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공생자 행성_7장 초바다의 해변에서

백_일홍 2025. 5. 28. 14:30

공생자 행성

린 마굴리스가 들려주는 공생 진화의 비밀

 

린 마굴리스

 

 

7. 초바다의 해변에서

 

얼마 전 워싱턴에 있는 스미스소니언 항공 우주 박물관에서 열린 스타트렉 기념 전시회를 둘러본 적이 있다. 나는 「스타트렉」 시리즈를 한 편도 본 적이 없다. 1970년대에 대한 향수, 등을 떠미는 관중들, 그리고 약간의 호기심이 결합되어 나는 10분 가량 관람을 했다. 지극히 미국적이고 지극히 낡은 드라마였다. 나는 너무 시시하다는 데에 놀랐다. 식물이 전혀 없는 장면들, 가짜 풍경, 우주선 내부, 인간이 아닌 생명체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 설정 등이 너무나 기이해 보였다. 만일 언젠가 인간이 거대한 우주선을 타고 다른 행성으로 여행을 떠난다면, 결코 홀로 가지 않을 것이다. 지구에서처럼 우주에서도 탄소, 산소, 수소, 질소, 황, 인 같은 생명의 구성 원소들은 재순환되어야 한다. 이 재순환은 결코 고급 주택가에서 벌어지는 자기 만족 행위 같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떨어낼 수 없는 생명의 기본 원리다. 인간이 먼 우주 공간을 항해하려면, 폐기물을 식량으로 재순환할 인간 이외의 다양한 생물들로 이루어진 생태계가 있어야 한다. '생태계 서비스'가 없으면 인간은 어머니 지구와 오래 떨어져 있을 수 없다.

 

생태계는 생물학적으로 중요한 원소들을 재순환시키는 최소 단위다. 이산화탄소는 화학적으로 '고정되어' 식량과 몸(유기 탄소)으로 전환된다. 유기 탄소는 배출되거나 반응하거나 분해되거나 다른 유기물질로 전환된다. 유기 탄소는 궁극적으로 누 군가의 효소나 심호흡을 통해 산소와 반응하여 다시 CO₂ 형태로 방출된다. 이런 의미에서 탄소는 순환된다. 질소도 마찬가지다. 대기의 N₂는 거의 화학 반응을 하지 않지만, '질소 고정균'을 통해 아미노산에 필요한 N으로 전환된다. 단백질이 분해되어 아미노산이 방출되고 아미노산이 다시 질소 폐기물로 전환 된 후 다시 공기의 N₂ 기체가 되면, 질소 순환이 완결되었다고 말한다. 원소 순환은 두 생태계 사이에서보다 한 생태계 안에서 더 빨리 이루어지지만, 어떤 화학 물질도 한 생태계에 완전히 고립되어 있지 않다. 나는 지구가 가이아 여신의 화신이라는 개념보다 '생태계들'의 망이라는 개념을 더 선호한다. 동료인 대니얼 보트킨(Daniel Botkin)은 생태계를 "외부에서 유입되는 에너지와 물질을 이용하여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사는 생물종들의 공동체"라고 정의한다. 나는 생태계가 생물들이 에너지와 물질을 계 사이에서보다 계 안에서 더 빠른 속도로 재순환시키는 지표면의 한 공간이라는 보트킨의 주장에 동의한다. 한 생태계에서 생물들이 필요로 하는 물질과 에너지는 생명 유지에 필요한 많은 화학 물질들을 재순환시킴으로써 충족된다. 화성을 '지구화'하거나, 다른 행성에 정착하거나, 우주에서 장기간 살기 위해서는 인간과 기계 장치 말고도 훨씬 더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짜임새 있고 효율적인 생물 군집들이 필요할 것이다. 공생과 다양성 덕분에 생물이 고생대에 메마른 육지로 올라와 정착할 수 있었던 것처럼, 인간이 외계 공간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생물과 함께 사는 것이 중요하다. 우주에서 살게 되는 날이 실제로 온다면, 생물은 다양한 생명체들 사이의 새로운 공생을 포함하여 신체적 동맹을 맺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새로운 상호 작용 패턴을 낳는 새로운 공생은 생물이 지구의 중요한 영역들에 정착할 때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육상 거주자들은 식물과 곰팡이 사이의 특수한 공생 덕분에 마른 땅 에서 버틸 수 있는지도 모른다.

