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더 나은 오늘은 어떻게 가능한가

백_일홍 2022. 8. 1. 21:51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더 나은 오늘은 어떻게 가능한가

 

유발 하라리

 

서문

 

이 책은 지구 차원의 관점에서 썻지만 개인의 차원에도 소홀하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다. 나는 우리 시대의 거대한 혁명들과 개인의 내적인 삶이 연결돼 있음을 강조하고 싶다.... 

 

지구촌 세계는 우리의 사적인 행동과 도덕에도 유례없는 압력을 행사한다. 우리 각자가 모든 것을 포괄하는 숱한 거미줄 안에 포획돼 있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우리의 행동을 제약하지만 동시에 우리의 미동까지도 아주 먼 목적지까지 전송한다. 우리의 일상사가 지구 반대편 사람들과 동물들의 삶에 영향을 주고, 어떤 사적인 동작이 예기치 않게 전 세계를 불지를 수 있다. 아랍의 봄에 불을 붙인모하메드 부아지지의 자기희생이라든가, 자신의 성추행 피해 사연을 공유해 미투 운동을 촉발한 여성들이 그런 사례다.

 

이러한 우리의 사생활의 지구적 차원을 감안할 때, 우리가 갖고 있는 종교적, 정치적 편견과 인종적, 젠더적 특권, 그리고 제도적 억압에 대한 무의식적인 공모관계를 드러내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내 삶의 지평을 훨씬 넘어 확장되면서, 인간의 통제에서도 완전히 벗어나고 있고, 모든 신과 이데올로기마저 의심하는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확실한 윤리적 기반을 찾을 수 있을까? 11-12

 

1부.기술적 도전

생명기술과 정보기술이 합쳐지면서 사상 최대 도전에 직면한 바로 지금 인류는 지난 수십년간 세계 정치를 지배했던 자유주의 이야기에 대한 믿음을 잏고 있다. 

 

1장, 환멸, 역사의 끝은 연기되었다. 

 

20세기 동안 글로벌 엘리트들이 세 가지 거대 이야기를 만들었다. 그것으로 모든 과거를 설명하고 전 세계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파시즘 이야기, 공산주의 이야기, 자유주의 이야기다. 

 

자유주의 이야기.

민주정부, 자유기업, 사람들은 스스로 생각하고 자기 내면의 소리를 따르는 법을 터득했다. 

인권, 자유

 

하지만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닥친 이래 전 세계 사람들은 자유주의 이야기에 점점 환멸을 느끼게 되었다. 장벽과 방화벽이 다시 유행이다. 

터기와 러시아의 새로운 유형의 반자유주의적 민주주의와 노골적인 독재

중국 공산당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

미국의 트럼프의 부상

어떤 이들은 옛날의 계층화된 세상을 다시 그리워하게 되었고, 이제와서 인종적, 민족적, 젠더적 특권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한다. 

또 다른 이들은 자유와와 세계화라는 것이 결국에는 대중을 제물로 소수 엘리트에게 힘을 건넨 거대 서사라고 결론 내렸다. 

 

급기야 2018년 우리 앞에는 어느 이야기든 하나도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현실을 해석할 대안적인 프리즘도 가진 게 없다. 방향감각을 잃은 이들은 종말론적 사고에 빠져들었다.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면 정신은 재앙적 시나리오에 집착하게 된다. 

 

방향감 상실과 임박한 종말에 따른 불안감을 파괴적 기술 혁신의 가속으로 악화된다. 

자유주의 정체체제는 ~ 세상을 관리하기 위해 국축된 것. 그러다 보니 현재 정보기술과 생명기술 분야에서 일어나는 혁명적 변화에 대처하는 데 곤란을 겪고 있다. 

