아 노르테의 산퀸틴 만으로 탐사 여행을 떠난다. 우리는 가장자리를 따라 소금들이 말라붙어 반짝거리는 석호 지대 라구나피게 로아를 돌아다닌다. 우리는 아교질의 뻘을 헤집어 연한 색깔의 띠무늬를 이루면서 얇게 층층이 쌓인 퇴적물을 찾는다. 해안을 따라 다채롭게 펼쳐져 있는 이 '미생물 깔개(microbial mat)'는 나를 매료시킨다. 바닷물이 육지와 만나 넘실거리는 이곳의 경관은 살아 있다. 우리 연구에는 다행스럽게도, 이곳은 인간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대형 동물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다. 나는 향긋한 미생물들로 뒤덮인 뻘에 손을 넣고 그들이 내뿜은 기체를 들이마신다. 인간 세계와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도 죽음은 삶의 일부다. 하지만 명령이나 강요에 따르는 죽음은 없다. 이곳에서는 집단의 성장 잠재력이 실현되고 억제되기를 되풀이한다. 이 해안 군집은 30억 년 넘게 유지되어 왔다. 매일 수많은 생물들이 죽고 다시 보충되지만, 군집은 자신의 한계를 넘어설 정도로 자란 적이 없다. 이곳은 가장 푸른 초원보다도 더 원시적인 진화의 에덴 동산이다. 이 지구의 깔개에 동물이나 식물은 거의 없다. 원생생물과 곰팡이조차도 찾아보기 어렵다. 이곳에 살고 있는 것은 대부분 세균들이다. 이 미생물 깔개 위에 서 있 으면, 특권을 얻은 듯한 기분이 든다. 나는 바삐 움직이는 인간들로 가득한 도시를 버리고 탈출했다는 짜릿한 기쁨과, 생명의 기원을 마음껏 생각할 자유를 얻었다는 흥분에 잠긴다.
생명의 기원은 신비로움을 주는 개념이다. 사실이 아니라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깊은 신비감을 자극한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과학자들도 관찰 결과들을 종합하여 생명의 기원을 이야 기할 필요가 있다. 최초의 생명, 최초의 세균 세포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그 시원 세균은 자신을 낳은 환경과 어떻게 달랐을까? 그런 질문은 과학 탐구의 영역에 속하며, 그 답은 SET의 핵심을 이룬다. 서로 다른 세균들이 융합하여 우리 세포를 만든과정을 이해하려면 먼저 세균들이 어떻게 기원했는지, 그 다음에 어떻게 변했는지를 알아야 한다. '생명의 기원' 문제에 대한 해답은 각국 학자들의 연구 결과들을 짜맞추어 만든다. 과학이 제시하는 지구 최초의 생명에 관한 이야기는 세계의 기원 신화 들 중에서 가장 지역색이 덜하다.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접할 수 있다.
최초의 생명체인 최소한의 요건을 갖춘 세균이 어떤 특성을 지녔을지 추론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모든 생물들을 비교하여 공통점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것이다. 그렇게 공통되는 것들과 모든 생명체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들은 최초의 세균 조상 때부터 대물림되었다고 추론할 수 있다. 생명의 사슬은 형성된 이후로 한 번도 끊긴 적이 없으니까.
기원을 추론하는 두 번째 방법은 고생물학이다. 고생물학 은 미화석, 즉 초기 생명의 잔해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미화석들 중에는 연대를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가령 주위 화산암의 연대를 측정하면 미화석의 연대를 추정할 수 있다.
생명의 기원을 밝히는 세 번째 방법은 세포를 다시 만드는 것이다. 이를테면 최소한의 요건을 갖춘 조상 형태를 실험실에서 화학적으로 재현하는 것이다. 이 방법으로 단순한 화합물에서 몇 가지 생명 구성 성분들을 합성했지만, 실험실에서 세균 세포를 재창조했다고 할 만한 성과가 나온 적은 없다. 물론 설령 그런 실험에 성공했다고 해도, 우리가 엉성하게 흉내 낸 방법이 정말로 세포가 기원했을 때 사용된 방법이라고 결론 내릴 수는 없다.
이런 방법들을 조합한 결과, 나는 가장 설득력 있고 살펴볼 만한 지구 생명의 기원 시나리오를 제시한 과학자들의 견해에 동의하게 되었다. 그 시나리오에 따르면 세포 이전에는 세포와 흡사한 계들이 있었다. 오늘날에는 어떤 DNA 조각도, 어떤 유전자도 자신이 속한 세포를 떠나서는 복제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또 그 어떤 바이러스도 살아 있는 세포 바깥에서는 증식하지 못한다. 지금의 최소 생명 단위이자, 스스로 존속하고 번식 하는 세균 세포가 바로 우리의 출발점이었다.
