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식물의 잃어버린 언어

백_일홍 2022. 7. 29. 23:08

식물의 잃어버린 언어 

 

스티븐 해로드 뷰너

 


1_야생의 물맛

인류 전체는 물론이고 인간 개개인에게 야생의 물로 회귀하는 이 여행은 매우 긴 여정이다. 그러므로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오래전에 생긴 우리 내면의 상처들을 치유하는 법부터 찾아야 한다. 인류가 내린 어떤 결정이나 사고방식들이 만들어낸 상처다. 강아지를 떠올려보면 이런 상처를 쉽게 구분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이런 경험은 흔치 않다. 한때는 모든 생명체와 나누었던 이런 교감을 이제는 가족이나, 운이 좋을 경우 애완동물과의 관계에서나 경험하게 되었다. 식물을 키우는 재주가 있는 경우에는 정원이나 잔디, 식물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런 경험을 한다. 21

그러나 이것은 왜곡된 경험이다. 길들여진 동물과 길들여진 식물, 길들여진 풍경은 야생의 그림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늑대가 뿜어내는 에너지와 개가 뿜어내는 에너지는 전적으로 그 질이 다른 것이다.

야생 생명체와의 교감 상실은 그 본질상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깊은 상처를 만들어낸다. 모든 생명들과 정서적인 유대감을 느끼거나 교환하지 못할 경우, 더 이상 지구와 그 위에 사는 많은 생명체들에게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게 된다. 그로 인해 환경은 황폐해지고, 우리의 내면도 삭막해진다.

인류에게는 현대인들이 강아지와 영혼의 정수를 교류하거나 깊은 정서적 유대감을 나눌 때 몸속으로 흘러드는 그 즐거운 느낌을 하루에도 몇 번씩 많은 생명체와 경험했던 적이 분명 있었다. 이런 교감은 지구 상에서 인류가 누려온 삶의 역사적 경험들 중에서 아주 일상적인 부분에 속하는 것이었다. 가장 일차적인 유형의 교감, 그러나 지금의 우리는 일상의 일부를 구성하는 이런 정서적인 교감으로부터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 그 결과 이런 경험을 표현할 일반적인 언어도 갖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런 내면적이고 외면적인 상처들은 세계와 세계 속에서의 우리의 위치를 바라보는 특정한 사고방식에서 비롯되었다. 그레고리 베이트슨이 말한 인식론의 발전, 즉 실재를 파악하고 바라보는 방식이 이런 상처를 만들어 낸 것이다. 23

2_ 두 개의 상처

주변 세계와 영혼의 정수를 교감하지 못하는 데서 생겨나는 내면적이고 외면적인 상처들이 널리 퍼져 있다.

열대 우림의 무차별적인 벌목과 공기의 오염, 강의 파괴 등 외부 세계에 대한 신성 모독이 바로 이런 외부적인 상처에 해당된다. 이 외부적인 상처에서 어떤 느낌이 있다는 것을 쉽게 망각해버린다. 언어 이전, 사고 이전의 어떤 느낌, 생명의 바탕에 가해진 손상을 인식하는 우리 내면의 깊고도 순수한 반응을 잊어버린 것이다. 우리 내면과 외부의 상처들이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려면, 반드시 이를 느껴야 한다. 고통스럽더라도, 순간이나마 그 상처를 느낄 줄 알아야 한다. 26

뉴욕에서 나는 이 상처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법을 배웠다.

뉴욕 이야기
- 자메이카 태생 뉴욕에서 30년 살다. " 저 근자 들어서는 정말이지 살고 싶은 맴이 안 들데요, 그런데 할머니가 꿈에 나타나 이렇게 말씀 사히는 것어요, 아가, 손에 흙을 묻혀 보그라" 커뮤니티 가든. 거기 가서 흙 속에 손을 묻는 순간, 제가 정말 누구인지 다시 알겠더라고요.

- 자연요법가가 되고 싶다. 그곳에 있는 식물들이 제게 큰 소리로 외치는 소리가 들렸어요.

- 어느 날 그 식물이 내 삶의 방향에 대해서 무언가 말해주려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어요.

태양의 주위를 도는 이 거친 바윗덩어리 위에 우연히 불시착한 존재, 지구 상에서 유일하게 지성을 갖춘 존재가 바로 인간이라는 믿음에서 비롯된 우리 내면의 상처, 무감각하고 무심한 자연 속에서 인간은 외로운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만들어낸 상처를.

