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향모를 땋으며

향모를 땋으며(8)_세 자매

백_일홍 2024. 7. 25. 14:24

세 자매 The Three Sisters

어떤 이야기에 따르면 기나긴 겨울에 사람들이 굶주 림으로 쓰러져가고 있었다고 한다. 눈 내리는 밤 아름다운 여인 셋이 사람들의 집으로 찾아왔다. 한 명은 키가 컸는데 온통 노란색으로 차려입었으며 기다란 머리카락이 찰랑거렸다. 두 번째 여인은 초록색 옷을 입었으며 세 번째는 주황색을 걸쳤다. 세 여인은 불 가에서 몸 을 녹이려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식량은 넉넉하지 않았지만 낯선 손 님들은 넉넉한 대접을 받았으며 얼마 남지 않은 음식을 사람들과 함 께 먹었다. 세 자매는 환대에 감사하는 뜻에서 자신들이 실은 옥수 수와 콩과 호박이었음을 밝히고 사람들이 다시는 굶주리지 않도록 자신을 씨앗 꾸러미로 내어주었다. 195

세 자매는 높이가 들쭉날쭉한 덕에 해의 선물인 빛을 버리는 것을 이 알차게 쓴다. 형태의 유기적 대칭은 전체를 아우른다. 잎 하나하나 의 배치, 형태의 조화가 나름의 메시지를 표현한다. 서로를 존중하고 떠받치고 세상에 선물을 주고 남들에게서 선물을 받으라. 그러면 모 두에게 풍족하게 돌아갈 것이다. 196

세 자매가 의도적으로 협력한다는 것은 솔깃한 상상이다. 정말 그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협력의 묘미는 각 식물이 자신의 생장을 증진하려고 이렇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개체가 번성하면 전체도 번성한다.

세 자매의 방식은 우리 부족의 기본적 가르침을 내게 상기시킨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각자의 고유한 선물과 이것을 세상에서 어떻게 쓸것인가다. 개별성이 중요시되고 장려되는 것은 전체가 번성하려면 각자가 굳건히 서서 자신의 선물을 당당히 가져가 남들과 나눌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세자매를 보면 구성원들이 자신의 선물을 이해하고 공유할 때 공동체가 어떻게 될 수 있는지 분명히 알 수 있다. 호혜성은 우리의 배뿐 아니라 마음도 채운다. 199

저기, 옥수수 수백만 포기가 어깨를 맞댄 채 콩도 호박도 곁에 없이 잡초 하나 없이 서 있을 것이다. 콩의 조력은 질산암모늄이 대신한다. 호박잎을 대신하여 트랙터가 제초제로 잡초를 죽인다. 206

저 계곡이 세 자매 밭이던 시절에는 틀림없이 벌레와 잡초가 있었을 테지만, 작물들은 농약 없이도 잘 자랐다. 여러 종의 식물을 두루 기르는 섞어짓기는 홀짓기보다 해충에 덜 취약하다. 다양한 식물은 여러 곤충에게 서식처를 제공한다. 옥수수벌레, 콩바구미, 호박나방 같은 일부 곤충은 작물을 먹을 작정으로 밭을 찾는다. 하지만 식물 이 다양하면 이런 해충의 천적에게도 서식처가 생긴다. 포식성 딱경 벌레와 기생벌은 밭과 공존하면서 해충 개체 수를 억제한다. 이 밭에 서 먹고 사는 것은 사람만이 아니지만, 그래도 모두에게 넉넉히 돌아 간다. 206

혼자 잇으면 콩은 덩쿨일 뿐이요 호박은 넙데데한 잎일 뿐이다. 옥수수와 함께 서 있을 때에만 개체를 초월한 전체가 생겨난다. 각자의 선물은 따로보다 함께 준비될 때 더 온전히 표현된다. 익은 이삭과 부푼 열매에서 세 자매는 모든 선물이 관계 속에서 증식한다고 조언한다. 세상은 이렇게 돌아간다. 208

 