생명의 기원 문제를 "풀었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화학 물질에서 세포를 만들 수는 없어도, 세포 처럼 막으로 둘러싸인 구조물은 물에 기름을 넣고 휘저을 때 생기는 기름방울처럼 자연적으로 생성된다. 지구에 아직 생명이 없던 초창기에, 그런 방울들은 안팎을 구분하는 경계를 설정했다. 버지니아 주 페어팩스에 있는 조지메이슨 대학교 교수이자 크로스노 의식 진화 연구소 소장인 헤럴드 모로위츠(Harold J. Morowitz)는 재미있게 쓴 자신의 책'에서, 적절한 에너지원이 들어 있는 기름막 속에서 전생명체(prelife)가 점점 화학적으로 복 잡한 양상을 띠어 갔다고 주장한다. 이 지질 주머니들은 점점 자체 유지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그들은 구성 성분들을 교체해 나갔고, 그럼으로써 조금씩 더 안정적으로 구조를 유지할 수 있 었다. 구조를 유지하는 데에는 에너지가 필요했다. 아마 처음에는 태양 에너지가 방울 속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에너지 흐름을 통제할 수 있게 되면서 세포 생명체의 전신인 자기성(selfhood)이 형성되었다. 이런 방울들 중 가장 안정한 것이 가장 오래 존속 했을 것이고, 무작위적이지만 환경과 끊임없이 물질들을 교환함으로써 형태를 유지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대사 활동에 상당한 진화가 이루어졌다. 나는 그런 진화가 자체 유지되는 기름막 안에서 일어났다고 믿는다. 그런 진화 끝에 인산과 인산이 결합된 뉴클레오사이드를 지닌 방울들은 다소 정확하게 스스로를 복제할 수 있는 능력을 획득했다.
최초의 세균이 어떻게 출현했는지, 우리는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어쨌든 현재 발견된 가장 오래된 화석들은 세균의 잔해로 해석된다. 35억 년 이전의 것도 있다. 남아프리카에서 나온 것이 가장 보존 상태가 좋다. 스와질란드 마이크로스피어라고 불리는 이 화석들은 대기와 대양을 갖춘 단단한 암석 덩어리인 지구가 생긴 지 겨우 11억 년이 지났을 때 이미 생명이 번성하고 증식하고 성장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이제 이 행성에서 생명의 역사가 대단히 오래되었다는 사실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우주가 '특이점'의 대폭발로 탄생한 것이 대체로 120억~150억 년 전으로 추정되므로, 지구 생명이 30억 년을 훨씬 넘는 세월을 살아 왔다는 말은 우주 역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기간만큼 존재했다는 것을 뜻한다. 또 최초의 생명체가 식물도 동물도 아니었다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도 없다.
모든 생명체의 몸을 이루고 있는 물질들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는 우주의 탄생 때부터 존재해 온 것이나 다름없다. 포유류를 비롯한 모든 생명체의 몸을 이루는 물질들은 거슬러 올라가면 초신성 폭발 때 생긴 탄소, 질소, 산소 같은 원소들에서 유래 했으니까.
언뜻 들으면 현재 도시, 정글, 바다, 숲, 초원 등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이 고대 세균의 후손이라는 말이 믿어지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하나 또는 고작 몇 마리의 세균이 어떻게 그 많은 것들을 낳을 수 있었단 말일까? 하지만 당신도 처음에는 하나의 세포에 불과했다는 점을 생각해 보라. 당신은 처음에는 접합자, 즉 수정란이었다. 수정란은 분열하여 배아가 되어 어머니의 자궁에 착상했다. 이윽고 점점 자라서 어머니의 팔에 안겨 울어대는 아기가 되었다. 수정란 하나가 열 달 뒤에 비록 작고 힘없고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지만 인간이 될 수 있다면, 세균 하나가 30억 년이라는 세월을 거치면서 현재의 온갖 생명체들을 만들어 냈다는 것도 그리 상상하기 어려운 일은 아니다.