 

그 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정보기술과 생명기술 분야의 쌍둥이 혁명은 경제와 사회 뿐 아니라 신체와 정신까지 재구성할 수 있다. 과거에 우리 인간은 바깥 세계를 지배하는 법을 터득해왔다. 이 두가지 혁명을 통해 우리는 우리 내부 세계까지 통제할 수 있고 나아가 생명을 설계하고 만들 수도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뇌를 설계하고 삶을 연장하고 우리의 생각도 임의로 죽이는 법까지 터득할 것이다. 그 결과가 어떻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는 아직까지 우리 자신의 정신이 얼마나 복잡한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자신들의 결정이 어떤 정치적 함의를 갖는지 거의 알지 못하고 어느 누구도 대표하지 않는다. 

자동화의 잠재적 충격 문제, 알고리즘이 일자리를 가져갈 거라는 경고도 하지 않음. 

 

2018년의 보통 사람은 점점 자신이 사회와 무관하다고 느낀다. 20세기에 대중은 착취에 맞서 봉기를 일으켰고, 경제에서의 핵심적 역할을 정치권력으로 환산하려 했다. 이제 대중은 자신이 사회와 무관해질까봐 두려워한다. 그래서 너무 늦기 전에 자신에게 남은 정치권력을 사용하는데 필사적이다. 예. 브렉시트와 트럼프의 부상. 정치권력을 누리고 있지만 자신의 경제 가치를 잃는 것이 두려웠던 많은 사람들. 

 

아마도 21세기 포플리즘 반란은 사람들을 착취하는 경제 엘리트가 아니라 더 이상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경제 엘리트에 맞서는 구도로 전개될 것이다. 이는 지는 싸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착취에 반대하는 것 보다 사회와 무관해지는 것에 맞서 투쟁하기가 훨씬 힘들기 때문이다. 

 

자유주의 불사조.

이제 우리는 트럼프의 순간에 처했다. 그렇지만 이번에 자유주의 이야기가 마주한 상대는 제국주의, 파시즘, 공산주의처럼 일관된 이데올로기를 가진 적수가 아니다. 트럼프의 순간은 훨씬 더 허무주의적이다. 

 

결국 인류는 자유주의 이야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자유주의와 공산주의 모두 이제 신임을 잃었다면 인류는 하나의 전 지구적 이야기라는 생각을 포기해야 할까? 

자유주의의 고장으로 공백이 생기자 잠정적이나마 각 국가의 지나간 황금시절을 그리워하는 환상이 그 자리를 매우고 있다. 

민족주의적 애착과 종교적 전통을 뒤썩인 향수 어린 꿈. 

 

대부분의 사람들은 21세기 초 자유주의 질서의 보호 아래 경험했던 것보다 더 큰 평화나 번영을 누려본 적이 없다. .. 하지만 자유주의는 우리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들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이 없다. 생태학적 붕괴와 기술적 파괴라는 문제 말이다. 자유주의는 전통적으로 경제 성장에 의지해 어려운 사회적, 정치적 갈등을 마술처럼 해결했다. 자유주의가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를 화해시키고, 신앙인과 무신론자, 토박이와 이민자, 유럽인과 아시아인까지 화해시킨 비결은 모두에게 파이의 몫을 더 키워주겠다는 약속이었다. 실제로 파이의 크기를 끊임없이 키워감으로써 그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경제성장은 지구의 생태계를 구하지는 못할 것이다. 오히려 정반대로 경제 성장이야말로 생태학적 위기의 원인이다. 경제성장은 기술적 파괴도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경제 성장 자체가 점점 위력을 더해가는 파괴적 기술의 발명에 의존하고 있기때문이다.

 

결국 우리에게 남은 과업은 세계를 위한 갱신된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10년은 치열한 자아성찰과 새로운 사회-정치 모델 구상이 두드러지는 시기가 될 것이다. 자유주의는 다시 한번 자기 혁신에 성공해서 이전보다 더 매력적으로 떠오를 수 있을까? 

