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자립인간

백_일홍 2022. 8. 1. 16:01

자립인간 _알맞게 요구하고 필요한 만큼 소비하는

 

변현단

자연 구성원은 모두 그 존재의 이유가 있어 모든 목숨은 제 본능대로 살아가고 죽는다.

사물은 모두 같다는 믿음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면 인간의 오만과 만행 그리고 쾌락과 취미를 위한, 축적을 위한 살생은 없어질 게 틀림없다. 인간이 사자가 사슴을 잡아먹어야 하는 심정으로 소고기를 먹는다면 근수를 더 나가게 하여 돈을 벌겠다고 사기 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또한 생명을 통으로 먹고 - 즉, 살고 죽는 과정을 모두 보고 알며 손으로 직접 쥐여지는 그 순간까지 통으로 알고, 통으로 먹는다면 - 알 수 없는 고기로서 먹지 않는다면 살생도 줄어들 것이다.

모든 것이 분절되어 유통되고 진열 상품으로 전락함으로써 생명에 대한 존중이 사라진 것이다. 생명을 존중하게 하려면 모든 것을 '통'으로 먹고 '통'으로 살아갈 때 진정 온 삶으로써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인간의 비위는 시비의 근원이 된다. 인간의 성질은 가물면 비 타령을 하고 장마가 오면 비 그치기를 원한다. 생선에 가시가 있다고 불만을 토로하며 만물이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여긴다. 지금까지 천지를 사람의 마음으로 재단해 왔음을 시인해야 한다. 만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님을 안다면 무엇이 귀하고 무엇이 천하다는 차별은 없어질 것이다. 인간의 시비는 그렇게 인간 중심으로 모든 것을 재단해 왔기 때문이다. 자연의 마음으로 본다면 밥이나 똥이나 같고 물이나 오줌이나 다를 바가 없다. 높은 곳이나 낮은 곳이나 중간의 어느 곳이나 모두 같으며 흐르는 과정일 뿐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싫은 것은 버리고 좋은 것만을 탐하는 상태의 욕망이 마음 속에 있다. 그래서 사람의 애간장을 태운다. 낮은 자리보다 높은 자리를 탐하는 야망이 있어 승리는 달고 패배는 쓰다고 자신을 몰아세워 피를 말리며 초조와 긴장의 눈빛을 갖는다. 새는 날개로 하늘을 날고, 굼벵이는 흙 속을 몸으로 기고, 물고기는 지느러미로 물 속을 다니며, 사람은 두 발로 땅위를 걷는다. 모든 것에 그 자체의 온전함이 있다고 본다면 진화론은 거짓말이라고 할 것이다. 사람으로 오기 위한 진화론은 세상이 마치 사람으로 거듭나기 위한 과정으로 종속된다. 진화론은 생존을 위한 경쟁으로 생명의 과정을 설명함으로써 자연을 지배하고, 세상을 지배해 온 '당연한' 논거로 자리매김해 왔다. 그래서 모든 것은 '생존을 위한 경쟁'의 모델로 등극했다. 경쟁은 자연과 세상을 '전쟁터'로 규정하고, 적군과 아군으로 배타적인 관계를 정립시켜 왔다. 죽고 사는 것, 밉고 사랑하는 것, 아름답고 추한 것, 귀하고 천한 것, 작은 것과 큰 것, 좋은 것과 좋지 않은 것으로 모든 것을 대별했다. 그 가운데의 스펙트럼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애써 무시했다.

내 입맛도 오늘과 내일이 다르고, 신맛도 사과의 신맛이 있고 포도의 신맛이 있다. 맛은 사람마다 다른데 맛이 있다, 없다를 판별하여 획일화한다. 무엇은 귀하고 무엇은 천하다고 여기면 마음이 불편하다. 무엇이든 귀하다고 여기든지, 아니면 무엇이든 다 천하다고 여기게 되면 마음이 편해질 것이다. 왜냐하면 귀천의 분별로 마음을 태울 일이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시비는 이기고 지는 결말을 노린다. 이기면 옳은 것이고 지면 그른 것이라는 비참한 결론을 내리려고 한다. 그래서 시비는 사람을 강박하게 하고 잔인하게 한다. 그래서 사람의 시비로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말고, 그저 자신이 입맛대로 살아가되 다른 이의 입맛을 배타하지 않으면 될 일이다.

생태적 사유관은 자연의 본성을 따르는 일이며, 삶이란 가져온 그대로 기회와 환경이 되면 발아하는 종자처럼, 설혹 발아하지 못하면 토양이 그 종자와 맞지 않는 것이지 종자가 잘못되거나 토양이 잘못된 것이 아닌 것처럼, 우리의 삶이란 종자와 밭으로, 그 본성대로 살아가는 일이다. 우리의 삶은 고통 속에 있지 않다. 또한 불완전하지도 않다. 그것은 종교가 인간에게 쳐 놓은 거짓의 덫이다. 종교가 이 세상에서 벌어 먹기 위해 만들어 놓은 조작이다. 자연의 구성원이 모두 자연의 본성대로 저절로 살고 지고, 모든 만물이 우위도 하위도 없이 똑 같으며, 온 삶으로 태어난 존재로서 삶이란 본성을 펼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현대 문명의 종속적인 노예로 살아가지도 않을 것이며, 그리하여 우리는 한없이 자유롭게 행복하게 살아가는 삶이 될 것이다. 가장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이는 다름 아닌 생태순환적인 자연을 닮은 농부일 것이다. 자연 순환 속에서 인간의 본성과 자연의 본성을 깨닫는 생활이 자립이다. 249-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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