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신을 찾아서
김신명숙
그녀가 나타났다.
지금까지 내 인생이 여신으로 수렴되는구나, 여신을 만나기 위해 굽이굽이 삶의 단계들, 고비들을 지나왔구나. 나도모르게 일어나 여신을 껴안고 함께 춤추었다. 그때까지 내 삶의 두 주제, 인간 존재의 근본적 문제와 페미니즘이 하나로 통합되면서 지나온 과정 하나하나가 새로운 의미로 재구성되고 있었다. 여신은 그 둘을 아우르는 온존한 존재였고, 내 삶은 이제 온전성을 향한 질적으로 다른 단계를 마주한 것이다. 그때의 환희란! 25
여신운동의 탄생
세계의 다채로운 여신전통들을 자원으로 삼아 현대 여성의 욕망과 경험에 맞는 영성이 무엇인가를 탐구해왔다.
전체를 통제하고 최고 조직이나 배타적 권위를 가진 하나의 경전을 인정하지 않는다. 보편적인 조직 운영에 관한 규정도 없다. 각자의 위치에서 자유롭게 탐구하고 실천하며 움직일 뿐이다. 개인이나 서클의 자율성과 창조성이 최대한 존중되는 것이다.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특징들:
1. 자연 혹은 지구가 여신이라는 것이다. 어머니 지구, 위대한 여신이라는 메타포를 통해 자연의 신성한 힘을 환기시킨다.
2. 세계의 주요 종교들이 부정하거나 격하시킨 여성의 몸과 힘, 신성과 인간성을 온전히 되찾고 여성들의 관계와 역사를 회복하려 한다.
3. 믿는 것보다 몸으로 느끼고 행하는 것을 중시한다. 여신은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살아 있는 생명력이고 어디에나 존재하는 신성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학적 설명보다 리츄얼이 핵심을 이룬다. 사계절의 순환이나 해와 달, 별의 움직임에 따라 다채로운 리츄얼을 행하며 자연의 여신 ,내안의 여신과 접촉한다.
'여신'이라는 용어로 인한 오해 :
'치마입은 남신'이 아니다. 기독교 하나님 같은 남성 유일신의 성만 바꾼 신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여성의 몸에서 탄생한다. 이 엄연한 사실에 여신의 뿌리가 있다. 여신은 모든 이분법적 구분을 뛰어 넘어 전체를 감싸며, 뭇 생명과 존재들의 상호연결성과 상호의존성을 드러낸다. 남성 또한 여신의 일부다. 아들도 어머니의 몸에서 태어나 그녀의 젖을 먹고 자란다. 그들의 심리를 형성하는 원초적 토대도 어머니다. 여신은 영성과 남성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다양한 성들도 낳고 품는 통합적 모성이자 여성성이다. 12-13
(비교. 가부장제의 모자관계. 우에노 치즈코의 가부장제 정의)
여신문화의 비전
"영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
사회의 진보와 사회 구성원들의 영성 또한 상호 연관되어 있다. 사람들의 영성이 튼실하지 못한다면 세상의 변화도 어려워지고, 세상이 추악하면 개인의 영성도 뒤틀린다. 13
여신문화가 제시하는 비전
. 모든 존재들이 생명의 망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고 평등한 공동체 의식을 키우기
. 자연과 몸의 신성성을 되찾고 일상적 삶의 기쁨을 고양하기
. 전쟁과 지배, 탐욕이 없는 세상에서 소박하되 아름답게 살기.
환경,평화,여성운동, 에코페미니스트
수천 년 잠들어 있던 여신이 깨어나 점점 더 커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상의 상처와 고통들이 그녀를 부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달처럼, 구름처럼, 사계의 순환처럼 끊임없이 변화하는 그녀는 자신을 찾는 사람들에게 수만 개의 이름과 형상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각자에게 맞는 선물을 건낸다. 그 비밀 상자에는, 그리스 속 판도라의 상자와 달리, 치유와 변화의 힘이 들어 있다. 바리공주처럼 생명을 살리고, 세오녀처럼 사라진 해와 달을 되찾게 한다. 세상에 생기와 총기와 영기를 반짝이도록 한다.
