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무론_김영민

동무론(3) 현명한 복종, 현명한 지배

백_일홍 2020. 1. 29. 14:33

5장 동무론(3)

손을 빌리고 빌려줌으로써 가능해지는 인문적 연대


자본제적 삶의 태평성대(?) 속에서 거래와 교환의 형태로 조직화한 자유와 평등은 과거의 기원도 미래의 지향도 잃(잊)어버린 풍경, 네트워크, 스펙터클, 그리고 소비 공간이 되어 버렸다. 요컨대, 자유주의만으로는 자유를 지킬 수 없고, 평등주의만으로는 평등을 지켜낼 수가 없다. 현재의 긴장과 생산을 위해 과거와 미래를 살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현재 그 자체의 논리 속에서 동일한 긴장과 생산성의 매커니즘을 구성할 수 있어야만 한다. 


자유와 평등은 인문적 연대의 필요조건이다. 

자유와 평등이라는 형식적 조건 그 자체가 심각하게 미달되었거나 억압되었을 경우, 동물들은 각자의 생활세계적 관심들을 묻어놓고 이념의 깃대를 향해 동지로서 결합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적 삶 그 자체 속에서 이미 자유와 평등이라는 '형식'은 '영혼'의 요구나 몸과 무의식이 흐름을 넉넉하게 담아내지 못한다. 의사소통적 상호이해와 합의도 지난한 과정이지만 그 이해와 합의가 곧바로 협력과 화해의 실천적 현명함으로 이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개인의 인식만으로는 결코 유아론적 울타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우리들 사이의 의사소통적 합리성만으로는 실천의 현명함에 이르지 못한다. 연대와 공동체적 실천은 인식도 합의도 닿지 않는 섬세한 몸의 운신, 그 버릇의 근기와 슬기와 온기를 요청한다. 내가 내내 말한 바로 그 '몸이 좋은 사람'인 것이다. 


얻어내기 전의 자유와 평등은 세상의 전부이지만, 얻어내고 난 뒤의 자유와 평등은 한갓 형식인 것이다. 동무들 사이의 공동체적 실천이 개시하는 그 영혼은 합리성의 한 측면이 상도한 이념형들로서의 자유와 평등이라는 형식에 온전히 담기지 않는다. 


차라리 영혼은 '손'에서 생긴다. '손'을 빌리고 빌려주는 그 기민하고 너그러운 협력의 현명함 속에서 연대의 빛, 그 영혼을 얻는다. 누군가가 먼저 문을 열어 앞서면 그 누군가는 뒤따르는 수밖에 없다. 손과 몸이 개입하는 그 어떤 행위이든 그것은 평등이나 자유라는 관념의 몴이 아니다. 그 누군가는 현명하게 지배해야 하며 그 누군가는 현명하게 복종해야 한다. 


그 선도에 현명하게 응하는 실천을 통해 동무들의 연대는 단지 평등과 자유라는 형식을 아득히 넘어 관계를, 일상의 버릇을, 주변 세상을 바꾼다. 


'차이'라는 시대의 구호가 자본제적 삶의 기호로 타락해갈 때, 연대와 변화를 실험하는 동무들은 자유와 평등이라는 그 놀라운 성취를 또 다시 놀랍게 넘어간다. 굴종이 아닌 복종으로, 허영이 아닌 희생으로, 여유가 아닌 관용으로, 타협이 아닌 협력으로, 영리함이 아닌 현명함으로, 생각이 아닌 손과 발로,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길고 짧은 실천의 원환 속에서 복종과 일치하는 지배로.


나는 작은 공동체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이런저런 과정에서 이해와 합의, 자유와 평등에 기민한 이들이 결국 이기주의적 소비자일 뿐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절실하게 깨달은 바 있다. 


자유는 무응답의 이기심이고 평등은 주장의 이기심일 뿐인 세속, 

연대가 다만 합의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관계와 주변을 바꾸려는 실천의 직물이라면, 근기와 온기와 용기와 슬기를 북돋우는 실천적 현명, 현명한 실천이 요체다. 그리고 그 실천은 현명한 복종과 지배의 윤번제, 우리 일상의 자잘한 일들 속으로 어울려 개입하는 나섬과 물러섬, 나눔과 누림, 희생과 배려, 앞섬과 처짐, 그리고 손을 빌리고 빌려줌 속에서 가능해진다. 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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