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번역청을 설립하라

백_일홍 2022. 8. 1. 17:55

번역청을 설립하라 _ 한 인문학자의 역사적 알리바이

 

박상익

 

한국에서 공부한다는 건.

박상익, <번역청을 설립하라, 한 인문학자의 역사적 알리바이>를 읽고.

우리와 같은 동양권인 일본은 노벨물리학상은 탄 이가 여렷이라는데 그 이유가 그들은 19세기에 이미 국가차원에서 서양고전을 완벽히 번역했다고 해요. 일븐학자들은 모국어 일본어로만 사고하고 연구할 수 있었다는 거죠. 양자, 원자, 소립자와 같은 물리학 용어는 물론 전립선, 췌장 등 의학용어, 사회라는 단어 등도 일본이 서양말에 대해 번역하는 과정에서 창조한 단어라고 하네요. 사람은 모국어로 사고할 때 가장 창의적이라고 해요.

저자는 문명발달사적 차원에서 한국의 위치와 그에 따른 번역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데요. 이 책은 본격적으로 번역문제를 제기한 책, <번역은 반역인가?> 출판 이후에 쓴 글을 모아 팜플렛 처럼 앏게 나온 책이네요.

이 책을 읽다보니 저자의 여러 주장들과 그의 관점에 대해 수긍하게 되었고 배울 바가 여럿 있네요. 제가 속한 7080세대가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한글로 독서를 하게된 세대라는 점, 그리고 세계 문명권의 나라들과 비교해서 너무나 늦게 시작된 국민적 독서가 그마저 스마트폰이라는 이기로 인해 끊어지고 있다는 점은 참 안타깝고. 서양사를 전공한 저자가 이땅의 지식인으로서 갖고 있는 고민은, 제 처지는 많이 다르지만 저에게도 의미있게 다가옵니다.

일전에 읽은 <내내 읽다가 늙었습니다>를 쓰신 박홍규님은 박상익님과 같은 '인문학 의병'으로서 몸소 실천하는 지식인이네요.

(책에서 발췌한 부분)

전 세계의 지식을 온 국민이 모국어만으로 습득할 수 있는 지식 민주주의이 실현은 우리에겐 가당치도 않은 꿈일까? 선진국 진입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한 별 볼 일 없는 2등 국민이라서? (일본은 19세기에 이미 해 낸 일이다.) 62

제주 용머리해안의 하멜상선 전시관. 2003년 하멜 제주표착 350년을 기념해 만들었다. 네덜란드인 하멜 일행은 선진국 선원답게 조선술, 소총, 대포 제작, 축성, 천문학, 의술 등에 일가견이 있었다. 그러나 효종과 그의 신하들에게는 그들의 쓸모를 알아보는 안목이 없었다. 조선 조정이 그들의 표착을 계기로 넒은 세상에 눈을 뜨고 미래를 준비했더라면 그 후 한국 역사는 다른 길을 걸었을 것이다. 조선의 국왕과 신료들은 무능한 데다 국제 감각도, 역사의식도, 국가 전략도 갖추지 못했다. 못난 조상들이었다. 63

우리는 지난 반세기 동안 근대화에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정체성은 우선순위에서 저만치 밀려나 있다. 근대화를 통해 상당한 정도의 물질적 성취를 이룬 시점이다. 이제 내가 누구인지, 한국은 내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돌아볼 때가 되었다. 이땅에 굳건히 뿌리를 내리고 '우리의 꽃'을 활짝 피어 낼 지식인도 있어야 겠다.

100년 전 일본의 독서 국민 탄생 과정을 읽으면서 그 무렵의 우리 모습을 그려본다. 하지만 우리는 100년전 독서 문화를 거론하기도 민망하다. 일본어를 국어로 상용하다가 광복 후 한글을 본격적으로 쓴지 이제 겨우 70년 남짓 되었으니 말이다. 일본이 엄청난 물량의 텍스트를 국민들에게 제공하던 1세기 전, 우리에게는 언문일치의 모국어 텍스트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의 독서 국민은 언제 탄생했을까?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이른바 7080세대가 진지한 책 읽기에 익숙했던 첫 세대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운동을 위한 이론 학습 과정을 통해 체계적인 독서 훈련을 쌓았으며, 계간지와 사회과학 서적의 홍수 속에서 삶의 길은 책에 있음을 몸으로 실감했다. 이들은 학창 시절 '도서관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다 읽어 내고 말리라'고 다집하거나, 바로 그렇게 사는 선배와 친구들을 존경과 경같의 눈으로 바라본 경험이 있는 세대다.