지름이 약 1000만 분의 1미터인 가장 영리한 세포, 가장 작은 세균은 끊임없이 대사 활동을 한다. 이 말은 그저 그것이 끊임없이 수백 가지 화학 변화를 일으킨다는 뜻이다. 세균은 진정으로 살아 있다. 가장 작고 가장 단순한 세균도 우리와 아주 흡사하다는 것이 최근 연구를 통해 드러났다. 그 세균들도 단백질, 지방, 비타민, 핵산, 당, 탄수화물 같은 우리와 똑같은 구성 요소들을 이용하여 끊임없이 대사 활동을 한다. 따라서 가장 단순한 세균조차도 사실은 극도로 복잡하다. 게다가 체내 활동도 더 큰 생물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가장 단순한 세포 중 하나인 미코플라스마 게니티쿨룸(Myycoplasma geniticulum)이라는 세균은 DNA 서열 전체가 밝혀져 있다. 우리가 그 세균의 유전자들을 모두 상세히 알고 있다는 뜻이다. 유전자 서열과 대사 과정을 자세히 연구하면 할수록, 우리는 생명이 기원한 이래로 모든 생물은 동포인 다른 생물들과 언제나 비슷했다는 것을 더욱 실감 하게 된다. 다른 모든 세균들과 마찬가지로 미코플라스마도 먹이를 섭취하기 위해 끊임없이 에너지를 사용해야 한다. 각종 염들을 균형 상태로 유지하고, DNA와 RNA와 단백질을 만들고, 이 화학 물질을 저 화학 물질로 전환시키는 일을 계속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그들은 주변 환경과의 차별성을 유지하기 위해 애쓴다. 현재 살고 있는 가장 작은 세균들과 마찬가지로, 초기 지구에 살던 가장 단순한 세균 세포도 이미 통합성(integrity)을 갖추고 있었다. DNA 구조의 공동 발견자인 프랜시스 크릭(Francis Crick)이 경이로운 주장을 할 수밖에 없었을 정도로, 가장 작은 최초의 세균도 이미 복잡성을 갖추고 있었다. 크릭은 많은 영향을 끼친 저서 『생명 그 자체 (Life Itself)』(우리나라에서는 "생명의 출현이라는 제목으로 1992년에 번역 출간되었다. 옮긴이)에서, 생명의 엄청난 복잡성을 생각할 때 생명이 우주에서 지구로 온 것이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구라는 행성에 생명의 씨를 뿌리겠다고 결심한 어느 외계 문명이 세균들을 이곳으로 보냈다고 주장했다. 크릭은 정원사가 자신의 마당에 씨를 뿌리듯이, 수십억 년 전에 지구에 번식체가 뿌려졌다고 아주 진지한 어조로 주장 한다. 생명이 지구 밖 우주에서 왔다는 이 지향 범종설(directed panspermia, pangenesis)이라는 개념은 원래 수백 년 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주장이 지구의 진화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
나는 생명의 기원 문제를 우주로 떠넘기는 것에 지적으로 동의할 수 없다. 만약 그렇다면 지구가 아닌 다른 곳에서는 생명이 더 쉽게 출현했다는 말인데, 왜 그렇게 생각해야 한단 말인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든 간에, 세포 생명체는 똑같은 문제들을 극복해야 출현할 수 있다. 자연 발생이라는 개념은 종의 기원이 아니라, 속임수의 기원을 보여 준다.
[ ] 유럽인들은 아주 오랫동안 생물이 더껑이와 오물 더미에서 자연적으로 생긴다고 믿었다. 썩은 고기에서는 구더기가 생기고. 넝마에서는 생쥐가 자연적으로 생긴다고 믿었다. 하지만 자세히 관찰하고 실험한 결과 중간 단계들이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우리는 이제 음식물이 화학적으로 아무리 복잡해도 구더기가 거기에서 생기는 것이 아님을 안다. 구더기는 파리가 낳은 수정란에서 나온다. 하지만 루이 파스퇴르보다 앞서 살았던 학자들은 악취를 풍기는 고기에서 꿈틀거리는 구더기들이 부패한 물질 자체에서 생명이 생겨난다는 것을 보여 주는 증거라고 여겼다. 1860년대에 파스퇴르는 팔팔 끓인 고기즙을 공기에 노출시키는 실험을 했다. 그는 목이 아주 길고 아래로 굽어 있는 플라스크와 보통 플라스크에 각각 고기 즙을 넣었다. 목이 굽은 플라스크에서는 공기는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지만, 세균 같은 것들은 들어갈 수 없었다. 며칠 후 보통 플라스크에 담아 공기에 노출시킨 고기 즙은 세균과 곰팡이가 자라면서 썩었다. 그러 나 '대조구', 즉 목이 아래로 굽은 플라스크에 든 고기 즙은 전혀 썩지 않았다. 그 오염되지 않은 고기 좁은 파리의 파스퇴르 연구소에 지금도 전시되어 있다. 자연 발생을 믿은 마지막 세대에 속해 있던 파스퇴르는 자연 발생이 틀렸다는 사실을 극적으로 증명했다. 강아지는 암캐와 수캐에게서 나오고, 아기는 남성과 여성에게서 나온다. 파리는 구더기에서 나온다. 생쥐는 짝짓 기를 한 어미 생쥐에게서 나온다. 마찬가지로 미생물은 이미 존재하는 미생물에서 나온다. 적어도 무성 생식을 하는 어느 한 미생물 개체에서 말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는 역설적인 측면이 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파스퇴르는 현재 우리가 해석하듯이, 자신의 발견을 모든 생물이 이미 존재하는 같은 종류의 생물에서 생겨나는 것이 틀림없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파스퇴르에게 이것은 진화가 일어나지 않으며, 오직 신이 수많은 종류의 생물들을 만들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현대 과학자들은 같은 발견을 놓고 거꾸로 주장한다. 모든 생물은 전능한 신이 만든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최초의 생명에서 유래했으며, 최초의 생명은 태양계의 무생물에서 기원했다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역설적인 측면이다.
