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매혹하는 식물의 뇌

백_일홍 2022. 7. 28. 20:00

매혹하는 식물의 뇌_식물의 지능과 감각의 비밀을 풀다 

 

스테파노 만쿠소,알레산드라 비올라 (지은이),

양병찬 (옮긴이)

행성B 2016-05-16

 

 

1장. 조용히 뒤로 물러나 있던 식물

 

지금으로부터 35억년 전 광합성을 할 수 있는 세포들이 지구상에 등장했으며, 현생인류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한 것은 20만 년 전이라고 한다. 광합성 생물이 1월 1일 0시에 탄생했다면, 현생인류는 12월 31일 밤 11시 30분에 막차를 타고 지구에 도착한 셈이다. 

 

일부 진화론 지식이 인간을 '우주의 주인'으로 치켜세우고 있지만, 가장 나중에 도착했다고 해서 특권의식을 가질 이유는 전혀 없다. 솔직히 우리는 그저 지구의 신입생일 뿐이다. 문화조건화를 통해 뇌리에 박혀 있는 것과 달리, 인간은 애당초 다른 종들을 지배할 수 있는 기득권을 보장받고 태어나지 않았다. 

 

수십 명의 위대한 사상가들이 식물의 지능을 이론화하여 문서로 남겼다. 하지만 '식물은 무척추동물보다 열등하고 덜 진하했으며 진화적 관점에서 보면 무생물보다 나을 것이 없다'는 고정관념이 전 문화권에 퍼져 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우리의 일상행동에도 부지불식중에 반영되어 나타난다. 

 

서구의 종교, 문학, 철학, 심지어 현대과학은 암묵적 합의 하에, 식물은 지능은 고사하고 다른 종들보다 낮은 수준의 생명을 보유하고 있다는 생각을 널리 퍼뜨리고 있는 듯하다. 23

 

1.종교

 

구약성서, 노아의 방주에 태울 생물들, 식물에 대한 언급이 한마디도 없다. 

구약성서 전반에는 '식물은 살아 있는 피조물이 아니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의 아브라함 종교 모두 

 

유대교, 불필요한 벌채를 금하고, 나무 심는 절기를 지킨다. 이러한 태도는 인간의 양면성을 잘 반영한다. 한편으로는 인간이 식물없이 살 수 없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식물이 지구상에서 수행하는 역할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버티는 이율배반적인 심리 말이다. 

 

아메리카 원주민, 식물을 영물로 여겨 부족의 의식에 사용한다. 신성시함. 

15-17세기, 가톨릭 종교재판, 마녀재판, 마법에 사용된다는 이유로 악마로 여김. 

 

2.예술, 철학

 

대부분의 작가들, 식물을 정적, 수동적인 무생물로 묘사함.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 다른 생명체를 찾아 헤매는 과정을 묘사, 이미 온갖 종류의 식물에 둘러싸여 있는데도. 

 

'식물이 생명 또는 영혼을 지니고 있는가?'에 관한 철학적 논쟁

. 아리스토텔레스, 식물이 생물보다 무생물에 가깝다

. 데모크리토스, 식물은 인간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정도로 높게 평가함.

 

아리스토텔레스, <영혼론> 

영혼의 보유 여부를 판가름하는 특징이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운동이고 다른 하나는 감각이다. 

식물에게만 적용되는 저급 영혼 즉 식물 영혼.  즉 식물영혼이란 움직일 수 없지만 번식은 할 수 있는 식물을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개념이다. 

 

데모크리토스, 원자설에 입각하여 "모든 사물은 원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모든 원자들은 진공상태에서 끊임없이 움직인다. 이는 외견상 정지한 것처럼 보이는 사물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나무를 거꾸로 선 인간과 비교. 

 

3.식물학의 아버지: 린네와 다윈

 

식물을 바라보는 린네의 시각

. 식물의 생식기관을 찾아내어 그것을 분류의 기준으로 삼았다.

. 식물도 잠을 잔다고 주장함.

 

그러나 파리지옥과 같은 식충식물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음. 식물이 곤충을 잡아먹는다는 것은 자연의 엄격한 위계질서에 위배되는 현상이었다. 린네처럼 위대한 식물학자가 식물에 대한 양가감정을 극복하지 못한 것은 안타까운 일. 