하지만 뒤늦게 형성된 독서 습관은 단절 직전 상황이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에 따진 젊은 세대는 바햐흐로 비독서 국민으로 거듭나고 있는 중이다. 99

우리 역사에는 18세기와 19세기에 서양이 누렸던 것과 같은 독서문화의 황금기가 없다. 19세기 일본처럼 독서 국민 탄생의 역사적 경험도 없다.  OECD 국가 중 우리의 독서율이 골찌 수준에 머무르는 데는 이런 역사적 배경이 가로놓여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19세기까지 한자 위주의 문자 생활을 하다가, 20세기 전반 식민지 시대를 겪으며 일본어를 국어로 사용해야 했던 우리 모국어의 슬픈 역사도 한몫했다. 우리가 제대로 한글을 사용한 것은 해방 이후부터였다. 하지만 해방 당시 13세 이상 인구 중 한글을 전혀 읽거나 쓸 줄 모르는 문맹자가 77퍼센트에 달했고, 1950년대까만 해도 많은 사람이 군대에 입대한 후에 야 한글을 익히고 부모님께 편지를 쓸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니 우리가 본격적으로 모국어 독서를 한 것은 이제 겨우 반세기 남짓에 지나지 않는다. 104

제도적 격려도 없고 독자도 찾기 힘든 현실에서 소통을 위한 인문 콘텐츠 생산에 박차를 가하려면 자기최면이 필요하다. 내 경우는 책 한 권이 국회의원 한 명의 4년 의정 활동과 같은 중요성을 갖는다고 자기암시를 한다. .... 제도 밖에서 노력을 기울이는 인문학자들은 거칠게 비유하면 '인문학 의병'들이다.  인문학 교수가 정녕 독립적 지식인이라면 제도와 현실이 어떻든 독자에게 다가서려는 소통의 노력을 게을리할 수 없다. 기독교에서 그리스도의 성육은 절대자가 지극히 낮은 곳에 임한 사건이다.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광장, 아고라를 누비며 시민들을 찾아다닌 것도 소통하기 위해서였다. 우리 인문학은 소통에 목마르다. 111

질문: 국내파 학자로서(?) 번역에 남다르게 관심을 갖은 연유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답: 이 땅에서 한국인으로서 서양사를 공부해야 하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항상 고민했습니다. 서양사를 공부해도 우리의 시각에서 우리에게 의미있는 방식으로 하고 싶었습니다.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었죠. 저의 주 전공이 청교도 시인 존밀턴인데, 밀턴 역시 영국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했더군요. 좀 더 근원적으로 파고들자면, 제가 존경하는 20세기 민족주의 기독교 사상가 김교신의 무교회주의에서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습니다. 무교회주의는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치열하게 하는 기독교거든요. 125

번역가를 꿈꾸는 젊은 인문학도들에게

1. 번역은 한국어 사용권에 존재하지 않는 텍스트를 존재하게 만드는 가치있는 행위다. 그것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이다. 좋은 책 한 권을 번역한다는 것은, 한국 사회라고 하는 거대한 동굴에 등불 하나를 밝히는 일과도 같다. 좋은 번역서 한 권이 국회의원 한 명의 4년 임기 의정 활동보다 더욱 큰 가치를 가질 수 있다는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이 일에 임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2. 번역가는 먼저 독립적인 사고 능력을 지닌 지식인이 되어야 한다. '이 땅에서' 공부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학연, 지연, 정실에 의지하여 인생을 도모하려는 정신 자세로는 번역 작업을 수행해 나갈 수 없다. 오직 글쓰기 능력과 출판된 결과물에 의해서만 엄정한 평가를 받겠다는 자세로 철저한 직업 정신을 견지해야 한다. 관심 분야에 대한 꾸준한 독서를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무식유죄, 유식무죄임을 잊지 말자.

3. 변역가는 편집자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도움을 적극적으로 요청할 줄 알아야 한다.

4. 쓰고 또 쓰고, 고쳐 쓰고 또 고쳐쓰는, 이마에 땀 흘리는 수고를 마다하면 안 된다. 변역에는 왕도가 없다. 궁극적으로 정성이며 성의다. 지성이면 감천이다. 문장의 리듬을 살리기 위해 소리 내어 읽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5. 번역가는 기본적으로 독서인이어야 한다. 자신만의 개인 도서관을 만들어 관심 분야에 대한 책을 꾸준히 사모으고 책 읽기를 삶의 가장 소중한 부분으로 여길 수 있어야 한다. 인문학이란 가장 근원적으로 보자면 결국 글 읽기와 글쓰기다. 읽기가 없이는 쓰기가 나올 수 없다. 책 읽기를 즐겨라.

6. 능력과 재능이 있는 자는 언젠가는 인정받을 날이 오고야 만다. 번역가가 그 하는 일의 중요성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은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엄연한 현실이다. 한국사회가 멸망하기로 작정을 하지 않은 이상 번역과 번역가에 대한 대우가 현 수준에서 머물 수는 없다. 한국은 망하지 않는다. 끝까지 정도를 걸어라. 합당한 대우를 받는 날이 올 것이다.

7. 인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이라면 논문 작성 과정에서 자신이 연구하는 텍스트를 읽지만 말고 번역, 역주 작업을 동시에 진행해 주기 바란다. 그렇게 해야만 논문의 차원을 넘어 본격적인 학술 단행본 출판으로 이어질 수 있다. 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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