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고마워요 다시 사랑할 기회를 줘서"

백_일홍 2022. 8. 1. 22:47

"고마워요 다시 사랑할 기회를 줘서"

 


정여울

요즘 나는 '사랑을 넘어선 사랑'의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다. 커플 간의 사랑을 뛰어넘는 사랑, 한 사람을 향한 로맨틱한 감정이 아니라 존재 자체에 대한 좀 더 보편적인 사랑에 대한 갈구가 커져간다. 내 가슴을 뛰게 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신경 쓰고 잘해주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하지만 때로는 존재의 한계를 뛰어넘는 사랑,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 살아 있는 생물 자체, 나와 다른 모든 것들에 대한 사랑, 인생과 세계 자체를 향한 더 크고 깊은 사랑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사랑을 넘어선 사랑에는 어떤 집착도 없다. 다만 한 존재의 다른 존재를 향한 무한한 이해와 존중만으로 충분한, 그런 맑고 투명한 사랑이다.

내 책을 내주신 한 출판사 사장님은 아들 둘이 모두 장성해 집을 떠난 뒤, 이제 18개월 된 어린 강아지 몰티즈 '보리'를 키우기 시작하며 예전에는 결코 보여준 적이 없던 '아빠미소'를 만면에 가득 머금고 계신다. 보리를 입양한 뒤부터 아이들이 모두 떠나간 쓸쓸한 집안이 더 이상 외롭지 않아졌다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존재가 바로 자기라는 듯이 보리가 미친 듯이 꼬리를 흔들며 자신에게 안길 때, 그때 비로소 '자신이 아이들에게 주지 못한 사랑'이 무엇인지 깨달았다고, "아이들한테 전화해서 미안하다고 했어. 그동안 엄마 아빠가 싸우는 모습 너무 많이 보여줘서, 지금 내가 강아지 보리에게 하는 것처럼, 이렇게 조건 없는 사랑을 주었어야 하는데, 아이들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너무 많은 것을 바라며 살았던 것이 후회되더라고. 보리처럼 그렇게 아무 꾸밈없이 조건없이 사랑했어야 하는데."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사랑을 뛰어넘는 사랑이란 그런 거구나. 가족이기에, 인간이기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도 사랑스러운 존재가 내게 와주었다는 것만으로도 내 삶은 물론 지나간 모든 시간의 과오마저도 끌어안게 되는, 더 큰 사랑이 바로 그것이었다.

정여울, <두근두근, 반짝이는 셀렘을 간직한다는 것>, p19-20

미국에 사는 동생 딸이 방학차 홀로 한국에 왔다가 내일 미국으로 들어간다. 동생에게 무얼 줄까를 고민하다 정여울님의 수필을 골랐다. 고른 책 옆에 꽂여있던 다른 책을 펴 읽다, 눈물이 핑돌고 말았다. 월간형식으로 쓴 글과 에곤 실레의 그림도 담겨있는 얆은 책, 이것도 함께 샀다. 모임사람과 공유하고 싶어 열심히 손가락 노동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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