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좋은 사람으로 사는 법

백_일홍 2022. 8. 2. 02:34

좋은 사람으로 사는 법 _ 나에게서 시작하는 지금 이 순간의 기적 

 

틱낫한

 

 

좋은 시민들 : 깨달은 시민사회 만들기

 

1장. 왜 지구윤리가 필요할까? 

 

마음챙김, 집중, 통찰 (정념, 정정, 정견)

 

우리는 지구화된 세계에 살고 있다. 경제, 정치, 교육, 문화적 소비 모두 지구적 규모에 처해있다. 

 

따라서 윤리와 도덕성 또한 지구화되어야 한다. 

 

새로운 지구적 질서는 새로운 지구윤리가 필요하다. 우리 시대 진정한 난관을 다루는데 지구적 차원의 윤리가 열쇠이다. 

 

우리 시대의 진정한 곤경은 기후변화, 테러리즘, 전쟁, 광신, 차별, 분리, 폭력, 경제위기, 환경파괴 등이다. 

 

이러한 지구적 고통의 원인이 무엇일까? 

 

분명함, 고요함, 평화로움 속에서 문제를 깊게 들여다보면, 그 원인을 알아채고, 이를 근절하고 변화시켜서, 곤경으로부터 출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1) 지구차원의 기여

 

다양한 문화, 국가들이 각자의 고유한 가치와 행동양식, 윤리적 행동에 관한 기준들을 갖고 있다. 

우리 모두 집단적 지혜를 모아 지구적 차원의 윤리양식을 만들어야 한다. 

 

1. 어떤 이들은 그들의 윤리를 종교에 기반하여 만든다. 당신이 목격한 것과 무관하게 신이 옳고 그름을 결정하고 그 신을 믿는다면 신의 규칙을 따르면 된다. 

 

2. 어떤 이들은 과학적 혹은 공리주의적 접근법을 따른다. 오직 그들이 행한 행동의 논리적 결과만을 본다. 

 

3. 불교가 지구적 윤리에 기여할 것은 앞의 두 가지와 다르다. 불교는 세계를 마음챙김, 집중, 통찰 속에서 보고 이해한다. 주체와 객체의 비이원성과 모든 사물의 상호연결성에 대한 자각으로 시작한다. 신에 대한 믿음과 무관하게 누구나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바로 수행이다. 만일 이 수행을 통해 훈련한다면 네가 보다 자유롭다는 것을 알게될 것이다. 

 

2) 불교윤리를 일상에 적용하기

 

베트남 전쟁때 "참여불교"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전쟁기간 동안 좌선과 걷기명상의 수행을 했다. 명상이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알아차리는 일이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많은 사람이 겪는 고통과 일상적 삶의 파괴였다. 우리는 우리 안의 고통와 주변사람의 고통을 덜어주기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했다. 사람들에게 봉사하며 좌선과 걷기명상을 했다. 만일 그 수행을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자신을 잃어버리고 소진되어 다른 사람들을 돌보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참여불교가 탄생했고, 우리를 둘러싼 고통에 대응할 때 우리의 수행을 계속하기를 원했다. 

참여불교란 단지 사회문제에 관여하는 불교를 말하지 않는다. 우리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언제나 마음챙김을 수행한다는 의미이다. 

 

이 수행을 하는 이유는 단지 자신을 위해서 만이 아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돕고 모든 생명과 연결될 수 있도록 자신을 지키기 위함이다. 

참여불교는 우리가 보다 강하고 안정되있다고 느끼게 만들며 다른 이에게 보다 연결되어 있고, 모든 존재의 행복에 전념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참여불교는 삶을 꽤뚫는 불교이다. 참여하지 않는 불교가 있다면 이는 참된 불교가 아니다. 이것이 바로 보살의 자세이다. 보살은 그의 모든 의도와 행동을 통해 고통을 덜어주는 그런 존재이다. 명상과 마음챙김 수행은 우리 자신만이 아니라 모든 존재와 지구 자체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수행이다. 

