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아가 있다는 생각(상견) : 일상적 태도와 형이상학적 태도
이 세상에서 내게 부여되는 무수한 규정들이 모두 다 내게 우연한 것임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 세상에서 내게 부과된 그런 규정들이 모두 내게 본질적인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우리 삶의 무대 위에서 내게 부여된 위치와 역할, 그에 따른 나의 규정들은 단지 그 무대 위 연극을 위해 내가 입는 의상, 내가 쓰는 가면에 불과한 것이고, 따라서 나로부터 분리 가능한 것이고, 진짜 나는 그런 규정, 그런 의상과 가면 너머의 존재라고 자각한 것이다.
나의 부모와 나의 몸, 나의 환경과 나의 교육을 떠난 나 자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가? 무대 밖의 나란 과연 존재하는가?
깨어서 행하는 자기 해부, 자기 부정이 경악스러울 때는? 경악을 피하는 최선의 길은 곧 자기 해부를 멈추고 돌아서 다시 자신에다 주섬 주섬 옷을 입히고 가면을 씌우면서 바로 그것을 자아라고 자아란 본래 사회 속에서 역사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얼버무리는 길일 것이다. 주어진 역할에 충실함을 자기 삶의 소명으로 삼고 살아가는 태도일 것이다. 그것이 아마 우리 대부분의 사람이 건강한 삶으로 간주하는 길일 것이다.(1.일상적 태도)
경악을 피하는 또 하나의 길은 현실에서 꿈으로 도피하는 길일 것이다. 자기 해부가 완료된 순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남을 믿는 것이다. 내가 나를 부정하고 나를 비우면, 그 자리를 신이 채워준다는 약속이 있기 때문이다. 무대 위 현실적 규정 너머에 본래적 나, 형이상학적 자아가 존재하고 우리 삶의 무대 너머에 절대적 신이 존재한다는 믿음, 그 달콤한 형이상학적 꿈은 우리를 삶의 질곡으로부터 해방시키며 무한히 멀리 비상하게 한다.(2.형이상학적 태도)
2.아가 없다는 생각(단견): 탈현대적 태도
가면의 벗겨짐을 통해 가면이 자아가 아님을 알았는데, 그래서 가면 너머의 진짜 자아의 출현을 기다렸는데, 아무리 벗겨도 자아는 나타나지 않고 끝없이 그 다음 가면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서, 가면 너머 자아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무대 위 가면에서도 무대 밖 가면 너머에서도 자아를 발견하지 못하는 현대철학자가 된다.
3.무아와 공의 직관 :수행의 길
우리는 가면의 끝없이 진행되는 것을 보면서, 그 가면의 끝을 직감한다. 즉 유한이 무한한 연속 속에서 (유한이 아닌) 무한을 직관한다. 이것은 과연 어떻게 가능한가? 유한의 끝없음의 의식이 어느 순간 무한의 의식으로 바뀌는 것, 이것은 과연 무엇을 말해주는가?
유한의 끝없음을 의식하는 그 정신 자체가 무한하지 않다면, 우리가 경험하는 유한의 끝없음의 의식이 무한의 의식으로 바뀔 수 없을 것이다. 무한히 큰 것(유한한 것)을 바라보며 무한의 이념을 느끼게 되는 숭고의 감정은 바로 인간 정신의 무한성을 말해준다. 유한의 무한한 연속을 경험하는 그 정신 자체가 무한하기에, 끝없는 유한의 의식이 무한의 의식(자기의식)을 일깨우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한한 가면의 끝없는 연속을 바라보던 정신은 자기 자신의 무한성을 의식하게 된다. 그 무한의 의식 속에서 유한한 가면의 끝이 직감되는 것이다. 공의 예감일 뿐.
마음 속에 떠오르는 모든 것을 '이것은 내가 아닌 것'이라고 생각하고 최후에는 그 생각마저도 없애 갈때(지), 그 마음은 무엇을 발견하겠는가? 마음이 일으키는 생각이 멎는 순간, 끝없는 생각이 끝나는 순간, 이언절려의 순간, 바닥 없는 깊은 심연으로 추락하는 그런 느낌이 있다. 그 느낌 속에서 마음은 자기 자신을 공으로서 자각하게 된다. 공의 직관.(4.수행적 태도/공의 직관/공관) 그는 마음의 한계 없음과 머무를 바 없음을 안다. 그는 마음을 마음 본래의 무한성과 절대성에 따라 아는 것이다. 마음을 무한과 절대의 마음으로서, 즉 일심으로서 자각하는 것이다.
4.무아와 공의 느낌 : 평상심
누구나 자기 자신을 본질적으로 일체의 유한한 경계지움을 넘어선 존재, 자유로운 존재로 느낀다. 수행자가 마음의 공성과 무한성을 직관하였다면, 우리는 단지 마음의 공성, 마음이 일으키는 무한성과 절대성의 느낌 속에서 산다. 그런데 그 공의 느낌이 일체의 규정된 존재자들 앞에서 자신을 무로 느끼게한다. 현대철학에서의 자아의 죽음, 이성의 죽음 여기 바로 이러한 공의 느낌, 무한의 예감에 바탕을 둔 것이다. 자신을 무로 느끼는 것은 경계지어진 유한한 것들만을 존재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도 그렇게 경계지어진 유한한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무한과 절대가 마음에서 느껴지지만 마음 자신의 것으로서 자각되지 않기에, 그것이 마음 밖의 타자로서 객관화된다. 형이상학적으로 실체화된 절대, 신이나 존재 자체, 태극이나 천리등은 모두 객관화되고 원리화된 마음이지 그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일심은 오로지 하나이고 또 전부이므로 그 자체만으로 의식되지 않는다. 그것의 의식은 그 안에 나타나는 끝없는 유한이 끝나는 순간에 즉 유한한 시간의 흐름이 단절되는 한 찰나에만 가능할 뿐,
결국 절대가 절대로서 무한이 무한으로서 자신을 드러내는 길은 자신의 분화 즉 절대의 상대화 무한의 유한화이다. 그러므로 신이 세게를 창조하고 존재는 생성이 되며 태극은 음양을 생하고 공은 가를 형성한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다시 본래의 일상적 관점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무대 위의 삶, 우리의 유한한 가면은 무대너머 정신, 우리의 무한을 실현하는 방편인 것이다.
무한은 그 끝없는 한계지움과 그 끝없는 한계극복의 과정 속에서 자기 자신을 확인한다. 끝없는 한계지움과 끝없는 한계극복 그렇기에 우리의 매일 매일은 끝없는 반복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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