파스퇴르는 세균이 우리처럼 살아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세균이 질병이나 음식 오염과 상관 관계가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파스퇴르의 탁월한 실험들은 지금까지도 대단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의 생각은 주류 견해로 자리 잡았다. 감염성이 있는 극악무도한 세균들은 없애야 할 '병균'이라는 생각 말이다. 현대 의학이 자랑하는 놀라운 성공 사례들도 미생물이 적이라는 생각을 강화하는 데 한몫을 한다. 청결, 수술 도구의 살 균, 항생제는 모두 미생물 공격자들과 맞서 싸우기 위한 전쟁 무기다.
그러니 미생물이 우리의 동료이자 조상이라는 더 균형 잡힌 견해는 거의 숨을 죽이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 사회는 이런 질병 '매개체', 즉 병균'이 모든 생명을 낳았다는 확정된 사실을 무시한다. 우리 조상들은 바로 그 병균들, 즉 세균이었다.
그렇다면 최초의 세균은 어디에서 왔을까?
파스퇴르를 비롯한 과학자들이 의기양양하게 보여 주었듯이, 자연 발생은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파스퇴르의 관찰 결과를 잘못 해석한 창조론자들과 기타 교조주의자들은 생물은 결코 무생물에서 나올 수 없다고 주장한다. 몇몇 정보 이론가들은 분자들의 무작위 상호 작용을 통해 무생물에서 저절로 생명이 생겨날 확률이 굳이 '수학적 증명'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낮으므로, 생명은 신이 창조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분자들을 무작위로 섞었을 때 생명이 나온다고 본 그들의 가정 자체에 문제가 있다.
'생명의 기원 문제'를 직접 규명하려는 실험은 1953년에 시작되었다. 당시 22세였던 스탠리 밀러 (Stanley Miller)는 노벨상 수상자인 시카고 대학교 교수 해럴드 유리 (Harold Urey)의 대학원생이었다. 밀러는 유리 용기에 멸균한 물을 넣고 몇 가지 기체들을 주입했다. 그는 초기 지구의 화학 상태를 축소 모사한 이용 기에 일주일 동안 주기적으로 전기 방전을 일으켰다. 번개를 흉내 낸 것이다. 실험을 끝낸 뒤 종이 크로마토그래피라는 기술로 물에 든 물질들을 분석한 밀러는 여러 유기 화합물들이 자연적으로 형성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알라닌과 글리신도 들어 있었 다. 둘 다 모든 단백질과 살아 있는 모든 세포에 들어 있는 아미노산이었다. 밀러와 유리는 생명의 화학 성분들의 그러한 '자연 발생'이 화학적 상호 작용의 자연적인 결과라고 결론지었다.
우리는 스탠리 밀러가 찾아낸 것과 같은 유기 화합물들이 우주나 초기 지구에서 더 단순한 전구체들로부터 자연적으로 형성되었다고 본다. 물론 밀러와 유리는 초기 지표면 환경이 어떤 화학 특성을 지니고 있었을지 추측만 할 수 있었다. 밀러는 유리 용기에 수소, 수증기, 암모니아, 메탄을 넣었는데, 그런 기체들을 넣은 것은 타당해 보인다. 이 기체들은 모두 수소가 풍부하다. 태양의 주요 구성 원소인 수소는 우주 물질의 90퍼센트 이상을 차지한다. 밀러는 초기 태양계의 내행성들에 수소가 풍 부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 실험으로 '원시 수프'라는 개념이 나왔다. 밀러의 플라스크 벽에 달라붙어 있거나 떠 있던 복잡한 구조물 '제미시(gemish)'에서 생명이 출현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생명이 출현하기 오래전부터 지구에 햇빛을 비롯한 에너 지원을 통해 합성된 유기 화합물들이 가득했다고 본다. 아마 밀러의 실험에서 일어난 일이 행성 전체에서 일어났을 것이다. 22세의 젊은이 스탠리가 며칠 만에 실험실에서 아미노산들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면, 지구라는 실험실에서 1000년, 100만 년 동안 실험을 하면 생명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더 최근의 실험들은 초기 지구의 환경을 모사한 실험 장치 에서 생명의 전구체들이 자연적으로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하지만 분자들은 무작위로 결합하는 것이 아니다. 탄소, 수소, 질소, 인, 산소, 황 같은 생명의 원소들은 화학 법칙에 따라 상호 작용한다. 열역학이라는 열과 에너지의 과학은 분자들이 법칙에 따라 행동한다고 말한다. 화학 반응들 중에는 다른 것들보다 훨씬 더 잘 일어나는 것들이 있다. 모든 화학적 조합이 동등하다는 개념은 생명의 생성 불가능성을 계산하는 데에는 편리할지 모르지만, 틀렸다. 게다가 생명이 세포와 비슷한 지질 방울에서 시작되어 진화했다고 가정하면, 놀라운 자체 유지 능력을 지닌 계가 출현할 확률은 더 높아진다. 또 일단 출현 하고 나면 복잡성을 향한 추세가 계속 이어진다.