 

식물의 뿌리와 곰팡이는 균근이라는 뿌리 뭉치를 이루어 함께 자란다 그림 5. 곰팡이와 식물은 복합체를 이룬 덕분에 모래, 흙, 자갈 같은 황량한 메마른 땅에 정착할 수 있었다.

 

생명은 바다에서 진화했지만, 생명이 적대적인 새 환경 맨 땅에서 살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상생(interliving), 즉 공생 발생 덕분이었다는 논리가 우세하다. 강한 태양 자외선, 치명적인 탈수, 양분 부족은 지금보다 5억 년 전의 육지에서는 훨씬 더 심각한 문제였다.

 

공생 발생 덕분에 생물은 지구의 메마른 땅을 점유 가능한 부동산으로 개발할 수 있었다. 육지에 자리 잡은 최초의 공생자는 세균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 화석 기록을 남긴 가장 오래된 대형 육지 생물은 아마도 식물-곰팡이 복합체였을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식물 화석은 흔히 검은 부싯돌이라고 불리는 암석인 처트에서 나온다. 가장 보존이 잘 된 식물 화석 들을 함유한 처트는 스코틀랜드 라이니 근처의 한 채석장에서 나온다. 라이니 화석은 인근의 온천에서 규소를 많이 함유한 물이 흘러든 덕분에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잘 보존된 듯하다. 라이니 처트에 숨어 있는 보물들 중에 화석이 된 조류의 몸속에 있는 원생생물의 일종 키트리드(chytrid)가 있다. 그 조류 자체는 4억 년 전 식물의 줄기 속에 살았다! 그 화석들은 최초의 육상 생물들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많은 단서들을 제공한다. 라이니 처트에 온전히 보존된 한 곤충 화석의 소화관에는 곰팡이의 후 막 포자(chlamydospore)가 들어 있었다. (후막 포자는 추위와 가뭄에 견 딜 수 있다. 후막 포자는 유성 생식과 무관하게 곰팡이 균사가 끊어져서 생기는 번식체다.)

 

캐나다 식물학자 K. A. 피로진스키(K. A. Pirozynski)와 데이비 드 맬록(David W. Malloch)은 4억 5000만 년 전 식물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 '곰팡이 융합' 개념을 제안했다. 그들은 공생 발생을 통해 곰팡이와 조류가 공진화했다는 가설을 세웠다. 오랜 진화의 동반자들이 서로 결합했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식물은 내부로 들어온 곰팡이에게 수액을 제공했고, 곰팡이의 균사는 튼튼한 가지와 뿌리로 발달했다. 캘리포니아 어바인 대학교의 피터 애스태트(Peter Astatt)는 식물이, 분해하고 흡수하는 곰팡이의 능력을 활용하여 셀룰로오스 세포벽을 분해한다고 지적함으로써 피로진스키-맬록의 가설을 더 확장시켰다. 한 예로 곰팡이 와 식물은 둘 다 토양으로 키티나아제 효소를 분비한다. 애스태트는 식물이 곰팡이와 장기간 관계를 맺다가 곰팡이 유전자를 훔쳤다고 주장한다.

 

현재의 균근은 뚜렷이 알 수 있을 만큼 부풀어 오른 공생 구조를 형성한다. 가끔 색깔을 띠기도 한다. 균근은 공생 발생의 한 형태로서, 곰팡이와 식물 뿌리 조직의 상호 작용을 통해 형성된다. 균근은 식물 동반자에게 광물질 양분을 주고, 토양에서 얻은 인과 질소를 공급한다. 식물은 곰팡이 동반자에게 광합성 산물인 먹이, 즉 수액을 제공한다. 현대의 균근 곰팡이도 고대 화석에서 발견된 것과 놀라울 정도로 흡사한 후막 포자를 만든다. 리니아(Rhynia)를 비롯하여 라이니 처트에서 발견된 4억 5000만 년 전의 식물 화석들도 부풀어 오른 뿌리를 갖고 있다. 곰팡이와 식물은 마른 땅에서 살기 시작했을 때부터 이미 생산적인 공생 관계를 형성했던 것이다.