세계가 아직 젊었던 시절의 이야기를 들여주기 시작했다. 식물에게도 지성이 있으므로 인간에게 말을 걸 수 도 있다는 사실을 모든 이가 잘 알고 있던 시절,

우리 안에서는 언제나 자연과의 단절이 일어나고 있다. 자연의 내적인 깊이를, 동물과 식물, 풍경에도 영혼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는 우리가 생각하고 배워온 것보다 훨씬 더 심오한 깊이를 갖고 있다. 자연의 이런 내적인 세계와의 교감은 수천 년 동안 우리 경험의 일부를 이루는 것이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순간에도 변함없이 자연과의 교감을 경험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 우리가 미적 조화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린 것은 정말 인식론의 오류류라고 생각한다. 그레고리 베이트슨, *

그러나 이런 일상적인 경험을 표현할 말은 이미 오래전에 사장되어버렸다. 더 이상 우리의 언어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때로는 스스로 미친 게 아닐까 의심하기까지 한다. 제정신이 아닌 외로운 존재, 지구 상에서 유일하게 지성을 갖춘 생명체로써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런 상처는 인식론적인 오류가 빗어낸 불가피한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본질적으로 인식론의 오류를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인 것. 이런 오류의 필연적인 결과들이 아주 빠르게 우리를 향해 몰려들고 있다.

3_ 세계를 바라보는 두 개의 시각

지금은 이런 일들을 터무니없는 미신이나 말도 안 되는 미친 소리로 받아들인다. 이는 우주와 우주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바라보는 인간의 인식 방식에 중요한 변화가 있었음을 말해준다.

대다수 서구인들처럼, 나 역시 제도권의 교육을 받고 자랐다. 나 역시 기계론적인 사람으로 길들여진 것이다.

언어와 인식의 관계
개개의 문화는 인간이 실재의 본질과 만날 때 이루어지는 독특한 실험이며, 이 실험은 아주 오랜 세월에 걸쳐 진행행 된다. 그러므로 각각의 문화가 발전시킨 언어 속에는 그들이 경험한 것과 그들이 문화로서 중요하게 인식한 것들의 독자적인 측면들이 새겨져 있다. 어떤 언어의 소멸은 곧 우주의 본질에 대한 고유한 지식, 축적하는 데만도 족히 10만 년 혹은 그 이상이 걸렸을지도 모를 지식의 손실을 의미한다. 언어가 실재에 대한 개인의 경험을 결정짓는 것이다.
영어로 사고하다가 수학으로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면,

* 데이비드 오어 David Orr,

3개 언어를 구사하는 친구, 그가 영어 대신 그리스어로 생각하고 말하기 시작하는 순간, 그의 생리와 인격 전체가 바뀌었다. 다른 언어로 생각하기 시작하는 순간, 세계 역시 미묘하지만 중요한 변화를 겪는다고 한다. 실재를 인식하는 그의 방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학의 언어 속에 새겨져 있는 경험들은 인간의 다른 언어들 속에 새겨진 경험과는 사뭇 다르다. 수학적으로 사고할 때, 인간의 몸이나 감정, 개인들 간의 관계는 덜 중요한 것으로 인식되는 반면, 숫자의 관계로 표현되는 우주는 더욱 중요하게 인식된다. 수학의 언어 속에서 인간이나 다른 존재들의 생명은 그 어떤 언어적인 지위도 부여받지 못한다.

충분한 고찰도 없이 수학이라는 피륙 속에 쑤셔 박은 많은 가정들. 숫자들이 존재하며 그것들은 의미를 갖고 있다는 가정. 숫자라는 언어는 중요하고 중립적이며 객관적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수학적인 용어로 설명할 수 있다는 가정. 정밀성이 떨어지는 다른 언어들에 비해 수학의 언어가 훨씬 사실적이라는 가정. 수학자들은 바로 이런 가정들을 통해 세계를 이해한다.

그러나 수학적인 언어로는 인간의 삶이든 다른 생물의 삶이든, 삶의 유기적인 과정을 표현하거나 이해할 수 없다. 새를 기르거나 아이를 키우는 일, 사랑이나 갈구, 보살핌이나 유대 등에 대해서는 전혀 표현해주지 못한다는 말이다. 때문에 수학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강아지와 인간 사이의 소통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특정한 가정들을 선택하는 것이 개인에게 이토록 큰 영향을 미친다면, 문화 전체 혹은 사람들 전체가 과학의 인식론을 내재화할 경우에는 어떤 결과가 빚어지겠는가?

괴델의 '불완전성의 원리'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

서구 문화에는 과학의 한계를 이해하고, 과학의 기초가 되는 가정들을 상세하게 설명할 수 있도록 해주는 합법적인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다. 과학이 우주의 작용을 정확하게 바라보는 유일한 시스템으로 남기를 고집하기 때문이다.