그 첫걸음은 결코 어렵지 않다. 익식하고 당연한 것들에서 한 걸음 물러나 네 목숨의 소리, 신명의 소리를 들으려 할 때 여신의 마법이 시작된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방식으로. 14-15
불국토가 되기 전 여신의 땅이었던 경주. 28
지적 순례이 길잡이가 돼 준 사람은 고고신화학자 마리야 김부타스였다.
우리 여신들이 보여 준 새로운 세상
첨성대와의 만남.
첨성대는 천문 관측을 했던 여신상이자 신전이었다. 신라의 대여신 서술성모를 드돞이기 위해 선덕여왕이 세운 것. 포석정 역시 경주 남산의 여신을 위한 성소였던 것으로 보인다. 경주는 불국토이기도 했지만 여신의 땅이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는 눈이 없어 지금껏 경주가 보여주느느 여신의 역사를 보지 못했다. 불교 하나로 만나는 경주보다 불교와 여신신앙이 교차하며 어우러진 경주가 더 풍요롭고 매력적이다. 게다가 신라의여신신앙은 불교가 유입됐을 때 이미 수천 년의 역사를 지닌 우리 토착종교였다. 여신을 통하니 신라에 여왕이 셋 혹은 그 이상 존재했던 이유도 알 수 있었다. '신성한 여성'을 존중하는 전통이 있기 때문이었다.
가장 놀라운 발견은 우리 고대의 하늘이 여신이었다는 사실. 지리산 성모천왕, 정견천왕, 마고할미나 설문대할망, 서술성모도 다 하늘 여신들이었다. 우리 여신들의 기본값이 '하늘 자궁'이었음.
여신을 흔히 지모신이라고 하지만 고대의 우리 여신들으 하늘과 산, 땅과 물을 다 아우르는 전일적 신이었다. 천지간에 가득한 우주적 생명 에너지의 화신이었다. 그 에너지의 조화 속에서 세상 모든 생명들이 태어나고 자랐다. 그리고 죽은 후 다시 태어났다.
한국 여신의가장 보편적이고 핵심적인 상징은 여근(여성 성기/자궁)이다.
오늘날 여신이 낯선 수수께끼로 남은 것은 불교와 유교가 한국사회를 지배해 온 결과다. 음사로 모로리고 미신으로 배척당하면서 우리 여신들은 힘을 잃고 달빛 아래로 숨어야 했다. 그러나 그녀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 곳곳에 낮은 포복으로 살아 있었다. 31
여신운동은 종교가 아니다
여신의 동굴은 종교의 시원에서부터 세상 곳곳에 존재해 왔다.
여신영성은 우리가 알고 있는 종교가 아니다. 신과 종교는 다르다. 종교는 제도일 뿐이다. 권력이 되어 버린 제도종교는, 우리가 익숙하게 보아 왔듯, 종종 자신의 신을 배반한다.
여신운동은 종교라기보다 영성운동이자 문화운동이다.
우리 존재와 삶, 자연과 우주를 뿌리 깊이 느끼고 성찰하면서 신성하고 행복한 자신과 만나는 일이다. 뭇 생명들이 끊임없이 순환하는 생명의 망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달으며 그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살고자 하는 노력이다.