 

다윈, 육식식물이 존재한다는 말은 차마 입밖에 내지 못하고 그저 약간의 '식충식물'이 존재한다고만 밝힘.

 

4. 식물생리학: 프랜시스 다윈

 

우리의 생물관은 지난 수 세기 동안 전해 내려온 소위 '생물 피라미드'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이것은 카롤루스 보빌루스가 1509년 에 발간한 <지혜에 대하여>에서 유래한다. 

돌(존재하기만하고 아무런 속성이 없음)

식물(존재하고 살아 있지만 그 이상은 없음)

동물(감각을 갖고 있음)

사람(이해력, 지능을 갖고 있음)

 

이러한 생물관은 문화적 부엽토와 같아서, <종의 기원>(1859)이 발간된 지 15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잔존하고 있다. 

진화적 관점에서 보면 '식물은 무감각한 수동적 존재로 커뮤니케이션, 행동, 계산 능력이 없다'는 생각은 명백한 오류인데도 불구하고 과학계에 여전히 강고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다윈은 더 진화하거나 덜 진화한 생물은 없다고 못 박음으로써 식물이 결코 무능력한 존재가 아님을 분명히 천명했다. 다윈주의 관점에서 보면 현재 지구 상에 살고 있는 생물은 모두 진화의 나뭇가지 끝에 자리 잡고 있다. 특별한 적응능력을 발휘하여 멸종을 모멸했다는 것. 

 

1880년 발간, <식물의 운동력> 내가 지금껏 마주쳤던 생물 중 가장 특별한 것은 식물이다. 

지상부와 뿌리를 비롯한 다양한 부위에서 운동의 증거를 찾아냈으며, 특히 뿌리 부분에는 운동을 제어하는 일종의 지휘본부가 존재한다고 확인함. 

식물의 뿌리에는 하등동물의 뇌와 비슷한 것이 들어 있다. 

-> 사실, 하나의 식물은 수천 개의 근단을 갖고 있으며 각각의 근단에는 독자적인 컴퓨팅센터가 존재한다. 

 

아들, 프랜시스 다윈, 식물 생리학. "식물은 지능적 존재다'라고 선언함. 1908년. 

이태리 식물학자, 페데리코 델피노, 식물과 개미의 공생

 

식물 실험에서 발견된 엄청난 과학적 사실들이 오늘날 동물실험에서 확인된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식물계에 한정된다고 무시당하거나 과소평가되었던 기본적인 생명현상들이 동물계에서도 발견되는 순간 갑자기 유명세를 타는 일도 비일비재함. 

 

식물은 동물에 밀려 언제나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윤리 문제를 야기하지 않는다든가 동물과 생리가 비슷한다는 이유로 식물을 실험에 사용한다. 그러나 식물을 실험실에서 함부로 다뤄도 윤리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을까? 47 

 

결론.

 

현재와 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은 서구문화의 밑바탕에 깊숙이 깔려 있는 편견의 결과다. 

 

우리의 현재아 미래가 식물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식물은 늘 과소평가되어 왔다. 

일반인

예술가

철학자 모두 식물을 가장 열등한 생물로 간주함.

과학자, 식물을 동물에 부당하게 종속시킴. 

 

 

2장. 우리에게 낯선 식물의 모습

 

식물과 20만 년을 함께 살았지만 우리는 식물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 

 

하나의 생명체가 영리하지 않서나 사교성이 없었다면, 오랜 진화과정을 거쳐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겠는가? 

 

1. 유글레나와 짚신벌레

 

우리 인간들은 왜 이제껏 식물을 단순한 원재료, 식자재, 인테리어 재료로만 생각해왔을까? 우리가 식물에 대한 피상적 평가에서 벗어나는 것을 가로막는 요인, 두 가지.

1) 진화적 요인

2) 시간적 요인

 

우리가 동물과 식물을 차별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진화 때문이며, 오늘날 실물계를 깊이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도 역시 진화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 

 

최초의 식물세포는 동물세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식물세포는 세포벽에 둘러싸여 있어 동물세포보다 더 견고하고, 식물세포는 광합성을 하기 위한 엽록체라는 소기관을 갖고 있는 차이. 이 외에 식물세포와 동물세포는 매우 유사함. 

 

단세포 생물인 짚신벌레와 유글레나, 

짚신벌레는 동물의 특성을 유글레나는 식물의 특성을 가짐. 