위스가크 고크 페나겐: 검은물푸레나무 바구니

전통적인 벌목꾼은 나무 한 그루 한 그루의 개별성을 인정하여 사람처럼 대한다. 인간 아닌 숲사람으로 여기는 것이다. 나무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나무에게 부탁한다. 공손하게 자신의 목적을 설명하고 벌목 허가를 청한다. 214

어린 나무가 무성한 또 다른 장소는 바구니 장인들의 마을 근처였다. 검은풀푸레나무 바구니 제작 전통이 살이 있고 튼튼한 곳에서는 나무도 그랬다. 우리는 검은 풀부레나무 감소가 남벌 때문이 아니라 과벌 때문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바구니 장인들이 숲에 많아서 햇빛이 아기나무에 도달하도록 틈을 열어주었으며 어린 나무들은 숲지붕까지 뻣어 올라가 어른 나무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바구니 장인들이 사라지거나 거의 없는 곳에서는 숲지붕이 열리지 않아 검은물푸레나무가 제대로 자라지 못했다.

검은물푸레나무와 바구니 장인은 수확하는 존재와 수확되는 존재로서 공생하는 동반자다. 검은물푸레나무는 사람에게 기대고 사람은 검은물푸레나무에게 기댄다. 둘의 운명은 서로 이어져 있다. 221

가을마다 호리비단 벌레의 위협이 본토를 향해 다가오는 상황에서 레스와 동료들은 최상의 씨앗을 채집하기 위해 일손을 모으고 있다. .. 모든 종은 저마다의 레스 베네득트, 저마다의 피전 집안 같은 동반자와 보호자가 필요하다. 우리의 전통적인 가르침에서는 우리를 돕고 인도하는 종들이 있다고 말한다. 으뜸명령은 호의를 갚으라고 일깨운다. 다른 종의 수호자가 되는  것은 명예로운 일이다. 누구나 이 명예를 누릴 수 있음을 우리는 너무 쉽게 잊어버린다. 검은풀푸레나무 바구니는 우리 존재의 선물을, 보호와 돌봄으로 기꺼이 되갚을 수 있는 선물을 우리에게 일깨운다. 224

땅과 사람의 안녕이라는 바구니를 짤 때는 세 줄의 교훈을 마음 에 새겨야 한다. 생태적 안녕과 자연 법칙은 언제나 첫 번째 줄이다. 이게 없으면 풍요의 바구니를 만들 수 없다. 첫 번째 원이 자리를 잡아야만 두 번째 원을 짤 수 있다. 두 번째 줄은 물질적 안녕, 즉 인간 적 필요의 충족을 나타낸다. 경제는 생태를 바탕으로 삼는다. 하지 만 두 줄만 있으면 바구니는 여전히 풀어질 우려가 있다. 세 번째 줄이 와야만 앞의 두 줄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곳에서 생태, 경제, 영성이 하나로 짜인다. 재료를 마치 선물인 것처럼 이용하고 가치 있는 쓰임새로 그 선물에 보답함으로써 우리는 균형을 찾는다. 세 번째 줄은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존중, 호혜성, 우리의 모든 관계, 나는 영성의 줄이라고 생각한다. 이름이 무엇이든 세 줄은 우리의 삶이 서로에게 기대고 있다는 인식을 나타낸다. 우리 모두를 담아야 하는 바구니에서 인간의 필요는 한 줄에 지나지 않는다. 낱낱의 나무끈은 관계 속에서 하나의 바구니가 우리를 미래로 데려갈 만큼 질기고 튼튼한 바구니가 된다. 227

내가 손에 들고 있는 것(바구니)이 나무의 일생임을 깨닫는다. 우리에게 주어진 생명들을 예리하게 자각하며 사는 삶은 어떤 것일지 궁금했다. 휴지에서 나무를 떠올리고 치약에서 조류를, 바닥에서 참나무를, 포도주에서 포도를 떠올린다면 만물에 깃든 생명의 끈을 거슬러 올라가 공경으로 보답한다면 어떻게 될까? 한번 시작하면 멈추기는 쉽지 않다. 여러분은 자신이 선물에 둘러싸여 있음을 느끼기 시작한다. 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