비산업주의적인 고대 문화의 인식론

 

 

8장. 모든 생명에게 약이 되는 식물
식물 화학물질은 성 호르몬뿐만 아니라 탈피 호르몬, 보호용 화학물질을 만들기 위해 섭취하는 물질, 필수 단백질과 아미노산, 지질, 치유제 등으로 사용된다. 때문에 식물들은 언제나 자신의 건강에 필요한 것보다 많은 양의 화학물질을 만들어낸다. 이런 화학물질이 식물 군락과 생태계의 건강을 유지시켜주기 때문이다.

식물 군락의 일원이 병에 걸리면, 식물들은 이를 감지하고 치유에 필요한 화학물질을 제공해준다. 이런 화학물질은 균사망을 통해 필요한 곳으로 전달된다. 그런가 하면 화학적 신호를 통해 아픈 동물이나 곤충들을 불러들여서 치료해주기도 한다.

식물이 동식물뿐만 아니라 군락의 모든 생물들을 치유해준다는 것을 원주민들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때문에 원주민들의 분류학에서는 코끼리와 벌, 원숭이, 호저, 엘크, 사슴, 쥐 등의 동물을 식물의 약효와 연결 짓고 있다. 그러나 동물들이 식물들을 약으로 사용한다는 이러한 사실은 1978년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주장되었다.

모든 생명에 약이 되는 식물
식물의 화학작용은 매우 정교하고 복잡하며 주변의 생명체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런 사실에 대한 인식이 깊어지면서, 현대인들은 식물이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이 사는 생태계 전반의 병을 치유하기 위해 화학물질을 만들고 분비해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어느 식물 군락의 일원이 병에 걸리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피드백 고리를 통해 이 정보가 자동적으로 전달된다. 그러면 지표면 바로 아래의 균사망에서 그 식물에게 필요한 화학물질을 전해준다. 균사망과 연결되어 있는 건강한 식물들이 필요한 화학물질의 생산을 증가시키면, 균사망이 이 물질을 필요한 곳으로 분배하는 것이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과학자들이 의도적으로 나무의 껍질을 고리 모양을 벗겨보았다. (이러면 나무가 죽을 수도 있다) 그러자 나무들은 균사망을 통해 다른 식물들에게서 필요한 영양소를 공급받았다. 그 결과 균사망과 분리되어 있는 나무들은 1년도 안 되어 죽어버린 반면, 균사망을 통해 영양분을 공급받은 나무들은 몇 해가 지나도록 건강하게 살아남았다. 탄소와 인, 당분 등을 포함한 다양한 화학물질들이 이런 식으로 식물들에게 전달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상처를 입으면 식물도 사람들이 진통제나 마취제에 반응하는 것처럼 반응한다. 한 예로, 양귀비의 알칼로이드 물질은 사람에게 그런 것처럼 식물의 생리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 화합물은 뿌리를 통해 흡수되어 균사를 통해 전달되거나 기공을 통해 기체의 형태로 흡입된다.

꿀벌은 나무에서 고무 질의 진액을 채취해 밀랍을 만든다. 그런 다음 밀랍을 벌통의 내부에 발라서 감염을 예방한다. 벌은 이렇게 채취한 나무 진액을 화밀과 다양한 꽃가루, 납(왁스), 그리고 자기 내부의 효소들과 섞는다. 때문에 벌이 만드는 밀랍은 강한 항박테리아 성과 항바이러스, 항균, 항염증, 항산화, 항생, 항 곤충 성질을 갖고 있으며, 이런 성질은 여러 해 동안 유지된다.

메뚜기나 딱정벌레 같은 곤충도 박테리아와 조류, 균류의 감염으로부터 껍질을 보호하기 위해 식물 화합물을 이용한다. 어떤 곤충들은 작은 진드기에 감염되었을 때, 그에 맞는 약초를 찾아서 감염원을 죽여버린다.

새들은 해충의 침입을 예방하거나 물리치고 어린 새들의 면역력을 높이기 위해 신선하고 강력한 여러 종의 약초로 둥지를 짓는다.

인도에 사는 멧돼지는 회충의 침입을 통제하기 위해, 구충 성분이 풍부하게 들어 있는 털비름 뿌리를 해 먹는다.
코끼리는 출산을 포함한 여러 가지 경우에 다양한 식물을 약으로 이용한다. 임신 말기가 되면 45킬로미터나 이동해서 특정한 나무를 찾아낸 다음 그 잎과 줄기를 모조리 먹어치웠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산통이 시작되었고, 코끼리는 건강한 새끼를 낳았다. 코끼리가 먹은 식물은 케냐의 여성들이 분만촉진제로 사용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코끼리 외에도 식물을 분만촉진제로 이용하는 동물은 많이 있다.
여우원숭이 암컷,

오샤, '곰의 약'

초봄에 오랜 동면에서 깨어난 후 곰이 가장 먼저 하는 일 가운데 하나는 긴 발톱으로 오샤를 캐 먹는 것이다. 먹고 남은 것은 씹은 다음 침을 썩어서 묽은 반죽으로 만든다. 그리고 이것을 털 위에 뿌리거나 문지른다. 회충을 물리치는 효능이 강하기 때문에 겨울이 끝난 뒤 장청소에 좋다. 또 항생 작용과 항바이러스, 항기생충 효과도 강하다. 겨울 동안 몸에 달라붙어 있던 기생충들을 말끔히 소탕할 수 있다.

