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성게_정화

제 12구.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是無量劫)

백_일홍 2020. 1. 2. 21:06

법성게 제 12구.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是無量劫) 

한 생각이 한량 없는 시간으로

 

중생의 업이 수행에 따라

지혜로 전환되어 진여공성에 나투는 시간의

무자성을 여실히 알아차릴 때,

마음에 일어나는 한 순간의 시간이 무량한

시간이 됩니다.

 

(법계의 노래)

 

마음은 제 모습을 갖지 않지만

인연따라 모든 모습을 나투는 것으로

제 모습을 변주하니

만남마다 새롭지 못한다면

제 성품을 잃고 망상이 되나

 

늘 새롭게 자신을 드러내는 마음은

나툼과 비움을 함께 하면서

법계의 인연이 되어

온갖 시공의 변화를 담아내지요.

 

그래서 마음이란

마음이라는 말에 해당되는 어떤 것으로

마음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며,

모든 법을 존재하게 하는 존재자도 아닙니다.

 

관계 속의 변화가

마음도 되고

마음의 대상도 되고

마음과 대상이 서로 상대하여

존재하는 것 같지만

 

마음은 대상을 대상이게 하고

대상은 마음을 마음이게 하는

하나 된 장에서

마음처럼 있고 대상처럼 있으니

 

마음도 대상도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서 보면

마음이라고도 할 수 없고

대상이라고도 할 수 없으나

 

관계 그 자체가 온전히

마음도 되고 대상이 되면서

새롭게 관계의 변화를 나투고 있는 것뿐입니다.

 

곧 관계의 변화가 세계를 변주하면서

그 자체로 전체가 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마음마다 새로운 흐름으로

무상을 나투지 않는다면 현재를 살지 못하고

그렇다고 새로움이 전혀 다른 것으로 새롭다고 하면

삼세를 함께 살지 못하리니

 

매 순간 연기하는 모습이

마음처럼 드러나고

대상처럼 드러나면서도

삼세를 담는 변주가 되어야

마음마다 새로운 마음이면서

온생명을 나투는 마음이 되지요

 

곧 연기 관계의 끊임없는 변주가

마음도 되고 대상도 되기에

변주를 지휘하는

마음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순간 망상이 되어

깨어있는 삶을 놓치고 중생이 되나

 

깨달은 삶이

중생의 삶을 떠나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니

연기실상이

마음처럼 나투고

대상처럼 나투면서

늘 새로움 속에 삼세를 담고

삼세가 새로움으로 다시 자신을 변주하는 것에

투철히 깨어있을 뿐입니다.

 

(해설)

무자성, 연기의 한어울림

 

모든 법은 다 괴로움이다라는 가르침은 삼법인의 하나입니다. 모든 분별은 마음에 의해 이루어지고 이는 자기 삶에서 소외된 모습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소외된 모습이란 한 쪽에 치우친 것으로 상주론이나 단멸론을 삶의 지표로 삼는 것이 대표적인 보기입니다. 이는 무상과 무아가 뜻하는 불변과 수연, 부정과 긍정의 두 가지 면을 잘 알지못하고 그것 가운데 하나를 삶의 본질로 삼는 경우입니다.

 

흐름은 전찰나와 추찰나가 인연조건에 따라 변하면서도 낱낱이 그 자체의 정체성을 유지합니다. 변화와 정체성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삶의 양면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의 길이를 갖지 않고 순간순간 조건의 변화를 말하는 무상은 오히려 시간을 넘어서 변하지 않는 가운데 변한다고 했습니다.

 

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결정된 실체가 없는 데서 오히려 모든 형산계가 인연조건에 따라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무아이기 때문에 현상계가 제 모습을 띠고 언제나 그렇게 존재하며, 현상계의 모습 그대로 무아일 수 있습니다. 148

 

따라서 현상계의 모습을 부정하기만 하거나 현상계의 모습을 그대로 긍정하기만 하는 것은 자기의 삶을 바르게 아는 것이 아닙니다. 연속과 불연속, 긍정과 부정을 하나로 뚫고 있는 연기실상을 알지 못할 때 삶의 모든 것이 괴롭습니다. 곧 삶의 본질이 괴로운 것이 아니라 본디 모습을 여실히 알지 못하는 데서 괴로움이 일어납니다.

 

바꿔말하면 깊은 수행으로 진실한 삶의 모습을 가로막는 삼독심이 사라졌을 때 괴로움은 저절로 사라지니 이를 열반적정이라고 합니다. 이 관계를 유식에서는 의타기성, 변계소집성, 원성실성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연기법의 의타기성에서 나투는 모든 중생과 사물들 낱낱을 자성이 있다고 알 때 변계소집성인 괴로움의 세계가 있고, 이들 모두가 무자성으로 연기의 한어울림을 여실히 알 때 원성실성으로 열반의 세계가 열립니다.

 

이렇듯 중생의 세계와 열반의 세계를 묶어 세 가지 모습으로 나누어 이야기하고 있지만 근간은 의타기성, 곧 인연 조건의 변화에 의해서 모든 것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한 생각이 일어나는 순간이 원인이 되어 끊임없는 시간이 결과로 있게 됩니다.

 

또한 생각이 일어나는 한 순간은 그 자체로서 시간의 길이를 갖지 않은 공성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바꿔 말하면 시간의 자성이 없기 때문에 모든 시간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원인은 결과인 모든 시간에 따라서 다시 결과가 되기 때문에 원인과 결과가 한 모습으로 있게 됩니다.

 

이것은 전후찰나의 흐름의 인연 조건의 변화를 그대로 나타내면서도 그 가운데에 아무런 실체가 없는 공성이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에게 원인과 결과로 존재하고 한 순간 그대로 모든 시간의 속성이 될 수 있습니다. 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