 

육지로 이동했다는 말은 물에 사는 조류에서 식물이 진화했다는 말과 동의어였다. 육지에서 살아남으려면 강인해야 했다. 강한 내구성, 건조 저항성, 충분한 양분 섭취 능력 등을 갖 추어야 했다. 애스태트는 아직 동료들을 설득하지 못했다. 그는 조상 조류가 서식지와 결별하는 이 큰일을 성사시키는 데에는 곰팡이와의 공생이 필요했다고 주장한다. 바닷가에서 떠다니던 녹조류가 어느 날 갑자기 크게 자라서 식물이 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남극 빅토리아 랜드에는 살을 엘 정도로 추운 지옥 같은 건조 계곡들이 있다. 노출된 바위에 주기적으로 몰아치는 강풍이 여름에 잠시 녹던 얼음을 즉시 다시 얼린다. 그러나 바위 밑으로 2~3밀리미터 들어간 곳에서는 곰팡이, 조류, 세균의 공생자 인 지의류가 군집을 이루고 번성하고 있다. 그들은 사암의 구멍 안에서도 살아간다. 그들은 석영의 결정 입자로 스며드는 햇빛을 받으며 살아간다. 그렇게 암석에서 살아가는 곰팡이-지의류의 무게를 지구 전체로 따지면 13×10"톤으로 추정된다. 바다에 있는 모든 생물들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생물량이다! 가파른 바위에 달라붙어 있는 곰팡이라는 보호 덮개 밑에서 자라고 있는 조류는 바위 표면을 점점 뒤덮다가 결국 바위를 부수어 식물의 뿌리와 곰팡이의 균사 망이 뚫고 들어갈 수 있는 토양을 만든다. 회전하는 행성의 이 단단한 암석은 곰팡이와 조류가 동반자 관계를 형성한 뒤로 수억 년에 걸쳐 양분이 풍부한 토양으로 분해되어 왔다. 또 지의류는 온대 지역에서 생명이 살기에 적합한 땅을 만드는 데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수십억 년에 걸쳐 생물은 물이라는 고향에서 메마른 땅으로 서식지를 확장했다. 맥머너민 부부는 육지로 이주한 생물들 이 "초바다(Hypersea)"를 형성했다고 말한다. 생명은 우아하고 새롭고 경이로울 정도의 큰 규모로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으로 퍼져나갔다. 현재 육지에 사는 종들의 수와 다양성, 그리 고 종들의 상호 연결 양상은 생명의 본래 서식지였던 바다의 종들을 훨씬 초월한다. 육지의 생물량은 바다의 생물량보다 수천 배까지는 아니라 해도 수백 배는 된다. 이 엄청난 생물량 중 대부분인 약 84퍼센트는 나무들이 차지한다. 지구에 숲이 형성되어, 바다라는 자궁 너머로 생명의 서식지가 극적으로 확장되면서 육상 환경은 극적으로 재구성되었다. 물, 즉 바다라는 외부 순환계에는 황산염과 인같은 양분들이 자유롭게 떠다녔지만, 육지에 사는 광합성 생산자는 그런 양분들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했다. 이 양분들은 초바다 망 자체를 통해 수송되어야 했다. 육지로의 이동은 새로운 건축과 하부 구조를 수반했다.

 

생명이 사는 곳에서는 생명을 통해 물이 흘렀다. 세포질은 80퍼센트 이상이 물로 이루어져 있다. 마크 맥머너민과 고생물 학자인 아내 다이애나 맥머너민은 '초바다'라는 쉬운 개념을 통해 공생 발생적 상호 연결이 빚어낸 심오한 결과에 주의를 환기 시킨다. 맥머너민 부부가 초바다라고 말한 것은 주로 균근 곰팡이에 의존하는 식물의 뿌리 체계를 가리킨다. 균근 공생자, 즉 식물의 뿌리털과 뒤엉켜 있는 곰팡이는 현재 파악되어 이름이 붙여진 것만 해도 5000종이 넘는다. 축축한 곳을 뒤덮고 있는 이끼나 우산이끼 같은 몇몇 식물들을 제외하고 초기에 출현한 리니아를 비롯한 식물들은 모두 관다발식물이다. 관다발식물은 순환계를 갖추고 있다. 순환계는 땅에서 물을 퍼 올려서 줄기와 잎으로 보내고, 광합성 산물들(양분)은 밑으로 보낸다. 땅속에서 연결망을 이루고 있는 미세한 균근은 거의 눈에 띄지 않고 제대로 평가도 받지도 못하고 있다. 그러나 말 그대로 낮은 곳에 있는 그 동반자가 현재 우리가 보는 식물들이 거둔 엄청난 성공의 밑거름이 되었다.

