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2막을 위한 심리학 - 칼 융의 분석심리학, 삶의 굴레를 벗기다
제임스 홀리스
실망과 곤혹
나 자신이 나의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나 자신의 선택이 언제나 타인들의 가치에 좌우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될 때.
달리 대안이 없는 것처럼 보일때.
사례. 은퇴 후 우울증
정작 자기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억 대해서는 도대체 아는 바가 없다.
어릴적에 언제나 자기 어머니가 아들의 에너지를 마음대로 조종했다는 기억을 떠올림. 자기 어머니가 아들에게 품은 야망에 따라 살았음.
내가 꿈꿨던 인생은 이게 아니야.
영혼의 반란을 겪고 있다. 즉 이사람들의 자아가 그동안 자신과 세상을 이해해 왔던 내용이 뒤엎어 지는 경험. 그런가운데 이들의 영혼이 인생 후반에는 보다 의식적으로 살으라는 초대장을 보내고 있다.
익숙한 환경에서 빠져나와 컴컴한 숲으로 들어선 느낌, 무기력. 우울, 실망.
이 무의식적 정신작용이 던지는 메세지는?
앞의 질문들에 반응한다면 당신은 이미 그런 정신작용을 경험하고 있는지도 몰라.
안락.안전.예측가능성의 욕구.
정박지에서 빠져나오는 것 자체가 심리적으로 큰 이동이다.
이 이동의 목적은 인생의 의미를 찾고, 삶에서 치료의 효과를 누리고, 삶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있음.
영혼의 고통으로 아파하는 사람들. 그들과 함께 일하는 행운
그들과 나는 그 여정에서 함께 '자기(Self)' 만나면서 무한히 겸허해질 수 있었다.
* 자기 : 칼융, 우리의 일장적인 자아의 의식 너머에 아주 온전한 상태로 있는, 고유하고 독특하고 예리하고 목표지향적인 그 이해력을 표현하는 은유로 쓴 용어. 이 은유는 어떤 직관적인 지식에서 비롯됨.
그 지식이란 바로 우리 내면의 무엇인가가 신체조직의 생화학적 과정을 측정하면서 인간을 덜 복잡한 생명체에서 보다 복잡한 생명체로 발달시킬 뿐 아니라 우리를 애초에 생명체로 태어나게 하면서 이루고자 했던 그런 존재의 상태를 추구하고 있다는 깨달음을 말함.
우리 모두의 내면에서 '자기'가 영혼을 보살피고 있다. 즉 우리의 삶을 통제하는 목적 지향적인 에너지 자체가 삶의 의미(초월적인 의미)에 이바지하고 있다. 자신을 살을 떼어 먹여 아이를 살리려는 모성은 의미를 추구하려는 영혼의 욕구를 보여줌.
의미없는 삶. 세상에 지친 남자, 영혼을 찾아 나서다. 자기의 이해관계와 의미추구 사이의 딜레마.
영혼, 당신이 생각을 처음 시작한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당신 자신과 가졌던 가장 깊고 직관적인 관계를 표현할 때 쓰는 단어.
영혼은 당신 자신의 깊이에 대한 직관적인 느낌,
당신의 깊은 속을 흐르고 있는 목적 지향적인 에너지에 대한 직관적인 느낌,
의미를 추구하려는 욕망에 대한 직관적인 느낌,
일상적인 의식이 포착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큰 무엇인가에 참여하고 있다는 직관적인 느낌.
우리의 인생 여정이 펼처질 공간인 4가지 신비에 보다 의식적으로, 보다 현명하게 참여하라고 끊임없이 부추긴다.
4가지 신비란: 이 우주, 자연, 타인, 우리의 '자기'
의미를 제한하는 삶은 영혼에 상처를 입힌다. 당사자들의 영혼이 억눌리고, 그 억압이 이상의 불화로 터져나오기 때문이다.