모든 존재의 근권이 여신의 우주적 자궁이며, 어머니의 사랑이 우리를 살려왔듯, 여신을 통할 때 세상의 생명들이 골고루 번성하리라는 믿음이다. 33
15.고인돌에 사는 태초의 어머니
순례를 통해 나는 동아시아에서 마고에게 일어난 일이 우리 서양 전통에서 태초의 어머니에게 일어난 일과 유사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녀들의 이야기는 감취져 왔고 국가와 남성 영웅들의 변화하는 입맛에 따라 은폐돼 왔다. 그녀는 남성 신과 현자의 이미지로 대체되었고 마치 그들이 '태초에' 있었던 것으로 되었다.(주43)
379
주43.단군신화에서 단군의 아버지 환웅은 풍백, 우사, 운사를 거느리고 인간세상을 다스린다. 그런데 창원대 도진순교수는 풍백, 우사, 운신긴 농경과 관련된 신이 아니라 전쟁신이라고 한다. 환웅ㅡ단군족은 홍익인간의 교화이념 뿐 아니라 전쟁의 무력도 갖춘 부계종족으로서 모계 토착세력인 웅녀족을 복속시켰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단군에게 복속되고 반야도사를 기다리다 죽은 마고 할미는 가이아처럼 화려한 부활을 하지 못하고 있다. 379
2부 축하의 글.
세계 최다 고인돌과 샤머니즘, 한국의 소중한 문화유산
아니네 반데메르 Annine van der Meer(네덜란드 판소피아 아카데미 대표, 종교사학자, 신학자) 253-255
18.첨성대는 반추상 여신상이다
네덜란드에서 온 여신연구자
반데메르, 2013 책, <태초 어머니의 언어: 4만 년에 걸친 세계 여신예술에 나타난 여성 이미지의 진화> 439
경주, "낮은 산으로 빙 둘러 싸인 게 자궁의 형상이네요"
(비고. 정토회, 경주남산순례)
선덕여왕을 통해 첨성대를 살피기 위해서는 그녀의 즉위 배경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당나라 황제, 여왕이란 존재를 못 마땅하게 여김. 당나라는 이미 가부장제가 깊이 뿌리내린 상태.
국내의 종교적 문화적 변동도 여왕에게 적대적. 이미 유교가 통치이념으로 자리잡은 데다 신흥종교인 불교도 남성 중심적임. 여자는 전륜성왕이 될 수 없다는 여인오장설(여인불성불설)
이런 상황에서 선덕여왕이 권위와 정통성을 주장하려 할 때 가장 힘이 될 정치 문화적 상징은, 현실적 세력면에서 불교 못지 않았을 여신 중심의 토착 종교였을 것이다.
신라의 여신신앙은 여사제 제도와 함께 신성한 여성의 전통을 이어 왔고 이는 여남관계를 평등하게 밀어주던 핵심적 지렛대였다. 442-443
신성한 모녀관계(서술성모ㅡ알영, 박혁거세 부인)
--> 신성한 모자관계(마야부인 ㅡ 석가모니)
서술성모의 후신 지리산 성모가 마야부인으로 여겨졌다.
* 마야부인은 여신이었나?
선덕여왕은 건국시기에 여왕조상을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이러한 추정은 현대 한국인들의 역사관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들지도 모른다. 뒷받침되는 역사 기록도 거의 없다. 삼국시대의 역사가 훗날 유학자와 승려에 의해 기록됨으로써 여신전통을 지워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고학 분야는 상황이 매우 다르다. 445
선덕여왕, 존호 '성조황고' 성스러운 조상을 둔 하늘 여신.
성스러운 조상은 누구일까? 박혀거세나 김알지가 아님, 여왕의 부계조상이란 일종의 모순어법. 부계전통에선 여왕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
신라는 양계사회였음. 서술성모.
신라의 초기국호. 계림국. 계림은 성모의 호칭.
첨성대는 선덕여왕에게 올려진 존호 성조황고의 표상물로 보인다. 여왕은 신성한 권위와 왕권의 정통성을 주장하기 위해 서술성모의 신전인 첨성대를 세웠을 것이다. 458
여신의 영역이었던 하늘은 불교와 도교의 유입으로 큰 변화를 겪게된다. 하늘 어머니의 자리를 불교의 남성 천신인 제석이나 도교의 옥황상제가 차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에 따라 여신들은 옥황상제의 딸이나 제석신의 어머니 등으로 격하되고 밀려났다. 482
제주무속에서 옥황상제는 삼승할망에게 임신, 출산법을 가르쳐 주는 존재. 자청비를 제석할망이라 함.
