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백_일홍 2024. 7. 8. 21:40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패트릭 브링리 

 

원제, All the Beauty in the World: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and Me


1장. 가장 아름다운 곳에서 가장 단순한 일을 하는 사람

우리 둘 다 그 아이러니를 놓치지 않는다. 탁 트인 이쪽 바깥에서 걸작들과 온종일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은 오히려 우리 같은 싸구려 근무복을 입은 사람들이었다. 32

4장. 사치스러운 초연함으로

우리가 지질학적 시간이나 천문 공간을 대할 때처럼 노력한다면 이 엄청나게 방대한 인류의 계보를 조금은 엿볼 수 있다. 하지만 노력을 멈추는 순간 우리는 그 현실을 잊고 만다. 우리가 언제든 과거를 기억할 수 있게 해주는 장소인 박물관들에 대한 고마움으로 내 가슴이 점점 벅차오른다. 116

공상은 누군가의 휴대전화가 울리면서 끝이 났다. 위법자와 눈이 마주치자 나는 받으면 안 된다고 정중히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소용이 없다. 그는 불손한 손가락을 치켜들며 전화를 건 동료와 다소 긴급한 일을 처리한다. 딱 1분 주겠다고 마음먹고 마무리하기를 기다리며 내가 현대사회에서 얼마나 드문 의무를 띠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한다. 이 사업가 혹은 대부분의 사람들과 달리 나에게는 앞으로 나아가야 할 일도 없고, 추진할 프로젝트도 없고, 지향하는 미래도 없다. 이 일을 앞으로 30년 동안 한다 해도 아무런 발전이 없으리라는 이야기다. 대중들은 이곳에 미라가 어디 있는지, 화장실이 어디에 있는지 앞으로도 모를 것이다. 그들은 계속해서 투탕카멘의 무덤으로 가는 방향을 물을 것이고 화강암 석관을 손으로 때리는 짓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지금과는 아주 다른, 사람들이 흔히 크게 성공할 직업이라고 말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사업가가 마침내 통화를 마치자 모든 것이 평화를 되찾았고 나는 어디로도 가지 않아도 되는 지금이 행복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122

나는 그 자리에 남아 미라를 만들고자 한 충동이 얼마나 추악했는지, 얼마나 실패했는지, 근원적인 진리에 대한 얼마나 뻔뻔하고 미약한 부정의 시도였는지를 되돌아본다. 사람의 몸은 남지 않는다. 사람의 일부는 불멸이라고 믿을 수야 있겠지만, 상당 부분이 결코 죽음을 면할 수 없고 광신적인 과학이라 할지라도 그 붕괴를 막지는 못한다. 136


5장.  입자 하나하나가 의미를 갖는 드문 순간

시간이 흐르면서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나만의 방식을 갖추게 됐다. 우선 작품에서 교과서를 쓰는 사람들이 솔깃해할 만한 대단한 특이점을 곧바로 찾아내고 싶은 유혹을 떨쳐낸다. 뚜렷한 특징들을 찾는 데 정신을 팔면 작품의 나머지 대부분을 무시하기 십상이다. 프란시스코 데 고야가 그린 초상화가 아름다운 까닭은 그의 천재성을 반영한 특징들 때문이기도 하지만 색채와 형태, 인물의 얼굴, 물결처럼 굼실거리는 머리카락 등이 아름답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이 다양하고 매력적인 세상의 속성들이 훌륭한 표현 수단 안에 모아졌기 때문이다. 어느 예술과의 만남에서든 첫 단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한다. 그저 지켜봐야 한다. 자신의 눈에게 작품의 모든 것을 흡수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이건 좋다’, ‘이건 나쁘다’ 또는 ‘이건 가, 나, 다를 의미하는 바로크 시대 그림이다’라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이상적으로는 처음 1분 동안은 아무런 생각도 해선 안 된다. 예술이 우리에게 힘을 발휘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154

〈건초 더미Haystacks〉는 모네가 사계절에 걸쳐 하루 중 각기 다른 시간대를 그린 연작의 일부다. 155

〈여름의 베퇴유Vétheuil in Summer〉 156

모네는 시각으로는 길들일 수 없는 세상의 모습을 그렸고, 에머슨(랠프 월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종교적 독단이나 형식주의를 배척하고 인간 스스로를 신뢰하며 인간성을 존중하는 개인주의적 사상을 주장한 미국의 시인이자 사상가–옮긴이)은 이를 “눈부심과 반짝임”이라고 표현했다. 이 그림의 물결 속에서 흔들리며 녹아내리는 수백만 개의 아롱진 반영들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옛 거장들의 상징주의적인 표현법에는 좀처럼 들어맞지 않는 유형의 미학이고, 정돈된 상태를 추구하는 우리의 두뇌가 일반적으로 허용하는 것보다는 더 혼돈스럽고 타오르는 듯한 아름다움이다. 대개 우리는 유용한 정보를 얻기 위해 위협적이고 산만하게 쏟아져 들어오는 주위 자극들은 무디게 만들거나 아예 무시한다. 모네의 그림은 우리가 이해하는 모든 것의 입자 하나하나가 의미를 갖는 드문 순간들 중 하나를 떠올리게 한다. 산들바람이 중요해지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중요해진다. 아이가 옹알거리는 소리가 중요해지고, 그렇게 그 순간의 완전함, 심지어 거룩함까지도 사랑할 수 있게 된다.

