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nder Saturn's Shadow _ The Wounding and Healing of Men
James Holis
도입.
남성운동의 발생
. 감정적 해소에 불과. 한계적
개인의 치유와 변화가 중요.
사적인 역사와 공적인 병리가 개인 성격형성에 녹아들어가 있음.
이 책의 목적은 컴플렉스들을 취해서 정제하고 통합해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용어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래서 남성의 상처와 치유에 관한 개략적 관점을 제공하는 것임.
집단적인 것의 그림자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여성들의 투쟁의 사례들, 남성에게 용기를 주고 이것이 남성에게도 필요함을 알려줌. 만일 남성이 어둠으로부터 나오지 않는다면 여성에게도 남성에게도 지속적으로 상처를 입힐 것이다 그리고 세상은 결코 안전하거나 건강한 장소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무의식적인 힘, 공적인 제도, 이데올로기는 관성적 힘을 갖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회와 사회의 젠더역할상의 급격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희망할 수 없다. 하지만 첫번째로 필요한 것은 남성들 자신이 심하게 상처입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일이다. 남성은 자신의 트라우마에 대한 무의식과 무지로 인해 반복적으로 자신들과 여성들에게 상처를 입힌다.
이 책은 남성 개인이 자신에 대해 보다 더 잘 인식하고 치유를 가능케 하는 대화로 이끌기 위한 여러가지 작업에 관한 책이다.
우리 삶을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형상은 오직 개인차원에서 개인적 고통을 통해서 작업할 수 있을 뿐이다. 또한 남성들이 자신들의 슬픔과 분노를 고백하는 능력을 키우고, 서로 대화하는 일에 참여하는 일은 세상의 상처를 치유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여성에게는, 엄마컴플렉스와의 투쟁에 관한 설명이 남성이 살면서 겪는 이상한 양가감정을 이해햐는데 유용할 것이다. 우리가 알지못하는 것은 우리를 해지치 않을 것이다는 진실이 아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이 우리에게 깊이 상처를 입히며, 우리는 삼손처럼 맹목적으로 무지 속에서 자신의 머리 위로 탑을 무너뜨릴지도 모른다.
이 책의 제목, 새턴의 그림자 :
남성과 여성 모두 항상 어떤 이데올로기의 무거운 그림자 아래에 있다. 이 이데올로기는 가족, 인종집단, 한 국가의 역사와 신화적 토양의 구조로부터 상속받은 것이다. 이 그림자는 영혼 위에 억압적 무게를 드리운다. 남성은 그 그림자 밑에서 영적으로 억압된 채로 노동한다. 이 무거운 그림자의 경험이 Saturnine이다.
여성만큼이나 남성도 역할기대에 의해 지배받는다, 그리고 남성은 비밀리에 두려움에 의해 지배받는다는 두가지 비밀의 비용은 개별 남성의 고통과 우리사회의 병리를 나타낸다.
남성운동이 필요하고 가치가 있지만 개인적 변화가 일차적이라고 생각한다. 둘, 셋이 모이는 곳에는 언제나 권력의 그림자가 있기 마련이다.
현대 남성이 다시 태어나야 할 곳은 개인적 영혼의 대장간이다. 자신 안에 흐르는 힘을 분간하고 알아차리는 능력을 통해서만...
선한 의지의 남성이 다른 사람들을 고문하고 관료적 괴물과 제도를 만든 것이다.
우리 자신 안에서 이해하지 않은 것은 우리 주변으로 투사된다. 그래서 우리사회의 총량은 우리 각자 안의 무의식적인 것의 총합이다.
남성이 여성적인 것과 내부적으로 어떻게 연관되는가를 충실히 이해할 수록 실제 여성과의 관계의 실타래를 더 잘 풀 수 있다.
모든 변화는 내부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남성은 종종 자신이 경험을 내부화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2장. 용은 죽었다. : 내적, 외적 여성
생명이 동시에 작동하는 3가지 수준들 : 의식, 개인적 무의식, 원형 혹은 집단무의식
에고 의식 아래에 개인 무의식이 있다. 이것은 출생이후 일어난 것의 총합이다. 이것이 개인적 컴플렉스의 영역이다. 켐플렉스란 감정적으로 충전된 경험으로 트라우마의 경우처럼 컴플렉스의 힘은 original affective load가 얼마나 큰지에 따른 함수이다.
우리 생의 모든 경험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엄마와의 경험이다. 엄마의 경험이 심리적으로 결정적임.