생명의 기원을 밝히기 위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연구 중 나를 가장 흥분시키는 것은 친구인 해럴드 모로위츠의 것이다. 모로위츠는 생물학에 공간, 시간, 인과율 외에 '기억'을 추가한다. 그는 생물학이 물리학과 역사학 사이에 놓인 다리라고 주장한다. 그린란드의 이수아 지층에서 나온 암석을 비롯하여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암석들은 거의 40억 년 전의 것이다. 모든 생물은 연대를 직접 측정할 수 없는 화학적 기억을 가진다. 현대 세포들의 대사 활동 기억은 가장 오래된 암석보다 더 오래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모로위츠의 말에 따르면, 지방 화합물에서 콜레스테롤 같은 스테로이드로 이어지는 효소 반응 단계들을 비롯 하여 일부 대사 경로들은 오직 동물에서만 나타난다. 반면에 '일차 대사'의 구성 요소들처럼, 모든 생물에게 공통적인 대사 경로들도 있다. 생물의 모든 대사에는 탄소 대사 경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므로, 자체 유지라는 세포 현상의 기반이 되고 최초의 화학적 상호 작용들의 기반이 되는 탄소, 질소, 황, 인의 화학적 상호 작용들은 모든 세포에 계속 보존되어 있어야 한다. 환경 제약 요인이나 치명적인 DNA 돌연변이 같은 간섭 요인이 보편적으로 필요한 그런 대사 활동을 방해하면 어떤 세포든 죽고 만다.
자연에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복잡해지는 화학계들이 있다. 그런 계들은 자기 자신을 더 많이 만들 수 있지만, 그 렇다고 해서 살아 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런 계를 자가 촉매적 계라고 한다. 자가 촉매적 계는 최종 산물이 반응 원료가 되는 식으로 반응들이 고리 형태로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런 반응 들 중에는 '화학 시계'라고 부르는 것들이 있다. 금방 안정 상태에 도달하지 않고, 반응이 계속 진행되고 되풀이되기 때문이다. 벨로소프-자보틴스키 계는 자체 유지 반응들이 연쇄 고리를 이룬 것이다. 세륨, 철, 망간 원자들이 들어 있는 황산 용액에서 브롬산염은 말론산을 산화시킨다. 이 화학 물질들은 반응을 계속 되풀이하면서 용액에 동심원과 나선 무늬를 형성한다. 최종 적으로 안정한 패턴에 도달하기까지 몇 시간이 걸릴 때도 있다. 벨기에의 노벨상 수상자 일리야 프리고진(Ilya Prigogine)은 이런 반응들을 열역학적으로 분석하고, 그것들에 흩어지기 구조 (dissipative structure)라는 이름을 붙였다. 흩어지기 구조는 유용한 에너지를 동화하고 쓸모없는 에너지를 열의 형태로 흩어 버림으로써 자체 기능을 유지하는 계를 말한다. 흩어지기 구조의 반응들은 생명체, 그리고 생명체로 진화한 화학계의 반응들과 어떤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흩어지기 구조든 아니면 다른 구조든 모든 화학계는 오직 잠깐 동안만 작동하여 더 질서 있는 물질을 만든다. 그런 다음 해체된다.
열역학적 분석과 과학적 경험을 토대로, 우리는 영구 기관이 존재할 수 없다고 추론한다. 에너지 자체는 사라지지 않는다 해도, 그것은 되돌릴 수 없는 형태로 변한다. 흩어진 열은 회수할 수 없다. 질 좋은 에너지, 즉 일을 할 수 있는 에너지는 시간이 흐르면서 사라지는 경향을 보인다. 눈사람은 한 번 녹으면 다시 복원되지 않는다. 컵과 유리는 깨지는 일이 다시 붙는 일 보다 훨씬 더 자주 일어난다. 방을 말끔하게 정돈하는 것보다 어지르는 쪽이 훨씬 더 쉽다. 열역학에서는 어질러지는 것이 규칙이다. 에너지를 잃고 물건들이 부서져서 원상태로 돌아오지않는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 즉 자연법칙이다. 생명은 복잡한 질서를 유지하고 있지만, 만물이 무질서를 향해 나아간다는 열역학 법칙을 피해갈 수는 없다. 생명은 늘 질 좋은 에너지 원을 필요로 한다. 햇빛은 화학 에너지가 벨로소프-자보틴스키 반응을 관통하는 것과 거의 똑같은 방식으로 생명을 관통하면서 주기적인 활동에 필요한 힘을 불어넣는다. 그러나 세포들은 자라서 번식하여 자신을 닮은 세포들을 더 많이 만들므로, 일단 생물이 진화하면 생명의 화학은 결코 중단되지 않는다. 에너지와 양분이 계속 공급되는 한, 주기성을 지닌 생물은 스스로를 무한정 만들 것이다. 화학계에는 '자기'가 없다. 즉 자기 자신을 더 많이 만들 수 없다. 반면에 생명은 언제나 일련의 자기 자신을, 즉 생물이나 세포를 인식해 왔다. 생명은 계속 존재하려면 에너지를 소비해야 하지만, 과거의 생명과 단절되지 않고 연결된 상태에서 그렇게 한다. 생명은 기원했을 때부터 불연속성 없이 과거와 화학적으로 연결되어 왔다.