그런 경험을 할 때면 가슴에 가냘프지만 확실한 떨림을 느낀다. 이와 비슷한 느낌이 모네가 붓을 집어 드는 영감이 되었으리라 상상한다. 그리고 지금 이 그림을 통해 모네가 느꼈을 전율이 내게 전해져온다. 157

몇 분 후 투어 그룹은 떠나고 나는 아프리카 미술 전시관에 홀로 남겨진다.  163

얇게 켠 코끼리 엄니로 만든 가면에 조각한 베닌 왕국의 왕대비 이디아Idia의 강인한 얼굴이 멀리서부터 눈에 들어온다. 이디아는 자신의 아들 에시기Esigie가 왕좌를 차지하는 것을 돕기 위해 한 번, 그의 왕국을 북쪽으로 확장하기 위해 또 한 번 군대를 일으켰다. 그녀의 불굴의 얼굴을 조각한 가면은 강렬한 첫인상을 남기는 동시에 마주할수록 하나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는 독특한 유형의 예술 작품이다. 메트에는 수많은 왕과 여왕이 있지만 이 가면이야말로 왕권과 그 위엄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일 것이다.

나는 그녀가 이 유리 케이스 안에 더 이상 갇혀 있지 않을 언젠가를 상상하며 이디아 앞에서 긴 시간을 보낸다. 164

요컨대 이디아가 나이지리아 베닌 시티에 계획 중인 새로운 박물관으로 보내질 것을 기대해본다. 1897년, 영국군이 베닌 시티를 정복, 약탈했고 여러 차례의 불법적인 거래 끝에 이디아는 결국 메트의 소장품이 되었다. 경비원인 나는 유물 반환 문제에 특별한 전문 지식은 없지만, 우리 중 누구도 석방해야 할 강력한 이유가 있는 것들을 붙들고 있는 감옥의 교도관이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는 있다. 165


6장. 예술가들도 메트에서는 길을 잃을 것이다

메트가 소장한 수백 점에 달하는 피카소의 회화, 도자기, 조각, 소묘, 판화 중 지금까지 전시된 것은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이었다는 사실을 누가 알았겠는가? 이 전시가 열릴 때까지는 말이다. 174

나는 B구역 대장에게 내키는 만큼 나를 특별전에 배치해달라고 말한다.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 그는 수락했고 그렇게 4개월 남짓한 기간에 200시간은 거뜬히 피카소의 드넓은 머릿속을 누비고 다닐 수 있게 되었다. 175

우리 중 누구도 이 주제, 그러니까 이 세상과 그 모든 아름다움에 관해 많은 것을 알지는 못한다. 미켈란젤로가 태어난 해와 죽은 해를 알지언정 막상 그의 작업실이나 페르시아의 세밀화가, 나바호족의 바구니 짜는 장인의 작업실 등등 예술의 현장에 가면 자신의 무지를 얼마나 압도적으로 실감하게 될 것인가. 심지어 그 예술가들조차도 거대하고 갈피를 잡을 수 없기 일쑤인 이 주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도 메트에서는 길을 잃을 것이다. 204


8장. 푸른색 근무복 아래의 비밀스러운 자아들

우리는 조지 워싱턴이 마지막 생일 파티를 했던 버지니아의 호텔 안에 서 있다. 237

길버트 스튜어트가 그린 조지 워싱턴 대통령의 유명한 초상화가 벽에 걸려 있는데  237

호텔을 옮겨놓은 이 방 역시 보통 상상하는 것보다 작은데 고급 마호가니 가구로 가득하다. 적갈색 목재가 마치 불이 붙은 것처럼 보인다. 슬슬 걸어서 치펜데일 스타일 의자가 있는 곳으로 가다가 테렌스가 가르쳐준 것이 생각난다. 마호가니 목재는 카리브 연안 지역, 아마도 벨리즈에서 수확되었을 확률이 높은데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노예들이 동원되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테렌스는 자신이 아마도 카리브 연안으로 납치되어 온 마지막 아프리카인들의 후손일 것이라고 했다.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 노예 무역 초창기에 납치된 사람들은 보통 가족을 꾸려 아이를 낳는 것이 금지되었다. 그들은 죽을 때까지 착취당하다가 중간 항로(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대서양 노예 무역의 주요 무대가 된 항로.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등의 무역상들이 이 항로를 통해 수많은 아프리카인들을 북아메리카 대륙과 카리브 제도로 이송했다–옮긴이)를 거쳐 끌려온 더 많은 아프리카인들로 대체되었다. 238

그곳에 전시된 아름다운 물건들은 특정 버전의 미국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물건들을 지키는 미국인 경비원들은 또 다른 이야기들을 상징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 말이다. 239

동료 경비원들이나 관람객들과 나눈 짧은 소통에서 찾기 시작한 의미들은 나를 놀라게 한다. 부탁을 하고, 답을 하고, 감사 인사를 건네고, 환영의 뜻을 전하고… 그 모든 소통에는 내가 세상의 흐름에 다시 발맞출 수 있도록 돕는 격려의 리듬이 깃들어 있다. 비탄은 다른 무엇보다도 그 리듬을 상실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잃고 나면 삶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고, 한동안 그 구멍 안에 몸을 움츠리고 들어가 있게 된다.

