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正義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

백_일홍 2022. 8. 1. 15:47

正義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

 

리 호나이카

 

 

"죽음에 대한 사회적 승인은 사람이 하나의 생산자로서, 또 하나의 소비자로서도 쓸모없게 될 때 이루어진다. 그때는 큰 비용을 들여서 훈련시킨 한 소비자가 마침내 총체적인 손실로 간주되어 삭제되는 순간이다. 죽는다는 것은 소비자가 할 수 있는 궁극적인 형태의 저항이 되었다."

- 이반 일리치

 

어느알 우리는 연로하신 어느 아주머니를 보러 양료원으로 함께 갔다. .... 벤과 낸가 그 방으로 들어가자 거기 있던 거의 모든 사람이 서서히 작동하는 전기 충격 장치에 감전된 듯했다. 마치 파블로프의 개처럼, 그들은 생기없는 흰 머리들을 들어, 흐릿한 눈으로 우리를 쳐바보았다. 이 서글픈 시선의 교환은 내게 익숙한 것었다. 그것은 내가 이 이설을 방문할 때 마다 되풀이되었다.....

 

내 누이가 우리 아주머니의 식사를 거들고 있는 동안, 나는 또 다른 한 노부인에게 어떤 조력자가 음식을 먹여주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녀는 그 노부인의 입을 어거지로 벌려, 그 주사기 같은 것을 집어놓고는, 음식물로 꽉찬 입을 세게 눌렀다. 부인이 그것을 삼킨 뒤 그 과정은 음식물이 위장에 충분히 체워졌다고 생각될 때까지 반복되었다. ...나는 거기에 앉아있는 이 노부인이, 그녀의 영혼 속 어딘가에서, 자신의 시간이 이미 끝났다는 것을 오래 전부터 이해하고 있었음이 틀림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죽음을 껴안으르 적당한 기회에 맞서서 부질없이 싸우고자 하는 대신에, 그녀는 그스로 먹는 것을 멈추었던 것이다. 그녀는 그녀의 본성과 인격이 요구하는 바를 실천한 것이다. 아마도 그녀는 이 사려싶은 행동을 말로 설명할 수는 없었을지 모르지만, 자신의 행동의 의미를 알고 있었고, 우주의 법칙을 이해하고 있었으며, 그 법칙에 기꺼이 복종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 발명된 이 '보살핌이라는 제도가 개입하였고, 그 결과 그녀는 하느님께 순종하는 아이에서 서비스 체제의 소비자로 변화되어 버렸다. 그러니까 그녀의 육체는 경제를 위해서는 아직 얼마간의 쓸모가 있는 셈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양로원이라는 하나의 방대한 새로운 성장산업을 부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기술의료에 대한 '보살핌'을 죽음에 이르기까지 받는 패턴은 너무나 그 뿌리가 깊다. 사람들이 한 평생에 걸쳐 전문가들로부터 처치를 받아온 결과 어떻게 죽음에 임해야 할지에 대한 그들의 지식은 파괴되어버렸다.

 

이 양로원의 노인들에게서 나는 기술이 만들어낸 새로운 '좀비'들을 보았다. 그들은 각자가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되어 죽음에 다가갈수록 더욱 강화되는 의료적 처지를 평생에 걸쳐 받아온 끝에 까마득힌 아이가 되도록 인공적으로목숨을 유지한 체 휠체어와 침상에 묶여있는 애처로운 프랑켄슈타인의 괴물들이 되었다. 누군가의 아버지 혹은 어머니로서, 이름을 가진 개인이었던 이들이 지금은 한 추상적인 장수의 사례로 연명을 하고 있을뿐이다.

 

그러나 아무도 이 잔인한 범죄를 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은 그들 자신이 동참자이기 때문에 눈이 멀어있다. 모든 사람한데 책임이 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이 산업체제에 의해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체제의 과학을 믿고, 그 생산물을 사서 빨아먹고, 그 이윤으로부터 부유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도 비켜나서, 현대의료의 환상 바깥으로 물러나서, 사태의 진상을 볼 수 있는 독립적인 장소를 발견할 수 있을 만큼 자유롭지 않다.

 

197~199

 

매일매일 이 '미국적 경제'라는 개념은 갈수록 거짓된 것으로 생각되는 것이었다. 오늘날의 초국가적 경제의 힘을 볼 때, 지구상의 사람들 대부분은 조만간 두 개의 대립되는 범주에 속할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은 모두 시기심의 포로가 되거나 아니면 중독의 포로가 되거나 하는 것으로 귀결될 것이다. '활기찬' 경제가 제공하는 수많은 기만적인 매력들과 인간본성의 허약함으로 인해 이제는 진실로"나는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는 방식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특히 어렵게 되었다.