사람들도 곰처럼 식물을 약으로 쓴다. 다른 생명체들처럼 인간도 오래전부터 식물계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 인간은 오래전부터 의식주를 해결하고 병을 치료하는 데 식물을 이용해왔다. 6만 년 된 네안데르타인의 무덤 안에서도 약초가 발견되었으며, 지난 6000년간의 문자 기록들에도 8만 가지 이상의 식물을 일상적으로 이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조제약이 생태계에 미치는 피해
우주가 하나의 기계라는 인식론 위에서 만들어진 조제약은 식물 화학물질과 살아 있는 유기체들이 추는 생명의 춤에 아주 심각한 위협을 가하고 있다. 식물의 화학물질과 인간이 만든 조제약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그러나 그 차이는 단순히 화학적 구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의미'에 있다.

우선 합성 조제약은 소수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또한 멋대로 질병이라 규정한 인체의 증상들을 완화 사키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반면에 식물 화학물질은 변화하는 조건들에 대한 반응 속에서 생태계의 다양한 요소들을 연결하는 긴밀한 바이오 피드백 고리를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변화하는 조건들을 조절해서 지구의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 바로 식물 화학물질인 것이다.

식물 화학물질은 화학적 의사소통의 메시지인 반면, 조제약은 소음에 불과하다. 조제약의 생산과 배급 속에는 현대 과학의 인식론이 우주의 근본 속성으로 치부하는 무의미성이 새겨져 있지만, 생태계 속으로 방출되는 식물 화학물질에는 진정한 의미가 있다. 식물 화학물질은 나름의 분명한 생태적 목적에서 분비되는 것이다.

현대 과학이 조제약과 관련해서 저지른 범주 오류는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간이 만들어낸 화학물질이 의미는 없으면서도 생명망의 반응을 자극하는 정보들을 실어 나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박테리아 결합체의 결과물이기 때문에, 불행하게도 이 화학물질들은 모든 생명의 대사경로에 영향을 미친다.

한 예로, 식물 속에서 자스몬산이 형성되는 생화학적 과정은 동물 속에서 프로스타들란딘(인체 내에서 감염에 염증 반응을 일으키는 지방산)이 만들어지는 생화학적 과정과 아주 흡사하다. 자스몬산의 중재를 받는 식물의 반응은 필요할 경우 시스테민이라는 신호 분자에 의해 시작된다. 그런데 시스테민이 만들어지는 생합성 경로는 포유류 속에서 종양 괴사인자 알파가 만들어지는 경로와 아주 유사하다. 이처럼 프로스타글란딘과 자스몬산이 비슷한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에, 둘의 효과는 아스피린에 들어 있는 일반적인 식물 화합물인 살리실산에 의해 조정된다. 요컨대 우리 모두 비슷한 화학작용과 대사경로, 진화 역사를 갖고 있으므로, 식물의 화학물질은 생명망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식물에서 추출해낸 '자연' 물질도 농축되면 오염 효과를 일으킨다. 그런데 식물들이 정상적으로 만들어내는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의 자연물질들이 생태계 속으로 방출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해마다 많은 양의 아스피린이 하수 속으로 흘러들고 있다. 이것들은 모두 결국은 생태계 속으로 흡수된다. 문제는 한 번에 흡수하는 양이다. 소량의 아스피린은 식물의 성장을 촉진시킨다. 하지만 양이 많을 때에는 도리어 성장을 방해한다.

카페인도 이와 비슷한 작용을 한다.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양의 커피와 차가 생산되고 소비되고 있다. 이로 인해 일반적으로 카페인이 검출되지 않았던 지역에서도 많은 양의 케페인 배설물이 검출되고 있다. 카페인은 세포분열을 방해하기 때문에, 아주 적은 양으로도 씨앗의 발아를 억제한다. 하수 처리시설을 통과하는 카페인의 양은 생태계 기능을 방해하기에 충분하다.