빛이 부족할 경우 유글레나는 포식자로 변신하여 동물처럼 행동함. 그리하여 먹이가 있는 곳을 찾아내 그곳으로 이동한다. 

유글레나는 경쟁자(짚신벌레)를 물리칠 수 있는 비장의 무기를 갖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안점. 윈시적 형태의 시각. 빛을 감지하여 광합성을 하기에 가장 좋은 위치를 찾아냄. 

 

유글레나는 짚신벌레가 하는 일은 뭐든다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덤으로 시각을 보유하고 있어 태양 에너지를 자신의 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다. 

 

사람들은 어째서 '식물세포가 동물세포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다'는 과학적 증거를 무시하고 동물세포 편만 드는 걸까?

 

2. 진화의 갈림길

 

1) 진화적 요인이 식물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에 미친 영향

 

5억 년 전, 식물과 동물이 분리되던 시점.

고착 생활이냐 이동생활이냐? 

 

고착 생활을 택한 식물은 살기 위해 땅, 공기, 태양으로부터 모든 것을 얻어내는 능력을 진화시켰다. 

 

동물, 식물이나 다른 동물을 잡아먹어야 했으므로 달리기, 날기, 수영 등과 같은 다양한 운동능력을 발달시켰다. 

 

식물 - 독립영양 생물

동물 - 종속영양 생물 

 

지난 5억 년 동안 식물계와 동물계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진화해왔다. 

 

3. 식물은 하나의 군집이다.

 

외부 공격에 소극적으로 저항하는 방법을 개발 

모듈성(혹은 가분성) 식물의 몸은 여러 개의 모듈로 구성됨. 

이점, 몸의 일부분을 초식동물에게 뜯어 먹혀도 생명에 지장이 없을 뿐 아니라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살아갈 수 있다. 

 

식물의 기능은 동물과 달리 장기와 관련이 없다. 즉 식물은 폐가 없어도 숨을 쉴 수 있고, 입이나 위장이 없어도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으며, 골격이 없어도 곧게 서 있을 수 있다. 심지어 뇌가 없어도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 

 

일부를 절단하면 더욱 번성하기도 한다.(예. 가지치기) 

다른 모듈과 독립적으로 몸체에 부착되어 있다. 마치 레고 블록처럼. 

 

우리가 우리 자신을 개인 individual이라고 부르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님. 나눌 수 없음. 우리 몸은 나눌 수 없음. 

 

식물은 두 동강 낼 경우에도 각각의 반쪽이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다. 왜냐하면 식물은 불가분의 개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각각의 식물은 하나의 '개체'가 아니라 '군집'이다. 나무는 '한 마리의 동물'보다는 '벌레나 개미떼와 같은 군집'으로 묘사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창발성

초유 기체

무리 지성, 집단지성 

 

 

4. 식물은 느려도 너무 느리다

 

2) 시간적 요인

우리가 식물의 진가를 몰라보는 두 번째 이유는 시간 척도가 다르기 때문. 

 

생물의 평균수명

생물의 생활주기, 겨울잠, 운동과 번식 속도

모두 달라. 

 

우리는 우리와 전혀 다른 시간 척도를 가진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인간의 시간 척도보다 훨씬 더 느리게 전개되는 사건이 있다면 우리의 시각에 포착되지 않으므로 인식이 불가능하다. 

 

식물이 빛을 포착하거나 위험을 피하기 위해 또는 덩굴식물의 경우 지지체를 찾기 위해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나 지각 능력으로 포착할 수 없다. 

 

우리의 감각이 식물의 움직임을 감지하지 못하므로, 우리는 식물을 무생물처럼 취급한다. 