모로위츠는 20세기가 시작된 이래로 수백 명의 과학자들이 밝혀낸 생물의 대사 관련 자료들이 인류의 가장 큰 지적 성과이면서도 가장 낮게 평가된 부분이라고 지적한다. 복잡하게 얽힌 세포의 화학 반응들, 대사의 중요한 부분을 해독한 공로로 몇몇 사람에게 노벨상이 주어지기는 했다. 그러나 내가 아는 한, 그 상세한 대량의 대사 자료를 일관성 있게 하나로 모아, 생명의 고대사를 들여다보는 렌즈로 삼으려 애쓰는 사람은 모로위츠밖에 없다.
생명은 본질적으로 기억 저장 시스템이다. 그 점에 비추어 보면 생명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 제시된 시나리오들 중에는 터무니없어 보이는 것도 있다. 지금까지 최초의 화학계를 만든 열쇠라고 제시된 것들로는 결정, 유리, 코아세르베이트, 점토, 황철광 등이 있다. 암석 틈이나 점토 입자가 생명이 기원한 곳 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거의 모든 생물의 세포에는 액체가 든 막으로 둘러싸인 주머니들이 들어 있다. 비슷한 공간인 리포솜이라는 화학적 주머니도 자연적으로 생긴다. 리포솜 같은 액포는 이른바 생명의 기원 실험에서 저절로 형성된다. 내가 볼 때는 황철광, 점토, 유리보다는 이런 방울이 생명을 탄생시킨 자연적 구조물일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 여기서 생명의 연속성, 생명의 기억 원리를 떠올려 보자. 나는 DNA나 RNA가 자유롭게 떠다니는 원시 수프는 결코 존재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핵산(DNA, RNA)은 자연적으로 형성되기보다는 파괴되기가 훨씬 더 쉽다. 막 구조는 생명의 필수 조건이다. 오늘날 막으로 둘러싸이고 정체성과 통합성을 지닌 존재는 세포다. 생명은 세포성을 온전히 구비한 상태에서 생겨났다. 모로위츠가 말한 것 처럼, 현재의 세포들은 "사실상 화석"이다.
현재 모든 세포의 유전자는 DNA로 이루어져 있다. DNA와 아주 비슷한 물질인 RNA는 모든 세포에서 단백질을 합성할 때 쓰인다. 단백질의 구조는 주로 아미노산 서열에 따라 정해지는 데, 글자들의 서열이 단어에 의미를 부여하듯이 아미노산 서열 은 단백질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결정한다. 단백질들은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이며, 각자 기능도 다르다. 어떤 단백질들은 나트륨, 수소, 인산, 칼륨 같은 이온을 운반한다. 검은 눈, 주근깨, 시아노박테리아, 조류의 색소체 같은 색소에 붙어서 에너지를 흡수하는 단백질들도 있다. 근육은 주로 단백질로 되어 있다. 피, 피부, 혀는 단백질이 가득 들어 있는 세포들의 복합체다.
세포는 두 부분으로 나뉘어 일을 한다. 첫째, 세포는 유전자를 복제한다. 이 유전자 생성 단계를 DNA 합성이라고 한다. DNA가 복제된 뒤, 유전 정보 중 한쪽은 그대로 보존된다. 다른 쪽은 번역된다. 먼저 유전체 중에서 선택된 부분의 DNA 서열 정보가 RNA로 옮겨진다. 세포에는 리보솜이라는 작은 '공장 들'이 있다. 그곳에서 RNA는 단백질 사슬을 만들라고 지시한다. 세포에는 3,000~1만 종의 단백질들이 있으며, 단백질들은 생물의 몸 대부분을 형성한다. 성장은 궁극적으로 단백질 합성(그리고 물론 물의 흡수)을 의미한다. 액체로 채워진 핵막 속의 DNA, RNA, 단백질은 함께 세포라는 자체 유지 구조를 만든다. RNA 분자는 DNA 분자보다 훨씬 더 융통성이 있다. 적절한 화학적 환경이 갖추어지면, RNA는 단백질의 도움 없이도 자가 촉매 방식으로 스스로를 증식시킬 수 있다. 반면에 DNA는 RNA와 효소가 모두 있어야만 복제 과정을 완결지을 수 있다. DNA만 있으면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RNA는 화학 반응을 촉진하는 능력과 스스로를 복제할 수 있는 능력을 모두 갖추고 있다는 점 때문에, 생명의 역사에서 DNA보다 먼저 나타난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는 RNA를 전생명에 근접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로 삼을 수 있다. 살아 있는 세포보다 작은 것 중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한 채 자체 증식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생명은 시작될 때 부터 세포, 즉 유전 분자들(RNA 같은)과 그것들을 환경과 격리시키는 기름막의 상호 작용체였다.