어머니와의 분리 즉 출생이후에도 우리는 재귀적으로 재결합을 갈망한다. 어떤 면에서 삶의 모든 행위가 다른 욕망의 대상, 승화, 심지어 우주자체에로의 투사를 통해 이 재결합을 모색하는 에로스이다.
개인의 어머니는 보호자, 먹이는 주는자, 연약한 아이와 거대한 세계 사이의 일차적 중재자이다. 우리 주위에, 우리 위에, 우리와 세계 사이에 존재하는 Primal Object이다.
어머니는 생의 원형의 화신이고 모델이다.
엄마의 생화학, 아이를 취급하는 일, 그에 대한 긍적 혹은 부정, 이 모두가 소년에게 보내는 아이 자신의 존제에 관한 일차적 메세지이다.
우리의 기원, 우리 자신, 우주에서의 우리의 위치에 관해 어떻게 이해하는 가는 엄마-아이의 만남을 통해 최초로 구성된다.
-> 3번째 비밀, 여성적인 것의 힘은 남성의 정신세계에서 막대하다.
개인의 엄머가 삶의 원형의 보유자이므로 우리는 집단적 메세지와 개인의 고유한 메세지 양자를 경험한다.
마더컴플렉스는 엄마에 대한 애정적으로 충전된 관념으로서 우리 모두 안에 존재한다. 그것은 따듯함, 연결, 양육에 대한 갈망으로 경험된다.
여성적인 것의 일차적 경험이 조전적이거나 고통스러운 곳에서는 추방당한 분리된 느낌을 갖는다. 이러한 존재론적 상처는 몸에서 느껴지며, 영혼에 짐을 지우고, 자주 세계상으로 투사된다. 누군가의 세계관은 이 세상에 대한 무의식적이고 현상적인 "독법"에서 기인할 수 있다.
신시아의 사례 :
의식수준 - 자기보호의 삶, 개인 무의식 - 섭식장애, 엄마로부터의 상처를 물질에 투사한다. 원형수준 - 몸과 타인으로부터의 소원함. 왜냐하면 타자와의 첫 만남이 오염되었기에
5장. 남성의 영혼을 치유하다.
8가지 비밀
1) 남성의 삶은 여성만큼이나 제한적 역할기대에 의해 지배받는다.
가부장적 사고 -> 지나치게 획일적인 역할
조국을 지키고, 가족을 부양하고, 이것이 일차적인 진정한 남성의 가치이다.
-> 그 자신의 영혼의 부름, 영혼의 상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그런 피상적 가치에 복무하는데 다른 것을 모르기때문이다. 그러면 남성들은 일의 노예가 되고, 유혹적이지만 무상한 가치들의 봉사자가 된다. 그리고 세상에서 표류한다
여성은 문화에 의해 각인된 여성성의 좁은 범위에 도전해왔다. 이런 일은 남성에게도 필요하다. 남성들은 그들을 감독하는 이미지와 목소리에 대한 관계와 그들의 삶을 급진적으로 되돌아 보는 작업이 필요하다.
남성은 여전히 커다란 경제적 부담을 갖고 있다. 존엄과 목표를 갖고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조건을 위해 싸워야 한다. 그들 영혼에 남아있는 것을 구하기 위해 모든 위험을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
치유과정을 시작하기 위해 첫째로 솔찍해져야 한다. 자신의 감정을 허용해야 한다. 자신이 이룩한 것에도 불구하고 행복하지 않음을 인정해야 한다.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을 구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모른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그런 생각을 막는 두려움, 감정적 고양이가 주머니로부터 나온다면 자신의 삶이 변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치유의 첫 단계는 아마도 가장 어려울 것이다. 자신에 대해 거짓말을 하고, 남성끼리 거짓말을 하는 일을 중단해야 하고, 그들의 불행이 의식되도록 허용해야 한다. 그들의 삶은 틀렷음을 지금부터 변화할 책임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2) 남성의 삶은 두려움에 지배된다.
여성은 감정적으로 솔찍함이라는 커다란 문화적 이점을 갖고 있다. 남성은 마터컴플렉스의 힘을 두려워하고 그러므로 여성을 즐겁게 하거나 여성을 지배하려고 모색한다. 다른 남성도 무서워하는데 다른 남성을 경쟁적 역할로 설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남성을 형제가 아닌 적으로 인식된다.
세상은 거대하고 위험하며 궁극적으로 알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마찬가지이나 여성은 자신과 다른 여성들에게 그렇다는 점을 인정할 수 있다. 여성의 삶은 그렇게 외롭지도 고립되지도, 자기비난으로 점철되지도 않는다.