 

고도로 발달한 과학기술 덕분에 오늘날에는 직접 보고 들은 바가 아니더라도 사실로 인정되는 것들이 많다. 그렇다면 유독 식물의 경우에만 보이지 않으니 믿을 수 없다고 생떼를 쓰는 이유는 뭘까? 일종의 심리적 장벽이 있는 건 아닌가? 우리와 식물 간의 관계는 태곳적부터 절대적인 의존관계였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연상시킬지도 모른다. 우리는 성장함에 따라 부모에 대한 의존성을 완전히 부정하고 심리적 자율성을 추구하는 단계를 거치게 된다. 의존성이란 약하고 상처받기 쉬운 상태를 나타내므로 아무도 이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사람은 자신이 의존하고 있는 대상에 대해 자신의 자유를 앗아간다는 이유로 원한을 품는 경우가 종종 있다. 67

 

우리는 식물에 너무 의존하고 있는 나머지 식물에 종속되어 있다는 느낌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우리는 '인간이 우주의 지배자'라는 믿음과 자손심에 흠집을 내고 싶지 않아서, 식물이 우리의 생존을 좌우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과 식물 사이에 존재하는 애증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4. 인간은 식물 없이 살 수 있을까? 

 

만약 식물이 내일 당장 지구 상에서 사라진다면 인간은 몇 주 길어야 몇달ㅇ르 버티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조만간 고등생물이 자취를 감출 것이다. 이와 반대로 인간이 지구상에서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몇 년 후 식물들이 인간의 거주지를 접수할 것이며, 1세기 안에 모든 문명이 식물로 뒤덮이게 될 것이다. 

 

생물학적 인식에 관한 한 사람들은 아직도 코페르니쿠스 이전의 믿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은 인간이 가장 중요한 생물이며, 모든 것이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한마디로 인간이 자연의 주인이라는 것이다. 

 

지구의 바이오매스에서 식물이 차지하는 비중은 99.5-99.9 퍼센 터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의 무게를 다 합해도 0.1-0.5그램에 불과하다. 

 

식물이 심신 건강에 긍정적 효과를 보이는 과학적, 의학적 이유는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그 이유를 알려면 과거로 한참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같다. 우리의 DNA 속에는 식물이 없으면 살 수 없다는 메시지가 아로새겨져 있는 듯하다. 75

 

 


<발제>

 

ㅇ 오늘날 과학자들은 윤리 문제를 야기하지 않는다든가 동물과 생리가 비슷한다는 이유로 식물을 실험에 사용한다. 그러나 식물을 실험실에서 함부로 다뤄도 윤리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을까?

마지막 발제와 연결됨.

ㅇ 개체가 아닌 군집으로 존재하는 식물에게 인간과 같은 자의식(나는 나다라는 말나식)이 있을까?

동물, 인간의 개체성과 식물의 군집성

개인, 개체성, 더 이상 나눌 수 없음을 의미.

무아이며, 우리가 나라 여기는 개체성은 오온, 색수상행식의 뭉침일 뿐이다.

식물 또한 환경에 대응해 생존해야 하는 생명체이므로
나와 남을 구별하는 자타분별, 자의식은 있을 것이다. 다만 그것에 대한 집착, 아집은 없거나 미약할까?

ㅇ 식물에 대한 이해를 막는 장벽들

식물에 대한 우리의 바른 이해를 어렵게 하는 요인 3가지
진화적 요인
시간적 요인
심리적 요인

특히 심리적 장벽: 부모와 자식 간 관계로 비유한 게 흥미로움.,

고도로 발달한 과학기술 덕분에 오늘날에는 직접 보고 들은 바가 아니더라도 사실로 인정되는 것들이 많다. 그렇다면 유독 식물의 경우에만 보이지 않으니 믿을 수 없다고 생떼를 쓰는 이유는 뭘까? 일종의 심리적 장벽이 있는 건 아닌가? 우리와 식물 간의 관계는 태곳적부터 절대적인 의존관계였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연상시킬지도 모른다. 우리는 성장함에 따라 부모에 대한 의존성을 완전히 부정하고 심리적 자율성을 추구하는 단계를 거치게 된다. 의존성이란 약하고 상처받기 쉬운 상태를 나타내므로 아무도 이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사람은 자신이 의존하고 있는 대상에 대해 자신의 자유를 앗아간다는 이유로 원한을 품는 경우가 종종 있다. 67

우리는 식물에 너무 의존하고 있는 나머지 식물에 종속되어 있다는 느낌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우리는 '인간이 우주의 지배자'라는 믿음과 자존심에 흠집을 내고 싶지 않아서, 식물이 우리의 생존을 좌우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과 식물 사이에 존재하는 애증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ㅇ 식물이 심신 건강에 긍정적 효과를 보이는 과학적, 의학적 이유는? => 일심의 측면에서 유추해보면? 감각의 회복. 지구, 기세간을 공유하는 생명체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그 이유를 알려면 과거로 한참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같다. 우리의 DNA 속에는 식물이 없으면 살 수 없다는 메시지가 아로새겨져 있는 듯하다. 75


ㅇ 식물의 번식 전략에 이용되는 인간동물
꽃을 아름답다 찬미하고 철마다 맛있는 과일을 먹을 수 있는 이유는?