여기서 일하면서 나는 메트라는 웅장한 대성당과 나의 구멍을 하나로 융합시켜 일상의 리듬과는 거리가 먼 곳에 머물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일상의 리듬은 다시 찾아왔고 그것은 꽤나 유혹적이었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가 영원히 숨을 죽이고 외롭게 살기를 원치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람들과의 소통에서 만들어지는 운율을 깨닫는 것은 내가 자라서 어떤 어른이 될 것인지를 깨닫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가 삶에서 마주할 대부분의 커다란 도전들은 일상 속에서 맞닥뜨리는 작은 도전들과 다르지 않다. 인내하기 위해 노력하고, 친절하기 위해 노력하고, 다른 사람들의 특이한 점들을 즐기고 나의 특이한 점을 잘 활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관대하기 위해 노력하고, 상황이 좋지 않더라도 적어도 인간적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 259


과거에는 대부분 수동적인 태도로 메트와 메트의 소장품들을 일종의 보이지 않는 눈으로 관찰했다면 이제는 새로운 태도를 취할 수 있을 것 같다. 예술을 흡수하는 데 오랜 시간을 보냈지만 이제는 그러는 대신 예술과 씨름하고, 나의 다양한 측면을 모두 동원해서 그 예술이 던지는 질문에 부딪쳐보면 어떨까? 미술관에 발을 들여놓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덤벼볼 만한 가치가 있는 숙제 같다. 예술을 경험하기 위해 사고하는 두뇌를 잠시 멈춰뒀다면 다시 두뇌의 스위치를 켜고 자아를 찾아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그렇게 하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262


9장. 예술이 무엇을 드러내는지 이해하려고 할 때

너무 많은 방문객들이 메트를 미술사 박물관이라고 생각하면서 예술에서 배우기보다는 예술을 배우려 한다. 또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는 모든 정답을 알고 있는 전문가들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일반인이 감히 작품을 파고들어 재량껏 의미를 찾아내는 자리가 아니라고 넘겨짚는다. 메트에서 시간을 보낼수록 나는 이곳의 주된 역할이 미술사 박물관이 아니라는 걸 더욱 확신하게 된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관심 영역은 하늘 높이 솟았다가 지렁이가 기어다니는 지하 무덤까지 내려가고, 그 둘 사이의 세상에서 사는 것이란 어떤 느낌이고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거의 모든 측면과 맞닿아 있다. 그런 것에 관한 전문가는 있을 수 없다. 나는 우리가 예술이 무엇을 드러내는지 가까이에서 이해하려고 할 때 비로소 예술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고 믿는다. 저 아이들이 과제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를. 그러기 위한 좋은 출발을 한 것 같다.  279

공식 명칭 ‘아랍, 튀르키예, 이란, 중앙아시아 및 후대 남아시아 미술’ 부서에서 장장 3개월간의 휴일 없는 근무가 시작됐다. 수습 기간 이래 미술관 한 구역에서 이렇게까지 정기적으로 일한 적이 없었고, 다시 한번 완전한 몰입감을 느꼈다. 옛 거장들의 명화를 곰곰이 감상하던 때는 주로 예술의 신성한 측면, 그 고요함과 불가사의한 침묵에 관심을 가졌었지만, 그 이후로는 메트의 세속적인 매력을 담당하는 호기심 많은 관람객과 사교적인 경비원들에게도 관심을 간혹 내어주고 있었다. 이슬람 전시관에서 나는 이 두 지층이 서로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고민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들을 만났다. 286

그리고 어느 날, 언젠가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경고를 받았던 바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 독실한 무슬림 방문객 하나가 지금 우리가 동쪽을 향하고 있는지 물어온 것이다. 그와 나는 예배자들에게 메카의 방향을 안내하는 벽감壁龕인 미흐라브Mihrab를 바라보고 있다. 나는 잠시 생각해보고 그에게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는 기도해도 되는지 묻는다. 나는 태연하게 답한다. “네, 물론이죠. 하지만 다른 관람객들이 걸려 넘어질 수도 있으니 엎드리는 건 안 됩니다.” 그는 나에게 감사를 표하고 두 손을 모으며 미흐라브를 뚫어지게 응시한다. 나도 그를 따라 하며 하나의 중심점, 이 경우에는 실제 위도와 경도상의 좌표를 향하도록 자신의 믿음을 맞춘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생각한다. 방문객에게 이 작품은 그가 마음속으로 그리는 거룩함으로 통하는 관문인 셈이다. 286

내가 이 모든 것을 마음에 새겼을 때는 무슬림 방문객이 기도를 마치고 자리를 옮긴 후였다. 마음을 어떤 합일점에 고정하기 위해 고안된 종교의식에 하루에 다섯 번씩 참여하는 건 어떤 느낌일지 상상해본다. ‘종교religion’는 ‘묶음ligature’과 마찬가지로 ‘ligio’라는 어근을 갖고 있다. 기본형일 때 ligio는 연결 혹은 어떠한 공동체가 인식하는 근본적인 진실에 다시 집중하고 교감함을 뜻한다. 나는 특정한 종교적 전통을 섬기지는 않지만 종종 어딘가에 소속되어 사소한 걱정들 대신 더 근본적인 것들과 교감할 필요를 느낀다. 독실한 숭배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찬미하는 마음으로 아름다운 미흐라브를 응시한다. 289

나는 16세기 수피파의 더비시를 그린 그림 앞에 앉는다. 더비시는 고행을 통해 수행하는 인물로 수도사와 다소 비슷하다. 종이에 그린 이 초상화는 오늘날의 우즈베키스탄 지역에서 그려졌다. 그림 속 주인공은 주황색 망토와 독특한 골무 모양의 모자를 쓰고 땅 위에 낮게 웅크려 있고 시선은 구부러진 코의 능선을 타고 아래를 향한다. 손에 들린 염주는 신을 직접적으로 체험하기 위해 매일 의식처럼 행하는 그의 노력을 상기시킨다. 쿠란은 신이 우리의 경정맥보다 우리에게 가까이 있다고 조언한다. 수피즘의 사상이란 이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예술 작품 앞에 ‘앉아’ 있다니, 너무 좋다! 그림에 적힌 아랍어 문구를 번역한 캡션을 찬찬히 읽는다.

