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아픔이 길이 되려면

백_일홍 2022. 7. 29. 09:31

<아픔이 길이 되려면>을 읽고


아, 이제 막 읽기 쉽지 않았던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다. 소감을 잊기 전에 두서 없이 나마 적어야 할 것 같다.

저자가 이 책에 담은 여러 사건 사고들, 그 이외 소개된 연구사례들을 읽으며, 한국 현대사회의 적나라한 모습을 본듯하고 내가 가깝게 때론 멀게 접했던 사고들이 그때의 상념들과 함께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1)
먼저 사회역학이란 분야를 처음 알게 되었고 의사인 저자가 사회역학이란 틀로써 이렇게 방대한 범위의 내용을 심층적으로 탐구해 내놓을 수 있음에, 또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방식의 서술이 아니라 피해자에 대한 대한 공감과 피해자 입장을 견지해서 연구를 하고 글을 썼다는 점이 참 놀라왔고, 읽는 내내 저자와 같이 시건사고의 현장에서 피해자들을 만나고 있는 듯 했다.

그리고 김승섭이란 저자에 대해 궁금했다. 보통의 의과대학 출신처럼 임상의로서 안정되고 편안한 길을 갈 수도 있었을텐데, 험난한 '운동권 의사'가 됐을까? 그 답은 책 마지막에 담긴, 다른 매체에 기고했던 자전적인 글, "우리 이기심을 뛰어 넘는 삶을 살아요"에 있었다. 이 글은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묻게 되는 물음, '아픔이 길이되려면 그럼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에 대한 답 또한 담고 있다. 이 물음과 답은 저자가 의과대학 시절에 임상의가 아니라 의사활동가로 진로를 정할 때 치열하게 궁구했던 물음과 답이다.

저자가 물었던 질문과 답을 인용한다.

1.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사회를 전체적으로 바꾸어내는 '혁명'의 전망 없이 나는 어떻게 해야 진보적으로 살 수 있을까? 그리고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라는 고민이 제게 20대 내내 큰 화두였어요. 좀 더 근원적으로 말하면, '꽃이 필 것이라는, 열매가 맺힐 것이라는 기대 없이 어떻게 나는 계속 씨앗을 뿌릴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었어요. 그 고민이 마지막에 닿았던 지점이 그런 거였어요., 사회가 급격하게 바뀔 수 있다는 꿈이 없다면 남은 길은 자신의 삶에서 가능한 한 오랫동안 진보적인 실천을 하도록 하고 그럴 수 있게 준비를 하자는 생각이었어요.

80년대 민주화운동에 그토록 적극적이었던 많은 사람들 중에서 그 절반만, 아니 그 반의반만이라도 그때 열정의 10퍼센트 가지고, 좀 더 구체적으로 자신의 소득과 시간의 10퍼센트를 소외된 약자를 위해 쓰고 있다면, 사회가 지금보다는 휠씬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이예요. 299

2. 어린 시절 특별히 정의롭지도 또 용감하지도 않았던 내가 어쩌다가 지금처럼 사람에 대한 꿈을 꾸고 이렇게 살아가려고 애쓰고 있을까?

의과대학 시절 산재노동자를 위한 사무실에서 자윈상근,  사지마비된 어린이 병동에서의 자원봉사,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저는 그런 경험들이 저를 살아있게 하는 것 같아요., 저는 세상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지만, 제가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런 경험들을 계속하고 그것들에 대해 함께 아파하고 기뻐할 수 있는 감수성을 간직할 수 있기를 또 길러나갈 수 있기를, 그것이 가능한 삶을 살았으면 하는 욕심이 훨씬 커요. 302

얼마 전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의 다섯 살 된 아이가 유치원 버스에 타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아빠가 경찰진압으로 인해 버스에서 워낙 심하게 구타당하는 것을 받던 게 트라우마가 되어버린 것이죠. 다른 아이들이 다 같이 동물원에 소풍을 가도, 버스 계단에 발을 올리는 게 그리 어려워서 홀로 유치원에 남아 있어야 했던 그 아이의 가슴속에 들어 있을 무언가에 대해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85호 크레인에 올라가 있는 김진숙 씨가 전기가 끊겼던 밤에 얼마나 외롭고 무서웠을까를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나이 60이 되어서도 꼭 되고 싶고 그게 가능한 삶으로 저를 끌고 가고 싶어요. 그리고 아름다운 사회는 나와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 예민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 그래서 열심히 정직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자신의 자존을 지킬 수 없을 때 그 좌절에 함께 분노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사회라고 생각해요. 점점 그런 인간을 시대에 뒤떨어진 천연기념물처럼 만들고, 타인의 고통 위에 자신의 꿈을 펼치기를 권장하고 경쟁이 모든 사회구성의 기본 논리라고 주장하는 사회가 되어가는 게 저는 싫어요. 303


(2)
이 책을 보면 한국은 OECD 국가중 자살율을 비롯해 여러 혐오나 차별지수가 최상위인 것으로 나타났다. 내가 놀란 것은 한국이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이면서도 그중 성소수자의 자살시도 비율이 일반인 보다 9배가 높다는 사실이다.

제도가 존재를 부정할 때, 아프고, 마침도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부정(자살)하는 사람들이 성소수자라는 사실., 여기서 얼마전 자살한 변희수 하사 생각이 났다. 사희구성원의 무지와 편견과 그것을 반영한 제도가 한 사람을 자살로 몰고 간다는 사실은, 여타 사건 사고로 인한 피해와 고통과는 구별되는 것 같다.

<제도가 존재를 부정한다는 것>의 의미, 그 무게를 다시 생각해본다.  변희수 하사가 공식적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고 그 이후 마지막 선택을 할 때까지 그가 겪었을 고통을 감히 징작해보려한다. 만일 단 한 사람으로 부터라도 진정으로 자신의 그 모습 그대로를 인정받고 이해받았다면 스스로 존재를 부정하는 결정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건 분명 자살이 아니라 사회적 타살이다.

로세토에 사는 한 여인이 한 말,
"당신이 이런 것들을 가지고 있다면, 그때는 당신도 당신의 십자가를 짎어질 수 있어요"

변희수 하사는 놀라운 용기로 십자가를 짋어지려 나섰지만  끝내 우리(사회)는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


3)

피해생존자가 겪고 있는 아픔에 내가 보텐 몫은 없을까?
아픔이 길이 되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마지막으로 저자가 당부한 말을 기억하고 싶다. 상처 받는 거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그 상처로 인해서 도망가지 말고,그것에 대해 꼭 주변 사람들과 용기 내서 함께 터 놓고 이야기하고 자신의 경험으로 간직하라고. 왜냐하면 "상처를 준 사람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성찰하지 않아요. 하지만 상처를 받은 사람은 자신의 경험을 자꾸 되새김질을 하고 자신이 왜 상처를 받았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해야 하잖아요. 아프니까. 그래서 희망은 항상 상처를 받는 사람에게 있어요"305

결국,
상처 받는 거를 두려워 하지 말고 항상 상처받는 사람들 곁에 있어라, 왜냐하면 그들이 우리의 희망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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