가장 효과적인 꽃가루 매개자는 바로 인간임.
인간은 마음만 먹으면 특정 식물의 번식. 생존. 전파를 심지어 다른 식물에 폐를 끼쳐가면서까지 확실히 보장할 수 있는 최고의 능력자이기 때문.

식물이 우리에게 준 선물을 생각하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찬미한다든지 괜한 감상에 젖을 필요는 없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 173

씨앗 배달부
개미 쥐 새 물고기 대형 포유류
열매는 씨앗 배달 동물을 유인하는 수단으로 이용됨.,

ㅇ 지구를 지배하는 생물은 무엇일까?
지구의 우점종은 인간이 아니라 식물이다. 183
바이오메스의 크기 측면
다른 식물과 동물과의 소통 능력 129
적응능력(지능) 측면

식물은 지금의 생태위기를 어떻게 볼까? 인간이란 별종의 동물(망식인 말나식, 강한 아집에 기반한 도구적 이성의 달인) 이 나타나 식물과 동물, 서식지인 지구를 마구잡이로 쓰고 파괴하고 있음. 당장은 어렵겠지만 식물이 결국은 인간종의 행태에 대한 적응능력을 얻어 다시 생존하게 될 것. 물론 인간종은 생존능력의 확장이 아니라 주워진 환경을 파괴하는 쪽으로 달려왔으므로 최소한의 생존환경마저 파괴한 후 멸종할 것이다. 식물은 인간이란 별종을 겪고 살아남았으므로 고차원의 도구적 이성에 대한 방어전략을 한층 개발했을 것이다.


ㅇ 식물이 뇌를 갖고 있지 않다고 해서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인간의 뇌라는 의근에 기반한 제6식(대상 의식)과 식물의 생각 능력을 비교해보자.

인간은 뇌라는 의근이 몸의 전5식의 활동을 제한하고 제한된 감각이 얻은 정보들을 종합하여 객관적 대상으로 지각한다. 이러한 의식이 근으로 삼는 것은 의근, 뇌이며 또한 의근은 자기의식이기도 하다. 나는 나다라는 아견 아애 아만의 아집을 갖는 망식임.

식물은 근단의 경우 같이, 감각기관과 인지 기관의 구분이 없고, 몸통으로 감각하고 인지함. 체화된 행위자. 또한 인간의 제6의식의 기능(인지와 사유와 판단)을 단독으로 결정하지 않고 수만 개의 근단이 협업한다.

동물의 뇌는 스스로 작동할까?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해. 우리 인지 기능과 신체 기능은 분리되어 있어서 뇌가 지능적으로 반응하려면 인체의 다른 부분에서 입력된 정보가 꼭 필요함.

식물은 인지기능과 신체 기능이 분리되어 있지 않고 하나의 세포 안에 존재한다.
인공지능., 몸통으로 세상과 상호작용하는 행위자 = 체화된 행위자 embodied agent
식물이 바로 체화된 행위자다.

ㅇ 식물과 외계 생명체
식물의 지능을 연구함으로써 우리 자신의 가치관과 외계 생명체를 전혀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어.

식물의 의사소통 방법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어., 우리와 진화사의 상당 부분을 공유하고, 똑같은 세포구조를 보유하며, 똑 같은 환경 속에 살고 있는 식물과 생물들의 지능도 알아보지 못하는 주제에, 무슨 수로 외계인의 지능을 알아본단 말인가?

우리 인간이 아닌 생명체, 동물계 -> 식물계 -> 지구 외계

ㅇ 식물의 존엄성. 식물의 권리
2008년 스위스 연방윤리워원회, 식물의 존엄성에 관한 윤리.
식물이 지각 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환경에 능동적으로 적응한다면,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와 독립적으로 삶을 영위한다면, 식물에게 존엄성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전적으로 타당하다. 232

동물권과 비교.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식물의 권리에 대
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더 이상 미룰 수는 없다. 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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