    
그렇다면 나는 왜 내게 영혼을 준 것에 대해 하늘에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가? 바로 그 영혼을 고통스럽게 하는 슬픔의 원천을 하늘이 내 안에 만들었는데도. 295

신을 향한 이 비난에 얼마나 날이 서 있는지 믿기지 않아 문장을 두세 번 반복해서 읽는다. 반대로 그림은 너무 절제되고 웅장해서 더비시의 애처로운 말투가 나의 허를 찌른다. 초상화의 얼굴에서 이제야 발견한 침울함이 내가 고민하던 몇 가지 질문들을 인간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이렇게나 뚜렷하게 느껴지는 이 남자의 번뇌는 무엇 때문이었을까? 296

출퇴근길의 지하철에서 수피즘을 파고들기 시작한다. 내가 찾은 가장 적합한 책은 13세기의 신학자 이븐 아라비가 쓴 것이었다. 그가 세상을 보는 방식을 이해하지 못할 것을 각오하고 지식의 진창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븐 아라비에게는 뭔가 아주 흥미로운 구석이 있다. 그는 우리가 의식하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이해하고 있다고 거듭 주장하며 직접적인 체험을 통해 지식을 얻어야 한다고, 또 그에 필요한 도구도 이미 우리에게 있다고 말한다. 월트 휘트먼(미국 문학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중 한 사람으로 ‘자유시의 아버지’라고도 불린다–옮긴이)의 시처럼 “그래, 바로 당신”이 그가 전하려는 메시지의 핵심으로 보인다.

이븐 아라비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두 가지의 매우 다른 시각이 있다. 첫 번째는 현실을 인식하도록 세밀하게 조정된 의식의 일부로서 마음 한가운데 자리한 인지 능력이다. 이 거칠 것 없는 능력은 우리가 세상의 아름다움과 숭고함을 깨달아 진실이 (혹은 신이) 노골적이고 가깝게 느껴지도록 한다. 이슬람 전시관의 미흐라브가 내게 일깨우는 바와 같은 시각이다. 299

하지만 우리는 논리적인 두뇌도 가지고 있다. 이는 우리가 세상의 얼마나 작은 부분밖에 보지 못했는지, 그 궁극적인 또는 다면적인 현실을 해독하는 데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도구가 얼마나 제한적인지 상기시킨다. 이 관점에서 우주를 바라보면 우주의 진리는 멀리 숨겨져 있는 것처럼 보이고 진실은 불가해한 것처럼 느껴진다. <시모네티 양탄자>가 내게 일깨우는 바와 같은 종류의 시각이다.

이븐 아라비는 위의 두 가지 시각을 조화시킬 방법은 없다고 말하며, 그것은 마치 사람의 얼굴에 두 개의 다른 눈이 있는 것과 같다는 비유를 펼친다. 우리에겐 두 가지 시각이 모두 필요하며, 심장이 뛰는 것에 맞춰 각각의 시각으로 초점을 전환할 수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이 구절을 읽고 고개를 든다. 지금 나는 브루클린 지하에서 나와 덜컹이며 다리를 건너고 있는 맨해튼행 열차에 타고 있다. 일요일 아침 출근길에 오른 같은 처지의 동승객들은 창문 너머로 미끄러져 가는 세상을 공허하거나, 몽롱하거나, 예리하거나, 졸리거나, 닫혀 있는 온갖 종류의 눈빛으로 바라본다. 약 40분 후 근무 구역에 도착한 나는 하다드 대장에게 나를 더비시 근처로 배치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래서 다시 한번 왜 자신에게 심장이 있어야 하는지 의문을 가질 정도로 고통스러워하는 남자를 바라본다. 그에게는 스스로 보거나 생각하거나 느낄 것 없이 그저 기도문을 암송하는 유령 같은 기계가 되는 편이 더 쉬웠을 것이다. 그러나 더비시는 그 길을 택하지 않았다.

더비시는 때로는 고통과 극도의 피로가 기다리는 극한까지 자신의 지각 능력을 밀어붙였으리라. 곧 그가 기운을 되찾고 스스로를 다시 밀어붙이기 시작할 것 같은 왠지 모를 확신이 든다. 한쪽 눈으로 그를 보며 이 신비로운 종파의 16세기 추종자와 친밀해짐을 느낀다. 다음 순간 내 심장이 한 번 뛰자, 그는 또 멀고 낯설게 느껴진다. 한 번 더 심장이 뛰고, 내 앞에 놓인 그림처럼 그는 다시 가까이 있다. 301