 

... 그러나, 지금 미국 전역에 걸쳐 삶의 규모를 되돌려, 훨씬 더 단순하게 살아가고자 시도하는 개인들과 그룹들이 존재한다.

 

로마클럽 보고서에서 비롯된 특징을 가진 많은 출판물. 그것은 하나의 사고구조, 전체적인 접근방식인데, 이와 직접적으로 유사한 형식은 커퓨터 모델링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오늘날 서구세계의 많은 학자들의 암묵적인 명제는 이렇다. 즉 오늘날 경제행위가 전세계적으로 미치는 파장으로 인하여 오로지 하나의 기술전문적이고, 전체주의적이며, 관료적으로 조직화된 시스템 관리체제만이 다양하고 심각한 온갖 문제들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 기업, 대학 사이에, 그리고 나라와 나라 사이에 엘리트들의 순환이 크게 진행되고 있다.

 

사람들의 주의를 분산시키고, 사람들을 순종적으로 만드는 데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다양한 기분전환거리와 일시적 욕구충족물들, 카우치 포테이토, 텔레비젼 화면 앞 소파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거의 숨도 쉬지 않는 아무런 생기 없는 물질덩어리로 서서히 탈바꿈해버린 것.

 

오늘날 유혹의 스펜트럼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훨신더 넓어진 것으로 보인다. 풍요는 주의력이 분산될 기회와 범위를 확대한다.

 

섹스주의 사회는 남자도, 여자도, 어떠한 짐승도 존경하지 않는 시각적 환영의 세계를 폭발적으로 증폭시켜왔다. 이러한 이미지가 갖는 주된 사회적 효과는 '경제인간'으로서의 삶이 주는 스트레스로부터 사람들에게 기분전환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 그러나, 그것이 개인에게 미치는 주된 효과는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을 왜곡시켜버리는 것이다.

 

간디 사후에, 통상적 개발 이데올로기의 이론가들은 유럽의 경제사상이 보편주의적 사회개념에 토대를 두고 있음을 지적했다. 그러나, 그것이 뜻하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보듯이, 모든 사람이 궁극적으로 사회적, 정치적 시스템에 의해 상호교환이 가능한 하나의 숫자로 취급된다는 것. 간디는 인도사회가 매우 다양한 인간구룹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러한 다양성이 존중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개인적, 문화적 차이들이 진실하게 존중받는 길.

 

그러나 서구 경제이론과 그 실제가 갖고 있는 보편주의적 사고구조는 산출이라고 불리는 하나의 추상개념을 강조한다. 이것은 얼마나 많은 가족과 마을이 얼마만큼의 경제적 독립성과 존엄성을 확보하느냐가 아니라 효율성, 생산성, gnp, gdp와 같은 추상적인 사회, 경제적 지표들에 의해서 측정된다. 여기서 두 가지 전혀 다른 세계가 제시된다. 간디의 세계관에서 중요한 것은 인도민중의 삶과 상황이며, 그들의 일하고자 하는 욕구 및 공동체의 삶에서 어떤 종류의 자율성을 발휘하고자 하는 욕구에대한 존중이다. 반면에 통상적인 서구 경제학의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일련의 추상개념들과 민중을 조작하려는 방법의 모색이며, 그것은 이런 방식을 통해서 측정 가능한 사회적 이익이 주어질 것이라는 믿음에 토대를 두고 있다. 한쪽은 우리 눈앞에 있는 사람에서 출발하고, 다른 한쪽은 컴퓨터 속의 개념에서 출발하는 것.

 

간디의 사상이 이와 같은 비젼에 이르게 되는 것은 그가 두 가지 원칙을 근본적인 것으로 제시하고 있기 때문.

1. 자급적 농업을 문화의 토대로 할 것

2. 사람들의 실제적 필요를 위한 것들을 마을 규모에서 만들어내는 문화를 기본으로 할 것.

 

간디가 주창한 것과 흡사한 삶의 양식을 보여주는 사람들로 된 번창하는 공도에가 존재하고 있음. 아미쉬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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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의 제도와 기관들이 내 아이들과 나의 감수성과 가슴에 어떤 상해를 입히는가를 생각하면서, 내가 가진 안락한 직업과 소비의 세계를 떠나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나는 또한 이 경제체제에서 탈락한다면 내가 더 이상 폭력에 이바지하지 않게 되고, 더 이상 피묻은 돈을 만지지 않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소로우가 <시민불복종>에서 썼던 말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나는 내가 다시는 소득세를 내지 않고 지낼 수 있는 방식으로 일하기로 결심하였다. 나는 더 많은 무기를 만드는 데 더이상 공헌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나는 간소하게, 가난하게 살 수 있는 가능성, 근대적 미국인으로 살되,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존재할 수 있는 방식을 찾아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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