물리학자 프리먼 다이슨(Freeman Dyson)은 최초의 생명이 상대적으로 형태가 일정하지 않은 단백질 생물'과 초분자인 RNA가 결합함으로써, 즉 분자 공생이 이루어짐으로써 생겨났다고 주장한다.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다이슨은 RNA가 DNA처럼 스스로를 복제하고 한편으로 DNA와 달리 아미노산들을 단백질 서열로 만드는 초분자라는 사실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비록 나는 다이슨이 공생이라는 단어를 잘못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거대 분자 서열들이 독자적으로 발달한 뒤 강하게 상호 작용을 했다는 그의 이야기는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다.
다이슨이 말하는 RNA 분자의 독특한 재능들은 실험을 통해 입증되었다. 독일 괴팅겐 연구소의 물리학자로서 1967년 말 '화학 반응론'으로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만프레트 아이겐 (Manfred Eigen)은 RNA 분자들이 시험관에서 스스로 복제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그는 컬럼비아 대학교의 돈 밀스(Don Mills), 일리노이 대학교의 솔 스피겔만(Sol Spiegelman)을 비롯한 동료들과 함께 시험관에 든 RNA가 돌연변이를 일으켜서 원래의 '부모' RNA보다 복제 속도가 더 빨라졌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시험관 RNA 분자 자체는 용액에 든 바이러스, 단백질, DNA처럼 살아 있지 않다. 하지만 적절한 자원을 제공하면 그 분자계는 시험관에서 증식하고 돌연변이를 일으킬 수 있다."
1980년대 초, 당시 둘 다 아주 젊은 과학자였던 콜로라도 대학교의 토머스 체크(Thomas Cech)와 예일 대학교의 시드니 올 트먼(Sidney Altman)은 중요한 발견을 했다. 그들은 특정한 RNA 분자들이 스스로 복제할 뿐만 아니라, 단백질처럼 행동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분자들은 서로 달라붙는다. 그럼으로써 분자 형태가 바뀐다. 체크 연구진은 RNA가 유전 물질을 재배열하고 재조직할 수 있는 단백질처럼 행동한다는 것을 의심의 여지없이, 즉 단백질에 오염되지 않은 상태에서 증명했다. 이런 종류의 RNA를 '리보자임'이라고 한다. 화학 용어로 리보뉴클레오티드라고 하는 RNA 조각들을 넣어 주면, 리보자임은 시험관에서 저절로 진화한다. 리포솜에 들어 있든 그렇지 않든 간에 RNA 혼합물은 세포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해 두자. 병에 든 RNA나 DNA 분자는 결코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조작하지 않은 채 놔 두면, 시험관 RNA도 DNA도, 심지어 바이러스도 살아 있지 않다. 그것들은 진취적인 세균, 원생생물, 곰팡이의 먹이가 된다. 하지만 RNA 분자는 시험관에서 진화한다. 그것은 생화학적 진화가 생명보다 먼저 일어났을지 모른다는 것을 시사한다. 샌디 에이고에 있는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제럴드 조이스(Gerald Joyce) 와 잭 쇼스틱(Jack Szostak)은 리보자임을 처리하여 RNA 복제 속도를 증가시켰다. 노벨상 수상자인 하버드 대학교의 윌리 길버 트(Wally Gilbert)는 'RNA 세계"라는 용어를 만들어 냈다. 길버트 는 여러 가지 뛰어난 착상을 내놓았는데, RNA의 능력에 주목한 그는 복제하는 리보자임으로 작용하는 RNA가 최초의 세포 형성에서 핵심 역할을 했다는 주장도 내놓았다. 나는 RNA 대사 촉진 반응들과 복제 분자가 DNA에 기반을 둔 분자들보다 앞서 나타났다는 데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모로위츠가 강조하고 있듯이, RNA 형태의 대사든 DNA 형태의 대사든 둘 다 세포 안에 있어야 살아 있는 것이다.
자체 유지를 하고 자기 복제를 하는 세포의 바깥에는 어떤 생명체도 존재하지 않는다. 지구에서 가장 단순한 최소한의 요건만 구비한 생명체도 사실은 대단히 복잡한 양상을 띤다. 세포 벽이 없이 막으로 둘러싸인 작은 공처럼 생긴 세균 세포는 중추적인 분자 상호 작용들, 15종류가 넘는 DNA와 RNA, 유형별로 묶으면 거의 500종류에 달하는 5,000개에 가까운 단백질을 필요로 한다. RNA 자체, DNA 자체, 홀로 떨어져 있는 바이러스는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비록 원칙적으로 그렇다는 말이지만, 살아 있는 세포들은 모두 유전자나 바이러스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세포는 구성 요소들을 교체한다. 환경으로부터 계속 양분과 에너지를 얻어 스스로를 유지한다. 나는 모로위츠의 말에 동의한다. 즉 최초의 생명체가 지금 살아 있는 것들처럼, 막으로 둘러싸인 자체 유지되는 세포였다는 것 말이다.