남성은 미친 관념을 가지고 있는데, 자신들은 두려워해서는 않된다는 것, 자신의 임무는 자연과 자신 스스로를 정복하는 것이라는 관념이다. 자신이 진짜 남자가 아니라는 두려움에 의해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의 부끄러움은 다른 이에게 거만을 떨거나 다른 이를 괴롭힐 때, 삶이 그에게 요구하는 진짜 임무를 은밀히 거부함으로써 과잉보상된다.
자신에게 솔찍하기, 자신의 삶이 얼마나 두려움에 의해 추동되었는가를 인정하기
그를 사로잡을 것이라 위협하던 수치심심을 물리치기
=> 이때 비로소 치유가 시작된다.
3) 여성적인 것의 힘이 남성의 정신경제에서 지대하다.
남성의 삶에서 가장 커다란 정신적 영향은 그의 어머니다. 이 정신적 현존의 막대함때문에 남성들은 4가지 방식으로 여성적인 것과 왜곡된 괸계를 발전시킨다.
(1) 여성에게 너무나 큰 정신적 힘을 보장한다 .
자신의 마더콤플렉스의 막대함을 여성에게 투사한다. "당신은 유방을 갖고 있으니, 당신은 여성임이 틀림없다. 내 엄마는 여성이었다. 당신은 내 엄마와 같아야 해"
여성의 힘을 두려워한 나머지 여성을 기쁘게 하거나 통제하거나, 대면을 피하려 노력한다.
자신의 마더컴플렉스에 의해 발생하는 문제를 인식할 수 없어, 권력에 기반한 투사적 관계에 빠진다. 이것이 전쟁뒤에 놓인 가장 근본적인 진실이다. 이것이 소위 두려움이 에로스를 권력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2) 남성은 자신의 여성적 측면에 공포를 느낀다.
삶을 느끼고, 부드러움과 돌봄에 대한 본능과 능력을 여성의 문화적으로 정의된 본성으로 연관시켜, 그것들로부터 거리를 두려고 한다. 이것은 그들 자신의 아니마로부터 자신들을 분리시켜 심층적인 자기소외를 야기한다. 사실, 한 남성의 "여성적 측면"이라 말하는 것은 오도하는 말이다. 왜냐하면 아니마는 한 남성이 남성임을 의미하는 것 중 필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3) 남성들은 자신의 성적 정체성과 젠더역할의 지지대에서 매우 불안정하기 때문에 협소하고 집단적인 한계는 넘어선 자신의 어쩐 부분을 두려워하고 부정한다. 예. 호모포비아.
적은 다른 남성이 아니라 가부장제가 요구하는 것이 아닌 것에 관한 우리의 두려움이다.
(4) 여성성의 힘에 관한 남성의 경험은 섹슈얼리티에 대한 과대평가와 두려움을 발전한다. 니체는 결혼의 일차적 목적이 대화하고 말했다. 전념적 관계(결혼은 그 중 하나에 불과함)의 목적은 서로를 돌보는 것도, 부모-아이컴플렉스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통해 성장하는 것이다. 관계란 단련하고 확대하는 변증법적인 영적인 만남을 의미한다. 두 성사이이 다리중 하나는 분명 섹스이다. 하지만 남성은 종종 대화에 부족함을 느낌으로 인해 성교를 너무 크게 강조한다.
섹스가 무엇이든지 간에 쉽게 요용된다. 내혹하고 잔인한 세상에서 산 남성들, 그리고 자신의 아니마와의 관계가 얼어붙은 남성들은 섹스가 갖는 일차적인 정신적 목적은 따듯한 곳과 재결합하는 것이다. 섹스는 감정적 안심의 한 형태로서 찢겨진 영혼의 고통을 진정시키는 마약이다.
만일 삶이 그들을 때린다면 그 다음에는 섹스가 약물 혹은 일과 같이 상처를 무감각하게 한 것이다.
성적 행위는 순간적 초월을 제공한다. 오르가즘은 환상적 경험일 수 있다. 그 순간만은 일상적 의식의 강철같은 관 밖에 있는 것 처럼 느낄 것이다.