합성 조제약은 이런 문제들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합성 조제약이 이미 만연해 있는 데다, 분해도 잘 안돼서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조제약으로 인해, 생태계 전역의 유전자형들(박테리아, 곤충, 바이러스, 식물 등)이 불안정하게 변화하고 있으며 생태계의 항상성을 재확립하기 위해 스스로를 재정비하고 있다. 인공 화합물이 주는 스트레스가 커질수록, 유전자형도 더 많은 압력을 받을 것이다. 해마다 화학물질의 사용량을 늘려야만 농업과 의학에서 비슷한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렇게 가다 보면, 결국엔 필요한 화학물질의 양이 에너지 공급량을 초과할 것이고, 생태계는 항상성을 재확립하기 위해서 급속하게 수축될 것이다.

그러마 이미 식물 군락과 생태계, 식물 군계, 지구 자체의 균형을 깨트리고도 남을 만큼 많은 조제약이 생산되고 있다. 여기다 농업에서 사용하는 화학약품의 양을 더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대부분의 경우, 이 인공 화학물질들은 서로 혹은 식물 화학물질들과 결합해서 예측 불가능한 상승작용을 일으킨다. 이로서 이 물질들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은 더욱 극대화된다.

우주를 내적인 깊이가 없는, 부품들의 거대한 결합체로 규정함으로써, 우리는 지구 상의 살아 있는 유기체들과 우리 자신을 정서적으로는 물론이고 화학적으로도 분리시켜버렸다. 요컨대 현대의학의 화학요법이 '식물과 채소 나부랭이들을 휩쓸어버릴' 것이라는 미국의사협회의 모리스 피수베인의 말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분명하게 현실화되고 있다.

식물 다양성의 감소
식물의 화학물질은 식물의 토양 생태계뿐만 아니라 동물의 내부 상태도 건강하게 유지시켜 준다.

암 발생이 증가한 것은 식용식물과 약용식물의 다양성이 감소한 것과 정확히 비례한다. 한 예로, 1900년 당시에는 철마다 100가지 이상이 사과와 50가지의 채소, 30종의 육류가 시장에 나와 있었다. 대부분이 야생에서 수확한 것으로, 요즘에 먹는 것들보다 강력한 화학물질들을 훨씬 다양하게 함유하고 있었다. 야생의 식물 속에는 다양한 유형의 세포독성 화합물과 항돌연변이 화합물, 세포 분해 억제 화합물이 들어 있었기 때문에, 1900년 이전에는 식품을 통해 일상적으로 이 물질들을 섭취할 수 있었다. 자연히 암이란 병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대개는 야생에서 수확한 것들.
오늘날 미국인들이 일상적으로 먹는 채소 종류는 열 가지도 안된다.

단기적으로 봤을 때 살충제를 사용하면 수확량이 늘어나는 것처럼, 단기적인 시간 기준으로 보면 조제약이 약초보다 효과가 좋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조제약과 살충제의 우월성은 결국 소멸되고 만다.

생물종이 줄어들어 복합적인 생태계가 전보다 단순하게 붕괴됨. 이런 가속적인 혼란은 많은 종류의 조제약을 사용하는 인간 사회와 인간 내부의 생태에서도 똑같은 양상으로 나타난다. 항생제에 대한 내성은 이미 시작된 생태계의 혼란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하지만 박테리아는 약초에는 내성을 발달시키지 못한다.

본질적으로 식물은 생태적인 약이다. 약을 만들어낼 대규모의 공장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환경 속으로 오염원들을 쏟아내지도 않는다.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부작용도 적으며 재생도 가능하다.

 

 

10장. 식물의 잃어버린 언어
우리 모두의 내면에는 빈자리가 있다. 식물들만이 채워줄 수 있는 자리. 나무나 돌, 곰이 있어야 할 자리. 지구 상에서 100만 년 동안 우리와 함께 진화해온 생명체들에 의해서만 채워질 수 있는 자리. 이 빈자리를 채우지 않으면, 우리는 반쪽짜리 삶을 살 수밖에 없다. 결코 완전히 인간이 될 수 없으며, 치유될 수도 완전해질 수도, 우리 본연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도 없다. 결코 온전한 존재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식물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식물들이 내뿜는 방향성 화합물질은 우리 인간에게도 흘러든다. 그 오랜 성장의 세월 속에서 우리는 언제나 이 향기를 호흡하며 살았다. 사람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쑥이 앞장을 섰으며, 쑥은 다른 식물을 포함하여 많은 존재들을 보살펴 주었다.

조제약과 달리, 식물의 화학물질이 세계 속으로 방출되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각각의 화학 물질은 의미를 담은 낱말과 같으며, 이 화학물질들이 결합해서 고유의 문법과 구문을 가진 언어를, 고유의 근본적인 인식론을 형성한다. 식물들이 분비해내는 복합적인 화학물질들은 제 각각 의사를 전달하기 위한 하나의 문장이며, 이 문장들은 의미로 채색된 특정한 메시지들을 실어 나른다. 그리고 세계는 이 의미를 받아들이고, 이에 따라 반응한다.