모로위츠는 연속성의 원리를 이용하여, 무기물로부터 스스로 먹이를 만들고 에너지를 생성하는 세균, 즉 독립 영양 생물이 막에 둘러싸인 최초의 세포라고 주장한다. 광독립 영양 생물은 먹을 필요가 없다. 햇빛을 에너지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화학 독립 영양 생물은 먹을 필요가 없다. 빛은 아니지만 수소가 풍부한 화학 물질을 이용하여 에너지를 얻기 때문이다. 광독립 영양 생물과 화학 독립 영양 생물은 대기의 이산화탄소(CO₂)에서 탄소를 얻는다. 둘 다 유기 화합물을 먹지 않는다. 즉 먹이를 먹지 않는다. 식물, 시아노박테리아, 암모니아나 황이나 메탄을 산화시키는 세균들은 모두 독립 영양 생물이다. 독립 영양 생물의 반대말은 종속 영양 생물로, 초식 동물, 조류나 세균을 먹는 동물, 육식 동물, 동족을 먹는 동물 등 먹이를 먹는 모든 동물을 가리킨다. 먹이를 먹는다.'는 말은 이미 있는 유기물을 먹는다는 말과 같다. 모든 종속 영양 생물은 독립 영양 생물들이 만든 유기물을 먹는다. 독립 영양 생물들은 먹이로 공기를 '먹는다. 그들은 햇빛을 '먹거나' 수소 기체(H₂), 메탄(CH), 황화수소 (HS), 암모니아(NH,) 같은 수소가 많이 든 화합물의 독한 힘을 이용하여 증식한다. 독립 영양 생물의 에너지는 불을 일으키는 에너지와 같다. 즉 수소가 풍부한 화합물이 산소와 반응하면서 에너지가 생성된다. 모로위츠는 지구 본래의 무생물 지구화학에 더 가까운 독립 영양 생물이, 나머지 우리 모두를 낳은 원형 이라고 본다. 그는 어느 독립 영양 생물이 생명 본래의 열역학적 주기와 가까운지 추론했는데, 광독립 영양 방식보다 화학 독 립 영양 방식이 더 앞선다고 추정한다.
세미나에 참석할 때마다 모로위츠는 그 유리 양파의 화학적 껍질들을 하나씩 벗긴다. 얼마 전에도 만나서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나와 학생들은 그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우리가 현재부터 활기 없는 화학 활동만이 벌어지는 먼 과거에 이르기까지 생명의 역사를 추적하는 모로위츠 같은 연구자들을 돕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생명 이전의 화학이 세포에 기반을 둔 생물로 전환되는 과정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세포소기관들이 어떻게 진화했는지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포 소기관들은 전생명에서 곧장 출현하여 복잡하게 발달한 것일까, 아니면 세균이었다가 고갱이만 남은 것일까? 나는 이 문제를 곰곰이 생각하고 많은 논문들을 읽지만, 실험실과 교실에서 내가 학생들이나 동료들과 하는 일은 좀 다르다. 우리는 생명을 직접 다룬다. 미생물들과 살아 있는 세포들과 그 구성 성분들을 말이다. 세균, 원생생물, 식물, 곰팡이가 우리의 연구 대상이다. 학생들이나 동료와 함께 나는 미생물의 조상들에서부터 생명의 역사를 추적한다. 우리는 생장과 번식을 관찰한다. 우리는 원생생물의 성 행위와 성숙 과정을 엿본다. 우리는 세균과 원생생물이 환경의 '손상'에 반응하는 양상을 관찰한다. 특히 우리는 영속하는 공동체 구조를 이루고 있는 이 미생물들의 행동, 다채로운 사회 생활, 퇴적물과의 상호 작용에 초점을 맞춘다.
더껑이 같은 화학 물질들에서 생명이 탄생한 사건은 한번 일어났을 수도 있고, 여러 번 일어났을 수도 있다. 어쨌든 우리계통의 최초 세포들은 막에 둘러싸인, RNA와 DNA에 기반을 둔 자체 유지되는 단백질 계였다. 세세한 세포 구조와 대사 활 동 측면에서 그들은 우리와 아주 비슷했다. 그들은 외부 환경과 끊임없이 물질을 교환했다. 그들은 먹이와 에너지를 얻고 폐기물을 내보냈다. 그들은 주위 환경에서 얻은 화학 물질로 자신의 구조를 보충하고 유지했다. 사실 고대 세균은 파괴와 열역학적 사망의 위협에 맞서 스스로를 재생산할 만큼 대단히 효율적인 대사 활동을 갖추고 있었기에, 현재 우리 몸의 내부는 산소가 풍부한 현재의 세계보다는 생명이 시작된 초기 지구의 외부 환경과 화학적으로 더 비슷하다. 성장하고 분열하는 세포들로 이루어진 생물은 말 그대로 화학 자체였던 과거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생명이라는 책은 수학의 언어나 영어로 씌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탄소 화학의 언어로 씌어졌다. 세균들은 다양해지면서 퍼져 나가 지구 전체에서 화학 언어로 대화했다. 헤엄치던 세균들은 헤엄치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생성하는 포도당을 분해하는 세균에 달라붙었다. 유영자와 포도당 분해자 사이에 형성된 동반 관계는 원생생물을 낳았다. 나머지는 역사가 말해 준다. 그것이 내 SET가 제시하는 역사관이다. 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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