 

인터빙이라는 통찰을 통해 다른 사람이 덜 고통스러워지면 우리도 덜 고통스러워진다는 것을 안다. 우리가 덜 고통스러울 때 다른 이도 덜 고통스럽다. 

 

응용불교라는 말도 쓰는데, 실상(실재, reality)에 대한 이해를 통해 매 상황을 분명히 이해하고 변화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불교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용어를 쓴다. 어떤 상황에서든 특정 문제에 빛을 비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울수 있는 무엇이 불교에는 있다. 매 상황을 자비와 이해를 통해 다루는 방법이 불교 안에 있고 그럼으로써 고통은 경감된다. 이것이 응용불교의 정수이다. 

 

3) 불교윤리를 위한 출발점

 

마음챙김(정념)은 불교윤리의 기본이다.

마음챙김는 무슨 의미일까? 마음챙김은 첫째 멈추어서 지금 순간 일어나는 일을 깊이 관찰하는 것이다다. 그러면 우리 안의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고통을 볼 수 있다. 이 고통의 원인을 보기 위해 집중 속에서 깊이 들여다보는 수행을 할 수 있다. 승가와 같이 다른이의 통찰을 이용할 수 있다. 집단적 통찰을 가진다면 상호이득이 되는 길을 볼 수 있도록 돕는다. 

 

4) 존귀한 길

 

베트남어에서 윤리란 먼저, 존귀한 길, 가치있는 길, 여기서 가치란 정직, 통합, 이해 등을 말한다. 이 가치라는 단어가 함축하는 바는 많다. 용서, 자비, 인내, 공동의 인류에 관한 감각 등. 이런 가치들은 우리에게 가이드라인을 준다. 즉 남이나 자신에게 고통을 야기하지 않을 행동방식을 안내한다. 또한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도덕적 행동을 의미한다. 

 

5) 마음챙김, 집중, 통찰

 

붓다는 그이 가르침을 일상에서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에 중점을 두었다. 그것이 윤리이다. 여기서 실천(수행)이 열쇠인데, 이는 수행이 마음챙김, 집중, 통찰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이 3가지 에너지가 모든 불교수행와 불교윤리의 토대가 된다. 마음챙김, 집중, 통찰이 평화, 행복, 변화, 치유로 이르게하는 길을 만들도록 돕는다. 우리의 기본수행은 이 3가지 에너지를 만드는 수행이다. 자비, 이해, 조화, 평화를 불러오도록 우리를 안내하기 위해 우리는 통찰(지혜)에 의존한다. 

 

영성과 윤리의 관계.

모든 것은 영적인 것이 될 수 있다. 마음챙김 속에서 양치질 하기 또한. 

만일 윤리적인 것 안에서 영적인 것을 보지 못한다면 당신의 윤리를 공허한 것이다. 윤리적 양식에 따라 살지는 모르지만 그 이유를 모르고 사는 것이고 따라서 즐기지 못한다. 두 가지가 연결된다면 윤리적 길을 따르면서 그에따라 고양되고 풍부한 삶을 살게된다. 

 

6) 붓다의 첫번째 가르침

 

붓다가 깨닫던 순간, 첫번째로 들었던 생각은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깨달을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붓다는 다른 사람들이 통찰을 갖고 깨달음에 이르도록 돕는 길을 창조하기를 원했다. 종교를 창건하길 원한 게 아니다. 붓다가 다섯 친구에게 준 첫번째 가르침이 윤리의 길에 관한 것이었다. 지혜와 깨달음으로 가는 길은 8정도라고 말했다. 8정도는 붓다의 사성제 중 마지막 것이다. 만일 우리가 사성제를 이해하고 일상에서 우리 행동을 안내해주는 통찰(지혜)를 이용한다면, 우리는 평화와 행복의 길 위에 있을 것이다. 