식물들의 의사전달 방식은 물속에 돌을 던지는 것과 같다. 이 돌들이 일으키는 잔물결은 생태계 전역으로 확산되며, 우리에게까지 밀려든다. 때문에 귀가 아닌 코로, 피부와 눈과 혀로 받아들여도, 미묘하고 정교하며 의미로 가득 차 있는 이들의 언어를 고스란히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의 영혼처럼 식물들의 의도와 지성, 영혼도 화학작용이나 문법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식물은 그 부분들의 총화 이상의 존재다. 그리고 그들은 오랜 세월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다.

수천 세대 전부터 지구 상의 모든 문화권에서는 식물은 물론이고 자연의 모든 생명들이 자신만의 의미를 표현하며, 그 이면에는 분명한 의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때문에 사람들은 그들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고 그 메시지가 전하는 의미들을 축적해왔다. 그리고 이런 축적에서 비롯된 생태의식을 토대로, 세계 속에서의 인간의 위치와 세계에 대해 세대를 거쳐 입에서 잎으로 전해지는 지식을 쌓았다.
예. 이로쿼아족, 사람이 병이 들면 그 병을 치유하는 데 필요한 식물이 나타나서 환자가 그 식물을 발견하도록 도와준다는 이야기.

인간을 분해하는 것이,
인간을 그 구성 부분들로 잘게 나누는 것이,
이 부분들을 기계 속에 집어넣은 다음
이 기계의 평가를 기준으로
그림을 그리거나 위대한 음악을 창조해내는
인간의 능력을 평가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고?
그렇다면, 왜,
우리(식물) 몸은 그런 식으로 다루는가?
왜, 그렇게 하면
우리에 대해 무엇이든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연구자들, 식물들이 화학작용의 변화를 통해 생태계의 변화 영향에 대해 즉각 대응할 수 있으므로, 필요할 때에는 언제든 새로운 화합물이나 혼합 화합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주장함.

웨네바고족. 식물을 약용으로 채취할 때, 식물에게 소망을 이야기하며 그들의 힘을 발취해 달라고 부탁하면, 식물이 실제로 그렇게 해준다.

주의를 기울이고 진심으로 염려하는 마음으로 식물과 지구의 상호관계를 면밀하게 관찰하는 이들에게는 이 의미들이 통일적 전체로 다가온다. 그러므로 학위가 있어야만 자연의 언어가 갖는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화학도 식물이 전하는 의미를 파악하는 것과는 상관이 없다. 네 살짜리 아이는 그 의미를 놓고 고심하지 않는다. 그저 나무 아래 앉아 꽃들과 애기를 나눌 뿐이다.

이로쿼이족, 사람이 병이 들면 그 병을 치유하는 데 필요한 식물이 나타나서 환자가 그 식물을 발견하도록 도와준다는 이야기.

식물들은 오래전부터 우리의 스승이자 치유사였다. 인간을 식물의 자손으로 생각하면, 자연과의 가족적인 유대감이 생겨난다. 나아가 힘을 가진 쪽은 우리가 아니라 식물이라는 것도 깨닫게 된다.

생명사랑의 회복이 갖는 중요성

식물과 대지, 지구와 단절되면서 우리 내면에는 태어나면서부터 채워지지 않는 텅 빈 구멍들이 생겨났다. 중추신경을 자극하는 리탈 탈린이나 우울증 치료제인 프로작 같은 합성 조제약을 아무리 많이 쏟아부어도, 이 구멍들은 메울 수 없다.

그 해결책은 자연 그리고 땅의 살아 있는 지성과 재결합하는 것이다. 나는 생태지식을 회복시킬 가장 큰 희망은 어른들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생명사랑의 욕구를 억제당한 이들, 내면의 상처가 깊은 이들, 요컨대 결핍이 가장 큰 이들에게 그 희망이 있다.

생명사랑을 회복하는 길
먼저 느낄 수 있는 능력부터 키워야 한다. 주변의 모든 것에서 감지해낼 수 있는 미묘한 느낌을 의미.
오감을 회복하는 것, 특히 세계와 접촉할 때의 촉감을 회복하는 것.

지난 20년 동안 내가 직접 실천해보고 사람들에게 가르쳐준 수행법. 훈련하면서 경험한 것을 일기로 적어보는 것도 좋다.

훈련 1
하루 혹은 반나절 동안, 동네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으로 산책을 간다. 재미있는 곳이나 기분을 좋게 해주는 곳으로 산책을 가서 그냥 가게들을 둘러본다.
공감각적인 특성.
문들에 주의를 집중한다. 창문과 그 창문 안에 있는 것들도 주의 깊게 관찰한다. 간판과 가게 앞의 길, 거리의 나무와 꽃들에게도 주의를 집중한다. 이 모든 것이 제각각 어떤 느낌을 불러일으키는가? 유달리 좋은 느낌이 드는 것이 있는가? 있다면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가? 그 가게의 총체적인 느낌은 어떤가? 풍요로운 느낌인가? 편안한 느낌인가?.... 두 번째 가게, 세 번째 가게..... 서로 느낌을 비교해본다.