칼 융, "무의미는 삶의 완성을 방해하고 따라서 병이나 다름없다. 의미는 아주 많은 것을, 아마 모든 것을 견더낼 힘을 줄것이다"
영혼의 문제를 건드리지 않는 심리치료.
우리가 컴컴한 숲에 닿을 때, 그 이유는 종종 타인의 행동이나 운명, 혹은 자신의 선택에 의해 우리의 영혼이 외부로부터 침해를 받거나 부드럽게 흐르던 생명력이 방해를 받고 있기 때문. 우리를 어두운 숲으로 데려온 것은 바로 우리의 영혼이다. 우리에게 더 큰 성장을 꾀하라고 응원하기 위해서이다.
우리의 선택을 영혼의 신비한 가늠쇠와 일치시키는 법을 배우고,
영혼의 상처까지 돌볼 수 있게 될 때에만 심리치료의 효과를 누릴 수 있어.
영혼의 문제를 피하는 한, 옛날의 삶의 방식이 계속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고통의 의미도 찾지 못하게 된다. 오직 그 고통의 의미와 그 고통이 정신적 성숙을 위해 던지는 의제를 의식으로 끌어낼 수 있을 때에만, 우리는 그 어두운 숲에서 다시 빠져나올 수 있어.
우리의 내면에서, 인생의 후반의 여행에 적극적으로 나서라고 자극하고 있는 이 충동은 무엇인가?
'개성화'individuation' : 우리 각자가 스스로 완전하다고 생각하는 인간에 보다 가까이 다가서기 위해 노력하는 일생의 프로젝트이다. 신들이 의도한 그런 인간이 되려는 노력. 자신의 신비, 인생이라고 불리는 여행에서 자신의 존재에 대해 책임을 보다 충실하게 지도록 한다. 타인들의 신비를 존경해야 함은 너무나 당연함.
개성화는 각자의 영혼이 의도한 바에 조금이라도 더 충실하기 위해 자아가 안전과 정서적 강화를 위해 집착하고 있는 것들을 포기할 것을 요구한다.
자기는 인간의 삶의 완정성을 구현한다.(심층의식)
우리라는 존재는 단지 영혼이라는 무지갯빛 바다 위를 떠돌고 있는 의식 중에서도 얇은 막에 지나지 않는 자아가 제한적으로 작용한 결과물일 뿐.
'자기'는 자연이 우리를 위해 짠 계획을 구체화한 것이다. 혹은 신들의 의지를 구체화한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자신의 존재에서 어떤 목적을 경험하고, 세상과도 또 자신의 자기와도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느낌.
개인의 인생 여행과 이 세상의 의미라는 옷을 걸치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을 보면, 삶의 여행이 과거 역사의 파편들 속에서 소란스런 문화에 휩쓸린 가운데 이뤄지고 있다. 그래서 삶의 여행이 의미를 추구하는 여행이 되지 못하고 의미를 상실하는 여행이 되고 만다.
'자기'에 이바지 하는 것은 깨달음을 이루는 것과 같다. 신에 뜻에 이바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개성화는 자아에 이바지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를 통해서 살고자 바라는 것들에 이바지한다. 역설적이게도 우리의 자유는 우리를 통해서 더욱 충실히 표현되기를 바라는 것들에 굴복하는 데서 발견된다.
살다보면 우리의 여행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그 여정을 수정하기 위해 이따금 세상을 멀리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종국적으로 보면 우리는 보다 큰 존재가 되어 세상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어 있다.
신들이 나를 통해서 무엇을 의도하고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이 같은 물음을 던지고, 또 그 물음을 놓고 정직하게 고민하면서 충실하게 살다보면 인생의 부침 끝에 의미와 목적이 있는 보다 큰 곳이 열릴 것이다.
결정적인 선택이 요구되는 갈림길 앞에 설 때마다, "이 길은 나를 확장시킬까, 아니면 축소시킬까?"라고 묻는다면 큰 도움을 얻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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