현대 한국인들은 하늘을 당연히 남성이라고 여긴다. 유교 가부장제의 오랜 지배 탓이다. 유교철학에서 하늘은 남성적 초월적 존재로서 의지를 가진 최고의 주재자이자 천자의 절대권력의 근거로 숭앙되었다. 한국 같은 제후국들은 감히 제사를 지내지도 못했다. 485
19.남산의 춤추는 여신, 상서로운 나선
감실부처님, 유홍준
할매부처, 남산에 산재한 불교 유적들 중 가장 빠른 시기인 7세기 전반에 만들어짐. 첨성대 건립시기와 같으니 선덕여왕 때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여왕대에 반추상적 여신상인 첨성대와 구상적 여신상인 할매부처가 동시에 경주 땅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489
여신상인 할매부처는 아마도 경주 남산의 신일 것. 남산의 옛이름이 금오산, 금거북산이다. 거북은 자궁을 상징함.
포석정. 포는 전복. 전복은 여성의 성기를 상징.
여신 상징인 나선이 태극의 기원임. 499
동학과 여신전통
동학 교주인 수운 최제우는 신라 토착신앙의 다른 이름인 풍류도의 주체적 계승자.
해윌 처시형. 부인들의 도닦기가 동학의 근본이라고 보아 일남구녀의 운으로 설명함.
"지난 때에는 부인을 압박하였으나, 지금 이 운을 당하여서는 부인 도통으로 사람 살리는 이가 많으리니, 이것은 사람이 다 어머니의 포태 속에서 나서 자라는 것과 같으니다" 507
동학의 한울님은 선사시대 이래 이 땅에서 숭앙돼 온 하늘 자궁(한알)을 계승한 것으로 보인다.
창세신화, 미륵님의 세월을 빼앗은 석가님
석가님은 자연에서 땀 흘려 얻기보다 약탈과 전쟁을 통해 부를 쌓기 시작한 역사를 대표하는 신이다.
마지막 모란꽃 피우기 내기. 권력의 정당성을 생명살림의 능력에 두는 사상적 특성도 보여준다. 모성적 권력에 대한 인식이다.
꽂을 피울 때 잠을 잤다는 것도 의미싱장. 잠은 죽음을 은유함. 결국 죽음 이후 재생능력을 겨뤘던 것. 그러니 몸과 성을 더럽게 여기고 윤회의 사슬에서 벗어났다는 석가님이 어떻게 꽃을 피울 수 있겠는가? 546
다시여는 글. 여신 서클. 여신은 어디에나 있다.
여신이 왜 중요한데?
여신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불감.
우리사회에서 여신이란 말의 함의가 갖는 한계 탓. 자연과 우주를 표상했던 위대한 여신, 모든 생명체들의 근원이자 귀의처인 여창조주, 세상의 자식들을 다 품어 안는 통합적 모성, 조화롭고 아름다웠던 여신문뫄의 역사가 우리의 의식에서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551
그 결과 우리는 엄마 없는 불쌍한 존재가 되었다. 자연을 추방하고 서로 간에 벽을 친 도시에서 일하는 기계, 돈과 권력의 수단으로 전락했다. 그래서 외롭고 힘들다. 우리와 지구를 공유하는 무수한 생명체들의 경이를 잊고, 게다가 몸의 신명까지 억눌린 일상에는 혼이 없다.
고대의 여신을 다시 살려 낼 필요가 있다. 건강한 영성은 의미있고 행븍한 삶의 토대이자 가장 위대한 인간의 잠재력이다. 진정한 사회변혁의 기본적인 동력이기도 하다. 552
조용한 아침 거실에서 문득 들려오는 새 소리, 창문을 통해 스치는 바람, 집에 오갈 때 만나는 나무와 돝들, 버스 차창으로 스쳐 지나가는 동네 산의 풍경에서도 가슴 가득히 여신을 느낄 수 있다. 553
이제야 알겠다. 하찮은 일로 무시당해 온 여성의 일. 그 숱한 보살핌의 행위들, 밥해서 먹이고 씻기고 아플 때 돌보고 텃밭을 가꾸는 일들이 얼마나 신성하고 가치 있는 일인지를, 왜 이제는 남성들도 그 일을 배워야 하는지를.