10장. 애도의 끝을 애도해야 하는 날들

그림을 감상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나는 그림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명확하게 알지 못하고, 여태까지 읽은 책들은 기껏해야 아주 약간 도움이 될 뿐이다. 그래서 누구나 그렇듯이 그림을 베껴 그리는 작업을 하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데 늘 매료되곤 한다. 오늘도 나는 적절한 거리를 두고 서서 그녀의 더디고 조용한 붓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방문객 무리에 합류한다.
모작을 평가하면서 나는 그것이 사랑스럽다고 결론을 내렸다. 금잔화색 드레스를 입은 엄마가 벌거벗은 어린 아들을 돌보는 장면을 아름답게 묘사한 그림이다. 그녀는 분명 이 작업에 충분한 시간을 들였고 그 결과 어느 정도 설득력 있는 순수 예술 같아 보이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잠시 후 나는 카사트의 원작을 보려고 눈을 든다. 그리고, 뭐, 굳이 말을 하자면 ‘25퍼센트 규칙을 만들면서까지 모작과 원작이 바뀔까 봐 걱정할 일은 없을 것 같다’ 정도의 생각을 하게 된다고 해두자.
카사트의 그림은 사랑스러운 것이 아니라 햇살에 흠뻑 젖은 것처럼 아름답다. 대담하고, 편안하고, 다채롭고, 옳고, 뭐랄까, ‘순수 예술’보다 더 탄탄하다. 카사트가 어렵게 얻은 거장의 날개를 달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동안 조심스럽고 끈질기게 모작을 완성 중인 저 딱한 사람에게는 불공평한 일이다. 이것이 카사트의 스타일이었고, 이것이 그녀의 주제였다. 그녀는 기민하고 영감이 충만한 미적 지능으로 수천 가지의 선택을 해냈다. 그런 그녀의 작품을 생명력 없이 흉내낼 수는 있지만 재현하기는 불가능하다. 정리하자면 나는 그녀의 그림이 얼마나 훌륭한지 믿을 수도, 견딜 수도 없어서, 아주 오랜만에 그저 깊이 흠모하며 바라보기만 했다.

이제 이런 순간들은 예전만큼 자주 오지 않고 그 사실을 인정하며 슬퍼진다. 위대한 그림은 경외감, 사랑 그리고 고통 같은 잠들어 있던 감정들을 불러일으키고, 그것은 메자닌의 골동품들에 대한 호기심과는 다르다. 이상하게도 나는 내 격렬한 애도의 끝을 애도하고 있는 것 같다. 이제는 내 삶의 중심에 구멍을 냈던 상실감보다 그 구멍을 메운 잡다한 걱정거리들을 더 많이 생각한다. 아마도 그게 옳고 자연스러운 것이겠지만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347


11장. 완벽하지도 않고 완성할 수도 없는 프로젝트

경탄할 만한 또 다른 대상을 찾아 천천히 멀어져가는 그를 보며 기분이 좋아진다. 아니, 자랑스러운 마음이 든다. 세심하게 신경을 쓰고 실력과 인내심을 발휘해서 무언가를 만들어냈을 때 결국 그것이 넘칠 정도로 좋은 것이 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무엇이 됐든 그것을 정말로 잘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얼마나 열심히 해야 하는지, 수월해 보이는 외양을 지니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이 들어가는지 우리는 잘 안다. 내가 자랑스러웠던 이유는 아마도 인간이 수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성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그것도 꽤 자주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인 듯하다. 370


하지만 내가 뜻밖으로 느꼈던 것은 거장의 ‘지문’을 그토록 부자연스럽고, 일그러지고, 불완전하고, 초보적인 것에서 발견했다는 사실이다. 완벽한 외양을 갖춘 완성품만으로는 예술에 대한 배움이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 작품들이 탄생하는 과정에 들어간 고통을 잊지 않아야 한다. 자기 자신이 무언가를 어떻게 만들어낼지 궁리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의 창작물을 보는 데서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사실 평생 처음으로 나도 뭔가를 만들어가고 있는 느낌이 든다. 엄청나게 무질서하고 즉흥적인 과정을 밟으면서 두 명의 작은 인간과 그들이 살아갔으면 하는 작은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결코 완벽하지도, 완성할 수도 없는 프로젝트겠지만 말이다. 372


12장. 무지개 모양을 여러 번 그리면서

만일 어떻게든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면, 미켈란젤로가 그랬듯이 높게 쌓아 올린 비계 위에 서서 턱을 치켜들고 설 수 있다면 거장이 하루에 얼마만큼의 작업을 했는지 정확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매일 아침 미켈란젤로와 그의 조수들은 새로 바른 회반죽이 마르기 전에 그날 완성해야 할 부분에 대한 밑작업을 했다. 이것을 이탈리아어로 ‘하루의 일’이라는 뜻의 조르나타giornata라고 하는데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는 사실 이렇게 작고 불규칙한 모양의 작은 성취들이 경계선이 거의 보이지 않는 모자이크처럼 모여서 만들어진 작품이다.  378


다음 전시는 부지불식간에 나를 덮쳤다. 미켈란젤로의 뉴욕 입성은 5번가에서 휘날린 현수막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근현대 미술 전시관에서 열린 <지스 벤드 퀼트 작품전>이라는 작은 기획전에 배치되기 전까지 나는 ‘지스 벤드’라는 지역에 관해서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했다. 널찍한 전시실 두 개의 벽에 퀼트 작품이 걸려 있었다. 여덟 명의 퀼트 제작자가 만든 열 점의 퀼트였는데, 그 여덟 명 중 네 명의 성이 페트웨이Pettway였다. “이게 뭐지?” 나는 작은 소리로 속삭인다. 선입견을 뒤엎는 작품들을 하나하나 지나치면서 맥박이 빨라짐을 느낀다. 대담하게 대비되는 색깔들, 비대칭적인 패턴, 거칠고 해어진 재료들을 눈에 보이는 바느질 자국으로 이어 붙인 작품들… 처음 그 전시실에서 일한 날에는 그렇게밖에 작품들을 묘사할 수 없었지만 맥박이 빨라지는 걸 보니 아름다운 물건들이라는 건 부인할 수 없었다. 

