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부란 그대로 졸연간에 부자가 된 일이나 그런 사람을 뜻한다. 그러나 그 요지는 '갑작스러움'에 있지 않다. 사람이 시간에 슬기로워서 시중을 가릴 수만 있다면, 졸취나 만득이나 그리 큰 차이가 아니다. 복권으로 인해 슬기로운 자가 있던가, 3대의 재벌로 어진 자가 있던가, 중요한 것은 재부 자체가 아니라, 그 안팎에서 드러나(야하)는 사람의 얼굴과 영혼이기 때문이다.
졸부의 요점은 물스러운 것들이 사람을 분류하고 지배한다는 데 있다. 사람의 '크기'란 게 고작 물건들의 기능을 중계하는 효용에 의해 평가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요컨대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졸부의 형식이다. 돈이 사뭇 넘칠라치면, 노릇이 좀 커질라치면, 이런저런 유행이 돋을라치면, 정보와 이론을 수합할 수 있을라치면, 혹은 흥미로운 기계나 물건이 유통될라치면, 금새 인간이 보이지 않게 하는 형식. 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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