성모 마리아, 관세음보살도 여신이다. 554
여신운동은 우리가 알고 있는 배타적 종교 분파와 다르다. 기독교와 불교 같은 주요 종교들은 물론 세상의 모든 영적 전통들을 가로지르며 여성적 신성을 찾고 고무한다.
(1)
내가 무엇인가에 부딪혀 계속 넘어지는데 그래도 힘을 모아 다시 일어나 또 가보지만 역시 방해물에 부딪혀 넘어질 때, 그냥 주저앉아 가만히 생각해본다. 그리곤 곧 깨달았다. 더 이상 2차원의 미로속을 해맬 것이 아니라 내발로 일어나 3차원의 눈으로 보자. 다시 한번 도약하자. 진실은 내가 본래 3차원적 존재였다는 것. 그래서 이 도약이란 기억하기도 까마득한 아주 오래전에 잊고 살았던 나의 진면목을 회복하는 것에 다름아니고, 내 본래의 지혜와 힘을 되찾는 것이다.
그동안 나는 2차원의 미로가 내가 살아가야 하는 세상의 전부일까? 다른 세상은 없을까라고 끊임없이 물어보며 살았지만 간혹 다른 세상으로 향한 틈인 듯 보이는 희미한 빛을 본 듯도 했건만 이 세상에 대항해 사느라 여념이 없어, 그 빛을 그냥 지나쳤던 것 같다. 먼길을 돌아 온 듯 하고,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은 조금 선명히 보이는 그 빛을 따라, 나의 직관과 내면의 목소리를 믿고 가볼 요량이다.
* * * * *
오늘 책 두권을 주문했는데요, 위 글은 이 책을 찾아 읽게된 사유를 써본 것이예요. "페미니즘과 종교" 분야의 대모격인 캐롤 크리스트님이 쓰신 글을 읽게 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 이 분야의 공부를 하신 김신명숙님이 책을 쓰셨더군요. 기회가 되면 우리 모임에서 같이 읽으면 좋겠네요.
(2)
김신명숙님의 <여신을 찾아서>를 읽다가, (여신의) 신성이나 영성과 불교의 불성 혹은 유교의 심성이 다른 것인지 아니면 궁극적으로 같은 것인지 궁금해졌다.
또한 서양에는 보편적 종교인 기독교가 있는데 왜 서구의 여성들(페미니스트를 포함해)들은 여성신의 영성을 찾아야만 했을까? 서양의 종교에서 신은 인간을 초월해서 인간 위에 군림하는 절대자이며 하나님 아버지처럼 남성을 대표하듯 가부장적인 기독교의 길을 갔기 때문일 것 같다. 기독교에 바탕한 서양문명은 전 인류사에 많은 해악을 끼쳤음을 알기에 여신운동은 대안적 문명을 모색하는 노력이라고도 볼 수 있다.
외부의 권위적인 초월자가가 아니라 인간 각자의 내면에 신성이 있음을 설하는 불교와 유교. 이러한 절대평등한 인간이해에 바탕한 문명에 속하는 한국에 내가 태어난 것은 행운일 것이다. 그런데 왜 난 기독교의 가부장성에 반하여 일어난 여신운동이나 여신을 통해 만나는 영성에 관심을 둘까(두어야만할까)? 불교와 유교를 국교로 삼은 왕정국가의 시대를 지나 기독교에 바탕한 서양의 영향을 받은 일본제국의 침략을 받고 성장제일주의의 근대화를 거친 한국. 지금의 한국은 불교와 유교가 말한 한국인이 가진 본래의 심성에 바탕을 둔 사회가 아니다. 이 모임에서 읽은 <한국철학의 맥(한자경)>에서 말하는 우리 한국인에게 고대부터 면면히 이어져 왔던, 우리 모두가 불성을 가진 절대 평등한 존재이며 그렇게 서로를 섬겨야 한다라는 인간에 대한 이해와 철학을 상실하고 있는 것 같다.