그 후 몇 주에 걸쳐 이 퀼트 제작자들에 대해 가능한 한 모든 정보를 알아냈다. 앨라배마주의 지스 벤드에서 퀼트를 만드는 수십 명의 여성들이 자신들의 일과 삶을 이야기한 인터뷰 기사도 읽었다. ‘어렵다’는 표현이 너무 자주 나와 후렴구처럼 느껴졌다. “어려움에 처했어요…”, “어려운 시기였죠…”, “어려운 길을 가야 했어요…”, “우리가 어려운 상황에서 열심히 일한 건 주님도 아실 거예요…”, “쉽지 않았어요. 어려웠죠.” 루시 T. 페트웨이Lucy T. Pettway는 전시에 작품을 출품한 예술가 중 하나였다. 어릴 때 그녀는 11월 말부터 3월 말까지만 학교를 다녔다. 3월 말부터는 “베어낸 목화 줄기를 쳐서 채 여물지 못해 아직 달려 있는 목화 열매를 수확하고, 관목을 자르고, 땅을 일구고, 쟁기질을 해서 파종할 준비를 도와야 했어요.” 다른 퀼트 제작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그녀의 가족과 친구들도 소작농이었다. 그러나 루시는 밭에서 다른 일도 했다. 날마다 밥을 먹는 시간에 바느질할 퀼트 재료를 조금씩 가지고 밭으로 나간 것이다. 대부분의 퀼트 작품은 블록 아홉 개로 이루어져 있는데 하루에 블록 하나쯤 완성하면 만족했다. 루시 T. 버전의 조르나타였다. 

그녀가 1955년에 완성한 퀼트는 지스 벤드를 묘사하고 있는데, 전시 작품 중 유일하게 사진으로만 볼 수 있다. 앨라배마강을 상징하는 한편의 푸른 줄무늬는 진흙으로 된 강둑을 표현한 두 개의 붉은 줄무늬 사이를 흐르고 있다. 다른 한쪽에는 패턴이 있는 캘리코(날염을 한 거친 면직물–옮긴이)로 목화밭이 묘사되어 있다. 퀼트의 나머지 부분은 동심원처럼 늘어선 정사각형 블럭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렇게 지붕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하우스톱housetop 패턴에서는 온갖 종류의 패턴과 색이 가능하지만 이 작품에서만큼은 글자 그대로 진짜 지붕들을 상징하고 있다. 큰 집 한 채와 작은 집 네 채를 위에서 내려다본 광경이다. 이 풍경을 더 멀리까지 보이도록 줌아웃할 수 있다면 말굽 모양을 그리며 극적으로 구부러진 강이 지스 벤드의 세 면을 감싸고 흐르면서 세상으로부터 이 지역을 고립시키는 지형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더 가까이 가서 페트웨이가 묘사한 집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지역의 역사를 더 확실히 이해할 수 있다. 가장 큰 집은 옛날 페트웨이 플랜테이션의 ‘큰 집’이고, 다른 작은 집들은 노예들이 기거하던 곳이다. 400

이 지역에 제일 먼저 들어와 정착한 페트웨이 가문 사람은 마크 H. 페트웨이였다. 그는 1845년에 조셉 지Joseph Gee의 상속인들에게서 면화 플랜테이션을 사들였다. 그가 플랜테이션과 함께 구매한 재산 목록에는 인간 마흔일곱 명이 포함되어 있었고, 거기에 더해 이전에 살던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데리고 온 노예 백 명도 있었다(그들은 걸어서 이동해야 했다). 퀼트 제작자들 중 페트웨이 성을 가진 사람들은 주인의 성을 받은 노예의 후손들이다. 지스 벤드 지역 방언으로 페트웨이를 발음하면 새로운 멜로디가 생겨 ‘토닥거려서 달래다’ 정도의 의미가 되는 ‘페트-어-웨이’처럼 들리지만 말이다. 402

혼자 생각에 잠긴다. 여기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 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처럼 세계적으로 장대한 곳에서 얻는 깨달음치고는 좀 우습긴 하지만, 바로 의미라는 것은 늘 지역적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가장 위대한 예술 작품은 자신의 상황에 갇힌 사람들이 아름답고, 유용하고, 진실된 무언가를 창조하기 위해 조각조각 노력을 이어 붙여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교훈까지 말이다. 미켈란젤로 시대의 피렌체, 심지어 미켈란젤로 시대의 로마마저 이런 면에서는 로레타 페트웨이가 살던 시절의 지스 벤드와 다르지 않다. 이제 더 이상 전성기 르네상스와 같은 개념을 빌어 생각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새로 만든 회반죽을 바르고, 거기에 그림을 그리고, 회반죽을 조금 더 바르고, 거기에 그림을 조금 더 그리는 한 사람을 생각할 것이다. 410


13장. 삶은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이 전시실에서 벌어진다고 생각하던 한때가 있었고, 명상과 같은 고요함을 감사한 마음으로 음미했다. 그러나 요즘은 생각이 미술관 밖으로 휘리릭 날아가서 몸과 마음이 움찔거리고 안절부절못하기 일쑤다. 나는 이제 더 이상 고요하고 정돈된 환경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제 더 이상 경기장 밖에 서서 게임을 잠자코 지켜보지 않아도 된다. 전시실을 찾는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들을 지켜보면서 우리 아이들에게 이 큰 도시와 넓은 세상을 어떻게 만나게 해줄지를 계획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두려우면서도 흥분되는 미래다. 솔직히 말해서 코딱지만 한 우리 집이 혼란에 빠지지 않게 하는 일만으로도 벅차고, 바깥 세상과 다양한 관계를 맺기 위해 더 강인하고 용감해질 방법을 배우고 싶다. 416

