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니꼴라예비치 똘스토이
발췌
한때 철부지 어린애로서, 그리고 학생으로서 아주 가깝게 지냈던, 또 성인이 되어서는 같은 일을 하던 동료였던 사람이 몹시 고통을 받았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자신과 앞에 앉은 여인의 가식적인 모습이 불쾌하게 느껴졌음에도 불구하고 뽀뜨르 이바노비치는 갑자기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입술을 내리누를 듯 우뚝한 코와 흰 이미가 눈앞에 떠오르자 더럭 겁이 났다. 19
'사흘 밤낮을 끔찍하게 괴로워하다 죽었다. 언제든지, 지금 당장 나에게도 닥칠 수 있는 일이다' 그는 이런 생각을 하며 서늘한 두려움에 순간 몸서리쳤다. 하지만 곧바로 그에게는 자신도 모르게 그건 이반 일리치의 일이지 자신의 일이 아니다. 자신에겐 그런 일은 일어나지도 않고 일어날 수도 없는 일이다, 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자신이 울적한 기분에 젗어서 그런거다. 시바르쯔 얼굴 표정에 분명히 나타나 있듯이 그럴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 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나자 마음이 진정된 뾰뜨르 이바노치는 비로소 관심을 갖고 이반 일리치의 임종에 대해 자세하게 물어보기 시작했다. 마치 죽음은 이반 일리치에게만 일어난 특별한 사건일 뿐 자신과는 무관한 일이라는 듯이.
이반 일리치가 겪은 끔찍한 육체적 고통에 대해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들려주더니, (이런 구체적인 사실들을 통해 뾰뜨르가 알 수 있었던 이반 일리치의 고통이란 것은 실제 이반 이리리치가 겪은 고통이 아나라 그 고통이 쁘라스꼬비야 표도로브나의 신경을 얼마나 자극했느냐 하는 것이었다) 미망인은 이제 자신의 용건을 마랗ㄹ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20
그러자 그녀가 다시 입을 열어 이야기하면서 정작 그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꺼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남편이 사망한 경우에 국고에서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 잠시 생각해보다가 예의상 그저 우리네 정부가 하는 일이 다 그렇게 인색하다며 탓하고는 더이상은 방법이 없을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20
그러자 미망인은 한숨을 내쉬고는 이제 어떻게 이 조문객으로부터 벗어날것이지 궁리하는 눈치였다. 그녀의 마음을 알아챈 그는 담배를 눌러끄고 일어서서 손을 한번 잡아주고는 다른 방으로 건너왔다. 21
이반 일리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 중 하나는 거짓이었다. 그가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병이 들었을 뿐이고 안정을 취하고 치료만 잘한다면 곧 아주 좋아질 것이라고 모두들 빤한 거짓말을 해댔다. 아무리 무슨 짓을 하더라고 갈수록 심해지는 고통과 죽음밖에 남은 거서이 없다는 사실을 그 자신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사람들의 거짓말은 그를 더울 힘들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모두가 알고 있고 이반 일리치 자신도 알고 있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끔찍한 그의 상태를 감추려고만 했다. 거짓말, 죽기 직전가지도 멈추지 않을 이런 거짓말, 이 무섭고 장엄한 죽음의 의식을 인사차 들었다든지, 커튼이 어떻다든지, 오찬 자리의 철갑상어 요리가 어떻다는 따위의 일상의 사소한 것들과 같은 수준으로 격하하는 이런 거짓말, 바로 이런 거짓말이 이반 일리치는 소름이 끼치도록 끔직하고 싫었다. 82
그가 보기에 주변 사람들은 모두 이 무섭고 끔찍한 죽음의 의식을 그저 있을 수 있는 기분 나쁜 일, 특히 조금 품위가 없는(온몸에 더러운 냄새를 풍기는 사람이 응접실에 들어온 것같은) 일 정도로 격하하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그가 평생 지키려고 애써운 "품위'라는 것이었다. 그 누구도 진심으로 그를 안타까워하지 않는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의 상태를 진정으로 이해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그의 상태를 이해하고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사람은 오직 게라심뿐이었다. 그래서 게라심과 함께 있을 때 이반 일리치는 한결 마음이 편안했다. ... 그 만이 뻐만 앙상하게 만은 쇠약해진 주인 나리를 진정으로 가엾게 여기고 있었다. 83
한번은 이반 일리치가 이제 그만 가라고 하자 게라심은 이렇게 대답했다. "우린 모두 언젠가 죽습니다요. 그러니 수고를 좀 못할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 " 그의 이런 말엔느 자기는 죽어가는 사람을 위해 수고하는 것이기 때문에 조금도 힘들지 않으며 또 언젠가 자기가 죽어갈 떼에는 누군가가 자기를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을 것 아니겠냐는 뜻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84
이반 일리치는 누군가 자신을 아픈 어린아이 대하듯이 그렇게 가엾게 여기며 보살펴주기를 가장 간절히 소원했다. ... 이반 일리치는 소리내어 울고 싶었고 그런 자신을 누군가 다정하게 어루만지며 같이 울어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법원 동료인 셰베끄 판사가 찾아 오자 울며 동정을 구하는 대신 이반 일리치는 심각하고 엄하게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타성적으로 대법원 판결의 의미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표하고는 거듭 사진의 견해를 고집했다. 그 주변의, 그리고 그 자신의 이런 거짓말이 이반 일리치의 생의 마지막 순간들을 해치는 가장 무서운 독이었다. 85
그는 게라심이 옆방으로 물러나기를 기다렸다가 더이상 참지 못하고 어린애처럼 엉엉 울기 시작했다. 한없는 무력감과 끔찍한 고독이, 사람들과 하느님의 냉혹함이, 그리고 하느님의 부재가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100
'도대체 왜 제게 이런 고통을 주시나요? 왜 저를 이렇게까지 고통스럽겍 만드는 겁니까? ..... 도대체 왜?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러시는 겁니까?' 101
그는 사람의 목소리가 아닌 영혼의 목소리,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생각의 흐름에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네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무엇이 필요하냐고? 더 이상 고통받지 않는 것, 그리고 사는 것'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사는 거라고? 어떻게 사는 거 말이냐?' 영혼의 목소리가 물었다. '전에 살던 것처럼 그렇게 사는 것이지, 기쁘고 즐겁게' 101
하지만 이상하게도 예전에 좋았던 그 모든 순간들이 이제는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아주 어렸을 때의 추억을 빼고는 모든 것이 다 그랬다.