기독교에 바탕한 서양, 그리고 여신을 통해 영성을 찾을 수 밖에 없는 서양의 여성들과/ 불교, 유교에 바탕한 동양, 한국의 나, 이렇게 서로 엄청나게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김신명숙님의 책을 통해 만나게 된 경위에 대해 생각해본다. 서양의 길이든 동양의 길이든 어떤 길을 걸어 왔든 지금 여기는 가부장제 문명하의 지배와 폭력, 차별이 먄연한 사회이다. 내 엄마, 엄마의 엄마, 내 시어머니와 시어머니의 엄마의 생을 생각해보면, 무릇 '사람 여성'은 자식들 데리고 변변히 살아가는 것도 녹녹치 않은 일이었다. 이 것뿐아니라 내가 누구인지 나는 어디로 가는지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지 등 실존적인 문제를 깨달아 알고 살아가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다. 특히 나에게는 그렇다. 사람은 살아가는데 '빵과 장미' 모두를 필요로 하는 그런 영적인 존재이기에. 그래서 잠시 생각해보면, 내가 어느 시점에선가 여신과 그를 찾는 서양의 여성들을 만나게 예정되었는지도 모른다.
또 한편, 리타 그로스라는 미국의 여성(종교학자)은 모태신앙인 기독교에서 유대교로 그리고 마침내 불교로 개종을 했는데, 리타의 이 험난한 영적 모색의 길이 어떤 내용인지 궁금하다. 그것은 아마도 그녀가 '버린' 기독교의 나쁜점과 힘들게 찾은 불교의 좋은 점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기때문일 것 같고 그녀가 보는 불교와 내가 보는 불교는 어떻게 다른지가 궁금하기 때문일 것이다.
여신의 책을 읽다, 이전에 읽었던 한자경님의 <일심의 철학> 책을 다시 집어들게 되었다.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을 비교하고 서로의 융합을 시도한 내용을 읽었다. 한국 본연의 인간이해의 전통을 잊은 채 아니면 제데로 만나보지도 못한 채 사는 나는, 어쩌면 '불자'임이 무색할 정도로 서양식 사고와 생활방식 속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와 너의 본래면목(신성, 영성, 불성)을 잊은 채 외부의 것들(돈, 명예, 명분, 편의, 건강, 기술, 과학, 죽음 등)에 집착하고 휘둘리는 사람으로.
(3)
책 <여신을 찾아서>를 읽다, 김봉준 화백 이야기가 나오길래 그의 이력이 궁금해, 기사를 찾아봤네요.
책 내용은 이렇습니다. "...그는 자신의 치열했던 삶을 통해 스스로 여신을 만난 듯 했다. 김화백은 모든 사람들의 내면에 트라우마가 가득 찬 이 세상이 치유를 위해 여신을 부르고 있다고 말한다. 운동권 미술가로 험난한 시절을 보내면서 찔리고 베인 상처들을 치유해 준 사람들은 함께 정치투쟁을 했던 남성들이 아니라 주변의 여성들이었다고 한다........"
* * *
[향기나는 사람들] 신화미술관 여는 김봉준 화백
한계레 2008. 10. 8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 진밭마을에 신화미술관을 여는 민중미술가 김봉준 화백.
민중미술가 김봉준(55) 화백이 신화미술관을 엽니다. 김 화백은 군사독재 시절 민주주의를 위해 붓을 가열하게 휘둘렀고, 시위 현장이나 행사 때 내걸리는 엄청난 크기의 걸개그림을 처음으로 그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민중미술가입니다.