 

균근 곰팡이는 지구 전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송로버섯이 자랄 때처럼 그저 어쩌다가 한 번씩 우리의 관심을 끌 뿐이다. 이탈리아와 프랑스 요리에 널리 쓰이는 송로버섯은 균근 곰팡이의 포자를 만드는 생식 기관이다. 송로버섯은 돼지 와 개를 유혹하는 독특한 향기를 풍긴다. 돼지와 개는 냄새로 활엽수의 뿌리에서 자라는 그 버섯을 찾아낸다. 균근을 가진 식물은 자연적으로 선택된다. 양분이 부족한 토양에서 균근을 지닌 식물은 일찍부터 더 크게 자라며, 곰팡이와 동반자 관계를 맺지 않은 식물들보다 질소와 인산을 더 많이 가지고 있다. 사실 살아 있는 식물의 90퍼센트는 균근 공생자를 가지고 있다. 모든 식물의 80퍼센트 이상은 이 곰팡이 협력자가 없어지면 죽고 만다. 초바다는 세상을 지배한다.

 

맥머너민 부부의 개념은 비판적인 평가와 비판적인 찬사를 받을 필요가 있다. 러시아 광물학자 블라디미르 베르나드스키 (Vladimir Vernadsky, 1863~1945년)는 생명을 거대한 지질학적 힘으로 이해했다. 초바다를 예견한 듯이, 그는 생물을 "살아 있는 바다(animated water)"라고 했다. 살아 있는 바다라는 말은 생명을 탁월하게 묘사한 표현 중 하나다.

 

식물은 습한 환경을 재창조하고 그것을 몸속에 봉인함으로써 육지로 이동할 수 있었다. 나무는 물을 가두고, 그것을 육지로 옮기고, 증발산을 통해 통제하는 일을 아주 잘 해 낸다. 셀룰로오스와 리그닌으로 강화된 조직들이 가지를 치면서 망을 이루고 있는 나무는 당연히 관다발식물이다. 폴리페놀 탄소 화합물들이 복잡하게 뒤엉켜 이루어진 리그닌은 나무를 단단하게 만든다. 4억 년 전에 출현한 나무들은 생물권 전체를 위로 바깥으로 크게 확장시켰다. 생물권이 바다와 민물 밖으로 뻗어나가 육지에서 수직으로 크게 확대될 수 있었던 것은 식물과 곰팡이가 긴밀한 관계를 이룬 덕분이며, 지금도 마찬가지다. 곰팡이는 육상 거주자들의 왕국에서 눈에 확 띄는 존재다. 그들은 광합성을 하지 않고 흡수를 통해 먹이를 얻는다. 파동모를 갖고 있지 않으므로, 그들의 세포는 헤엄치지 못한다. 하지만 그들은 일시 적인 가뭄에도 살아남을 수 있다! 곰팡이는 그 어떤 성인보다도 훨씬 더 오래 참고 견딘다. 그들은 그 자리에서 마냥 기다린다. 이윽고 주위가 다시 축축하게 젖어들면 그때서야 다시 활동을 시작한다. 곰팡이들은 대부분 복잡한 균사망, 세포질로 가득한 먹이 섭취관들의 망을 형성한다. 곰팡이는 홀로, 또는 지의류의 형태로 조류와 협력하여, 또는 균근 형태로 식물 뿌리와 함께, 육지를 정복했고 널리 퍼져나갔다.

 

공생 발생은 바다로부터 메마른 땅으로, 이어서 하늘로 생명의 조수를 끌어당긴 달이었다. 육지에 있는 물의 망, 식물과 연결된 곰팡이들이라는 살아 있는 물이 바로 맥머너민 부부가 말한 초바다다. 인류가 언젠가 외계 공간으로 긴 여행을 떠난다 고 하더라도, '스타트렉」에서 보여 준 것 같은 밋밋하고 황량한 방식으로는 불가능할 것이다. 우리 행성의 동료들을 인위적으로 우리에게서 떼어 놓으면, 살풍경하고 지루한 수준을 넘어서 서 끔찍한 상황이 벌어진다. 우리가 아무리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해도, 생명은 훨씬 더 폭넓은 계를 이룬다. 우리 피부 바깥(그리고 안쪽)에 있는 수백만 종들은 물질과 에너지 측면에서 믿을 수 없을 만큼 복잡하게 서로 의존하고 있다. 지구의 이 이질적인 존재들은 우리의 친척이자, 우리의 조상이자, 우리의 일부다. 그들은 우리의 물질을 순환시키고, 우리에게 물과 양분을 준다. '남'이 없다면, 우리는 살아갈 수 없다. 우리는 살아 있는 물을 통해 공생하고, 상호 작용하고, 상호 의존하던 과거와 연결된다. 1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