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향모를 땋으며

향모를 땋으며(7)_감사에 대한 맹세.콩을 보며 깨닫다

백_일홍 2024. 7. 25. 13:49

감사에 대한 맹세 Allegiance to Graditute

국기에 대한 맹세, 모두를 위해 자유와 정의를. 

우리의 뿌리는 감사의 문화다. 

감사가 최우선인 문화에서 자녀를 키운다고 생각해보라. 프리다 자크, 그녀는 내게 감사 연설이 오논다가족과 세상의 관계를 구체화한 것이라고 설명해준다. 창조 세계의 각 부분은 조물주가 나머지 존재들에게 준 의무를 다하기에 감사를 받는다. "그러면 자신이 충분히 가졌음에 매일 자각하게 돼요. 아니, 충분한 것 이상이죠.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 이미 여기에 있어요. 매일 이렇게 하면 모든 창조 세계를 만족과 존중의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답니다." 

감사 연설을 들으면 부자가 된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감사를 표현하는 것은 순진무구해 보이지만, 혁명적 개념이기도 하다. 소비 사회에서 만족은 급진적 태도다. 희소성이 아니라 풍요를 인정하는 것은 충족되지 않은 욕망을 창조함으로써 번성하는 경제에 타격을 가한다. 감사는 충만의 윤리를 계발하지만, 경제는 공허를 필요로한다. 감사 연설은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이미 우리에게 있음을 일깨운다. 감사는 만족을 찿기 위해 쇼핑하라고 등을 떠밀지 않는다. 감사는 상품이 아니라 선물로 다가오기에 경제 전체의 토대를 뒤엎는다. 감사는 땅에게도 사람에게도 좋은 치료약이다. 169

연설은 단순한 경제 모형이 아니라 윤리 교육이기도 하다. 프리다는 젊은이들이 매일 감사 연설을 들음으로써 베리의 우두머리인 딸기와 새의 우두머리인 독수리처럼 지도력의 본보기를 얻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결국 자신들에게 기대되는 것이 많다는 걸 깨닫게 되죠. 훌륭한 지도자가 된다는 것, 미래를 내다본다는 것, 너그러움을 베푸는 것, 부족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려줘요. 단풍나무가 그렇듯 지도자는 자신의 선물을 가장 먼저 내어주는 사람이예요." 지도력이 힘과 권위가 아니라 섬김과 지혜에 있음을 공동체 전체에 일깨워주는 것이다.170

감사로 양육되는 것, 자연을 종 민주주의의 일원으로 이야기하는 것, 상호의존의 맹세를 기르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 정치적 충성의 선언은 전혀 필요하지 않다.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하는 데 동의할 수 있습니까?라는 되풀이 되는 물음에 답하기만 하면 된다. 감사연설에서는 인간 아닌 모든 존재에 대한, 정치제만이 아니라 뭇 생명에 대한 존중을 느낄 수 있다. 국경선을 모르고 사고팔 수도 없는 바람과 물이 맹세의 대상이라면 국가주의는, 정치적 경계선은 어떻게 될까? 171

감사 연설은 의무와 선물이 동전의 양면임을 일깨운다. 인간의 의무는 무엇일까? 우리의 책임은 무엇일까?라고 묻는 것은 곧 우리가 받은 선물은 무엇일까?라고 묻는 것과 같다.감사하는 능력은 인간에게만 있다고들 한다.이것이 우리가 받은 선물 중 하나다. 175

나도 우리나라를 사랑한다. 자유와 정의에 대한 희망을 사랑한다. 하지만 내가 존중하는 범위는 공화국보다 크다. 생명의 세계에 호혜성의 맹세를 하자. 감사 연설은 인간 대표자로서 종 민주주의에 대한 충성을 상호 서약하는 것이다. 177

 


콩을 보며 깨닫다 Ephipany in the Beans

씨앗은 우리 스스로 얻은 것이 아니다. 하늘여인이 사랑하는 딸을 대지에 묻었을 때 아이의 몸에서 식물이 돋아나 사람들에게 특별한 선물이 되었다. 머리에서는 담배가, 머리카락에서는 향모가, 심장에서는 딸기가 자랐다. 가슴에서는 옥수수가, 배에서는 호박이 자랐으며 아이의 손에서는 손가락이 기다란 콩꼬투리를 볼 수 있다. 182

9월의 햇빛민큼 따스하고 뚜렷하게 분명히 알고 있었다. 땅도 우리를 사랑한다는 것을. 땅은 콩과 토마토로, 군옥수수와 검은 딸기와 새소리로 우리를 사랑한다. 선물의 소나기와 가르침의 큰비로. 땅은 우리를 먹여 살리고 우리에게 먹고 사는 법을 가르친다. 좋은 엄마가 그러듯. 

... 이것이 내가 이이들에게 농사일을 가르친 진짜 이유다. 내가 떠난 뒤에도 아이들을 사랑해줄 엄마가 영원히 함께 있도록. 

콩을 보며 깨닫는다. 땅과 우리의 관계 어떻게 우리가 이 많은 것을 받는지. 보답으로 무엇을 돌려줄 수 있는지 오랫동안 생각한다. 호혜성과 책임의 방정식, 생태계와 지속 가능한 관계를 맺는 이유와 목적을 곰곰이 따져본다. 오로지 두뇌 속에서, 하지만 문득 설명과 합리화가 모두 사라졌다. 엄마의 사랑으로 가득한 바구니의 순수한 감각만 남았다. 궁극적 호혜성,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 183

식물과 사람 사이의 교환은 둘의 진화사를 빚었다. 논밭, 과수원, 포도원에서는 우리가 길들인 종이 자란다. 그 결실이 입맛에 맞기에 우리는 식물을 대신하여 땅을 갈고 가지치기를 하고 관개를 하고 비료를 주고 김을 맨다. 어쩌면 식물이 우리를 길들인 것인지도 모른겠다. 야생 식물은 반듯하게 서도록 달라졌고 야생 인간은 들판 옆에 정칙하여 식물을 돌보도록 달라졌다. 이것은 일종의 상호 길들이기다. 

우리는 공진화적 순환으로 연결되어 있다. 복숭아가 달수록 우리는 더 자주 씨앗을 퍼뜨려주고 어린 나무를 돌보고 위험으로부터 보호한다. 작물과 사람은 서로의 진화에 선택압으로 작용한다. 한쪽의 번성은 다른 쪽에게도 유리하다. 이것은 내 귀에는 다소 사랑처럼 들린다. 186

사람들은 땅과 사람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 추천할 만한 한 가지가 무엇이냐고 종종 내게 묻는다. 그때마다 내 답은 한결같다. "텃밭을 가꾸세요" 텃밭은 대지의 건강에도 좋고 사람의 건상에도 좋다. 텃밭은 연결을 키우는 묘상이자 현실적 존중을 배양하는 토양이다. 텃밭의 힘은 출입구 안에 머물지 않는다. 땅 한 조각과 관계를 맺으면 그 자체가 씨앗이 된다. 

텃밭에서는 꼭 필요한 무언가가 생겨난다. 텃밭은 큰 소리로 "사랑해"하고 외치지 않고서도 씨앗으로 말할 수 있는 곳이다. 그러면 땅이 화답할 것이다. 콩으로. 189