그렇다고 사무실에서 일하는 직장으로 돌아가기에는 내 버릇이 너무 나빠졌다. 앉아서 하지 않는 일이 필요했다. 생각 끝에 여행 가이드 회사에 지원했고, 전화 인터뷰를 하자는 연락이 왔다. 417

파트타임으로 하는 비정규직 일자리에 불과하다. 평생 이 일을 하면서 살아갈 것이라고 상상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인생은 길고, 이 일은 구석에 서서 사람들을 지켜보는 대신 그들을 이끌고 다니면서 글자 그대로 세상을 탐험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417

예술에 관해 내게 가장 큰 감명을 준 글은 1884년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을 방문한 빈센트 반 고흐에 관한 글이었다. 그는 늘 일행들의 발걸음을 늦추게 하는 종류의 관람객이었던 듯하다. 1884년에 그와 함께 박물관을 찾았던 친구 안톤 케서마커스는 “그는 〈유대인 신부The Jewish Bride〉(물감을 일부러 두껍게 발라 옷의 주름이나 표면의 광택을 더욱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임파스토impasto’ 기법이 잘 드러난 그림. 고흐의 작품에서도 자주 찾아볼 수 있는 특징이다?옮긴이) 앞에서 하염없이 서 있었다”라고 썼다. 렘브란트의 작품이었다.

    
그를 그 자리에서 떼어낼 방법이 없었다. 그는 그냥 그곳에 가서 편히 자리를 잡고 앉았고 나는 다른 작품들을 둘러보러 갔다. “다 보고 와. 나는 여기 계속 있을게.” 그가 말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내가 돌아가서 이제 다른 곳으로 좀 움직이는 게 좋지 않겠냐고 묻자 그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믿을 수 있겠어? 진심에서 하는 말인데 여기, 이 그림 앞에서 말라빠진 빵 조각이나 먹으면서 2주일 정도 앉아 있을 수만 있으면 내 명을 10년은 단축해도 좋을 것 같아.” 그러다가 마침내 그가 일어섰다. “하는 수 없지.” 그가 말했다. “여기 영원히 있을 수는 없는 일이잖아. 그렇지?” 427

그렇다, 그럴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런 순간들은 위안을 준다. 힘이 나게 한다. 그리고 순수하다. 빈센트의 <붓꽃>을 보고 있자면 가난과 자신을 괴롭히는 상념들에서 벗어나 그 생기 넘치는 단순함 속에서 영원히 살고 싶은 화가의 염원이 느껴진다. 그러나 몸을 돌려 우리 앞에 놓인 것을 직면해야 하는 시간은 오고야 만다. 빈센트의 이야기가 슬픈 것은 그가 삶을 살아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보다 운이 좋다는 사실에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이 감사하다. 내 이야기는 행복한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428


몇 달 동안 공책에 후보들을 적고 리스트를 만든 다음 가차 없이 숫자를 줄이는 작업을 반복하면서 엄청난 규모의 메트 소장품들을 개인적인 컬렉션으로 축소했다. <쿠로스 대리석 조각상>, <은키시 주술상>, <시모네티 양탄자>, 〈곡물 수확〉… 너무 많이도, 너무 적게도 고르고 싶지 않다. 내가 품고 갈 수 있는 숫자 정도면 된다. 앞으로 나아가는 데 시금석이 되어줄 작품들. 옛 거장 전시관에서 내가 제일 필요로 하는 그림은 15세기 이탈리아 수사 프라 안젤리코Fra Angelico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라는 결론을 내린다. 431



이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는 부분적으로 내가 가진 편견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오래된 작품이 좋다. 단단한 나무판 위에 입혀진 템페라의 느낌도, 자디잘게 금이 간 금박 아래로 붉은 진흙 베이스가 살짝 얼굴을 내미는 것도 좋다. 옛 기독교 예술품과 거기에 깃든 빛을 발할 정도로 선명한 슬픔이 좋다. 너무도 고통스럽지만 이 그림이 톰을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좋다. 예수의 몸은 태풍에 요동치는 배의 돛대에 못 박힌 것처럼 보인다. 그를 중심으로 나머지 세상이 흔들리며 돌아가고 있는 듯하다. 우아하면서도 부서진 몸은 뻔한 사실을 다시 상기시킨다. 우리가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것, 고통 속의 용기는 아름답다는 것, 상실은 사랑과 탄식을 자극한다는 사실 말이다. 그림의 이런 부분은 성스러운 기능을 수행해서 우리가 이미 밀접하게 알고 있으면서도 불가해한 것에 가닿게 해준다. 