이는 많은 남성들이 종교적 경험에 도달하는 것과 유사하다. 따라서 성행위는 수용을 향한 필사적 모색을 위장하는 것이다. 마터컴플렉스를 은익한 밑바닥에서 그것은 궁극적으로 파괴적인 게임이다. 구원으로서 섹스는 관계를 왜곡하며, 권력의 새턴적 그림자로 들어가도록 허용한다. 새턴이 현존할 때는 무엇도 즐겁고, 빛을 발하거나 변형적이지 않다.
4) 남성들은 침묵의 공모에 연루되는데, 이것의 목적은 그들의 감정적 진실을 억압하는 것이다.
모든 남성은 자신을 표현했을 때 조롱이나 거부당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연약하거나 취약해 보이는 것이 치루는 무거운 비용을 치룬다. 다른 남자들, 때로는 여자들로부터 수치심을 받지만 무엇보다 스스로를 수치스럽게 느낀다.
다시 정직함이 문제이다. 개별 남성은 자신의 개인적 진실을 말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다른 많은 사람들의 진실이기도 하기 때문. 남성들은 거짓말을 멈추고, 침묵의 공모에 참가하길 멈추기 위해 자신의 고통을 보이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5) 남성들이 어머니를 떠나야 하기 때문에, 마더컴플렉스를 초월해야하기 때문에 상처는 불가피하고 필요하다. 한 남자가 우선적으로 양육과 안전을 갈망하는 부분은 마더컴플렉스의 힘을 묘사하면서 우리는 또한 그 남자에게 필요한 상처를 인정해야 한다. 우리 조상들, 성인식 의례를 통해 그들의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데, 그것은 그리 잔인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상처는 상징적, 원형적 의미를 띄는 것이었다. 세상의 상처로의 도입. 그 이후에 일상적 경험이 될 그런 경험이었다.
따라서 남자는 진정으로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어머니를 떠나 자신 고유의 운명을 다루는 영웅적 임무를 맡기 위해 상처를 입어야 한다. 상처를 넘어서면 새로운 의식단계에 놓이게 된다.
6) 남성의 삶은 폭력적인데, 그들의 영혼이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남성들이 겪는 고통은 상징적인 것이 아니다. 즉 그들은 변화하지 않는다. 우리문화는 영혼의 에너지를 활성화시키고 감독할 통과와 이미지의 의미있는 의례가 부재하기 때문에, 대부분 현대 남성들은 그들에게 부여된 내적, 외적 역할, 기대 때문에 중압감을 느끼고 심하면 부서져버린다. 어떠한 상처라도 파되할 수 있다. 남자의 영혼은 침범하고 그의 어떤 부분은 폭력적인 것이 된다.
집단살해자, 연속살인자는 모두 폭력적인 언어적 신체적 학대를 겪은 자들. 영혼 살해자는 남성의 삶에서 항상 발생한다.
남성은 위험하고 험하고 어려운 직업을 담당하도록, 자연의 물리적, 심리적 장애를 극복하도록 요구받는다. 또한 이러한 상처를 침묵과 고립 속에서 겪도록 기대된다. 남성 대부분은 어떤 경제적, 정치적, 경제적 규범에 복무하도록 자신들의 영혼을 희생하라 요구받는다. 이는 여성도 마찬가지이다. 저항하면 수치심을 느끼도록 강요받고, 고립되고 심지어 순교당한다.
-> 남성들은 자신의 분노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 이 화는 분노의 수준으로까지 축적되었다. 그 분노가 어디로 가는가? 어떤 이에게는 삶 전 기간동안 가져가는 일반적인 무거움인 우울로 나타난다. 다른 이에게는 몸으로 나타난다. 또는 우리와 그들, 승자와 패자의 파라노이드한 게임으로 투사된다. 많은 남성에게 분노는 여성과 아이들 혹은 다른 남성에 반하는 행동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어떠한 대상이든 편리한 대상으로 투사된 그들의 영혼의 고통을 심층적으로 알려주는 것이다.
지금은 남성들이 그들의 화를 치유의 명령인 변화를 위한 연료로 써야 한다. 우리가 아이일 때는 수동적으로 고통을 당할 수 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무의식 상태에서 피해자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일단 의식을 하게되면 우리 삶에 대해 우리가 책임을 져야 한다. 수년동안 성장한 화는 지금 변화, 반란, 영혼을 구하기 위한 투쟁을 위해 충분한 에너지이다.
7) 남성들은 모두 자신이 아버지나 부족장에 대한 깊은 갈망을 갖고 있다.
안락한 집, 엄마의 세계를 떠나기 위해 우리는 갈 곳이 있어야 한다. 부족적인 남성성. 집단적인 정의defin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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