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향모를 땋으며

향모를 땋으며(4)_참취와 미역취.유정성의 문법

백_일홍 2024. 7. 25. 13:28

참취와 미역취 Asters and Goldenrod

 

New England Aster, 뉴잉글랜드참취 Canada Goldenrod ,양미역취


내가 식물을 선택한 이유는 참취와 미역취가 함께 있을 때 왜 그리도 아름답게 보이는지 알고 싶어서라고 그에게 말했다. 67

왜 참취와 미역취는 혼자 자랄 수도 있는데 나란하 자랄까? 왜 둘이 짝을 이룰까? 분홍색과 흰색과 파란색이 놓인 것은 순전히 우연일까? 이 패턴은 어디서 왔을까? 세상은 왜 이토록 아름다울까? 그러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텐데. 우리 눈에 추하게 보이면서도 제 목표를 얼마든지 달성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런데도 그러지 않았다. 교수의 말, "아름다움을 공부하고 싶으면 미대에 가야죠" 69

벌과 사람 둘 다 두 꽃을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두 꽃은 함께 자랄 때 선명한 대비를 이룸으로써 초원 전체에서 가장 매력적인 표적, 즉 벌의 유도등이 된다. 함께 자라는 덕에 꽃가루받이 곤충의 방문을 따로 자랄 때보다 더 많이 받는다. 

왜 미역취와 참취는 함께 있을 때 아름다울까? 그것은 물질적인 동시에 영적인 현상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모든 파장이 필요하며 깊이 지각이 필요하다. 세상을 과학의 눈으로 아주 오랫동안 쳐다보면 전통 지식의 잔상이 보인다. 어쩌면 과학과 전통 지식은 서로에게 자주색과 노란색일까, 참취와 미역취일까/ 세상을 더 온전히 보려면 두 지식을 다 활용해야 한다. 77

물론 참취와 미역취의 문제는 내가 정말로 알고 싶었던 문제의 한 예일 뿐이다. 내가 간절히 이해하고 싶었던 것은 관계의, 연결의 구조 였다. 모든 것을 하나로 묶는 아렴풋한 끈을 보고 싶었다. 왜 내가 세 상을 사랑하는지, 왜 초원의 가장 평범한 구석이 우리를 뒤흔들어 경외감에 빠지게 하는지 알고 싶었다. 77

그래 9월 자주색과 황금색의 짝은 호혜성을 살아냈다. 그 지혜는 하나의 아름다움이 나머지 하나의 빛을 받아 더욱 빛난다는 것이다. 과학과 예술, 물질과 정신, 토박이 지식과 서구 과학이 서로에게 참취와 미역취가 될 수 있을까? 참취와 미역취 곁에 있으면 그 아름다움은 내게 호혜성을 요구한다. 보색이 되라고, 자신이 배푼 아름다움의 대가로 너도 무언가 아름다운 것을 만들라고.78 

 

 

유정성의 문법 Learning the Grammar of Animacy

어떤 장소에 토박이가 되려면 그 언어를 배워야 한다. 

내가 여기 온것은 귀를 기울이고 뿌리의 곡선과 솔잎 속의 부드러운 공간을 보금자리로 삼고 내 뼈를 스트로브잣나무 기둥에 기대고 내 머릿속의 목소리를 끈 채 바깥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다. 솔잎을 스치는 바람소리, 바위에 떨어지는 물소리, 동고비가 나무줄기 두드리는 소리, 줄무늬다람쥐가 땅 파는 소리, 너도밤나무 열매 떨어지는 소리, 귓가의 모기 소리.. 내가 아닌 소리, 표현할 언어가 없는 소리, 우리가 결코 외롭지 않음을 알려주는 언어 없는 존재들의 소리를, 우리 엄마의 심장박동 이후로 나의 첫 언어는 '이 소리들'이었다. 79

퍼퍼위 : 버섯을 밤중에 땅에서 밀어올리는 힘

언어는 물, 땅, 심지어 날에 이르기까지 세상의 유정성을 보는, 만물에서(소나무, 동고비와 버섯에서) 맥박 치는 생명을 보는 거울이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숲에서 듣는 언어, 우리의 사방에서 솟아오르는 것에 대해 말할 수 있게 해주는 언어다. 기숙학교의 잔재, 비누를 휘두르던 선교사의 유령은 패배하여 고개를 떨군다. 90

이것은 유정성의 문법이다. '저것'은 사람에게서 자아와 친족성을 빼앗아 그를 단순한 사물로 전략시킨다. 그래서 포타와토미어를 비롯한 대다수 토박이말에서는 살아 있는 세계를 가리키는 단어와 가족을 가리키는 단어가 같다. 그들도 우리 가족이기 때문이다. 

우리 언어의 유정성 문법은 누구에게까지 확장될까? 식물과 동물은 당연히 유정물이지만, 나는 공부를 하면서 포타와토미어에서 이해하는 유정성이 생물학 개론에서 배운 생물의 특징 목록과 다르다는 것을 발견한다. 포타와토미어 개론에서는 바위가 유정물이다. 산, 물, 불, 장소도 마찬가지다. 정령이 깃든 존재, 우리의 성스러운 약, 우리의 노래, 북, 심지어 이야기도 모두 유정물이다. 무정물 목록은 그보다 적은데, 대부분 사람이 만든 물건이다. 91

학생들은 여전히 식물의 과학적 기능과 라틴어 학명을 배워야 하지만, 나는 학생들이 세상을 '인간 아닌 이웃들과 더불어 사는 곳'으로 바라보고 생태신학자 토머스 베리 말마따나 "우주가 대상의 집합이 아니라 주체의 연합이라고 말해야 함'을 알도록 가르치고 싶다. 92

걸음마를 하는 아이는 동식물을 마치 사람인 것처럼 지칭하며 자아와 의도와 공감을 확장한다. 그러지 말라고 가르칠 때까지는. 우리는 재빨리 아이들을 재교육하고 잊어버리게 한다. 나무가 '사람'이 아니라 '그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단풍나무를 대상으로 만드는 일이다. 우리는 우리 사이에 벽을 세우고는 도덕적 책임을 방기하고 착취의 문을 연다. 살아 있는 땅을 '그것'이라고 말하면 땅은 '천연자원'이 된다. 단풍나무가 '그것'이면 우리는 사슬톱을 들이댈 수 있다. 하지만 단풍나무가 '그녀'라면 한 번 더 생각할 것이다. 93

어쩌면 유정성의 문법은 세상을 살아가는 전혀 새로운 방법으로 우리를 인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른 종을 주권자로 대우하고 하나의 독재가 아니라 종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세상, 물과 늑대에게 도덕적 책무를 지는 세상, 다른 종의 처지를 고려하는 법률 체계를 가진 세상 말이다. 

식물 = 서 있는 사람들 standing people(인디언들이 식물을 이르는 말) 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