전통적인 종교와 민족주의는 자유주의가 주지 못하는 답을 줄 수 있을까? 그들은 아주 오랜 지혜를 활용해서 갱신된 세계관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아니면, 과거와 깨끗이 단절하고, 오랜 신이나 민족뿐 아니라 근대의 핵심 가치인 자유와 평등마저 넘어서는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낼 때가 된 걸까? 

 

현재 인류가 이런 질문들에 대해 어떤 합의를 이루기란 요원해 보인다. 우리는 여전히 환멸과 분노의 허무주의적 순간 속에 있다. 사람들은 옛 이야기에 대한 믿음을 잃었지만 새로운 것을 수용하는 데는 이르지 못했다. 그래서 그 다음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 첫걸음은 어둠의 예언을 진정시키고, 공황 상태에서 당혹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공황도 일종의 오만이다. 이것은 세계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정확히 안다는 우쭐한 느낌에서 나온다. 

 

이어지는 장에서 나는 우리가 직면한 당혹스러움 속의 새로운 가능성들은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여기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 밝혀보려고 한다. 하지만 인류의 곤경에 대한 잠재적 해법을 탐색하기 전에 우리는 기술이 제기하는 도전을 보다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기술혁명으로 인해 인류는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가장 힘든 시련을 직면하리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런 기술적 도전의 본질을 이해하려면 아마도 고용시장 이야기로 시작하는게 가장 좋을 것이다. 기술혁명은 조만간 수입억 인간을 고용 시장에서 몰아내고, 막대한 규모의 새로운 무용계급을 만들어낼지 모른다. 이는 현존하는 이데올로기는 모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는 사회적, 정치적 격변으로 이어질 것이다. 43

 


 

▶ 유발 하라리의 책,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더 나은 오늘은 어떻게 가능한가>를 읽었다.

 

호모사피언스 이후 포스트 휴먼의 시대 즉 신과 같은 새로운 슈퍼 인간종(호모 데우스)이 나타나며 인류뿐 아니라 지구의 일체만물에 불어닥칠 절대절명의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 한다. 전체 흐름도 잃지 않고 21가지 주제별(일, 자유, 펑등, 공동체, 문명, 전쟁, 신, 무지, 정의, 교육, 의미, 명상 등)로 나누어 과거, 현재, 미래를 두루 살펴보고 있어, 잘 넘어갔고, 이해하기도 어렵지 않았다. 마지막 두 가지 주제가 의미와 명상이다. 거칠게 말하면, 결국 영광스러운 호모사피언스의 역사는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근본적 무지로 인해 도태, 멸망하고 새로운 종에 자리를 내주게 될 것이다, 그러니 자신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 자기를 관찰하고 관조하라는 것이다.

저자는 현 인류가 어떻게 지금 여기에 서있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떤 미래를 맞을 것인지를 한 폭의 병풍을 펼치듯 잘 그려준다. 이것 만으로도 역사가로서 저자의 역할은 훌륭한 것 같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무명 속의 인간이 이루어놓은 장대한 문명과 그 예견된 결말을 보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내가 누구인지 그 본래의 면목을 돌아보고 알아가는 것, 나 뿐아니라 생명있는 모두가 일심의 마음을 공유하는 절대평등의 존재라는 것을 깨치는 데까지 가야 한다. 멀리 돌아왔지만 진정 출발점에 다시 서야 하는 것이 아닌지?

그래서 나는 한자경님의 책들(모두 `일심`으로 통하는)을 다시 읽기로 했고, 정화스님이 풀어쓴 <법성게>를 새로 읽기로 마음 먹었다. 새삼 이 세상을 다시 새롭게 볼 새로운 눈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 우리 모두가 깨달은 삶으로 있는 것이 우리의 본래 모습임을 사무치게 알아야 합니다. 하나 된 온생명으로 사는 것만이 오늘날 우리가 안고 있는 시대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법성게가 7자로 된 30개 싯구절로 이루어졌다고 하니,
세상과 나의 본래 모습을 그야말로 '사무치게' 알기 위해,
매일 한 구절의 내용을 읽거나 옮겨적을 요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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