그러나 안젤리코 수사가 묘사한 것은 예수의 몸뿐만이 아니다. 그는 십자가의 발치에 뒤죽박죽으로 모여 있는 구경꾼 한 무리를 상상했다. 옷을 잘 갖춰 입은 사람, 말을 타고 있는 사람 등등 꽤 많은 구경꾼들의 얼굴에는 놀라우리만치 다양한 반응과 감정들이 떠올라 있다. 침통해하는 사람들, 호기심을 느끼는 사람들, 지루해하는 사람들, 심지어 다른 곳에 신경이 팔려 있는 사람들도 있다. 옛 거장들의 그림에서 자주 보이는 리얼리즘이다. W. H. 오든의 시 「뮤제 데 보자르Musee des Beaux Arts(미술관)」에도 나와 있듯 “끔찍한 순교”가 벌어지는 와중에도 “어떤 사람들은 음식을 먹고, 창문을 열고, 별생각 없이 그 옆을 걸어간다.” 나는 사람들이 몰려 있는 가운데 부분이 혼란스러운 일상생활을 제대로 표현한다고 생각한다. 디테일로 가득하고, 모순적이고, 가끔은 지루하고 가끔은 숨 막히게 아름다운 일상. 아무리 중차대한 순간이라 하더라도 아무리 기저에 깔린 신비로움이 숭고하다 할지라도 복잡한 세상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돌아간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야 하고, 삶은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그림 하단이 있다. 그곳에서 그림의 톤은 다시 한번 변화한다. 거기에는 슬픔에 겨워 쓰러진 어머니를 돌보는 연민 가득한 사람들이 있다. 수동적인 구경꾼들과 달리 그들의 마음은 같은 방향, 즉 선행으로 향하고 있다. 그림의 이 마지막 부분은 따르고 싶은 모범이다. 내 앞에 펼쳐진 삶에서 나를 필요로 하고, 내가 필요한 경우들이 있을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다른 이들도 나를 위해 그렇게 해줄 것이라는 게 나의 희망이다. 이제 형은 세상에 없다. 나는 그 상실을 느낀다. 형은 그림에서 성모 마리아를 돌보기 위해 정신을 바짝 차린 채 몸을 굽히고 있는, 칭찬받아 마땅한 현실적인 사람들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는 지금도 형의 초상화, 티치아노가 그린 듯한 밝고, 솔직한 형의 얼굴이 선명하게 살아 있고, 그 모습에서 나는 위안을 찾는다. 이 그림이라면 확실히 내가 메트 바깥으로 품고 나갈 수 있을 것이다. 435 

나는 10년을 경비원으로 지낸 사람이 메트에 오는 관람객들에게 해줄 조언을 곱씹어보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 메시지는 우리 아이들을 포함한 세상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 내가 여기서 품고 나가는 것들 중 하나다. 437 

당신은 지금 세상의 축소판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메소포타미아의 비옥한 개펄에서 파리의 센강 서쪽 리브고쉬의 카페에 이르는 드넓은 땅과 그 너머 수많은 곳에서 인류는 정말이지 놀라운 성취를 이루어냈습니다. 먼저 그 광대함 속에서 길을 잃어보십시오. 인색하고 못난 생각은 문밖에 두고 아름다움을 모아둔 저장고 속을 자유롭게 떠다니는 작고 하찮은 먼지 조각이 된 것 같은 느낌을 즐기십시오.
    
가능하면 미술관이 조용한 아침에 오세요. 그리고 처음에는 아무하고도, 심지어 경비원들하고도 말을 하지 마세요. 모든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됐다면 눈을 크게 뜨고 끈기를 가지고 전체적인 존재감과 완전함뿐 아니라 상세한 디테일을 발견할 만한 시간을 스스로에게 허락하세요. 감각되는 것들을 묘사할 말을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거기에 귀를 기울여보세요. 어쩌면 그 침묵과 정적 속에서 범상치 않은 것 혹은 예상치 못했던 것을 경험하는 행운을 누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예술품의 제작자, 문화, 의도된 의미에 관해 알아낼 수 있는 건 모두 알아내세요. 그것은 보통 우리 자신을 겸손하게 만드는 과정입니다. 그러나 어느 시점이 되면 방침을 바꿔 자신의 의견을 내세워보고 싶은 마음이 들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우리와 다름없이 오류투성이인 다른 인간들이 어떻게 해석했는지를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메트입니다. 여러분은 예술이 제기하는 가장 거대한 문제들에 대해 의견을 피력할 자격이 있습니다. 그러니 아무도 자기 생각을 들을 수 없다는 사실에 기대어 용감한 생각, 탐색하는 생각, 고통스러운 생각, 혹은 바보 같을 수도 있는 생각들을 해보십시오. 그것은 맞는 답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가 늘 사용하는 인간의 정신과 마음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함입니다. 438 

메트에서 애정하는 작품이 어떤 것인지, 배울 점이 있는 작품은 무엇인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연료가 될 작품은 또 어느 것인지 살핀 다음 무엇인가를 품고 바깥세상으로 나아가십시오. 그렇게 품고 나간 것은 기존의 생각에 쉽게 들어맞지 않고, 살아가는 동안 계속 마음에 남아 당신을 조금 변화시킬 것입니다. 440 

많은 경우 예술은 우리가 세상이 그대로 멈춰 섰으면 하는 순간에서 비롯한다. 너무도 아름답거나, 진실되거나, 장엄하거나, 슬픈 나머지 삶을 계속하면서는 그냥 받아들일 수 없는 그런 순간 말이다. 예술가들은 그 덧없는 순간들을 기록해서 시간이 멈춘 것처럼 보이도록 한다. 그들은 우리로 하여금 어떤 것들은 덧없이 흘러가버리지 않고 세대를 거듭하도록 계속 아름답고, 진실되고, 장엄하고, 슬프고, 기쁜 것으로 남아 있을 수 있다고 믿게 해준다. 그리고 이곳 메트에 유화물감으로 그려지고, 대리석에 새겨지고, 퀼트로 바느질된 그 증거물들이 있다.

세상이 이토록 형형색색으로 화려하고 충만하며, 그런 세상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며, 사람들이 아름다운 것들을 정성을 다해 만들려는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사실이 신비롭다. 예술은 평범한 것과 신비로움 양쪽 모두에 관한 것이어서 우리에게 뻔한 것들, 간과하고 지나간 것들을 돌아보도록 일깨워준다. 예술이 있는 곳에서 보낼 수 있었던 모든 시간에 고마운 마음이다. 나는 다시 이곳에 돌아올 것이다. 4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