 

2장. 고귀한 네 가지 진리, 사성제 : 행동에 이르는 길

붓다의 첫 가르침인 사성제는 불교가 지구 윤리에 기여할 토대가 된다.
고통은 존재한다. 고통의 원인, 고통은 극복할 수 있다, 고통을 중단하는 길.

1) 행복과 고통은 함께 있다.

고통은 유용한 것일 수 있다. 고통은 지혜와 행복을 위해 필요한 자비와 이해를 우리에게 가르쳐 줄 수 있다.

2) 비이원성

행복과 고통은 정반대의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은 이원적 사고는 불교가 지구윤리에 기여하는 핵심요소이다. 선은 악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선은 악이 있기때문에 있는 것이다. 선과 악은 모두 우리 마음의 산물이지 객관적 실재(실상, reality)가 아니다라고 붓다는 생각했다. 존재와 비존재, 왼쪽과 오른쪽 모두 개념이다. 한쪽 개념을 전제하지 않고 다른 쪽 개념을 가질 수 없다.

실재, 실상은 존재와 비존재 양자를 초월한다. 이 둘은 동일한 실재의 양면이다. 선과 악 이 두개념은 서로에게서 나온 것이다. 실재는 선과 악 두 개념을 초월한다.

주체와 대상(객체).
우리는 보통 우리 의식은 우리 안에 있는 무엇이라 생각하고, 세계는 우리 밖에 있는 무엇이라 생각한다. 주체와 대상은 독립적이라고 생각한다. 실은 분리된 것이 아니다. 주체와 대상은 서로가 서로를 부르는 것이다. 실재는 주체와 대상, 양자를 초월한다.

비이원성의 가르침을 진정으로 실험해보고, 실재를 오랫동안 관찰해보면 우리는 바른 이해(정견)을 갖게된다.
8정도 중 정견을 갖게 되면 나머지 7가지는 쉽게 따라온다.
정견, 정사, 정언, 정업, 정명, 정정진, 정념, 정정.

3) 각 진리는 나머지 진리를 포함한다.
사성제 역시 실재의 비이원성을 가진다. 사성제 각각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진리가 다른 진리들을 포함하고 있다.

 

4) 마음챙김 호흡 : 행동으로 가는 길로서 사성제 

 

사성제는 단순히 지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성제에는 핵심사상인 비이원성, 공성, 무아, 인터빙, 형사없음을 담고 있다. 이것들은 오직 수행을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 붓다의 근본적 수행은 마음챙김 호흡이다. 우리의 호흡을 알아차리는 일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첫번째 신천적 윤리이다. 

 

이것이 인간의 기본적 고통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그것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를 진정으로 이해하기 시작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우리 주변의 모든 고통을 볼 때, 이것들을 즉각적으로 해결하고, 무엇인가를 하기를 원할 것이다.(want to do). 하지만 무엇인가를 효과적으로 윤리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최상의 우리일 필요가 있다. 그 고통들을 다룰 수 있으려면. 

 

멈추기 -> 호흡하기 -> 마음챙심 속에서 걷거나 움직이기, 이것이 수행의 열쇠이다. 

 

(실습)

숨을 들이 마시며, 나는 이것이 내 들숨임을 안다. 

숨을 내 쉬면서, 나는 이것이 내 날숨임을 안다. 

 

이러면서 과거와 미래에 대한 생각을 멈춘다. 그리고 우리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다. 우리기 해야할 첫번째 일은 자신에게 돌아오기이다. 우리가 최상이기 위해선 우리 자신으로 존재해야 한다. do하기 전에 be ourselves 

존재하는 것의 질이 우리 행동의 질에 토대가 된다. 

 

(실습)

숨을 들이 쉬며, 나는 내몸 전체를 안다.

숨을 내 쉬며, 나는 내몸 전체를 안다. 

 

마음챙김 호흡은 우리를 내 몸으로 데려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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