지금까지의 훈련은 주변 세계의 다양한 정보들 속에 새겨져 있는 메시지들, 우리의 미묘한 감정을 통해 느끼는 메시지들을 의식적으로 인지하고 확인하는 첫 단계이다.

가게는 그 가게 주인의 세계관과 그 저변의 인식론을 그대로 반영한다. 가게도 손님들이 경험하는 느낌들을 통해 손님들에게 특정한 의미들을 전달한다.
훈련을 거듭하면, 이런 느낌은 물론이고, 그 가게의 구조적 본질과 심리적, 경제적 안정성, 그 가게가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까지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

훈련 2
자신이 좋아하는 카페를 찾아본다. 실내 전경이나 들고 나는 손님들의 모습이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는다. 그런 다음 자연스럽게 눈길이 가는 사람들 찾아 관찰한다. 상대에게서 어떤 느낌이 드는가? 행복한 느낌? 아니면 슬프거나 초조해하는 것 같은 느낌? 공허한 느낌? 빈궁함? 경제적 여유? 관대함?...
상대의 얼굴을 볼 때는 어떤 생각이 드는가? 찬찬히 상대의 얼굴을 뜯어본다. 턱이 주는 느낌은 어떤가?....
'표정관리'를 아무리 잘해도, 얼굴은 그 사람의 내면세계를 충실하게 반영해준다. 그러므로 얼굴의 각 부위를 살피면, 느낌으로 상대의 내면에서 중요한 무언가를 간파해낼 수 있다. 상대의 손을 보라, 나이를 짐작해보라,, 상대의 옷을 훑어본다. 적어도 두 사람을 해본다. 훈련을 마친 다음에는 각각의 느낌을 비교해본다.

삶의 테두리를 형성하는 개개인의 인식론은 그의 몸짓과 억양, 눈과 손의 움직임, 옷차림, 걸음걸이 등을 통해 그대로 표출된다. 그러므로 훈련을 하면, 그들의 인식론과 세계를 형성하는 모든 구성요소들을 감지해낼 수 있다. 또 그런 인식론의 틀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파악하게 된다. 타인들이 그 구성요소를 어떻게 경험하는, 그들 삶의 정서적인 경향은 어떤지를 이해하게 된다.

훈련 3
자연 속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장소를 찾아간다. 이때 일기장을 반드시 가져간다. 편안하게 그 자리에 앉는다. 느낌이 어떤가? 가능한 구체적으로 그 느낌을 일기장에 적는다. 다 적은 다음에는 주변을 둘러보고 가장 흥미가 당기는 것을 고른다. 그것에 대해 여려가지 모든 것을 관찰한다. 어떤 느낌이 일어나는가? 그 느낌을 글로 적는다. 유달리 마음에 드는 점은 무엇인가? 마음에 덜 차는 면은? 그 이유는?...
최소한 두 개의 다른 대상을 갖고 이 훈련을 한다.

다른 장소를 찾아간다. 이곳에서 동일하게 반복한다. 두 장소를 비교한다.

지구 상의 모든 장소는 그곳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들처럼, 그 장소만의 독특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이 느낌들의 정서적인 차이가 만들어내는 색조는 수천 가지에 달한다. 그리고 이 각각의 색조들은 이를 필요로 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내면에 존재하는 특정한 빈자리에 잘 들어맞는다.

더 깊이 느끼기
훈련 4
다음의 내용은 테이프에 녹음했다가, 나중에 다시 들으며 따라 해 본다.
어디든 방해받을 염려가 없는 편안하고 안전한 장소에 자리를 잡는다. 두 눈을 감고, 몇 번 심호흡을 한다. 풍선처럼 가슴이 터질 듯 숨을 가득 들이쉰다음, 1분 동안 숨을 머금는다. 그리고 천천히 숨을 토해낸다. 여러 번 이를 반복한다. 이제 자신이 앚아 있는 바닥이나 의자가 오므린 손처럼 자신을 떠받치고 있다고 상상한다. 그 손 안에서 편안히 자신을 이완시킨다. 호흡을 계속하면서 몸 안의 모든 긴장을 풀어낸다.