기억이 어린 시절을 지나 현재의 그, 이반 일리치가 존재하는 순간에 이르자 그 당시 기쁨으로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눈앞에서 녹아내리며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심지어 구역질 나게 역겨운 것으로 변해버렸다. 102
결혼...... 너무나 절망적이고 환멸뿐이었다. 아내의 잎 냄새, 애욕과 위선! 그리고 죽은 것만 같은 공적 생활과 돈 걱정들, 그렇게 일년니 가고 이년이 가고 십년이 가고 이십년이 갔다. 언제나 똑같은 생활이었다. 하루를 살면 하루 더 죽어가는 그런 삶이었다. 한 걸음씩 산을 오른다고 생각햇지만 사실은 한 걸음씩 산을 내려가고 있었던 거야. 그래, 맞다 세상 사람들은 내가 산을 오른다고 보았지만 내 발밑에서는 서서히 생명이 빠져나가고 있었던 거야... 그래 결국 이렇게 됐지, 죽는 일만 남은 것이다!
그럴 리가 없다. 삶이 이렇게 무의미하고 역겨운 것일 수는 없는 것이다. .. 아니다. 뭔가 그게 아니다.
'어쩌면 내가 발못 살아온 건 아닐까?'
'난 정해진 대로 그대로 다 했는데 어떻게 잘못될 수가 있단 말인가?' 103
만약에 정말로 내가 살아온 모든 삶이, 내 생각과 행동이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런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하지? 하는 의심이 들면서 그의 정신적 고통이 시작되었다. 111
그가 살아온 인생이 잘못된 것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전에는 전혀 불가능하였다. 하지만 이제 그거서이 진실일지도 모든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높은 사람들이 훌륭하다고 여기는 것에 맞서 싸우고 싶었던 마음 속의 어렴풋한 유혹들, 생각이 나자마자 신속하게 털어버렸던 그런 은밀한 유혹들, 어쩌면 바로 그런 것들이 진짜고 나머지 모든 것은 다 거짓이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일과 삶의 방식, 가족, 사교계와 직장의 모든 이해관계도 다 거짓인지 모른다. 111
'만일 정말 그렇다면', 그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망쳐놓았다는 생각만 가지고, 그걸 바로잡을 기회도 없이 인생에서 사라져버린다면, 그럼 어떻게 하지?" 112
그는 똑바로 누워 완전히 새로운 시각에서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날 아침 시종과 아내, 그리고 딸과 의사를 차례로 만나게 되었을 때 그들의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그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전날 밤 깨달은 끔찍한 진실을 그에게 분명하게 확인시켜주었다. 그는 그들에게서 바로 자시 자신을, 그리고 지산이 살아올 삶의 방식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그 모든 것이 삶도 죽음도 가려버리는 하나의 무시무시하고 거대한 기만이었다는 점을 분명히 깨달았다. 이런 의식은 육체적 고통을 몇 배, 몇십배 가중시켰다....바로이런 이유로 이날 아침 그는 그들 모두가 더욱 증오스러웠다. 112
바로 그 순간 이반 일리치는 구멍 속으로 굴러떨어졌고 빛을 보았다. 동시에 그는 그의 삶이 모두 제대로 된 것이 아니지만 그러나 아직은 그럴 바로잡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자문했다. '그게' 뭐지? 바로 그때 누군가 그의 손을 잡고 입 맞추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눈을 뜨고 아들을 보았다. 아들이 너무나 아쓰러웠다. 아내도 그에게 다가 왔다. 아내는 입을 크게 벌린 채 코와 빰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절망적인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내도 불쌍했다. 117
그는 '쁘로스찌'(용서해줘)라고 한마다 더 덧붙이고 싶었지만 '쁘로뿌스찌'(보내줘)라고 말하고 말았다. ... 그러자 돌연 모든 것이 환해지며 지금까지 그를 괴롭히며 마음 속에 갇혀 있던 것이 일순간 밖으로, 두 방향으로, 열 방향으로, 온갖 방향으로 한꺼번에 쏟아져나왔다. 가족들이 모두 안쓰럽게 여겨지고 모두의 마음이 아프지 않도록 해주고 싶었다. 이 모든 고통으로부터 자신도 못어나고 가족들고 다 벗어나게 해주어야 했다. 118
ㅇ ㅇ ㅇ ㅇ ㅇ
톨스토이 작가 연보
1828 - 1910
전쟁과 평화
안나 까레니나
참회록 1880
나의 신앙은 무엇인가 1883
이반 일리치의 죽음 1886 (58세)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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