25일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 취병2리 진밭마을에 문을 여는 신화미술관은 165㎡(30평)로 규모는 크지 않지만 우리나라에서 신화를 주제로 만들어진 첫 미술관입니다. 민중미술가와 신화, 조금 어울리지 않는 조합 같았습니다. 그는 “신성한 힘을 잃어버린 물질 만능의 시대에 신화를 통해 꿈과 희망을 주고 싶다.”라고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그는 평화와 생명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여신신화에 관심이 많습니다.
“물질 숭배 현대사회의 정신적 뿌리는 남신문명”
“물질숭배가 극으로 치닫고 있는 현대 사회의 정신적 뿌리는 남신문명입니다. 국가주의, 영웅신화, 봉건적 가부장제 등은 위계질서와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전쟁은 불가피하게 되지요.”
신화미술관에는 단군신화는 물론 한국 여신신화, 어머니대지 신화, 도깨비신화, 저승길 신화, 지신밟기신화 등 다양한 신화 상징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150점 대부분이 그의 작품입니다.
그가 표현한 신화의 주인공들은 위협적이거나 권위적이지 않습니다. 대지신은 시골 마을의 옆집 할머니를 닮았고, 토테미즘의 상징인 개, 고양이, 염소 등은 다가가 만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감이 있습니다.
김 화백은 신화미술관에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진행하려고 합니다. 영혼이 맑은 청소년들의 열린 가슴이 신화에 깃든 평화와 생명의 메시지를 쉽게 받아들일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미 마리학교, 청소년 평화학교 등 4곳의 청소년 교육기관과 단체에서 신화를 배우고 체험하겠다고 신청을 했습니다. 문의 전화도 조금씩 늘고 있습니다.
그가 신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5년 전쯤 활동 무대인 부천을 떠나 진밭마을로 내려오면서였습니다. “출세간의 미련을 버리고 예인의 길을 가고 싶어서” 찾은 시골 마을에서 그는 서낭당을 만났고 신화에 눈을 뜨게 됐다고 합니다.
도시에서 볼 수 없고 “숲에서만 보이는, 잊힌” 신
그는 신화를 공부하면서 민주화운동 안에서도 폭력적 남근주의가 적지 않았음을 더욱 분명히 알았습니다. 예전에 민주화 운동을 할 때부터 독재 권력의 폭력성 못지않게 운동가들의 행동 또한 권력지향적이고 폭력적이라고 생각했던 그였습니다. 김 화백은 그런 분위기를 견디기 힘들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몸이 먼저 무너져 내렸습니다. 암에 걸린 것입니다.
“99년 임파선암 3기로 진단받고 병원에서 치료를 했어요. 그때 그렇게 흙을 만지고 싶더라고요. 진밭마을에서 원 없이 흙을 만지며 지냈어요. 흙의 기운이 치료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신화를 공부하면서 흙은 대지이자 어머니신이며 생명과 살림의 신임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도시에서 볼 수 없는 “숲에서만 보이는 잊힌” 신이었습니다. 그는 대지신 같은 여성신에서 생명과 평화라는 새 시대의 가치를 봤습니다. 이제 폭력과 파괴로 얼룩진 남신문명 대신 여신문명이 시작되어야 했습니다. 그가 신화미술관을 만들게 된 이유입니다. 뜻을 세우자 문화관광부와 원주시, ㈔오랜미래문화연구회에서 재정적인 지원을 했습니다.
김 화백은 신화미술관 개관 행사의 주제를 여신으로 정했습니다. 25일부터 11월22일까지 열리는 ‘여신신화축전 2008’은 어머니대지신화춤, 강의, 노래 등 여신 관련 문화행사와 여신신화와 관련한 강좌, 여신상징만들기 체험 등으로 꾸며집니다.
“올해 주제는 내 안에서 신성한 힘 찾기입니다. 신성한 힘은 여성성을 말합니다. 남성성이 파괴한 세상을 구원하는 힘, 하지만 여성은 물론 남성 안에도 내재한 힘이지요. 그 힘이 평화와 생명의 세상을 열 겁니다.”
(033)746-526.
원주/권복기 기자 bokkie@hani.co.kr
* 데메테스 여신상(테라코타,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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