자기 앞에 어린 시절의 자신이 서 있다고 상상한다. 그 아이의 모든 것을 관찰한다. 이제 그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어본다. 그리고 아이의 말을 주의 깊게 듣는다. 혹 그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없는가? 그 아이가 내게 바라는 것이 있는가? 반대로 그 아이에게 내가 바라는 것은 없는가?
자, 그 아이에게 자신을 안아줄 수 있는지 물어본다. 그렇다고 대답하면, 팔을 뻗어 앞에 있는 아이를 들어 올린 다음 꼭 안아준다. 두 팔로 자신의 몸을 감싼 다음 꼭 안는다. 그리고 그 팔 안에서 편안하게 몸과 마음을 이완시킨다. 어떤 느낌이 드는가?

서구인들, 그중에서도 미국인들은 대개 자기 안의 어린아이와 같은 부분을 자신에게서 떼어버려야 한다고 배웠다. 세계 속에서 정서상의 미묘한 차이들을 깊게 느끼고, 이런 차이들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바로 우리 안의 이 어린아이와 같은 부분인데 말이다. 이런 탓에 많은 사람들이 자기 내면의 어린아이와 같은 면을 쉽게 되찾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 안의 어린아이와 화해하는 데 그만큼 많은 노력이 필요할 수도 있다. 적어도 1년 동안은 매일 이런 훈련을 하는 것이 좋다. 그러면 우리 안의 어린아이가 우리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모든 일들을 알려줄 것이다. 나아가 우리들 둘러싸고 있는 세계에 대해서도 많은 것들을 이야기해줄 것이다. 이런 면에서, 헬렌 켈러 같은 사람, 식물과 소통하는 많은 원주민들이 어린아이와 같았다는 점은 흥미롭다.

훈련 5
어떤 단계에 있든, 훈련 4를 반복하는 것이 좋다. 각각의 단계(나이대)마다 그만의 지성이 있으며, 이를 통해 세계와 특별한 관계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훈련 6
'훈련 1'을 반복한다. 똑같은 장소로 가서, 자기 내면의 아이에게 같이 있어 달라고, 옆에 서서 손을 잡아 달라고 부탁한다. 내면의 아이에게 어떤 느낌이 드는지 물어본다.

훈련 7
'훈련 2'를 반복한다. 이번에도 내면의 아이를 데리고 간다. 내면의 아이는 이 장소를 어떻게 느끼는가?

훈련 8
훈련 3을 반복한다. 전에 같이 앉았던 식물에게로 가서, 그 식물을 쓰다듬으며 향기를 맡는다. 내면의 아이에게도 그 식물을 만져보고 향기를 맡으라고 한다. 그리고 그 식물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을 모두 이야기해달라고 부탁한다.....
나중에 약초 관련 서적을 뒤져, 그 식물을 찾아보는 것도 좋다. 내면의 아이가 식물에게서 얻어낸 정보의 깊이에 스스로도 놀랄 것이다.

훈련 9
지금까지의 훈련들을 자주 반복한다.

미묘한 감정을 느끼고 반응하는 능력을 향상되고, 주변의 세계와도 더욱 단단하게 결합될 것이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오래도록 나무 아래서 꽃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될 수도 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화사한 색깔의 옷을 입고, 알 수 없는 곡조를 흥얼거리게 될지도 모른다. 이유 없이 벙긋거리며, 이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지식들을 습득하게 될 수도 있다. 세계와 함께 우리의 상보적인 존재들 속으로 다시 깃드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차츰 생태지식의 단계로 나아가게 된다. 이런 단계가 지속되면, 자신이 무언가 중요한 일을 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것도 알게 된다. 이 세상에 태어난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음을 깨닫는 것.

 

11장. 살아 있는 생태지식

생명사랑과 생태지식은 모든 인간의 천부적인 능력이다. 이런 능력은 학위와 반비례하는 경우가 더 흔하다. 누구는 식물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는 것. 느낄 수 있는 능력, 우리의 시선을 잡아끄는 자연물은 무엇이든 세밀하게 관찰하려는 자발적인 의지, 자신이 느끼고 관찰한 것들에 대해 사색하려는 태도. 이것만 있으면 된다. 지구 생명망의 일원으로, 생명과 그 생명의 지성을 활성화하는 일에 전념하고 있는 시민들과 언제든 만날 수 있다. 자연 속으로 들어가 직접 자연을 체험해보아야 한다. 알렉산더 플레밍이 발견해낸 항생제들 중에서 가장 강력한 항생제 가운데 하나가 인간의 눈물 속에 있다는 점은 이런 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캐럴 맥그레이스 Carol McGrath
식물 전문가이자 약초 학자, 캐나다
켈트족의 약초학 전통을 복원하는 일에 전념하고 있음. 약초의 효능을 터득하고 식물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며 대지의 목소리를 알아듣는 법을 가르치고 있음. 또 사람과 사람, 사람과 식물, 사람과 대지 사이의 단절된 고리를 다시 잇는 일에도 주력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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